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ong2023-11-06 20:16:56
상담이 필요한 금쪽이가 빙의를 경험하면 벌어지는 일
<톡 투 미> 스포일러 없는 리뷰
<톡 투 미>의 주인공은 호주의 어느 동네에 사는 미아다. 미아는 얼마 전 어머니를 잃었다. 외로운 미아. 사랑한다는 말을 못 했다는 것이 우울했다. 이런 미아는 친구들끼리 모여 재미있게 놀던 도중 한 아이가 꺼낸 ‘90초 빙의 챌린지’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친구 중 한 명이 가져온 손 모형에 누구든 다가와서 악수를 하면, 90초 동안 귀신과 빙의되는 것이 이 '90초 빙의 챌린지'였다. 자기도 직접 챌린지를 해보고, 친구들이 빙의하는 모습도 구경하는 미아. 하지만 일행 중 한 명이 미아의 어머니에 빙의한 모습을 보자 이성을 잃는다. 금기를 깨는 미아. 이후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톡 투 미>가 젊은 영화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여러 매체에서 유행하는 흐름을 잘 가져왔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 전면에서 우리가 잘 아는 소셜미디어들이 등장한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이 그 예시다. 두 소셜미디어가 등장한 후 릴스나 클립류의 짧은 영상이 유행했다. 이 바뀐 시대상을 반영하듯 이야기의 템포는 빠르다. 이 빠른 템포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에 있어 분명한 강점이다. 짧게 이어 붙인 장면이 속도감 있는 플롯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빠르게 전달한다고 해서 캐릭터들을 대강 묘사하지도 않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결핍이 하나쯤은 있으며, 각자가 가진 단점에 따라 움직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결함이 인물의 동기가 되는 셈이다. 이 인물들의 동기는 ‘90초 빙의 챌린지’에 대한 태도와도 직결되어 사실상 영화의 핵심으로 작동한다. 어떤 인물이 선을 넘고 또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설정이 호주 사회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했기 때문에 따라오는 단점도 있다. 이 영화의 사운드 믹싱이 관객들이 듣기 편한 상태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톡 투 미>가 '점프 스케어'가 아닌 시,청각적 요소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로 보인다. 감독의 욕심이 과욕이 된 것이다. 또 전체적으로 미야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플롯은 작위적으로 느껴지기 쉽다. 하지만 어디선가 봤던 시시한 오컬트 호러와는 종자가 다른 영화라는 점에서 추천하는 작품이다. 11월 1일에 개봉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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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뮤지컬영화 추천 인생은 아름다워
뮤지컬 영화 좋아하시나요?! 보통 뮤지컬 영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라라랜드가 아닐까 싶어요! 아니면... 위대한 쇼맨? 레미제라블?!
근데 보통 외국영화가 가장 먼저 떠오르잖아요? 이제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를 보게 된다면! 가장 먼저 한국의 뮤지컬 영화가 이거지? 라며 떠오르게 되실겁니다!
오늘은 한국의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줄거리 결말 살펴볼게요~
기본 정보장르 : 뮤지컬, 드라마감독 : 최국희출연진 : 류승룡, 염정아, 박세완, 옹성우개봉일 : 2022년 9월 28일평점 : 8.32스트리밍 : 쿠팡, 티빙, 웨이브기획 의도내 생에 가장 빛나는 선물 모든 순간은 노래가 된다!무뚝뚝한 남편 '진봉'과 무심한 아들딸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세연'은어느 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자신의 생일선물로 첫사랑을 찾아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한 아내 마지못해 그녀와 함께 전국 곳곳을누비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 남편과 흥겨운 리듬과 멜로디로 우리의 인생을 노래하는국내 최초의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여담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기존의 유명한 가요를 다수 활용하여 비주류의 장르를 조금이나 상쇄시켰지만 초반에 약간의 오글거림이 있지만 흥겨운 노래와 함께 감상하기 좋은 영화라는 평이 대다수였다.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는 코로나로 인하여 개봉이 2년 전이나 미뤄졌지만, 입소문에 힘을 입어 1위까지 올랐으나, 아쉽게도 흥행에는 실패하였다.후기 및 결말인생은 아름다워 결말을 살펴보자면 세연의 경우 첫사랑을 찾긴 찾았으나 사실을 알고 봤더니 내가 아닌 내 친구를 사랑했고, 그걸 안 진봉은 호탕한 웃음을 맞이하며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 중 하나이다. 영화 후반부에는 결국 세연은 죽고 난 후에 진봉은 세연이 하던 집안일을 하면서 세연의 마음을 이해하며 예전에 사망신고서를 작성하며 최 씨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며 영화는 마지막 진봉과 세연이 처음 만난 서울극장에서 노래를 마무리로 영화는 끝이 난다.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주크박스 영화로 이야기를 하면서 뮤지컬을 하는 영화이다. 처음에는 약간 진짜 이게 뭐지?! 하며 오글거리지만! 한번 쯤은 들어봤을 법한 노래가 나오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몰입하는 묘미를 가진 영화다.맨날 해외에서 멋진 뮤지컬 영화도 흥행하는 것처럼, 한국 노래로 만든 이런 영화도 많이 흥행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추천하고 싶다! 집에서 노래 따라 부르면서 팝콘 먹으며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한편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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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립과 외로움에 관한 엽기적인 고찰
스위스 아미 맨 (Swiss Army Man, 2016)
“고립과 외로움에 관한 엽기적인 고찰”
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모험, 코미디, 드라마, 판타지
러닝타임 : 98분
감독 :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출연 : 폴 다노, 다니엘 래드클리프,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리처드 그로스
개인적인 평점 : 3.5/5
스위스 아미 맨 줄거리
행크는 외딴 섬에 표류 중으로, 집에 돌아갈 모든 희망을 포기한 상태. 하지만 어느 날 매니라는 이름의 시체가 해변으로 떠밀려 온 후, 모든 것이 달라진다. 둘은 빠른 속도로 친구가 되고, 행크의 이상형에게로 돌아갈 대모험을 시작한다.
이 괴랄하고 감동적이며 슬프기도 한 영화를 어떻게 포장해야 할까… 오래 고민했다.
