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8-27 09:16:26
[SIWFF 데일리] 투명한 수채화처럼, 다시 시작
영화 <잉게보르크 바흐만: 사막으로의 여행>
SYNOPSIS
비범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시인 잉게보르크 바흐만은 자신의 시로 남성 지배적인 독일 문학계를 사로잡는다. 경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 바흐만은 유명한 극작가 막스 프리슈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열정적이었으나 일에서도 개인적으로도 끝없이 부딪힌다. 지친 바흐만은 친구들과 사막으로 여행을 떠난다. 자기 자신, 무엇보다 자신의 시를 되찾기 위해.
PROGRAM NOTE
잉게보르크 바흐만은 실제로 스위스 극작가였던 막스 프리슈와 연인관계였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이어졌고, 이후 바흐만은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던 중 오스트리아의 영화감독이자 극작가였던 아돌프 오펠을 만나게 된다. 오펠은 그녀에게 이집트 사막으로 함께 떠날 것을 제안하는데, 이 여행으로 바흐만은 여성이자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여행의 경험은 그녀의 이후 작품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영화는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자서전 중 한 부분일 수 있는 일련의 이야기를 비 연대기적으로 교차, 나열한다.
관객은 영화 속에서 서로 다른 세 개의 몸을 만난다. 하나는 무한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자신을 확장하고자 하는 바흐만의 몸, 또 하나는 그 몸이 발산하는 생동감을 질투하면서 그 몸을 지배하려는 막스 프리슈의 무겁고 자기중심적인, 고집스러운 몸이다. 마지막 하나는 무거운 몸에 짓눌려 극도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몸에게 손을 내밀어 비로소 모든 억압의 경계를 벗어나 넓은 세상을 향해 확장될 수 있게 안내하는 아돌프 오펠의 몸이다. 서로 다른 세 몸이 엮어내는 관계의 직조를 통해 영화는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에 대해 질문한다. [이경미]

서른 살을 목전에 두었던 어느 날, <삼십세>라는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서른을 맞는 새해에 읽으면 딱 좋겠다고 생각하며 샀다. 대다수의 책이 그렇듯 아직도 펼쳐지지 못한 채… 책장 한 구석에 꽂혀 있다. 사실 서른을 언제 넘긴 거지 당황하며 어느 날 펴서 몇 장 넘겼고, 읽은 내용 대비 많은 밑줄을 쳤던 것까지는 기억하지만… 언젠가 제대로 다시 읽을 책으로 보아두고 넘어갔다. 마흔 되기 전에만 읽으면 되겠지 뭐.
그리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그 작가의 이름을 본다. 잉게보르크 바흐만. 게다가 로자 룩셈부르크, 한나 아렌트 등 저명한 여성 인사들의 얼굴을 영화로 새로이 그려내는 데 정통한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이다. 심지어 그 얼굴을 비키 크립스가 분하고 있다. <팬텀 스레드>나 <코르사주> 등 언제나 깊은 인상을 남기는 배우가, 이미 문단의 화려한 이름이 되어 있는 시절의 잉게보르크 바흐만을 연기한다. 궁금했던 얼굴을.

영화는 사건의 발생 순서에 따라 선형적으로 담겨 있지 않다. 스위스 극작가 막스 프리슈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관계를 쌓아가는 과거 시간의 한 축과, 그와 헤어지고 아돌프 오펠이라는 인물을 만나 사막 여행을 떠나면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미래 시간의 한 축을 얼기설기 엮었다. 두 개의 관계, 두 개의 시간 축에서 잉게보르크 바흐만이 상대와 어떤 식으로 사랑의 관계를 쌓아 가는지, 어떤 태도와 어떤 표정을 짓는지가 대조되어 보일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그리고 영화 내내, 그러니까 전혀 다른 두 개의 시간 축 내내, 심지어 글이 써지지 않거나 시를 쓰지 못하겠다는 말을 할 때조차도, 그는 시인이고 작가이고 예술가이다. 비키 크립스는 잉게보르크가 시인임을 매 순간 표정에서 눈빛에서 뿜어내듯 연기했다. 그러니 누구를 사랑하든, 어디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든, 잉게보르크는 잉게보르크라는 예술가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실존했던 한 인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멜로드라마에 그치지 않고, 예술하는 여성의 풍성한 이야기로도 기능하게 된다.

사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요즘 <문명특급>에서 재재가 펼치는 연애상담에 사연을 보내야 하는 거 아닐까… 아니면 <무엇이든 물어보살>에라도… 내보내고 싶어진다. 아님 진짜 하다 못해 귀에 대고 뉴진스 노래 ETA라도 좀 틀어주시겠어요? 아무튼 뜯어말리고 싶어진다. 걔는 너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수상한 밑밥을 까는 발언을 많이 했다고. 아니 남자는 여자를 잘 몰라서 여자의 자기 표현이 중요하다는 인간이, 정작 잉게보르크가 자기를 표현하는 중요한 질문에는 대답도 안 했잖아. 일단 모든 말의 주어가 남자는~ 여자는~ 이런 식의 일반화인 사람은 믿으면 안돼! 게다가 처음부터 너를 ‘독일의 스타’로만 보고 있으면서 왜 취리히로 널 부르는 거야? 너 진짜 취리히에, 그 사람 집에 갈 거야?
