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8-26 00:38:24
[SIWFF 데일리]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영화 <비밀을 이야기하는 방법>

SYNOPSIS
오늘날 아일랜드의 HIV 감염인들의 삶과 경험에 대한 강렬한 고찰을 담은 영화. 당사자 발화 예술과 사회적 낙인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하이브리드 다큐멘터리이다.
PROGRAM NOTE
숀 던 감독은 2017년 연극 「급류」를 발표했다. 아일랜드에서 살아가는 HIV/AIDS 감염인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극을 구성하여 만든 연극이었다. 그로부터 5년의 시간이 흘러 숀 던 감독은 공동 연출자 애나 로저스와 함께 과거 인터뷰이들을 다시 찾아가 카메라에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그리고 과거 연극을 만들 때 얼굴과 이름을 드러낼 수 없었던 이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연극적으로 재현했던 배우들을 중첩시켜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를 재의미화한다. 과거와 현재, 실재와 가상의 충돌은 아일랜드 사회가 HIV/AIDS를 어떤 방식으로 터부시했고 감염자들을 차별해 왔는지 깨닫는 기회로 다가온다. 또한 6년이란 시간을 사이에 두고 감염인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된 변화가 그들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노력한 활동가의 역할이었음을 확인시킨다. 비밀을 말할 수 없는 자들에게 비밀을 이야기하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이 사회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일랜드의 상황을 넘어 한국의 상황 속에서 감염인 당사자의 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전해질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이동윤]
한 가지 개인적인 경험. 나는 HIV 테스트를 해본 적이 있다. 그것도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여기까지 듣고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인도에서 HIV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집집마다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도록 하고… 뭐 그런 일을 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을 안아주기도, 내 손을 붙들고 우는 아주머니의 손등을 토닥이거나 등허리를 끌어안기도 자주 했다. 그들이 해준 음식을 먹거나 그들과 같은 모기에 물리는 것으로는 옮지 않지만, 혹시나 알게 모르게 그에게도 나에게도 상처가 나 있었다면, 그래서 혈액과 혈액이 닿는다면, 옮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적지만 존재했다. 사실 그러다가 옮는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돌아와 검사를 받으려니 머뭇거리는 내가 있었다. 결국 집에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한참을 뭉적거리다, 채용 검진을 받아야만 하는 시기가 왔을 때 병원에서 같이 검사를 해버렸다. HIV 검사 결과는 채용 검진 결과보다 늦게 나오니 따로 연락이 갈 거라고 했다.
HIV 검사 결과만을 받아보기 위해 병원을 찾았는데, 이름을 부르더니 진료실로 들어오라는 거다. 아니 왜? 음성이라면 그냥 결과지만 주고 끝내도 되는 거 아닌가? 왜 진료실로 들어오라고 하지? 나 혹시라도 양성인가?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머릿속이 팽팽 돌았다. 그렇게 복잡한 심경으로 들어선 진료실에서 나는 거의 U턴하다시피 했다. “음성입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한 마디만 딱 듣고.
아주 짧은 시간의 간접 경험으로도, 그려볼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에 바이러스가 찾아왔다는 말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지를. 그 바이러스가 단순히 몸을 아프게 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회적인 낙인과 함께 온다면?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싶었다. HIV/에이즈가 차별, 멸시, 낙인의 대상이 아닌 사회는 존재하지 않지만, 인도에서의 그것과 아일랜드의 그것은 분명 다를 텐데. 이 영화 속 사람들은 어떤 사회를 살아가며,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누군가의 진솔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들어간 영화관에서 내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뜻밖에도 매우 연극적인 독백이었다. 이어 아예 대놓고 연극 무대와, 연극을 연습하기 딱 참해 보이는 체육관마저 나온다. 이토록 연극적인 느낌으로 펼치는, 고백과 비밀에 대한 독백. 그러나 내용을 들어보면 지극히 보편적인 말이다. 이건 사실일까? 아니면 연극 연습일 뿐인 걸까?
사실은 곧 밝혀진다. 숀 던 감독은 영화에 직접 뛰어들어, HIV 감염인들을 만나고 이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 직접 올라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가명과 대역을 쓰지만, 이들은 가명과 대역 뒤에 숨는 게 아니라 이 또한 목소리를 전하는 한 가지 방법임을 느끼게 된다. HIV가 왜 사회에서 침묵과 회피의 주제가 되었는지, 왜 당사자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지 숀 던 감독은 질문한다.

1인칭의 목소리는 힘이 있다. 언제나 그렇다. 똑같은 이야기도 보고서의 단조로운 톤으로 읽으면 ‘그런가 보다’ 싶은데, 누군가가 1인칭의 경험담으로 묶어내는 순간, 그냥 담백한 사실의 나열만 해도 저절로 힘을 갖는다. 보다 보면 왜 이 영화가 세상에 필요했는지를 알게 된다. HIV 감염인들의 목소리는 세상에 나와야 한다. 삶은 계속되니까.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척해서도 안 된다. HIV의 고통—꼭 관련 질환보다는 사실 사회적인 시선과 불안이 더 큰 그 고통—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할 필요가 있다.
