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3-09-02 16:58:04
바다에 목숨을 다 바친 해녀 그리고 바닷속에 감춰진 환경 오염에 관한 이야기!
<물꽃의 전설> 영화 시사회 후기
시놉시스
제주도 삼달리에서 현순직 해녀는 87년간 해녀 일을 해왔다. 현순직 해녀는 16살 때부터 아기 상군(상군은 해녀에서 제일 높은 계급)이라 불렀으며 우리나라 바다 어디 안 가본 곳 없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바다에 바친 현순직 해녀가 이제 물질을 마쳤다. 한편 채지애 해녀는 5년 차 경력을 쌓은 해녀이며 원래는 헤어 디자이너 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바다로 돌아와 부모님이 하는 해녀 일을 돕는다고 하자 반대가 심했다. 지금은 나름 잠수도 잘하고 물속에서도 수영을 잘한다. 이 두 해녀가 전해주는 바다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해녀들은 잠수복을 입고 빗창을 들어 바다로 들어가 성게와 소라를 잡는다. 그런 고달픔을 풀기 위해서 해녀 노래를 부른다. 해녀 노래는 해녀들의 일의 고됨을 알려주는 제주도 민요이다. 또한 이어도 설화와 용왕할머니라는 민간 신앙을 믿음으로서 해녀들이 얼마나 바다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다가 오염되어 해녀들의 일자리도 잃고 있고 물꽃과 미역 줄기들이 가득하던 바다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현순직 해녀는 바다가 부모보다 더 많은 걸 준다고 말한다. 2016년의 바다부터 2021년의 바닷속을 비교한 영상을 보여주는데 풍성함이 가득했던 바다는 이제 남은 게 없고 성게들이나 소라들도 사라졌다. 바다에만 목숨을 바친 현순직 해녀의 큰 아쉬움과 더 이상은 바다에 들어갈 수 없다는 한은 바다만 한없이 쳐다보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주도 해역의 바다가 예전처럼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환경 오염에 대한 심각성을 보는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물꽃은 이제 전설이 되어버렸다. 물꽃은 이제 볼 수 없으며 바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가 무심코 방치한 환경 파괴가 바다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흔히 말하는 전설 속의 생명체가 지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마도 우리가 환경 오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사라질 위기종들이 얼마나 많을지 모르는 일이다.
" 우리는 우리의 조상으로부터 지구를 물려받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로부터 지구를
빌린다 "
<아메리카 원주민 속담>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
- [BIFF 데일리] 이토록 뚝심 있고 암울하며 끈적한 조폭 영화라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감독] 김창훈 KIM Chang-hoon
출연] Xa-bin HONG 홍사빈 Joong-ki SONG 송중기 Hyoung-seo KIM 김형서
KOREA|2023|124 min|DCP|Color|Special Premiere
시놉시스
명완시에 나고 자란 18세 고등학생 '연규'(홍사빈). 중국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의 꿈은 엄마 '모경'(박보경) 함께 네덜란드로 이민을 가는 것. 하지만 현실을 녹록지 않다. 새아빠 '정덕'(유성주)의 딸 '하얀'(김형서)을 도와주려다 일진과의 싸움에 휘말리고, 졸지에 합의금 300만 원을 토해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도움의 손길이 등장한다. 마찬가지로 명완시를 떠나 본 적 없는 '치건(송중기)'이 선뜻 300만 원을 준 것. 이를 계기로 연규는 치건처럼 명완시에서 살아남으려 한다. 치건이 중간 보스인 조폭 조직에 합류해 이것저것 일을 배우는 연규. 그러나 연규가 치건에게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치건이 연규를 신뢰하면 신뢰할수록 그들에게는 점점 더 위험한 일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갱스터 영화의 사회적 맥락
갱스터 영화는 필연적으로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영화다. 지나치게 남성적, 마초적이라고 비판받고, 높은 수위 때문에 불쾌하다는 지적도 피하지 못한다. 그러나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폭력성은 갱스터 영화에 남성 판타지 이상의 사회적 의의가 깃드는 힘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갱스터 영화의 전성기가 두 차례 있었다. 금주법이 시행된 대공황 시기,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사회가 혼란했던 70년대다. 갱스터 영화의 폭력성과 선정성은 당대의 사회 구조적 불안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비정상적인 시스템 하에서 성공하고 싶은 욕구를 반영한 몸짓인 셈이다. 한편으로는 그 폭력성과 선정성을 스크린 안으로 제한하면서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는 기제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제76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섹션에 초청된 <화란>은 장르의 본분을 충실히 해낸 수작이다. 신인 감독 김창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은 마지막까지 톤을 유지하는 뚝심, 달라붙은 껌처럼 찐득한 장르적 쾌락이 돋보인다. 조폭의 가장 말단에 위치한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한국 조폭 영화의 익숙한 틀을 깨부수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부인 오프닝
사실 <화란>은 오프닝이 전부인 영화다.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남학생 일진 무리. 연규가 그들에게 다가간다. 무리 중 한 명을 붙잡더니 돌덩이로 머리를 내리친다. 그러고는 돌덩이를 내려놓는다. 이때 운동장에 고여 있던 물덩이에 피 묻은 돌이 떨어지고,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 사이 흙탕물이 된 물덩이 표면에 제목 <화란>이 나타난다.
아무 맥락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마주한 오프닝은 충격적이다. 예상치 못하게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 물론 영화는 그 직후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규연은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남매 하얀을 돕기 위해 폭력을 행사했다. 그녀가 학교 내 일진이 여자 속옷을 거래하는 일에 휘말려서 협박당하고 있었기 때문.