<해리포터 시리즈>속 해리로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내며 ‘해리포터’라는 이미지에 갇혀있던 배우,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가장 파격적인 일탈로 꼽히는 영화이자 이번에도 범상치 않은 폴 다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그리고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B급인듯한데 왠지 감동적이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 허? 이게? 대체? 싶어서 헛웃음이 나다가도 어느새 스며들어 버리는 영화. <스위스 아미 맨>은 대략 이런 영화다. (아, 그리고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시체 연기를 한... 파격적인 영화로도 유명하다...)
<스위스 아미 맨>을 처음 봤을 때, 방구석에 앉아 혼자 몇 번의 헛웃음을 발사했다. “미치겠다…”는 말과 함께. 시도 때도 없이 부르륵 방귀를 뀌어대는 시체와 너무 오래 고립되어 미치기라도 한 건지 시체에게 말을 걸고 시체를 이용(?) 하기까지 하는 남자. 다르게 본다면 비위가 상하는 이 상황이 나에겐 웃기고도 슬프게 다가왔다면… 단박에 믿어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영화의 표현법은 신박하다 못해 엽기적이다. 인류 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된 것으로 보이는 무인도에 떨어진 남자 행크와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람 ‘이었던' 존재 매니. 별별 형태의 우정을 다 봐왔지만 시체와의 우정은 또 처음이다. 대체 이걸 어떻게 풀어가려고 이러는 거지?싶었는데 이걸 또 그럴싸하게 풀어내는 재치에 난 모든 걸 다 내려놨다.
줄거리만을 보면 이게 대체 무슨 영환가 싶겠지만 놀랍게도 <스위스 아미 맨>은 사회에서 느끼는 열등감을 피해 스스로 고립된 사람의 모습을 그린 다소 씁쓸한 영화다. ‘그냥 미친 영화’가 아니라는 거다.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찾는다면 <캐스트 어웨이>와 우리 영화 <김씨 표류기>가 있겠다. 그중에서 <김씨 표류기>와 비교를 해보자면 이렇다.
<김씨 표류기>는 자살을 결심한 주인공 승근이 운수 좋게(?) 살아남아 무인도에 갇힌 채 그 안에서 또 다른 외톨이 정연과 함께 삶의 목적을 찾는 여정을 보여주고, <스위스 아미 맨>은 앞 사정은 알 수 없지만 현재 무인도로 추정되는 곳에 쓰레기처럼 버려진 주인공 행크가 파도에 밀려온 시체 매니를 등에 업고 다시 도시로 가기 위해 벌이는 모험을 보여준다. 두 영화의 주인공 모두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이며 이들은 상처를 잔뜩 받고 ‘무인도’라는 분리된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을 바엔 차라리 혼자가 되어버리는 게 편하다며 스스로 고립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현대사회의 모습과 닮은 모양새다.
그렇게 고립된 주인공들이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에서 다시 삶의 희망과 우정을 찾는 외톨이들의 여정은 희망과 씁쓸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다만 <김씨 표류기>는 희망 쪽에 가까웠다면 <스위스 아미 맨>은 씁쓸함에 좀 더 가까운 영화다. 줄거리만 보면 전혀 상상이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쓸모없는 사람
행크가 어떤 방법으로 무인도에 들어왔는진 확실히 나오지 않지만, 그가 무인도로 들어오게 된 이유는 확실하다. 매니와 행크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행크는 어릴 적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했고 아버지와의 사이도 그다지 좋지 않다. 그는 짝사랑하고 있는 대상에게 말 한번 제대로 걸지 못하고 늘 조용히 바라보기만 한다. 어디에도 진하게 속하지 않고, 어디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 사회에서 행크는 딱 이런 사람이다. 행크는 그렇게 흘러 흘러 사회와 담을 쌓고 무인도에 이른다.
매니가 행크에게 왜 이 물건들이 버려졌는지 이유를 묻자 그것들은 텅 비고 쓸모를 다했기 때문에 버려진 것이라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어쩌면 이 쓸모없어서 버려졌다는 대답은 쓰레기가 아닌 자신을 주체로 하는 답변이었을지도 모른다. 고립된 무인도에서 자살까지 결심했던걸 보면 말이다.
쓰임새가 너무 다양한 시체와의 만남
파도가 잔잔하게 들이치고 있는 해변가. 꾀죄죄한 몰골을 한 행크가 자살을 시도한다. 이 풍경도 이제 끝이겠구나-하며 마지막으로 바다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해변에 누워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놀라는 바람에 얼떨결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가 되어버린 행크는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매니의 등장은 죽음만을 바라던 행크가 살길을 찾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행크는 자살을 위해 묶어뒀던 밧줄을 주워 매니의 몸에 감고 집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처음엔 살아있는 사람인 줄 알았고, 그다음엔 시체인 것까지 알았는데…? 어째 이 시체는 기능이 너무 다양하다. 매니는 말도 하고, 빗물을 받아 정수기처럼 쓸 수도 있고, 무기가 되기도 하고, 건축 장비가 되기도 한다. 매니는 마치 맥가이버 칼같다. 남자들의 로망 그 자체인 만능 맥가이버 칼 말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스위스 아미 맨>인지 짐작할 수 있다. 국내에선 맥가이버 칼로 불리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와 매니의 특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만능 칼이라 불리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처럼 매니는 행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다. 위에 말한 것처럼 생존을 위한 기능들부터 자신의 상처들을 털어놓는 말벗과 의지가 되는 친구로서의 역할까지. 모든 걸 뚝딱 해내는 행크에게 필요한 단 하나의 만능 칼. 그게 바로 매니다. 매니는 행크에게 생존 도구와 말벗이 되어주고 행크는 매니에게 인간으로서의 삶을 알려주며 돈독한 우정을 쌓아간다.
사실 이 만능 시체, 매니의 존재가 너무 비현실적이지만 그저 웃음만 날뿐, 그의 존재를 부정할 수가 없었다. 또 행크가 매니를 의지하기 시작하면서 더더욱 매니의 존재가 이상한 것이 아닌 소중한 것으로 다가오는데… 나는 이렇게 조금씩 매니의 존재에 스며들었다. <캐스트 어웨이>엔 배구공 윌슨, <김씨 표류기>엔 허수아비가 있다면 <스위스 아미 맨>엔 시체 매니가 있다. 뭐…그런 거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인정하게 됐다.
