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11-20 10:44:57
11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북미에서도 저예산으로 흥행을 터트린 <프레디의피자가게>가 한국에서도 1위에 올라서며 흥행저력을
입증했습니다. <더 마블스>는 누적관객수 100만명을 넘기지 못하고 있으며, 주말관객수 또한 9만명에
그쳤는데요.
또 지난 1일에 개봉한 한국영화 <소년들>은 총 관객수 50만명을 넘기지 못하며 한국 영화와
극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는데요. 이 상황을 극복해 낼 수 있을까요?
[국내 박스오피스]
호러명가 블룸하우스에서 제작한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34만명을 기록하면서 국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섰습니다. <더 마블스>는 9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위를 했고 박서준의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지만 적은 분량으로 실망한 관객들과, 마블이 예전같지 않은 영화들을 선보이며 좀처럼 기운을
못내고 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국내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가 북미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습니다. 17~19일 4400만 달러를 벌어들여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으며, 이전 시리즈들은
총수익 3조를 넘긴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전 세계 13개국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한 <트롤: 밴드
투게더>가 2위에 올랐고 국내엔 레드벨벳 웬디, 라이즈 은석이 캐스팅되어 12월 20일 극장을 찾아온다고
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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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AN 데일리] 로맨스 없이도 로맨틱
감독] 이원석
출연] 이하늬 이선균 공명 배유람
시놉시스] 대재앙 같은 발연기로 국민 조롱거리로 전락한 톱스타 ‘여래’(이하늬).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떠난 남태평양 ‘콸라’섬에서 운명처럼 자신을 구해준 재벌 ‘조나단’(이선균)을 만나 결혼을 하고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한편, 서울대가 당연한 집안에서 홀로 고독한 입시 싸움 중인 4수생 ‘범우’(공명)는 한때 자신의 최애였던 여래가 옆집에 이사온 것을 알게 되고 날마다 옥상에서 단독 팬미팅(?)을 여는 호사를 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조나단의 사업 확장을 위한 인형 역할에 지친 여래는 완벽한 스크린 컴백을 위해 범우에게 SOS를 보내게 되고 이들은 여래의 인생을 되찾기 위한 죽여주는 계획을 함께 모의하는데…
2023년 개봉작 중 입소문으로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은 역시나 <킬링 로맨스> 아닐까. “재미있겠네. 다음에 봐야지…” 정도로 가볍게 바라보고 있던 이 영화는 극단의 호불호 후기와, 해탈한 듯한 배우들의 인터뷰, 무대 인사 후기까지 죄다 재미있었다. 이제 영화만 재미있으면 되는데. 나는 <킬링 로맨스>를 보기 전에 감독의 전작 <남자사용설명서>부터 보았다. 이십대 초반 아직 풋풋하던 내가 극장에서 보기엔 너무… 포스터가 이상해 보였던 작품이었는데, 생각보다 좋았고 생각보다 웃겼으며 생각보다 뇌리에 남았다. (이유를 모르겠는데 무반주 음악에 흠… 하핫… 핫초ㅑ… 하며 뻘쭘한 춤을 추던 배우 오정세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 버렸다.)
이것도 재미있겠군! 웃기겠군! 좋겠군! 기대하며 <킬링 로맨스>를 보았다. 재미있었고 웃겼고 좋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영화의 어느 한 구석이 나의 오타쿠 감성을 자극하고 말았으니… 나는 감동까지 받아버리고 말았다. 팬과 스타, 로맨스 없이 로맨틱한 그 관계에 대하여.
#1. 브리트니 스피어스 <Lucky>
태초에 “She was everywhere”였던 누군가가 있었다. 존재 자체로 센세이션. 그를 모두가 “사랑”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랑”은 너무 일방적이고 그만큼 오해와 편견에 빛을 잃기도 쉬워…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Lucky> 노래 가사처럼, 그토록 사랑을 받는 스타는 밤에 혼자 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센세이션이 저물고, 세상은 “사랑”할 다른 상대를 찾아 나선다.
이 영화의 여래(이하늬 분)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브리트니의 노래 가사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무수한 말, 쏟아지던 조롱과 비슷한.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노래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HOT의 <행복> 말이다.
기묘한 마이페이스로 밀어붙이면 상대는 기세에 눌리기 쉽다. 마치 괴한을 쫓던 그의 “powerful punch”처럼. 그러나 비대한 자의식에 자리를 내어주느라 상대의 자아에는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아무리 사랑의 언어와 행복의 노래를 가장한다 해도. 이미 세간은 이 가장을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로 담아낸 지 오래다.
#2. HOT의 <행복>과 레드벨벳의 <행복>
조나단의 입버릇은 ‘완성’이다. 그러나 그가 완성한 프레임 속 여래의 미소는 랄라텐 광고 속의 미소 반만큼도 살아있지 않다. 옆집 사수생 범우에게 받아 든 랄라텐을 예의 실력으로 순식간에 마셔버린 다음 미소를 짓는 여래는, 랄라텐 마시는 속도 하나만으로도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실력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연예인인데 말이다. 그는 조나단의, 조나단을 위한, 조나단에 의한 조나단 월드에 갇혀 있다.
조나단이 귤을 쥐는 순간, 이 영화에 귤이 처음 등장한 순간, 아직 아무 정보도 주어지지 않았는데 왜 소름이 돋았을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폭력의 수단이 무엇이든 폭력은 폭력이다. 뭐든 폭력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주목해야 하는 건 그 폭력성이다. 새콤달콤한 귤에 죄가 없다고 귤을 이용한 폭력이 죄 아닐 리 없을 것이다.
