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위험에 빠진 아이, 이상하고 귀여운 수호 동물과 마주치다
PROGRAM NOTE.
절친 타이스와 함께 수영 대회를 준비 중인 열한 살 소녀 아마. 아마는 스스로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네갈 출신인 아마의 부모님은 망명 신청을 거절당해 더이상 합법적으로 네덜란드에 거주할 수가 없다. 어느 날 남동생과 엄마가 불시에 잡혀가고, 도망친 아마는 아빠를 찾아 헤매던 중 거대한 호저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의 수호신>은 네덜란드에 있는 수많은 불법 이민자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실에서 착안한 판타지 영화다. <나의 수호신>은 자신의 집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쫓겨나는 상황에 직면한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집의 의미’를 묻는다. 이민자 이슈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논란 중 하나이지만, <나의 수호신>은 인권이라는 큰 틀 안에서 우정과 연민의 힘으로 해피엔딩을 맞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소망하는 작품이다. (최은영)
우리가 사는 도시를 집어들고 가방 털 듯 탈탈 털면, 거기서 후두둑 떨어지는 동물들은 개, 고양이, 햄스터… 같은 것만이 아닐 거라는 이야기를 어디에서 읽었더라. 생각지 못한 동물들이 후두둑 떨어질 거라는, 정글에서나 볼 거라고 생각했던 동물들이 실은 우리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그 말을.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나와 비슷한, 아주 닮지는 않았어도 대충 엇비슷한, 그리고 나와 다르지만 대충 예상했던 사람의 범위, 그 바깥의 누군가를 분명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도시 한복판에서 마주칠 거라 생각하지 않듯이.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익숙한지 아닌지 고작 그 문제다. 누군가의 상상력 하나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진 것처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려 본다면, 우리 모두 똑같이 그릴 수 있을 것처럼.
우리의 주인공 아마는 그렇게 도시를 탈탈 뒤집으면 조금 당혹스러울 법적 지위를 가진 채로,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살고 있다. 성격도 밝고, 공부도 잘하고, 네덜란드 최고의 수영 선수를 보며 꿈을 무럭무럭 키우고 있는 될성부른 수영 유망주 어린이이기도 한데, 대회 하나를 나가려고 해도 ‘써도 될 것’과 ‘써서는 안될 것’을 신중하게 골라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아마가 사는 집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마을 같다. 아이들을 씻기고 자신도 씻기를 즐겨 하는 이웃이 샤워기를 틀면 계단참으로 물이 주르륵 흐르는, 그만큼 연결되어 있는. 그러나 아마의 가족은 이런 상황에 불평을 일삼기보다 자연스러운 생활의 풍경으로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다. 아빠와 장난칠 때나 썼던 소금 통 하나를 사러, 그 심부름 하나로 아마의 생활이 영영 달라질 때까지는.
집에 있던 아마의 어머니와 동생은 “불법 이민자”여서 잡혀 가고, 아마는 놀이터에 숨어서 일을 나가신 아빠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아마의 세상이 전체적으로 기울어 있음을 관객은 이내 깨닫게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앵글이 항상 기울어 있다. 학교도, 경찰서도, 집 바깥도, 전부 다 기울어 있다. 아마가 아빠를 찾아 들어간 “드 로테르담” 건물, 아빠의 일터 또한.
이 기울기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이다. “불법 이민자”에 대한 편견은 말할 것도 없고, 아마는 스스로가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이 불법 이민자이고 그 편견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사무직과 청소 일에 대한 편견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일한 업체의 이름은 Sunshine services이지만, 역설적으로 선샤인이라고는 전혀 빛나지 않는 밤에만 일하고, 밤으로 취급받는다. 세계가 기울어 있는 것이 사실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서글픈 현실에 갑자기 거대한 호저가 나타난다. 영화 자막에서는 고슴도치로 번역되었지만, 호저는 고슴도치와 다르다. 꿀벌과 말벌 정도의 차이랄까. 고슴도치가 가시를 있는 힘껏 세워도 멀리서 (그러니까 그 가시가 나를 공격하기 않을 거리에서) 보면 귀엽겠지만, 호저가 가시를 세우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그로테스크하다.