의외의 곳에서 얻은 위로
행크는 매니와 함께 모험을 하며 매니의 말에 위로를 받는다. 상황은 조금 웃기지만 행크를 위로하는 매니의 말들은 시체답지 않게… 따뜻한 구석이 있다.
“나도 너랑 똑같이 하면 넌 이상하지 않잖아.”
“엄마는 행크가 행복하길 바랄 텐데..”
“우린 서로가 있잖아!”
지칠 때마다 듣고 싶은 간단하지만 가장 강력한 위로의 말들. 행크는 매니의 위로를 등에 업고 용기를 내 세상으로 나간다. 하지만 슬프게도 잠시 그리워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큰 관심이 없고, 짝사랑한 그녀는 연인과 아이가 있고, 다른 사람들은 매니를 그저 오래된 시체로 볼 뿐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행크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행크가 바란 건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함께해 주는 것뿐이었는데 그 작은 바람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희망을 잃은 행크는 겨우 돌아온 도시를 등지고 매니와 함께 바다로 향한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 도시보다 차라리 시체와 함께 바다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선택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씁쓸해진다. 영화의 마지막엔 모두 보란 듯 매니가 방귀를 이용해(…) 넓은 바다로 떠나는 모습을 꽤나 희망차게 담아내긴 하지만, 결국 그곳에 혼자 남겨질 행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되어 마냥 유쾌하게 느껴지진 않는 엔딩이었다.
생각해 보면 행크는 매니를 만나기 전까진 무인도를 탈출할 마음이 아예 없었던 것 같다. 매니에게 여러 도움을 받긴 했지만, 사실 혼자서도 탈출할 수 없을 만큼 바다와 마을의 거리가 엄청 멀거나 위험한 요소가 많지도 않았다. 행크가 적극적으로 탈출에 나선 이유는 그가 짝사랑한 새라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매니를 통해 얻은 희망과 용기가 더 큰 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묵묵히 나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함께해 주는 친구. 이런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용기를 내어 살아가기엔 충분한데 내가 이런 친구가 되어주기도, 이런 친구를 만나기도 참 어려운 게 문제다.
영화의 초반만 해도 이럴 줄 몰랐다. 그냥 이마를 짚으며 하…방귀 ㅋㅋ……하며 한숨을 쉬던 내가 이렇게 이 영화에 진심으로 몰입하게 될 줄은. 분명히 호불호가 심하게, 그것도 불호가 꽤 많을듯한 영화지만 비위가 강한 편이라면, 병맛 코드를 좋아한다면,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폴 다노 두 배우를 좋아한다면 도전해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말하는데… 방귀의 모멸감과 어이없음을 참고 넘길 참을성과 비위가 없다면 슬쩍 까치발 들고 피해 가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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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 여름(2023)> 리뷰
최은영 작가는 『쇼코의 미소』로 처음 만났다. 이 책이 좋은 인상을 남겼음에도, 본디 나는 한 작가의 모든 책을 독파하겠다는 멋진 목표를 세우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므로, 애써 그의 작품을 찾아 읽진 않았다. 그러나 이번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인 <그 여름(2023)>을 감상한 후 오랜만에 작가의 이름을 검색하고 ‘찜 목록’에 『그 여름』을 빠르게 추가했다. 원작이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 스포일러 주의
<그 여름(2023)>은 로맨스/드라마 장르의 애니메이션답게 스토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고등학생인 이경과 수이는 열여덟 살 여름 처음 만난다. 기실 첫 만남이 썩 좋진 않았다. 축구선수를 꿈꾸던 수이가 찬 공에 이경의 안경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연으로 색칠된 사건은 사랑으로 확대된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수이는 딸기 우유를 매일같이 사 왔다. 염려와 걱정으로 시작했을지도 모르는 ‘몸은 좀 괜찮니,’라는 서투른 한마디가 만남을 위한 구실로 변했을 때 둘은 자연스럽게 이 감정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수이와 이경, 두 사람이 마주한 사회는 그다지 녹록지 않다. 비교적 ‘일반적’이라 여겨질 수 있는 요소마저 약간의 ‘다름’이 첨가되는 순간 공격 대상으로 둔갑하는 곳이므로. 예컨대 이경이 자연적으로 타고난 갈색 머리카락과 눈은 비아냥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악의에서 비롯된 공격을 막아주거나 돕는 이도 적은지라, 수이의 부상은 다시금 아프게 벌어진다. 게다가 수이 개인이 품었던 기나긴 인생의 꿈이 순식간에 지워졌음에도 그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것뿐, 제대로 된 치유 과정조차 묘사되지 않는다. 고작 십 대 소녀 두 명에게 세상의 부조리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싸우라 요구하는 건 부당하다. 수이와 이경의 대응은 자그맣다. 스쿠터를 타고 길을 달린다. 많은 이들이 모르는 저수지의 조그마한 안식처로. 그곳에서 꾸는 꿈은 무엇보다도 달고 찬란하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떠나 과거와의 시공간을 잠시 끊어냈을 때, 봄이 흐르고 여름이 되었을 때 약속하는 먼 미래에서 이경은 불안을 감지한다. 우리가 그때까지, 그때까지 정말 함께일 수 있겠는가. 고대 그리스의 프시케 신화에서도 지적했듯 한 차례 의심이 깃든 자리에 사랑이 자리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 생활은 모든 걸 바꾸어놓았다. 서로가 공유하는 시간부터 인간관계를 비롯한 전반적인 문화는 물론, 털어놓는 꿈의 내용까지. 그저 습관 같은 사랑만 남아 존재한다. 비슷한 공간과 제약에 시달렸던 때엔 몰랐던 차이가 점차 거대해져 무겁게 이경을 압박한다. 이경은 결국, 간호사로 일하는 은지를 만나며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제목은 '그 여름'이지만 애니메이션에서 묘사된, 두 사람이 실로 안정되어 있던 시간은 겨울이다. 영원하길 바랐던 한 순간을 꼽아야 한다면 겨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궁금할 만큼 안정적이고 따스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그리고 소설의 제목이 여름에 주목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십 대 마지막에 시작하여 이십 대 초반에 끝난 연애의 찬란함과 쓰라림이 모두 환한 빛으로 칠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죽기 직전에 이런 풍경만 기억하겠지,라고 독백한 이경이 묘사한 시간은 여름철의 몸짓이었다. 다만 그렇기에, <그 여름(2023)>은 다분히 이경의 목소리로 전개되는 이경만의 이야기이며 미숙했던 시절에 대한 헌시이다.