대신 충격만큼 <화란>의 주제는 간명히 드러난다. 고요한 물덩이가 피로 물들고 파동 치기 시작한 이상, 흙탕물을 되돌릴 수 없다고. 즉, 폭력의 굴레에 발을 내딛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고. 실제로 영화는 현실 속 온갖 폭력으로 가득하다. 연규네 가족은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에 시달린다. 불법 사채업자 치건은 오토바이 절도 사업을 병행하고, 정치인 뒤를 봐주는 조폭이다. 심지어 사회적 혐오와 책임회피 같은 이슈도 끼어들어 있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이들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일절 하지 않는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를 감싸 안으려고 하지 않는다. 연규도, 치건도, 하얀도, 새아빠도 모두 폭력이 잘못된 것인 줄 안다. 심지어 부패 정치인 '정의석'(서동갑)도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영화는 더 냉혹하다. "열심히 공부해라"라는 말이 빈말로 느껴지는 암울한 사회상과 폭력의 굴레를 고발하겠다는 의지도 강렬하다.
갱스터인 척하는 멜로드라마
악의 굴레를 멜로드라마로 바꿔서 보여주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를 지닌 두 남자의 브로맨스 덕분에 폭력의 의미와 역할이 더 잘 전해진다. 연규는 아버지가 없다. 친아빠는 어릴 적 자기를 버리고 떠났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엄마는 새아빠와 결혼했다. 하지만 새아빠는 술만 마시면 연규와 엄마를 두들겨 팬다. 하얀이 말려야 간신히 말을 들을 정도다.
자연히 연규에게는 머리를 다친 일진에게 줄 합의금 300만 원을 마련할 재주가 없다.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로는 택도 없다. 그런 그에게 치건이 나타난다. 연규에게 홀연히 300만 원을 선물하더니 결코 자기를 찾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폭력에 시달리던 연규는 끝내 치건을 찾아간다. 어떤 힘이든 있어야 맞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런 그를 보면서 치건은 망설이다 못해 자기만의 생존 방식을 하나 둘 알려준다. 그 역시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가정폭력 피해자였으므로. 폭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과 그럴 수 없는 일. 더 나아가 손가락 하나, 손톱 한쪽으로 책임지는 방법에 대해서도. 그렇게 처한 상황도 성격도 다르지만 서로의 상처를 알아본 두 사람은 형과 동생, 가족이 된다. 이 과정은 마치 한 편의 멜로 같다.
연규와 치건의 관계는 뻔해 보이기도 한다. 절망에 빠진 주인공에게 의지할 대상이 홀연히 나타난다. 주인공은 그를 닮고 그와 함께 하기 위해서 자기에게 맞지 않는 길을 걷는다. 여느 갱스터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관계다. <신세계> 속 이자성과 정청,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속 재호와 현수 관계를 자연히 떠올릴 순간도 스쳐 지나간다.
'화란' 속에 '화란'이 있는가
하지만 연규와 치건 사이에는 낚시찌에 걸린 물고기 마냥 애매한 대목이 있다. 그들의 관계가 특별한 이유다. 서로에게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같은 존재이기 때문. 치건은 연규가 말하지 않아도 그의 아픔을 알아본다. 그래서 그가 자기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절망에 빠진 그를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
연규도 치건의 삶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물론 폭력의 달콤함에 잠시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큰 형님 '중범'(김종수)의 살인 지시에 불복할 만큼의 사리 분별은 한다. 이처럼 원치 않지만 자기 모습을 발견한 형과 잘못을 알지만 형이 되고 싶은 동생. 영화는 쌍방이 빚어내는 애매한 긴장감을 극한으로 몰고 가서 터뜨린다. <화란>의 멜로가 다른 갱스터 영화 속 브로맨스와 차별화되는 이유다.
그 중심에는 제목이 있다. '화란'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재앙과 난리를 뜻하는 말이자 네덜란드의 한자어다. 이때 전자는 현실의 유의어다. 연규와 치건이 사는 세상은 그 자체로 지옥이니까. 후자는 희망의 유의어다.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를 데리고 네덜란드로 이민을 가는 게 연규의 꿈이니까.
두 형제 사이의 긴장감은 두 번째 화란의 유무에서 비롯된다. 연규에게 화란은 두 가지 의미이지만, 치건에게 화란의 의미는 하나뿐이다. 연규의 금속 보관함이 비상금과 네덜란드 여행 가이드북으로 꽉 차 있는 반면, 치건의 나무 보관함은 끝내 비어있듯이. 이 차이가 둘의 말로를 갈라놓는다. 동생은 화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울 의지가 있지만, 형에게는 그럴 화란이 없기 때문. 이는 영어 제목이 <Hopeless(희망이 없는)>인 이유다.
한국 영화의 클리셰를 거부하다
이러한 멜로드라마는 <화란>이 한국 조폭 영화의 틀을 탈피하는 원동력이 된다. 사실 배경은 유사하다. 한국 조폭 영화는 주로 재개발 지역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비열한 거리>, <강남 1970>, 심지어 1달 전쯤 개봉한 <보호자>까지도. 조폭은 철거민을 밀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이는 고도의 압축 성장을 이뤄낸 한국 사회의 집단적 욕망을 가장 잘 반영하는 설정이라 할 수 있다.
조폭 영화 속 신축 부동산은 중산층으로 발돋움하려는 평범한 서민의 욕망을 보여준다. 이는 장르는 달라도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궤를 같이 하는 지점이다. 조폭 또한 부동산 재개발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조직 내외적으로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킬 수 있다. 그렇기에 한국 조폭 영화는 정치인, 기업인, 조폭의 삼각관계를 주로 반복한다. 조폭인지 정치인인지 분간하는 게 의미 없는 <아수라> 속 박성배 시장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 삼각관계에는 올드하다는 이미지와 클리세 범벅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인 감독은 과감한 시도를 한다. 정치인, 기업인, 조폭이 아닌 조폭의 말단, 막내에게 집중한다. 치건의 큰 형님은 재개발 사업 이권을 두고 국회의원 선거를 주무르려 한다. 그러나 연규에게 이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윗사람이 어떤 이익을 두고 싸우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조폭 영화에 담긴 새 세대의 현실
대신 영화는 새로운 세대의 고민에 집중한다. 치건은 연규에게 묻는다. "언제 여기 왔어?" 연규가 답한다. "태어날 때부터요." 이는 단순히 명완시에 언제 왔는지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언제부터 폭력의 굴레에 빠졌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린 연규 입장에서는 답이 어렵지 않은 질문이다.