현명하고 생생하게 연출해 낸 덕분에, 관객은 이 영화가 표상하는 인물들과 쉽게 연결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을 마음이 생긴다. 영화 끝자락에 이르렀을 때 나는 조금 울컥했다. 세간에서 HIV는 지난 세기 죽음의 공포로 다가왔다가 잊힌 것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현실이다. 아무것도 아니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꼿꼿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절망시킬 것도 아닌. 한 바퀴 돌아 삶을 제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는 어떤 것.
이 영화에도 나오지만, HIV 감염인을 “PLWH” 혹은 “PLWA”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People living with HIV/AIDS, 그러니까 이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영화 속의 로비가 낙인을 강화한다며 못마땅해하는 ‘sufferer’라는 표현도, 우리가 ‘환자’라고 했을 때 단어 대 단어로 달달 외운 ‘patient’라는 단어도 적절치 않다. 사실 HIV는 바이러스이니 보균자 혹은 감염인이 맞고, AIDS의 S는 신드롬, 질환의 가능성을 안은 상태를 뜻하니 환자라는 말도 적절치 않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에이즈 환자’라고 느껴, 적절한 표현을 많이 고민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나는 인도에서 ‘에이즈 환자’들을 만났고, 그들은 주로 가족 단위였으며, 그래서 가족으로서 건강한 삶을 유지할 방법에 대한 건전하고 올바르고 밝은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아마 한국에서라면 ‘에이즈 환자’를 위해 뭘 하든 훨씬 힘들었을 거라고. 한국에서 HIV/에이즈로 신고한 사람의 96%가 남성이다. 가족 단위로 이야기할 내용은 이미 아니라는 뜻이다. 신고하지 않은 사람들의 비율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이전까지 세계적으로 에이즈는 감소세였는데, 한국은 증가세를 보였다가 오히려 반대로 코로나 이후에 약간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 숫자만으로 함의점을 찾아낼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예감이 있다. 인도 사람들보다, 이 영화 속 아일랜드 사람들보다, 우리나라의 HIV 감염인은 입을 쉽게 열지 않을 것 같다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는.
그런데 내가 HIV 감염인들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그래서 이들과 내가 과연 무엇이 다르지?”였다. 물론 그중에는 감염인 상태로 매일 밤 다른 상대를 찾아 침대로 끌어들이는 사람도 있었고, 교통사고로 수혈을 잘못 받아 안타깝게 감염인이 되었다가 시력까지 잃어버린 사람도 있었긴 하다. 나 개인과 비교했을 때 보다 보건 차원에서 문제 있는 생활을 한 사람도 있고 훨씬 기구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었다는 소리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HIV 감염인에 곧장 꽂히는 차별의 시선과 달리, 비감염인의 삶은 과연 얼마나 다른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본 사람과 아닌 사람의 일상에 큰 차이가 없었듯이, HIV 또한 사실 그렇다.
그래서 이 영화에 깊숙하게 뛰어들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모으고 그들의 입이 된 숀 던 감독이 대단해 보였다. 각자의 이야기와 이름을 빼앗지 않으면서도 가릴 자리를 잘 알고 가린, 영리한 연출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터부시하는 것과 과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질문을 던지며, 이 사회의 감염인들의 목소리를 궁금해한다. 좋은 영화는 이렇게 나의 생에 질문을 떨군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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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 참으면 돼. 아니, 너만 참으면 돼.
* 이 리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뒤로 가셔도 됩니다.
시끌벅적한 시장 입구. 차를 타고 상견례장에 도착한다. 부모를 창피해하는 듯 아닌 듯하는 딸과 예비 사된 내외를 기다리고, 각자의 자녀를 칭찬하고, 조금은 위태해 보였던 상견례는 끝이 난다.
주인공 오복은 상견례를 위해서 입었던 예쁜 옷을 입고, 구 시장 철거 반대대책위의 술자리에 합석한다. 가방에는 딸에게 줄 큰돈을 넣어둔 상태였다. 영화의 배경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고 관람했던 터라 혹시 돈은 도둑맞는 것인가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가방을 단단하게 메고 귀가하는 오복을 보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아침의 오복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숙취 때문인가, 무슨 일이 있었나 걱정하던 찰나 지하철 계단에서 지나가던 학생이 말해준다.
"아주머니, 피..."
'그래. 영화가 진행되려면 뭔가의 사건이 있어야 하는 것이 맞지.'라고 생각했고, 그 사건은 영락없이 오복이 병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병에 걸리면서 병원비에 드는 돈과 딸 결혼식에 드는 돈에 의해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는가 보다 했다. 그런 일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술 마시고 가라며 잡아끌던 그 손을 '더럽다'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말이다.
담담한 표정으로 목욕탕에 가서 씻고, 속옷을 빨고, 병원을 가고, 집에 눕는다. 벌써 안 쓴 지 한참 된 생리대를 다시 사용한다. 가족들은 가게에 나가지 않는 오복을 걱정하지만 그러려니 한다. 나이가 있으니까 그냥 몸이 안 좋으니까 했다. 그러는 중에 가해자는 오복의 집에도 다녀갔다. 걱정하는 척, 상황을 염탐하러 간 것으로 보였다. 아니, 사실 가해자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전혀 인식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 속앓이를 하던 오복은 대책위의 가장 어른에게 '사과'를 받아다 달라고 했다. 대면하기 조차 싫은 그 마음과 '왜', '무엇 때문에'를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싫은지를 너무나 알고 있기에 괜스레 눈물이 났다. 며칠을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 사과였다는 것도 이해가 갔다. 아마 오복에게는 '나만 참으면'의 주문이 작용했으리라.
