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8-27 09:16:26
[SIWFF 데일리] 투명한 수채화처럼, 다시 시작
영화 <잉게보르크 바흐만: 사막으로의 여행>
SYNOPSIS
비범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시인 잉게보르크 바흐만은 자신의 시로 남성 지배적인 독일 문학계를 사로잡는다. 경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 바흐만은 유명한 극작가 막스 프리슈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열정적이었으나 일에서도 개인적으로도 끝없이 부딪힌다. 지친 바흐만은 친구들과 사막으로 여행을 떠난다. 자기 자신, 무엇보다 자신의 시를 되찾기 위해.
PROGRAM NOTE
잉게보르크 바흐만은 실제로 스위스 극작가였던 막스 프리슈와 연인관계였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이어졌고, 이후 바흐만은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던 중 오스트리아의 영화감독이자 극작가였던 아돌프 오펠을 만나게 된다. 오펠은 그녀에게 이집트 사막으로 함께 떠날 것을 제안하는데, 이 여행으로 바흐만은 여성이자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여행의 경험은 그녀의 이후 작품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영화는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자서전 중 한 부분일 수 있는 일련의 이야기를 비 연대기적으로 교차, 나열한다.
관객은 영화 속에서 서로 다른 세 개의 몸을 만난다. 하나는 무한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자신을 확장하고자 하는 바흐만의 몸, 또 하나는 그 몸이 발산하는 생동감을 질투하면서 그 몸을 지배하려는 막스 프리슈의 무겁고 자기중심적인, 고집스러운 몸이다. 마지막 하나는 무거운 몸에 짓눌려 극도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몸에게 손을 내밀어 비로소 모든 억압의 경계를 벗어나 넓은 세상을 향해 확장될 수 있게 안내하는 아돌프 오펠의 몸이다. 서로 다른 세 몸이 엮어내는 관계의 직조를 통해 영화는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에 대해 질문한다. [이경미]

서른 살을 목전에 두었던 어느 날, <삼십세>라는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서른을 맞는 새해에 읽으면 딱 좋겠다고 생각하며 샀다. 대다수의 책이 그렇듯 아직도 펼쳐지지 못한 채… 책장 한 구석에 꽂혀 있다. 사실 서른을 언제 넘긴 거지 당황하며 어느 날 펴서 몇 장 넘겼고, 읽은 내용 대비 많은 밑줄을 쳤던 것까지는 기억하지만… 언젠가 제대로 다시 읽을 책으로 보아두고 넘어갔다. 마흔 되기 전에만 읽으면 되겠지 뭐.
그리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그 작가의 이름을 본다. 잉게보르크 바흐만. 게다가 로자 룩셈부르크, 한나 아렌트 등 저명한 여성 인사들의 얼굴을 영화로 새로이 그려내는 데 정통한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이다. 심지어 그 얼굴을 비키 크립스가 분하고 있다. <팬텀 스레드>나 <코르사주> 등 언제나 깊은 인상을 남기는 배우가, 이미 문단의 화려한 이름이 되어 있는 시절의 잉게보르크 바흐만을 연기한다. 궁금했던 얼굴을.

영화는 사건의 발생 순서에 따라 선형적으로 담겨 있지 않다. 스위스 극작가 막스 프리슈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관계를 쌓아가는 과거 시간의 한 축과, 그와 헤어지고 아돌프 오펠이라는 인물을 만나 사막 여행을 떠나면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미래 시간의 한 축을 얼기설기 엮었다. 두 개의 관계, 두 개의 시간 축에서 잉게보르크 바흐만이 상대와 어떤 식으로 사랑의 관계를 쌓아 가는지, 어떤 태도와 어떤 표정을 짓는지가 대조되어 보일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그리고 영화 내내, 그러니까 전혀 다른 두 개의 시간 축 내내, 심지어 글이 써지지 않거나 시를 쓰지 못하겠다는 말을 할 때조차도, 그는 시인이고 작가이고 예술가이다. 비키 크립스는 잉게보르크가 시인임을 매 순간 표정에서 눈빛에서 뿜어내듯 연기했다. 그러니 누구를 사랑하든, 어디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든, 잉게보르크는 잉게보르크라는 예술가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실존했던 한 인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멜로드라마에 그치지 않고, 예술하는 여성의 풍성한 이야기로도 기능하게 된다.

사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요즘 <문명특급>에서 재재가 펼치는 연애상담에 사연을 보내야 하는 거 아닐까… 아니면 <무엇이든 물어보살>에라도… 내보내고 싶어진다. 아님 진짜 하다 못해 귀에 대고 뉴진스 노래 ETA라도 좀 틀어주시겠어요? 아무튼 뜯어말리고 싶어진다. 걔는 너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수상한 밑밥을 까는 발언을 많이 했다고. 아니 남자는 여자를 잘 몰라서 여자의 자기 표현이 중요하다는 인간이, 정작 잉게보르크가 자기를 표현하는 중요한 질문에는 대답도 안 했잖아. 일단 모든 말의 주어가 남자는~ 여자는~ 이런 식의 일반화인 사람은 믿으면 안돼! 게다가 처음부터 너를 ‘독일의 스타’로만 보고 있으면서 왜 취리히로 널 부르는 거야? 너 진짜 취리히에, 그 사람 집에 갈 거야?