이 문답의 연장선상에서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성년을 앞둔 고등학생이 이미 존재한 카르텔, 폭력의 굴레를 어떻게 버텨내는지, 책임 지고 빠져나갈 방법은 있는지. 이미 자리 잡힌 사회 구조, 상승할 희망조차 찾기 힘든 시스템 안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한다. 이는 <화란>의 분위기가 여느 영화보다도 암울하고 처절한 이유다.
그렇다고 <화란>은 그저 냉혹한 현실로 이야기를 끝맺지 않는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한 가닥 응원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 치건과 헤어진 후 집에 돌아온 연규는 새아빠에게 맞아 죽은 엄마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는 새아빠에게 복수하는 대신 하얀과 함께 집을 나온다. 다른 도시로 떠난다. 자기 손으로 폭력을 거부하고, 굴레를 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화란>은 고여 버린 장르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 데 성공한다.
물론 마지막 장면이 마냥 희망적이지는 않다. 과연 연규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를 완전히 떠날 수 있을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두 주인공의 표정도 홀가분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그들이 새 출발을 알린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화란>은 회의감을 떨치지는 못해도, 이제 막 성년이 될 두 주인공에게 마지막 응원은 보내려고 노력한다.
좋고 싫은 이유가 같다
분명히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다. 15세 관람가치고 잔인한 장면이 꽤 많다. 완성도 문제도 있다. 여기저기 생략된 지점이 많다 보니 뒤로 갈수록 영화가 버거워한다. 특히 조직 상부에서의 의사결정과 음모, 하부 조직원과의 감정선과 흐름이 매끄럽지 않다. 하얀처럼 점점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캐릭터도 생긴다. 정교한 스토리텔링 대신 배우들의 연기력과 분위기에 기대기 때문. 서사의 빈 공간을 유추해야 하는 불친절한 작품인 셈이다.
다만 역설적으로 좋아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인 영화이기도 하다. 반지하방의 습기처럼 답답하고, 운동화에 달라붙은 껌처럼 찐득한 분위기는 근래 한국 영화에서 맛보기 어려운 개성이다. 도를 넘는 듯한 잔혹함은 그 분위기와 현실을 강조한다. 그 덕분에 송중기의 새로운 모습, 홍사빈과 김형서라는 신인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더 나아가 웃음을 단 한순간도 허용하지 않는 뚝심까지 고려하면 <화란>은 근래 한국 영화 중, 특히 갱스터(조폭) 영화 중 보기 드문 수작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들짐승처럼 맹목적이고 폭력적이며 진득한 갱스터 멜로.
-
- 사랑이란 명목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더 웨일>
오스카 시상식을 앞두고 남우주연상 유력후보로 거론되는 브렌든 프레이저의 <더 웨일>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연출은 공간이용과 동선이다. 여기서 눈에 띈다는 말은 연극이라 하면 자연스러운데 영화라고 보니 눈에 익숙하지 않았던 연출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알았지만 <더 웨일>은 동명의 연극을 기반으로 제작한 영화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어떻게 보여졌고,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었는지 얘기해보려 한다. 영화는 주 무대를 찰리의 집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 외라 하면 피자를 받으러 가는 현관 또는 현관에서 주차장을 바라보는 시선 정도가 될 수 있겠다. 이는 연극에서는 공간적 제약이었을지라도 영화에서는 앞서 말했듯 집에서 밖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통제된 삶을 살고 있는 찰리의 답답함 또는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적합한 연출처럼 보여진다. 또한 이로 인해 찰리 외의 인물들은 모두 집 현관문을 왔다 갔다 하며 ‘찰리의 공간’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연출이 된다. 덕분에 인물들은 더욱 찰리의 공간에서 함께 오고 가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다른 연극적 연출을 말하자면 인물의 동선이다. 거실과 (명확히 분리되지 않은) 주방을 오고 갈 때, 특히 찰리와 상대 인물이 움직이며 대화를 할 때, 기존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인물이 한 프레임의 중심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프레임의 반대를 향해 나간다던지 두 인물이 겹쳐지기보다는 겹쳐지지 않도록 보이는 동선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 또한 찰리와, 찰리의 어긋나는 사랑의 방향을 말한다면 이런 익숙하지 않은 동선은 찰리와 인물 간의 불편함을 보여주기에 적합했다고 볼 수 있다.
