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4-06-15 11:25:21
하이재킹 | 역사와 상상 사이에서 항로를 지켜내는 뚝심
<하이재킹>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69년, 동해 상공을 비행하던 공군 파일럿 '태인'(하정우)은 비상사태를 맞이한다. 남파 간첩이 납치한 한국 민항기가 휴전선을 넘기 직전이 되자 민항기를 사격해 엔진을 멈추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것. 하지만 그는 전역한 자기 사수가 파일럿임을 확인한 후, 승무원과 승객의 안전을 우려해 상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결국 비행기는 그대로 북한에 억류되고, 태인은 군복을 벗는다.
2년 후 민항기 부기장이 된 태인'(하정우)은 기장 '규식'(성동일)과 함께 속초 공항에서 김포행 비행에 나선다. 승무원 '옥순'(채수빈)의 안내에 따라 승객들이 탑승한 후 이륙한 비행기. 그러나 '용대'(여진구)가 사제폭탄을 터뜨리자 기내는 아수라장이 되고, 용대는 조종실을 장악한 후 북으로 기수를 돌리라 협박한다. 폭발 충격으로 규식마저 한쪽 시력을 잃은 가운데, 태인은 비행기와 승객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시작한다.
과거의 힘을 살린 항공영화
하이재킹. 운항 중인 항공기를 불법으로 납치하는 행위. 미 연방항공청에 따르면 하이재킹은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유난히 자주 발생했다. 5년간 325건에 달할 정도. <1987>의 김경찬 작가가 각본을 맡고, 당시 조감독이었던 김성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하이재킹>은 바로 그 시기에 발생한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1971년 1월, 속초공항발 김포공항행 여객기가 이륙 30분 만에 홍천 상공에서 납치범 김상태에게 납치당했고, 이강흔 기장과 전명세 조종사는 협박범의 요구대로 기수를 북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비행기는 강원도 고성 바닷가에 무사히 비상착륙했고, 승객도 전원 생존했다. 이강흔 기장이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를 북한의 미그기라고 속이는 기지를 발휘하고, 전명세 조종사가 폭탄을 몸으로 덮는 희생정신을 보여준 결과였다.
<하이재킹>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1987> 느낌이 물씬 나는 역사적 상상력이다. 사람보다 이념이 우선시되던 시대의 그림자와 과거라서 오히려 신선한 당시 시대상을 버무려 기존 항공 영화의 한계를 피하려 했다. 과하지 않게 감정선을 살짝 '넛지(Nudge)'하는 화법도 관객을 승객 중 하나로 만드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 덕분에 <하이재킹>은 난기류를 만나고도 목적지까지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역사의 것은 역사에게, 상상의 것은 상상에게
실화 사건을 다룬 작품의 관건은 각색의 정도와 방향성이다. 상상과 왜곡은 한 끗 차이니까. 그런데 <하이재킹>은 그 어려운 일을 비교적 잘 해냈다. 역사적 사실을 부각하는 대목과 상상력을 발휘할 대목을 철저히 분리한 선택이 장르적인 측면과 스토리텔링 양쪽에서 득이 됐다.
사실 항공 영화는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가 많지 않다. 시간대가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그렇다. 숱한 사고를 겪으면서 보안 규정이 나날이 철저해졌기 때문.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만 해도 '류진석'(임시완)이 비행기 표를 사는 첫 장면부터 기내에서 범죄를 저지를 때까지 전개가 어색하다는 평가를 피하지 못했다.
<하이재킹>은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 함정을 피했다. 항공 보안 관련 규정이 미비했던 70년대를 배경 삼아 자칫 억지스러울 상황을 납득시켰다. 선착순으로 비행기 자리를 고르거나 용대가 보안 검사를 뚫고 폭탄을 반입하는 장면은 신선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역사의 빈틈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실제로는 없었던 민항기 격추 명령, 알려진 바 없는 범인의 범행 동기 등을 잘 짜 맞춰서 태인과 용대 사이에 진한 감정선을 불어넣었다. 그 덕분에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었던 이야기에서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는 '이한열'(강동원) 열사와 '이연희'(김태리) 사이의 가상 로맨스를 활용해 6월 민주 항쟁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한 <1987>의 장점과도 유사하다.
피해자 VS 피해자
그 덕분에 <하이재킹>은 단순한 항공기 납치 스릴러 이상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다. 전혀 접점이 없는 태인과 용대의 이야기는 대조될 때 함의가 드러나기 때문. 용대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의 전형이다. 6.25 전쟁 때 북한 인민군 장교가 된 형 때문에 반공분자로 몰려서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 사이에 어머니까지 죽은 그는 2년 전 납북 사건 주동자가 북한에서 영웅 대우를 받는다는 소식에 착안해 하이재킹 범죄를 저질렀다.
반면에 태인은 피해자이지만 가해자는 되지 않았다. 그는 2년 전 휴전선을 넘어가는 민항기의 엔진을 쏴서 착륙시키라는 명령을 거부했다. 군에서 사수였던 파일럿과 승무원, 승객 모두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 대가로 강제전역 당한 후에도 그는 군복을 벗긴 휴머니즘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전투기 사격을 피하고, 한쪽 손만으로 비상착륙을 시도하면서 2년 전과는 달리 승객도, 승무원도, 자기 부사수도 지켜냈다.
이렇게 보면 두 주인공의 공통점과 차이는 분명하다. 국가 권력의 횡포로 인해 피해자가 됐지만 전혀 다른 답을 볼 수 있으니까. 용대는 피해의식과 정부를 향한 불신에 사로잡혀 자기 인생은 물론 무고한 이들의 인생까지 파괴하려 든다. 반면에 태인은 그 불이익을 오롯이 감내하면서 자기 신념을 증명해 보인다. 북한에서 송환을 거부한 파일럿 사수의 가족을 자기 자족처럼 돌보고, 부기장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면서.
그래서일까? 두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대면하는 순간은 <하이재킹>에서 볼 거라 예상한 장면과는 거리가 멀다. 자기처럼 피해자로서 고통받은 이를 마주한 후에야 가해자가 된 피해자는 마침내 자기 잘못을 깨닫는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던 용대는 자기처럼 무고한 피해자는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태인의 설득에 비로소 흔들린다. 여기에 다소 잔인한 과감한 연출이 더해지면 둘의 관계는 의외로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압축과 절제의 미학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사건에만 집중하는 구성도 두 주인공의 이야기에 담긴 감흥을 극대화한다. <하이재킹>은 압축과 절제의 미학을 살려 이야기를 러닝타임 100분 안에 눌러 담고, 빠른 템포로 전개하면서 사건과 주인공 둘에게만 시선이 쏠리게 한다.
사실 <하이재킹>의 구성은 자칫 익숙한 신파로 빠지기 십상이었다. 갑작스레 납치된 승객 하나하나의 사연을 풀어놓으면 눈물을 짜내는 게 어렵지도 않았다. 신혼여행 가는 부부, 아픈 딸 병간호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할머니 등. 하지만 영화는 승객에게 그다지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대신 필요한 타이밍마다 장면 하나하나를 알뜰하게 활용하면서 분위기를 고조한다.
감정을 강요하는 대신, 관객이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상황만 조성하고 뒤로 물러나는 셈이다. 사법고시 붙은 아들과 어머니가 대표적이다. 검사가 된 아들이 자랑스러운 어머니와 수화 쓰는 어머니를 창피해하는 아들. 납북을 대비해 신분증을 파괴해야 상황에서 아들은 차마 검사 신분증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오히려 신분증을 찢으려 하고, 잘 찢어지지 않자 아예 삼켜 버린다.