수단에 감정 이입하는 건 모두 틀렸다. 폭력의 수단뿐 아니라 행복의 수단도 마찬가지다. <행복>의 노래는 새로 부르면 된다. 레드벨벳의 <행복>을 불러도 되는 거고, HOT 노래를 NCT가 리메이크할 수도 있는 거고요. (참고로 그 곡은 행복이 아니라 <캔디>이며, 공명의 동생 도영은 거기 없었지만… 이선균 씨 참고 바랍니다.) 게다가 잘 들어 보면 여래의 필모그래피에는 이미 <행복>이라는 제목의 작품도 있다. 수단은 바꿔치울 수 있다. 중요한 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고, 칸트처럼 말해 보자.
#3. 에픽하이 <fan> 대신 자우림의 <fan>
가스라이팅 앞에 기꺼이 “bad girl”이 되겠다 일갈하고, <제발>을 부르며 일어선 여래의 분연한 얼굴은 분명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다. 그 덕분에 방범등은 꺼지는 순간 축포가 되고, 바로 그 순간 달은 가득 차올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내가 계속 주목하게 된 건 여래와 범우 사이의 마음이었다. 7년째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응원하는 노래로 자기 삶을 응원한다는 건 어떤 마음인가. 비록 범우는 여래의 소원을 척척 이루어 주지도, 여래와 같은 마음으로 손발을 척척 맞추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여래가 돌아갈 과거가 다시 여래의 미래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그런 범우가 영화 속에서 불가능을 넘어 소통하는 법을 아는 인물이라는 점 또한 괜스레 뭉클하게 느껴진다. 그런 목소리라면 닿을 것이다. 여래에게 닿았듯이. 진심으로 표현하고 소통하고자 했으나 끝내 대중과 화해하지 못하고 떠난 어떤 이들에게도.
세상에는 범우의 다락방 같은 방이 얼마나 많을까. 부디 거기서 울려 퍼지는 팬의 노래가 에픽하이의 곡보다는 자우림의 곡에 더 가까웠으면 한다. 가질 수가 없는 미친 사랑을 괴로워하는 마음보다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더 행복하니까.
#4. 그리고 어느 팬에게 남은 말
한때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우리 오래오래, 시간을 따라 함께 기쁘게 뛰어보자고. 땀 나고 타조 깃털 휘날리는 길이더라도, 같이 뛰어가고 싶다고. 뜬금없는 타이밍에 노래를 부르고(“누나 왜 노래를…”), 거기서 함께 힘을 얻으면서 가보자고. 무지하게 겁나도 끝까지. 그렇게.
나는 당신 얼굴의 자연스러운 주름, 세월 따라 더해지는 표정, 그런 것들을 오래 보고 싶다고. 그런 모습이 좋다고. 그냥 이 작업이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즐거운 것이었으면 한다고.
로맨스가 아니어도 충분히 로맨틱한, 어떤 행복이라고.
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6/29~7/9) 중 상영일정
7월 1일 19:30-21:17 한국만화박물관 (상영코드 337)
7월 5일 19:30-21:17 CGV소풍 4관 (상영코드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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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의 기준은 흐릿하고 희망은 또렷하다
도대체 그 '성공'이 뭔가요?
흔히 ‘성공’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반짝이는 야경을 가진 도시 대게 이런 ‘세련’되고 ‘반짝이는’ 모습들이 그려진다. 이런 성공 판타지에 취해 언어 공부, 스펙 쌓기, 자격증, 대외 활동 등등 바쁘게 살다보면 정작 내가 바라던 삶이 이런거였나 하는 소위 말하는 현타, 번아웃이 오기 마련이다.
그러다 문득 “성공, 꼭 해야할까?” 라는 질문이 떠오르기도한다.
아니, 성공의 모습이 꼭 이래야하는가? 라는 질문이 더 맞는 것 같다.
영화 <김씨표류기>는 이런 질문을 품고있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위로와 공감,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건낸다.
사회적 낙오자가 되고 외딴 섬에 표류된 김씨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또 다른 김씨의 모습 속에서 누구나 자신의 고민과 방황의 경험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기력’에서 ‘심심함’을 거쳐 ‘몰입’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step 1. 무기력
무기력해지기 쉬운 세상이다.
연애, 회사, 일, 돈… 모든 방면에서 ‘미달’인 남자 김씨는 무능하고 무력하다.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잘리고, 2억의 빚을 지닌채 재취업에 도전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남들 다 하는데 넌 안되냐"라는 비난을 헤집으며 말 그대로 발버둥 치는데, 정작 돌아오는 건 기계적인 대출 광고 뿐이다.
"희망을 갖자. 대출을 받자"라며 희망을 속삭이지만 더 큰 절망을 안겨주는 이 사회에서 남자 김씨는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다.
step 2. 심심함
더 이상 빚과 취직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무인도의 김씨는 이제 심심함이라는 사치를 누린다.
“심심하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완벽한 심심함입니다”
무기력과 심심함은 언뜻 보기엔 비슷할 수 있으나 엄연히 다르다. 둘 다 활기 없이 축 처진 느낌을 연상케하지만, 무기력은 그런 상황을 개선시키고자 할 수 없는 상태이고 심심함은 현재의 지루함을 바꾸고자하는 마음이 싹틀 수 있는 상태이다.