잉게보르크가 막스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었다면 그런 막스와 순탄한 사랑을 했을 것이다. 끼리끼리 잘 만나셨네요 소리나 들었겠지. 그러나 잉게보르크는 세계에 표표히 서 있는 존재다. 나치가 오용했던 작품을 재해석하면서, 자기 책임을 지는 몽상가를 그려냈다. 빌런도 없고 정해진 운명 같은 것도 없는 주인공. 취약한 세계에 홀로 있는. 거기에는 잉게보르크 본인이 반영되어 있지 않을까? 사실 잉게보르크와 같이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도 그런 사람이 아닐까? 자신이 취약한 세계에 발 디딘 존재라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
실존 인물 막스 프리슈와 잉게보르크 바흐만이 어떤 관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속 막스는 잉게보르크와 만나 두 사람의 새로운 세상을 꾸리는 게 아니라, 자기 세상 안에 잉게보르크를 넣어두고 싶어한다. 잉게보르크의 말마따나 일하는 여성, 생각하는 여성, 자주적인 여성에게는 최악의 형태다. 막스가 일하는 시간을 비롯 자기 루틴을 명확하게 지킨답시고 커피 잔 하나를 들고 타자기 앞에 덜렁 앉을 때, 잉게보르크는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고, 타자기 소리에 괴로워한다. 불만을 제기하면 아이처럼 어르고 달래는 말이 돌아온다.
이따금 자신에 대한 과도한 확신은 주변을 불행하게 만든다. 잉게보르크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위험은 감수하겠다고 말하면서, 잉게보르크는 자신 옆에서 불행해지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막스의 기묘한 자기 확신처럼. 사막에 데려다 주겠다던 남자는 아름다운 자기 나라를 못 떠나겠다고 하고, 잉게보르크의 일적인 대화나 과거의 인연 하나하나에도 벌컥 화를 내며 식사 준비나 제대로 하라고 한다. 그 지점에서 이 사랑은 분명 잉게보르크를 파괴하는 방향이었다고 본다. 결국 잉게보르크가 막스의 일기장인 푸른 노트를 펴보는 순간, 꼭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푸른 노트가 푸른 수염은 아니었던가.

반면 아돌프는 들어주는 사람이다. 잉게보르크가 미라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며 모래밭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하는 비합리적 요구까지 순순히 응하고 듣는다. 잉게보르크가 밤 산책을 거절하면 그냥 조용히 물러난다. 자신이 아니면 잉게보르크의 꽃병이 채워지지 않길 바랐던 막스와 달리, 그는 잉게보르크를 그대로 둔다. 잉게보르크의 방식으로 해방을 맞는 순간에도 조용히 옆에서 웃고 있고, 자유롭게 걸어가는 잉게보르크를 뒤에서 지켜보다가 그가 관심을 보인 직물을 구입할 뿐이다. 선물하는 장면 같은 것도 없이, 그냥 다음 장면에 잉게보르크가 머리에 두르고 있다. 이 작고 사소한, 그래서 좋은 사랑.
통제와 소유, 안정적이라는 환상의 텁텁함. 막스 프리슈의 육중한 몸과 그의 집에 가득한 색채는 꼭 유화 물감 같다. 덧발라 완성할수록 무언가가 가려진다. 반대로 아돌프 오펠의 말과 행동들은 잉게보르크 주변에 투명한 수채화로 그린 배경이 된다. 사막을 바라보는 잉게보르크의 얼굴이 그래서 편안해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잘 안 맞는 사람이랑 헤어졌고 새로운 사람 만난 여자 이야기’ 정도로만 요약할 수 없다. 막스와의 끝, 아돌프와의 시작…이라기엔 너무나, 제목처럼, 잉게보르크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건 잉게보르크의 끝, 잉게보르크의 시작이다. 사랑은 물론 삶의 커다란 일부이고, 아돌프뿐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잘 맞지 않았던 막스와의 사랑 또한 잉게보르크에게는 큰 부분이었다. 헤어지고 오래 아팠을 만큼. 그러나 그 내내, 잉게보르크는 예술가였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투명하고 솔직하게 반응하는 인간인 동시에, 준엄하게 말을 골라내고 언어의 심지를 돋우는 시인이었다.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인생에서 커다란 것을 떠나보낸 후에 한 번쯤 꺼내 보면 좋을 영화이다. 새로운 삶, 새로운 시작을 계속해 가는 게 인생이니까. 동시에 내가 사랑하고, 내게 커다란 의미를 가진 것들이 떠나간 후에도 내게 존재하는 것, 내가 차마 손 닿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조차도 나를 떠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도 질문하게 된다. 잉게보르크의 시와 같은 것, 그것만 있다면 많은 끝이 찾아와도 또 다시 무수한 시작점을 이어 붙여가며 어찌저찌 인생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완만한 선형으로. 그 옆에 수채화 물감으로 투명하고 곱게 배경을 칠해주는 사랑이 있다면, 더욱 좋겠다.
2023.08.26. 15:30-17:2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MX관 (상영코드 220)
2023.08.29. 14:00-15:5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7관 (상영코드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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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셋 째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매주 월요일 오후 1시, 씨네픽과 함께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와 관객 스코어를 알아보는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10월 15일, 16일, 17일의 주말 박스오피스 관객 스코어를 알아보도록 할게요!
그럼 10월 셋 째주 주말 박스오피스 관객 스코어 분석 시작하겠습니다!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위.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10월 13일 개봉 첫 날부터 2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2021년 최고 흥행 외화영화인 '블랙 위도우' 오프닝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주말 동안에는 77만 명의 관객이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를 관람했으며, 개봉 5일만에 100만 명의 누적 관객 수를 돌파했는데요.
코로나19 속 국내 극장가에 새로운 활기를 가져왔다는 긍정적인 소식과 앞으로 10월 20일 개봉 예정인 할리우드 대작 <듄>과의 박스오피스 경쟁이 예상됩니다.