부메랑이 된 상상력
다만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 상상력은 부메랑이 되기도 한다. 특히 과욕처럼 보이는 볼거리가 적지 않다. 물론 인상적인 대목도 있다. 용대가 폭탄을 터뜨려 조종실을 장악하는 장면은 마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속 뉴욕 타임스 스퀘어 장면을 연상시키는 슬로 모션 효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비록 같은 퀄리티는 아닐지언정 한계를 극복하려는 대담한 시도 자체는 놀랍다.
하지만 비행 시퀀스로 서스펜스를 쌓는 장면은 다소 무리수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기체에 구멍이 나서 비행기가 급낙하 할 때나, 한국 공군이 민항기를 사격하고 이를 피하는 장면이나, 여객기가 배면비행을 보여주는 것까지. 영화적으로는 긴장감을 극대화하지만, 잠깐이라도 현실성을 따지는 순간에는 맥이 뚝 끊길 수 있는 상황이다. 마치 <비상선언>에서 항공자위대가 민항기에 위협사격을 가하는 순간처럼.
또 비행기 내부 전개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 승객들이 용대를 덮치고, 부기장이 휴전선을 넘은 척 용대를 속이고, 어떻게든 난기류를 이용해 보려는 식으로 여러 사건을 만들어내고자 애쓴다. 하지만 결국 큰 틀에서는 겁에 질린 승객과 난폭한 납치범이라는 구도를 벗어날 변곡점이나 제3의 인물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다 보니 중반부는 같은 장면이 반복되어서 비교적 지루할 수 있다.
배우들의 퍼포먼스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하정우와 성동일만이 이름값을 해냈다. 배우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는 극본의 한계가 드러난 지점에 가깝다. 여진구가 맡은 용대의 경우 태인과 대조되는 사연만 돋보일 뿐, 악역으로서의 카리스마나 매력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채수빈이 연기한 옥순은 단순히 시나리오의 도구에 불과하다. 없어도 이야기 전개에 문제가 없을 정도다.
이에 더해 <하이재킹>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기술적인 아쉬움도 크다. 대사가 잘 안 들리는 한국 영화의 고질병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비행기 외부 소음과 대사가 섞이거나 파일럿끼리 무전을 할 때는 OTT 자막 기능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국내 배급사가 아닌 컬럼비아 픽처스가 직접 배급하는 작품인데도 고쳐지지 않은 문제라 더욱 안타깝다.
Acceptable 무난함
실화에 상상을 더해 어찌어찌 목적지에는 착륙하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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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10월 1일 북미 개봉 확정!
앤디 서키스가 감독하고 톰 하디가 치명적인 카니지로 출연하는 이 슈퍼히어로 영화는 개봉 첫 주에 적어도 5천만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예측할 수 없는 영화산업 속 상황을 볼 때, 일부 업계 전문가들은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의 티켓 판매를 6천 5백만 달러까지 촉진시킬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결국 극장들은 디즈니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거의 한 달 전에 큰 스크린에 개봉된 이후 새로운 개봉작 없이 지내왔다. 그것은 곧 베놈의 흥행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기대하기도 하지만, 소니픽처스는 우리가 아직도 팬데믹의 상황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고 그러한 기대를 경계하고 있다.
"베놈" 속편인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는 제작비가 1억 1천만 달러 들었으며, 여기에는 비싼 마케팅 비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영화는 대부분 남성 관객들에게 어필하는데, 이러한 점은 남성 관객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영화산업이 팬데믹으로부터 회복하기 위해 노력함에 따라, 젊은 영화팬들은 마블의 "블랙 위도우"와 "샹치", 그리고 유니버설의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라이언 레이놀즈가 출연하는 공상 과학 코미디 "프리가이" 의 박스 오피스 수익에 희망을 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관객을 대상으로 한 모든 영화가 히트를 친 것은 아니다. 워너 브라더스의 슈퍼히어로물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파라마운트의 "스네이크 아이즈: 지.아이.조”와 같은 몇몇 흥행 실패작들이 있었다.
기대해볼만 한 점은 “베놈2”는 극장에서만 상영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것은 "프리가이"와 "샹치"와 같은 독점적인 대형 스크린 영화들의 수익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요소이다. 왜냐하면 디즈니의 "정글 크루즈"나 워너 브라더스의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과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에 동시에 상영한 영화들은 극장에서 개봉된 이후 몇 주 동안 급격한 수익 하락을 겪었다.
긍정적인 리뷰 또한 흥행에 청신호이다. 비평가들은 첫 번째 작품 “베놈1” 혹평했는데, 이것은 코믹 원작 매니아들을 거의 저지하지 못했다. 2018년에 개봉한 “베놈1”은 예상치 못한 흥행 성공을 거두어, 데뷔작에서 8천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북미에서 2억 1천 3백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 8억 5천 6백만 달러로 흥행했다.<더 매니 세인츠 오브 뉴어크>
<아담스 패밀리2>
"베놈2”가 미국 박스 오피스 1위를 쉽게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며, 애니메이션 코미디 "아담스 패밀리 2"와 뉴저지 갱스터 '토니 소프라노"의 성장기를 그린 작품인 "더 매니 세인츠 오브 뉴어크”는 2위를 놓고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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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카디널 [Cardinal] [캐나다 드라마]
형사물 / 캐나다 TV 프로그램 / 캐나다 드라마 / 왓챠
아내의 조울증으로 불안을 안고 사는 형사 존 카디널은 남들보다 더 예민한 시각으로 사건을 관찰하는 형사다. 그래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단서를 발견하고 수사해 간다. 그런 카디널은 원주민 소녀의 실종사건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이유로 강력계에서 퇴출당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시즌1이 시작된다. 원주민 소녀의 실종을 살인으로 의심했던 카디널의 예상처럼 소녀의 시체가 발견되고, 강력계를 떠났던 카디널이 돌아와 수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카디널을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경찰 조직 안에 있었고, 그의 파트너로 새롭게 투입된 형사에게 그를 감시할 것을 요청한다.
왓챠에 캐나다 드라마인 카디널의 시즌1, 2, 3, 4가 있고, 각 시즌의 에피소드는 6화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시즌 1, 2의 경우 2021년 10월 13일 만료되었다.
카디널은 꾸미거나 미화하는 액션보다는 날것 그대로의 상황을 담아서 때로는 잔인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래서 작품에 더 몰입하게 되는 것 같다.
화려한 액션은 없지만, 굳이 화려한 액션이 필요하지도 않다.
실제로 범죄가 벌어진 현장에 화려한 액션이 있을까?
(물론 미국의 갱 범죄는 아니겠지만)
카디널의 작중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시즌별로 다른 중심이 되는 이야기의 완성도는 매우 탄탄하다.
보면서 자꾸만 "와 진짜 잘 만들었네."라는 혼잣말을 하게 된다.
특히 캐나다 특유의 문화성을 살려서 캐나다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원주민과 그 외 이주민.
그들이 섞여 살아가는 사회의 특성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작품 속의 계절감이 피부로 와닿는다.
카디널 속의 눈 쌓인 겨울의 풍경은 캐나다에서 왜 구스다운이 발달했는지 설명이 필요 없이 눈으로 보여준다.