<그 여름(2023)>은 기본적으로 이경이 수이와의 관계에서 벌어진 사건을 회고하는 이야기지만 수이는 연인임에도 잘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말과 감정으로 인생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부딪혀오는 사건에 몸으로 버텨내고 생존을 증명함으로써 단단해지는 부류의 사람. 이런 수이를 이해하고 포용하기에 이경은 어렸던 듯하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며 헤어져선 안된다는 것을, 헤어진다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 두 사람에게 상처가 될 것이며 후회가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후회하게 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운동을 하며 한 사람의 몸으로 모든 것을 감내해 왔다고 묘사되는 수이는, 이별을 고하는 이경에게 말한다. 어차피 삶이란 다 그런 것이니까 괜찮다고. 다들 이렇게 사는 거니까, 괜찮으니까 가라고. 그리고 자신에게 물건을 돌려주고자 수이의 월세방에 온 이경에게, 수이는 말한다. 왜 돌려줘, 그냥 갖거나 버리지. 헤어지게 되면 이경이 부르는 자신의 이름을 들을 수 없게 된다는 것에 슬퍼하는 수이에게, 이경은 그야말로 전부였다. 전부였기에 전부를 내어줬고 삶으로 말했다.
다른 때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이며, 자신이 이별을 후회하리라는 것을, 이경 역시 알고 있었다. 이렇듯 알면서도 하는 선택은 어리석지만 한편으로는 숙명적이기도 하다.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자기 충족적 예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따금 그 흐름에 스스로를 맡기며 기꺼이 자멸한다. 이 시절이 흐른 후 수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은지와 고작 일 년가량에 불과한 연애를 끝마쳐야만 했다는 이경은 또 어떤 삶을 살았을까. 후회하지 않았을 리 없는 삶이지만 충실했다면 그것만으로 인생 혹은 사랑은 긍정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어차피 실패와 성공은 다분히 자의적인 것이기에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경의 선택은 삶이 유혹하는 어떠한 불가항력에 대한 수긍이라 할 수도 있을 테니까. 시계가 반사하는 그 반짝임, 순간의 일렁임에 눈을 돌리고 마는 천진한 실수에 대해 무어라 하겠는가. 다만 이것 혹은 저것, 이라고만 세계를 확정 짓고 분류했던 어른들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사랑 혹은 이별이라는 이분법적 세계에 이경마저 침식당한 것이 내게 남은 한 줄기 안타까움인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들의 사랑엔 끔찍한 폭력과 혐오가 없다는 점이 적지 않게 위안이 되었다. 이경이 지새운 여름은 그저 미숙함으로 점철된 시간이다. 어쩌면 여름은 그런 미숙함마저 감싸안는 계절일지 모른다. 여름은 어디로 가지를 펼쳐야 할지 모르는 나무들이 펼치는 신록의 계절, 어디로 불어야 할지 모르는 비바람이 재앙처럼 닥쳐오는 장마와 태풍의 계절이기도 하니까.
원작이 있었기 때문일까, 영화의 기본적인 뼈대에 있어 크게 부족한 점을 느끼진 못했다. 말했듯 애니메이션 <그 여름(2023)>은 최은영 작가의 책을 오랜만에 찾아야겠다고 다짐했을 만큼 매력적인 화면을 당당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한국인이기에 찾을 수 있는 사소한 디테일들이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동안 이스터 에그와 같은 즐거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다만 소설을 영화로 전환하며 소설 속 독백을 지나치게 고스란히 가져온듯한 몇 부분이 다소 아쉽다. 소설의 문법은 영화 대본의 문법과 다르다. 문자로만 가득한 세계에서 골라야 하는 어휘는 영상과 음악이 공존할 때 사용하는 어휘와 1:1 대응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점을 다소 간과하여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던 도중 귓가에 부자연스럽게 와닿았던 대사가 몇 있었다. 또한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었을 듯한 관계 묘사가 오로지 61분에 압축되며 원작보다 투박해진 듯하였던 점이 미련처럼 내 마음에 남았다. 이것이 내가 작가의 책에 손을 뻗고자 하는 이유이니 어떤 의미로는 장점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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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꼿꼿한 송혜교, 날아오른 임지연
* <더 글로리 파트1>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더 글로리 파트1 (2022)
감독: 안길호
극본: 김은숙
출연: 송혜교, 이도현, 임지연, 염혜란, 정성일, 박성훈, 차주영, 김히어라, 김건우 등
방영횟수: 8부작
장르: 범죄, 드라마
공개일: 2022.12.30
재벌 2세 후계자와 불우한 여고생의 사랑, 신부의 운명을 갖고 태어난 소녀와 신적인 존재의 운명 같은 사랑, 갑자기 영혼이 뒤바뀐 스턴트맨과 기업 오너의 티격태격 로맨스, 목숨을 뛰어넘은 의사와 군인의 비현실적인 러브 스토리. 내가 지금껏 보아왔던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는 줄곧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언제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를 써 왔고, 클리셰 범벅인 구조를 말의 맛을 살린 대사로 매력적으로 구현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작품의 개연성이나 완성도와는 별개로 거의 모든 작품들이 흥행에 성공한 것을 보면,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 재미 하나만큼은 충분히 보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순정만화 같은 오그라드는 대사나 고루한 캐릭터 설정, 판타지 못지않은 비현실적인 전개 때문에 눈살을 찌푸린 적이 적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김은숙’ 작가의 작품을 빼놓지 않고 보는 이유는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극을 보게 만드는 확실한 재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역시 대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스스로의 역량에 안주하려 하지 않았고,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며 도전에 성공한 것은 물론, 작품성 면에서도 호평을 받는 성장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미스터 션샤인>은 ‘김은숙’ 작가가 틀에 박힌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만 쓸 수 있다는 편견을 깨부쉈지만 가장 최근작인 <더 킹: 영원의 군주>는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른 후 단 한 번도 실패를 겪지 않았던 그에게 처음으로 뼈 아픈 작품이 되었다. <도깨비>와 <상속자들>로 이미 그와 함께 영광을 누린 적 있던 톱스타 ‘이민호’와 ‘김고은’을 기용했음에도 화제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특히 극본에 대한 혹평이 자자했다.
