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유2023-11-15 15:22:56
멜로 없는 멜로 영화
<당신을 사랑하는 동안에>를 보고서
사랑은 이기적이다 못해 잔인하기까지하다. 누군가를 미치도록 좋아하던 때에는 세상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나의 세상 역시, 그 사람에 의해 좌우된다. 이러한 사랑의 속성을 이기적이라 부르는 이유는 어쩌면 이 모든 일말의 행동들이 ‘사랑에 빠진 나’를 위해 행하는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는 돌고 돌아 기어코 만난 주연들이 아닌, 그 들 주위에 허우적대는 조연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뉴욕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돌아온 매튜는 사업차 홍콩으로 가기 전, 우연찮게 한 호텔에서 2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 리사의 흔적을 찾는다. 아무 말없이 사라진 그녀를 찾기 위해 그는 그녀의 발자취를 뒤쫓던 중 리사의 아파트를 찾게 되나 자신이 리사와 다른 여자를 착각했음을 깨닫는다. 심지어 이름마저 같은 그녀에게서 매튜는 도무지 리사의 흔적을 지울 수 없고, 결국 그는 자신의 추억을 더듬어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리사를 찾기에 이른다.
영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는 주연으로 시작하여 조연으로 끝이 나는 영화다. 대개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오르며 두 주인공에 감정이입한 관객들이 그 들의 사랑을 축복하는 것과 다르게 이 영화는 반대로 사랑 이면에 있는 그 잔인함에 절로 마음이 갑갑해진다. 엔딩크레딧이 오르고 나서도 여전히 매튜를 사랑하고만 또 다른 리사(알렉스)가 끝까지 머릿속에 맴돌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튜를 향한 애잔하고도 처절한 알렉스의 짝사랑 탓에 그의 친구 루크 역시 자신의 사랑을 철저히 외면당한다. 순식간에 주연에서 조연들로 전략해버린 사람들의 처량함에 결말이 야속하기까지하다. 그러므로 영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는 미치도록 한 여자를 잊지 못하는 한 남자의 순애보가 아닌 그토록 이기적이고도 씁쓸한 사랑 그 이면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동안에 자행되고 마는 수많은 이기적인 선택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받는 사람들, 상처 주는 사람들. 행복하면서도 불행하고, 불행하면서도 행복한 사랑의 이중성. 영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는 그 이중성에 대한 잔인하고도 씁쓸한 멜로 아닌 멜로 영화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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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당신의 눈을 속이다: 세기의 미술품 위조 사건(2020)> 리뷰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쉽게 지나갈 수 있을까. 내가 넷플릭스에서 <당신의 눈을 속이다: 세기의 미술품 위조 사건(이하 당신의 눈을 속이다)>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다큐멘터리를 튼 건 불가항력에 가까웠다.
예술의 역사만큼 위작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기실, 인간의 욕망과 돈이 결합된 분야라면 스캔들이 없을 수가 없다. 가치가 높은 대상이라면 스캔들의 폭은 더욱 넓고 깊어지리라. 당장 떠오르는 스캔들만 해도 적지 않다. 베르메르 위작으로 유명한 반 메헤렌은 물론이요, 올해 미국 올랜도 미술관에서 발생한 바스키아 위작 스캔들도 있다. 시선을 국내로 돌린다 해도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으로 인해 미술계가 크게 흔들렸던 적이 고작 5년 전이다. 어쩌면 위작 스캔들은 전 세계의 박물관이나 갤러리라면 어디든, 또한 누구든 안고 있는 점화되기 전의 폭탄일 터다. 그러하므로 내가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기 전 가장 궁금해했던 건 이런 것이었다. 165년 전통을 자랑하는 갤러리가 위작 스캔들에 휘말렸던 이 사건을 대체 왜 공개했을까? (만일 다큐멘터리의 목표가 갤러리의 무고함을 밝히는 것이라면) 이미 자취를 감춘 갤러리의 결백을 주장한다 한들,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출처: Netflix
일단 <당신의 눈을 속이다>가 다루는 사건은 위에서 언급한 노들러 갤러리 스캔들이다. 이 사건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노들러 갤러리는 1846년에 문을 연, 긴 역사를 지닌 명망 있는 갤러리인데, 본디 1950년대 추상 표현주의에 퍽 취약했다. 그런데 어느 날, 노들러 갤러리의 전 직원이 글라피라 로잘레스라는 (자칭) 미술품 중개인을 노들러 갤러리의 전 관장이었던 앤 프리드먼에게 소개하였고, 글라피라는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과 등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화가의 그림을 거뜬히 가져왔다. 가문의 힘조차 업지 않았던 글라피라의 수완은 정말이지 대단했던 모양이다. 노들러 갤러리는 그를 통해 거의 20년 동안 60여 개의 위작을 판매하며, 총 8천만 달러(약 1,054억 원) 규모의 사기에 발을 디뎠다. 단순한 개인과의 거래였다 해도 문제가 작지 않을 텐데, 일류 컬렉터와 유명한 미술관들도 노들러 갤러리에서 위작을 구매했으니 미술계가 발칵 뒤집힌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앤 프리드먼이 Freedman Art라는 갤러리를 운영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이 사안은 종결된 지 오래이다. 그래서인지 다큐멘터리는 수사극, 추리극의 형태라기보단 일종의 인터뷰의 연속체로 기능하는 듯하다. 제작진은 영리하게도 시청자에게 결정권을 넘겨주는 방법을 택했다. 사법부가 호명한 피의자가 이미 명확히 존재하는 만큼, 굳이 다른 이를 지목하는 자극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고, 어떻게 이 ‘파렴치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느슨하게 재구성한다. 이를테면 그들의 태도는 이런 식이다. 사건은 이미 발생했다. 사기꾼이 있는 건 분명한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기꾼의 범주인지를 밝히는 게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부분을 재조명하고 싶다. <당신의 눈을 속이다>에는 그렇게 초대받은 예술계 인사들과 심리학자가 있으며 모두가 한통속이라며 억울함을 강력히 호소하는 피해자와 당시의 상황에 대해 첨언하는 기자가 있다.