저 동네에서 겨울에 코트만 입고 돌아다닌다면 얼어 죽을 것 같다.
숨 쉴 때마다 콧속이 얼 것 같아.
그리고 카디널을 보는 나는 한파가 들이닥친 겨울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다.
시즌1은 아이의 실종.
시즌2는 자신의 권위에 자만한 살인자이자 심리 조종자이자 마약상인 남자의 스토리.
시즌3는 종말이라는 망상에 시달리는 사이코 패스의 이야기.
시즌4는 환경 운동가였던 남자가 살인자가 되어 버린 이야기.
캐나다가 한때 드라마와 영화의 트렌드를 이끈 시기가 있다고 하던데, 그 말 뜻이 뭔지 알 것 같다.
넷플릭스와 왓챠에 캐나다 드라마가 적긴 하지만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작품들이 많다.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특히 카메라 앵글을 쓰거나 구성하는 방식이 낯설고 신선하다.
그리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컷 하나하나를 낭비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화면구성을 볼 때면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온다.
(글을 이렇게 써보고 싶다는 열망이 들 정도)
지금 당장 왓챠에서 카디널이 만료되기 전에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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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흥행하는데엔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냐?"
<범죄도시4>의 엄청난 흥행질주. 영화는 5일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기게 되었는데요.
다가오는 연휴와 겹쳐 흥행이 가속도를 붙어 천만관객을 넘길것으로 예상됩니다.
영화 <범죄도시4>가 개봉 5일만에 관객 4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올해 개봉작 중 최단기 흥행이며 손익분기점을 첫 주에 넘기게 되었습니다. <범죄도시4>는 개봉 초기 흥행몰이에 성공하면서 올해 두 번째 천만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이며 다가오는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비롯해 5월 4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일간의 어린이날 황금연휴에 극장가의 바람을 불어넣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젠데이아 X 조쉬 오코너 X 마이크 파이스트 주연의 <챌린저스>가 공개 첫 주말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만든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으로 테니스 선수 세 명의 삼각관계를 그립니다. 2위는 <언성 히어로> 3위는 <고질라 X 콩: 뉴 엠파이어>가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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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누구도 보여주지 않은 '조커'와 '아서'의 내면세계
<조커 : 폴리 아 되>와 <조커>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설왕설래가 굉장하다. CGV의 에그지수는 진작 박살 난 지 오래고, 로튼토마토 지수도 예상외로 낮게 나오고 있다. 일부 평론가들은 영화 안에서 아서가 취한 태도가 빌런 '조커'와 상충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조커;를 인질 잡아 토드 필립스가 객기 부린 것에 불과하다는 유튜브 속 평론가도 있다. 그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조커' 보러 왔으면 악랄하고 강력한 빌런을 보고 싶어 하지 이런 내용을 원하는 게 아니다는 점이다. 관객들이 기대한 건 자신의 악함을 깨달은 조커가 사회를 뒤집어 1편과 유사하게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조커 : 폴리 아 되>는 충격적인 플롯을 띄고 있다. 그 충격의 방향이 <조커> 1편의 형태가 아니다. 그 <조커> 1편의 위에서 아서의 뇌를 들여다보는 듯한 플롯으로 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선사하는 줄거리를 띄는 것이 이 <조커 : 폴리 아 되>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글쓴이는 위에서 언급한 이 영화 <조커 : 폴리 아 되>에 대해 '1편의 후속작이 아니다'라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완벽하게 조커가 된 아서 플랙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번째 근거. 두 영화의 플롯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우선 <조커>의 플롯부터. 아서 플랙은 어머니와 함께 사는 남자다. 인생에 재미라곤 없다. 우울한 아서 플랙. 번듯한 직업이나 모아놓은 돈 같은 거 없다. 대신 있는 건 정신질환이다. 느닷없이 하하하하 웃는 아서 플랙. 뜬금없이, 그것도 기괴하게 웃는 터라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이런 아서에게도 꿈이 있다. 바로 코미디언이 되는 것이다. TV에 나오는 인기 스타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 니로)을 동경하는 아서. 사실 아서는 머레이가 자기의 두 번째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첫 번째 아버지는 누구냐고? 바로 고담 시의 실력자 토머스 웨인이다. 어머니가 말해준 바에 의하면 아서는 웨인 가의 숨겨진 아들이었다. 꿈속에 사는 아서. 아니 꿈속에서 나오기 싫은 아서. 비참한 현실에 혹시?라는 희망이 점점 아서의 망상장애로 발전한다. 내가 대단한 코미디언이라는 망상. 도시의 실력자가 내 아버지라는 망상. 그리고 사랑도 마음대로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망상이 아서를 지배한다. 영화 <조커>는 아서의 망상에 대해 다룬 영화다. 망상이 끌고 가는 대로 도착하다 보면 지옥 같은 세상이 펼쳐져 있고 우리는 그 엔딩에 각자의 의견을 내놓는다.
이 과정에서 영화가 전면에 배치한 것은 아서의 자의식이다. 존재감이 없던 아서. 유리 자동문을 지나갈 때도 문에 부딪힐 정도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영화는 이렇게 존재감이 없는 아서가 세상에게 자기 자신을 알리는 과정을 핵심으로 삼았다. 소위 말하는 '자의식 과잉'과 '인정욕구'의 표출이 이야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초반부. 아서의 굽은 등을 보여주며 주인공의 위축된 내면을 보여준다. 주인공 뒤의 라디오 방송에선 '청소 노동자들이 쓰레기를 치우지 않아 전염병이 창궐한다'라는 뉴스가 나온다. 시각적으로 아서의 정신상태를 보여주면서 청각적으로는 이 사회가 노동권에 있어 약자를 존중하지 않다는 걸 암시한다. 연이어 조커가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상담치료 과정에서 상담사에게 "내 얘기를 듣지 않는군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상담사가 입 밖으로 꺼낸 말. "사회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어요"라는 대사다. 앞 장면과 연이어 아서 플랙은 개인적으로도 사회구조적으로도 구제받지 못한다. 그럼 희망을 품어야 한다. 뭐 같은 현실에 희망이 없으면 안 된다. 아서가 생각한 해결책은 코미디다. 머레이 프랭클린 쇼에 출연하는 걸 목표로 삼은 아서. 혼자 일기장에 끄적이며 농담거리를 만든다. 공연에 대한 경험을 하나 둘 쌓다 보면 언젠가 성공해서 멘토인 머레이의 쇼에 나올 거라고 희망을 품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서가 웨인의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 세 사람을 총으로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 사건이 내면에 있던 분노를 세상 밖에 드러냈다는 사실도 굉장히 중요하다. 본질적으로 코미디언 같은 예술가들은 자신이 체화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 직업이다. 따지고 보면 아서 플랙이 코미디언 '조커'로서 처음으로 성공한 것은 이 살인사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앞에서 안 웃기다고 온갖 조롱을 다 듣고 총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해고당한 공연에 비하면 홀가분한 마음에 춤까지 춘다. 조커의 자의식이 처음으로 상승한 사건이다. 심지어 고담 시의 언론사에 보도도 되고 사회가 이 살인마를 칭송하기까지 한다. 조커의 퍼포먼스가 처음으로 먹힌 것이다. 이 춤은 후반부 계단에서 춤을 추면서 내려가는 장면에서 반복된다. 