잉게보르크가 막스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었다면 그런 막스와 순탄한 사랑을 했을 것이다. 끼리끼리 잘 만나셨네요 소리나 들었겠지. 그러나 잉게보르크는 세계에 표표히 서 있는 존재다. 나치가 오용했던 작품을 재해석하면서, 자기 책임을 지는 몽상가를 그려냈다. 빌런도 없고 정해진 운명 같은 것도 없는 주인공. 취약한 세계에 홀로 있는. 거기에는 잉게보르크 본인이 반영되어 있지 않을까? 사실 잉게보르크와 같이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도 그런 사람이 아닐까? 자신이 취약한 세계에 발 디딘 존재라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
실존 인물 막스 프리슈와 잉게보르크 바흐만이 어떤 관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속 막스는 잉게보르크와 만나 두 사람의 새로운 세상을 꾸리는 게 아니라, 자기 세상 안에 잉게보르크를 넣어두고 싶어한다. 잉게보르크의 말마따나 일하는 여성, 생각하는 여성, 자주적인 여성에게는 최악의 형태다. 막스가 일하는 시간을 비롯 자기 루틴을 명확하게 지킨답시고 커피 잔 하나를 들고 타자기 앞에 덜렁 앉을 때, 잉게보르크는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고, 타자기 소리에 괴로워한다. 불만을 제기하면 아이처럼 어르고 달래는 말이 돌아온다.
이따금 자신에 대한 과도한 확신은 주변을 불행하게 만든다. 잉게보르크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위험은 감수하겠다고 말하면서, 잉게보르크는 자신 옆에서 불행해지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막스의 기묘한 자기 확신처럼. 사막에 데려다 주겠다던 남자는 아름다운 자기 나라를 못 떠나겠다고 하고, 잉게보르크의 일적인 대화나 과거의 인연 하나하나에도 벌컥 화를 내며 식사 준비나 제대로 하라고 한다. 그 지점에서 이 사랑은 분명 잉게보르크를 파괴하는 방향이었다고 본다. 결국 잉게보르크가 막스의 일기장인 푸른 노트를 펴보는 순간, 꼭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푸른 노트가 푸른 수염은 아니었던가.

반면 아돌프는 들어주는 사람이다. 잉게보르크가 미라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며 모래밭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하는 비합리적 요구까지 순순히 응하고 듣는다. 잉게보르크가 밤 산책을 거절하면 그냥 조용히 물러난다. 자신이 아니면 잉게보르크의 꽃병이 채워지지 않길 바랐던 막스와 달리, 그는 잉게보르크를 그대로 둔다. 잉게보르크의 방식으로 해방을 맞는 순간에도 조용히 옆에서 웃고 있고, 자유롭게 걸어가는 잉게보르크를 뒤에서 지켜보다가 그가 관심을 보인 직물을 구입할 뿐이다. 선물하는 장면 같은 것도 없이, 그냥 다음 장면에 잉게보르크가 머리에 두르고 있다. 이 작고 사소한, 그래서 좋은 사랑.
통제와 소유, 안정적이라는 환상의 텁텁함. 막스 프리슈의 육중한 몸과 그의 집에 가득한 색채는 꼭 유화 물감 같다. 덧발라 완성할수록 무언가가 가려진다. 반대로 아돌프 오펠의 말과 행동들은 잉게보르크 주변에 투명한 수채화로 그린 배경이 된다. 사막을 바라보는 잉게보르크의 얼굴이 그래서 편안해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잘 안 맞는 사람이랑 헤어졌고 새로운 사람 만난 여자 이야기’ 정도로만 요약할 수 없다. 막스와의 끝, 아돌프와의 시작…이라기엔 너무나, 제목처럼, 잉게보르크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건 잉게보르크의 끝, 잉게보르크의 시작이다. 사랑은 물론 삶의 커다란 일부이고, 아돌프뿐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잘 맞지 않았던 막스와의 사랑 또한 잉게보르크에게는 큰 부분이었다. 헤어지고 오래 아팠을 만큼. 그러나 그 내내, 잉게보르크는 예술가였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투명하고 솔직하게 반응하는 인간인 동시에, 준엄하게 말을 골라내고 언어의 심지를 돋우는 시인이었다.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인생에서 커다란 것을 떠나보낸 후에 한 번쯤 꺼내 보면 좋을 영화이다. 새로운 삶, 새로운 시작을 계속해 가는 게 인생이니까. 동시에 내가 사랑하고, 내게 커다란 의미를 가진 것들이 떠나간 후에도 내게 존재하는 것, 내가 차마 손 닿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조차도 나를 떠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도 질문하게 된다. 잉게보르크의 시와 같은 것, 그것만 있다면 많은 끝이 찾아와도 또 다시 무수한 시작점을 이어 붙여가며 어찌저찌 인생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완만한 선형으로. 그 옆에 수채화 물감으로 투명하고 곱게 배경을 칠해주는 사랑이 있다면, 더욱 좋겠다.
2023.08.26. 15:30-17:2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MX관 (상영코드 220)
2023.08.29. 14:00-15:5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7관 (상영코드 507)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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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 여성 커플의 제자리 찾기
씨네랩의 초정 시사로 개봉 전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나무들이 나란히 길게 배열되어 있는 어떤 강가의 공원에 두 아이가 있다. 까마귀들이 연신 울어대는 한적한 그 공원에서 두 아이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한 아이가 어떤 나무 뒤에 숨고, 다른 아이는 그것을 찾기 시작한다. 한 아이가 숨은 아이 근처로 가면 숨은 아이는 그를 피해 조금씩 자리를 옮긴다. 그렇게 한참 두 아이가 숨바꼭질을 하다가 숨은 아이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찾던 아이는 숨은 아이가 보이지 않자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까마귀 소리다. 영화 <우리, 둘>의 오프닝 장면이다. 이 오프닝은 향후에 등장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와 그 관계에 대한 은유가 담겨있어 궁금증을 유발한다.