출처: IMDb
사기꾼의 경계를 결정하기 전, 시청자라면 앤 프리드먼을 딱하게 여기든, 수상쩍게 여기든 ‘어떻게 그들이 취급한 작품이 위작이라는 걸 모를 수가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앤 프리드먼은 누구든 자신의 처지에 있었더라면 위작임을 알 수 없었으리라고, 자신 역시 많은 노력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어쩌면 폐쇄적인 예술계의 특성상 특별한 이유 없이 감정을 맡기는 것 자체를 노들러 갤러리의 명성에 흠이 간다고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단순히 갤러리의 주인 측에서 압박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또한 위작은 인류의 역사 내내 번번하게 유통되었고 카렐 아펠 등의 사례만 보아도 알 수 있듯 때로는 작가들조차 진품과 가품을 판별하지 못하니, 그의 말이 정당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장이었던 토머스 호빙조차 자신이 15년간 살펴본 미술품 중 40%가량이 위작이었다고 말한 바 있지 않은가. 만일 프리드먼이 명예욕과 금전욕에 의해 의도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면, 그의 잘못은 앤의 말마따나 ‘미술품과 사랑에 빠져’ 관습적으로 일을 처리한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명예욕에서든, 금전욕에서든 그가 “위험 신호를 무시”했다는 사실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IFAR에서의 감식 결과가 없었던 것도 아니니까. 허술한 프로비넌스를 눈 감은 것, 친분 있는 학자에게만 기댔던 것, 피상적인 몇 개의 견해에만 귀 기울이며 모든 신호들을 대수롭지 않지 여긴 시간들은 단숨에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그러나 앤 프리드먼의 동기가 어떠하든, 위작 구매자이자 사건의 피해자인 아트 컬렉터 데 솔레 부부의 분노를 달래는 데엔 역부족이다. 소더비, 톰 포드 인터내셔널 회장이라는 명성과 자부심에도 흠집이 생겼고, 금전적으로도 손해를 보았으며,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과정에서 시간 싸움까지 진행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만 동시에 미술계의 특수성에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때로는 이렇게 믿을만한 이력서조차 없는 작품을, 화랑의 명성 혹은 딜러와의 친분만으로 거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왜곡된 시장이지 않은가? 작품 감별을 위해 활용하는 방법이 고작 프로비넌스를 확인하며 극장의 우상에 기대는 것에 불과하다니. 무려 하나의 작품에 800만 달러를 지불하면서!
물론 미술계가 위작에 대해 늘 침묵하는 건 아니다. 당연하지만 모든 갤러리가 이토록 허술하진 않을 것이며, 위작 감별에 관한 전문가들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위작 거래를 최소화하기 위해 투명한 거래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엄정한 처벌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과연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출처: IMDb
값어치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던 그림은 위작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후 앤 프리드먼의 변호사의, 루크 니카스의 사무실에 걸린 벽화가 되어 아무도 거들떠도 보지 않는 신세가 되었다. 정교한 위작이라는 걸 알기 전 감상자들이 경험했다는 작품의 아우라는 대체 언제 증발한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 노양진의 해석을 인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물리적 대상은 유기체의 기호적 경험, 즉 우리의 ‘기호적 사상’을 통해서 비로소 기호적 해석의 대상인 ‘기표’가 된다(노양진, 2020)”고 언급한 바 있다. 결국 작품의 가치는 작품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작품 외부에 있다는 이야기다. 위작이 활개를 치는 미술시장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미술품 외부에 있는 우리의 인식을 해체하고 바꾸는 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시장이 예술을, 혹은 예술이 시장을 적극적으로 삼켜버린 시대이므로. MZ세대의 아트테크 열풍과 같은 기사가 신문의 경제면을 휩쓸고, 이제 손에 쥘 수도 없는 토큰인 NFT를 이용해 작품을 쪼개어 소유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동시에 예술은 뒤샹과 워홀의 등장 이후 소비 이데올로기 하위에 존재하던 온갖 상품까지 넉넉하게 받아들였다. 보드리야르의 입장을 알고 있었다지만, 예술의 종말은 진작부터 거론되었다지만, “예술이 그저 상품으로만 남을 것인가?”따위의 질문이 아니라, “어쩌면 미술품이란 ‘상품’이라는 속성이 본질임에도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많은 가치를 입혀 두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이 그야말로 피부로 느껴지는 듯하여 나는 두렵다. 세계를 해석하는 인간의 능력을 꺾어버리고, 사유를 헐값에 거래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가 어떠한 도덕적 양태를 잉태하거나 공유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출처: IMDb
같은 작품이라 해도 사람마다 저마다 다른 메시지를 읽어낸다. 내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읽어낸 메시지는 앤 프리드먼이 운 좋게 풀려난 범죄자가 맞느냐, 아니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이었다. 21세기의 미술품은, 그 어느 때보다 상업 기호에 가까워졌다는 것. 어쩌면 ‘기호’조차 사라지고 예술이 자멸할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당신은, 아니 어쩌면 나는, 한때나마 예술이 존재했다는 흔적만을 쥔 채, 그것을 알아보지도 못하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오로지 그뿐이다.
