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몽실2021-12-22 12:39:29
약점이 아니야. 사랑이야.
영화 시사회 리뷰 <노웨어 스페셜>
<노웨어 스페셜>
개봉 2021.12.29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96분
감독 우베르토 파졸리니
출연 제임스 노튼, 다니엘 라몬트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하였습니다.
마지막이 아닌, 시작을 선물하는 법
창문 청소부인 존(제임스 노튼)은 시한부이다. 존은 4살짜리 자기 아들인 마이클(다니엘 라몬트)이 혼자 남지 않게 가정위탁을 하고자 한다. 시한부 아빠와 홀로 남겨질 아들의 이야기. 줄거리만 보고는 영화를 보는 동안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아 휴지를 준비했었다.
하지만 영화는 ‘너네 울어. 울어야 해’ 하지 않았다. 덤덤히 죽음과 남은 빈자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화 속에서 그 누구도 죽음이 두려워 오열하며 울지 않았고 제발 죽지 말라고 사정하는 장면도 없었다. 영화는 이미 수많은 울분과 체념을 반복했을 존의 초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는 고조되는 감정 없이 차분히 흘러간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이별을 준비하는 두 부자의 모습은 몇 번이나 울컥하게 했다.
마이클은 34살 아빠의 생일에 35번째 초를 건넨다. 컵에 주스를 따르지도 못할 만큼 쇠약해진 아빠에게 따뜻한 담요를 덮어주기도 한다. 입양이 뭔지, 죽음이 뭔지 모르지만 어쩌면 마이클은 다 직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내뱉는 짧은 말들이 다 뭉클했다. 특히 입양을 신청한 여자에게 “아줌마는 언제 죽어요?” 묻던 장면이 그랬다.
죽음은 한순간이지만 남은 빈자리는 평생 채워지지 않는다. 존이 어린 시절, 엄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 울었던 때를 고백했다. 그는 그게 자신의 약점이라 말했다. 자신처럼 가정위탁 가정에서 자라게 될 마이클은 죽음이 뭔지 모르고, 자신도 기억하지 못한 채 그저 다정한 가정에서 자라길 바란다. 하지만 고백을 들은 동네 할머니는 그건 약점이 아니라 사랑이라 말한다. 엄마를 향한 사랑.
남편을 떠나보낸 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얼마 전에야 남편의 칫솔을 버렸다는 할머니는 '죽었지만 그들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어. 우리 주위에 있어.' 라고 존에게 말해줬다. 할머니의 말에 존은 마이클에게 사랑을 남겨주고 싶어졌다.
존은 나중에 마이클이 자신을 기억할 수 있게 '기억상자'를 만든다. 그리고 마이클에게 자신의 죽음을 설명한다.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거란다. 네 주변의 공기 속에서, 널 따듯하게 감싸는 햇살 속에서"
"빗물에도?"
"그래, 널 적시는 빗속에도."
이른 아침, 아빠의 손을 붙잡고 씩씩하게 앞서 걸어가던 마이클이 멈춘 곳은 입양을 신청한 한 여자의 집이었다. 아이는 떼쓰지도 울지도 않았다. 이것이 아빠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인 줄 아는 듯 아이는 아빠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앞서 난 <부러움>이라는 글을 적었다. 존의 어린 시절처럼 나 역시 따듯한 가족의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났다. 나도 이것이 나의 약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해줬다. 내가 흘린 눈물은 부러움과 나약함이 아니라 나에게도 있었던 그때의 가족을 사랑해서였다. 특히 '마지막이 아닌 시작을 선물하는 법' 은 영화를 완벽하게 설명한 문구라고 생각한다. 끝과 마지막만 떠오르는 시한부 이야기에 시작과 선물이라는 역설은 가슴 아픈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짓게하고 행복을 떠올리게 해줬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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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성이라는 소름끼치는 무게
<로스트 도터>는 헐리웃에서는 작년 공개되어 아카데미 시상식 3개부문 후보에 올랐던 작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이제야 개봉하면서 모성을 다룬 <브로커>와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다.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는 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최고작은 아니라거나 소재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호불호가 갈리는 악재마저 겹친 <브로커>는 모성에 대해 전통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레에다 감독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제작한 이후 '여성도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피드백을 받고 고심했고 그 결과 탄생한 이야기가 <브로커>라고 밝힌 바 있다. 소영(이지은 분)이 어머니가 되어가는 여정을 그렸다고는 하나 결과적으로 소영은 아이에 대한 애정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형적인 어머니로 자리매김한다. 반면 신인 여성감독 매기 질렌할의 <로스트 도터> 속 모성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레다(올리비아 콜먼 분)는 성인이 된 딸들을 언급하기만 할 뿐 스크린으로 소환하지는 않는다. 레다의 딸들은 스크린 상에서 어린 아이들로서만 존재하며 이들은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닌 레다의 커리어를 방해하고 레다를 괴롭히는 장애물로 기능한다.
고레에다 감독이 천착해온 주제인 가족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드러나는 가족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고레에다 감독의 최고작으로 일컬어지는 <어느 가족> 속 가족은 현대화된 핵가족의 틀조차 거부하고 시간을 거슬러 대가족의 형태를 두팔벌려 환영한다. 이들은 혈연이 아닐 뿐 전형적인 엄마와 아빠, 할머니, 형제자매로 이루어진 가족이다. <브로커> 속 가족 또한 배경을 부산으로 옮겨왔을 뿐 친모이자 엄마 역할을 수행하는 소영,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나눠맡는 동수(강동원 분), 아빠이자 가장 혹은 할아버지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맡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현(송강호 분) 그리고 아기 우성의 형으로 기능하는 해진으로 구성된다. 고레에다 감독은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그 가족 내에서 희생해야 하는 여성이나 가장의 무게 등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한다. <브로커> 속 가족은 아기 우성을 중심으로 구성원이 역할을 구성하지만 각자의 삶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상현의 세탁소는 문 닫은 채 남겨져도 괜찮은 것인지, 동수가 찾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는 없는 것인지, 해진 또한 새로운 가족을 찾을 수는 없는지, 소영은 우성을 되찾거나 놓아준 후 자신만의 삶을 구축할 수는 없는 것인지 영화는 답해주지 않는다. 영화 말미에 드러나는 각 캐릭터의 모습은 이들을 뒤쫓던 형사 수진(배두나 분)마저 우성을 중심으로 삶을 꾸려가게 만든다.