아무 관객이 없는 야외무대다. 아니 모든 관객이 지켜보고 있는 야외무대에서 계단을 내려가며 춤을 춘다. 이 춤의 리액션 중 하나는 경찰이다. (이후의 사건이지만) 어머니 페니 플랙을 살해해도 쫓아오지 않았던 경찰이 양아치 세 명 죽였다고 아서를 따라온다. 일부 시민들은 조커 가면을 쓰고 아서를 지지하기까지 한다. 이제 사회를 움직이는 인간이 됐다. 그리고 여기에 힘입어 들리는 소식. 머레이는 아서의 과거 스탠딩 코미디 이력을 보고 조롱한 바 있는데, 이 아-무도 웃지 않았던 영상을 보고 토크쇼에 초대한 것이다. 서서히 팽창하는 자의식. 바람만 맞췄던 첫 번째 아버지 토마스 웨인과는 다르게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초대한 것이다. 토크쇼에 초대된다. 이후 토크쇼에서 광대 분장으로 나타나 "나를 조커로 불러줄래요?"라고 부탁한다. 이 질문에 읽히는 가장 강력한 의도는 '조커'라고 부르는 것이 굉장한 의미가 있고, 나는 그런 굉장한 사람이라는 자신감이다. 이후 토크쇼가 진행된다. 아서는 머레이에게 "당신은 무례하군요"라며 머리에 총알을 겨눈다. 세상이 뒤흔들린다. 슈퍼스타 머레이의 바닥을 방송에 노출시키고 살인까지 했으니 당연하다. 조커의 자의식이 폭발한다. 조커가 벌인 퍼포먼스에 세상이 열광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돌아보면 <조커>는 재능 없는 예술가가 사회를 병들게 하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보여줘 병든 사회를 담은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조커 : 폴리 아 되>는 이 1편의 플롯을 그대로 가져왔다. 2편의 초반부. 여전히 자존감이 낮은 아서. 낮은 자존감이 사람 살인한다고 채워질 리가 없다. 본질적인 문제도 있지만 사실 환경 문제도 크다. 아캄 수용소의 모든 교도관들이 아서를 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배도 그냥 주면 되는데 "오늘은 농담 없냐?"면서 강아지 손 내밀라고 하듯 사람을 아래로 깔본다. 감옥에는 화장실도 없다. 양동이 같은 곳에 볼일 보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비워야 한다. 사람 사는 환경이라고 보기 어렵다. 당연히 위축된다. 글쓴이는 이 설정, 초반부가 보여주는 영화의 배경이 1편 초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아예 겹쳐지는 장면(마르고 굽은 등을 보여주는)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인물의 내면이 그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렇게 무기력한 아서는 어떤 계기를 만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희망에 부푼다. 그 계기는 할리 퀸젤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희망으로 가득 찬 아서. 여기서부터 자존감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농담을 하고 싶어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던 아서에게 살아갈 의미가 생긴다. 글쓴이는 이 할리퀸(레이디 가가)이 안겨주는 희망이 1편의 코미디와 유사한 맥락이라고 본다. 아서에게 코미디는 미래다. 코미디를 사랑한다. 그래서 미래에 코미디로 먹고사는 걸 꿈꾸고 있다. 이 코미디에 대한 사랑이 할리퀸에게 옮겨온 것이 2편이다. 이 공통점은 아서가 코미디와 사랑에 서투르다는 점에서도 유사성을 띤다. 또 결정적으로 아서가 품고 있는 사랑이 어떻게 커지는가가 두 영화가 공유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공통점이다. 그건 바로 망상이다. <조커> 초반 머레이가 관객석에 앉아있는 아서를 불러 '자네 같은 친구가 있어 다행이야'식의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또 다른 장면에선 아서가 혼자 스탠딩 코미디를 하고 있는데 소피만 혼자 흐뭇하게 웃는 장면이나 갑자기 하하 호호하고 웃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조커> 1편이 아서가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 망상은 중요하다. 아서가 후반부까지 코미디를 놓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이유(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이기 때문이다. 이 코미디에 관한 망상은 후반부에 해체되면서 아서의 무리수로 이어진다. 코미디를 보며 혼자 흐뭇하게 웃던 소피라는 애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아서는 코미디에 재능이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인 아서는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머레이를 살해한다. 이 부정적인 현실 - 망상과 사랑 - 부푼 자아를 충족하기 위한 무리수라는 구조는 2편에서도 이어진다. <조커 : 폴리 아 되>에서도 아서의 희망인 리와의 관계가 망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에는 '폴리 아 되'라 아서 혼자만의 망상이 아니다. 하지만 망상은 망상이다. 그 망상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느냐. 이번엔 뮤지컬이다. 현실에서 뮤지컬 같은 상황이 벌어질 리는 없다. 뮤지컬 신은 전체적으로 영화 같은 상황이다. 감옥에 갇혀 한정적인 동선 때문에 나눌 수 없는 사랑을 음악과 춤으로 망상을 공유한다. 이미 전에 꿈꿔왔던 망상이 시간이 지나 더 영화적이고 깊어진다. 후반부 아서가 조커를 포기하자 그의 망상이 해체된다. 망상 속 공연에서 리는 아서를 쐈고 현실 속 할리퀸은 조커를 차버렸다. 조커로서의 이름도 잃고 자아까지 포기한 아서. 하지만 이 1편에서 이 과정을 겪고 아서 플랙의 조커가 탄생했던 것처럼 새로운 빌런이 등장한다. '넌 죽어도 싼 놈이야'라는 말과 함께 악의 축을 살해하는 남자가 영화 후반부를 마무리짓는다. <조커 : 폴리 아 되>의 후반부를 적어도 <조커>와 겹쳐지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커 : 폴리 아 되>가 진짜 <조커>의 후속작이 맞냐는 비판에 동의하기 어렵다. 플롯이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아니 이 <조커 : 폴리 아 되>는 뮤지컬이라는 비현실적인 시퀀스를 넣어서 망상의 깊이를 더 진득하게 뽑아냈다. 1편에서 작동했던 핵심 모티브 사랑과 망상 그리고 빌런의 탄생을 2편에서 그대로 이어 더 발전시켰다. 여기서만 그치는 게 아니다. 플롯의 내밀한 부분까지 들여다보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세 가지 특성 역시 전작 1편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세 가지 특성 중 첫째. 정체성에 관한 부분이다. 이 <조커 : 폴리 아 되>에서는 할리퀸이 등장한다. 첫 번째 할리퀸은 할리 퀸젤이다. 할리퀸은 조커에게 '당신은 조커예요'라며 조커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처음부터 리는 아서로 접근하지 않고 조커로 접근한다. "나 당신이 주제인 영화 20번은 봤어요"라는 말, "머레이 프랭클린 쇼에서 머레이의 머리를 날렸으면 했다"는 말이 그렇다. 결정적으로 리는 아서를 처음 만날 때 머리에 총을 겨누는 제스처를 보여준다. 리는 아서를 만날 때 아서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안 한다. 하더라도 "나 당신 만나서 기뻐"라는 식의 감상만 드러내는 말만 한다. 심지어 몇 마디는 거짓말이다. 조커를 만나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사랑에 서툰 아서. 리의 존재 때문에 조커와 아서 사이에서 조커를 고른다. 후술 할 리와 메리언 사이의 대립으로 보여주는 정체성의 충돌이 서툰 사랑 때문에 이도저도 아니게 됐는데, 이 요인에 리가 있는 것이다. 이 정체성 대립이라는 측면에서 반대편의 할리 퀸이 등장한다. 바로 변호사 메리앤(캐서린 키너)다. 메리앤이 직업인으로서 펼친 주장은 간단했다. 아서는 인격이 분리됐고, 조커로서의 자아가 사람을 죽이고 다녔다는 점을 강조하는 일종의 심신 미약 논리다. 메리앤은 변호사로서만 아서를 돌본 것이 아니라 진짜 진심으로 그를 위하기도 했다. 교도관들이 아서에게 우산을 씌워주지 않는 것을 보고 "우산 안 씌워주면 누가 죽냐"라고 핀잔 섞인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 그렇다. 또 아서와 조커가 분리됐다는 논리에 근거를 덧붙이는 작업도 했었다. 인터뷰를 잡는다거나 의사와의 상담이 그랬다. 법정에서도 하비 덴트의 논리를 공박할 때 '당신이 아서에 대해 뭘 아느냐'라는 식의 논리를 펼친다. 리가 아서를 버린 것과 반대로 매리앤은 진정성 있게 아서를 대한 것이다. 단지 아서는 리가 부풀린 조커로서의 자아 때문에 무리수를 뒀을 뿐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아서가 현실적인 걸 고르지 않았나? 아니다. 