참고문헌
노양진 "기호의 역전" 담화와 인지 27.3 pp.47-62 (2020) :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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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5월 셋째 주도 잘 보내셨나요?오늘 최고 기온은 30도로 굉장히 무더운 날씨를 보인다고 합니다.오늘뿐만 아니라 이번 주부터 기온이 오르니 더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영화 <범죄도시2 >의 개봉 주 주말의 관객 수'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럼 시작해 볼까요?...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범죄도시2> (▲1)▶ 프리미어 유료 상영회만으로 2위를 차지했던<범죄도시2>가 5월 셋째 주에는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범죄도시2>는 <기생충> 이후 최단 흥행 기록을 경신하며 극장가 부활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주말 동안 (5월 20일~5월 22일) 관객 수 253만 4,131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55만 809명을 돌파하였습니다.2.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1)▶ 아직 개봉 전인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하였는데요.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던 닥터 스트레인지 속편이 <범죄도시2> 개봉과 동시에 한 단계 하락해 2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주말 동안 (5월 20일~5월 22일) 관객 수 32만 8,080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547만 2,095명을 돌파하였습니다.
3. <배드 가이즈> (-)▶ 개봉 4주차임에도 불구하고 박스오피스에서 순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배드 가이즈>!
주말 동안 (5월 20일~5월 22일) 관객 수 3만 5,94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7만 5,404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01회 예측 이벤트는 5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유저분들이 예측해주신 영화 <범죄도시2> 의 5월 20일, 5월 21일, 5월 22일의 관객 수 스코어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범죄도시2>의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 추이를 보겠습니다.
남성 60%, 여성 40%로 남성이 더 높은 비율을 가진 걸 알 수 있습니다.
연령대 별로는 30대가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20대가 아주 살짝 낮은 비율인 3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 주 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범죄도시2>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건
13세 미만 여성(2,100,000명)과 20대 초반 여성(1,171,469명)이었습니다.
또한 <범죄도시2> 주말 관객 수 스코어 예측의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전체 참가자의 0.5%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범죄도시2>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 비율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4. <극장판 엉덩이 탐정: 수플레 섬의 비밀> (▲1)▶ <극장판 엉덩이 탐정: 수플레 섬의 비밀>는 4주 동안 박스오피스 순위권을 유지했는데요.
59분으로 짧은 러닝타임과 탄탄한 팬층을 보유했기에 긴 시간 박스오피스 순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말 동안 (5월 20일~5월 22일) 관객 수 8,00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4만 7,176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아치의 노래, 정태춘> (NEW)▶ 정태춘 데뷔 40주년을 맞아 정태춘의 데뷔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가 개봉했습니다.
고영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전 국민이 공감할 만한 영화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정태춘을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주말 동안 (5월 20일~5월 22일) 관객 수 6,797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만 4,335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줄거리
10대 가수상, 가요 사전심의 철폐운동 그리고 음악시장을 홀연히 떠나기까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노랫말과 서정적인 음율로 시대와 함께한 뮤지션.
데뷔 40주년, 우리가 몰랐던 정태춘의 음악과 삶을 만나다!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3주 연속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가 차지했습니다.
셋째 주 주말에는 총 두 작품이 새롭게 등장했는데요. 바로 2위의 <Downton Abbey: A New Era>, 5위의 <Men>입니다.
<Men>은 올해 국내 개봉 예정이고, <Downton Abbey: A New Era>는 국내 개봉이 불확실합니다.
주말 동안(5월 20일~5월 22일)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의 매출액은 $31,600,000 (한화 약 402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습니다.총 누적 매출액은 $342,080,485 (한화 약 4,354억)을 기록했습니다.<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5월 6일 ~ 2022년 5월 8일)1.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3,160만 달러 (누적 3억 4,208만 달러)2. <다운튼 애비: 새로운 시대> 1,602만 달러 (누적 1602만 달러)3. <배드 가이즈> 609만 달러 (누적 7,436만 달러)4. <수퍼 소닉2> 394만 달러 (누적 1억 8,100만 달러)5. <멘> 329만 달러 (누적 329만 달러)...씨네픽의 5월 셋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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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액션도 미처 못 담은 회색지대의 삶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징역형을 감형하는 조건으로 CIA의 기밀 프로젝트인 '시에라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한 코드네임 '식스(라이언 고슬링)'. 일명 '그레이 맨'이라 불리는 첩보 요원이 된 그는 여느 때처럼 방콕에서 타깃을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기 직전 자신을 시에라 프로그램 참여자라고 밝힌 코드네임 '포(four)'로부터 메모리 카드를 건네받는다. 그 안에 CIA의 기밀 정보가 든 것을 알게 된 후 식스는 상관인 '카마이클(레게장 페이지)'에게 메모리 카드를 넘기는 대신 그 기밀을 파헤치기로 결정하고, 이에 카마이클은 전직 CIA 요원이자 소시오패스인 '로이드(크리스 에반스)'를 보내 그를 추적한다. 식스는 전직 상관인 '피츠(빌리 밥 손튼)'와 방콕에서 만난 요원 '대니(아나 데 아르마스)'의 도움을 받아 로이드의 추적을 따돌리면서 조금씩 숨겨진 진실에 가까워진다.