나는 호저라는 생물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호저를 처음 봤는데, 심지어 인도의 동물원에서 야행성 동물들을 모아 놓겠다고 조명을 있는 대로 침침하게 해 둔 어둠 속에서 그 가시가 파르르 서는 모습으로 처음 보았다. 뭔데 저거. 뭐야. 왜 무서워. 무서움을 익히 아는 다른 동물보다, 전혀 모르는 생물의 가시가 더 무서웠다. 알고 보니 호저는 정말 만만치 않은 생물이었다. 호저의 가시에 공격을 받으면 맹수도 배겨낼 재간이 없다.
그러나 이 영화, <나의 수호신> 원제인 ‘토템’답게, 이 영화 속 거대한 호저는 귀엽기만 하다. 도시 속의 사람은 내지 못한 위로의 울음소리를 호저가 낸다. 제목이 <나의 수호신>인데 자막에는 ‘토템’으로 나와, 수많은 어린이 관객들이 엄마에게 “토템이 뭐야?”를 물어야 했음은 아쉬운 포인트지만… (참고로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토템은 “부족 또는 씨족과 특별한 혈연관계가 있다고 믿어 신성하게 여기는 특정한 동식물 또는 자연물. 각 부족 및 씨족 사회 집단의 상징물이 되기도 한다.”)
커피 머신도 사랑이 필요하다며 쓰다듬는 사람이 있는 도시에서, 아마는 그저 호저와 함께 걷는다.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면 같이 걸을 상대도 없는, 대도시 속 외로운 아이의 삶. 집이었던 곳은 경찰과 개의 손에 마치 범죄자의 소굴처럼 취급되며 서슴 없는 수색의 대상이 되지만, 호저는 깡통 차기 놀이 상대가 되어 준다. 마치 전통 속 여우 사냥의 한 장면처럼, 아마가, 사람이, 개에게 쫓기는 장면이 현실에서는 연출되지만 호저는 파르르 가시를 세워 아마를 지켜준다.
극중에서 호저를 볼 수 있는 인물은, 아마와 마음의 결을 같이 하는 이들뿐이다. 애초에 아마의 옆에 서 있었던 이들을 제외하면, ‘그리오grio’ 그러니까 가수이자 시인인, 노래로 이야기를 전해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게 하는 일을 사명으로 품은 이들밖에 없다. 이는 영화를 포함한 예술의 기능 중 주요한 한 지점을 짚는다. 기울어진 세상에서도 노래는 계속되어야 함을.
‘온 세계가 당신의 조국’이라는 네온사인이 무의미하게 빛나는 거대한 도시에서, 정작 도시 안에서 평생을 자란 사람을 밀어내는 도시에서, 아마는 호저의 등에 올라 기울어진 세상을 걷는다. 이 차가운 현실에, 이야기 하나를 놓는다. 그 순간 세상은 변한다.
기울어진 세상에서도 ‘상자 바깥에서, 틀을 깨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그들이 그리오grio의 후예, 그러니까 이야기가 잊히지 않도록 하는 이들인지 모르겠다. 아마가 외로운 여정을 걷는 내내 곳곳에서 아마를 먹이는 손길이 있었듯이, 이 외로운 도시를 가방 뒤집듯 탈탈 털면, 생각지도 못한 동물들이나 사람들과 함께, 환대의 손길 또한 함께 후두둑 떨어질 것이다.
아마는 앞으로도 기울어진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아마의 정체성은 ‘네덜란드인’에서 ‘경계인’으로 달라졌을 것이다. 사실은 우리 모두 경계인임을 우리는 언제 깨달을 수 있을까. 여기 계속 사는 거냐는 질문, 아마와 타이스 두 아이의 물음에 부모님의 대답은 동일했다. “그래, 당분간은.” 이사를 가든 추방을 가든, 결말이 어떻든 우리 여기서 당분간은 살아갈 존재들임은 동일하다. 도시를 뒤집어 탈탈 털면 후두둑 떨어질 존재들이라는 사실만큼은 동일하다.
그게 다르게 취급되는, 기울어진 세상을 우리 살아가지만, 이 기울어진 세상에서 노래와 환대의 손길은 계속되니, 새처럼 날아드는 그 손길과 멜로디를 따라 계속 헤엄쳐갈 일이다. 씩씩하게!
[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상영시간표]
9월 15일 20:00-21:37 롯데시네마 은평 5관
9월 17일 16:00-17:37 롯데시네마 은평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