브렌든 프레이저가 오스카뿐만 아니라 다수의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으로 수상 또는 후보로 지명된 데에는 브렌든의 연기력뿐만 아니라 영화계에서의 그의 삶 또한 조금의 영향도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밖의 일은 차치하고, <더 웨일>에서 보여준 브렌든 프레이저의 연기는 ‘찰리'를 실존하는 인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옆의 눈물을 흘리는 관객 사이에서 나는 찰리에게 동의할 수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찰리는 계속해서 한 방향의 사랑을 한다. 사랑이 언제나 양방향은 아니다. 하지만 찰리의 경우, 문제는 한쪽 때문에 다른 한쪽이 상처받는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찰리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내와 딸 엘리를 떠난다. 영화에서의 현재 또한 찰리는 자신의 사랑인 엘리를 위해 자신을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불륜 또한 다른 방식이지만 결국 자신의 사랑을 위해 자신을 향한 사랑을 신경 쓰지 않고 상처 주는 것이라고 해석하겠다. 전에 한 가수가 모든 사람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랑을 누구라도 사랑을 받거나 사랑을 하는 입장에 놓여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관객은 찰리의 입장을 이해할까? 찰리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의 입장에 이입할까? 나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떠나보내며 그 사람이 나를 떠난 만큼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인 적 있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그 사람이 아프거나 불행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그만큼 더 미워졌던 경험이 있었기에 찰리보다는 엘리와 리즈에게 더 이입이 되었다. 그렇기에 찰리가 새에게 과일을 주기 위해 창가에 놓아둔 접시가 깨진 것을 보며 내가 엘리였다면 ‘저 새에게 줄 저 작은 사랑을 나에게 조금도 줄 수는 없었나'하며 접시를 깼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찰리는 좋은 에세이를 쓰는 방법에 대해 얘기한다. 시작장면에서는 카메라를 끝 채 영상수업에서 학생들을 향해 계속 다듬을수록 좋은 글이 된다고 말하지만 영화가 끝나갈 때쯤에는 졸업을 위한 에세이를 써야 하는 엘리를 향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쓰는 것이 자신의 진짜 에세이'라고 말한다. 삶을 글로 풀어낸 것이 에세이라면 자신의 삶을 잘 사는 방법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라고 에세이에 비유해 넌지시 말하는 듯하다. 결국 찰리는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의 삶을 응원할 수는 없었다. 결론적으로는 응원하고 싶지 않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영화였다. ‘응원하고 싶지 않다’는 말은, 그 인물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공감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는 말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는 말은 브렌든 프레이저의 연기 덕에 분명 찰리는 존재하는 인물로 느껴졌다는 말이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 이별하지 못한 첫사랑과 다시 헤어지기 위해 떠난 여행
여행길에 나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여행을 떠난 남자 지미(허광한)다. 혼자 집에 돌아온 지미. 가족들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지미는 가족들에게 "혼자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라고 말한다. 이제 어엿 중년이 된 지미. 쓸쓸한 눈빛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있다. 우두커니 서서 길을 바라보니 왠지 모르게 놓고 온 것이 있는 듯하다. 생각에 잠기는 지미. 지난 기억들이 서서히 생각난다. 애써 떠오르는 옛 생각을 뒤로하고 그냥 걷는다. 어느새 도착한 지하철. 지하철에 타려니 예전 생각이 난다. 그 애도 그냥 여행 삼아 여기저기를 떠돈다고 했었지. 10대 때 만났던 아미(키요하라 카야). 지미와 아미는 18년 전 대만의 노래방에 처음 만나 운명 같은 만남을 시작한다.
우연처럼 만나
이 영화에서 우연은 두 인물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우선 첫째. 아미의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우연이다. 아미는 여행 중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왜? 여행하며 살고 싶으니까. 이유가 간단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대만이라는 나라를 고른 것도, 지미를 만나게 된 것도 전부 다 우연처럼 느껴진다. 더 나아가 아미 입장에서 대만이란 나라를 굳이 처음으로 고를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대만으로 건너가도 세계일주라는 목적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목적에 관한 부분을 영화가 어떻게 묘사하는지가 중요하다. 세계일주라는 목적이 중요하지 않다. 그 세계일주 동안 우연히 '어떤 것'을 통해 '무엇을'느끼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느끼는 것들을 아미가 '특정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밑줄 쳐져 있다. 이 매개체('특정 방식')의 속성을 생각해 보면 영화가 기획의도를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이 매개체는 받아들이고 느낀 것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 굉장히 중요한데, 우연이라는 특정한 상황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를 연출로 보여준 촘촘함이 돋보였다.
다른 캐릭터 지미가 받아들이는 우연 역시 중요하다. 이 영화에서 지미가 여행하며 만나는 사람들은 어느 관점에서 보면 좀 이상하다. 소위 말하는 개연성의 측면에서 '이게 말이 되나?' 싶다. 지미가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역시 지미의 우연은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동한다. 왜? 그것은 글쓴이가 바로 윗문단에 쓴 내용 때문이다. 지미의 우연은 지미의 어떤 것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그 어떤 것은 아미의 '무엇'과 관련이 있다. 단지 이 영화가 아미의 우연을 돌아보는 지미의 이야기로 구성된 것이 아니다. 당연히 지미의 최종 목적지가 아미와 관련한 무언가라는 것이 핵심이라서가 아니다. 지미가 그 여행을 통해서 하나하나 얻었던 것들이 아미가 대만에 있으면서 느낀 감정들과, 또 여주인공이 표현하는 무언가와 등치 되는 지점이 있다. 18년의 시간이 엇갈렸지만 남, 녀가 여행을 떠나 공통적으로 느낀 것들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이게 로맨스 영화의 낭만적인 성격을 강화하는 역할도 하지만 이야기의 주제 측면에서도 좋은 선택이었다.