반면 <로스트 도터>는 가족이라는 틀을 벗어나 어머니에 집중한다. 레다는 가족여행 대신 홀로 휴가를 온 교수이고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삶에서 남편을 지운 것처럼 보인다. 레다가 마주치는 어머니들에게 레다는 인사치레로라도 긍정적인 말을 거의 해주지 못한다. 육아의 기쁨에 대해 설파하는 대신 임산부에게 '자식은 끔찍한 부담이에요'라고 경고하고 가족 파티를 하겠다는 가족에게 자리조차 비켜주지 않는다. 자식이 태어난 후 떠나버린(아마도 컬럼비아 대학으로 교수 발령이 난 것처럼 보인다) 남편의 빈 자리를 힘겹게 메꾸며 홀로 가정을 받쳐온 레다에게 가족 파티란 어머니의 희생을 가리기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 자리를 비켜달라는 부탁조차 남성들이 아닌 임신한 여성에게 전가되고 거절하는 레다 옆에서 남자들은 무례하게 욕이나 내뱉을 뿐이다. 가정의 허상을 깨달은 지 오래인 레다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으려 하지 않는다. 결국 상황에 대한 사과도 여성에게 미뤄지고 레다는 모든 상황을 이해한듯 사과를 받아들이고 자리를 피한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레다의 등에 떨어진 솔방울은 가족 혹은 자식의 무게를 대변한다. 어느날 갑자기 레다에게 주어져 상흔으로 남지만 깨끗이 사라지지는 않는 솔방울 흔적은 두번 떨어지면서 레다의 두 딸을 비유한다.
아이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아이라는 무게라는, 같은 소재를 가지고 전혀 다른 두 시각을 드러내는 두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연 감독의 성별이다. 상대적으로 육아 참여도가 낮은 동아시아의 남성인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에는 주로 어린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담긴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속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고 세상물정을 모르며 사람들에게 한없이 친절한 동시에 어른에게서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한다. 반면 <로스트 도터> 속 아이들은 때로는 무심하고 때로는 잔인하며 애정으로 오인되는 관심을 갈구한다. 그리하여 <로스트 도터> 속 엄마들은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자신에게서 떨어뜨려 놓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육아에 지친 니나(다코타 존슨 분)와 젊은 레다(제시 버클리 분)의 표정은 엄마이길 포기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성에게 더 좋은 환경을 주기 위해, 혹은 스스로 우성을 키우기 위해 분투하는 소영과는 달리 니나와 레다는 아이를 자신에게서 분리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얻길 원한다. 감독의 반성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브로커>조차 단독 육아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이들의 눈으로 본 이상적인 모성이 반영된 반면 <로스트 도터>는 현실적인 모성에 기반한 이야기에 가깝다. <브로커>와 <로스트 도터>는 각각 모성에 대한 환상과 현실을 반영하며, 어느 쪽에 이입할 것인가는 관객의 몫이지만 <브로커>의 흥행 스코어와 평을 볼 때 모성의 환상에는 관객이 크게 공감하지 못한 듯하다.
레다가 아이에게서 훔친 인형은 제목과 맞물려 레다의 딸들인 비앙카와 마사를 반영한 것처럼 보이다가 망가진 레다의 인형에 대한 대체품으로 그 이미지를 옮겨간다. 비앙카가 망가뜨리고 자신이 창 밖으로 내던져 산산조각난 인형은 출산과 육아로 한계에 다다른 레다 그 자신을 반영한다. 결국 레다가 훔친 인형은 레다 그 자신이며,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도망가 자기 자신을 추스른 레다의 서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깨끗이 씻기고, 새 옷과 신을 사서 신긴 인형은 서사 내내 레다의 곁을 떠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입에서 벌레를 뱉어낸다.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딸들을 떠나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형상화된 벌레는 인형의 입에서 기어나오며 내면의 오물을 모두 걷어낸다. 레다는 니나에게 끊임없이 인형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해 주는데 이는 결국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육아는 언젠가 끝나고 자기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는 엄마 선배로서의 조언이다. 하지만 인형을 돌려받는 니나는 아직 육아의 도중이기에 레다의 조언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레다를 공격한다. 같은 위치에 놓인 여성, 엄마 동지조차도 그 과정을 온전히 겪어내기 전에는 모성의 굴레와 그 끔찍함에 대해 공감할 수 없음을 영화는 잔인하게 설명한다.
동시기 개봉한 모성에 관한 두 영화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허상과 실재를 보여준다.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객 각자의 몫이지만, 확실한 것은 모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부성의 무게와는 전혀 다르며 겪어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피로와 상처로 해안가에 쓰러진 레다가 다시 벗겨내는 오렌지 껍질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끊어지지 않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피로와 상처에 대해서는 내색하지 않고 딸들과 통화하는 레다의 모습은 자식 앞에서 삶의 무게를 내색할 수 없는 부모의 무게를 보여준다. 마지막까지 성인이 된 딸들과 물리적인 공간을 공유하지 않는 레다는 마음 한 켠으로는 내려놓고 싶은 모성의 소름끼치는 무게를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브로커> 이미지는 네이버영화 출처입니다.
*본 리뷰는 씨네랩의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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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킹헤즈의 이해불가함과 대체불가함을 담아낸 필름
<스탑 메이킹 센스(Stop Making Sense)>(1984, 조나단 드미)
토킹헤즈의 ‘콘서트를 담아낸다’는 것, 놀랍게도 <스탑 메이킹 센스>는 그것을 해낸다. “Hi, I got a tape I want to play.”와 “Does anyone have any questions?” 사이, (녹음된) 데이빗 번의 날카로운 음성이 전하는 것은 맴버 소개를 제외하면 가사 뿐이다. 스토리텔링 위주인 토킹헤즈의 가사는 딱히 싱잉으로 정의되지 않는 번의 보컬링을 통해 전달되어야만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느낄 수 있다 하여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들의 가사와 음악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것, 아니 어쩌면 해석을 시도하는 것 자체부터가 별 의미없는 행위다. 말이 되기making sense를 기꺼이 멈추는 이 밴드의 무대는 머리로 이해하기를 그만둘 때 비로소 심장과 살갗에 닿는다.