영화 <우리, 둘>은 여성 커플인 마도(마틴 슈발리에)와 니나(바바라 수코바)의 이야기다. 이들은 20여 년 전 로마에서 처음 만나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했지만 주변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그 관계를 알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마도는 어떤 남자와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아 길러냈다. 남편과는 사별했지만 아이들과는 여전히 교류 중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마도와 니나는 바로 앞 집에 살고 있어 매일 만나고 사랑을 나누지만, 마도의 가족들에게는 여전히 알리지 못하고 있다. 니나는 마도에게 가족에게 비밀을 알리고 로마로 가서 남은 생을 보내자는 제안을 한다. 결과적으로 니나의 이 바램과 제안은 영화 내내 긴장을 만들어내는 일이 되어 버린다.
할머니가 된 20년 차 커플, 마도와 니나의 이야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조금은 불편하고 어려운 것을 극복하게 하기도 한다. 가족의 반대를 극복하고 서로의 관계에서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들도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은 꽤 많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 두 사람의 관계가 깨지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이에 더해서 그 관계가 동일한 성이라고 했을 때 마음속의 장벽은 외부의 시선으로 인해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다. 영화 <우리, 둘>의 주인공, 마도와 니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외부에 공개를 하려고 했다가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이 담겨 있다.
영화 속 두 사람이 2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계속 비밀관계를 유지했는지, 아니면 마도가 결혼하고 남편과 사별한 이후 이 둘이 다시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는지 영화는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2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이 둘이 마음 깊숙이 서로를 사랑하고 원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영화 초반에 마도와 니나가 마도의 집에서 같이 생활하는 모습이 나온다. 여느 연인처럼 그들은 스킨십을 하고 밥을 먹고 대화를 한다. 이제 할머니 나이가 된 그들의 외모지만 두 사람의 행동은 어떤 편견도 없이 사랑하는 일반적인 부부나 연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영화에서 가장 큰 사건은 마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것이다. 자신의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족들의 눈치를 보다 말을 하지 못한 마도는 그것을 알게 된 연인 니나의 짜증도 받아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그만 쓰러지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이 니나에게 주는 영향은 크다. 공개되지 않은 관계인 탓에 공식적인 보호자가 될 수 없고, 니나가 마도에게 다가가려 할수록 주변의 시선은 따갑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의심을 받게 된 니나지만 그는 자신의 연인에게 다가가서 품어주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니나는 마도에게 다가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때마다 좀 더 과격한 선택을 하게 된다. 그가 조금씩 과격해질 때마다 모든 것이 깨질 것 같은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영화의 템포를 빠르게 만든다.
마도의 뇌졸중 증상 이후 서서히 공개되는 그들의 관계
꽤 오랜 기간 동안 주변에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를 알리지 못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데, 그들의 달콤한 사랑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느 로맨스 퀴어 영화들과는 다르게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나 사랑을 나누는 모습에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들의 관계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반응과 두 사람의 감정 변화를 영화에 중점적으로 담는다. 영화의 제목이 <우리, 둘> 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주변의 반응과 갑작스러운 질병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마도와 니나가 서로를 찾아가는 과정을 이끌어가는 건 그들 두 사람의 힘이다.
영화 맨 처음에 나왔던 두 아이는 마도와 니나라고 할 수 있다. 숨바꼭질을 하다 갑자기 사라진 아이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마도라고 할 수 있다. 그를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는 니나로 보인다. 그 아이가 까마귀 목소리를 내면서까지 다른 아이를 부르는데 여전히 친구를 찾지 못한다. 실제로 니나는 마도를 다시 보기 위해 간병인을 이용하거나, 한밤중에 마도의 집에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가 마도를 보고 나온다. 그리고 어느 날은 마도의 딸 집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 마치 영화의 첫 장면에서 아이가 기이한 까마귀 소리를 내는 것처럼 니나는 상대방을 찾기 위해 자신이 평소에 가지고 있지 않은 기이한 행동을 하면서까지 자신의 사랑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 중반 마도의 상상이지만, 마도가 물속에 빠진 아이를 보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고, 물속에 빠진 아이를 니나가 건져내는 장면은 서로의 관계를 복원한다는 일종의 영화적 암시다. 이런 은유적인 장면들은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여러 가지 시각으로 재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니나가 마도를 찾기 위해 점점 과격해지는 모습은 보는 입장에서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자신이 마도를 찾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계속 거짓말을 하고 이용하거나, 다소 폭력적인 방식으로 마도의 가족을 대하는 모습은 니나의 상실감을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과도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그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사랑이 집착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가 담고 있는 마도와 니나의 노력
영화는 니나의 뒤를 따라가지만 마도의 반응도 놓치지 않는다. 뇌졸중 증상 이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주던 화면은 니나의 노력이 계속되면서 변하게 된다. 특히 마도의 몸 전체를 화면에 잡기보다는 마도의 얼굴 중 두 눈을 클로즈업으로 잡고 니나의 행동에 따라 나오게 되는 반응을 눈의 초점이나 눈이 여기저기를 바꿔가며 보려 하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니나의 노력에 마도가 반응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노력은 신체적인 한계를 극복한다는 점에서 니나의 노력과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니나가 싸우는 것은 외부의 관계가 대부분이지만 마도는 자기 자신의 신체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려 하는 것이다. 니나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노력이고, 마도는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는 노력이다.