한 번의 쓰디쓴 패착은 ‘김은숙’ 작가를 각성시켰다. 주특기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버리고 처음으로 장르물을 택한 그는 ‘학교폭력’을 소재로 독한 복수심을 품은 주인공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교훈과 인물들 간의 절절한 로맨스를 통해 희로애락을 느끼게 해주었던 <미스터 션샤인>으로 한 번의 반전을 일으켰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스스로의 필력을 쇄신하는데 도전을 한 셈이었다. <태양의 후예>로 쌍방에게 영광을 안겨주었던 ‘송혜교’를 다시 한 번 캐스팅 했고, ‘이도현’, ‘염혜란’, ‘임지연’, ‘박성훈’ 등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연기력을 인정 받은 배우들과 막강한 한 팀을 꾸렸다.
‘김은숙’ 작가가 처음으로 시도한 피카레스크 장르물 <더 글로리>는 그의 장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인물들 간에 주고받는 티키타카와 언어유희를 활용한 대사, 그리고 극 자체의 재미는 국내에서 ‘김은숙’ 작가를 따라올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데, 새로운 장르를 시도했음에도 작가 특유의 장점은 그대로 묻어난다. <더 글로리>가 작품성 면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넷플릭스 흥행 1위를 기록한 것은 물론 온갖 커뮤니티에서 드라마에 대한 언급이 수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술술 읽히는, 김은숙의 재밌는 각본은 이번에도 통했다는 방증이다. 본격적인 사건들의 실마리가 풀리기 직전인 8화를 기준으로 드라마를 두 파트로 나눈 것도 영리한 판단이었다. 8화까지 정주행을 빠르게 마친 시청자들은 3월까지 목이 빠져라 다음 파트를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작품의 재미와는 별개로 완성도 면에서 비판을 받는 부분은 복수극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너무나 순진하다는 것이다. <더 글로리>는 복수 하는 자와 당하는 자의 팽팽한 긴장감을 끌고 가야 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동은(송혜교)’의 계획이 술술 풀리기만 하고, ‘연진(임지연)’과 그의 친구들은 맥 없이 당하기만 해서 긴장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평면적인 캐릭터 또한 지적되고 있는데, 피해자인 ‘동은’과 가해자인 ‘연진’ 무리가 분명한 선악 구도를 형성하면서 가해자들에게 일말의 동정의 여지나, 개별적인 서사를 부여하지 않았고 재력과 사회적 명성을 갖췄음에도 ‘동은’의 복수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만을 나열했다는 것이다. 악인들의 무능함이 부각되다 보니 ‘동은’의 계획이 상대적으로 쉽게 실행되는 것처럼 보이고, 복수의 전면에 나서는 일이 많지 않아 쾌감 또한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와 같은 비판점이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깊게 공감이 되지는 않는다. 피해자인 ‘동은’이 17년간 품고 살았던 복수의 칼날을 가감 없이 펼쳐 나가는 전개만으로도 카타르시스는 충분하다. 애초에 가해자들의 무능함을 떠나 20대와 30대를 바쳐 치밀한 계획을 세운 ‘동은’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로지 복수 하나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달려온 ‘동은’이 가해자들을 말려 죽이고자 마련한 수는 한둘이 아닐 것이고, 따라서 ‘동은’의 복수가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방해 받지 않고 착착 이뤄지는 것은 개연성을 해치지 않는 전개일 것이다. 무엇보다 ‘연진’과 ‘재준’은 피해자인 ‘동은’을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인간말종들이다. 이들은 십 수 년 전, 동급생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으면서도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으며 17년만에 재회한 ‘동은’은 그들에게 여전히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동은’이 복수심을 갖고 제멋대로 날뛴다 한들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기에 함께 힘을 합쳐 ‘동은’에게 맞서기는커녕 그룹 내에서의 분열만 일으킨 것이다. 8화의 엔딩 장면에서 ‘연진’이 ‘동은’이 살아온 흔적과 복수심의 크기를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가해자들이 전력을 다해 ‘동은’과 싸우는 것은 아마 2부의 핵심적인 스토리가 될 것이다. 따라서 1부만을 두고 관습적인 설정을 지적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더 글로리>가 복수극으로서의 쾌감은 물론 목표를 갖고 전력질주하는 주인공의 행동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력에 있다. 특히 주특기인 멜로 드라마 속 예쁜 캐릭터를 벗어나 남은 것은 독기 뿐인 학교폭력 피해자 ‘동은’으로 분한 ‘송혜교’는 연기 변신에 대한 꿈을 제대로 성취했다. 생명력을 완전히 잃은 듯한 눈빛, 복수심과 설움이 서려 있는 메마른 표정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힘은 차분하면서도 단단하다. 특히 냉정을 잃지 않겠다는 차가움 속에서도 슬픔이 엿보이는 표정들은 ‘동은’이 오랜 세월 얼마나 고된 시간을 견뎌 왔는지를 조금이나마 짐작케 한다.