다만, 그런 인내와 용서에는 진심 어린 사과가 동반해야 한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한강에 배 한 번 뜬 거라는 거지 같은 소리도 몸에 난 상처도 잘못했다는 사과 하나면 충분했을지 모른다. 오복도 그 시대의 사람이었기에, 그런 상황이 있을 때는 여자가 참아야 한다는 것을 배워온 세대였기에 더욱이.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과는 받아지지 않았고, 시장에는 누군가가 피해를 당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대책위의 중심에 있었던 가해자를 다들 필요로 했다. 지금 그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 공론화가 되면 보상금을 받을 수 없게 될까 봐 다들 전전긍긍했다. 시장 안의 누구도 오복의 편이 되어주지 못했다. 물론 안 한 사람도 있었지만. 오복은 그가 단상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들고 사람들에게 정의로의 소리를 하는 것을 듣고 있어야만 했다. 분명히 잘못한 사람인데 사람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고 있는 그 상황을 오복은 지켜보아야만 했다.
결국 오복은 딸에게 이야기했고, 고소를 진행했다. 가해자는 오복을 직접 찾아왔다. 욕을 하고 물건을 발로 찼다. 오복은 바라지 않았던 '공론화'가 이뤄졌다. 이렇게 싸움이 끝날 줄 알았다. 피해자가 명확했고, 가해자가 명확했기에 그놈이 처벌받을 줄 알았다.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사정 모르는 남편 놈은 '그런 일은 여자가 응해주지 않으면 안 일어난다'는 소리나 해 댔다.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 술에 잔뜩 취해서도 그랬다. 사과를 받아다 줄 생각도, 아내인 오복의 편에 서 줄 생각도 없었다. 다만 소유한 물건이 망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본인의 울분을 토해낼 뿐이었다.
증인을 해주기로 했던 사람도 결국 나타나지 않았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딸의 결혼식 날, 하혈이 멈췄다. 몸의 상처는 아물었다. 몸의 상처가 아물었으니 없던 일로 하라는 징조 같았다. 그렇게 어디서나 늘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에피소드'의 하나로 끝나는 듯싶었다.
그러나, 오복은 호소문을 작성했다. 동생들을 가르치느라 자식들을 키우느라 배우지 못해 맞춤법을 틀려도 괜찮았다. 평생을 해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시위도 해 봤는데, 이런 건 못해볼까 싶었다. 이제 말 많고 탈 많던 첫째 딸의 결혼식도 끝이 났다. 오복은 목에 피켓을 걸고 가해자의 앞에 섰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왜 제목이 갈매기인가'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 같았다. 어떤 장르의 어떤 내용의 영화를 찍더라도 제목을 갈매기리고 했을 것이라는 감독님의 말에 웃음이 났다. 갈매기의 Gull과 소녀의 Girl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에도 의미가 조금은 있었는데 발음이 전혀 다르다고 해서 지금은 이야기하지 않는다고도 하셨다. 영어 무지렁이가 들었을 때는 암만해도 비슷한 것 같지만.
질문의 기회가 있었다.
카메라가 움직임이 없이 바라보는 듯한 연출이 굉장히 많았는데,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많은 분들이 '핸드 헬드'기법을 추천했다고 한다. 오복의 흔들리는 감정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기법이기 때문이다. (들어가서 보면 전혀 잔잔하지 않은 감정이지만) 스토리가 잔잔하게 보일 때는 그것만큼 잘 표현되는 것이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개구리 기질이 있던 감독님은 그 얘기를 듣자 오히려 고정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정말 잘한 판단이라고 느꼈다.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당사자가 아닌 상황에서야 '바라보는 입장'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복의 감정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뀌고, 속에서 천불이 났다가 가라앉았다가 하는 것은 당사자만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리고 극 중에서 오복을 제외한 모두가 다 '당사자'가 아니다. 결국 지켜보는 역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촬영기법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음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오복이 겪을 일을 소문으로 만들어 버리고, 피해자가 오복인 것만 숨긴 채 그의 남편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시장 사람들 그 자체를 표현한 것 같았다. 화두를 던지고, 반응이 어떻게 올지 기대하는 것 같은 그 사람들 말이다.
성과 관련된 문제에서 발생하는 일반적인 일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소재가 어려웠던 만큼 인터뷰나 사전 자료 모으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어떻게 진행했는지 물었다.
사실 내가 겪었던 일과 오버랩이 되었다. 타임라인이 상당히 유사했다. 아마 많은 피해자들의 타임라인이 비슷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어떻게 그 사실을 말해줬을까 싶었다. 특히 나이가 있는 어르신들은, 우리의 어머니 세대들은 그런 말을 더욱 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한참 준비하시던 시기에 서지현 검사의 피해사실 고백 등의 타임라인을 많이 참고하였다고 했다. 피해를 받으신 분이 아니더라도 그 세대 분들의 생각을 담으려고도 많이 노력하셨다고 한다.