2위. <007 노 타임 투 다이>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지난 주 박스오피스 1위에서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가 개봉함과 동시에 2위로 떨어졌는데요. 15일~17일 주말 관객 수 또한 전주대비 69.3%으로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누적 관객 수는 115만 명을 돌파했지만 앞으로 할리우드 대작 <듄>,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등이 개봉함에 따라 박스오피스 순위의 하락이 예상됩니다.
3위. <보이스>
▶박스오피스 3위는 <보이스>가 차지했습니다. 누적 관객 수는 135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개봉 5주 차에도 여전히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과연 누적 관객 수 150만 명을 돌파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박스오피스를 예측하고 상금도 받아가는 씨네픽의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를 맞혀라!' 이벤트에 참여한 씨네픽 참가자들이 예측한 스코어를 확인해볼까요?
[네이버 실제 관람추이 통계 참고]
포털 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의 실제 관람객의 성별, 나이별 관람추이를 보면 여성 57%, 남자 43%으로 여성 관객들이 더 많은 비율로 관람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성 관객 중에서도 20대 비율이 47%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이와 비교하여, 씨네픽 주말 박스오피스 예측 이벤트에 참가한 사용자들의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자료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씨네픽 주말 박스오피스 예측
※씨네픽 사용자 박스오피스 예측 분석※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의 주말 박스오피스(10월 15일~17일) 실제 스코어는 777,775명입니다.
표에서 보시는 것처럼 씨네픽 사용자들이 예상한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치에 따르면,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는 21세~25세 여성의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은 440,323명, 26세~30세 여성은 309,003명으로 예측했습니다.
▶▶한편 씨네픽 스코어 예측 통계에 따르면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이벤트 참가한 20대 여성 사용자는 총 여성 참가자수의 40%를 차지, 총 참가자 수의 2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씨네픽은 이벤트 참가자 중 박스오피스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을 한 유저분에게 우승 상금 포인트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번 주 참가자 중에 우승 상금 포인트를 받으실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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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10월 셋 째주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Halloween Kills>가 차지했는데요.
북미 기준으로 10월 15일 개봉한 이 영화는 주말동안 $50,350,000(한화 약 596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습니다.
<Halloween Kills>는 유니버설 픽쳐스의 공포 장르물로 할로윈 밤의 살아있는 공포 '마이클 마이어스'로 인해 오래도록 고통 받아온 '로리 스트로드'의 이야기로 '데이빗 고든 그린' 감독, 제이미 리 커티스의 주연의 영화입니다.
국내 개봉일은 10월 27일이니, 많은 기대 바랍니다.
그럼 이번 주도 힘차고 건강하게 시작하시고,
저는 다음 주 월요일 1시에 더 쉽고, 유익한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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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른자들의 깔끔한 작전 속에서 느낀 통쾌함
도른자들의 깔끔한 작전 속에서 느낀 통쾌함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 리뷰
감독] 가이 리치
출연] 헨리 카빌, 앨런 리치슨, 알렉스 페티퍼
시놉시스] 독일의 비밀 병기 잠수함을 막아라. 나치에 대항할 미친 녀석들이 온다. 제2차 세계대전, 나치의 살상 무기 유보트를 막기 위해 처칠의 지휘 아래 최초의 비밀 특수 부대가 탄생한다. 통제 불능의 미친개, 지옥에서 돌아온 근육질 군인, 냉철한 폭발물 전문가, 암살이 주특기인 미인계 특수 요원까지, 대장인 거스 마치를 필두로 막 나가는 그들이 뭉쳤다. 영국군에 잡히면 감옥에, 나치에게 잡히면 죽음뿐. 유보트를 막기 위한 거스 마치 일행의 ‘언젠틀’한 작전이 시작된다.
#스포일러 유의#
탑건과 캐리비안 해적 사이 깔끔한 선을 지키다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재밌다. 너무 재밌다. 사실 이 날 팀원들에게 혼도 내고, 미팅이 줄줄이 잡혀 있는 와중에 감사기간이라 대응할 것도 많아서 아주 피로한 날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 한 편으로 도파민이 싹 돌면서 피로를 한 번에 다 날릴 수가 있었다. 사실 도파민이 돌고 나면 새로운 자극 때문에 순간의 기분은 좋아질지라도 그 자극 때문에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더 피로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굉장히 깔끔하게 선을 타서 감정적으로 너무 한 캐릭터에 빠진다기 보다는 과함이 없이 잘 짜여진 무언가를 보면서 마음의 편안함을 얻는 그런 작품이었다.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캐리비안 해적과 탑건의 제작자, 그리고 알라딘과 셜록 홈즈를 만든 가이리치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사실 나치의 유보트를 막기 위한 7명의 요원들은 수적 열세에 노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임무가 실패하면 영국을 필두로 한 연합군은 나치와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유보트의 공급을 중단시키는 이 작전은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충분히 무겁고 요원들을 영웅화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소재이다. 하지만 제작진들은 이들을 히어로라는 캐릭터 대신 똘기 충만한 가벼운 이미지를 씌움으로써 영화자체가 무겁게 흘러가지 않도록 만들어낸다. 물론 실화 속 그들이 도른자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영화 곳곳에서 잭 스패로우의 향기가 물씬 나면서도 각각의 캐릭터들이 자기의 분야에서는 매버릭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치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통쾌함을 느끼고, 7명의 요원들이 적재적소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감정이 도를 지나치지 않아 편안한 깔끔함을 느낄 수 있어서 카타르시스가 꼭 모든 걸 토해내고 비워내야 느낄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잘 정제된 감정을 느끼면서도 후련함을 느꼈던 작품이었다.