매리언은 할리퀸이 극에 끼친 영향처럼 아서가 후반부에 선택하는 데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할리퀸이 조커에게 '당신은 조커예요'라고 말하듯 아서에게 '당신은 아서예요'라고 말했던 것이 효과가 있던 셈이다. 이 두 할리퀸이 가로지르는 정체성의 딜레마는 <조커> 전작이 가졌던 딜레마기도 하다. 아서 플렉, 그러니까 조커는 어떤 존재일까? "당신은 죽어도 싸!"라는 논리 하에 유명하면서도 무례한 사람만 골라 처단하는 인물일까? 아니다. 조커는 그냥 자의적으로 죽이고 싶은 사람을 죽여야 세상에게 내가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하지만 조커는 살인마와 소시민 사이에서 널뛰기한다. 단지 후반부에 아서가 조커를 골랐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명의 아버지를 경유한다. 이 <조커 : 폴리 아 되> 역시 <조커>와의 유사성을 띤다. 두 명의 아버지가 조커와 아서 사이의 정체성을 널뛰기하다 1편의 아서로 귀결 짓듯 두 명의 할리퀸이 2편의 아서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세 가지중 둘째. 망상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 영화에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부분은 뮤지컬 파트다. <조커: 폴리 아 되>에서 아서 플랙의 망상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렇다. 전작 조커에서 아서는 망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점차 자신의 어두운 본성을 드러낸다. 그가 망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기점이 있다. 후반부에 이르러 어머니 페니를 살해하며 아서 본인이 망상이 심하다는 것을 자각한다. 이 과정에서 아서는 자신이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지하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사실(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망상을 현실같이 표현할 필요 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망상을 망상답고 더 내면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영화의 '폴리 아 되'를 표현하는 핵심 키워드다. 아서가 현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지 않더라도, 영화 내에서는 아서가 여전히 망상 속에 빠져 있다는 점을 뮤지컬 형식으로 명확히 시각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감독은 아서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망상의 정도를 표현하면서 얼마나 아서가 허황된 꿈에 취해있는지를 암시하는 것이다. 관객도 처음부터 그가 망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뮤지컬 장면이 아서의 캐릭터성을 설명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누군가는 이런 장치가 지나치게 직관적이라는 비판을 할 수 있다. <조커>에서 망상과 현실사이를 널뛰기하는 플롯으로 '뭐가 진짜지?' 토론하는 재미도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영화 속 망상 장면을 뮤지컬로 표현한 것은 단순히 아서의 망상을 설명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아서가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전제를 이미 깔고, 그 구분이 없는 아서의 내면을 관객이 더 직관적으로 체험하게끔 뮤지컬을 사용했다. 그 결과, 이런 방식의 연출은 아서의 심리를 보다 생동감 있게 전달하며, 오히려 아서가 망상 속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를 더 확실히 보여준다. 이 선택은 1편의 플롯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아서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좋은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세 가지중 둘째. 이 영화가 가진 문제의식이다. 우선 영화 <조커>가 다룬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 있다. 전작 <조커>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 중 하나는, 이 작품이 한 사회의 단면을 가감 없이 다뤘기 때문이다. 아서 플랙이 조커로 흑화 하게 된 이유는 (행위의 악함과는 별개로) 인간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머니 페니의 학대로 인한 망상장애, 노동환경의 열악함, 사회구조적으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의 처지, 그리고 조커를 조커로 만든 사람들이 그 예다. 이 모든 요소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미디어'다. 미디어는 아서가 '웨인 엔터프라이즈' 직원 세 명을 살해한 사건만 보도하고, 페니의 죽음 같은 일은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 또한 아서가 코미디언으로서의 자아를 포기하는 사건인 '머레이 쇼'의 방송분 역시 미디어를 이용한 폭력이다. 셋째로 영화의 첫 장면에서 "청소부들이 쓰레기를 안 치워서 쥐가 들끓는다"는 대사는 미디어가 노동 현장에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보여주는 대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미디어는 성실하지 못한 존재다. 페니의 죽음에 대해 취재하지도 못했고 아서를 조커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미디어의 악영향이 아서의 개인적인 불행들과 시너지를 이루어, 조커라는 캐릭터가 관객 입장에서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전작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은 조커: 폴리 아 되에서도 미디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아서, 조커 둘 다 카메라를 통해 비치는 장면이 있다는 점이다. 매리언이 아서에게 '당신은 조커가 아니라 아서예요. 아서를 보여주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이 과정을 카메라로 녹화한다. 아서를 진짜 위했던 매리언조차도 보이는 이미지를 신경 쓰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녀는 미디어를 통해 재판 승소를 노린 것이다. 법정 장면에서도 아서는 판사가 아닌 카메라를 의식한다. 굳이 따지자면 판사에게 '나는 조커가 아니다'라고 말해야 설득력이 있다. 판결 내리는 건 판사니까. 그런데 아서는 카메라에 대고 굳이 말한다. 조커라는 존재가 인정받았던 계기가 미디어였다는 걸 아서가 스스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내린 행동이다. 아서가 "난 할리를 사랑해"라고 말할 때, 할리 퀸이 TV를 보며 유리창을 깨고 TV를 가져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아서에게 연락을 하는 게 아니라 TV를 가져가는 것이 할리퀸이 조커를 사랑하지 아서를 아끼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이 미디어의 존재에 따라 갈리는 인물들의 리액션은 극후반부의 폭탄 테러와 아서가 군중들에 의해 탈출을 시도하는 장면에서 명확해진다. 아수라장이 됐다. 조커는 정신을 잃은 채로 길을 배회한다. 지나가던 조커 추종자가 차에 탑승해서 아서를 탈출시키려고 한다. 여기서 아서는 조커로서 선택받게 된다. 하지만 아서가 내린 판단은 전적으로 아서의 것이다. 군중들이 원하는 조커라면 법정을 탈출해서 사람들을 조종해야 하는데 냅다 도망가버린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것과 관객이 알고 있는 실제 현실 사이의 괴리를 명확하게 그린다. 가짜 조커들이 아서에게 기대한 모습이 '폴리 아 되(망상)'이었더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이 괴리가 발생한 이유? 아서는 처음부터 관객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 세계관의 군중들은 아서를 미디어를 통해서가 아니면 접할 수 없다. 카메라를 통해,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모습이 인물들의 행보를 가른 걸 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셋째. 전작을 승계하면서 전적으로 부정하는 이미지들이 <조커>와의 연속성과 차이점을 불어넣는다. 전작 조커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는 계단을 내려오며 춤추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조커의 추락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면서, 그의 홀가분함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조커: 폴리 아되>에서의 계단(장소도 같은) 신은 다르다. 