‘송혜교’가 묵직하게 극의 무게중심을 잡아준 덕분에 악역을 맡은 배우들에게는 제대로 놀 수 있는 판이 깔아졌다. 데뷔 10년만에 첫 악역에 도전한 ‘임지연’은 극중 가장 눈부신 연기 성장을 보여준다. 그동안 왜 단 한 번도 악역을 맡지 않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악에 받힌 캐릭터를 자신만의 색깔로 완벽하게 해석하여 대중에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보이게끔 만들었다.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마저 욕을 먹을 수도 있는 희대의 악인을 맡았음에도 ‘임지연’에 대한 호평이 연신 이어지는 것은 배우의 연기력이 그만큼 훌륭했기 때문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귓가에 톡톡 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감정 변화에 따라 자유자재로 뒤바뀌는 표정, 그리고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에서의 위압감은 작중 최고의 연기력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과거 그가 출연한 작품들을 보며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제서야 나도 그에 대해 오랫동안 갖고 있던 편견을 깰 수 있게 되었다.
복수극은 장르 특성상 강렬함을 선보이는 악역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이 조명 받기 쉬운데, 이를 감안하더라도 악역을 소화한 배우들의 연기력은 대체로 뛰어나다. 특히 적은 분량이지만 ‘연진’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신예은’은 잔인한 학교폭력의 주동자가 되어 얼굴을 갈아 끼웠다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소름 돋는 연기를 선보여 극 초반부에 큰 임팩트를 남겼다. ‘임지연’이 첫 악역으로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남긴 것처럼 ‘신예은’도 처음으로 선역을 벗어나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릇된 신앙심과 폭력 사이에서 모순을 일삼는 마약 중독자 ‘이사라’로 분한 ‘김히어라’는 걸쭉한 욕설과 약쟁이 특유의 초점 없는 눈빛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재력을 갖춘 가해자들과 달리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며 자존심을 굽히고 근근이 살아가는 ‘최혜정’을 연기한 ‘차주영’은 주요 빌런들 중 가장 입체적인 연기를 선보여 배우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주말극 도련님 캐릭터를 완전히 떨쳐낸 ‘박성훈’, 외모적으로 가장 큰 폭의 변신을 시도한 ‘김건우’까지 하나같이 악으로 똘똘 뭉친 캐릭터를 연기함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매력적인 해석이 더해져 시청자들로 하여금 단순히 욕 하면서 보는 것을 넘어 해당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매료되게끔 만든다.
배우들의 명연기로 인해 <더 글로리>는 하나의 성공적인 캐릭터 쇼가 되어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지만, ‘학교폭력’이라는 무거운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극에 내재된 주제의식에 좀 더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본작에는 학생들이 안전을 보장받아야 할 학교라는 공간의 사각지대에서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잔혹한 학교폭력을 고발하고자 하는 기획의도가 담겨있을 것이며 피해자의 이야기를 통해 학교폭력의 잔혹성과 심각성에 대한 경종을 울리려는 목적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중시 여겼던 부분이 ‘나는 아무 잘못이 없어’라는 기조를 ‘동은’이 잃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당해 마땅한 피해자는 아무도 없으며, 가해자와 방관자들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데 초점을 두었을 것이다.
1화를 보고 시청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뜨거운 고데기로 ‘동은’의 신체를 지지는 잔인한 학교폭력 장면이 너무 자극적이면서도 보기 괴로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작품을 감상하는 피해자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줄 수도 있고, 단순히 작품의 재미를 위해 폭력적인 장면을 플래시백으로 여러 차례 활용했다는 점에서 주제의식을 작품 흥행에 이용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출 방식에 문제가 있었을 지는 몰라도 고데기 학폭 사건은 어디까지나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소재이며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의 수위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더 글로리> 관련 영상 클립에서 댓글로 ‘김은숙’ 작가에게 학교폭력의 실태를 고발하는 작품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댓글을 단 학폭 피해자가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더 글로리>의 학교폭력 연출 방식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실제 학교폭력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끔찍한 폭력의 현장을 온전히 마주하여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학교폭력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극중 피해자에게 그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는 시스템에 속한 교사, 학생, 학부모들은 학교폭력과 절대적으로 무관할 수 없는 대상인만큼 구조화된 폭력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느끼도록 만드는 게 중요할 것이다. 만일 <더 글로리>를 보며 불편함을 느끼는 ‘연진’과 ‘재준’ 같은 사람들이 몇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적어도 작품의 기획의도가 실패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피해자를 기억조차 못하고, 본인이 가해자였던 사실조차 잊은 채 이 드라마를 그저 재밌게 보고 있는 가해자라면 ‘동은’의 표현을 빌려 한 마디 전해주고 싶다. ‘천천히 말라 죽어 보자. 사는 동안은 지옥일 테니까.’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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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몰락과 사소한 구원
이 글은 씨네랩에서 초대 받아 작성한 영화 시사회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 주의
누구나 한번쯤은 처절한 비참을 경험한다. 더 내려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비극은 해일처럼 밀려오고, 밑바닥이 없는 것처럼 끝없이 추락하는, 그런 우울한 날들을. 나 자신의 다른 이름이 패배자, 실패자인 것만 같은 그런 순간들. 그 내용은 제각기 다를 테지만, 어쨌든 '밑바닥을 찍는다'는 것은 꽤나 보편적인 경험이다. 그런 지극히 '평범한 몰락'의 한복판에 있을 때, 우울의 파도는 사람을 집어 삼키고 그는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더 나아질 길은 요원할 것만 같고 스스로의 무력함에 몸서리친다. 그러나, 그 비참이 우리의 마지막이 되지는 않는다. 밀물이 왔다면 썰물이 가는 법이며 고통스러운 우울이 지난 길에는 환희가 싹트기 때문이다.
물론, 운명이 우리에게 짊어지우는 과업들은 적지 않은 경우 혼자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설령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버거운 비극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려서 그러한 힘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잊게 하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응달 밖으로 걸어나갈 수 있을까? 해답은 간단하다. 도움을 받는 것이다.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 설 힘이 있음을 속삭여 줄, 아주 사소한 구원자로부터.
1. 어느 평범한 몰락
영화 <레슬리에게>의 주인공, 레슬리는 복권 당첨자다. 한순간에 일확천금을 얻었고 친구들과 메스컴은 이제 '팔자 펼' 일만 남았다며 축하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레슬리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그 막대한 돈으로 말미암아 행복을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사랑하는 아들과 가게를 내겠다는 소박한 꿈도 손쉽게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짜릿한 행복 뿐일 것이라고.
