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tto2023-09-02 12:13:49
바다에도 지도가 있대
<물꽃의 전설>
‘해녀’는 어떤 전형(典型)으로 기억되어왔다. 검은색 잠수복과 둥근 물안경을 쓰고, 조그마한 그물망을 맨 채 잠수했다가 물 밖으로 나오기를 반복하는 여자들, 바다 근처에서 살면서 딱딱한 껍데기를 지닌 생물을 채집하기를 반복하는 여자들. 어쩌면 멸종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직업. 모두 틀린 묘사는 아니다. 그러나 <물꽃의 전설>은 한발자국 더 다가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동시대 관객에게 전달한다. 과장하거나 연민하지도 않고, 전형을 깨부수거나 극화하지도 않은 채로.
<물꽃의 전설>이라는 제목은 무릇 판타지 장르 같은 인상을 주는 제목이다. 자연스레 ‘물꽃’이 무엇인지, 또 해녀들의 이야기에 왜 전설이라는 제목이 붙었는지를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는 러닝타임 전체에 걸쳐 그 이유를 말한다. 영화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전설’이라는 단어에서 두 가지 의미가 읽힌다. 첫번째는 한 분야에 통달해 최고의 전문가가 된 사람, 두번째는 말 그대로 신화처럼 오래오래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영화는 자그마치 87년을 물질해온 현순직 해녀와 이제 막 1년여의 경력을 쌓은 채지애 해녀를 중심으로 해녀들의 일년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관객은 자연스레 그들만이 가진 세계를 보게 된다. 뭍에서 물끄러미 관찰하기만 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제사를 지내고 옷을 입고 도구를 골라 챙겨 들고 잠수하는 그들의 업무를 카메라에 담았다. 날이 좋고 물이 맑아 소라와 팔뚝만한 전복을 발견하는 때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설이 내리는 날 물질해야하는 때도 모두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현순직 해녀가 가진 노하우를 초보 해녀와 관객이 함께 듣는 것이다. 그렇게 <물꽃의 전설>은 해녀들을 전설로 만든다. “그들은 용궁에서 태어나 뭍으로 오고, 봄이 되면 바다의 여신에게 제사를 드린대. 그러면 바다가 소라와 해삼과 전복을 내어 주고, 바다 지도를 전부 욀 만큼 자라면 빨간 물꽃을 선물해 준대. 그러다 때가 되어 여신이 불러 숨을 거두면 다시 용궁으로 돌아간대.” 라고 말하는 전설.
‘물꽃’은 다름 아닌 형형색색의 산호초이다. 먼 바다와 강한 해류를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경력이 쌓이고, 제주 바다를 구역별로 나누어 만든 지도를 줄줄 꿸 정도가 되면 비로소 전설인 줄로만 알았던 물꽃을 목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멋진 전설에서 행복하게 이야기를 마치지 못한다. 이 불가피성은 어떤 개인적인 비극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가 침투하면서 나타난다. <물꽃의 전설>이 카메라에 담은 2016년부터 2021년경까지, 바다는 너무나도 빨리 황폐해진다. 처음에는 공장에서 뿜어내는 폐수가 시야를 흐리더니, 해가 갈수록 전복과 소라, 성게가 차례로 사라진다. 자신의 얼굴만큼 큰 전복을 잡아오던 채지애 해녀는 작은 보말로 망을 가득 채워 돌아온다. 그리고 애써 찾아간 먼 바다에, 물꽃은 피어 있지 않다. 물꽃은 영화의 제목처럼 그야말로 전설로 남아 버린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면 영화가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은연중에 걱정어린 마음이 찾아온다. 어쩌면 전복과 소라, 성게, 보말조차 바다의 여신이 거두어 갔다는 전설로 남아버리는 것 아닐까?
이런 질문을 남겨 두고 <물꽃의 전설>은 끝이 난다. ‘훈훈하고 애연하며 무엇보다 숨 막히게 아름답다’는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의 평처럼, 영화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따스하다. 한편 ‘예찬만 할 수 없었다’라는 고희영 감독의 말처럼 모든 것이 그저 전설로 남아 이야기로만 전해지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극장을 나서게 한다. 그렇게 영화는 신비화도, 대상화도 없이 ‘전설’이라는 말의 의미와 그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힘을 거머쥔다.
(이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에 참석 및 관람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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