이번엔 계단 장면에서 더 이상 무겁거나 상징적인 춤도 없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고된 과정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저 할리 퀸이 계단에 서 있고 아서는 할리퀸을 좋아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올라간다. 이 영화처럼 조커 내면의 아서 플랙을 그리고 싶었다 하더라도 계단 신에 의미를 부여해도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적으로 그걸 거부한다. 전작에서 그렇게 상징적인 장면으로 성공을 거뒀는데, 이번에는 그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어버린 것이다. 전작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은 조커의 추락과 흑화의 이유를 면밀하게 보여주는 하강의 이미지를 상징했는데, 이번에는 상승에 이유를 붙이지 않는다. 아서가 범죄를 저지르는 데는 많은 이유가 필요할지 몰라도, 우리가 행복한 이유에는 그리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영화는 이런 식으로 전작의 이미지를 비튼다. 예를 들어, 전작에서 아서가 두들겨 맞았던 길거리를 전속력으로 질주해서 조커로서의 자아를 할리 퀸 앞에서 표출하는 장면도 있었다. 아서의 이야기가 처음 시작됐던 곳에서 조커의 자아가 붕괴된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또 생방송 중에 조커 분장을 하고 "아캄의 돼지 같은 교도관들"이라고 외친 후 굳이 두들겨 맞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전작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부정하는 요소다. 전작 <조커> 1편에서도 생중계되는 방송에서 머레이를 공격했다 아무 지장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아서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묘사했다. 이렇게 영화는 전작의 연속성과 차이점을 동시에 표현하면서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굉장한 창의성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 대해 쓰고 싶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바로 조커의 캐릭터성을 영화 안에 구현했다는 점이다. 기존에 조커가 미디어에 나온 경우를 생각해 본다. 히스 레저가 연기한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였지. 조커가 전하는 가족 이야기는 매번 달랐고, 목표가 돈인 것도 아니라 악행을 펼치고 사회를 혼란시키는 것이 캐릭터의 욕망이었다. 캐릭터를 규명하지 않는, 즉 어디로 튈지 모르는 느낌이 조커의 본질이었지.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잭 니콜슨)는 유희적인 면모가 강조된 인간이었다. 그저 자기가 재밌으니까 나쁜 짓을 하는 인물이다. 죽을 때도 까르르 웃고 죽을 정도로 이상한 면모가 가득한 캐릭터였다. 맷 리브스의 조커 역시 그가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설명 없다. 배트맨과의 대화 장면만 짧게 보여줄 뿐이었다. 나는 조커라는 캐릭터의 핵심이 바로 규명할 수 없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조커를 실사화한 영화들이 그랬듯 말이다.
하지만 이 '조커' 시리즈는 전적으로 다르다. 아서 플랙에게 명백한 이유가 주어지고, 그가 악당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이미 이 영화의 조커는 처음부터 기존과는 다르다. 완벽하게 대치된다. 그 대신 우리가 아는 조커의 이미지를 구현해야 제목과 캐릭터에서 배트맨 세계관을 빌려온 근거가 성립된다. 이걸 어디서 찾았을까? 글쓴이는 1편과 2편 사이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기존 '조커'와 판이하게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 그러니까 전통적인 조커의 특징을 뒤엎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1편의 조커가 그려왔던 2편의 망상이 원인을 뭉개버린다는 점에서 전형성을 거부하는 '조커'의 전통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또한 이야기 내적으로 망상에 빠져있는 아서 플랙의 캐릭터성을 살리는 데에도 생동감을 부여한 선택이었다. 영화가 1편이 있어 2편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1편의 상황이 망상이 되어 2편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두 영화의 연속성을 처음부터 망상으로 이은 것이다. 이것이 기획의도라면 사실 굳이 조커의 캐릭터를 강조할 이유가 없다. 기획의도에 충실할 것이라면 아서에 집중하는 쪽이 합리적이다. 이것은 할리퀸이 언급하는 '조커가 주인공인 영화'에서도 심화되는 지점이 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이 대사 굳이 필요 없다. 조커가 나온 뉴스 40번 읽었다고 해도 이야기상의 결함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굳이 영화였어야 했던 이유. 영화가 상상에서 그린 예술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1편에서 조커 추종자들이 그린 악의 이미지가 허상이었던 것처럼 <조커>라는 영화에서 그린 조커의 이미지를 극 중 극의 형식으로 통렬하게 조롱한다는 단면이 여기서 읽힌다. 이 망상으로 1편과 2편을 이으면서 충돌시킨 선택은 영화가 악을 보여주는 데 있어 아주 좋은 선택이기도 했다. 1편에서 꿈꿔온 2편, 1편에서 기억하는 대중들의 조커에 관한 이미지, 할리퀸에 대한 아서의 생각, '이렇게 하면 먹힐 거야'라는 법정에서의 안일함 등 1편에 근거한 2편의 판단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를 보여주는 장치였다.
이런 점에서 엔딩은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보이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규명할 수 없는 악이 조커라면서, 영화의 마지막에 조커가 죽는 건 명확한 결말 아닌가?"라고. 하지만 난 이 영화에서 조커가 의인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규명할 수 없음 / 조커의 정체성 둘 다 동시에 살렸다고 본다. 마지막 아서를 살해하는 남자는 초반부부터 소름 끼치게 웃는다. 여기서부터 아서와 공통점을 가진다. 결정적으로 마지막 장면에서 “넌 죽어도 싸!”라고 말하면서 아서를 살해한다. 영화가 고의적으로 아서와 남자를 겹치게 보여준 것이다. 글쓴이는 이 남자가 아서 플랙의 후임, 즉 또 다른 조커라고 생각한다. 그는 조커 추종자가 아닌 아서 플랙의 계승자가 된 것이다. 이 장면은 아서가 머레이와의 토크쇼에서 자살을 시사하다가 결국 머레이를 살해했던 장면과 오버랩되면서, 영화가 두 사람을 통해 "공유된 광기"를 조커라는 캐릭터로 보여줬다고도 읽을 수 있다. 결국, 영화는 악을 의인화하기보다는, 조커라는 이름 아래 공유되는 광기와 혼란 그 자체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이 영화는 조커가 아닌 아서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그 방식은 전례를 따르지 않았고, 조커처럼 규명할 수 없는 캐릭터를 새롭게 정의했다는 점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 되는 것이다.
불호평이 압도적으로 많은 영화다. 누군가는 진짜 조커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전작의 장력을 스스로 거부했다면서 영화에게 야유를 보낸다. 글쓴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작만큼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충분히 현대사회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감정적인 폭이 넓고 조커의 캐릭터성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뮤지컬 시퀀스들이 그렇게까지 완성도가 높지는 않아보인다는 점과 난해한 플롯, 느린 템포가 대중영화로서 합격점을 가지기 어렵다는 점은 동의한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영화가 충분히 좋은 후속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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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 다가온 위험을 경고하다.