기타로 ‘Psycho Killer’의 리프를 연주하기 시작하는 데이빗 번, 카메라는 쉴새 없이 움직일 예정인 그의 발을 감싼 스니커즈에서 출발한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댄스 무브에 집중하는 맴버들을 마구 흔들리며 스쳐가기도 하고, 한 벌스 내내 데이빗 번의 상반신에 고정돼 있기도 한다. 번이 스테이지를 문자그대로 조깅할 때는 마치 그에겐 관심이 없는 듯 다른 맴버들에게 머물러 있고, 제 키만한 스탠드 조명을 파트너삼아 밀고 당기며 춤을 출 땐 바로 곁에서 동선을 좇는다. 그 장면들은 전부 긍정적인 의미로 미쳤고 이상하다. 라인 바이 라인이 즉석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데이빗 번의 구상에 맞춰 순서대로 짜인 제스처들이다. 투어 중 목격한 일본 전통 공연들에 영감을 받았다는 기묘한 안무들은 완벽히 토킹헤즈의 음악과 결합된다. 구성된 무대의 모든 액션이 즉흥으로 와닿는 까닭은, 그날 그 순간 발생한 맴버들의 흥과 힘, 그 사이 교감은 스테이지드 될 수 없는 것이어서다. 선명한 디지털 레코딩과 조화를 이루는 <스탑 메이킹 센스>의 촬영은 공기중의 에너지 흐름을 포착한다.
고화질로 리마스터링된 <스탑 메이킹 센스>는 그 시절 토킹헤즈의 콘서트를 동시대에 밀접하게 관람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영화관에서 본다면, 꼭 시공간을 뛰어넘어 1983년 판타지스 극장에 도착한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현장 객석에선 쉬이 보기 어려운 것들까지 가까이 관찰할 수 있다. 이를테면 칠이 벗겨진 썬번 기타, 그것을 연주하는 번의 현란한 손놀림, 쉼 없이 리듬을 타는 티나 웨이머스의 어깨와 무릎, 미소가 떠나지 않는 크리스 프란츠의 얼굴 같은 것들. 객석에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부분을 담는 시선이 오히려 현장감을 극대화한다. 각 클로즈업은 숏이 나뉘어 있더라도 끊기지 않고 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4+5인의 맴버 각자의 대체불가함, 그리고 그들이 하나의 밴드로 움직이는 방식이 인식-되기보단 감각된다. 알려져 있듯 이 필름엔 아티스트 인터뷰가 없고 반응은 환호성 몇 차례 정도만 삽입된다. 다만 마무리 즈음 객석을 조명한 숏이 몇 이어지는데, 관객들조차 어쩐지 토킹헤즈화 돼 있다. 엔딩크레딧이 흐를 무렵엔 방금 그들 가운데에서 사흘에 걸쳐 이 예측불가한 퍼포먼스를 관람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40년이 지났음에도 이 필름과 콘서트는 전혀 낡지 않았다. 물론 이는 데이빗 번이 단지 과거의 전설이 아니라는, 신세대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꾸준히 신곡을 내는 현재진행형 창작자라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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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에게 오는 끝을 준비하는 자세
눈은 아일랜드 전역에 내리고 있었다. 눈은 음울한 중부 평야의 구석구석에도, 나무 없는 구릉지대에도 내리고, 앨런의 늪에도 소리 없이 내리고, 더 멀리 서쪽으로 섀넌 강의 어둡고 거친 물결 위에도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눈은 또한 마이클 퓨리가 묻혀 있는 언덕 위의 그 쓸쓸한 교회 부속묘지의 구석구석에도 내리고 있었다.
기우뚱한 십자가와 묘석 위에도, 작은 출입문 위의 뾰족한 쇠창 위에도, 그리고 앙상한 가시나무 위에도 눈은 바람에 나부끼며 수북이 쌓이고 있었다. 그가 눈이 온 세상에 사뿐이 내려앉는 소리를 듣고 있는 사이에, 그리고 그들의 최후의 종말의 강림처럼 눈이 모든 산 이와 죽은 이들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 소리를 듣고 있는 사이에 그의 영혼은 서서히 스러져갔다.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소설 <죽은 사람들> 중
당신은 상실에 얼마나 초연한가? 모든 사람들은 삶의 끝에 죽음을 맞이하고, 동시에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목도한다. 만약 당신이 상실에도 절망하지 않고 무던할 수 있다면 그건 좀 슬픈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면 모두, 삶의 끝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스스로의 생에 죽음이 개입하는 순간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을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가까운 이를 잃는 순간을 상상하면 언제나 깊은 공포와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올해 초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예기치 못한 죽음과 이별을 경험하기에, 그때를 준비하기 위해 마음의 두께를 단단히 만들며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라면, 잘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거니까.
그런 나의 생각이 무의식에 적용된 것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연달아 죽음을 다룬 작품들을 보게 되었다. 형을 잃은 후 직장을 그만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된 책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입니다 부터, 부검을 통해 죽은 자들이 남긴 말을 산 자들에게 전하는 법의학자들의 드라마 언내추럴. 그리고 마지막은 오늘 이야기할 작품이자, 존엄사를 선택한 친구 마사와 그를 지켜보는 친구 잉그리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룸 넥스트 도어> 이다.
영화 룸 넥스트 도어 소개 및 줄거리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스페인의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첫 영어 장편 영화이며, 2020년 발간된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 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등급의 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는데, 상영 시 18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신기록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국내에는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첫 상영되었고 10월 23일 공식적으로 영화관 개봉을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부국제에서부터 궁금했던 터라 개봉 다음 주에 영화를 보고 왔다.
영화는 출간 기념 사인회를 위해 뉴욕 맨해튼을 찾은 유명 작가 잉그리드(줄리안 무어)가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 마사(틸다 스윈튼)의 암 투병 소식을 듣고 병원에 찾아가며 시작된다. 이후 잉그리드는 뉴욕에서 마사의 곁을 지키며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마사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시한부 선고를 받고, 마사는 잉그리드에게 안락사 계획을 밝히며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 옆방에 있어 달라는 부탁을 한다.