언제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생 버섯 등 아무거나 입에 넣는 김씨. 이런 심심함이 주는 잔잔함과 평화로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step 3. 공허한 ‘몰입’
공허한 ‘몰입’으로 심심함을 회피하는 둘. 남자 김씨는 처음에는 단순 생존에 몰입한다. 새를 잡고, 고기를 굽고, 오리배로 집을 만들고. 물론 생존에 필요한 일들이지만 이러한 단순 생존 수칙들은 남은 인생을 보낼 동력이 되지 못한다.
여자 김씨도 마찬가지다. 하루를 생산적으로 살았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제자리에서 만보를 걷는다. 온라인에서 남을 도용하며 거짓으로 사는 삶. 하루하루를 계획적으로 나름 ‘바쁘게’ 살고 있지만 너무나 공허하고 의미없는, 허상된 생산성과 몰입에 충실한 삶에 그친다.
step 4. 마침내 도달한 진짜 ‘몰입’
이 둘은 각자의, 또 맞닿은 희망을 동력으로 마침내 진실된 ‘몰입’의 상태에 이른다.
짜장면을 먹기 위해 밀 재배를 하는 남자 김씨. 언제 죽어도 좋다던 그가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 농사를 지으려면 건강해져야 한다며 운동까지 한다.
자신만의 루틴을 지키며 인터넷 상에서만 생활하던 여자 김씨도 비로소 현실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남자 김씨에 대한 호기심과 그와 소통하겠다는 목표가 생기자 그녀는 마침내 바깥에 있는 김씨의 사진을 찍고, 그가 보낸 메시지를 읽고 여러 감정을 느낀다. 인터넷 속 그녀가 아닌 현실의 ‘김정연’이 깨어난 것이다. 방문을 걸어잠그고 화장실 가는 타이밍도 눈치보더니 그녀가 무려 집 밖을 나서서 남자 김씨가 있는 섬 쪽으로 편지까지 던진다.
이처럼 자신의 진실된 목표와 희망에 ‘몰입’하는 삶은 활기 넘치고 의미있는 변화를 촉구한다.
Hello
How are you
Fine thank you
기어코 둘은 서로를 발견한다.
여자 김씨의 일방적인 호기심을 넘어 이제 둘은 소통하며 서로의 존재를 소중히 여긴다.
안식처이자 도피처였던 밤섬은 사라졌고,
인터넷 속 여자 김씨의 삶은 청산되었지만
둘은 서로가 있기에 괜찮을지도 모른다.
사회가 말하는 ’성공‘의 기준에 들어가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와 희망을 위해 살아본 뜨거운 마음이 둘에게는 남아있기 때문이다.
김씨들을 향해 보낸 응원들이 자신에게도 닿길
물리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고립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여자 김씨와 남자 김씨.
이 둘에게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다름 아닌 희망과 목표의식이다.
제대로 된 재료 하나 찾기 어려운 밤섬에서 짜장면을 먹겠노라 다짐한 남자 김씨.
직접 면을 뽑기 위해 농사를 짓고 옥수수를 재배하는 추진력을 선보인다. 작지만 원대한 그의 꿈을 지켜보며 관객들은 목표 달성에 가까워지는 순간순간을 응원할 수 밖에 없게된다. 신용불량카드로 오리배에 붙은 새똥을 긁어 발견한 씨앗, 허수아비 머리 깡통 밑 자라난 옥수수, 짜파게티 속 짜장스프… 누군가에게는 하찮아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짜장면을 진심으로 바라는 김씨와 함께 관객은 자연스레 짜장면 영접의 순간을 간절히 소망하게된다.
배달로 뚝딱 얻게되는 짜장면이 아닌 면발 가락 하나하나 직접 만든 수제 짜장면은 더욱 달콤하리라.
여자 김씨를 응원하는 마음도 점차 커진다. 남자 김씨에게 전달할 편지를 담은 유리병을 던지기 위해 한강으로 향하는 그녀. 3년째 은둔 생활을 하는 그녀가, 내 집 화장실 하나 가는 것도 계산하는 그녀가 무려 집 밖으로 나가 한강 다리 위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결심의 순간들이 있었을까?
영화 속 김씨들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끝끝내 희망을 놓치지 않기를 바랐던 것 처럼
현실 속 우리도 희망의 메시지를 품고 서로 응원하기를 주저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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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디어 조이, 디어 재클린
편지로 영화 리뷰를 써보기는 처음입니다만, 당신들의 이름을 꼭 부르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이 <고독의 지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명명해 주었듯이.
우선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대상 수상을 축하드려요! 감히 추측해보자면 수상이 당신들의 일과에 큰 변화를 줄 것 같지는 않아요. 조이는 여전히 매일 세이블 섬의 해안에서 죽은 새를, 말똥을, 쓰레기를, 물범을 살피겠죠. 재클린 당신도 어디선가 내가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끌어내고,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담아내며 작업을 계속할 같습니다. 우리 셋(이라고 묶어도 된다면) 중 이런 소식에 연연하는 사람은 저뿐일 것 같네요. 이 영화와 가장 무관한 사람인데 말이죠...