7월 13일에 극장에서 개봉했고, 22일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인 영화 <그레이 맨>은 베스트셀러 시리즈인 마크 그리니의 '그레이맨' 시리즈를 영상화한 작품이다. <레드 노티스>와 함께 넷플릭스 역사상 최다 제작비인 2억 달러가 투입된 <그레이 맨>은 라이언 고슬링, 크리스 에반스, 아나 데 아르마스, 레게장 페이지 등의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며 개봉과 공개 전부터 숱한 화제를 낳았다. 특히 <그레이 맨>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통해 비평과 흥행을 모두 잡은 루소 형제의 연출작이었기에 더욱 큰 기대를 모았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레이 맨>은 그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키지 못했다. 화려한 액션 시퀀스와 오락성은 액션 영화를 다룰 줄 아는 루소 형제의 장점을 제대로 선사한 반면, 상대적으로 평면적인 그들의 스토리텔링은 첩보영화로서의 독특함과 '그레이 맨'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지 못하는 단점을 고스란히 노출했기 때문이다.
일단 <그레이 맨>은 시작부터 인상적인 액션 시퀀스로 눈을 사로잡는다. 루소 형제가 만든 MCU 작품들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유달리 액션의 퀄리티가 높기로 소문나 있었는데, 이번에도 거액이 투자된 게 단숨에 느껴질 정도로 그 솜씨를 발휘한다. 방콕에서 타깃인 '시에라 포'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은 식스는 고층 빌딩 한가운데서 미션을 이행하는데, 신년을 기념하는 불꽃놀이는 그 시작을 더 화려하게 꾸며준다. 뒤이어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의 사투와 폭발하는 건물, 프라하 시내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트램을 배경으로 한 총격전까지 영화는 끊이지 않는 액션씬을 선보인다.
이처럼 스트리밍 작품이지만 극장에서 볼 충분한 이유가 되는 <그레이 맨>의 액션은 특히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다. 하나는 아날로그적이고 육체적 쾌감이 돋보이는 액션들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클리셰를 역이용 한다는 점이다. 타깃을 원거리에서 저격하는 대신 나이프와 주먹으로 직접 제압하면서 시작된 <그레이 맨>의 액션씬들은 가급적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맞부딪히는 형태의 액션을 고수하며, 마지막 대결도 주먹싸움으로 귀결된다. 이는 도시나 배경이 바뀔 때마다 드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스타일리시한 도입 샷과 대비를 이루며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일전에 루소 형제가 메가폰을 잡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는 MCU 내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액션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히어로 대신 첩보 요원을 내세우면서 그 특징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루소 형제가 제작하고 그들과 협업했던 무술 감독 샘 하그레이브가 연출한 넷플릭스 작품인 <익스트랙션>이 국제적으로 확장된 듯한 느낌도 든다.
한편 대놓고 007을 언급하는 <그레이 맨>은 여러 클리셰의 방향성을 살짝 역이용하는 영리함으로 무장한다. 우선 카 체이싱이나 추격전처럼 액션 영화의 감초나 다름없는 액션 시퀀스는 배제시킨다. 대신 원거리 저격 대신 육탄전을 벌이는 초반부 방콕에서의 장면처럼 예상을 조금씩 벗어나는 길을 걷는다.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는 미로 속에서도 오히려 식스와 로이드를 정면으로 대결시켜 버리면서 색다른 재미를 만들어낸다. 물론 한계점이 없지는 않다. 프라하 시내에서 펼쳐지는 액션이나 다수의 적이 기다리고 있는 적군의 본부에 소수 인원이 침투하는 장면 등은 루소 형제의 전작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를 연상시킨다. 즉, 액션 시퀀스의 전반적인 흐름이나 구성이 매우 유사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액션을 통해 감정과 드라마까지도 전달하면서 기시감을 잊게 만드는 점에서 이들의 탁월함은 다시금 빛난다. 수류탄을 이용한 속임수를 한 번은 유머스럽게, 다른 한 번은 뭉클하게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첩보 영화로서의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도 클리셰의 역이용이라는 특징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냉전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던 에스피오나지 장르는 냉전이 저물며 활력을 잃은 후 다양한 변주를 해 왔고, 새로운 클리셰들을 만들어 냈다. 소련으로 대변되는 외부의 적을 대신하기 위해 첩보 조직 내부에 적이 있다는 방식으로 새로운 적을 상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이슨 본처럼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주인공의 등장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왜 첩보 요원으로서 활동하는지, 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까지 국가의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지, 왜 국가의 이익이 다른 가치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 더 나아가 자신의 행동이 왜 옳은지 혹은 잘못된 것인지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는다. 첩보 영화의 대표주자인 제임스 본드 시리즈도 최신작인 <노 타임 투 다이>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질문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심지어 복잡한 이론적 배경을 제치고 나면 <테넷> 역시 싸워야 하는 이유를 갈구하는 첩보영화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레이 맨>은 지금까지 많은 첩보물들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뻔뻔해 보일 정도로 간단히 답하면서 클리셰를 반바퀴 비튼다. 영화는 스파이의 존재 의의와 목적, 그리고 정당성에 대해 깊이 고찰하지 않는다. 대신 손에 이미 피를 묻힌 이상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이 무의미하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식스는 감옥에서 꺼내 주는 조건으로 합류한 시에라 프로젝트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피츠의 말에 분노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에 수긍하고, 지금의 삶이라도 지속하기 위해 최선의 방법을 모색한다. 사실 재소자 중에 가능성 있는 이들을 스파이로 활용한다는 콘셉트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클리셰다. 그런데 스파이가 될 재소자가 자신의 상황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그레이 맨>은 다른 첩보물과 이질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대신 <그레이 맨> 속 인물들은 '어떻게?'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방콕에서의 첫 번째 임무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식스는 코드네임 시에라 포를 죽여야 하는 이유를 전혀 묻지 않는다. 그가 CIA에 위협이라는 최소한의 정보만 들은 채 미션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는 타깃 제거 방식을 두고서는 책임자인 카마이클과 충돌한다. 민간인과 어린아이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임무를 수행하라는 카마이클의 명령을 식스는 거부한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핵심적인 문제가 '어떻게'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그레이 맨'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재고될 수 있다. 영화 속 그레이 맨은 피츠가 만든 비밀 첩보 요원을 뜻한다. 그러나 회색은 흑과 백 사이에서 경계가 불분명하기에, '그레이 맨'은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선이 불분명하고 이를 구분하려 하지도 않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로도 들린다. 이는 식스가 포에게서 건네받은 메모리 카드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해당 자료에는 카마이클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로이드를 고용했고, 다수의 민간인 희생자를 내면서까지 첩보 임무를 진행했다는 증거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정보를 접한 인물들 중 CIA의 존재 이유나 임무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하는 이는 없다. 그들은 그저 임무를 진행할 때 어느 수준까지 윤리적 기준을 지킬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이는 작중 식스와 로이드의 관계가 가장 두드러지는 대립 구도인 이유다. 매사에 침착하고 냉정한 첩보 요원 식스와 기분파이고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민간 청부업자 로이드는 얼핏 보기에 상극이다. 그러나 그들은 공통점이 있다. 선악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학대에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아버지를 총으로 죽인 자신의 행동이 칭찬받을 일이었다고 회고하는 식스의 모습에서는 왜 그가 '그레이 맨'인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애초에 도덕적 기준을 준수한 적이 없는 사이코패스인 로이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그들의 마지막 대결은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한 사투다. 아버지에게 받은 학대의 경험을 동력 삼아 식스가 로이드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만 보더라도 그 의미는 더욱 명확해진다.