영화 속 마도의 딸 앤(레아 드루케)과 아들 프레드릭(제롬 바랑프랭)의 반응도 인상적이다. 이 둘은 본의 아니게 커밍아웃된 자신의 엄마와 이웃 여성의 관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차단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어떤 가족에게 이 일이 벌어졌어도 반응은 모두 비슷할 것이다. 자신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관계를 부정한다. 그리고는 그것이 분노로 표출된다. 영화에선 그들의 반응을 단편적으로 보여주지만 그들이 마도와 니나의 관계를 인정했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자녀와 가족들의 반응이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관계를 이어가려는 의지가, 마도와 니나에게 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필리포 메네게티 감독은 이 영화가 첫 연출작이다. 2020년 제10회 서울 국제 프라이드 영화제에서 퀴어영화 평론가상을 수상했고, 2021년 46회 세자르 영화제에서 데뷔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두 여성이 겪는 답답함과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고 긴박한 시선으로 담은 영화 <우리, 둘>은 기존의 퀴어 영화들과 조금은 다른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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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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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낌표와 물음표의 반복 <외계+인>
느낌표와 물음표의 반복 <외계+인> 1부
ⓒ 네이버 영화
정보
개요 액션, 판타지, SF | 한국 | 142분
감독 최동훈
출연 류준열, 김우빈, 김태리 등
줄거리
고려 말 소문 속의 신검을 차지하려는 도사들과 2022년 인간의 몸 속에 수감된 외계인 죄수를 쫓는 이들 사이에
시간의 문이 열리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누가 출연하나요?
무륵 | 류준열
@ 네이버 영화
어설픈 재주와 도술을 부리며 능청스러운 입담을 가진 무륵 역을 맡았다.
가드 | 김우빈
@ 네이버 영화
김우빈 배우는 인간의 몸 속에 수감된 외계인 죄수를 관리하는 가드 역을 맡았다.
이안 | 김태리
@ 네이버 영화
김태리 배우는 고려 시대에 권총을 쏘며 일명 '천둥 쏘는 처자'라고 불리며
당찬 성격과 거침없는 행동력을 지닌 '이안' 역을 맡았다.
문도석 | 소지섭
@ 네이버 영화
소지섭 배우는 기묘한 우주선을 목격하게 된 강력계 형사인 '문도석' 역을 맡았다.
흑설 & 청운 | 염정아 & 조우진
@ 네이버 영화
염정아 배우와 조우진 배우는 자체 제작한 도술 무기를 파는 유쾌한 입담을 가진
삼각산의 두 신선인 흑설과 청운 역을 맡았다.
자장 | 김의성
@ 네이버 영화
김의성 배우가 가면으로 얼굴을 숨긴 의문의 인물인 자장 역을 맡았다.
최대한 스포를 뺀 리뷰
ⓒ 네이버 영화
<외계+인>은 과거·현재·미래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한 영화 안에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담았다는 것은 그만큼 볼거리가 풍성하다는 뜻이다. 아직 CG에 대해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이전과 비교했을 때
많이 발전된 CG 기술을 볼 수 있었다. 다만,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 전환될 때마다 따라가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시·공간의 변화가 계속 일어나는 내용이기에 관객들이 이를 부담 없이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2시간이 훌쩍 넘는 긴 러닝타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전개가 불친절하다고 느껴져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래도 류준열 배우, 김태리 배우, 염정아 배우, 조우진 배우가 주로 등장하는 과거의 내용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으며
웃음 포인트 또한 과거에 많이 집중되어 재밌는 부분이 많았다.
ⓒ 네이버 영화
<외계+인>에는 많은 인물이 나오는데 모두 개성이 강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한편,
수많은 인물을 다루기 때문에 몇몇 인물들의 서사가 부족했다는 점이 매력을 반감시켰다.
영화 대부분의 요소가 매력적이고 재밌게 느껴져 느낌표가 떠오르다가도
부족한 개연성과 설명 등의 이유로 물음표가 떠오른다.
<외계+인> 1부는 2부까지 봐야만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액션과 볼거리가 많은 영화인만큼 극장에서,
그리고 큰 스크린이 있는 상영관에서 보면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 <외계+인>의 간단한 정보를 살펴보고, 리뷰를 해봤는데
어떠셨나요?! <외계+인>은 바로 내일 개봉할 예정이니 다들 관람하시고 어떻게 느끼셨는지 남겨주세요:)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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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랭크 오션 픽 감각적인 영화 7선
씨네필 프랭크오션 그가 선택한 영화 그의 앨범만큼이나 감각적이다.
노래작업에 영감이 되었을까요? 그가 선택한 영화 100개중 7개를 선정해왔습니다.
브라질
정보화로 인해 모든 것이 획일화된 시간을 알 수 없는 미래의 도시. 소심한 성격의 샘 로리(Sam Lowry: 조나단 프라이스 분)는 거대한 정보국 산하에서 서기로 일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공장 같은 회사에서 반복되는 일상, 그리고 기계와 정보로만 움직이는 모든 생활 속에 지친 샘은 중세의 기사가 되어 하늘을 날며, 환상의 여인을 만나는 꿈속에서만 오로지 자유를 느낀다. 그러던 중 늘 꿈속에 나타나던 여자인 질 레이튼(킴 그리스트 분)을 현실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꿈속에서와는 다르게 거친 트럭 운전사이자 반정부주의자다. 샘은 그 자리에서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녀로부터 미치광이 취급만 받는다. 그러던 중 자신의 집에 고장난 파이프를 고치러 찾아온 해리 터틀(로버트 드니로 분)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터틀은 사실 배관공으로 위장한 테러리스트였다. 한편, 파리를 쫓던 정보국 직원이 테러리스트인 터틀을 체포하기 위한 문서를 작성하던 중 그만 타자기를 오작동시키고, 그 바람에 버틀이라는 무고한 시민이 테러범으로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난처해진 샘의 상관은 버틀의 가족에게 보상금을 전달하는 일을 샘에게 시키고, 샘은 버틀의 집을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질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가 법망에 쫓기는 도망자 신세라는 것을 안 샘은 최고위층의 컴퓨터를 조작해서 그녀가 사망했다고 기록함으로써 그녀를 구해내려고 하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붙잡혀 고문을 받는 신세가 되고 마는데.