하지만 한 관객으로서, 이 이야기가 더 멀리 퍼져 나가길 바라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과 이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고 무작정 주장해 봅니다. 아무튼 기뻐요. 결과를 예상하고 예매한 건 아니었지만요. 뭐가 경쟁 부문인지 아닌지도 신경 쓰지 않고, 저의 일정과 영화에 붙은 짧은 소개글만을 보면서 영화를 고르거든요. 참고로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당신들의 영화는 한국어로 이렇게 소개되었습니다. 한번 보세요.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해역의 외딴곳, 세이블 섬에 두 여성이 있다. 환경 보호 활동가인 조이 루커스는 1970년대에 처음 이 섬에 당도했을 때 미술학도였다. 조이가 이 가느다란 땅에서 지낸 세월은 벌써 수십 년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내왔다."
"70년대 미술을 공부하던 조이 루커스는 캐나다 세이블 섬을 방문하고, 이후 그곳에 거주하기로 결정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섬의 식물과 동물을 연구하는 데 쓰고 있다. 카메라는 조이의 일상을 따라가며 섬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곳을 배회하는 야생마들을 비춘다. <고독의 지리학>은 감독과 그의 관찰 대상인 루커스의 삶과 작업에 대한 철학을 내포한 작품이기도 하다. 물질적 가치와 관계없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일에 대해 장인 못지않은 헌신적인 태도로 임하는 이들의 모습은 세상사와 관계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면서 기쁨을 찾는 두 여성의 행복감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비록 이런 삶이 외로움을 동반한다 하더라도 이는 진정한 예술가의 운명이기도 할 것이다. [문성경]"
노바스코샤는 제가 사랑하는 빨간 머리 앤의 출생지예요. 프린스 에드워드 섬 에이번리 마을은 그가 자란 곳이고, 부모님이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기 앤은 노바스코샤에 있었죠. 게다가 야생마라니. 저로서는 <작은 아씨들>의 조 마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말과 책만 있으면 된다고, 그렇게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치던 사랑스러운 십대 시절의 그를.
내 어딘가가 잘못된 게 아닐까 스스로를 불안해한 적이 있고, 책을 좋아하며, 꿈이 많았던 여자아이들은 누구나 한 번쯤 앤과 조 마치를 그려봅니다. 저 또한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직도 사회가 기대하는 "삼십대 여성"의 삶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더 가깝게 느껴요. 그래서 그들을 연상시키는 단어에 끌렸고, 이어 당신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당신은 왜 그 섬에서, 왜 그 연구를 할까? 당신은 왜 거기서 그 모습을 촬영했을까? 무엇이 당신들을 그렇게 움직였을까?
언제부턴가 "이제 어디로 가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갈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많은 길 중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어서요. 정답지가 있다면 좋겠지만 없습니다. 오늘을 사는 건 처음이니까.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생을 톺아보다 문득, 지금이 나의 최전선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실 평생 동안 매일 마찬가지였는데 참 새삼스럽지요.
삶을 길에 비유하는 건 익숙하지요? 거긴 어떤지 몰라도 여긴 나이에 따라 할 일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어, 그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어떤 감정들에 부딪히게 됩니다. 내가 이상한 걸까 하는 고민부터, 내 선택을 행복과 성공으로 증명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까지. 솔직히 저는 스스로가 아주 이상한 케이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평범과 거리가 멀다고 여기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긴 해요.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인생 전체에 대해서 아무 생각 없던 제 자신이 불안합니다. 내가 나를 책임져야만 할 것 같은데 방법을 몰라서요. 앞으로를 어떻게 그려갈 것인가 밑그림을 잡아두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직장인 생활을 몇 년 하고 나니 "커리어 패스career path"가 종종 입에 오르고, 주변에서는 결혼 계획을 묻습니다. 질문이 늘어갈수록 가볍게 떨쳐지지 않습니다. 훌륭한 직업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계획 없이 취미에 몰두하는 내가 너무 안일한 걸까?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 여기는 내가 이상한 걸까? 어른들이 인생의 지혜로 하는 말들을 나만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걸까? 불안과 질문이 삶의 전방위로 거미줄처럼 뻗어갑니다. 점점 더 불안해집니다. 내가 한 선택들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해야만 할 것 같고요.
영화를 보면서 이 마음에 도움이 될 만한 실마리를 찾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의 삶을 멋대로 기대해서 미안합니다만, 영화 속에 확신에 찬 당신들이 있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불안해지는 질문들 앞에 이 영화를 방패처럼 휘두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이기적인 이유로 들어선 영화관에서, 기이하리만큼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파도가 깨진 자리에 빛이 튀기고, 바람이 풀밭을 쓸어주는 모습은 그래도 전에 좀 보았지만... 태어나 처음 보는 것들이 그토록 많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사실 이런 걸 볼 수 있다 상상도 해보지 못했어요. 암실에서 작업하는 대신 별빛에 노출시키고 해초로 현상한 필름. 말똥에 묻었다가 들풀로 현상한 필름.
작업하면서 둘이 보냈을 시간을 상상해 봅니다. 잔잔하고 평온한 애정의 시간. 동시에 단조롭고 이따금 지치는 노동의 시간. 생이란 본디 그런 것일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무용한 것들이 정말 무용한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당신들의 작업에 자꾸 "왜?"를 붙이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말똥 속 벌레를 왜 잡아서 보는 거지? 물범이 새끼를 뱄는지 왜 살피지? 그걸 어디다 쓰지? 이 질문들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당혹하게 만듭니다. 나는 그걸 왜 묻지?