문제는 삶의 근본적인 의미와 이유 대신 삶의 방식에 주목하는 <그레이 맨>의 스토리가 지닌 깊이를 루소 형제가 온전히 살려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어떤 방식의 삶이 바람직한 지에 대해 고민한 바가 드러나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 작중 식스와 대니를 로이드와 카마이클로부터 구분 짓는 유일한 차이는 보편타당한 윤리적 선을 준수하는지 아닌지에 불과하다. 민간인과 어린 아이를 죽이지 않는 것,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지 않는 것, 그리고 사랑과 신뢰의 의미를 아는 것.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전제 위에서 행동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영화는 그 선을 넘는 사람은 부적절하고, 그렇지 않은 이는 적절하다며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그 결과 평면적인 '그레이 맨'들의 이야기는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굳이 인물들의 과거사나 심리적 변화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아도 그들의 손쉽게 편 가르고 대립시켜 이야기를 전개할 최소한의 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캐릭터들의 과거사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식스의 과거사는 운을 띄우는 감옥에서의 초반부, 중반부의 플래시 백 장면, 그리고 대니와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진상까지 딱 세 대목에 불과하다. 로이드 역시 카마이클과 하버드 동창이었고, 소시오패스라서 CIA에서 퇴출되었다는 것 외에는 과거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빈 공간은 끝없는 액션과 익숙한 관계성이 대신한다. 식스가 자신과 같은 처지인 포를 제거하는 것은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유사 가족인 식스와 클레어의 관계는 <레옹>을, 식스와 대니가 수십 명이 지키는 성을 공략하는 모습에서는 <존 윅>과 <윈터 솔져>가 보인다. 그래서 결코 간단할 수 없는 식스의 복잡한 내면, 다른 첩보 영화들과 비교되는 차별점은 깊은 우물 속으로 가라앉고,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는 대중성과 오락성을 위해 <그레이 맨>의 잠재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선택처럼 보인다. 주어진 상황과 현실을 깊이 고찰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보다는 순응하고, 대신 그 안에서 최선의 방식을 찾으려는 삶의 태도. 이러한 태도는 나날이 퍽퍽해지는 현실의 삶을 사는 많은 관객 혹은 시청자들이 불가피하게 선택한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모순된 사회 구조와 권력 관계의 본질적인 원인을 찾고 개선할 수단이 개개인에게는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요 인물들의 서사를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면, 시청자들의 동병상련을 유도하고, 극의 몰입도를 더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이 흔히 보여주는 단점의 연장선이다. 창작자들의 자유와 재량을 최대한 보장하는 넷플릭스의 원칙은 창작자들의 단점을 극대화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데, <그레이 맨>이 정확히 그 사례에 해당한다. 루소 형제는 이미 전작들에서 오락성과 대중성을 위해 드라마적인 측면을 희생시킨 전적이 있다. <윈터 솔져>는 안전을 위한 자유의 통제라는 사회비판적 주제를 전형적인 권선징악 구도로 풀어낸다는 비판을 받았다. <시빌 워>는 자유와 통제 사이에서 벌어진 상이한 정의관의 충돌을 두 주인공의 개인사와 감정적 충돌에 국한시키는 측면이 있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도 하나의 이어지는 작품으로 본다면, 생명을 수단으로 활용할 수 없다는 어벤져스의 철학과 극단적 공리주의자인 타노스의 신념 간의 논쟁에 대한 결론을 회피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대중성과 오락성에 집중하는 루소 형제의 작품이 세련되지만 항상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 이유이고, <그레이 맨>도 다르지 않다.