지우고 싶지 않은 흔적
이 영화가 기존에 오마주한 작품이 있다는 건 양날의 검처럼 느껴진다. 우선 변주하고 있는 것. 영화의 내실이다. 이 영화가 인물들에게 남은 사랑의 흔적을 보여주기 위해 전면에 내세우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굉장히 중요하다. 과거의 첫사랑과 현재의 지미와의 관계는 시차가 18년이나 나고, 그 사이에 어떤 인생은 바뀌고도 남는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사랑의 힘을 생각해 보면 이 결과는 당연하다. 다들 첫사랑을 만나고 나서 인생이 바뀐 기억이 하나쯤은 있잖아? 영화는 지미의 여행으로 둘의 사랑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 사랑이 두 사람에게 어떤 영향이 갔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사랑이 가진 보편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속성을 영화의 특이점을 잡은 영리한 선택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조가 비슷하다는 건 초반만 봐도 후반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아쉽게 느껴진다. 어떤 점에서는 변주를 더 뒀어도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편지 중요하고. 시차 중요하고. 후반부 중요하고. 이런 것들이 원작을 아는 사람이라면 너무 예상이 되는 플롯이다(심지어 본작에 제목이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예술가가 어떤 영화를 오마주해서 무엇을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소재까지 겹치게 보여줄 필요 있을까? 이는 후반부 아미가 보여주는 장면과도 이어지는 단점이다. 이 장면들은 원작과의 관계를 위해 의도적으로 등장한 것처럼 보인다. 이 장면이 오마주 원작과 공통점을 만들어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인물이 가진 내면을 이렇게까지 보여주지 않고, 그냥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었다면 이 영화만의 인장이 더 선명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인물이 어떤 사정이었는지는 오리무중 하더라도, 더 지미의 입장을 부각함으로써 이야기의 날카로움을 깎는 것이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단점은 또 다른 영화와의 오마주다. 어떤 영화의 오마주? 한국 기준으로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다. 이 영화와 본 작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어느 게 모체인지 너무 딱 알 것 같았다. 뭐 비단 나쁜 것만은 아니다. 박찬욱 감독도, 홍상수 감독도, 이창동 감독도 이 영화와 비슷한 입장에 놓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감독의 색채가 너무 최근이라서 겹쳐 보인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후반부에 힘을 줬다. 당연하다. 아니면 이 영화를 만들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 장면에서 쾌감 내지는 감동이 커야 할 텐데 그냥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가 생각나서 김이 샌다. 왜? 작년 개봉작인 영화와 공통점을 찾으면 쉽다. 이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인생의 목적을 잃은 남자다. 애써 쌓아 온 직업인으로서의 커리어가 위기에 처했고, 첫사랑에 실패했다는 아픔이 인물을 관통하고 있다. 반대측면에서 여자 주인공은 사연이 후반부에 드러난다. 그 사연을 뒤로하고 여주인공이 사랑을 만난다는 설정이 있다. 물론 작년 개봉작과 지금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할 때 번작이 더 좋은 영화다. 인물의 당위성이라는 측면에서 전작보다 성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성실함에 기대어 줄거리를 거의 똑같이 가져가는 이 영화가 게으르다고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전작과의 차이점? 90년대에 개봉했던 레전드 멜로. 90년대 그 멜로와의 차이점? 작년에 개봉했던 멜로 영화. 감독이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특정 장르의 클리셰를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거 어디 허씨요
허광한 배우는 다양한 얼굴을 담았다는 점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글쓴이는 허광한 배우가 대만의 송중기 배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 사람이 미소년 타입이라서? 물론 비주얼적으로도 공통점이 있다. 송중기 배우가 최근에 나온 <화란>은 특유의 소년스러움이 이야기의 핵심으로 작동한다. 85년생의 중년이지만 소년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허광한 배우 역시 마찬가지로 소년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이 영화에서의 허광한 배우는 10대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대표적으로 과거의 지미가 첫 등장하는 장면에서 “엄마 왜 저 안 깨웠어요?”라고 말한다. 이 장면부터 시작해 아미를 만나기 전의 모든 상황은 10대의 모습 그 자체였다. 외모만 10대인 것이 아니라 행동도 10대다. 이걸 10대와 30대간의 거리감을 멀리 떨어트려서 묘사했기 때문에 생생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10대의 행동거지를 생생하게 포착한 허광한 배우의 노력도 대단했다.
허광한 배우는 시간을 18년을 빨리 감기해 청년이 된 지미의 모습도 능숙하게 묘사한다. 지미가 지하철에 있는 모든 장면은 정말 굉장하다. 촬영부터 이 인물이 고립됐다는 걸 보여준다. 그런데 촬영에 인물이 호응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생동감이 넘치는 10대의 지미와는 다르게 30대의 지미는 사람을 대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듯하다. 허광한 배우는 지미의 닳고 닳은 내면을 포착해서 이 감정을 중심으로 인물을 표현한다. 10대의 지미를 생동감으로 보여준 것과 대조적으로 인물의 특성을 간결하지만 깊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별하기 싫다면
가끔 그런 이야기들을 만난다. 이건 진부하다. 하지만 분명 내 마음 속에 다가오는게 있다. 이 영화는 분명 그런 영화다. 익숙한 작법에 편승한 영화. 그리고 그 작법을 영화 안에서 대놓고 티 내는 영화.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지미가 떠난 여행은 각자 이별하지 못했던 사랑과 몇 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충분하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그대로, 우리 일상의 많은 분들은 이 세상과 빛을 내는 것 같다. 그 빛 한가운데에 우리가 있는 것이고.