메트로폴리스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지상세계의 프레더는 어느날 마리아를 통해 지하 세계의 비참한 생활상을 알게된다. 프레더가 그의 아버지 프레드슨에게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해 줄 것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하고 오히려 마리아가 주도하는 지하 세계의 집회를 목격한 프레드슨은 로트왕에게 마리아와 똑같은 로봇을 만들어 지하세계의 노동자들을 교란할 것을 명령한다. 마리아를 복제한 로봇은 노동자를 선동하고, 지하세계는 홍수가 나며 공장이 노동자들에 의해 파괴된다. 그러나 마침내 지상세계에 모여든 노동자들은 로봇의 정체를 알게 되고, 프레더의 중재로 프레드슨과 화해의 악수를 나눈다.
파리, 텍사스
멕시코와 미국의 접경 지역 부근, 텍사스주의 어느 황량한 마을에 탈진한 듯 보이는 한 남자가 걸어온다. 그의 이름은 트래비스. 의식을 잃은 트래비스의 소지품에서 ‘월트’란 이름을 발견한 의사는 연락을 취하게 되고,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살던 동생 월트가 형인 트래비스를 데리러 온다. 4년 만에 소식을 접한 월트는 병원에서 말 없이 사라진 형을 바로 찾아내지만, 형은 계속 침묵으로만 일관한다. 그동안 형의 아들인 헌터를 맡아 기르던 월터와 그의 아내 ‘앤’은 헌터가 트래비스를 아버지로 인정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른 정에 얽매여 헌터를 잃게 되진 않을까 우려한다. 월트는 형이 텍사스에서 헌터의 엄마, ‘제인’과 살다가 왜 갑자기 헤어지게 됐는지 털어놓지 않자 답답해하고, 트래비스는 앤으로부터 제인이 헌터에게 매달 정기적으로 송금해오는데, 휴스턴의 한 은행을 이용하고 있다는 애기를 듣고 직접 찾아보기로 결심하는데..
로얄 테넌바움
로얄 테넌바움과 그의 아내 에슬린 테넌바움에게는 세 명의 어린 자녀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이들 세 명의 자녀는 부모가 별거하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산다. 채스(벤 스틸러)는 10대 초의 나이에 부동산 투자 전문가가 됐고 국제금융에 관해서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입양된 딸인 마고(기네스 팰트로)는 극작가이며 15세 의 나이에 브레이버만 그란트(Braverman Grant) 상과 부상으로 5만 달러를 받은 경력이 있다. 훗날 퓰리처 상까지 수상한다. 리치(루크 윌슨)는 주니어 챔피언 테니스 선수이며 3년 연속 US 오픈 타이틀을 획득한 경력이 있다. 하나같이 천재였던 이들 세 남매들의 어린 시절은 20여 년에 걸친 배신과 실패 그리고 비극적인 사고로 인하여 그들의 기억 속에서 모두 사라져버린다. 그들의 천재성이 꽃을 피우지 못한 것은 모두 그들의 아버지 탓이었다. <로얄 테넌바움>의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산산조각 난 가족들이 2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겨울 날,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알려온 아버지 때문에 으로 한 집에서 다시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파이트 클럽
비싼 가구들로 집 안을 채우지만 삶에 강한 공허함을 느끼는 자동차 리콜 심사관 ‘잭’.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거친 남자 ‘테일러 더든’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싸워봐야 네 자신을 알게 된다”라는 테일러 더든의 말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잭. 두 사람은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파이트 클럽’이라는 비밀 조직을 결성하고, 폭력으로 세상에 저항하는 거대한 집단이 형성된다. 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파이트 클럽’은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가 변질되고, 잭과 테일러 더든 사이의 갈등도 점차 깊어져 가는데… 거침없는 진짜 남자들의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
시계태엽 오렌지
노숙자 폭행, 집단 싸움, 차량 절도, 주택 침입… 10대 소년 ‘알렉스’는 친구들과 어울려 극악한 비행을 저지르고 다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저택에 침입해 주인과 싸우고 달아나려던 순간 경찰에 검거된다. 살인죄가 적용되어 14년 형을 살게 된 ‘알렉스’. 좀 더 빨리 감옥을 탈출하고자 ‘루도비코 갱생 프로그램’에 자원한다. 루도비코 실험은 재소자에게 약물과 충격요법으로 각종 범죄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교화 방법이다. 과연 알렉스의 범죄 본능이 치료될 수 있을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최고의 문제작.
타락천사
킬러가 청부 살인을 하는 동안 그의 파트너는 주인 없는 방에서 침대 시트를 정리하거나 쓰레기를 검사한다. 그들은 동업한 지 155주나 되었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킬러는 이제 일을 그만두고 싶지만, 파트너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다른 방법을 선택한다. 한편, 수감번호 223 하지무는 5살 때 유통기한이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고 말을 잃었다. 밤마다 주인 없는 상점에 무단 침입해 장사하던 그는 어느 날 떠나버린 남자 때문에 힘들어하는 찰리를 만나고 그녀를 도와 밤거리를 헤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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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D.P (2021)
* 본 리뷰는 <D.P.>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D.P. (2021)
연출: 한준희
출연: 정해인, 구교환, 김성균, 손석구 등
장르: 드라마
원작: 레진코믹스 웹툰 <D.P 개의 날> (김보통)
공개일: 2021.08.27
방송 횟수: 6부작
탈영병 잡는 D.P조의 스펙터클 활극
제 103보병사단 헌병대로 자대배치를 받게 된 '안준호 이병(정해인)'.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고 살았기에 시종일관 표정에 그늘이 진 상태며 선임이나 상사를 상대로도 부당한 대우를 참지 않는 불 같은 성격을 지녔다. 이러한 성격 탓에 자대 배치를 받는 순간부터 짬질로 악명 높은 '황장수 병장(신승호)'의 타깃이 되고 선임들의 괴롭힘을 받는다.