그러나 손쉽게 얻은 돈은 손쉽게 떠났다. 술과 도박이 그를 장악했고, 그 손쉬운 쾌락을 쫒는 사이, 레슬리는 사랑하는 아들과 친구들마저 저버리고 말았다. 촌구석에서 난 '행운아'는 상종하기 힘든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2. 구제 불능 알콜 중독자의 방랑
레슬리는 몇 년 동안 모든 것을 잃었다. 돈도, 사람도, 그 자신을 지탱하는 어떤 힘조차도. 현실은 비참했다. 술을 마시면 잠시라도 그 비참을 잊었고, 레슬리는 더더욱 그것에 매달렸다. 그것이 그를 망가트린다는 것을 그도 모르지 않았을테지만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그것에 길들여진 지 오래였으리라. 술을 끊겠다는 숱한 다짐은 그 자신의 충동으로 인해 깨지고 말았을 것이다.
갈 곳이 없고, 잘 곳도 없다. 그에게 남은 것은 아들과의 추억을 담은 작은 분홍 가방 하나 뿐.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장성한 아들을 찾지만, 그마저도 잘 풀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기여코 고향으로 돌려보내진다. 그의 행운과 불행이 싹텄던 가장 원점으로.
3. 갈 곳 잃은 자를 구한 사소한 관심
고향 사람들은 레슬리의 몰락을 모두 알았다. 그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잘나가는 젊은이였는지를 아는 만큼, 그가 얼마나 형편없는 벗이요, 엄마가 되었는지도 모르지 않았다. 소위 '막나가는' 알콜 중독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조소 뿐이다. 레슬리도 나아지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다. 정신 차리고 보면 술을 사 마셨다. 얼큰하게 취하고 나면 그가 조금이나마 쌓아올린 것들이 무너져 내렸다. 마치 쳇바퀴 돌듯이.
고향 땅에서조차 부랑자 신세를 면치 못한 레슬리에게 손을 내민 것은 일면식도 없던 남자, 스위니였다. 친구와 함께 변변찮은 모텔을 운영하던 그는 충동적으로 레슬리에게 제안하고 만다.
"좋아요, 당신을 채용하겠어요. 일당은 7달러, 숙식도 제공하는 조건으로요."하고.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알콜 중독자에 부랑자이기까지 한 사람을 아무 조건 없이 채용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일이 아니다. 스위니도 그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레슬리를 채용했다. 차마 그를 내버려 둘 수 없었으므로. 어쩌면 그건, 스위니가 '자기도 모르게' 레슬리의 결함 너머에 있는 어떤 진실됨을 발견하고 말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4. 레슬리의 홀로서기
알콜 중독의 관성으로부터 벗어나려면 타인의 호의에만 기대는 습관을 벗어야만 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레슬리는 온갖 실수와 만행을 반복했다. 스위니는 그런 여자를 채용한 것을 수없이 후회했다. 둘 사이는 삐걱거렸다. 스위니의 구원은 얼마든지 무색해질 수 있었다. 다행히 레슬리는 변하고자 했고 스위니는 그런 그에게 다시금 기회를 주었다. 레슬리는 아들 제임스와의 행복했던 추억을 연료 삼아 오래도록 벗했던 술과 결별하고 소위 '착실한' 삶을 살고자 했다. 여전히 그를 둘러싼 시선들은 따갑고 매섭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서 몇 번이고 그 지독스러운 술에 다시금 입 댈 뻔 했지만, 레슬리는 그럼에도 그 가시밭길을 나아갔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아들에 대한 절실한 애정과 그를 보통 사람처럼 대하는 스위니의 평범한 관심이었다. 레슬리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구했다.
레슬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글쎄, 그것은 장담할 수 없다. 그는 이제 막 지옥으로부터 걸어나왔고 인생에는 언제나 부침이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레슬리는 그것을 이겨낼 것만 같다. 그는 이제, 자기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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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에게>는 마냥 우울하게 치달을 수도 있는 '알콜 중독자'의 이야기를 때론 덤덤하게, 때론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영화 속 인물들은 아주 입체적이다. 완전한 악역도, 완전한 선역도 없는 그 세계는 우리의 세계의 한 부분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만 같다. 인물들은 선을 베풀면서도 고뇌하고,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것을 후회한다. 그런 것들이 반복되는 사이 그들은 무언가를 깨닫는다. 어떤 형식으로든 변한다. 카메라는 그런 사람들의 성장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누군가가 나락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아주 평범한 관심의 한 조각과, 그 관심으로 말미암아 일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그 용기란 쉬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군가의 재기는 더욱 눈부시다는 것. 이건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교훈일 것이다.
혹시라도 당신 자신이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여겨진다면, 이 사실을 꼭 알아주길 바란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당신은 사실 꽤 괜찮은 사람'이다. 눈가리개를 풀고 당신 안을 들여다보라. 변화의 씨앗은 언제나 그 안에 있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걸 싹틔우는 것은 온전히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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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라는 베이스 캠프
이 영화의 주인공은 브루노와 피에트로. 브루노는 주민이 14명뿐인 작은 산골 마을에 살며 어엿한 일꾼으로 성장하고 있고, 피에트로는 여름이면 도시와 학교를 떠나 어머니와 함께 산골로 들어오곤 한다. 공교롭게도 동갑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브루노는 스스로를 “이 마을의 마지막 아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흔하지 않은 소개의 말이다. 어떤 기분일까? 유일하다는 것은.
이내 브루노는 또 하나의 유일함을 찾는다. 브루노와 피에트로는 서로 유일한 존재로서 친구가 된다. 대단하게 각 잡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쉽게 친구가 된다. 뛰고, 움직이고, 물을 튀기고, 서로의 말을 배우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져 있는 것이다. 우정이란 본디 그렇게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마음이니까.