-
-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갖추지 못한 것들
6★/10★
이 이야기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다. 퓨리오사는 핵전쟁이 야기한 문명 붕괴 후 황무지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시타델의 임모탄에게서 탈출한다. 임모탄에게 건강한 아이를 낳아주는 것만이 중요한 그의 아내들도 함께한다. 그 과정에서 떠돌이 맥스를 만나 녹색의 어머니 땅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녀 기억 속 녹색의 땅은 사라지고 없다. 사막에서 유일하게 풍요롭던 퓨리오사의 고향은 다른 모든 곳처럼 황폐해졌다. 또 다른 녹색 땅을 찾아 떠나는 퓨리오사와 임모탄의 아내들. 그때 맥스가 말한다. 당신들이 가야 할 곳은 시타델에서 멀리 떨어진 환상 속의 녹색 땅이 아니라 바로 시타델의 심장부라고. 퓨리오사는 운전대의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초남성 계급사회 시타델의 수장 임모탄을 죽이고 시타델을 차지한다. 여기까지가 체제 밖의 혁명과 변혁이 아닌, 모순의 핵심으로부터 시작하는 혁명과 변혁의 이야기*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이야기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이야기의 시곗바늘을 되돌린다. 퓨리오사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녀가 어쩌다 녹색의 땅에서 납치되어 임모탄 아래서 총사령관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그녀에게 녹색의 땅의 의미는 무엇인지, 왜 그녀의 한쪽 팔은 살‧뼈‧피가 아니라 기계 장치인지, 무엇이 그녀를 혁명과 변혁의 길로 이끌었는지, 왜 혼자 시타델을 탈출하지 않고 임모탄의 아내들과 함께했는지 등의 물음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어린 시절, 황무지의 약탈자 디멘투스 일당에게 납치된 퓨리오사는 자신을 구하러 온 어머니가 녹색의 땅 위치를 추궁당하다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퓨리오사의 마음속에 분노와 증오가 깊게 새겨진다. 이제 그녀에게 중요한 건 생존해 복수하는 일이다. 뜻밖에도 기회는 여성, 노인 등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모든 사람을 악랄하게 착취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임모탄에게서 온다. 임모탄의 또 다른 요새 가스타운을 점령한 디멘투스는 임모탄과의 협상장에 퓨리오사를 데리고 가는데, 그녀를 발견한 임모탄이 협상 성사의 대가로 퓨리오사를 자신의 아내로 삼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퓨리오사는 초남성 계급사회의 동맹을 가능케 하는 상징적인 재화, 방사능 오염으로 희귀해진 유전적으로 건강한 아이를 낳아줄 가치 있는 상품으로 교환‧증여되며 두 남성의 일시적 동맹을 성사시킨다.
그러나 퓨리오사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아주는 도구라는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임모탄의 아내들을 가둬둔 방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머리를 깎고 남성 노동자 행세를 하며 임모탄 수하에서 복수를 위해 자신이 자원화할 수 있는 것들을 빠르게 습득한다.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이 맞물려 차근히 역량을 쌓아나가던 중 현직 총사령관 잭의 눈에 들어 그와 가까워지고, 그의 도움으로 온갖 고난 끝에 마침내 복수에 성공한다. 그러나 디멘투스에 대한 복수는 헛헛한 공허함만을 준다. 퓨리오사는 자기 마음을 다른 동력으로 채워야 함을 깨닫는다. 그렇게 그는 임모탄의 아내들과 함께 시타델을 탈출한다. 즉 〈퓨리오사〉는 〈매드맥스〉에서 보여준 퓨리오사의 선택과 개성이 우연이 아닌 필연적 운명이었음을 알려주기 위한 또 하나의 매혹적인 이야기다.
〈퓨리오사〉가 웬만한 범작은 너끈히 뛰어넘는 수작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굳이 전작을 보지 않았더라도 쉬이 즐길 수 있고, 이번에도 노장이자 거장인 조지 밀러의 펄펄 끓는 열정과 그가 선사하는 영화적 황홀경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절대적 기준은 〈매드맥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기준을 놓고 본다면, 〈퓨리오사〉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긴다.
먼저 서사다. 전작의 핵심은 변혁과 혁명으로 나아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우정‧사랑‧연대였다. 한편 이번 영화의 핵심은 성장이다. 퓨리오사가 개인적 복수심을 넘어 더 큰 목적으로 나아가는 과정 말이다. 그런데 퓨리오사가 육체적‧정신적으로 강해지는 과정의 연결고리가 그리 튼튼하지가 않다. 단계적으로 차근히 진행된다기보다는 점프하듯 보여준다는 느낌이랄까? 퓨리오사가 강해지는 과정을 체감하지 못한 상태에서 ‘언제 저렇게 강해졌지?’라는 의문이 솟는 장면이 반복된다.
‘미투 운동(혁명)과 그 이후의 페미니스트로의 집단적 정체화(성장)’라는 사회 조류가 각각의 흐름을 대변하는 두 영화의 개봉 시기와 기묘하게 맞물린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이번 영화에 전작처럼 피를 끓게 만드는 요소가 부재한 이유다. 혁명 서사는 현실에 불만인 사람 모두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지만, 성장 서사는 특정 인물(혹은 누군가의 삶)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에 제한된 소구력을 갖는다. 이야기의 전제와 완성도 두 측면 모두에서 〈퓨리오사〉는 전작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있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전작보다 현저히 적다는 점도 아쉽다. 메인 빌런이라 할 수 있을 디멘투스는 절대 빌런 임모탄을 마주한 순간 포스를 잃고 한없이 가벼워진다. 전작에서 극의 핵심 동력이었던 임모탄의 아내들과 그녀 중 한 명을 사랑하는 워보이, 주름진 여전사 같은 눈길을 끄는 캐릭터도 없다. 가장 큰 문제는 퓨리오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베푸는 임모탄의 총사령관 잭의 역할이다. 도대체 그는 왜 위험을 무릅쓰고 퓨리오사를 도울까? 단지 퓨리오사의 전투 능력이 출중해서? 혹은 (달랑 대사 한 줄로 전달되듯) 그의 부모님이 혼란한 세상에서도 정의를 추구한 군인이었기 때문에? 영화는 전작에서 맥스가 담당한 여성 혁명의 남성 조력자 역할을 잭에게 부여하려 하지만 잭 캐릭터의 입체성과 주변 인물과의 관계성 모두에서 이 시도는 실패한다(이는 뒷모습으로만 짧게 등장하는 맥스로 추정되는 남자의 존재감이 커다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만의 압도적인 사막 드라이빙 액션신도 이 모든 것이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명장면은 영화의 다론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에만 가능하다.
이쯤에서 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의 절대적 근거가 전작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전작의 아우라와 감동을 기대한다면 어쩌면 실망은 ‘당연한’ 일이다. 〈퓨리오사〉가 웬만한 영화보다는 훨씬 재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음 작품을 고대할 정도로 말이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 조지 밀러가 시타델 혁명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세 번째 영화로 건강히 돌아오길 염원한다.