이렇게 악몽 같은 군생활이 시작되려던 찰나 준호의 예리한 관찰력이 현병대 수사과의 '박범구 중사(김성균)'의 눈에 띄게 되면서 탈영병을 잡는 'D.P'조로 발탁된다. 특유의 예리한 촉과 복싱으로 다져진 전투력으로 'D.P'조원으로 최적화된 활약을 펼치고, 퇴원 후 'D.P'조에 재합류하게 된 '한호열 상병(구교환)'과 티격태격 하면서도 환상의 호흡으로 탈영병들을 잡는다.
한국 군대의 어두운 이면을 고발
어제 공개된 "D.P."가 공개와 동시에 호평을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는 한국 군대의 부조리와 악폐습, 그리고 조직의 어두운 이면을 낱낱이 드러냈다는 점 때문이다. 애초에 군대를 소재로 만들어진 드라마 자체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D.P"는 군대를 미화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방식으로 그리지 않고 하이퍼 리얼리즘에 가까울 정도로 현실 고증에 신경을 기울이며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솔직히 적당한 공감을 넘어서서 PTSD를 일으켰다고 보는 것에 좀 더 가깝다.
극은 2014년의 군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필자 본인은 2018년 군번이기에 완벽한 공감을 하기는 어려웠다. 적어도 극에서 그려진 장면들보다는 제법 생활할 만한 공간에서 군생활을 보냈기 때문. 하지만, 융통성 없고 앞뒤 꽉 막힌 군대라는 조직 자체의 특성, 병사들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실적과 부대의 평판만을 중시하는 간부, 그리고 후임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으며 괴롭히는 선임병들의 모습은 내게 남아있는 군에서의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D.P"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이 워낙 극단적인 편이라 현실에서 이 정도 수위의 사건들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절대 과장한 스토리가 아니라는데 확신할 수 있다.
무거운 스토리 속 돋보인 구교환
한국 군대, 그 중에서도 탈영병을 소재로 한 작품인만큼 전반적인 스토리가 무거운 편이고 인물들의 감정도 격하고 어둡다. 주인공 '안준호 이병'마저 진중하고 과묵한 성격이기 때문에 자칫 작품이 심각한 방향으로만 흐를 가능성도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 속 유일하게 깨발랄한 모습으로 부드러운 윤활제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 준 '한호열 상병'역의 '구교환'이 등장하면서부터 작품의 재미는 한층 더 올라가고, 속도감과 가벼운 템포까지 얻게 된다. 실제로 한호열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하는 3회에서부터 극의 재미가 배로 늘어난다.
능글 맞고 유쾌한 한호열 상병과 무뚝뚝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안준호 이병의 대비되는 성격이 밸런스를 이루며 버디물로서의 환상적인 케미스트리를 선보인다. 짤막한 에피소드 내에서 각자의 역할에 따라 분업하여 이뤄지는 추격전은 꽤나 스펙터클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소재 자체만으로도 신선해서 충분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지만, '구교환'의 연기가 극이 호평을 받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본다.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불과 1년 반 전에 군생활을 마친 입장으로서 군인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내뱉는 대사들이 상당히 친숙하면서도 와닿을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6화에서 '조석봉 일병(조현철)'의 마지막 대사는 뇌리에 박힐 정도로 임팩트가 강했다. 군대가 바뀔 수도 있지 않냐는 한호열과 안준호의 회유에 수통에 적힌 날짜마저 1953년에 머물러 있는데 조직이라는 큰 단위가 바뀔 리가 있겠냐는 석봉의 대답. 현실적인 군 세태를 너무도 신랄하게 반영한 대사였다. 실제로 군대에서 병사들이 사용하는 군수용품은 최소 2000년대 초반에 제작된 것들부터 2000년대 이전 제품들까지 노후한 상태의 물품들이 상당히 많다. 내가 사용했던 수통 또한 제조연도가 2000년대 초반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대라는 조직은 덮을 수 없을 정도의 수위로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바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내 경험을 예로 들자면, 여름철 에어컨이 없는 초소에서 한 병사가 더위를 먹고 기절한 이후에야 비로소 에어컨을 설치해주었다. 결국 이러한 조직상의 특징 때문에 '석봉'과 같은 비극에 놓인 병사들이 수도 없이 생겨나게 되었고, '뭐라도 해야지...'라는 위험한 결심 하에 더욱 끔찍한 사고(e.x. 생활관 총기 난사)를 저지르는 참상이 발생한 것이다. 부디 군 고위 관계자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마음 속 깊이 느끼는 바가 있었으면 한다. 처음부터 문제가 있던 병사들도 있겠지만, 군대를 가지 않았더라면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았을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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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배트맨' 리뷰
*영화 '더 배트맨'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래된 시리즈 속의 인물들이 다들 그렇지만 특히나 배트맨의 어깨 위에 올려진 짐은 막중했다. 팬들은 배트맨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 속에 '다크나이트'라는 영화가 있다. 전례 없는 악당의 존재가 만들어낸 드라마는 영화를 걸작의 반열에 올려다 놓기에 충분했다. 배트맨도 제 몫을 다했다. 그가 내린 선택은 영화의 오프닝 장면만큼 강렬한 엔딩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 뒤로 배트맨의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나 TV 시리즈에서는 크고 작은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훌쩍 나이를 먹어 원숙해지기도 하고, 더 단단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중요한 건 작품마다 배트맨이 어울릴 수 있는 판이 달랐다는 점이다. 고담시를 수호하던 영웅은 어느새 지구를 지켜야 하는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전 세계를 지켜야 하는 영웅의 모습에서 다시금 돌아간다.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근원적인 정체성인 탐정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동시에 무대 또한 홈그라운드로 줄어든다. 다시금 기본으로 돌아가면서도 이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장점들이 빛을 발한다. 어둡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도시의 모습은 이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인물이 가진 강점과 매력에 집중하는 동시에 새로운 빌런으로 판을 뒤흔든다.