보이스 (On the Line, 2021)
개봉일 : 2021.09.15
감독 : 김선, 김곡
출연 : 변요한, 김무열, 김희원, 박명훈, 이주영, 조재윤, 이규성
일상에 다가온 위험을 경고하다.
보이스피싱. 목소리를 통해 사람을 낚아 올리는, 목소리로 피해자들을 우롱하는 사기 행각. 내가 어릴 땐 어색한 한국말 또는 낯선 사투리. 누가 봐도 수상한 번호로 택배 박스를 뒤져 찾아낸 우리 집 강아지 이름 같은 것을 이야기하며 납치범 행세를 하는 것. 어르신들이 주로 당하는 것. 같은 게 보이스피싱이었고 실제로 그때 받았던 피싱 전화들은 대부분이 어색하고 우스운 수준이었다. 한때는 이 어설픈 사기 행각을 소재로 삼은 개그 프로를 보며 함께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는데, 요즘은 보이스피싱도 무서울 만큼 진화했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자주 오르내린다.
피해 금액도 눈덩이 커지듯 불어나고, 피싱 조직의 몸집은 제어할 수없이 커져가고 있으며 그 수법 또한 교묘하고 그럴싸하다고 한다. <보이스>는 간절하게 취업을 바란 면접자들, 가족을 아끼고 걱정하는 사람들 등.. 선량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피와 생명 같은 돈을 털어내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뿌리를 파고 들어가 그들의 악랄함과 광기를 선명하게 잡아낸다.
피해자들의 눈물과 고통 같은 건 범죄자들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얼마의 돈을 입금 받고, 오늘 수익 전광판에 얼마의 금액이 찍히는지. 내가 벌어갈 돈은 얼마인지. 이들 눈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숫자만 보일뿐. 사람이 돈 앞에서 얼마나 악랄하고 이기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아주 잘 봤다.
<씨네 21 1323호>에서 김성훈 기자님이 이들의 모습을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월가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표현한 글을 봤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 표현을 바로 이해됐다. 월가에 비해 주변이 더 지저분하고 수시로 불법적 돈 세탁을 해댄다는 것만 다를 뿐. 돈 앞에서 뿜어내는 광기와 짐승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이 정말 닮았다. 특히 어쨌든 약육강식의 세계고 어차피 누군가의 피를 빤다면 즐겁게 빨아야 한다고 외치는 피싱 조직의 간부 곽프로를 보며 “미친놈이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만큼 김무열 배우님의 연기가 정말 훌륭했다.)
영화를 보기 전, 건설 현장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단체 커다란 보이스피싱 사건이 일어났다는 시놉시스를 읽었을 땐 “어떻게 건설 현장에서 단체 사기 사건이 일어날 수 있지?”궁금했다. 보이스피싱을 겪어본 적도, 주변에서 당했다는 사람도 만나본 적이 없어 보이스피싱의 세계가 이렇게 커다랗고 조직적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이스>는 마치 개미굴처럼 깊고 은밀한 보이스피싱의 세계를 만천하에 공개하며 아직 실감해 본 적 없는 이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준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세밀하게 팀을 나눠 운영한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언제 어디서 걸려도 금방 꼬리를 잘라낼 수 있도록 말이다. 콜센터, 대본, 돈세탁 담당, 입금과 동시에 여러 갈래로 쪼개져 돈을 쓸어 담는 조직원들. 착착 맞아떨어져가는 이들의 빌어먹을 호흡에 피해자들의 피 같은 돈은 손쓸 틈 없이 빠져나간다.
주인공 서준의 아내 미연도 맥없이 이들의 수법에 당하고 마는데, 그는 지지부진한 수사 진행과 지저분한 범죄자들의 욕망 앞에서 죽어가는 동료들과 아내를 위해 중국에 있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심부에 잠입한다. 그리고 상상했던 것 이상의 커다란 악과 이기심을 마주하게 된다. 무기도, 지원해 줄 인원도 없이 홀로 조직의 본거지에 뛰어들어 고군분투하는 서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초능력이나 화려한 무기가 없을 뿐이지 이야말로 진정한 히어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초반부에 휘몰아친 사건들로 높아진 긴장감이 한두 번쯤 느슨해지는 순간이 있는 것과 약간은 애매하게 느껴졌던 액션신이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꽤 괜찮았다. 망설임 없이 터트리고 뛰어드는 서준의 행동과 숨김없이 욕망을 드러내는 악역 곽프로. 체계적으로 쌓아올린 범죄 조직의 리얼리티. 그리고 시원하게 뻗어있는 결말로 향하는 길까지. 이번 연휴, 큰 고민 걱정 없이 범죄, 액션 장르의 통쾌함과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면 <보이스>를 추천한다.
보이스 시놉시스
부산 건설 현장 직원들을 상대로 걸려온 전화 한 통. 보이스피싱 전화로 인해 딸의 병원비부터 아파트 중도금까지, 당일 현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 같은 돈을 잃게 된다. 현장 작업 반장인 전직 형사 서준(변요한)은 가족과 동료들의 돈 30억을 되찾기 위해 보이스피싱 조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중국에 위치한 본거지 콜센터 잠입에 성공한 서준, 개인정보확보, 기획실 대본 입고, 인출책 섭외, 환전소 작업, 대규모 콜센터까지! 체계적으로 조직화된 보이스피싱의 스케일에 놀라고, 그곳에서 피해자들의 희망과 공포를 파고드는 목소리의 주인공이자 기획실 총책 곽프로(김무열)를 드디어 마주한다. 그리고 그가 300억 규모의 새로운 총력전을 기획하는 것을 알게 되는데.. 상상이상으로 치밀하게 조직화된 보이스피싱의 실체! 끝까지 쫓아 반드시 되찾는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누군가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해 피해자들의 돈과 희망을 빼앗아가는 범죄 ‘보이스피싱’. 미연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 서준이 행여나 잘못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휩쓸려 보이스피싱의 피해자가 되고 만다. 몰아치는 범죄자들의 연락과 그럴싸하게 연출되는 상황에 피해자들은 의심 없이 돈을 입금한다.
“선배님 가족이 당해도 가만히 있을 겁니까?”
길거리에 흘려진 셀 수 없이 많은 개인 정보를 노리는 보이스피싱 범죄조직들. 피해자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경찰들은 중심부를 잡아야 한다며 언제 올지 모르는 시기를 노리고만 있다. 피해자이자 이 사건을 해결하는 히로인인 서준은 진행되지 않는 수사에 지쳐 직접 그들의 본거지로 쳐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서준은 아수라장이 된 박실장의 사무실에서 사람들의 USB를 챙겨 나오고,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위해 슬쩍 전화선을 뽑는다. 그는 누구보다 정의심이 뛰어난 인물이다. 나와 내 아내의 복수를 넘어 불특정 다수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모습이 히어로가 따로 없다.
서준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 전, 커다란 마약 범죄 조직들을 소탕한 이력이 있는 팀의 에이스였다. 그는 마약 국내 유통책을 잡으려다 금뱃지 아들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형사직을 박탈당한다. 아마 영화에서 보여준 서준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서준은 유통책이 명망 있는 집안의 아들임을 알고도 잡지 않았을까 싶다. 서준은 옷을 뺏긴 이유마저 넘치게 정의롭다.
“보이스피싱은 공감이란 말이야.”