*조지 밀러 감독은 페미니스트 철학자에게 영화 전반에 대한 심도 있는 자문을 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
- 2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주말은 건강히 잘 보내셨나요?
어느덧 2월의 마지막날인 월요일이네요.
곧 맞이하는 3월도 행복하게 보내셨으면 합니다.
오늘은
2월의 마지막 주 주말 박스오피스를 알아보는 시간이며,
씨네픽과 함께 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콘텐츠'도 같이 알아보도록 할게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
.
.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위. <언차티드>(NEW)
▶<언차티드>가 2월 3주차에 이어 이번 주 역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 (2월 25일~27일) 관객 수 12만 5848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58만 7769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3월 1일 개봉하는 할리우드 대작 <더 배트맨>으로 박스오피스 순위가 변동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보는데요.
과연 이번 주 박스오피스는 어떻게 될지 기대가 되는 대목입니다.
2위. <극장판 주술회전0>(-)
▶이번 주 주말 박스오피스 2위는 역시 지난 주에 이어 <극장판 주술회전0>이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 (25일~27일) 주말 관객 수 6만 276명을 동원했고, 총 누적 관객 수는 29만 1476명입니다.
애니메이션 <극장판 주술회전0>의 개봉 이후 초반 흥행이 돋보였던만큼 <언차티드>와 엎치락뒤치락하며 박스오피스 순위를 1위 자리를 놓고 승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3위. <안테벨룸>(NEW)
▶주말 박스오피스 3위는 <겟아웃>, <어스>제작진의 미스터리/호러물 <안테벨룸>이 차지했습니다.
같은 기간(25일~27일)동안 주말 관객 수 3만 2102명을 동원했으며, 충 누적 관객 수는 5만 5999명입니다.
영화 <안테벨룸>은 성공한 작가가 무언가에 의해 선택받은 뒤 누구의 도움도 바랄 수 없는 끔찍한 세계에 초대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충격 스릴러입니다. 믿고 보는 제작사인 A24와 <겟아웃>과 <어스>제작진의 조합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작품인데요.
<안테벨룸>은 제작진의 전작인 <어스>보다 높은 평가를 얻고 있는 것은 물론 <겟 아웃>의 아성까지 넘보고 있어, 전작의 흥행 계보를 이을 영화의 탄생을 실감하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89회 예측 이벤트는 2월 4주 차 박스오피스(순위) 예측입니다. 한 주동안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는데요.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한 주의 박스오피스 순위의 결과는 어땠는지 다같이 확인해보도록 할게요!
먼저 제89회 씨네픽 주말 박스오피스 예측 이벤트'에 한 주동안 참여한 씨네픽 유저들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 위의 표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한 주동안 씨네픽 참가자분들은 박스오피스 순위를 예측해주셨습니다.
씨네픽 참가자분들의 예측은 박스오피스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높은 확률로 맟혀주신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이번 주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이벤트에 참가하여 모든 순위(1위, 2위, 3위)를 맞힌 분들은 모두 35명으로 상금을 맞히신 모든 분들에게 3,928P의 상금이 주어질 예정입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씨네픽은 다음 주에 더 재밌고 유익한 제 90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4위.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NEW)
▶주말 박스오피스 4위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입니다.
주말동안 주말 관객 수 2만 6100명을 기록, 총 누적 관객 수는 4만 8457명을 기록했습니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출세를 꿈꾸는 모범병사 '무광'(연우진)이 사단장의 젊은 아내 '수련'(지안)과의 만남으로 인해 넘어서는 안 될 신분의 벽과 빠져보고 싶은 위험한 유혹 사이에서 갈등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요.
개봉 전 부터 29금의 파격적인 연기, 배우 연우진의 강렬한 연기 변신과 배우들의 뜨거운 열연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였던만큼 박스오피스 4위를 차지했습니다.
5위. <해적:도깨비 깃발>(▼2)
▶ 주말 박스오피스 5위는 <해적: 도깨비 깃발>입니다.
주말동안 1만 9481여명의 관객 수, 총 누적 관객 수는 131만 4785명을 기록했습니다.
설 연휴 대작이었던 강하늘, 한효주 주연의 <해적: 도깨비 깃발>은 누적 관객 수 130만명을 돌파하면서 서서히 박스오피스 순위가 점점 하락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더 배트맨>을 비롯한 영화들이 개봉 예정에 있는만큼 총 누적 관객 수는 130만명대에서 끝나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 북미 박스오피스 1위 또한 지난 주에 이어 <언차티드>가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25일~27일) 북미기준 주말 매출액 $23,250,000 (한화 약 280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으며 이로써 지금까지 총 누적 매출액은 $83,385,478 (한화 약 1,006억)을 기록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지난 주의 북미박스오피스 순위와 동일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개봉한 지 2달이 훌쩍 지난 지금도 박스오피스 3위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 무척이나 놀랍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2월 25일 ~ 2022년 2월 27일)
1. <언차티드> 2325만 달러 (누적 8338만 달러)
2. <도그> 1012만 달러 (누적 3089만 달러)
3.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575만 달러 (누적 7억 7988만 달러)
4. <나일 강의 죽음> 450만 달러 (누적 3275만 달러)
5. <잭에스 포에버> 317만 달러 (누적 5206만 달러)
.
.
.