습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중구난방의 삶을 어떻게든 그럴듯해 보이도록, 멋진 일직선의 설계를 할 수 없을까 고민하면서, 매 순간 저에게 하나하나 따져 묻고 있던 것입니다. 이걸 해도 되나? 왜 하려는 거지? 대신 저걸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신들의 작업물에는 "왜"가 없었습니다. 단지 앎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기반으로 내린 수많은 선택이 있었습니다. 순간의 자잘한 선택들이요.
미대생이었던 조이 당신이 지금 모습이 되기까지, 그저 이 섬이 좋아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와 있다는 오늘까지, 수많은 선택들이 중첩되었을 뿐. 무수한 선택들이 모여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갑니다. 3년용 프로젝트로 지은 집이 20년을 버티기도 하고, 때로는 한 번의 만남이 모든 걸 바꾸기도 하죠. 그러니 저는 예상할 수 없는 이 삶의 여정 각 단계를 설계하겠다고 아등바등 애쓰는 게 아니라,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내가 오래 바라봐도 지치지 않을 방향이 어디인가, 조용히 묻고 답을 찾으면 그만이었던 거예요.
"일단 해보자"는 재클린 당신은 또 어떤가요. 나무가 그림을 그리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는 사람이라니. 세상에 누가 개미의, 달팽이의, 딱정벌레의 음악을 전달해 주겠어요.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음악들이 있죠. 요즘 케이팝은 표절 시비를 피하기 위해 여러 곡을 믹스해 내기도 한대요. 그러다 보니 같은 곡의 앞부분과 뒷부분이 전혀 다른 곡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딱 케이팝이 복잡해진 만큼 세상 모든 게 다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알아야 할 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하나라도 놓치면 도태될까 두렵습니다. 이런 마음을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라고 부른다는데... 저는 이런 단어까지도 놓치지 않겠다고 아등바등, "포모"로 살아왔네요.
재클린, 당신이 음악에 조예가 깊은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만 당신이 포모가 아니었음만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일단 해보는 그 마음 하나로, 세상 가장 고유한 음악을 (저작권료 지불도 없이!) 여기까지 데려왔어요. 음악의 역사에 정통할 필요도, 지식을 섭렵할 필요도 없었을 거예요. 결국 세상이 뭐라든, 뭐가 어떻든, 자기 길을 가는 것만이 정답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알면서도 어딘가에서 더 손쉽고 덜 외로운 해답이 뿅 나와주지 않을까 기웃거리던 마음을 부정할 수 없네요.
두 사람이 내게 말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쓸데없이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깊은 생각 하지 않고, 네 할 일을 하라고. 당장은 에둘러 가는 길처럼 보일 수도 있고, 뒤죽박죽 오락가락하는 것 같아 보여도 괜찮다고. 굵직한 일 없어도 단지 계속하는 게 얼마나 강한 일인지 아느냐고. 물개 연구 모임에 취사 담당으로 자원해 세이블 섬을 다시 밟았던 조이, 당신이 지금 거기 남은 유일한 사람이듯이.
그 섬을 집이라 부르기까지 당신이 놓쳐버린 것들도 물론 많음을 인정하지만, 사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기에 그걸 인정하는 게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는 태도일 거예요. 그 끝에, 사랑이라 말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경지에 이르는 거겠죠.
저는 이제 저에게 "왜"라고 묻지 않으려 합니다. 이걸 해서 뭐에 쓸 거냐는, 생산성의 질문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사무실의 일에서처럼 전체를 가늠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을, 제 인생을 대상으로도 해보겠다고 애쓰지 않을 거예요. (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단지 바라볼 겁니다. 풀숲에 앉아서, 풀잎과 바람 속에서 녹색 바다를 보는 눈이 있다면 다 괜찮을 거예요. 오늘의 쓰레기를 줍고 숫자를 헤아리면서도, 조이 당신처럼 장미와 향나무 냄새를 느끼겠지요. 그거면 돼요.
재클린은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사랑으로 한 일a lavour of love"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런 마음으로 이 삶을 들여다보려 해요. 지금 사랑하는 것들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흘러갈지 아직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걸 지금 말할 수 없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다만 우연으로 보이는 것들조차 첩첩 쌓이다 보면 상당한 무게가 생기고, 무게가 생긴 것들이 어디로 기우는지 보면 되겠죠. 놓치는 것도 낭비는 아닐 겁니다. 방목되다가 잊힌, 연안의 섬을 뛰어다니는 야생마들은 멋졌으니까. 제 삶에 그런 말들이 뛰어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무튼 끝에는 반드시 어딘가로 흘러갈 것만은 확실합니다. 당신들의 세이블 섬처럼. 직접 만든 드림캐처와 엽서가 가득 붙어 있는, 그 멋진 책상 위처럼. "일단 해본" 그 모든 아름다운 필름 위처럼.
거기서 다시 만날게요. 고독의 지리학도들에게 소실점은 그곳일 테니까.
전주국제영화제 정보
▶ 아쉽지만 이번 영화제의 모든 상영이 끝났어요.
▶ 자세한 정보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의 초청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프레스로 참석하였습니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2022년 5월 7일까지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계속 진행됩니다.