리더의 모습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이 작전에 투입된 7명의 요원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 7명이 어떻게 나치를 골려주고 작전을 성공시키는지에 대해서 보여준다. 이 7명이 정말 멋있기는 했지만 이들 7명을 모으고 이 작전에 투입한 처칠이라는 인물에 눈길이 가기도 했다.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총리가 되어 연합군을 승리로 이끈 정치인이다. 사실 정치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결과주의적이다. 이 작전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내각에서는 처칠을 탄핵했을 것이고 처칠은 위대한 정치인으로 칭송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유보트 공급을 막아낸 정식 승인되지 않은 작전이 성공하면서 대서양의 패권이 다시 영국에 넘어올 수 있었고, 미국의 직접적인 참전이 가능해지면서 전쟁 승리의 기운이 연합군 쪽으로 넘어올 수 있었다.
윈스턴 처칠은 군에 대한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이 작전을 지시한 것이 자신의 정치 인생에 기로가 될 것 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안정적인 정치 인생만 생각했다면 사실 이 위험한 작전을 지시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이 아닌 영국이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가가 만든 절차와 합의라는 것이 시간 싸움인 전쟁에서는 불필요하다고 느낀 처칠은 리더로서 적법한 절차를 무시하고 팀을 꾸린다. 그리고 모든 작전을 성공했지만 영국군에게 자발적으로 잡혀 감옥으로 이송된 그들에게 처벌이 아닌 상을 내림으로써 자신이 기용한 사람들에게 신뢰를 보여준 것을 보면서 위기 속에서의 리더의 행동을 어떠해야 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잘 굴러가고 있는 나라에서 도전을 하겠다며 이미 있는 절차와 합의를 무시하는 리더는 옳지 않다. 윈스턴 처칠의 이러한 행동은 전시상황이라는 아주 특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절차와 방법이 적법하지 않더라도 용서가 되어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그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기용하는 결단력과 자신이 기용한 사람에게 현재의 상황과 그들이 미래에 처할 상황을 숨기지 않는 그 솔직함이 위기의 상황 속에서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
- 개봉 : 2025. 3. 19. (수)
- 한줄평 : 통쾌함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날리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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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애니메이션 - 끝내 불발해버린 불꽃, 어찌해야 할까?
필자는 영화를 시각 예술이라 생각한다. 혹자는 시청각적 예술이라고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초기 영화들은 청각적 요소가 없는 무성영화였으며, 그렇기에 초기 때부터 부각되어 온 것은 시각적 요소였기 때문에 영화를 시각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개인적 성향을 얘기하자면, 솔직히 필자는 영상미 중시 성향이 센 편이라 애니메이션을 볼 때도 영상미가 좋다면 웬만해선 호평을 하는 편이다. 김문생 감독의 "원더풀 데이즈"도 스토리에 대한 비판이 많았지만(이러한 비판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영상미와 음악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니다, 너무나도 커다란 단점이 있다. 장점 하나로 절대 커버할 수 없는.
본 영화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동명의 단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단순히 실사를 애니메이션으로 바꾼것이 아니라 오리지널 스토리가 존재하고 있다. 필자가 원작 드라마를 보지 않았기에 비교 리뷰는 어렵겠지만, 실사를 따로 놓고 봐도 이 애니메이션은 확실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장점부터 얘기하자면 영상미와 OST를 꼽을 수 있다.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경력이 있는 샤프트 제작인 만큼 영상미는 정말 매력적이다. 특히 색감과 연출들은 따로 놓고보면 정말 스틸 하나하나가 화보라고 해도 될 정도. 그리고 OST도 정말 호평받을 만한데, DAOKO와 요네즈 켄시의 합작곡이자 본 영화의 주제가인 쏘아올린 불꽃(打上花火)은 원작보다도 더 인지도가 높을 정도이며 유명 DJ인 Porter Robinson이 직접 호평하는 댓글을 남기기도 할 정도이다. 그리고 마츠다 세이코의 유리색의 지구(瑠璃色の地球) 또한 후술하겠지만 본 노래가 나오는 파트는 비판점이 있지만 음악만 따로 놓고 보면 좋은 음악에 속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영화관의 사운드와 스크린으로 음악과 영상미를 듣기위해 예매해도 된다고 할 정도로 이 영화의 가치는 이 두가지 뿐이다. 다만 주제가인 쏘아올린 불꽃은 작중에서는 단 한번도 안 나오고 엔딩 크레딧에서만 나오니, 만약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접할 기회가 있다면 엔딩 크레딧까지 꼭 보고 나오길 강력히 추천한다.