씨네픽의 2월 넷째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남은 마지막 2월 마지막 하루도 안전하고 행복하게 마무리 하시고,
씨네픽은
3월의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씨네랩 에디터 Hezis
-
- 안타까운 작품에서 빛나버린 배우들의 연기력
어떠한 정보도 없이 조승우가 나오는구나! 사극이구나! 라는 점만 알고 왔던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이 작품이 명성황후, 민비에 대한 이야기인 줄 꿈에도 모르고 봤다. 극이 시작하면서 민자영이 어쩌고 이래서 민,,,자영,,? 명성황후? 하고 뒤늦게 깨달았고, 역사왜곡은 이해하더라도 과연 그 입장 차이를 잘 풀어낼 수 있을지 불안해 하며 본 작품이었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시놉시스
세상에 존재를 알리지 않은 채 자객으로 살아가던 무명은 어느 날,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피비린내에 찌든 자신과 너무나 다른 여인, 자영을 만나게 된 것. 하지만 그녀는 곧 왕후가 될 몸으로, 며칠 후 고종과 자영의 혼례가 치러진다. 무명은 왕이 아닌 하늘 아래 누구도 그녀를 가질 수 없다면, 자영을 죽음까지 지켜주겠다고 다짐하고, 입궁 시험에 통과해 그녀의 호위무사가 되어 주변을 맴돈다.
한편, 차가운 궁궐 생활과 시아버지와의 정치적 견해 차이로 하루도 안심할 수 없는 나날들을 보내던 자영은 무명의 칼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일본의 외압과 그로부터 조선을 지키기 위한 자영의 외교가 충돌하면서 그녀를 향한 무명의 사랑 또한 광풍의 역사 속으로 휩쓸리게 된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왜곡이야 그렇다치고,, 그럼 개연성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명성황후, 민비에 대한 재현은 언제나 역사왜곡 논란이 거듭된다. 왜냐면 그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개혁 개방 정책을 한 왕후를 좋게 보기도 하지만 그 방향은 옳았을지 모르지만 그 방법은 옳지 못했기에 나쁘게 평가를 하기도 한다. 더불어 을미사변으로 시해됐을 때 목격자들 마저 모조리 몰살당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 대해서 상세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그 소재는 미디어 재현으로서 굉장히 적합한 소재이면서도 역사 왜곡이 너무나도 쉽게 될 수밖에 없는 소재이기도 하다.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이처럼 논란이 많은 명성황후, 민비를 소재로 택햇기 때문에 역사 왜곡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왜곡을 한다 하더라도 그 왜곡된 내용 안에서는 개연성이라도 갖춰야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보는 내내 도대체 저 둘은 왜 사랑에 빠진 것인지 알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 봤는데...? 수애 정도의 미모면 물론 한 눈에 반할 수도 있겠지만 저렇게까지 목숨바쳐 사랑할 일인가? 저렇게까지 식음을 전폐할 수 있는 것인가? 사랑이라는 큰 주제 자체에서 이미 개연성을 잃어버려서 영화를 보는 내내 큰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불필요한 장면들이 너무 많았던 작품
주제 자체로도 개연성이 없는데 장면장면도 개연성이 없었다. 불필요한 장면들이 너무 많이 나왔다. 무명이 자객이고 무술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굳이 저렇게 티나는 CG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휘영청 달빛이 쏟아지는 바다 위 쪽배에서 칼로 싸우는데,,, 무슨 만화영화를 보는 줄 알았다. 물 마시며 보다가 사례 들릴 뻔 했다. 그리고 연희장에서 뜻하지 않게 펼쳐진 대련에서 갑자기 빙판 CG라니.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격동적이고 화려한 무술을 보여주고 싶다면 저런 CG 말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게 훨씬 더 임펙트가 있었을텐데 안타까웠다.
또한, 무명을 의식하기 시작한 고종이 무명의 자존심을 깎아 내리기 위해 일부러 무명을 침실밖에서 호위를 하게 하고 자영과 관계를 갖는다. 굳이,,? 이런 질투유발작전을 펼칠 이유가 있었을까? 이렇게 정말 쓸데없는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잇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안타까운 작품에서 빛나버린 배우들의 연기력
이렇게 안타까운 작품에서 더 안타까웠던 점은 저렇게 평면적인 캐릭터들을 배우들이 너무 연기를 잘 소화해냈다. 진짜 너무 안타까웠다. 어떻게 조승우, 수애를 데리고 와서 이런 작품에 출연시킬 수 있었을까? 솔직히 조승우, 사극, 액션, 멜로 이 조합을 보고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보는 내내 손발이 오글거리고 대본을 보고 출연을 결심한 것이 맞을까? 어디 누구한테 협박당해서 출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작품은 정말 안타까웠지만 그 와중에 배우들은 무명과 자영의 캐릭터에 온전히 녹아들어서 그들은 빛이 나고 있었다. 하지만 빛이 난다고 해도 이 영화는 추천할 수가 없다. 킬링타임용으로도 아까운 작품이니 말이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조승우 필모 깨기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보지 않았을 작품이었을 텐데,, 정말 안타깝고 씁쓸한 작품이었다.
-
- 전편 보다 조금 나아진 공조, 멋진 FBI요원을 더하다
?Rabbitgumi 입니다!
공조 2편이 개봉을 했어요.
현빈과 유해진의 합이 잘 맞았던 영화죠.
이번에는 다니엘 헤니가 미국 요원으로 등장합니다.
윤아가 던지는 유머도 꽤 타율이 높은 편이죠.
유일하게 명절 직전 개봉한 영화 공조2 인터내셔날
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에사는 일반적인 영화 리뷰 보다는 보면서 떠올렸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정리하여 전달 드려요.
한 달 2,000원의 금액으로 매주 3개씩의 글을 받아보실 수 있어요. :)
지금 구독하시면 첫 구독 3달동안 매달 1,000원으로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는 아래 링크에서! :)
https://rabbitgumi.stibee.com/
브런치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
-
- 영화 <엄마의 왕국> 메인 예고편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 기억을 찾아가는 아들👨 평화로운 왕국이 붕괴되었다! [엄마의 왕국] 7월 24일 개봉 확정 & 미스터리 가득한 메인 예고편 공개
-
-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2차 예고편
관능적으로 녹여낸 신분 초월 로맨스! 2022년, 웰메이드 파격 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