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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katniss 2025-06-25 21:28:32

<봄밤> 심층 분석 1

정인-지호-기석의 관계성과 연출

[봄밤 포스터 - 출처 구글포토]

 

 

<봄밤>은 안판석 감독이 제작발표회에서 말했듯이 '새로운 시작'에 관한 드라마이다.

 

아이가 있는 남자 주인공과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 주인공.

 

멜로 드라마의 포인트는 첫째,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공감, 둘째, 그 공감을 기반으로 한 시청자들의 이입인데 두 주인공의 상황은 자칫하면 공감보다는 반감을 사기가 쉬워 보인다.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사랑이란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만나 설렘을 느끼고, 서로에게 끌린다는 이야기' 를 납득시키기 위하여 <봄밤>은 다양한 시각적 신호를 적극 활용한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봄밤>의 연출과 극본이 정인-지호-기석의 관계성을 영상을 통해 어떻게 정립하는지, 또 그를 통해 어떻게 정인-지호 관계의 필연성을 정립하는지에 대해 서술할 예정이다.

 

 

<봄밤>에서 정인-지호 관계의 필요성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지호와 기석의 대비이다.

 

이는 3화 (32부작 기준 6,7화) 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정인, 지호, 기석은 같은 시간 다른 곳에서 각자의 지인들과 술자리를 갖는데,

 

이때 기석은 고급스런 오마카세에서 시윤과 사케를 마시고, 지호는 단골 칼국수집에서 고시생 친구와 칼국수를 먹는다. 정인은 동네 치킨집에서 직장 동료들과 함께 맥주를 마신다. 같은 화 후반부에서도 이러한 의도적 병치는 반복된다. 정인과 기석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시며 껄끄러운 대화를 해나가면, 같은 시간 친구와 동네 치킨 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지호의 모습이 이어지는 식이다.

 

이와 비슷하게 드라마 초반부 정인과 기석의 만남 대부분은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양식당에서 와인을 앞에 두고 일어난다. 정인은 1화부터 묘사되었듯이 가까운 사람들과 집이나 동네에서 소박하게 맥주를 마시며 웃는 것이 행복인 인물이다. 그와 달리 정인이 기석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이 ’행복’이라고 명명한 것과 언제나 상이한 배경에 있음은 정인-기석의 관계가 기석의 질서에 더 크게 속해 있음을 드러낸다. 그래서인지 기석과 함께 있을 때의 정인은 항상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반복되는 대비와 병치는 지호-정인이 기석-정인에 비해 더 결이 맞는 인물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지호-정인의 관계성을 설명하는 주요한 연출적 장치로 쓰인다.

 

 

지호와 기석의 캐릭터 차이는 둘의 생활 공간의 대비를 통해 극명해진다. 드라마의 초반부 기석은 대부분 고층 빌딩의 통창을 통해 바깥을 내려다보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주로 위(고층빌딩)에서 아래를 내다보도록 설계된 기석의 공간은 특유의 자만심으로 모두를 대하는 기석의 태도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그와 달리 지호의 약국은 같은 통창으로 되어 있음에도 지상에 위치해 있으며, 기석의 사무실과는 달리 누구든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다. 공사소음 등 주변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 자극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수평의 위치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며, 약국에 들어오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혹은 창을 넘어오는 주변의 환경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 이는 따뜻하고 배려심 많은 지호의 성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드라마는 두 인물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의 대비를 통해 정인이 원하는 '따뜻한 사람' 이 왜 기석이 아닌 지호인지를 피력한다.

 

 

사실 기석과 지호는 모두 자신의 과거로 인해 위축되고 억압된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기석은 하고 싶었던 음악을 포기하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며, 지호는 큰 상처를 지닌 채 혼자 아이를 키우는 미혼부이다. 그런데 왜 기석은 지호처럼 '따뜻한' 인물이 되지 못했을까? 시청자는 그 답을 10화 말미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인공들의 세탁소 데이트를 목격한 지호 아버지는 둘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지호 엄마를 집 안으로 떠민다. 그러다 과일을 떨어뜨린 지호 아버지를 지호 엄마는 얄밉다는 듯이 쥐어박는다. 카메라는 그런 둘의 모습을 호흡이 긴 롱샷으로 관조한다. 정인이 지호를 사랑하는 이유가 지호의 '따뜻함' 때문임을 밝힌 날 밤 지호의 부모님을 비추는 담담한 카메라는 지호의 부모님이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대등하고 인간적인 관계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나아가 지호의 따뜻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훌륭히 설명한다.

 

 

반복되는 기석과 지호의 대비는 정인의 말마따나 지호와 정인이 '꼭 맞는 베게' 같은 관계임을 시각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주입하는 역할을 하며, 환승이별 혹은 바람으로 정의할 수 있는 두 주인공의 썩 떳떳하지만은 못한 관계에 정당성을, 적어도 이해와 공감의 여지를 부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중반부까지도 정인-지호의 관계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떨쳐내지 못했다. 필자가 정인과 지호의 관계를 비로소 응원할 수 있었던 것은 쌓아왔던 둘의 감정선이 9화 (32부작 기준 17, 18화) 에 가서 빛을 발하고 부터였다. 다음 리뷰는 봄밤의 회차 타임라인을 따라가며 이 드라마가 어떻게 둘의 '불편한' 관계를 끝내 시청자들에게 설득하고 마는지를 탐구해보려 한다.

작성자 . kitkatn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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