장점은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단점 뿐이다. 누가 뭐라해도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이다. 위에서 필자가 영상미를 중시한다고 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스토리가 형식이 갖춰져있을 때의 이야기이지 심각할 정도의 미달 수준일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원더풀 데이즈에 호평을 한 것도 서사가 급전개에 난잡한 부분이 있지만 심각한 미달 수준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스토리가 심각할 정도로 미달이다. 이러한 미달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너무 길게, 자주 반복되는 쉽게 말하자면 '만약에' 세계의 반복인데, 사랑을 이루기 위해 반복하는 만약에가 너무 길게, 여러번 나온다. 그렇기에 비록 이미 본 부분을 빠르게 보여준다고 해도 지루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늘어지는 모습은 원작에 비해 40분 가량 늘어난 러닝타임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인데, 실제로 반복되는 부분은 20~30분 가량을 잘라내도 이해에 영향이 없을 정도라고 느꼈다. 또한 열린 결말이라는 것도 좋게 말해 열린 결말이지, 나쁘게 말하자면 결론을 내지 않고 끝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후반부의 연출에 비해 너무나도 허무한 엔딩이기에, 이러한 아쉬움은 배가 되어간다. 그리고 위에서 색감과 연출들을 따로 놓고보면 좋다고 했는데, 일부 장면의 연출들은 이질적인 부분이 있다. 유리색의 지구 파트에서는 뮤지컬 영화 색채를 보이는 파트인데, 갑작스럽게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연출이 나온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식 연출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앞과 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연출이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다. 연출과 영화의 서사가 조화롭지 못하고 따로 노는 것이다. 또한 일부 연출 또한 선정적 요소가 세 불편함을 느꼈다. 특히 선생님의 가슴을 가지고 친구들 사이 뿐만 아니라 교실에서도 섹드립을 날리는 거나, 선생님의 가슴을 선생님의 남자친구가 가슴이 작아진 것 같다며 만지려 하는 것도 전혀 유쾌하지 않고 불편하기만 하다. 후자의 경우에는 현실과 또 다른 세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연출이라고는 하나, 영화를 유심히 보지 않았다면 눈치채기 힘든 요소이며 이러한 또 다른 세계임을 상기시키는 연출은 불꽃의 모양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굳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완벽한 실패작은 아니다. 영상미와 OST는 충분히 가치가 있으며 주목해볼만 하다. 하지만 가장 인지도가 높은 주제가인 쏘아올린 불꽃은 엔딩 크레딧에서만 나오는지라 본 작품의 평가에는 영향을 끼치기 어렵고, 영상미 또한 서사와의 조화는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이 영화를 불꽃에 비유해보자면, 분명 하늘을 아름답게 빛낼 수 있는 불꽃이었는데, 끝내 불발해버린 불꽃이고 만것이다. 아예 불량품이 아니었다보니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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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에 대한 영화적 오마주
7★/10★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핵심 사건은 엄마의 죽음과 뫼르소의 살인이다. 주인공 뫼르소는 해변에서 동료와 갈등 관계에 있는 한 아랍인 남성을 총으로 쏘는데 재판에서 핵심이 되는 건 살인 행위가 아니다. 뫼르소는 엄마의 장례식에서 대체로 시큰둥한 태도였고, 바로 다음 날 애인을 만나 영화를 보고 사랑을 나눴다. 이는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를 만한 사람임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가 된다. ‘엄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 자는 마땅히 사람을 죽이고도 남는다’는 논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불성설이다. 카뮈가 고발하고자 하는 건 바로 이것이다. 누구나 부모자식 관계를 비롯한 일상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권태를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이방인》에는 그런 순간들이 굉장히 설득력 있게 묘사된다. 그러나 세상은 이를 ‘죄’로 여기고 응징한다. 카뮈의 말마따나 ‘부조리한’ 세상이다.
영화 〈썬다운〉은 《이방인》에 대한 영화적 오마주다. 런던에서 거대 육류사업을 하는 어머니를 둔 닐과 그의 동생 앨리스 그리고 앨리스의 두 자녀가 멕시코의 아카풀코로 휴가를 떠난다. 그런데 고급 호텔과 아름다운 바다에서 휴가를 즐기던 그들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앨리스와 그 자식들은 큰 충격을 받고 서둘러 런던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닐도 그에 동참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닐은 공항에서 여권을 놓고 왔다며 다음 비행기로 런던에 가겠다고 말한다. 거짓말이다. 그는 여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지독히 평온한 표정으로 허름한 호텔로 가 다시 휴가를 즐기기 시작하는 닐. 런던으로 돌아간 앨리스는 계속 그에게 전화하여 여권은 찾았는지, 언제 비행기에 탈 것인지를 묻는다. 닐은 계속 거짓말하며 상황을 모면한다. 멕시코인 여자친구를 사귀기까지 한다. 무기력하고 권태에 젖은 듯한, 그러나 동시에 자유가 깃든 닐의 표정이 압권이다. 닐의 얼굴은 해방과 자유가 반드시 환희를 동반할 필요가 없음을 가르쳐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닐이 보여주듯, 해방과 자유는 ‘오랫동안 갈망하던 것’이 ‘오랫동안 누려왔던 것’처럼 느껴질 만큼 평온한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결국 폭발한 앨리스는 직접 멕시코로 닐을 찾으러 오고 그에게서 적당한 연금을 제외하고는 모든 회사 경영권과 상속권을 포기한다는 서명을 받는다. 사실 이는 앨리스의 요구가 아닌 닐의 제안이다. ‘상식’의 세계에 속한 앨리스는 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닐의 제안에 ‘만족’한다. 그러나 멕시코에서 닐의 운전기사 역할을 하던 택시기사가 앨리스를 강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닐은 또다시 위기를 맞는다. 그가 앨리스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살인을 사주했다는 의혹을 받기 때문이다.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그가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음은 그의 범죄를 그럴듯하게 만드는 주요 ‘근거’가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쓰러진 닐은 암이 발병했다는 소식도 듣는다.
영화의 마지막, 그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겠다는 듯 홀로 병원을 걸어 나온다. 닐은 돈도, 가족도, 여자친구도 버리고 떠난다. 여전히 예의 그 무기력하고 권태에 젖은(그러나 이제는 자유를 갈망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 표정이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난다는 점에서) 동시에 소극적이기도 한(모든 것에서 그저 도망칠 뿐이라는 점에서) 닐의 저항은 일상의 부조리를 인내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부조리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고.