그나마 단순해질 수 있는 흐름에 화려한 액션만큼이나 변주를 주는 대목을 꼽자면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캐릭터들의 매력이다. 우선 크리스 에반스는 <나이브스 아웃>에서 보여준 양아치 캐릭터를 다시 한 번 선보인다. 감정을 전혀 숨기기 못하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광기 어린 인물인 로이드를 영화의 톤에 알맞게 표현해낸다. 그가 보여준 로이드의 매력은 정반대의 매력을 뽐내는 식스와의 조화 속에서 더욱 빛나기도 한다. 라이언 고슬링은 정적이고 여유로우면서도 한 끗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고, 또 상당한 지략과 언변을 자랑하는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잠깐 동안 <드라이브>에 등장한 라이언 고슬링을 보는 듯한 인상도 준다. 이에 더해 <노타임 투 다이>에서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바 있는 아나 데 아르마스가 또 한 번 조력자로 등장한 점 역시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조차도 단순한 오락 영화 그 이상일 수 있었던 <그레이 맨>의 잠재력을 살리지는 못하며, 영화를 압축한 엔딩 크레디트를 보면서 남는 아쉬움도 끝끝내 달래지 못한다.
A(Acceptable, 무난함)
넷플릭스를 만나 극한으로 발현된 루소 형제의 장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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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사회 시스템의 축소판, 그곳은 정말 유토피아였을까
우리가 사는 사회 시스템은 개개인들이 좀 더 체계적으로 살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집이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한다면, 사회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개인, 가족, 사회는 국가 단위로 그 단위를 확장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필요한 것들을 채워 넣어왔다. 규율과 법을 만들고 국가를 통치할 지도자를 뽑는다. 그렇게 뽑은 대표는 사회 전반적인 부분을 넓게 조망하면서 잘 되지 않는 일을 해결하고 모두가 더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 부족 사회에서도 작은 단위에서 늘 지도자와 그 주변은 다양한 논의를 거쳐 사회를 이끌어왔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다르게 말하면 정치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앞에 서서 사회를 이끌어왔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을 따르고 문제를 만들어내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계속 정쟁이 끊이지 않고 갈등은 계속된다. 어떤 경우에는 불합리한 결정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배척하고 사회에서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한다. 어떤 것이 더 옳은 것인지 현재 시점에서 판단할 수 없다. 그 갈등들이 지나간 후에 돌아보아도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지진 이후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의 이야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사회 체계가 무너진 이후,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모든 사회 시스템이 파괴되고 하나의 공동체만 유일하게 남게 된 것이다. 여기에 외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멀쩡해 보이는 아파트로 몰려든다. 식량, 추위 등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지만 선뜻 누군가 먼저 나서 상황을 끌어가지 못한 채 사람들은 점점 어려움에 봉착한다. 그때 아파트에 불이 나고 한 인물이 갑자기 달려 나와 그 불을 꺼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 인물은 바로 영탁(이병헌)이다.
그렇게 영탁은 우연하게 사람들 눈에 띄어 영웅과 비슷한 위치에 선다. 그리고 결국 그가 새로운 아파트 대표가 된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사회 시스템이 붕괴된 곳에서 새롭게 등장한 지도자 그룹의 이야기를 담는다. 부녀회장인 금애(김선영)와 영탁을 중심으로 몇몇의 지도자 그룹이 만들어지는데, 여기에는 보안과 방법을 맡는 민성(박서준)이 포함된다. 이 영화에서 꽤 중요한 위치에 있는 민성은 과거 공무원이었고, 간호사인 명화(박보영)와 함께 살고 있다. 민성은 안정지향적인 인물이고, 명화는 좀 더 박애주의적이다. 초반에 외부인을 대하는 조금 다른 태도를 보여주는 두 사람의 성향은 영화 중반 이후 갈등을 만들어낸다.
새롭게 지도자가 된 영탁은 미스터리 한 인물이다. 조금은 어눌해 보이는 그의 초반 모습은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지 의심하게 하지만 그는 사람들을 모아 황궁아파트 주민이 아닌 외부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낸다. 그가 처음으로 실행한 이 일은 그가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탄탄하게 가질 수 있게 만든다. 그렇게 힘을 얻는 그가 만들어내는 황궁 아파트의 사회는 정말로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간호사를 중심으로 의료 센터를 만들고, 남자들이 외부로 나가 음식을 구해온다. 그렇게 모은 음식과 생활용품은 분배소에서 주민들에게 동일하게 분배를 한다.
완벽하지만 외부인에게 배타적인 시스템
이렇게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은 적어도 황궁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완벽하다. 그들은 나름의 룰을 만들어 그곳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애쓰고 그것을 실제로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사회 시스템이 주는 안정감을 영화는 여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단, 한 가지 간과하게 되는 건 영화 초반에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이 외부인을 몰아내는 장면이다. 주민들은 강압적인 방식으로 외부인들을 몰아냈고, 많은 외부인들은 추운 날씨에 얼어 죽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이 과연 좋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는 계속 질문을 던진다. 생존을 위해서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사회 시스템이 하는 모든 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지. 모두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무엇보다 가장 크게 생각하게 되는 부분은 바로 내가 그 안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외부인과 함께 살고자 한다면 사람은 점점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생존 시간이 줄어들 거라는 아주 단순한 계산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외부인들은 배제된다. 다 같이 사는 것이 아닌 우리만 사는 결정을 한다.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민성은 이 영화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 있는 일종의 관찰자다. 그는 영탁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황궁 아파트라는 사회 시스템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다. 그는 그 사회 시스템을 믿고 따른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회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외부인을 몰아내고, 외부에서 음식을 구할 때 외부인을 공격하기도 한다. 반면 민성의 아내 명화는 같이 사는 방향을 찾아보려 애쓴다. 몰래 숨어있는 외부인들을 돕고 이 영화의 가장 큰 비밀을 가지고 있는 인물의 진실을 밝혀내기도 한다.
