udong2023-08-07 00:16:43
달에 고립된 우주 비행사처럼 길을 잃어버린 '더 문'
<더 문>(2023) 스포일러 없는 후기
이 먼 우주에 나 혼자
영화의 첫 장면은 2029년의 우주 어딘가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황선우는 우주 한가운데에서 동료들과 함께 공중에 떠 있다. 우주 비행사는 세 명이다. 세 사람이 있는 공간, 그러니까 우주선에 문제가 발생했다. 결함이 생겼으니 고쳐야 한다. 선우를 제외한 나머지 두 사람이 우주선 외부에서 수리 중이다. 비행사 내부적으로는 연료가 문제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연료 탱크 쪽으로 움직이는 두 비행사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게 발견됐다. 지지직. 연료 팩이 뭔가 이상하다. 갑자기 이상이 생긴 우주선. 불똥이 비행사들에게 튀었다. 한 비행사는 우주 깊은 곳으로 떨어졌고, 다른 사람은 우주복에 즉각적으로 핏자국이 드러날 정도로 생명에 지장이 생겼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다. 선우는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기로 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포기한 선우의 선임 비행사. 선임 둘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말이 무색하게 둘은 선우의 곁을 떠났다. 선우 일행의 비행에 부처의 명운이 달려있기 때문에 한국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모니터링하고 있다. 비상상황에 처한 건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연료에도 문제가 생겼고, 그 무엇보다 선우는 혼자가 됐다. 도움을 청하는 과학기술통신부. 연락이 닿은 곳은 김재국 박사의 연구소다. 과연 김재국 박사는 구원투수가 되어 선우의 무사귀환을 마무리지을 수 있을까?
K-드라마 권위자
이 영화를 만든 김용화 감독은 한국형 드라마에 특화된 인물이다. 전작 ‘신과 함께’ 시리즈는 한 사람의 일생을 반추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영화가 모성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통해 감동을 주려고 했던 기획의도와 맞물린다. 영화의 핵심과 원작의 형식이 잘 맞아떨어진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의 설정을 공감대가 생길 수 있는 보편적인 선에서 잡고 그 가운데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에 힘을 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신과 함께 : 죄와 벌>에서 예수정 배우의 연기가 그 예시다. 이 캐릭터는 선하고 헌신적인 어머니상을 표현하기 위해 모든 방점을 다 찍었다. 모성이라는 무기가 영화의 무기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미녀는 괴로워> 같은 경우도 전신성형이라는 극단적인 설정 아래 외모지상주의/진정한 사랑의 존재 유무를 대비시켰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무기는 여러 가지다. 첫째로 제목이 ‘더 문’인 만큼 우주의 디테일을 잘 살렸다. 누리호와 달을 구현한 방식, 중후반부에 발생하는 이야기의 가장 큰 위기까지 시각적으로 충분히 풍부하다. 이외에 주인공 도경수 배우가 보여주는 액션 역시 구체적이다. 주인공에 그렇게까지 몰입이 잘 되는 영화가 아니라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액션 시퀀스 하나만큼은 인물에 이입할 수 있다. 비단 시각효과뿐만 아니라 이야기에서 감정적으로 진한 순간이 있다. 선우의 곁을 떠난 두 명의 우주비행사와 관련된 부분, 선우와 재국의 관계, 재국과 문영의 관계, 선우가 왜 이 프로젝트에 집착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부분까지 우주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휴먼드라마에 힘을 준 부분이 분명히 있다. 기존 김용화 감독의 작품들을 우호적으로 생각했던 분이라면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볼 요소가 충분하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괜찮지'
이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황선우를 구해라'다. 선우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거나 감정적으로 이입하고 있다. 이 과정 중에 영화의 서스펜스가 만들어진다. 가령 선우의 동료들이 초반부에 사고사하는 일 자체나 후에 제시되는 특정 몇 사건들이 그렇다. 이 사건의 나열에서 영화가 시각화에 중점을 두었다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해 보인다. 여기서 디테일한 묘사에 실패하면 이야기의 감정적 공감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 문>은 이 관점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의 기본 틀 자체가 무너진다는 점은 이 영화의 성취가 과연 큰 의미가 있는가? 반문하게 된다. 영화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예술이다. 당연히 서사예술의 측면에서 ‘서사’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서사의 흐름을 잡지 못했기에 뛰어난 시각화 수준이 별로 들어오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황선우를 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문제들을 계속 욱여넣는다. 기본적으로 이 누리호 프로젝트를 나라차원에서 준비한다고 가정하면 베이스가 너무 부실하다는 허점이 있다(심지어 과학기술부 장관에 대한 설정을 어물쩍 넘기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이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조직이 나라가 아니다 하더라도 인물들은 이걸 열심히 준비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 대해 철저하지 않으면 후반부 인물의 선택이나 감정적인 하이라이트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 사전준비의 측면이 아니더라도 사건이 벌어지고 난 다음의 대처도 감정적으로 임팩트를 주기 위해 인물들이 짜 맞춰져 진 것처럼 행동한다. 분명히 이 나라의 국민들에게 여론이 형성될 만큼 국가에 영향이 큰 사건인데 사람들이 깊게 고민하는 티조차 나지 않는다. 그냥 무턱대고 울면 그만인가?
깊지 않은 고민
영화 전체적으로 얕은 깊이가 얕다는 점은 분명한 단점이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찾기 어려웠던 것 중 하나는 ‘신파’다. 보통 인위적으로 인물을 괴롭혀서 관객에게 눈물을 유발하는 것을 신파라고 부른다. 최근 한국영화를 두고 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이 비판했던 부분이기 때문에 제작자들이 어느 정도는 이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여주듯 감정을 쥐어짠다고 해서 무조건 흥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범죄도시’ 시리즈나 <공조 : 인터내셔날>처럼 시원한 액션이 들어가 있는 영화가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최근에 <인생은 아름다워>나 <드림> 정도가 아니면 신파코드가 있는 한국영화를 찾기 어려웠다.
이 영화는 쉬운 수만 골라서 택한다. 대표적으로 선우의 곁을 떠난 두 선임 비행사에 관한 몇 장면은 편의적이다. 이야기의 흐름에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 ‘불쌍하지?’ 질문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틈입한다. 또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위기가 있다. 이 부분에서 재국의 동료가 취한 선택지가 구체적이지 않아 현실성이 떨어진다. 또 이 이야기에서 국수주의적인 장면이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IF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기도 하고,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과 직관적으로 맞아떨어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왜 이게 들어갔을까 생각해 보면 그냥 감정적으로 고양시키고 관객을 자극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만큼 이런 것들을 받쳐줄 깊이가 없기 때문이다.
누수가 생긴 테크닉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 CG 시각화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단점은 작품의 기술적인 부분이다. 음향은 영화에 이입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다. 일단 러닝타임 내내 들리는 삽입곡은 영화가 촌스럽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결정적으로 대사가 잘 안 들려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는다. 특히 설경구, 김희애 배우의 분량에서 두드러진다. 두 배우는 연기력으로는 충무로에서 검증이 끝난 분들이다. 이 영화의 거의 유일한 장점이었던 <유령>의 설경구 배우, <윤희에게>나 <부부의 세계>에서 건재함을 보여준 김희애 배우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촬영 역시 아쉽다. 이야기에서 같은 구도가 계속해서 반복된다. 황선우가 무슨 문제가 생긴다? 그럼 조단역 캐릭터 중 아무나 자리에 앉아서 운다. 이 장면이 한 번만 들어가면 모르겠는데 반복되는 점은 영화가 갖고 있는 큰 아이러니다. 시각화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영화에 기술적인 부분이 단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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