삶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
마사(틸다 스윈튼)의 부탁을 들은 잉그리드(줄리안 무어)는 충격에 빠진다. 미국에서는 일부 주에서 안락사가 허용되고 있지만 뉴욕주는 그 일부가 아닐뿐더러, 잉그리드는 저서를 통해 '생명이 어째서 죽음에 이르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할 만큼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사는 그녀에게 부탁하기 전 이미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살에 동조할 수 없다'라며 거절을 당한 상태였다. 잉그리드가 느꼈을 두려움은, 만약 내가 친구에게 같은 부탁을 들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하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아무리 시한부라고 하더라도 그런 부탁은 충격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죽음이 목을 조이는 생생한 감각을 느껴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투병(鬪病)이라는 단어에는 싸울 투에 병 병 자를 사용한다. 그야말로 적극적으로 질병과 싸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당연히 치열하게 질병과 맞서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며 병을 완치하는 것이 싸움에서의 승리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영화 속 말기 암 환자이자 마사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암 환자가 계속 싸워주길 바라고, 투병 결과에 따라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고 말이다. 그러고는 굴욕스러운 고통 속에서 죽지 않는 것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리라 선언한다.
"난 잘 죽을 권리가 있어."
마사의 대사 중
감독은 잘 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고 싶은 마음도 당연한 인간의 욕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탄생과 죽음이 선과 악처럼 나누어져 있는 것을 꼬집는다. 살아있음은 옳은 것이고 죽음은 부정한 것일까? 모두가 삶의 끝에 죽음을 만난다는 것만 봐도 무리한 가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글의 도입에서 언급한 일본의 드라마 <언내추럴> 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죽는 것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습니다. 어쩌다 목숨을 잃지요. 그리고 우리는 어쩌다 살고 있는 겁니다. 어쩌다 살고 있으니까 죽음을 불길하게 여겨선 안돼요."
마사는 종군 기자였다. 평생 살아있음과 죽음이 공존하는 전쟁터를 다니며 남겨진 사람들을 만나왔다. 삶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이미 죽음은 두려워하기에 너무나 가까운 것이었다. 전쟁터 속에서 그녀는 어쩌면 삶이 그저 '남겨지는 것'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10대 때 베트남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남자친구 프레드를 만나 아이를 임신하지만, PTSD에 시달리던 프레드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 하며 떠난다. 시간이 흘러 마사는 친부의 존재를 추궁하는 딸을 위해 그의 근황을 수소문하고 화재 현장에서 살려달라는 환청을 듣고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후 딸 미셸과도 점차 멀어진다. 살아냈지만 시간이 해결할 수 없는 고통 속에 남겨진 프레드. 자신보다 일을 우선순위에 두는 엄마와 존재도 모르는 아빠를 용서하지 못하고 탄생을 저주했을 미셸. 그리고 혼자 남겨져 치열한 삶을 전쟁처럼 치러냈던 마사까지. 이들의 모습은 비극적이지만 그 누구도 패배자라고 말할 수 없다.
아름다움으로 설득하는 페드로의 미장센
다채로운 미술은 시한부나 죽음 같은 소재를 슬프고 우울한 동정 거리로 만들지 않는다. 세련된 미감과 선명한 색감이 만드는 페드로의 미장센은 감각이 모든 서사를 선명하게 심지어는 아름답게 인지하도록 돕는다. 모든 로케이션과 장면이 아름다워서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마사가 죽음을 준비하며 샛노란 자켓과 빨간 립스틱을 바르는 장면은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이다.
우리는 모두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각자의 속도가 조금씩 다를 뿐. 끝을 향해 가는 이 여정을 얼마나 다채롭게 채우느냐는 모두가 가진 숙제일 것이다.
미술과 의상은 그 자체로 페드로의 언어다. 페드로의 드높은 미적 감각은 배우를 즐겁게 한다. 페드로는 내가 녹색 터틀넥을 입으면 틸다는 푸른 재킷을 입게 했다. 이미 그 대비만으로 멋진 구도인데 카메라까지 켜지자 ‘세상에, 우리가 페드로의 세계로 들어왔어! 우리가 페드로의 머릿속에 있어!’라는 느낌을 받았다. 페드로의 세계는 마법 같고 또 동화 같다. 우리의 눈이 회색빛으로 일상을 본다면, 페드로의 눈은 총천연색의 테크니컬러로 세상을 감각한다. 그 세계 안에 발을 디디는 순간 새로운 눈이 열리고, 말초적이라 오히려 인간적인 감정이 내 깊은 뿌리를 자극한다. 관객이 페드로의 영화에 느끼는 반응과 비슷하다. 일상의 삶과 거리를 두는 상상적인 세계가 펼쳐지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감정의 근원만은 관객의 마음에 특별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가닿듯 말이다.
줄리안 무어의 씨네 21 인터뷰 중
다양한 예술가와 작품을 언급하며 은유적으로 사용한 점도 흥미롭다. 에드워드 호퍼의 1960 작 <People In The Sun> 도 그중 하나이다. 도시 속 인간의 고독을 그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이미 오래전부터 영화 속에서 오마주 되어왔다. 대표적으로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작품들이 그 예이다. <룸 넥스트 도어> 에서는 마사와 잉그리드가 함께 떠난 숙소에서 해당 작품의 모작이 걸려있는 것으로 직접 언급된다. 또한 의자에 기대어 같은 방향의 허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같은 구조로 사용하여 직접적으로 오마주 하였다. 영화 속에서는 숙소 테라스의 선베드로 표현하였으며 왼쪽에는 집이 오른쪽에는 자연이 위치한 것도 동일하다.
영화에서 선베드는 자주 비춰지며 상징적인 장소로 사용된다. 마사는 이 장소를 아름답다고 표현하며 마음에 들어 한다. 같이 외출할까 하고 묻는 잉그리드에게 마사가 좀 더 여기에 있고 싶다고 하는 장면도, 닫힌 문을 보고 마사가 죽었다고 생각한 잉그리드가 무너지는 장면도, 끝내 마사가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도, 그리고 마사와 똑닮은 딸 미셸(틸다 스윈튼)과 잉그리드가 누워있는 위로 눈이 내리는 엔딩 장면도 모두 이 테라스의 선베드에서 이뤄진다. 같은 장소에서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인물들을 통해 결국에 동시대에 살고 같은 것을 겪더라도, 탄생과 죽음이 고유하듯이, 인간은 개별적으로 고유하며 각자의 자아로 다른 선택을 하는 존재라는 걸 체감했다. 그러니 인간이 느끼는 필연적인 외로움이 안쓰럽다가도 숭고하게 느껴졌다.