일부 온라인 상영작도 있어요. 어디 계시더라도 우리 전주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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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006)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 2006)
<런웨이>의 편집장인 미란다, 그녀의 등장에 모든 직원들은 분주해진다. 너저분했던 책상 위 쓰레기를 모두 치우고, 편한 슬리퍼를 벗고 구두로 갈아 신는다. 기자의 꿈을 꾸던 앤디(앤 헤서웨이)가 면접을 보러 와서 목격한 광경이다. 늘 구두를 신고 다니는 런웨이 직원들을 일명 '또각이'들이라고 하며 남자친구에게 그들의 옷차림을 비판하던 앤디는 어쩌다가 런웨이에 입사하게 된다. 워낙 명성이 자자한 잡지사인 이 곳에서, 그것도 미란다의 직속비서로 1년만 버티면 어떤 회사든 들어갈 수 있다는 소문에 앤디는 또각이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버텨보기로 한다. 하지만 소문난 '얼음공주', '워커홀릭' 미란다의 취향과 세세한 요구를 맞추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앤디의 전화벨 소리만큼 앤디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미란다의 심부름으로 점점 지쳐가고 10번 잘하다가 1번의 실수로 듣는 쓴소리에 앤디는 그나마 해낸 9번의 보람마저 없어진다.
'할머니 치마'와 편하고 두툼한 운동화를 신고 온 앤디의 첫 출근날, 그녀에게 구두를 던져준 디자이너 나이젤에게 하소연하던 앤디는,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패션잡지회사에 다니면서 직원들에 대한 불평과 불만만 하고 지냈지 자신은 정작 어떠한 관심도, 애정도 없이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앤디는 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업무에 대한 꼼꼼함과 버티기는 잘해왔었던 앤디의 새로운 노력에 미란다는 점점 눈길을 준다. 쉴 새 없이 울렸던 앤디의 전화벨은 두배, 세배로 더해지고 앤디는 에밀리만 할 수 있었던 미란다의 집에까지 드나드는 일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미란다에게 인정받게 된다. 앤디는 기존 비서인 에밀리의 자리가 밀려날 수 있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직장에서 잘 나가면 개인사가 삐걱대지-'라는 나이젤의 이야기가 앤디에게도 일어날까?
영화를 처음 봤던 5년도 더 지난 그때는 메릴 스트립의 존재감과 앤 헤서웨이의 변화된 모습이 마냥 재미있기만 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시 보니, 다른 것들이 보인다. 특히 앤디의 열정 속에 느끼는 갈등과 갈증에 대한 그녀의 고민들.
자신이 가진 커리어의 성공적인 스토리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미란다의 모습은 그녀의 외적인 포스뿐만 아니라 영화의 플로우에서도 느껴진다. 예를 들면 앤디가 런웨이에 들어가기 위해 한 노력의 과정은 영화에서 밝히지 않는다. 다만 미란다가 앤디를 합격시켰던 이유와 당시 앤디에 대한 미란다의 어떤 감정들을 이야기를 해줌으로써 앤디가 단번에 성장하게 된다. 이 과정도 앤디의 다양한 변화를 한 쇼트로 이어서 담아 이야기의 다음 파트를 밀고 나가는데 힘을 싣는다. 그렇게 앤디는 런웨이에서의 경력을 쌓게 되면서 영화도 앤디 개인의 꿈과 직업에 대해 선택하는 과정들을 같이 쌓아간다. 주축이 되는 두 캐릭터의 성격을 명확하고 디테일하게 설정한 감독은 영화의 엔딩까지 캐릭터에 설정한 신념을 끌고 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엔딩씬의 매력이 더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봐도 좋은 영화, 좋은배우들.
원작 소설이 있다고 하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다. 다만 원작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영화로써만 보여줄 수 있는 장면들이 확연히 느껴진다. 벌써 개봉한 지 14년이 지난 영화를 오랜만에 관람하니 이 영화가 2020년에 만들어졌다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무척 궁금하다. 그리고 관람객들은 이야기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다음 이야기로 힘을 싣는 이 영화의 매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명작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명작이라는 것을 안다. 결국 콘텐츠도 이야기의 힘이라는 것도 안다. 그저 영화의 체험적인 면모가 커질수록 함께 커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아쉬운 마음에 이런 생각해봤다. 그저 이야기의 힘이 사라지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포토 스틸컷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성 실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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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잃어버린 순간들이 머무른 그 곳
독립영화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눈컴퍼니’ 배우들의 출연작을 감상한 후 직접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며 즐길 수 있는 제24회 JIFF 특별전 ‘전주영화X마중’를 통해 ‘새출발’, ‘춘천, 춘천’을 잇는 장우진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 〈겨울밤에〉를 감상하고 왔습니다. 중년의 부부 흥주와 은주가 30년 전 처음 하루를 보냈던 춘천 청평사 인근을 다시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하룻밤의 이야기를 독특한 갈래의 전개를 통해 새롭고 묘한 체험의 시간을 선사합니다. 제한된 장소의 반복된 장면, 기이한 등장인물의 행동이 미스테리함마저 드는 젊은 감독의 패기 넘치는 작가주의적 프레임이 돋보이면서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관람이 끝난 후 출연한 이상희, 우지현 배우와 대화가 이어져 논리적으로만 접근할 수 없던 작품에 대해 더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사랑의 끝에서 마주한 시작의 시간, 다른 분들은 어떠셨을지 궁금하네요.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중요한 거라도 들어있나 보죠?”