닐이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은 《이방인》의 뫼르소와 같은 듯 다르다. 바닷가에서 친구와 신경전을 벌이던 아랍인을 만난 뫼르소는 아랍인이 지니고 다니는 칼에 비친 태양 빛에 이끌려 그를 살해한다. 《이방인》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논쟁적인 장면이다. 〈썬다운〉에도 뫼르소가 보았을 태양 빛을 담은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그러나 그 태양빛은 닐을 살인하게 하지 않는다. 닐의 자유는 누군가를 죽일 필요가 없는 자유다. 뫼르소는 아랍인을 죽였음에도 엄마의 장례식을 트집 잡는 사회에 부조리를 느낀다. 그리고 부조리에 대한 의식의 깊이를 더해가며 자유에 도달한다. 여기서 아랍인은 그의 깨달음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닐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도구화하지 않는다. 내내 계급적 조건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닐이 가진 재산에 비해 그가 연금으로 요구하는 돈은 ‘소탈’해 보이기까지 하다. 닐의 자유에는 《이방인》에서 도드라지는 여성혐오도 없다. 멕시코 출신의 미셸 프랑코가 〈썬다운〉에서 그린 자유는 분명 《이방인》의 자유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뫼르소, 닐…. 카뮈가 쏘아 올린 자유의 계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내가 센 것이 맞다면 총 여섯 번이다.
**카멜 다우드는 소설 《뫼르소, 살인사건》(문예출판사, 2017)에서 아랍인의 관점으로 《이방인》을 다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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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최고의 뮤즈일까? 세상의 일부일까?
영화의 시작은 어두움 속에서 보이지 않는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한 여성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는 어두운 밤이 깨어나듯이, 밝은 아침의 주인공 ‘레이놀즈(다이엘 데이 루이스)’의 면도하는 모습, 머리 빗는 모습 등의 하루를 시작을 준비하는 단정하면서 분주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이것이 바로 <팬텀 스레드>의 첫 시퀀스이다. 곧 이어, 아침식사 장면에서 한 여인이 고요한 정적을 깨는듯한 대화를 시작하면서, 영화도 정적을 깨듯이 조용히 시작된다.
팬텀 스레드>의 레이놀즈는 1950년대, 영국 왕실과 사교계의 교양 있고, 부유한.. 흔히 엘리트층의 사람들의 드레스를 담당하는 실력 있는 중년의 의상 디자이너다. 의상 작업실을 비롯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모두 집에서 해결할 수 있을 만큼 크고 좋은 집에 산다. 자신의 집으로 출근해서 의상 일을 도우는 직원의 수도 꽤 된다. 마치 ‘레이놀즈’는 견고한 자아로 쌓은 자신의 제국 속에 사는 성공한 인물 같다. 그래서 칼같이 정해진 루틴 속에서 일상을 시작하고, 자신의 일에 조금이라도 간섭하고,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여자 친구와의 이별도 눈 깜짝할 세 없이 바로 행하는 인물이다. 그렇게 지나칠 정도로 깐깐하고 예민하고, 그리고 이기적인 완벽주의 예술가이다. 동시에 자기를 끊임없이 통제하면서 사는 인물이다. 반면 일찍이 여읜 어머니를 무척이나 그리워하면서, 자신의 옷 캔버스 천속에 어머니의 존재를 꿰매어 간직한다. 내면의 외로움을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한 자신만의 생존방법 같은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래서 그는 강인하면서도 약한 사람이다. 반면, 레이놀즈가 휴가 차 우연히 들른 레스토랑에서 첫 눈에 반한 여성 ‘알마(빅키 크리엡스)’는 당차고 젊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알마는 레이놀즈의 연인이자 뮤즈가 된다. 알마는 자신의 취향을 무시하는 완벽주의자 레이놀즈에게 당당하게 ‘난 내 취향이 좋아요!’라고 말할 만큼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이다. 그리고 레이놀즈의 세계에 종속되지 않고 오히려 ‘당신은 강한 것 아니라, 강한 척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연약한 아기의 존재다!’라고 하면서 오히려 자신에게 의존하고 종속되길 원한다.
영화는 블록버스터처럼 현란한 CG나 과장한 액션 없이도 배우들의 연기력만으로 보는 내내 긴장감을 자아낸다. 레이놀즈와 알마는 ‘팬텀 스레드’라는 영화제목의 의미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실의 관계로 밀고 당기는 긴장감을 준다. 모든 사랑에는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그리고 병리학적인 측면이 있다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모든 사랑의 존재는 밝고 어둠이 있다. 알마가 사랑을 아낌없이 주는 인물이라면, 레이놀즈는 자신의 일, 자신의 늙은 누나, 자신의 직원에게 어느 정도 할당이 되는 사랑을 줘야하는 마치 사랑에도 분량이 있는 인물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상반되는 환경 속에서 자란 서로 다른 유형의 인물들이 주고받는 사랑의 어긋남은 늘 우리에게 긴장을 준다. 그래서 결국 알마는, 극단적인 선택의 결과로 레이놀즈의 사랑을 종속하려 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사랑을 갈구하는 알마에게 레이놀즈는 ‘사람들은 타인의 기대와 추측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은 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체적이고 사랑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알마가 결국은 레이놀즈에게 행하는 극단적인 사랑의 가학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니 우리 인생은 원래 그렇게 아이러니한 것의 투성이라고.. 그러니 사랑은 어려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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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고전과 호러의 묘한 만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탐정 생활을 그만두고 베니스에서 은둔 중인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래너). 어느 날, 오랜 친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리아드네 올리버'(티나 페이)가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건넨다. 유명 강령술사 '조이스 레이놀즈'(양자경)에 대해 취재하고 있으니 그녀의 교령회에 참석한 뒤 정체를 밝혀달라는 것.