콜센터에 잠입하는데 성공한 서준은 드디어 김현수 변호사라며 아내를 속였던 곽프로를 만나게 된다. 3층 기획실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있는 그는 절망에 빠진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그들의 눈물을 보며 웃는다. 피해자들이 보이스피싱에 당했음을 알고 주저앉아 우는 모습과 곽프로가 웃고 있는 모습이 함께 재생되는 장면을 보며 마치 내가, 내 가족이 당하기라도 한 듯 울화통이 치밀었다.
곽프로는 서준에겐 복수를 꿈꾸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상관들의 뒤통수를 치려 준비하고 있는 가장 교활한 인물이다. 곽프로는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색이라 여겨지는 흰색의 옷을 위아래로 갖춰 입는다. 순수한 색의 옷과 그 위에 튄 핏자국이 더럽고 악랄한 인물의 본체를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만든다.
보이스피싱을 벌이는 콜센터 안은 마치 악마들이 모여있는 지옥 같다. 곽프로는 돈 없이 살아갈 바깥세상은 지옥, 헬 조선이라 말하지만 그보다 더 지독한 지옥이 바로 이곳에 있다. 돈 앞에서 이성을 잃고 날뛰는 사람들, 양심과 인류애 따위는 저 멀리로 던져버린 채 욕망으로 번뜩이는 그들의 눈빛, 그리고 같은 피해자임에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71번 여깄다!”고 소리치던 46번의 모습. 특히 46번의 이 모습은 46번을 애틋하게 바라보던 서준의 눈빛이 우스워질 만큼 비열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새로운 콜센터 직원들이 오면 가장 먼저 각자가 갖고 있던 물건과 이름을 빼앗고 새로운 번호가 적힌 유니폼을 입힌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에 걸려있던 인생과 양심 같은 것을 모두 내려놓고 죄책감 없이 사기행각을 벌인다. 이들은 나에겐 돈이 절실하다는 상황을 방패 삼아 피해자들의 생을 사정없이 찔러댄다.
콜센터가 발각되고 조직원들이 검거된 상황에서 46번은 끝까지 콜센터에 남은 정보들을 끌어모아 새로운 한 판을 제안한다. 여전히 보이스피싱 조직의 꼬리 자르기만 반복하고 뿌리뽑지못 하고 있는 현 상황이 훅 와닿는 결말이었다.
사실 <보이스>는 크게 기대하고 있던 작품은 아니었다. 동시에 개봉하는 <기적>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도 했고, 최초의 보이스피싱 영화라는 신선한 소재에 눈길이 가긴 했지만 개봉 전 공개된 평점이 예상외로 낮아서 기대감을 낮추고 관람했다. 기대감이 낮아서 그랬는진 몰라도 결로적으론 꽤 괜찮았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력을 제외하면 캐릭터 자체가 크게 입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점과 후반부의 다소 긴장감을 느슨하게 풀어버리는 느낌의 격투신은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알지 못했던 보이스피싱의 세계를 생생하게 전달하며, 일상에 드리워진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선사하는데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 ‘보이스피싱 백신 영화’라는 말이 정말 찰떡처럼 어울리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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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과 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
대학원 재학 시절 논문을 쓸 때 찾아듣는 오르골 소리 리스트 중에는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 있었다. 이 음악이 나의 집중력을 최대로 끌어올려주는 bgm이었는데 생각해보니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본 기억이 없어서 허겁지겁 넷플릭스에서 찾아봤었다.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 시놉시스
13살 초보마녀 키키의 아주 특별한 마법 같은 모험! 사랑스러운 초보마녀 ‘키키’는 검은 고양이 ‘지지’와 함께 빗자루를 타고 마녀 수련을 떠난다.항구 마을에 불시착한 키키는 첫날부터 우여곡절을 겪지만, ‘배달’에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본격적인 마법 수련을 시작한다.
*본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옛것의 도움, 그리고 자신의 능력
키키가 마녀수련을 떠나긴 직전 키키의 엄마는 빗자루를 자신의 것으로 들고 가라고 말한다. 이에 키키는 자신이 만든 빗자루가 좋다고 말하지만 엄마는 자신의 것이 훨씬 크고 길이 잘 들어졌으니 타기 편할 것이라며 다시금 추천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꼭 옛것이 나쁘고 새것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것인만큼 축적된 지혜가 있을테니 현재의 상황에 맞게 현재의 사람이 잘 활용하면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었다.
이 장면에서 좋았던 것은 키키에게 엄마가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것이 좋다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키키에게 선택권을 주면서 키키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끔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과거의 사람의 강요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있게끔 믿는다는 것이 좋았다.
좋아하는 것이 직업이 되었을 때
마녀 가문에서 마녀로 태어난 키키는 태어날 때부터 빗자루를 통해 날 수 있었다. 남들에게는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이 흠모의 대상일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키키는 이런 말을 한다. “직업이라서 매일 재밌는 건 아니야.” 이 말을 듣는 순간 다른 말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라는 말. 그런데 과연 그게 행복할까?
키키의 말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고 그것을 통해 경제 활동을 해야할 때는 당연히 따라오는 책임과 의무가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의무감이 다가올 때마다 과연 내가 이걸 진짜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게 커져가다보면 더 이상 하기 싫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아직까지는 정말 좋아하는 것을 그저 취미로만 남겨두고 싶은 생각이 아직 크다.
부모의 믿음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부모의 태도였다. 13살이라면 한국나이로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어린 나이다. 이 아이가 독립을 하겠다고 수련을 떠나는 키키를 향해 전혀 불안해하지 않고 키키가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부모의 태도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하다.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어떤 글에서 부모가 자녀를 위해 할 역할을 자녀가 살아갈 길을 앞에서 진두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힘들고 두려워서 뒤를 돌았을 때 그 자리에서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응원과 지지를 해주는 역할이라고 했다.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는 그 모습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를 밖에 내보내는 것이기에 불안하지만 자녀에게는 그런 불안함을 티내지 않고 잘 할 수 있다는 지지를 보내는 것. 그리고 작은 일 하나라도 키키 스스로가 해낼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지켜봐주고 닦달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들이 이 작품을 반드시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는 성장을 통해 가족 간의 관계에 대한 교훈을 주는 따뜻한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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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노라] 끝장리뷰 | 7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 빨간색과 흰색 | 노동자의 2주 해석 | 성노동자에 대한 견해 | 눈(snow) 상징
[아노라]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노동자의 2주
Chapter 2 이반과 이고르, 빨간색과 하얀색
00:00 황금종려상
00:37 귀여운 여인, 대부
01:51 노동자의 2주
03:46 편견, 자본가
06:34 이반과 이고르
08:01 빨간색 하얀색
09:10 별점 및 한 줄 평
09:28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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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착병 환자들의 이선생 찾기는 계속된다
?Rabbitgumi 입니다!
지난 주 영화 독전2가 넷플릭스에 공개되었습니다.
1편의 하이라이트와 결말부 사이의 일을 다루고 있어요.
감독이 바뀌었지만 등장인물은 그대로 입니다.
형사 원호와 락 그리고 브라이언이 극을 이끌죠.
큰칼이라는 강력한 캐릭터도 있죠.
그런데 영화가 많이 느슨합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에서 확인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업데이트하고 있는 영화 에세이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일반적인 영화 리뷰 보다는 보면서 떠올렸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정리하여 전달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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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슈퍼볼 예고편
"세상의 주인이 바뀌었다" 인류의 끝에 펼쳐진 유인원의 새로운 시대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슈퍼볼 예고편 공개 5월 극장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