그랬다. 공론화가 되었든 아니든 세상의 정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피해를 받고 있었고,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직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피해를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피해를 받은 후에도 마찬가지다. 어디까지가 증인이 될 수 있고, 어디까지가 증거가 될 수 있으며, 피해자가 어디까지 자신의 피해를 되돌아보고 파헤쳐야 하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게 묘사하지 않았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성'이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 같았다.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는 감독님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너무 현실적이지 않은가. 그런 피해를 당했다고 말을 하는 순간 피해자가 날아드는 화살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 왔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밖으로 내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조연으로 많이 봐왔던 '정애화' 배우님의 오복 연기도 매우 좋았고, 모든 배우들이 주변에서 흔히 있을 법한 분들 같은 느낌이라 더 몰입이 되었던 것 같다. 셋째 딸 역할을 맡으셨던 김가빈 배우님이 감독님의 친언니였다는 것에는 실제로 막내딸인 감독님이 친언니가 철없는 막내딸의 역할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이 어땠을까 싶어서 괜히 웃음이 났다.
성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갈매기>가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영화들을 보고 나올 때면 가해자에게도 이유와 변명과 서사가 있고, 피해자는 너무 처절하게 나와서 찝찝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갈매기>는 다르다. 어떤 이는 다큐멘터리 같다고 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너무 잔잔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어쩌면 열린 결말 같아서 속 시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찝찝하지 않다. 사실 모든 피해자에게는 결론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아간다. 참으라고 배워왔고, 참으라고 들어왔고, 참으라는 말로 스스로를 죽여왔지만 이제는 그러하지 않으려고 한다. 세상의 오복이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이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청받아 관람한 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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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주차 최신 씨네뉴스 2호
여러분은 션 베이커의 <아노라> 어떠셨나요?
📢<아노라>의 션 베이커가 차기작은 코미디 장르, “솔직히 무섭고 부담감 크다”고 심경을 밝혔습니다.
📮두 번째 7월 2주 차 최신 영화 소식이 도착!
<아노라>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모두 거머쥔 뒤, 션 베이커 감독은 어떻게 이를 잇는 후속작을 만들까 고민하며 ‘코미디’로 방향을 틀었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AP 통신과 인터뷰에서 베이커는 “아노라 이후 부담감이 밀려오고 있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으면서도 새롭고 다른 무언가를 보여 주고 싶다. 솔직히 무섭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그동안 희극적 요소를 품은 드라마나 비극을 만들어왔다면, 이번에는 ‘코미디에 비극적 요소를 섞는’ 쪽으로 밀고 나가고 싶다”고 전하며, “레드 로켓”에서 보여준 뒤틀린 에너지를 다시 꺼내 들 가능성도 암시했습니다.
제작진 중 네온(Neon) 등 <아노라> 팀이 다시 함께하기를 희망하며, 지난해, 가을 촬영을 목표로 장소 답사를 마쳤다고 덧붙였습니다.
<아노라>라는 엄청난 성과 후의 차기작은 부담감이 어떨지 상상도 안가네요… 션 베이커의 코미디는 과연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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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짝 맛만 보여준, 그래서 다음이 기대되는 영웅 서사시
dune, 모래 사막이라는 뜻이다. 푸릇푸릇한 생명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듄, 아라키스는 그 곳의 원주민인 프레멘들에게는 생존해야만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다른 민족들에게서 지켜내야만 하는 생활 터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라키스는 다른 민족들의 정복 전쟁의 중심에 서있는데, 그 이유는 아라키스에 우주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물질인 신성한 환각제 스파이스가 생산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라키스의 새로운 주인, 아트레이디스의 후계자인 폴은 자신이 보는 것이 그저 꿈인지 아님 미래인지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자신의 예지 능력으로 인해 혼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자신이 이른바 선택된 자, 메시야라는 예언을 듣는다. 과연, 혼란 속에서도 그는 가문의 후계자로서, 아라키스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는 아트레이더스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1. sf영화에 투영된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
이 영화는 시간적 배경이 10191년이고, 공간적인 배경은 범우주인 만큼 외계의 존재들이 비일비재하게 등장한다. 주인공인 폴도 지구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저 외계인이다. 하지만 영화 상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간 관계에서 비롯된 여러 사건들은 인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막을 두고 정복 전쟁을 하면서 세력 확장에 열을 올리는 모습, 전쟁을 치르느라 자연의 섭리는 그저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탐욕, 큰 세력을 확보하고 있는 집단을 견제하기 위해 다른 집단과 동맹을 맺는 모습, 이 모습은 인간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와 관련해, 이 영화의 거시적 메시지를 담은 대사가 있다면, 어찌할 수 없는 모래바람을 컨트롤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자연을 컨트롤해 인간의 이익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인간들의 욕심을 꼬집은 듯한 대사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협조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영화 속 인물들 뿐만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를 기술의 발전으로 밀어붙여 무시하는 현생의 인간들에게도 해당되는 메시지로 보여진다. 결국, 배경만 sf일 뿐이지, 이 영화는 인간의 세력 다툼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탐욕적인 모습, 그 과정에서 무시되는 자연에 대해 수려한 비주얼적 배경으로 자연은 결코 무시당해서는 안 되는 존재임을 설명하는, 생태주의적 관점도 엿보이는 영화라고 보면 될 것 같다.