이 영화를 보면서 신선하게 다가왔던 부분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토마스 웨인이라는 인물의 설정이다. 브루스 웨인이 부모의 죽음으로 자경단 활동에 나섰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묘사하진 않는다. 그동안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인 토마스 웨인은 의사에 자선가로 인격적으로 완전무결한 사람처럼 표현되었다. 여기서는 다르다. 그가 과연 도덕적이기만 한 인물이었을까? 이토록 부패한 도시의 재벌이 잘못된 선택을 내린 적이 없었을까? 이런 질문을 통해서 토마스 웨인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아버지의 죄'라는 테마를 통해서 극 중에 등장하는 다양한 그룹이 연결된다. 고담이라는 도시의 상황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감각된다. 이는 배트맨에게도 마찬가지다. 복수를 통해 죽은 부모님을 향한 비현실적인 위로를 건네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정의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인 리들러의 행동이다. 그는 자신처럼 고아인 배트맨이 본인과 비슷한 동기(복수)를 가지고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리들러가 배트맨에게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았다는 등 아캄에서 보였던 반응은 전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리들러가 기존 시리즈의 악당과는 다르게 배트맨이라는 인물에 대해 동질감을 느꼈다는 점은 그만큼 배트맨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해왔던 일이 본래의 목적의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는 말이 된다.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해온 범죄자가 그를 자신의 팀으로 설득하고 싶어 할 정도로 탈선한 상태인 것이다. 이렇다 보니 영웅이나 악당의 행동 모두가 굉장히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이 모든 맥락이 지극히 현실적이다. 검은 옷을 뒤집어쓴 자경단원을 대하는 경찰들의 시선 또한 그렇다. 실제로 주변에 있었다면 나라도 저렇게 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적이지 않은 사건이나 사물, 인물을 일상으로 들여올 때 발생하는 이질감을 세심하게 표현한다. 브루스 웨인에게서 풍기는 우울감도 그렇다. 부모의 죽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면모를 보이기는 했어도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 상태의 구분이 명확했다. 여기서는 다르다. 초점이 온전히 배트맨의 활동에만 맞춰져 있다 보니 균형은 깨진 상태이다. 무력한 상태에 놓이고 싶지 않아서 강박적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그 활동의 의미를 찾기가 어려우니 회의감에 빠져있는 입장이다. 이런 감정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이 영화 속에서 배트맨은 악전고투한다. 2년 동안 활동을 해왔지만 여전히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부정부패는 끊이지 않고 활동에 회의감이 든다. 숱한 경험을 토대로 단련된 초인이 아니고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사건을 막기에도 급급하다. 막연한 믿음으로 자경단 활동을 지속하기에 역부족인 시점이다. 배트맨은 사건을 해결하면서 점차 변해간다. 그의 변화는 비약하거나 도약하지 않고 아주 작은 호의와 행동으로 드러난다. 겨우 한 걸음 정도의 변화일 뿐이다. 보면 배트맨에게 기대하는 바는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와 맞닿아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가 초인 영웅이 아닌 철인 영웅이라 좋았다. 배트맨은 질문과 자기반성, 성찰을 통해 힘을 얻는다. 본인의 삶을 제어하면서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향이 분명하다.
이후에도 시리즈가 나온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후속작이 나오면 이번 영화보다는 브루스 웨인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업가나 재력가로서의 역할을 통해서 배트맨이 할 수 없는 일을 시도할 수 있다. 다수의 시민에게서 희망을 보고 복수에서 발전한 존재가 되려는 고민을 시작했으니 본인의 다른 페르소나 또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패가 될 것 같다. 물론, 고담이라는 환경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 보니 어떤 형태로든 더 많은 시련이 있겠지만 해법은 분명 이번 영화와는 달라질 것 같다. 악당들도 기대가 된다. 이번에 나왔던 리들러처럼 다음 적수 또한 무척 난적이 될 테니까.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더 배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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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폴 / Moonfall, 2022
영화 <문폴>은 '지구에 달이 떨어진다'라는 시놉으로 <인디펜던스 데이,1996>와 <투모로우,2005>, 그리고 <2012,2009>의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가 점찍은 야심작이었습니다. (직접 제작비 조달을 위해 뛰었으며, 무엇보다 3부작으로 예정했거든요)
이미, 수차례 지구를 아프게 만든 사람이라 기대는 없지만 막상 또 '극장'이라는 큰 너비의 스크린을 생각하면 거부할 순 없겠죠?
하지만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2016>의 실패 이후 전작 <미드웨이,2019>는 제작비마저 절감되는 등(그래도, 1억 달러였다)의 행보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선을 보인 영화 <문폴>이 지금까지 거둬들인 흥행은 어떨까요?이번 3월 16일에 국내에 개봉한 <문폴>은 박스오피스 1위에 이름을 올렸으나 여태컷 불러 모은 관객들은 143,937명(03.21 기준)에 불과하며, 일요일(20일)에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게 밀리며 빠르게 하락세에 접어들었습니다.
근데, 먼저 개봉한 북미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입니다.
<잭애스 포에버>에게 밀려 2위로 시작한 영화는 현재까지 총 수익 $39,398,041에 불과한데, 제작비가 1억 5천만 달러임을 생각하면 3부작은커녕 감독 본인의 커리어도 중단될 위기에 서있습니다.(참고로, <잭애스 포에버>의 제작비는 1천만 달러입니다)
애초에 평가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번 영화 <문폴>은 유독이나 더 안 좋게 들려오는데요.
