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바다 너머, 인간이 사는 육지 세상이 궁금한 인어공주 '에리얼'(할리 베일리).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바다 위로 올라갔다가 폭풍우를 만나 난파된 배에서 '에릭 왕자'(조나 하워킹)의 목숨을 구한다. 에리얼은 첫눈에 그와 사랑에 빠지지만, 아버지이자 바다의 왕 '트라이튼'(하비에르 바르뎀)은 절대로 바다 위 인간 세상에 나가서는 안 된다고 엄명을 내린다. 이에 에리얼은 바다 마녀 '울슐라'(멜리사 맥카시)와 거래해 목소리를 잃는 대가로 다리를 얻어 육지로 향하고, 새로운 운명을 찾아 나선다.
모두를 실망시킨 <인어공주> 재해석
2010년대 초중반부터 디즈니는 자사 애니메이션 영화를 실사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많은 흥행작을 만들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정글북>, <알라딘>, <라이언 킹>, <미녀와 야수>는 전 세계에서 10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 하지만 논란이 가장 많은 영화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인어공주>다.
<인어공주>는 제작 단계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원작 파괴가 문제였다. 주연을 맡은 할리 베일리는 애니메이션 원작 속 에리얼과 달리 흑인이었다. 에리얼의 빨간 머리도 흑인 특유의 드레드 머리로 바뀌었다. 한쪽에서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재해석이라고 옹호했다. 반대쪽에서는 원작 파괴라고 비판했다. 에리얼을 닮지 않은 배우가 출연해 리메이크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영화를 보니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일단 흑인 인어공주는 나름 자연스럽다. 덴마크가 미국령 버진아일랜드를 식민지로 삼은 역사를 반영해 배경을 카리브 해로 바꿨기 때문이다. 에리얼을 닮은 외모는 아니지만, 할리 베일리의 연기와 노래도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원작 설정을 재해석하고 변경한 이유를 제대로 납득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당위와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는 대목을 외면한다. 그렇게 월트 디즈니 컴퍼니 100주년 기념작 <인어공주>는 새로운 해석을 기대한 관객도, 원작의 실사화를 바란 관객도 모두 실망시킨다.
공허한 재해석
새로운 <인어공주>가 힘을 준 대목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다양성이다. 에리얼과 에릭의 로맨스는 소통과 다양성을 추구하자는 이야기다. 영화는 에리얼과 트라이튼의 갈등을 통해 다른 문화를 포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에릭 왕자의 서사를 더해 메시지를 뒷받침한다. 그와 '셀리나 여왕'(노마 두메즈웨니)의 대립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편견과 선입견을 깨야 한다고 말한다.
에리얼과 에릭의 로맨스는 동병상련에서 시작된다. 편견과 선입견으로 무장한 부모는 자녀를 억압한다. 트라이튼은 인간이, 셀리나는 바다의 신과 인어가 잔인하고 야만적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두 주인공은 그들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동경한다. 다른 문화를 궁금해하고 기꺼이 수용하려 한다. 두려움 없는 그들은 서로의 세상을 배우면서 사랑을 싹 틔운다. 더 나아가 완고한 부모까지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인어공주>의 재해석은 공허하다. 원작과 다른 이야기가 두드러지지 않아서 메시지가 밋밋하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는 설정이 대표적이다. 트라이튼 왕은 인간이 에리얼의 엄마를 죽였다고 암시한다. 인간 왕국의 왕도 바다 때문에 죽었고, 에릭 왕자도 표류하다가 구조됐다고 언급된다. 영화는 육지와 바다 사람이 서로 배타적인 이유를 설명하면서 갈등을 극복하는 로맨스를 강조한다.
그런데 정작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이 너무 평이하다. 육지와 바다 사이에 있었던 일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대사 몇 마디로 그친다. 그러다 보니 추가된 서사는 뇌리를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전반적인 흐름에도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 결국 영화는 인어와 인간의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큰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과 인어가 화해하는 결말도 그저 동화다운 교훈을 주는 결말에 그치고 만다.
흑인과 카리브해의 역사
더구나 다양성이라는 주제를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소재를 손에 들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 흑인 인어공주를 비롯해 카리브 해라는 공간적 배경과 드레드 머리는 손쉽게 소비된다. 이들을 이용해 다양성과 관련된 사회적, 역사적 문제를 깊숙이 살펴보려는 시도는 없다. 그저 관객의 상상력과 지식에 맡길 따름이다.
카리브해는 역사적 맥락이 깃든 장소다.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이 <인어공주>의 원작 동화를 썼고, 덴마크는 제국주의 시대에 카리브해 일대를 식민지로 삼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령 버진아일랜드가 대표적이다. 중심지인 '샬럿아말리에이'만 해도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5세의 왕비인 헤센카셀의 '샤를로트 아말리에'로부터 이름이 유래했다. 작중 에릭 왕자가 유럽과 교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총리를 비롯한 지배층 대다수가 백인으로 묘사되는 이유다.