피에트로는 천천히 움직이고, 천천히 배우는 사람이다. 산에 오르자마자 이름을 체크하고 바로 다음 장소로 넘어가려는 아빠에게 “이제 막 왔다”고 말하는 피에트로는, 어쩌면 봉우리의 이름을 나누어 부르지 않는 산 사람들과 더 잘 맞는지도 모르겠다. 세 사람은 산 위쪽의 빙하까지 올라가고, 피에트로는 빙하를 “산이 우릴 위해 간직한 과거 먼 겨울의 추억”이라고 여긴다. 햇빛이 그토록 강해도 녹지 않는 눈은, 정말 추억과 많이 닮은 것도 같다.
영화는 피에트로와 브루노의 유년기부터 시작하여 긴 세월을 찬찬히 비춘다.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듯 보였던 십대 시절, 눈이 마주쳐도 별스러운 인사 없이 서로를 스쳤던 시절. 자기 자신이 되어가기 바빴던 어린 날들. 실상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 자기 자신임을 인정하기 어려워, 내가 답습한 부모의 면에 화를 내기도 했던 날들.
그 끝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그리고 과거의 회한을 하나씩 제거하듯이, 어린 시절과 비슷한 몸짓으로 그때는 할 수 없던 육체 노동을 하면서, 집을 지어 올리기 시작한다. 앙금 녹듯 눈이 녹으면 그 자리에 지어 올려야 하는 것은 집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따뜻하고 다정해 보이는 산의 풍광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얼핏 다시 시작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 둘은 끊어진 적이 없었음을 우리는 이내 알게 된다. 피에트로는 아버지가 속해 있(다고 믿었)던, 공장으로 대표되는 차가운 세계를 거부했지만, 그 동안 피에트로가 풀지 못한 매듭을 대신 풀어주며 유사 가족처럼 관계를 맺은 것은 브루노였다. 브루노 또한 자신과 아버지 사이 관계에서 쌓인 회환을 푼 것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깍지 낀 손가락처럼 서로의 마음을 겹쳐 살고 있었다. 풀지 못한 매듭의 자리에 대신 서기도 하고, 못 다 전한 염원을 대신 전해주기도 하면서.
우정은 단순히 무료한 시간에 색깔을 더하는 정도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서로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의 관계는 얼핏 그 정도처럼 느껴지지만, 서로가 보일 때든 아니든 꾸준히 우정의 나무는 자라 오고 있었다. 서로의 회한이 회한으로만 남지 않게, 이따금 ‘금쪽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서로를 성장시키기도 하고 손을 뻗기도 하고 그냥 이해하기도 하며… 존재 자체의 의의를 더하는 것이 우정이다.
묵묵히 할 일을 하다가도 이름 불러주는 친구 하나 있다면 산 위에서도 춤을 출 수 있다. 지금 가라고 등 떠밀어주는 사람이 그때 있었더라면, 어쩌면 마음의 어떤 골짜기가 그리 깊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에라도, 어린 시절과 비슷한 옷을 허리에 꾹 졸라매고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영화 도입부에는 키가 크고 이파리가 없는 두 그루 나무가 나온다. 우정이 나의 뿌리 내릴 곳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는 피에트로의 내레이션과 함께. 이 영화는 두 그루 마른 나무 같은 사람이, 서로에게 뿌리를 내리고, 회한을 무너뜨린 자리에 우정으로 베이스 캠프를 짓고, 각자의 산을 오르는 이야기이다. 나무 같은 존재가 산을 오른다니 이상한 비유 같지만, 결과적으로 나무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장소는 산이다.
브루노는 산에서 옮겨 심어질 마음이 없는 나무, 피에트로는 잘 옮겨져 심기고 싶었던 나무였다. 그러나 같은 베이스 캠프에서 시작한 둘의 인생 여정은 너무나 달라 보인다. 너는 너의 산에, 나는 나의 산에. 그러나 산이라는 점에서 일견으로는 닮아 있다. 어쩌면 인생이 다 그런 것도 같다. 지도를 들고 길을 떠나는 순간, 등 뒤에 두고 온 자리는 자동으로 베이스 캠프가 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등이 되어주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평생 우정의 빚을 진다. 이런 빚이라면 아무리 많아도 파산하지 않는다.
언젠가 오랜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당시 내가 느끼던, 아주 유약하고 섬세한 불안까지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돌아선 길이었고, 집 방향이 같은 친구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친구는 몰랐다고 말했다. 그냥 즐겁게 이것저것 하면서 잘 지내니까, 그런 마음들이 있는지 몰랐다고.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내면 깊은 곳에 있던 감정이니 주변에서는 당연히 몰랐을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몰랐음을, 알게 되어 안심임을 말하는 친구의 다정한 말투에 고마움이 울컥 치솟았다.
오랜 친구라는 거, 참 좋구나. 구구절절 나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나를 너무 잘 아니까, 내가 어떤 변화를 휘청휘청 거쳐 왔는지도 다 보았으니까, 지금의 마음도 솔직히 말할 수 있고 그냥 온전히 그 모습 그대로 포용될 수 있다는 거 정말 행복한 일이구나. 그건 정말 따뜻하고 포근한 감각이어서, 앞으로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도 오랜 세월 다정하게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친구들을 많이 떠올렸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짤막한 편지를 썼다. 낯간지러워 부치지 않겠지만, 나 또한 그들의 베이스 캠프가 되어 그들의 삶에 뿌리가 되고 싶단 마음을 담아서.
살다 보면 우리 멀어질 날도 올지 몰라. 내가 나를 찾아가는 길이 너와 물리적으로 먼 곳에 있을 때가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지 모르니까. 그래도 그 길에 나는 너에게 아주 많은 걸 빚졌어. 너는 나의 뿌리야. 서로 아름다운 안식처라는 기억을 뒤에 두고 걸음을 다시 걷자. 지도 위에 새로운 걸음을 덧그리자. 각자의 안에서 무언가 뚝 끊어지는 감정이 들 때에는 방향을 틀어 다시 네게로 갈게. 어떻게든, 우리 같은 지도에서 만나자.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는 2023년 9월 개봉합니다. 산의 풍광이 많이 아름답고, 가본 적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음악도 하나 같이 다 좋으며, 무엇보다 147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 섬세하게 연출된 작품이니, 스크린 환경이 좋은 영화관에서 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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