'과연, 어떤 작품이었는지?' - 영화 <문폴>의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주에서 위성 수리를 진행하고 있었던 "브라이언"과 "파울러"에게 하나의 사고가 발생합니다.
이에 빠르게 지구로 귀환하는 그들이나 사고에 있어 동료 하나를 잃는 결과를 "브라이언"이 짊어지며,그는 "나사"에 내쳐지게 됩니다.
그로부터 무수히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갑자기 달의 궤도가 달라지면서 지구에 충돌될 위기가 생깁니다.
이를 위해서, "브라이언"과 "파울러", 그리고 "KC 하우스맨"이 달을 향하는데...이게, 떨어진다는 게 달이 아니었어?
1. 전혀, 달라진 게 없어!
앞서 말했듯이 영화 <문폴>은 딱, 기대한 만큼의 재미는 확실히 보장된 작품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롤랜드 에머리히"의 <인디펜던스 데이1996>와 <투모로우2005>, 그리고 <20122009>까지 "아이맥스"와 비껴나간 것이 안타까울 정도의 장관을 선사했던 그였던 만큼 <문폴>은 이를 충분히 충족시킵니다.
극 중 "쓰나미"를 비롯해 도시를 물에 잠기는 것은 기본이고, 출발하려는 우주선과 이를 덮치는 파도 또한 볼거리로서의 재미를 충족시킵니다.
여기에 자동차 추격전까지 빠지면 섭섭할 장면들까지 이번 <문폴>의 흥행을 떠나 그에게 많은 제작비를 쥐여준 이유를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시원하게 꽂히기는 한데... 어디로 가냐?
다만, 이런 장점과 함께 단점 또한 꾸준히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볼거리로 밀어붙이기에는 "블록버스터"라는 장르는 이야기도 잘하는 만능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거리만을 내놓는 <문폴>은 요즘 스타일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먼 작품입니다.
물론, 그런 스타일 때문이라도 <문폴>은 "롤랜드 에머리히"감독이 만든 작품이 맞으며 이제는 그만이 이런 영화를 만들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유독 이번 <문폴>의 이야기에 대해서 많은 아쉬움들이 새어 나오더군요.2. 똑같은데, 더 거북해진 이유는?
첫 번째, 클리셰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번 <문폴>에서 많이 언급되는 작품이 그의 전작 <2012, 2009>로 주인공이 이혼을 했다는 점 외에도 계부모 가정 등의 설정과 자동차 추격전의 구도까지 그대로 따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똑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를 행하는 이유에는 "클리셰"는 해당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관객들에게 왜곡 없이 전달하는 역할을 생각하면 없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유사함이 전부 해당된다면 굳이 <문폴>을 봐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오히려, 실패할지도 모를 첫 작품보다는 봤던 기억이 있는 기성품에 좀 더 끌리겠죠.달만 바꿨어...
두 번째, 이야기에 대한 거북함입니다.
앞서 전작 <20122009>과의 유사함을 이야기했기에 그 느낌도 비슷하겠거니 생각하겠지만, 그 느낌은 사뭇 다릅니다.
'도대체, 뭐가 다를까?'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음모론"에 대한 반응입니다.
<2012>도 많은 가설이 존재하나 운석을 음모론자를 맞추며, "이거보다 지구가 어떻게 멸망할지, 궁금하지 않아?"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이번 <문폴>에서는 "거대구조물설"이라는 하나의 가설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이후 이를 하나의 정설로 받아들이게 합니다.3. 그냥, 태생부터 비호감!
보통 영화를 비롯하여 하나의 작품 속의 이야기를 지키는 경계를 "제4의 벽"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를 지키는 이유는 이야기의 현실성으로 "진짜?!"로 몰입하는 관객들을 위해서 깨선 안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문폴>이 말하는 이야기는 통상 사람들이 가진 지식과 상식을 해당 영화가 뒤집는 수준입니다.
결국, 관객 스스로 "제4의 벽"을 깨고 나서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든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죠.그냥, 다 싫어 죽겠어.
이외에도 관객들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중국 자본"의 침투력까지 <문폴>은 마냥 좋게만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건재한 "롤랜드 에머리히"가 보여주는 지구 때리는 모습은 "지구 담당 일진(?)"이라는 별명을 계속 붙여도 이상은 없어 보입니다.
근데, <문폴>은 둘째 치고서 다음 영화 찍을 수는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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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싱타는 여자들 리뷰 - 열둘, 열세 살 여공들의 울분에 대하여
*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2022년 1월 개봉예정인 작품 [미싱타는 여자들]의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1970년대 평화시장에는 가난해서 혹은 여자라서 공부 대신 미싱을 타며 `시다` 또는 `공순이`로 불린 소녀들이 있었다 저마다 가슴에 부푼 꿈을 품고 향했던 노동교실 그곳에서 소녀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노래를 하고, 희망을 키웠다 다른 시대를 살았던 청춘이 오늘의 청춘에게 보내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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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소설가 구보의 하루> 메인 예고편
자신의 작품 세계를 고집하며 글을 써오고 있는 소설가 구보(박종환)는
선배 기영(김경익)이 편집장으로 있는 작은 출판사에 자신의 소설 출간 여부를 결정지으러
부푼 마음을 안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기대치 못한 소식을 들은 구보는 허탈한 마음으로 거리를 배회하면서
다양한 지인들과 우연 혹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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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카운트> 티저 예고편
진선규 킹받는 美친 개로 돌아왔다?!? 2023년, 긍정파워 풀충전 시켜줄 ⭐[카운트] 티저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