이에 포와로는 고풍스러운 저택의 여주인인 '로웨나 드레이크'(켈리 라일리)의 초대를 받아 핼러윈 밤에 열린 레이놀즈의 교령회에 참석한다. 1년 전 사망한 로웨나의 딸을 되살리는 교령회를 지켜본 후 모든 대사와 행동이 조작이라고 판단한 포와로. 그는 본격적으로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괴한에게 습격당한 포와로는 정신을 잃고, 동시에 레이놀즈도 사고로 사망하면서 강령회의 진실은 미궁 속에 빠지고 만다.
에르큘 포와로와 호러의 묘한 만남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아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핼로윈 파티>를 영상화한 작품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과 <나일 강의 죽음> 뒤를 잇는 세 번째 시리즈로, 케네스 브래너가 감독과 주연을 맡았다.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모범적인 작법으로 고전을 풀어낸다. 익숙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맛을 제대로 살렸다. 사건 관련자를 모두 불러 모은 후에 탐정이 진상을 설명하는 결말이 대표적이다. 배경을 베니스로 바꾼 덕분에 클래식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한계가 명확하다. 고전미를 위해 클리셰에 파괴하지 않다 보니 흐름에 뒤떨어진다. 클리셰를 파괴하며 관객을 놀라게 하는 데 몰두하는 근래 추리 영화 추세를 역행한다.
케네스 브래너는 추리극에 호러를 더해 이 딜레마를 풀어내려 했다. 절반은 성공했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음산한 분위기는 분명 인상적이다. 그러나 절반은 실패했다. 내용물은 그대로고 포장지만 달라진 나머지 전체적인 결과물은 묘한 인상을 남긴다.
미장센으로 살려낸 호러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첫 장면부터 호러 분위기를 강조한다. 멜로드라마 요소가 짙었던 전작 <나일 강의 죽음>과는 시작부터 다르다. 다른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 베니스 풍경부터 그렇다. 대각선 구도로 건물을 촬영하고, 광각으로 왜곡되는 부분을 만들어 불안감을 키운다. 포와로가 깜짝 놀라 꿈에서 깨는 장면도 호러 영화 느낌이 강하다. 작은 방과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만나 명암 대조가 강렬한 화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소재 자체의 매력을 영리하게 살려낸 도입부도 인상적이다. 영화는 한 가지 괴담을 소개하며 분위기를 고조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고아원에 갇혀 죽은 아이들이 있다. 그들이 유령이 되어 자기들을 버리고 도망간 의사와 간호사에게 복수한다.' 이런 내용이다. 배경과도 잘 어우러진다. 핼러윈을 맞이한 베니스, 운하와 곤돌라, 가면무도회의 조합은 마치 <오페라의 유령>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관객의 감각을 일부러 건드는 연출도 눈에 띈다. 특히 청각적인 요소가 돋보인다. 갑작스레 휘몰아치는 바람, 새들의 날갯짓, 고택 어디에서든 울려 퍼지는 문소리와 시계 소리 등이 현장을 생생히 들려준다. 중간중간 삽입된 귀신 소리, 유령이 움직이는 소리, 컵이 깨지거나 칼에 찔리는 소리도 분위기를 환기하고 공포심을 심어주는 데 유용하다.
호러만으로는 버겁다
하지만 호러 요소를 이용해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의문이다. 눈길을 사로잡는 미장센을 즐기는 재미는 확실하나, 새로운 겉모습이 추리물의 본질적 한계까지 가리지는 못했기 때문. 원작 자체가 1969년에 출판된 만큼, 뻔한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추리 과정이나 범인을 숨겨 놓는 기법은 힘들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가장 범인이 아닌 것 같은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지는 결말도 스테레오 타입이다.
몇 안 되는 근거를 보여주는 방법 역시 평이하다. 주로 클로즈업을 통해 결말을 예상케 하는데, 너무 티를 내다보니 복선이나 암시로서 역할을 해내는 데 실패한다. 구성도 익숙하다. 포와로는 모든 인물을 붙잡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증거를 추적하기보다는 인물의 사연과 관계를 파악한다. 그러니 속도가 붙질 않는다. 온도는 오르지만, 좀처럼 끓지 않는 물 같다.
각 캐릭터의 존재감도 문제다. 모든 인물에게 조금씩 분량을 분배하면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려면 각 캐릭터의 매력이 확실히 살아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개개인의 존재감이 부족하다 보니 관객의 눈길을 붙잡아 두기 어렵다. 결국 푸아로의 원맨쇼만 보일 뿐, 사연과 캐릭터, 추리는 흥미를 끌지 못한다.
이는 전편과 비교해서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는 페넬로페 크루즈, 조니 뎁, 윌렘 데포, 주디 덴치, 미셸 파이퍼, 데이지 리들리가, <나일 강의 죽음>에는 갤 가돗, 아미 해머, 엠마 맥키, 레티티아 라이트가 출연했다. 그에 비하면 누구 하나 케네스 브래너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줄 배우가 없다. 코로나 기간에 개봉한 <나일 강의 죽음>이 흥행에 실패한 후폭풍이 드러나는 지점인 듯하다.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하다
물론 작법이 고전적이라는 이유로 영화의 완성도가 항상 부족한 것은 아니다. 추리극, 특히 후더닛 장르에서는 훌륭한 반례가 있다. 라이언 존슨의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나이브스 아웃>은 아거사 크리스티의 추리극 작법을 충실히 따랐다. 동시에 블랙코미디 요소를 더해 여러 사회 문제를 영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1편은 미국 사회의 구성원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대거 등장시켜 나날이 폐쇄적으로 변하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비판했다. 2편도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 사건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나날이 심화되는 부의 양극화와 자본에 중독된 사회상을 지적했다. 즉,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영화에 반영하면서 추리극 장르의 시대적 한계를 역으로 극복한 셈이다.