이때 덴마크와 카리브해, 그리고 흑인 주인공이라는 조합은 곧장 한 가지 역사적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다. 바로 노예무역이다. 구체적으로는 아프리카, 유럽 열강,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어지는 삼각 노예무역이다. 덴마크는 영국, 포르투갈 등과 함께 노예무역 당사자 중 하나였다. 카리브해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의 종착지 중 하나였다. 19세기에 법적으로 금지하기 전까지는.
그런데 <인어공주>는 이런 역사적 맥락을 제거한다. 흑인 노예가 수입되는 시대에 흑인 여왕은 백인 왕국을 통치하고, 백인 왕자는 흑인 인어공주와 결혼한다. 시대상을 고려하면 어색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흑인 인어공주를 등장시키고 배경을 카리브 해로 변경해 놓고도 마치 제작진이 그 함의나 맥락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도 보인다. 영화가 흑인이라는 키워드를 고민 없이 편의적으로 활용하는 듯한 인상이 남는다.
드레드 머리는 단순한 헤어스타일이 아니다
이에 더해 <인어공주>는 에리얼의 머리도 표피적으로 활용한다. 사실 드레드 머리는 단순한 헤어 스타일이 아니다. 아메리카에 정착한 흑인 노예들에게 아프리카 특유의 헤어 스타일은 부끄러운 대상이었다. 드레드(Dread)라는 용어 자체가 '끔찍하다(Dreadful)'는 단어에서 비롯될 정도였다. 그래서 그들은 백인 헤어 스타일을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약품을 동원해 머리를 피다가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흑인 인권 운동이 힘을 가지면서 흑인들은 자기 본연의 헤어 스타일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드레드 스타일도 이맘때 퍼져 나갔다. 즉, 드레드 머리는 백인 중심 사회에 동화, 통합되지 않겠다는 흑인 사회의 의지를 보여주는 정치적 상징이다. 동시에 아메리카 흑인들의 아픈 역사를 함축한 상징이다. 따라서 카리브해, 흑인 인어공주, 드레드 머리라는 헤어 스타일이라는 소재를 종합하면 새로운 인어공주는 흑인 인권 운동을 상징하는 강력한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아이콘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는 이러한 복합적인 의미에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 의미심장한 소재를 그저 표피적인 의도로 활용할 뿐이다.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목적으로. 포크 사용법을 모르는 에리얼이 포크로 드레드 머리를 다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대신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안전한 스토리에 의존한다. 캐스팅 논란이 무색할 정도다. 흑인 인권 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쟁점을 영화에 녹여낸 <블랙팬서>와 비교해 보면 새로운 <인어공주>는 더 안일해 보인다. 칼을 뽑았는데, 무도 자르지 못한 셈이다.
큰 도움은 되지 않는 완성도
심지어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점보다 단점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우선 <라이온 킹>과 비슷한 문제점이 있다. 동물을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하다 보니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심지어 이번에는 포유류가 아닌 해양 생물이라서 더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화면도 어둡다. 실사 영화로 구현된 어두운 바닷속은 광원이 부족해서 어둡다. 장면을 부각할 조명도 마땅치 않다. 결국 흑인인 에리얼은 어두운 배경 속에 갇혀 버린다. 그녀를 지켜보기가 어렵다. 할리 베일리에 맞추어 연출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보이는 대목이다.
그래도 디즈니 영화로서 최소한의 재미는 갖췄다. 에리얼과 에릭이 거대해진 울슐라와 맞서 싸우는 후반부 해상 전투신은 인상적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 경력자답게 롭 마샬 감독이 클라이맥스에 걸맞은 스펙터클을 그려냈다.
울슐라와 트라이톤 왕의 역할도 지대하다. 코미디 배우로 알려진 멜리사 맥카시는 선입견을 제대로 깼다. 오빠 트라이톤의 권력을 갈망하고 복수를 꿈꾸는 마녀 울슐라라의 광기와 카리스마를 제대로 보여준다. 하비에르 바르뎀도 무게를 잡아준다. 그의 연기 덕분에 가족을 지켜야 하는 아버지의 슬픔과 외로움은 극대화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디즈니
<인어공주> 애니메이션 영화는 디즈니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다. 20세기 중후반 침체기를 겪은 디즈니가 새로운 전성기인 '디즈니 르네상스'를 알린 시작점이 <인어공주>였기 때문이다. 이는 디즈니가 창사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에 <인어공주>를 공개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인어공주>는 그 상징성과 중요도에 미치지 못했다. 과감하지 않은 사회적 메시지는 원작의 도전 정신에 미치지 못한다. 1989년에 애니메이션이 보여준 능동적인 여성상에 비하면 이번 영화가 무슨 메시지를 담았는지 의문스럽다. 만듦새와 볼거리 역시 현재 디즈니의 위상과 자본력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크다. 그 결과 100주년을 맞이해 더 화려하고 세밀해진 디즈니 성의 미래는 마냥 밝지 않아 보인다.
Dreadful 끔찍한
충분한 고민 없는 재해석의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