2. 두려움을 극복하는 폴에게서 나의 두려움을 보다
폴은 아트레이디스의 후계자로 태어났지만 선택받은 자로 자신이꾸는 꿈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예언이라는 말을 듣고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은 선택받은 자로서 미래에 있을 정복 전쟁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자신의 미래를 보고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빠지게된다. 그가 두려움에 빠질 때마다 나오는 대사,
두려워하지말라, 두려움은 정신을 죽이고 , 세계를 소멸시키는 작은 죽음이다
이 대사가 이 대서사시의 파트 1을 관통하는 대주제이다. 선택받은 자로 태어나고, 알게 모르게 트레이닝 받아왔지만 그는 아직 자신의 능력도 제대로 모르고, 실전에 내던져진 경험이 없었기에 나약한 아이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나약함은 곧 자신이 짊어질 책임에 대한 두려움으로 발전하는데, 이 두려움을 극복해내어 생존 전사로 성장을 하는 것이 이 파트 1의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그의 모습에서 난 내 자신이 계속 투영되는 걸까. 시간적배경, 공간적 배경 모두 낯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대사를 들으면, 누군가 나에게 힘내라고 외쳐주는 것 같아서 묘하게 위로가 되고, 나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방황하는 내 모습이 보이는 폴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 인물이 생존 퀘스트를 하나씩 깨어갈때마다 내 자신감까지 올라가게 되어, 이 인물을 계속 응원하게 된다.
3. 총평
영화는 우선 스케일이 크고, 내용도 미완성 상태의 주인공의 각성을 담은 대서사시의 극히 일부만 본 것이라 긴 호흡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지점들이 있었는데, 오히려 영화의 집중도가 올라가 지루하다고 느끼진 않았던 것 같다. 폴이 꿈인지 예지인지 모를 이미지를 볼때마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슬로우가 걸린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 음악이 주는 사운드 임팩트가 영화를 집중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사막에 내던져졌을 때에는 더이상 첨단 기술로 무장한 외계인이 아닌, 그저 생존에 목마른 피난민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막벌레에게 쫓기고, 하코넨 일당에게서 쫓기는 장면 등에서 충분히 속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의 속도감이 느려졌다 빨라졌다가 반복되니, 2시간반의 러닝타임이 걱정한 것 보단 길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폴이 나약함에 벗어나 위대한 자가 되는 과정에서 프레멘과 어떤 관계를 구축할지 파트2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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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만들어진 판타지
이 글은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볍게 썼어요.
사진 출처:넷플릭스한국 드라마에 멜로 열풍이 불 때가 있었다. 그 멜로 열풍은 장소도 상황도 시간도 가리지 않았다. 그 결과 드라마 속 인물들은 검사가 되어도 연애를 하고 의사가 되어도 연애를 하고 경찰이 되어도 연애를 하는 데다 과거나 미래로 가도 연애를 하는 것도 모자라 학폭을 저지른 동창들에게 복수를 하는 와중에도 연애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심지어 그 열풍이 아직까지도 “먹힌”다고 믿었는지 이제는 아주 우주까지 가서도 연애를 하느라 제작비를 말아먹어놓고는 SF팬이 소수라서 드라마가 안된다는 궤변까지 늘어놓고 있다. 세상에나.
이렇게 유구한 연애의 역사를 자랑하는 K드라마인 데다. 애초에 인본주의자 성향이 전혀 없는 인류애가 바닥난 나에겐 그런 드라마들은 기피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애초에 제목이 중증외상센터 라고 한다 한들. 내겐 정말 큰 심적인 허들 하나가 드라마 앞에 턱 하니 놓여 있는 기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8부작이라는 "비교적"짧은 러닝타임.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게 뻔뻔해 보이는 주지훈의 표정을 보며. 이건 병맛이다.라는 느낌에 나는 가볍게(?) 드라마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즐거웠다. 오랜만에.
사진출처:넷플릭스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은 포지셔닝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넘쳐나는 꽤 많은 메디컬 드라마들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바로 "아무것도 심각하지 않게" 다루는 스킬 덕에. 보는 내내 심하게 불편하지 않게 드라마를 "정주행"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이런 즐거운 청량감은 백강혁이라는 유니콘의 역할이 다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애초에 이야기가 판타지화 되어 버린다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끝을 예상할 수 있다는 점이고. 어느 정도의 해피엔딩을 보장받은 상황에서의 이야기들은 적당히 현실과 엮여 들어가며 피식피식 웃게 하기도.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판타지속 인물들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기도 한다. 속이 시원해지면서도 마음 한편에 걸려있던, 당장 내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던 문제들에 대해서도 되뇌어볼 기회가 되어주기도 한다.
물론 앞선 워딩인 "아무것도 심각하지 않게"라는 말이 대충 다룬다.라는 의미에 가깝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가벼워 보이지만 절대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는 내공은 당연히 현직 웹툰작가(??)인 원작가의 전직(?) 의사 시절이 경험에서 온 것일 테니까. 남이 무언가를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이면 그 사람이 맡은 일을 매우 잘했다는 뜻이라 했다. 원작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다 했을 것이다.
사진출처:넷플릭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그저 웃는 얼굴로만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판타지라는 말에 숨은 뜻은 현실에는 이런 일이 없는 것에 수렴한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에서 한 번씩은 꼬집어보는 모든 문제들은 고질적으로 의료계에서 한 번씩은 목소리가 높게 나왔던 문제들이기도 하고, 여전히 팽배해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게다가 현실적으로는 중증외상센터가 자금난으로 인해 문을 닫았다는 뉴스를 접하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니까.