중년의 부부 은주와 흥주는 과거 군 복무 시절, 함께 방문했던 춘천의 청평사를 30년 만에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때 은주가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말하며, 택시는 다시 청평사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아 헤매던 중 두 사람이 처음 하룻밤을 보냈던 식당을 찾게 되고, 잠 못 드는 그날 밤이 다시 시작됩니다.
예고편│Trailer
영제: Winter’s Night│감독·각본: 장우진
출연진: 서영화, 양흥주, 이상희, 우지현 외 多
장르: 드라마│상영 시간: 91분
국가: 대한민국│등급: 12세 관람가
평점: 관람객 7.84, 평론가 7.4, 왓챠피디아 3.1
개봉일: 2020년 12월 10일
시청 가능 서비스: 단품 결제만 가능
참여: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영화X마중: 눈컴퍼니
“시작하는 이들과 저물어가는 이들이 만난 겨울의 파편”
춘천, 그리고 청평사라는 제한된 장소를 무대로 중년기와 청년기가 교차되는 특이한 여정에 초점을 두고 냉랭함이 가득한 겨울이라는 계절에 갇힌 듯한 두 커플의 초현실적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감독의 전작처럼 청년과 중년의 시간이 때로는 따로인 듯, 때로는 함께인 듯 장면들을 채우고 흘러간 시간만큼 변해버린 그들의 마음을 몇몇의 장소들을 통해 미묘한 연결을 이어갑니다. 이러한 교차는 막 시작한 젊은 커플의 풋풋한 생기가 잃어버린 휴대폰에 대한 은주의 애착인 양 사라져버린 그들의 관계에 대한 미련과 염증을 드러냅니다. 과거 혹은 젊은 커플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대조적인 마음이 담긴 말과 행동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각자로 분열된 겨울밤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며, 이제는 불가능한 그 시절 서로의 감정에 대한 아련함을 전합니다.
전개에 있어 평행적으로 보이는 시간의 뒤틀림은 그렇게 쪼개진 그들의 의식을 표현하지만 이를 목격하는 관객에게 명확한 답변보단 궁금증을 일으킵니다. 환상일지 회상일지 모를 비선형적인 시간과 기억의 흐름에서 변질되어가는 관계, 감정을 확인시키고, 씁쓸한 사랑의 속성을 넌지시 던지며 엇갈린 여정의 시작과 끝을 통해 그들이 두고 온 것이 무언인지 접근합니다. 그렇기에 흥주의 끝은 은주의 시작으로 연결되고 마치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듯 조심스럽게 눈에 남은 발자국을 되짚으며 상실된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려 합니다. 그러나 혹독한 겨울의 폭포 앞 연못가 얼음은 젊은 커플 때처럼 버티질 못한 채 중년 부부의 부서진 현실을 깨닫게 위기를 초래하고, 결국 그때와 달라진 서로에 대한 의미를 뚜렷이 상반되게 보여줍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뜨겁게 끓어오르기도 하고, 차갑게 식어버리기도 한다는 걸 30년 전 함께한 장소와 계절의 프레임에 담아 두 인물의 상반되지만 속절없는 모습으로 끝을 향해 갑니다. 이미 시들어버린 관계에도 지워지지 않는 순백과도 같은 기억의 초상은 그곳에 남아있다는 걸 확인하고 간절히 찾길 원했지만, 찾을 수 없었던 휴대폰처럼 다시 회복되지 못할 만큼 냉랭하게 굳어버린 감정의 공백을 확신한 채 말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남녀의 사랑을 찢겨 버린 관계의 조각처럼 교차되는 시간과 기억의 순간으로 그려낸 장우진 감독의 영화 〈겨울밤에〉였습니다. 스산한 겨울의 분위기가 사뭇 다른 두 커플, 독특한 구성의 이야기로 기억될 것 같네요. :)
한 줄 평 : 추억조차 상실되는 겨울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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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에 대처하는 ‘포’의 노멀한 자세! 이너 피스~~
존재 자체가 즐겁고 행복한 캐릭터를 꼽으라면 <쿵푸팬더> 시리즈의 ‘포’가 아닐까. 용의 전사에 어울리지 않는 몸매로 적을 물리치는 그의 모습은 물론, 줄지 않는 식탐과 매사 긍정적인 그의 마인드 또한 그 자체로 즐거움의 연속. 이런 우리의 ‘포’가 8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쿵푸팬더>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 주제는 바로 변화. 동글동글, 물렁물렁 포의 매력은 여전한 듯한데, 과연 어떤 게 새로워졌을까? 그리고 그 새로움은 오랜만에 시리즈를 마주한 관객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갔을까?
포(잭 블랙)는 명실상부 용의 전사다. 지혜의 지팡이를 물려받은 후 그는 내외적으로 더 강해졌다. 강해진 만큼 책임도 커졌다. 마스터 시푸(더스틴 호프먼)는 포에게 이제 영적 지도자가 되어 새 후계자를 임명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용의 전사로 더 많은 활약을 할 시기에 이 말을 들은 포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드 궁전 유물을 노리는 여우 젠(아콰피나)이 나타나고 포는 난리법석 끝에 그를 붙잡는다. 그리고 어떤 존재로든 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악당 카멜레온(비올라 데이비스)의 위협을 알게 된다. 포는 용의 전사로서 마지막 임무가 될 수 있는 카멜레온을 잡기 위해 젠의 고향 주니퍼시로 향한다.