안타깝게도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에서는 이런 영리함이 없다. 현대 관객이 사건 속으로 자연스럽게 이입될 여지가 많지 않기 때문. 영국이 배경이었던 장소를 베니스로 바꿔도, 호러 장르를 적극 이용해도 고풍스럽다는 인상을 좀처럼 지울 수 없다. 원작과의 차별화에는 용이해도, 장르적 한계를 넘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
그래도 우리가 고전을 찾는 이유
그럼에도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에는 남다른 매력 한 가지가 깃들어 있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 바탕을 둔 고전의 품격이 그것이다. 이 힘은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라와 감독 케네스 브래너 양쪽으로부터 나온다. 우선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에서 범죄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으로 인해 발생한다. 그렇기에 푸아로는 사건 해결뿐만 아니라 그 감정을 보듬는 일까지 도맡아야 한다.
이 특징은 케네스 브래너의 손길을 거치며 극대화된다. 그 결과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트라우마 극복기나 다름없다. 영화는 범인도, 또 다른 유발자도 제2차 세계 대전의 상흔 때문에 범죄에 빠진 사연을 보여준다. 강령술사가 마냥 사기꾼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유달리 영화 속 아이들에게 눈길이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쟁의 사망자와 피해자의 상처를 제때, 제대로 보듬어야 한다고 거듭 일깨운다. 배경을 굳이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의 베니스로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에르큘 포와로의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다. 포와로는 번아웃으로 인한 슬럼프에 빠졌다. 모든 의뢰를 거부하고 은둔했다. 숨어버린 탐정이 권태기를 극복하는 모습은 영화 내용과 겹쳐 보인다. 또 케네스 브래너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전작 '벨파스트'에서 전쟁과 갈등으로 인한 유년의 아픔이 유독 오래 남는다는 깨달음과 경험을 보여준 바 있다. 그래서 영화의 결말은 특히나 심금을 울린다.
결국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추리극과 호러의 만남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관건이다. 원작과 전편으로부터 달라지기 위해 노력한 대목이 있고, 관객에게 어필할 만큼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 노력의 결과가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추리 영화'와 '시대를 따라가려는 노력이 더해진 고전 재해석'으로 갈릴 수밖에 없을 뿐.
마지막으로 한 가지 흠을 덧붙이자면, 개봉 시기가 의문이다. 소설 원작 제목부터 작품 분위기나 내용에 이르기까지 9월 한복판보다는 핼러윈 시즌이 개봉 시점으로 더 적절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시리즈 3편인데도 불구하고 개봉 후 반응이나 화제성이 미비하기에 남는 아쉬움이다. 소재, 장르가 겹치는 <잠>이 바로 한 주 전에 개봉해서 관객을 먼저 흡수한 상황도 악영향을 줬을 테지만.
Acceptable 무난함
올드함에 지치거나, 고전미를 음미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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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결산 - 리뷰는 못 했지만 추천하는 독립영화 7작품 l 상 1편 ( #로그인벨지움 #빛과철 #혼자사는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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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따뜻한 연말 보내고 계신가요!
또 1년이 이렇게 지나가네요...! 어느덧 유튜브를 시작한지도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올해도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죠!
시기가 많이 아쉽긴 하지만, 더 많은 작품들을 소개해드리고 싶어서
이번 연말결산 영상에서는 제가 리뷰는 못했지만 극장에서 보고 추천드리는 작품들을 준비해보았는데요!
영상이 조금 길어서 3작품, 4작품 나누어서 올릴게요 :)
그럼 내일도 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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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한국형 재난 영화의 문제점
#백두산 #한국영화 #영화리뷰
최신 한국 영화를 리뷰해드리고 추천해드립니다
이번에는 영화 '백두산'을 소개합니다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저의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2.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3. 수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4. 함부로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연락처
adonai0919@gmail.com※ 트위치
https://www.twitch.tv/sura_chtr※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writerTrack: Syn Cole - Gizmo [NCS Release]
Music provided by NoCopyrightSounds.
Watch: https://youtu.be/pZzSq8WfsKo
Free Download / Stream: http://ncs.io/Gizmo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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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스파이더헤드> 공식 예고편
뛰어난 과학자(크리스 헴스워스)가 운영하는 최첨단 교도소. 이곳에서는 재소자들을 상대로 감정을 조절하는 신약 임상 실험이 이루어지는데. 실험에 자원한 두 재소자(마일스 텔러 & 저니 스몰렛)가 각자의 과거와 싸우며 연대를 맺는다. 조지프 코신스키(《탑건: 매버릭》 《트론: 새로운 시작》) 연출. 《뉴요커》에 실린 조지 손더스의 단편 《Escape From Spiderhead》에 바탕을 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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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와이 우먼 킬 시즌 2> 공식 예고편
[왓챠 익스클루시브, 2021년 7월 28일 공개]
쉿, 시체와 비밀은 묻어둘 것!
돋보이는 존재가 되고 싶은 평범한 주부 엠마.
탐나는 것이 생긴 80세 재벌의 젊은 아내 리타.
1949년 LA, 욕망을 선택한 여자들의 치밀한 계획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