백강혁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기 때문에 "사이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혹은 우리에게는 백강혁 같은 존재가 더 필요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백강혁이 아닌 그가 존재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마치면서
개인적으로는 한유림(윤경호)의 캐스팅이 매우 반갑고 감사했다. 게다가 그중에서도 가장 입체적인 데다 현실적인 인물을 연기해 줘서 좋았다. 예전에 도깨비에서 나라를 구한 덕으로(?) 집도 차도 직장도 얻을 수 있었다는 설정이 기억나서 그런 걸까, 그 드라마 뒤로 계속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냥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자칫 잘못하면 백강혁의 원맨쇼가 될 뻔했던 드라마에 적당한 추 역할을 해 준 배우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이 글의 TMI]
1. 이번 주 너무 바쁘다.
2. 부모님이 반찬 보내주셔서 포동포동 해지는 중.
3. 빨래하기 싫다.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주지훈 #추영우 #영화리뷰 #최신영화리뷰 #영화리뷰어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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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직하게 끌고 온 진심이 후반부까지는 감당하지 못한 듯
미친개의 귀환
이 영화의 주인공은 2016년의 대한민국에 사는 경찰관 황준철이다. 다시 전주로 돌아왔다. 누가 그를 환영하든지 말든지 중요한 게 아니다. 오랜만에 부인과 딸을 다시 만날 생각에 신났다. 기분 좋은 준철. 하지만 금세 기분이 변한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준철. 복잡한 생각에 빠진다. 하지만 지금은 2016년이다. 17년 전 일은 과거일 뿐이다. 가서 일 잘하면 되는 일이다. 황준철이 가족들과 재회한다. 그런데 이런 준철을 전 직장 동료들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성! 이제야 오셨소!” 16년 전 부하 직원이었던 박정규가 반긴다. 술 한잔 들이켠다. “성은 예전 일 기억납니까?” 예전 일? 황준철의 머릿속에서 ‘미친개’였던 시절이 재생된다.
수사반장이 됐다. 실적 하나만은 기가 막힌 황준철. ‘미친개’에게 눈에 보이는 건 없다. 일단 잡고 보는 준철. 하지만 바늘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냉혈한은 또 아니다. 동료들에게 고기 쏘는 법 정도는 아는 준철.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박정규가 ‘당신의 부사수’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여기가 새로운 직장인가? 적응 중인 준철. 하지만 거슬리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최우성이 준철에게 다가간다. 건들거리는 우성. 준철은 애써 무시하기로 한다. 그런데 막상 무시할 수만은 없던 사건이 있었다. 1999년의 어느 날. ‘삼례슈퍼’라는 곳에서 강도치사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10대 소년 3명이다. 이상한 사건에 ‘미친개’ 황준철이 개입한다.
실화바탕 영화 다수
이런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를 만들 때 지켜야 할 윤리가 몇 있다. 그중 하나는 ‘무엇을 주인공으로 삼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표면적으로는 황준철(설경구)과 최우성(유준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영화가 정말 다루고자 했던 바는 다른 부분이다. 이 영화가 극의 진짜 주인공을 보여주기 위해 썼던 방식은 이야기의 시점을 엇갈리는 것이다. 두 상황을 비교, 대조하며 관객들이 ‘무엇이 달라졌는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만약 주인공이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긴박한 서스펜스를 극의 원동력으로 삼았다면 전하고자 하는 바에 이야기가 응집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목표가 정해져 있던 듯이 영화는 두 시점동안 공통적으로 일어난 일들을 묘사한다.
다음으로 영화가 지킨 선은 카메라가 어떤 것을 담고자 했는가? 에 대한 부분이다. 이 영화에서 폭력은 무조건 들어가야 하는 요소다. 강도치사라는 사건의 성격 자체만 봐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 어떤 인물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폭력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1차원적인 분노를 이끌어내고 싶었다면 폭력의 수위를 높이는 것이 방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진짜 다루고 싶어 하는 폭력은 따로 있다. 이 폭력을 전적으로 앞에 내세우고 불필요한 것들은 최대한 자제하는 대신에 다른 이야기를 끌고 와 영화로 만들었다. 바로 소년들 3인방에 대한 서사다. 이 부분이 올드하다고 느낄 여지는 충분하지만 작품의 핵심인 ‘약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묵직한 진심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이 작품을 만드는데 참여한 사람들의 진심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이야기의 흐름은 유려하다. 딱히 모난 구석이 없다. 이야기를 모호하게 전달해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던가 하는 식의 연출이 없다. 카메라가 담은 장면도 이 영화의 선한 의도를 충분히 뒷받침한다. 뿐만 아니라 진경 배우가 맡은 역은 두 시점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묘한 연기를 보여주고, 설경구 배우는 주인공이 17년의 세월 동안 급작스럽게 나이가 들었다는 설정을 무리 없이 소화한다. 영화의 미술이나 조명 같은 부분도 역시 마찬가지다. 정지영 감독은 이런 부분 하나하나 세밀하게 손가락이 닿았던 흔적을 보여준다. 특히 최우성 캐릭터를 비추는 조명과 카메라는 영화가 ‘이 인물은 이런 인물이다’를 쉽게 보여주는 연출이었다. 대표적으로 이 인물이 욕설을 하는 장면은 뭔가 심심하다. 이는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검경의 속성과도 겹쳐 보이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 진정성에는 투박함이 묻어있다. 글쓴이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아쉽다고 느꼈던 부분은 최우성 캐릭터다. 이 인물이 황준철과 대립구도를 보여주는 이유와 상황이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두 사람의 갈등이 영화의 핵심을 보여주는 것 이전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우성은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수상할 정도로 조직의 수호를 받기 때문이다. 