<쿵푸팬더> 시리즈의 동력 중 하나는 ‘포’의 성장이다. 전사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덩치의 소유자인 그가 자신만이 가진 강점을 알게 되면서 서서히 그 위용을 갖추는 과정은 1편부터 3편까지 이어졌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인정할 때 큰 힘이 발휘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과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과 답을 내놓은 이야기는 철학적인 주제까지 건들면서 포의 성장에 기여했다. 물론, 1편을 기점으로 오락적인 재미는 점점 떨어졌지만, 진정한 용의 전사가 되는 포의 모습은 그 자체로 매력이 넘쳤다.
8년 만에 돌아온 4번째 시리즈에서 포는 다른 성장을 꾀한다. 용의 전사의 자리를 물려주고 영적 지도자로서 새롭게 성장을 도모하는 것. 문제는 포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이다.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계속해 왔던 일, 잘하는 일을 하고 싶은 건 변화보단 안정을 추구하는 그의 성향 때문. 또한 자신이 일궈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계속 남고 싶어 하는 마음에 기인한다. 하지만 변화는 오기 마련이고,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게 인지상정. 영화는 포로 하여금 끝내 변화를 받아들이고, 한 단계 더 높이 성장하는 삶의 이야기를 그린다.이런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는 악당 카멜레온의 특징이다. 어떤 존재로든 변할 수 있는 카멜레온의 능력은 곧 포와 똑같은 모습을 한 채 그와 대결하는데, 이는 변화를 두고 싸우는 내면의 자아 대결처럼 보인다. 마치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닌 내부에 있고, 그게 나 자신이라는 걸 상기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명상 시 머리 위로 다양한 자아들이 보이고 말로 싸우는 모습 등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도 영화의 주제를 강조하려는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쿵푸팬더4>는 시리즈의 장점을 가져오면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려는 목적과 의도가 명확히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잘 드러난 것에만 그친다. 변화를 위해 포만큼 중요한 ‘무적의 5인방’은 온 데 간 데 사라진다. 물론 뉴 페이스로 젠의 이야기가 선보이지만, ‘무적의 5인방’의 공백을 메우기에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가장 아쉬운 건 악당 카멜레온의 활용법. <쿵푸팬더>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가장 아쉬웠던 건 악당의 매력이 반감되었다는 것인데, 이번에도 이 부분을 피해 가지 못한다. 변신은 물론, 포와 대결했던 악당의 힘을 가져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이를 막강한 공격력으로 보여주지는 못한다. 결과적으로 막상막하의 대결보다는 포의 내외적 성장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스파링 상대로서만 느껴진다.
극 중 변화라는 주제는 곧 포에서 젠으로의 바통터치를 의미한다. 용의 전사 세대교체는 그 위험 부담을 안고서라도 계속해서 시리즈를 지속해 나가겠다는 드림웍스의 의지로 보이는데, 이는 절반의 성공으로 보인다. 포를 비롯한 오리지널 캐릭터의 매력을 100% 대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상쇄할 정도의 뉴 페이스들은 아쉽게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씨앗을 심은 상황. 드림웍스가 심은 이 씨앗이 크고 멋진 복숭아 나무가 될 수 있을지는 추이를 기다려봐야 할 듯하다. 그동안은 모두들 이너 피스, 이너 피스, 이너 피스~~사진 제공: 유니버셜 픽쳐스
평점: 2.5 / 5.0
한줄평: 포의 매력은 굿! 하지만 여러모로 ‘이너 피스’가 필요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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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낙엽을 타고] 끝장리뷰 | 결말해석 | 짐 자무쉬와 찰리 채플린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 노동자의 사랑 | 사운드의 영화 | 개와 기차 상징 | 아트시네마
(해당 영화는 씨네랩 측으로부터 초청받아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 (2023)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어느 노동자들의 사랑 이야기, 개와 기차, 아트시네마 (짐 자무쉬) Chapter 2 사운드의 영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찰리 채플린 00:00 아키 카우리스마키 01:40 노동자들 03:23 개와 기차 04:52 아트시네마 06:25 사운드의 영화 07:17 러시아, 우크라이나 07:49 찰리 채플린, 결말해석 09:00 별점 및 한 줄 평 09:22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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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팡플레이 <왜 오수재인가> 메인 예고편
‘오수재를 다시 만났어’ 10년 전 운명이 뒤틀렸던 공찬의 과거 속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준 변호사 오수재 로스쿨 겸임교수와 학생으로 다시 만난 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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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신공룡> 2차 예고편
도라에몽 50주년 기념대작!
오리지널 스토리로 돌아온 진구와 쌍둥이 공룡의 대모험!진구는 공룡 엑스포 화석 발굴 체험에서 발견한 화석을 공룡알이라고 굳게 믿는다.
도라에몽의 비밀도구 타임 보자기로 화석을 되돌리자 새로운 종의 쌍둥이 공룡이 태어났다!
진구를 닮아 미덥지 못한 큐와 말괄량이 뮤.
사랑을 듬뿍 주며 키우지만,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진구는
큐와 뮤를 원래 시대로 데려다 주기로 결심하고,
친구들과 함께 6,600만 년 전 백악기로 모험을 떠난다!
도라에몽의 비밀도구와 공룡들의 도움으로 공룡의 발자국을 따라
진구와 친구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수수께끼의 섬.
공룡이 멸종했다고 알려진 백악기에서 큐와 뮤, 그리고 진구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