삶은 임시적이고 끝은 반드시 온다
앞서 말했듯이 영화는 '끝'의 존재가 그저 사실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마사의 질병이 가장 대표적이지만 기후 위기에 대한 언급도 감독이 다루는 종말 중 일부이다. 가장 먼저는 대기 오염으로 인한 뉴욕의 분홍색 눈이 그 예이다. 본격적으로는 마사와 잉그리드가 오래전 만났던 애인이자, 환경 전문가인 데미언은 통해 이야기한다. 그는 악화되는 기후 위기에 미래에 대한 희망도,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할 거라는 기대도 없는 회의론자이다. 아들 부부의 출산에 화를 낼 정도이다. 페드로 감독은 데미언의 입을 빌려 진지하게 기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설명한다. 그 또한 우리가 지금 혀끝에 있지 않아 외면할 뿐인 또 하나의 종말이다.
희망이 없는 게 아니야. 비극 속에서도 살아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잉그리드 대사 중
비관적으로 흐를 수 있는 내러티브를 환기시키는 건 바로 잉그리드(줄리안 무어)라는 인물이다.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잉그리드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삶의 대척점에 두며 '생명의 적'으로 여겼던 잉그리드는 결국 마지막 순간 옆방에 함께 있어 달라는 마사의 제안을 수락한다. 갑자기 두려움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죽음은 여전히 소중한 무언가를 앗아가고 상실은 숨 막히게 아프지만 삶이 일시적이며 끝은 반드시 온다는 것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마사의 선택을 존중한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제각기 종말을 준비하는데, 그중 잉그리드의 태도만 다른 점이 인상깊다. 비관적인 미래에 대해 말하는 데미언에게 잉그리드는 비극 속에서도 살아갈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가치관과 반대되는 마사의 선택에도 용기를 내어 기꺼이 손을 잡아준다. 부모와 손절한 채 살아온 미셸에게는 엄마인 마사를 용서할 수 있는 다리이자 숨구멍 역할을 해준다. 끝을 잘 준비하는 것만큼, 삶에 충실한 것도 중요하기에 잉그리드는 최선을 다한다.
페드로 감독은 <룸 넥스트 도어>를 만들기 한참 전, 살아있는 무언가가 (특히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그 인터뷰를 보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잉그리드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그녀는 변화하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회의적인 다른 인물들을 강인한 따뜻함으로 포용하는 잉그리드는 감독이 그리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아닐까. 종말이라는 비극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몇 번이고 무너지고 쓰러지지만, 결코 비극에 휩쓸리거나 지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강한 사람 말이다.
안락사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여러기지 의견과 논란이 많다. 영화 하나만으로 다룰 수 있는 주제도 아니다. 극 중 주인공인 마사는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하기에 영화는 존엄사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난 이 모든 서사 속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근본적인 부분에 더 집중하고 싶다. 영화 중간에 소설 <죽은 사람들>의 구절을 언급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 글 맨 처음을 그 구절로 시작했다. 영화 마지막은 그를 인용한 잉그리드의 대사로 끝이 난다.
- 눈이 내린다.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나와 네 딸 위로.
마사의 죽은 자리에 앉은 마사와 똑같이 생긴 딸 미셸 위로, 함께 걷던 숲속 위로 내리는 눈처럼 죽음은 평범한 삶 곳곳에서 언제나 존재한다. 오늘도 누군가의 옆집에서는 생명이 죽고, 같은 날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죽은 자의 온기가 남은 자리에서 새로운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의 규칙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를 배운다. 언젠가 또다시 상실의 고통에 잠식되는 날이 오더라도 맘껏 슬퍼하고 그리워하지만서도 힘차게 살아가고 싶다. 오랜만에 힘을 잔뜩 주어 긴 글을 적었다. 끝에 대해, 상실에 대해 어떻게 하면 의연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에게 인상적인 영화였다. 아름다운 페드로의 연출에 그리고 틸다 스윈튼, 줄리안 무어 두 배우의 섬세한 연기에 박수를 보낸다.
[참고자료]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10627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4/10/25/FZTF4Z5KOFHGPJXTXPADTMHJII/
영화 <죽은 사람들> 2004
드라마 <언내추럴>
https://www.m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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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넷플릭스 신작
넷플릭스 2022년 2월!
신작 추천5편
모럴센스
할말은 하고 사는 홍보팀 사원 정지우
부서 이동 후 모든 여직원의 관심을 받고 있는 잘생긴 대리 정지후
이름만 비슷할 뿐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
잘못 배송된 택배로, 지후의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성적 취향을 알게 된 지우는
점점 그에게 관심이 생겨간다
감독: 박현진
출연: 서현, 이준영, 이엘, 서현우, 김한나, 안승균, 이석형, 김보라
장르: 로맨스 코미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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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사람들
성실한 기상청 예보관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동료
이들에게 기상청안에서의 사랑은 날씨만큼이나 예측하기 어려운데
열대야보다 뜨겁고 국지성 호우보다 종잡을 수 없는
기상청 사람들의 일과 사랑을 그린 직장 로맨스 드라마
크리에이터: 차영훈, 강은경, 선영
출연: 박민영, 송강, 윤박, 유라
장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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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심판
소년범을 혐오하는 판사 심은석이 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소년범죄와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
지방법원 소년부의 엄정한 판사
복잡다단한 사건들을 다루며,
소년범에 대한 반감, 정의와 형벌에 대한 굳건한 신념사이에서
군형을 잡아간다
크리에이터: 홍종찬, 김민석
출연: 김혜수, 김무열, 이성민, 이정은
장르: 범죄, 법정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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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
항상 서로의 곁을 지키는 절친 3인방
마흔을 코앞에 둔 그녀들이 삶과 사랑,
상실을 경험하며 함께 걸어가는데...