일을 잘해서? 하지만 황준철도 실적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물이라고 묘사된다. 이것 외의 설정을 중후반부에 보여주긴 하지만 이 한 줄이 과연 모든 이야기의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것이다. 이는 영화의 플롯과도 관련이 있다.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가며 보여주기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가 예상이 된다. 영화가 기획의도로서 고른 것들이 후반부의 동력을 떨어트리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또 영화의 일부 설정은 영화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대표적으로 황준철을 ‘미친개’로 부르는 설정이 그렇다. 또 후반부 소년들 3인방의 로맨스 요소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에 적합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장면이다. 글쓴이는 이 로맨스가 영화에서 그 어떤 비유,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억지 재판
영화를 본 분들 중 거의 대다수가 이 법정신에 대해 코멘트할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 역시 이 장면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우선 3인방 중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의 동선이다. 그냥 정석적인 재판으로 묘사했어도 이 영화가 제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를 충분히 지적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영화가 당시 검/경이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를 다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년들>은 그렇지 않다. 인물이 등장하는 방식이 부자연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극적인 긴장감을 과다 투여한다. 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실 중 하나는 2016년의 재심을 통해 소년들이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냉정하고 사실에 기반한 인물들이 등장해야 한다. 이 장면에서 피고 원고 증인 가릴 것 없이 모두 다 감정적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해야 할 장면에서 뜨거운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이는 이 영화와 전적으로 대치되어 엔딩의 뒷맛을 씁쓸하게 만든다.
베테랑의 클래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은 설경구 배우는 최근작 중에서 가장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강철중’이 연상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영화가 이를 의도한 바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집착은 소시민들의 연대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 집착이 장점/단점으로 발현되는 부분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단편적으로만 캐릭터를 해석하지 않았다는 점이 스크린에 그대로 드러나는 좋은 연기였다. 그동안 <더 문>이나 <유령> 같은 영화에서는 속삭이는 발성 때문에 손해를 본 것이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황준철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또 이 영화에서 설경구 배우의 상대역이라고 볼 수 있는 특별출연(조연)이 있다. 이 배우는 물리적으로 긴 분량이 아님에도 강한 인상을 준다. 설경구 배우와 마찬가지로 최근 지지부진한 성적표에 비해 훨씬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조연을 맡은 허성태/염혜란 배우의 연기도 훌륭하다. 허성태 배우는 내내 씁쓸한 영화의 분위기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극을 이끈다. 이 인물은 적당히 소시민스럽지만 그중에서도 정의로운 성격이 유달리 강한 인물이다. 이 배우가 필모그래피동안 선한 역을 맡은 적이 거의 없었다는 걸 기억해 보면 새로운 모습을 기다린 팬들을 충분히 만족시킬 것이다. 반대로 염혜란 배우는 이번에도 어머니/아내 역을 맡았다. 하지만 이 배우는 <마스크걸>에서 보여준 광기 어린 모습과는 정반대의 어머니상을 보여준다. 이 캐릭터만 가질 수 있는 뭉클함을 화려한 방식이 아닌 덤덤하게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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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심받고 고통받은 고라니에게 심심한 사과를-1
<부산행>은 한국 영화가 '좀비 영화'도 잘 만들 수 있구나 칭찬받은 영화이다. 사실 그동안 보았던 한국형 좀비 영화는 많지도 않았지만 예전에 봤던 <좀비 스쿨>이 너무 실망스러워서 다시는 좀비 영화를 보고 싶지 않은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이 아닌가. 사실 내가 알고 있는 연상호 감독의 작품은 영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이었다. 스토리보드, 각본, 감독 등등등을 맡았던 <돼지의 왕>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기도 했고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이 이제 다시 괜찮아지려나 기대한 작품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 개봉하기는 했지만 <부산행>의 프리퀄이 애니메이션 <서울역>이라는 것에도 흥미가 있었다.
영화 자체는 좀비로 세상이 망해가는 아포칼립스 영화이기 때문에 한국형 신파가 들어가는 것 외에는 다른 좀비 영화들과 큰 차이는 없다. 공유가 잘생기고 마동석의 방어력과 공격력이 만랩인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방역 중이라는 안내가 있고 동물을 운반하는 것 같은 차량이 소독을 받는다. 뉴스에서 많이 본 장면이다. 아마 구제역 방역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운전자는 또 돼지들 잡아다가 싹 파묻는 거냐고 물었고, 담당자는 구제역이 아니라 바이오단지에서 뭐가 쬐금 새어 나왔다고 한다.
공무원을 불신하는 운전자이자 농장주는 전화를 받으려다가 무언가를 친다. 고라니다. 크고 예쁜 눈망울을 지닌 고라니. 누구나 그렇듯 로드킬 당한 고라니를 그냥 두고 '재수 없다'면서 가버리고 죽은 줄 알았던 고라니가 요상한 눈빛을 띠며 깨어난다. 좀비 고라니의 탄생이다. 영화마다 다르겠지만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에서 동물은 좀비로 변하지 않는다.