민성의 생각이 옳을까? 아니면 명화의 생각이 옳을까? 다르게 묻는다면, 생존을 위해서는 우리만 사는 게 더 좋을까 아니면 다 같이 사는 게 더 좋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이 질문에 대답하기 쉽지 않다. 어떤 쪽으로 결정하더라도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불편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떤 쪽이 더 맞는다고 이야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질문하는 영화
영화 속 리더가 되는 영탁은 중요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 비밀이 무엇인지도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더 흥미로운 건 그 자신조차 피해자이자 약자라는 것이다. 그의 비밀이 밝혀졌을 때도 그를 온전히 미워할 수만은 없는 건 영탁이라는 인물도 결국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카리스마로 황궁 아파트의 대표가 되어 리더십을 발휘하지고 심지어는 악행도 서슴지 않지만 영화는 그가 과연 그 정도로 돌을 맞아야 하는 인물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사회 시스템은 필요하다. 엄청난 재난 상황에서 인간은 생존을 가장 앞에 두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배타적으로 외부인을 배제하지 않았고 포용적으로 받아들였다면 그 결말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 속 황궁 아파트의 사회 시스템은 배타적인 방향을 택했다. 그 결정이 될 당시만해도 그것은 옳은 선택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그 결정은 주민들의 투표로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러니까 결정과정도 공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결말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것이 더 맞는 것인지 자꾸만 되묻게 만든다.
영화는 결말 부분에서 다른 선택을 한 시스템의 형태를 보여준다. 따뜻하고 새하얀 주먹밥으로 대표되는, 그 다른 시스템은 따뜻해 보이지만, 그이후의 결말은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도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야 하고 어떤 형태로든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만의 사회 시스템은 어떤 모습이 될까.
아무것도 없어진 사회에 완벽한 시스템이란 없다.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이다. 영화가 이야기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완벽한 국가는 없고,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누구는 배타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척하려 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포용할 것이다. 가장 쉽게 난민에 대한 여러 국가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난민들은 유토피아를 찾아 떠돌지만 그런 유토피아는 없다. 대부분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던 국가들은 잔인하게 난민들을 외면한다.
영화의 제목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콘크리트로 만든 아파트, 황궁 아파트를 의미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아파트의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낡은 오래된 아파트이지만 자산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사전적 의미로 집은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모든 사람이 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충분한 자금이 없으면 그런 집을 구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현대 사회에 꽤 만연해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점점 배타적으로 변해가는지도 모르겠다. 이 집은 내 집이니까 외부인은 나가라는 그 편한 말은 그들에게 안정감으로 돌아온다.
현대 사회 시스템의 축소판,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 초반 민성이 통조림을 떨어뜨려 소파밑으로 굴러간다. 그것을 집으로 소파 밑에 팔을 뻗어 통조림을 꺼내자 바퀴벌레들이 튀어나온다. 그러자 아파트 사람들은 기겁하며 모두 바퀴벌레를 밟아 죽인다. 이 영화에서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외부인들을 바퀴벌레라고 부른다. 그 영화 초반 장면 자체가 이 영화의 전체 이야기를 함축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관객에게 ’ 너라면 어떤 결정을 할 것 같아?‘라고 묻는다. 안정적인 사회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하면서 나아가야 할까.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어쨌든 결정을 하고 실행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 질문은 꽤 난해하고 아픈 질문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영화적 재미를 놓치지 않고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영화는 올여름 개봉한 영화 중 가장 지적인 이야기를 던진다. 적어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루는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초반의 어눌한 모습의 영탁이 후반부로 갈수록 광기에 휩싸이는 것을 표현한 이병헌의 연기가 무시무시하다. 민성 역을 맡은 박서준은 사회 시스템에서 안정적인 방향의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하지만 예상과 다른 결말을 보게 되어 황망해하는 모습을 무척 잘 표현했다. 그 밖에도 명화 역의 박보영과 부녀회장 김선영의 연기도 훌륭하고 그 외의 인물들도 모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줘 극에 현실감을 높인다.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표현해 낸 엄태화 감독의 연출력이 가장 돋보인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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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을 찾는 여정 그 자체가 '모험'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같은 현실을 걷고 있을 때,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처럼, 내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답답한 마음으로 꽉 차 있을 때는 ‘맞아. 잘될거야.’라는 말을 듣고 싶어 타로를 보기도 한다. 과학적근거나 확률과는 상관없이 오직 마음의 위안을 위해, 그저 괜찮다는 말 한마디가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 지금 하는 이 선택이 맞는 걸까?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 찬 삶의 여정에, ‘촤라락 – 이 쪽이야.’ 하고 답을 주는 나침반이 있다면, 이 세상은 걱정 없는 유토피아가 될까?
생각만 해도 가지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 ‘진실만을 알려주는 황금 나침반’이 있는 세상은 하늘의 마녀, 바다의 집시, 얼음의 곰이 존재하는 현실세계의 평행세계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데몬’이라고 불리는 분신, 혹은 영혼같은 동물을 하나씩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세계의 학자는 ‘일레시오미터’ 라는 숨겨진 것을 모두 드러내는 황금나침반을 발명하는데, 내가 그렇게 바라던, 너무도 유용할 것 같은(!!!!) 이 나침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권력집단 메지스테리움.
모두가 ‘진실’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축복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자신의 절대적인 권력을 방해하는 ‘적’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황금나침반을 모두 없애 버렸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진실에 다가가는 것 자체가 커다란 모험이 되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야 하게 되었다. 영화 <영화 나침반>은 단 하나 남은 황금 나침반을 가지게 된 소녀 라라의 이야기다. 메지스테리움의 사제가 두꺼운 책을 찾아 며칠동안이나 해석해야 하는 나침반의 지표를 바로 읽을 수 있는 특별한 아이. 라라는 권력을 차지 하기 위해 벌이는 거대한 전쟁을 막기 위해 여정에 오른다.