마흔을 코앞에 둔 세 친구의 우정과 사랑,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현실 휴먼 로맨스 드라마
크리에이터: 김상호, 유영아
출연: 손예진, 전미도, 김지현, 연우진, 이무생, 이태환, 안소희, 강말금
장르: 로맨틱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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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맞선
친구를 대신해 맞선 자리에 나간 하리
남자가 겁을 먹고 퇴짜를 놓게 할 작정이지만
맞선남이 하리가 다니는 회사의 CEO!
계획은 엉망이 되고 게다가 청혼까지 하게 되는데...
얼굴 천재 능력남 CEO와 정체를 속인 맞선녀 직원의 스릴 가득
‘퇴사 방지’ 오피스 로맨스
크리에이터: 박선호, 한설희, 홍보희
출연: 안효섭, 김세정, 긴민규, 설인아, 이덕화
장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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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심과 욕심의 차이 - <놉>
2022년의 개봉영화들 중, "영화"라는 단어에 가장 적합했던 <놉>
러닝 타임 내내 온전하게 영화 속에만 들어가있었다.
이 영화를 총 9회차를 뛰었기에 개인적으로 느끼고 깨달은 바가 많았다.
오늘은 <놉>에서 나에게 깊이 와닿은 요소들을 함께 말하고자 한다.
1. 당신에게 하늘이란?
영화 <날씨의 아이>에서 이러한 대사가 나온다, "하늘은 바다보다 훨씬 깊은, 미지의 세계". 이 말이 본 영화에서 굉장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기존 <죠스> <언더워터> 등처럼 바다 밑의 괴물(상어)과 싸움으로써 오는 공포감을 조성한 영화들에 익숙해져있다. 그러므로 보통 "바다"를 떠올릴 때 물론 시원하다는 긍정적 이미지도 존재하지만 '쓰나미, 미스테리한 죽음, 상어' 등의 두려움도 선사한다. 이러한 공포감은 우리가 바다를 늘 '미지'의 공간으로 여겼던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놉>은 그 "배경"을 정반대로 바꾸어 오히려 사람들이 아무 생각도 지니지 않았던 '하늘'에 대한 긴장감을 일으켰다.
알 수 없는 하늘을 늘 바라보며 서있던, 커다란 사막과도 같았던 들판.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인 '부드러운 거침'을 몸소 느끼게 해주었다.
2. 고디와 진 자켓: 주프의 꿈
UFO와 침팬지, 이들은 미디어 속 혹은 실제 우리의 삶에서 자주 접하는 존재들이다. 본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생명체는 바로 침팬지 '고디'와 하늘의 외계생명체인 '진 자켓'이었다. 먼저 침팬지 고디를 말하기 전에 우리는 '주프'라는 인물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주인공 남매인 오제이&에메랄드보다 주프가 본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주프(배우 스티븐 연)는 현재 테마파크 운영자로 과거 유명한 시트콤의 아역배우로 출연했지만 방송 중, 같이 출연했던 침팬지가 날뛰어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처참하게 살인해버린 사고를 겪게 된다. 신기하게도, 당시 침팬지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를 가했지만 테이블 밑에 숨어있던 주프에게는 친근한 주먹인사를 하게 된다. 바로 주프의 안 좋은 어린 시절 기억은 아이러니하게 그 소년에겐 이 희망을 심어줬다, '친근함을 길들이기'.
'진 자켓'은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하늘의 괴생명체를 부르는 명칭이다. 우리는 각종 소셜 미디어에서 UFO라는 단어를 종종 접한다. 이 때문일까, 미확인 외계생명체에 대해 '원반 모양'이라는 고정관념을 지니면서 나름의 내적 친밀감을 형성해있을지도 모른다. 진 자켓은 물리적으론 사람들의 통념에 기반한 원반 모양이지만 사실은 안에 외계인도 없는, 심지어 인간을 흡입하는 '괴물'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단순히 '원반', 그 생김새에 반응하여 자신들이 기존에 알고 있었던 머릿속 알고리즘에 진 자켓을 넣어 해석한 것이다.
다시 주프의 꿈으로 돌아가보자, '친근함을 길들이기'. 본인이, 인간을 살해하는 침팬지와 친밀한 소통을 한 것으로부터 희망을 얻었던 소년 주프는 성인이 되어서 또 다른 타겟을 발견했다- 바로 '진 자켓'. 그는 본인이 지은 테마파크 내의 서프라이즈 쇼를 통해, 본인이 진 자켓을 조종할 수 있다는 우월감에서 돈과 명예를 얻으려는 것이었다. ((한편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진 자켓에 의해 죽는다)) 그러므로 나에겐 주프가 아픈 손가락 중 하나로 다가왔다. 다만, 이 아픈 손가락은 절대 널리 알리고 싶지 않은, 오히려 숨기고 싶은 애매함이다. 물리적으로 우리가 보기에 그는 멀끔한 성인 남성이다. 그러나 테마파크 / 진 자켓 / 어린 시절의 모습을 담은 전시회 등의 영화 요소로 비추어 봤을 때, 주프는 여전히 고디와 주먹 악수를 했을 순간에 머물러 있다. 그는 그의 꿈을 미처 다 이루지 못 한 채, 어쩌면 '정당한' '합리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그럼에도 주프의 꿈은 이루어졌다. 후반부에 에메랄드는 테마파크에 달려있던, 주프가 그려진 거대한 헬륨 인형으로 진 자켓을 죽이는 데에 성공한다. 진 자켓이 헬륨 인형을 흡입할 때 쉴새없이 일그러지던 주프의 표정, 그렇지만 그의 표정은 늘 평면적으로, 웃고 있었다.
3. 인간의 본능과 카메라
이 영화에서 주프 못지 않게 핵심 역할을 하는 건 바로 카메라다. 에메랄드와 오제이는 외계생명체(진 자켓)를 카메라로 찍어 방송에 송출함으로써 본인들의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라는 본인들의 이익이자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하늘을 바라본다. 이러한 면에서 인간의 관심은 곧 '돈'과도 직결되고, 이 더럽지만 고칠 수 없는 과정들을 잘 드러내는 요소가 바로 '카메라'라는 생각이다. (이 부분에서 사실 영화 <돈 룩 업>이 떠으로기도 했다)
그러나 본인의 탐욕을 카메라로,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순간- 다시 말해 땅의 눈동자와 하늘의 눈동자가 마주치는 순간 그들을 이끄는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눈과 눈이 마주쳐 일으켰던 바람, 욕심과 욕심이 맞물려 일으켰던 바람처럼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던 존재들이 일으키는 강렬함은 공포 그 이상이다.