영화가 이렇게 시작하다 보니 바이오단지에서 쬐금 세어 나왔다는 것에는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다. 고라니가 좀비가 된 것은 아마도 그곳에서 새어 나온 어떤 물질 때문이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퍼뜨린 것은 고라니'라는 인식이 더 강하게 남게 되는 것이다. 이 모습은 지금의 온갖 동물 질병과 연결되어 있다.
앞서 이야기한 구제역도 바이러스에 의한 동물 질병이다. 공기를 통해서 호흡기로 감염되는 전염성이 매우 강한 바이러스다. 사람도 독감에 걸릴 수 있는 것처럼 동물도 병에 걸릴 수 있다. 하지만 동물은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질병에 걸리고 병세가 나타나야만 병에 걸린 것을 알 수 있게 되고, 이를 인간이 꼼꼼하게 보지 못하면 그 역시도 알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구제역이 발병하고 강한 전파력으로 퍼져나간 것에 대해서는 인간의 잘못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우리나라의 축산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우리나라의 축산 방식은 '공장식 축산'이라고 불릴 만큼 좁은 공간에 여러 마리의 동물을 넣고, 비 청결한 상태이다. 사실 돼지는 엄청나게 깔끔을 떠는 동물인데, 사람들이 더럽게 키우다 보니 더럽다는 편견이 생긴 것이기도 하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공기로 전염되고 전염력도 높은데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집단으로 발병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요즘은 동물복지를 시행하는 농장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어서 동물들이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변호에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도 한몫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발병한 돼지들을 모두 살처분하였다.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살아있는 돼지를 그냥 땅에 묻어버린 것이다. 방법이 없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 잔인하게 굴었어야만 했던 것일까? 이렇게 묻힌 돼지는 죽고 부패하면서 피와 고름, 분비물 등을 내뿜는다. 이를 침출수라고 부른다. 땅에 묻기 전에 바닥에 방수포 등 침출수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처리한다고는 하지만 살아있는 돼지가 그냥 가만히 죽기만 할까. 살려고 몸부림치면서 방수포가 찢어져서 유출되는 사례는 구제역 이후에 꼭 발생하는 일이다.
이렇게 흘러나온 침출수가 지하수 같은 식수원으로 흘러들고, 병에 걸린 동물의 사체를 다른 야생동물이 먹는 상황들도 발생한다. 이런 상황은 인간이나 동물들에 다른 질병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발생지역보다 먼 곳으로 질병을 옮기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자연재해라고 볼 수 있어도 이후에 발생하는 일들은 인재다.
앞서 정말 싫었다는 영화 <좀비 스쿨>에서도 좀비의 원인을 구제역으로 인해 파묻힌 돼지에서 발생한 침출수인 것처럼 그렸다. 물론 돼지가 인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같은 이상한 전개였지만 그래도 바이러스의 원인을 동물에게서 본 것이다.
최근에 발생한 바이러스들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조류독감이라고 불리는 AI, 아프리카돼지열병, 코로나 모두 매개체는 야생동물로 알려져 있다. 야생동물은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렸을까?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는 알지 못해서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인간의 생활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하다 보니 병에 걸린 야생동물들이 역적이 되어버리고 있는 상황이다. 철새가 날아오는 시기에는 양계농장에 조류독감이 오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야만 하고,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에 먹이를 구하러 민가로 내려온 멧돼지는 모두 사살당하고 있다. 코로나가 창궐하자 박쥐는 혐오스러운 동물이 되었고, 천산갑은 보호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물론 개인적으로 천산갑을 중간숙주로 이야기한 것은 워낙 밀렵이 많이 되다 보니까 못 다가가게 하려고 일부러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말이다.
야생동물이 가지고 있는 병이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인간에게 전염성이 있는지 모두 알 수 없다. 아마 끝까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의 시기에 이렇게 많은 질병이 나타나게 된 것인지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하다. 인간들이 야생동물들의 영역을 침범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야생동물들의 질병이 인간들에게 다가온 것이 아니고 인간들이 질병에게 다가간 것이다. 이런 질병은 인간 세계에, 인간들의 축산시스템에는 치명적이었던 것이고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인간들은 '탓'해야 할 것이 필요했고, 이 화살은 야생동물에게 향했다.
그들은 잘못이 없다. 그들은 병에 걸렸을 뿐이고, 사람처럼 고쳐주는 의사가 없었을 뿐이고, 배가 고파서, 다만 길을 건너고 싶어서 인간의 삶으로 들어왔을 뿐이다.
부산행의 야생동물 이야기는 조금 더 할 예정이다. 바이러스에 의해 좀비가 된 상황에서조차 로드킬을 당하고 수습조차 되지 못한 억울한 고라니의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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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상> 메인 예고편
끊임없이 착취가 벌어진 성희와 수영의 '삶'과 '몸'.
자본이 숨기려고 했던 노동과 지우려고 했던 존재들.
그들을 품고 있는 ‘사상’.
자본이 할퀴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배인 사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풍경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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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 2차 예고편
그의 이름을 절대로 부르면 안돼..!!? 팀 버튼의 상상력에 다시 빠질 시간? [비틀쥬스 비틀쥬스] 2차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