그 길에서 만난 ‘진실’들은 라라에게 잔혹함 그 자체다. 아이들이 사라진 이유는 어른들의 잔혹한 실험 때문이고, 그 실험을 주도하는 악인은 자신을 낳아준 엄마이고, 평생을 삼촌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은 아빠였다. 그리고 엄마는 아빠를 죽이려고 한다. 혼란스럽고 충격적인 진실들 앞에서 라라는 주저 앉아 좌절하고 우는 대신, 헤쳐 나가기로 한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우리는 언제나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만, 그 진실이 너무 괴로울 때는 모른 척 눈감아 버리는 것이 더 쉬운 선택일 때가 있다.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직면하고, 맞선다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 인지, 그래서 평행세계가 아닌 현실세계에서도 진실을 찾는 것은 언제가 큰 모험이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진실을 마주할 모험을 떠나기를 주저 하지 않는 사람이길. 쉬운 길 대신,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길. 그 마음 자체가 황금나침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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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시대의 무의식을 직설적으로 엮다
[DMZ Docs] 시대의 무의식을 직설적으로 엮다
영화 <코리안 드림 : 남아진흥 믹스테이프> 리뷰
감독] 이태웅
시놉시스] 지금은 사라진 영화사인 남아진흥이 196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사이에 제작한 영화 60여편의 파편들을 이어 붙여, 영화의 장면장면에 반영된 냉전 시기이자 고도성장기를 살아내는 한국인의 내면 풍경을 한 편의 '영상 믹스테이프'로 만들어 감상한다. [출처 : 제16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https://www.youtube.com/watch?v=ouAh_75Oqi0
#스포일러 유의
은유의 미학을 직설적으로 섞어내다
사실 한국영화가 어떻게 발전해왔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서 파편화되어 있는 코리안 드림 : 남아진흥 믹스테이프를 보며 과연 공감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부분이 있었다. 이미 알고있는 작품들이라면 파편화된 장면들을 보면서 그 작품의 내용이 떠오르기도 하고, 현재 모아진 장면들끼리 연결성을 생각하면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텐데 그러한 배경 지식 없이 보다보면 지루하거나 이해를 못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영화 코리안 드림 : 남아진흥 믹스테이프는 과거 영화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굉장히 소주제로 분류가 잘 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편한 작품이었다.
사실 이러한 믹스테이프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에는 감독의 덕후적인 기질이 잘 드러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자신에게는 너무 쉬운 작품들이고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작품이어서 어쩔 때는 상당히 불친절하게 내용을 엮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영화 코리안 드림 : 남아진흥 믹스테이프는 감독의 덕후적인 뾰족함은 드러내면서도 대중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꿈이라는 파트를 예로 들자면 우리에게 친숙한 배우가 상을 타는 장면을 넣어 그녀가 꿈을 이뤘고, 앞으로도 그 꿈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는 다짐을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어서 집을 가지고 싶은 꿈, 가정을 이루고 싶은 꿈 등 각각의 영화 속에서 캐릭터들이 가진 꿈들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장면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과거 시대 속에서 가졌을 꿈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영화는 은유의 미학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그 은유 덕분에 예술 영화가 대중에게서 멀어지고 좋은 작품들이 화제성 없이 사라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영화 코리안 드림 : 남아진흥 믹스테이프는 과거 영화라는 장르 속에서 보여주었던 그 미학들을 직접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통해 현대의 사람들이 과거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준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시대의 무의식을 엿보다
영화의 배경과 캐릭터가 현실을 담지 않고 있을 수 있다. SF영화이거나 이세계를 다룬 작품이거나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거나 등등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아닌 다른 것을 담은 영화는 굉장히 많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 중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현실을 살아가면서 어쩔 때는 현실의 도피처로, 다른 때는 현실의 문제에 답을 구하러 등 결과적으로는 현실과 매개되어 영화를 볼 수밖에 없다. 단순히 즐거움을 위한 소비라고 하더라도 그 영화의 내용이 현실 속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수록 영화에 더욱 공감을 하게 되고, 여운이 짙게 남아 평이 좋게 나오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 코리안 드림 : 남아진흥 믹스테이프는 30년간의 대한민국의 시대를 엿볼 수 있었다. 장남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 이로인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가부장적인 분위기, 그로 인해 도구적인 장치로서 등장하는 여성, 이에 도전하는 급진적인 여성캐릭터가 등장하는 듯 하지만 결국 남성과 사회에 순응하게 되는 시퀀스 등 1960~90년대 사회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던 시대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특히,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의 납북과 관련된 내용의 경우에는 당시 반공의식가 강했던 터라 그들이 돌아왔을 때는 환영의 분위기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8년간 북한에서 17편의 북한의 체제를 수호하는 영화를 만든 그들을 향해 굉장히 신랄한 비판이 이어지던 분위기였는데, 그들을 대하던 방식과 그들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보면 반공의식이 남아있던 시대의 무의식 속에 그들은 납북을 당했다 도망쳐온 사람이 아닌 북한의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이미지가 더 강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재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에 매체는 그 시대의 무의식을 어김없이 반영한다는 것을 잘 느끼게 해준 포인트 였다.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한국 영화의 과거 작품들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사람으로서 영화 코리안 드림 : 남아진흥 믹스테이프는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상을 가지고 발전해왔는지 살펴볼 수 있었던 좋은 스터디케이스가 되었다.
<상영시간표>
2024. 9. 28. (토) 17:00 메가박스 킨텍스 4관
2024. 10. 1. (화) 19:30 메가박스 킨텍스 7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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