여러모로 조던필 감독이 영화 내에 배치해놨던 은유, 우리가 이 영화를 더욱더 즐길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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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증의 모녀에게 멀티버스가 필요했던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중 국세청 조사에 시달리기 시작한 '이블린(양자경)'. 국세청에 제출할 수많은 관련 서류를 검토하던 그녀는 남편 '웨이먼드(케 후이 콴)'의 이혼 요구와 연애 중인 여자 친구를 인정해달라는 딸 '조이(스테파니 수)' 때문에 대혼란에 빠진다. 그때 이블린의 눈앞에서 멀티버스가 열리고, 알파 지구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를 만난 그녀는 수많은 자신이 다른 우주를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알파 웨이먼드는 이블린에게 그녀가 무한한 다중 우주의 절대 악 조부 투파키에 대항할 유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녀는 수많은 이블린 중 가장 최악의 선택만 한 이블린이기에 모든 멀티버스의 이블린으로부터 능력을 빌려 온다면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할 수 있다는 것. 또 알파 지구의 이블린이 딸 조이에게 권위적으로 윽박지른 결과 조이가 흑화 해 조부 투파키가 되었으니, 이블린만이 조부 투파키를 막을 수 있다는 점도 알려준다. 이에 이블린은 멀티버스의 운명과 딸과의 관계를 모두 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참신한 소재라면 가만두지 않는 창작자들 덕분에 '멀티버스', 다중 우주 개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익숙한 소재를 선택하는 것과 그 소재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멀티버스도 마찬가지다. 필연적으로 다양한 설정을 필요로 하는 다중 우주 개념은 마치 복어와도 같다. 당장 지난 10년 간 할리우드의 정점에 있던 MCU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제외하면 이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 두 명의 다니엘이 만든 액션 코미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원>)는 다르다. 시작부터 멀티버스 세계관을 숨기지 않으며 러닝타임 내에서 완벽하게 소화한다. 영화는 이블린이 책상에 가득 쌓인 서류를 뒤적이는 가운데, 거울에 비친 그녀를 담아내면서 시작된다. 두 명의 이블린을 함께 잡아주던 카메라는 이내 거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치 지금 보이는 이블린 말고도 다른 이블린이 있다는 걸 암시하듯이. 거울을 활용한 도입부는 흥미롭게도 <에에원> 속 멀티버스만의 한 가지 특징을 암시한다. 영화에는 다중 우주의 다양한 이블린이 등장하지만, 마치 거울 안에 갇혀 있듯 그들이 직접 만나는 장면은 없다.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모든 것(Everything)"이 있는 멀티버스, 인터넷
<에에원>의 멀티버스는 MCU를 비롯한 다른 영화의 멀티버스와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멀티버스 영화는 우주 간의 경계가 없어져 '내'가 다른 '나'를 만나는 사건을 다룬다. 반면에 <에에원>의 멀티버스에서는 다른 우주의 '나'에게 있는 능력과 특징의 일부를 '내' 우주로 끌어올 수 있다. 실제로 이블린은 필요한 순간마다 적재적소의 능력을 다른 우주의 이블린으로부터 빌려온다. 괴력의 '디어드리(제이미 리 커티스)'에게 쫓기자 쿵후 마스터 이블린의 격투 실력을 끌어온다. 다수의 적과 싸워야 할 때는 피자집 아르바이트생 이블린의 광고판 돌리는 능력을 가져온다. 조부 투파키도 마찬가지다. 불의의 사고로 모든 우주에 접속할 수 있게 된 그녀는 각종 기상천외한 능력을 끌어다 활용한다. 이 아이디어는 <에에원>의 연출과 프로덕션이 특히 인상적인 이유다. 사실상 세탁소와 국세청 건물 안에서 모든 이야기가 진행되는데도 <닥터 스트레인지 2> 못지않은 스케일을 뽐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에에원>의 멀티버스는 낯설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필요한 순간 모든 것을 가져다 쓸 수 있는 멀티버스는 어딘가 친숙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멀티버스는 인터넷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요리 레시피부터 지하철 배차 시각에 이르기까지 실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암기하거나 알지 못한다. 대신 필요한 순간마다 인터넷에 접속해 가장 적절한 정보를 찾아내 활용할 줄 안다. 이 맥락에서 보면 이블린과 조부 투파키의 갈등은 단지 멀티버스의 운명을 건 대결이 아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서로 다른 세대의 갈등이다. 멀티버스를 처음 접한 이블린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모습에서는 인터넷을 비롯해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세계를 처음 접한 기성세대를 엿볼 수 있다. 반면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멀티버스를 다루는 조부 투파키에게서는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을 서핑하던 새로운 세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두 다니엘은 <에에원>이 "세대 차이와 인터넷, 현대인들에게 만연한 잠재된 공포를 담고 있는 영화"라고 말한다. 당장 전화번호를 모두 외우고 다니던 사람들의 눈에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치 다른 우주에서 온 사람을 보는 것처럼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숨 쉬듯 당연한 삶의 방식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들처럼 숨 쉬고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야 하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인해 정보가 넘쳐 나고, 같은 시공간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시대에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일상이 아니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골라하는 철천지원수 간의 싸움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이블린이 동성애자인 조이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이자, 이블린이 막아야 하는 빌런 조부 투파키가 알파 지구의 조이인 이유다.
멀티버스 속 "모든 곳(에브리웨어)"의 의미
그렇다고 해서 <에에원>이 어머니, 부모님, 기성세대가 마주한 놀라움과 혼란에만 주목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멀티버스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울 조이의 내면을 장악한 공허함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녀는 멀티버스 안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삶은 역으로 무의미하다. 이는 SNS와 같은 인터넷 공간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곳에서 접하는 정보에 압도되거나 좌절하거나 공허함을 느끼는 일이 많아진 현대인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그 결과 조부 투파키가 된 조이는 모든 것을 파괴할 블랙홀, 검은 베이글을 만든다. 세상을 휩쓸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서. 이렇게 조부 투파키는 이름만 다른 같은 공간에 사로잡혀 삶의 의미와 이유를 잃어버린 인물을 대변한다.
조부 투파키의 캐릭터성은 <에에원>을 단순히 코미디와 액션으로 점철된 오락 영화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진중함까지 맛볼 수 있는 깊이감 있는 영화로 만든다. 삶의 의미를 잃은 조부 투파키는 바위만 존재하는 우주에서 비로소 평온해진다. 모든 것들에게 개입하거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우주의 고요함만이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이블린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는 모든 일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생생히 흘러가는 지금 이 순간의 경험과 선택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뜻깊은 것이고, 당장 옆에 있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조부 투파키처럼 모든 멀티버스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을 얻은 이블린은 무위의 우주에서 딸을 끄집어 내려한다. 자신에게 권한 검은 베이글을 거절하고, 돌이 된 우주에서도 딸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블린과 조부 투파키의 논쟁은 두 다니엘이 <에에원>에 "가족 드라마용, 공상과학용, 철학용 답이 각각 따로 있다"는 말로 이어진다. 철학적, 종교학적 사유가 함축되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모녀는 마치 해탈의 경지에 올라 모든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모녀의 갈등은 깨달은 자가 현실 세계를 무의미하다고 여겨 도덕적 규범을 무시하거나 외면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들도 자신처럼 해탈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며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주며 살 것인지에 대한 논쟁인 것이다. 그래서 이블린이 끝까지 조이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모성애이자 멀티버스의 붕괴를 막는 히어로의 자세이지만, 동시에 종교 철학적 선택이기도 하다. 특히 이블린이 제3의 눈을 개안하는 것, 불교 미술 양식인 탱화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메인 포스터, 부처의 깨달은 마음을 상징하는 원불교의 일원상처럼 생긴 베이글의 존재는 오랜 시간 종교를 막론하고 이어진 논쟁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단 번에(All at once)" 모든 것의 의미를 알게 된 사람의 마무리
이렇게 조부 투파키와 조이의 마음을 읽은 뒤 영화는 이블린의 시점으로 되돌아온다. 그녀가 온갖 우주를 경험하며 단 번에 깨달은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에블린은 마침내 딸을 이해한다. 그녀는 조이가 레즈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딸과 매번 싸웠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문제일 뿐 핵심은 자신과 딸의 세상이 같지 않으며 모녀가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설령 딸의 세상이 두렵고 혼란스럽더라도, 발을 내디뎌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고, 딸의 관점에서 딸의 고충에 공감하되 먼저 살아 본 이만이 알 수 있는 변치 않을 삶의 지혜를 일러주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터득한다. 이렇게 먼저 다가가서 위해서 그저 평범할 수 있었던 가족 드라마에는 멀티버스가 필요하다.
이처럼 <에에원>은 두 다니엘의 말마따나 수많은 혼란 속에서 "가족에게 관심 갖는 법을 배우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딜도와 애널 플러그, 장난감 눈깔 등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등장하는 B급 코미디 요소는 익숙함에 신선함을 더하는 양념일 뿐이다. 영화는 줄곧 딸을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엄마가 딸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를 마침내 깨달은 후 화해하는 익숙한 흐름을 따라간다. 그래서 온갖 장르적 특징을 다 섞어 놓아 왁자지껄하고 정신없던 멀티버스는 결국 눈물 한 방울과 함께 가족 드라마로 귀결된다.
이는 마지막 장면이 영화의 시작만큼이나 인상적인 이유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와 사정을 알게 된 이블린이지만, 그녀는 멀티버스 속으로 빠지지 않고 눈앞에 있는 세무국 직원 디어드리에게 주목한다. 설명을 제대로 못 들었으니 한 번만 다시 말해달라면서 디어드리에게 관심을 쏟는다. 서류에 눈이 고정되어 있을 뿐 정작 가족이나 손님에게 제대로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오프닝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 나는 변화다. 멀티버스가 이름만 다른 인터넷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작은 관심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다만 <에에원>에도 단점이 없지는 않다. 우선 뒷심이 부족하다. 사실 영화는 템포가 상당히 빠르다. 세탁소에서의 오프닝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만 쇼트 하나하나가 굉장히 짧고, 화면 전환도 빠르다. 그런데 러닝타임도 짧지 않다. 2시간 19분에 달한다. 그 결과 영화는 상대적으로 길게 체감되고, 피로감이 쌓인다.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이블린과 조이의 화해 장면이 생각보다 늘어진다는 인상이 남는 이유다. 확실한 임팩트를 주려는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전개를 의도적으로 끈다. 말 한 마디면 종결될 상황에 굳이 부연 설명을 덧붙이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 누적된 피로감에 약간의 지루함이 더해지면서 감흥이 덜해진다.
호불호가 나뉠 가능성도 크다. 장르를 하나로 단정 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에에원>은 기본적으로 가족 드라마와 코미디 영화의 혼합이다. 그런데 이 코미디가 미국식 B급 감성을 적잖이 풍기는 관계로 취향에 어긋나는 순간 영화는 전반적으로 혼잡하다. 조부 투파키가 남성 성기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장면이나 성인 기구를 활용한 코미디가 대표적이다. 관객을 웃기겠다는 목표 충족에는 적합한 아이디어일지 몰라도, 그 자체로 다소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 여지도 충분하다.
그렇지만 개개인의 취향 차이를 제외한다면 <에에원>이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120% 살려낸, <탑건: 매버릭>과는 또 다른 의미로 올해의 '시네마'라는 점에 동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다 보니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붙잡고 고생 중인 MCU 입장에서는 다소 쓰라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의 감독인 루소 형제가 <에에원>의 제작자이니, 그들과 재계약하지 못한 걸 땅을 치며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마블이 보고 배워야 할 멀티버스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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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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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달팽이의 회고록> 메인 예고편
아카데미 X 골든글로브 노미네이트! BIAF 대상 수상! "메리와 맥스" 애덤 엘리어트 감독의 화려한 귀환! "달팽이의 회고록" 2025년 4월 30일 극장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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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천고결진> 예고편
“당신에게 입은 은혜를 아직 갚지도 못했는데, 어째서 나만 이 세상에 남겨둔 거야!” 〈천고결진〉 9월 15일(수) 밤 9시, 10시 왓챠 독점공개! 월/화/수/목 같은 시간 각각 2개의 에피소드로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