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11-20 10:44:57
11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북미에서도 저예산으로 흥행을 터트린 <프레디의피자가게>가 한국에서도 1위에 올라서며 흥행저력을
입증했습니다. <더 마블스>는 누적관객수 100만명을 넘기지 못하고 있으며, 주말관객수 또한 9만명에
그쳤는데요.
또 지난 1일에 개봉한 한국영화 <소년들>은 총 관객수 50만명을 넘기지 못하며 한국 영화와
극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는데요. 이 상황을 극복해 낼 수 있을까요?
[국내 박스오피스]
호러명가 블룸하우스에서 제작한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34만명을 기록하면서 국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섰습니다. <더 마블스>는 9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위를 했고 박서준의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지만 적은 분량으로 실망한 관객들과, 마블이 예전같지 않은 영화들을 선보이며 좀처럼 기운을
못내고 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국내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가 북미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습니다. 17~19일 4400만 달러를 벌어들여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으며, 이전 시리즈들은
총수익 3조를 넘긴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전 세계 13개국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한 <트롤: 밴드
투게더>가 2위에 올랐고 국내엔 레드벨벳 웬디, 라이즈 은석이 캐스팅되어 12월 20일 극장을 찾아온다고
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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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푸팬더의 후계자 찾기
자기 자신이 가진 내면의 힘을 발견한 이후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많은 것을 이미 이룬이 후에도 분명히 해야 할 일은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오면 종종 길을 잃기도 한다.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생각은 곧 태도로 이어진다. 지금 가진 것을 계속 가지고 싶다는 생각, 내가 가진 능력을 이용해 계속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신이 최고라는 태도를 만든다. 어떤 사람은 오만해질 것이고, 어떤 사람은 무료함에 빠질 것이다.
사실 인생 속에서 이런 순간들은 꽤 많이 찾아온다. 특히나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60살의 정년이 되기 전, 어느 정도 경력이 쌓였을 때 그런 위치에 가기 마련이다. 업무의 대부분을 이해하고 숙련된 위치에 오르면 자신이 회사의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 그 사람이 일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사람 혼자만 일할게 아니라면, 누군가는 그가 하는 일과 스타일을 배워 계속 그 일이 굴러가게 만들어야 한다. 결국엔 누구나 후계자가 필요하다.
쿵푸 마스터 포의 후계자 찾기
영화 <쿵푸팬더4>는 쿵푸 마스터의 반열에 오른 용의 전사 포(목소리 : 잭 블랙)의 네 번째 이야기를 담는다. 뚱뚱하고 굼뜬 자신의 모습에서 실망하던 포는 우연히 용의 전사로 지목받고, 내면에 숨겨진 자신만의 힘을 찾는다. 그 과정은 코믹했지만 모든 것은 이미 자기 자신 안에 있다는 가르침을 관객에게도 전달했다. 그렇게 자신만의 힘을 찾은 포는 자신의 생부도 찾고 다양한 악당들을 물리치며 진정한 마스터로 거듭났다.
이번 4편에서는 포의 후계자를 찾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 초반 포의 스승인 시푸(목소리: 더스틴 호프만)는 포에게 이제 후계자를 찾으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시리즈가 거듭나면서 포는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많은 무술 마스터를 이겨내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무술 스타일도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이룰 것을 모두 이룬 위치에 가 있는 것이다. 회사로 치면 이제 임원이나 사장의 위치에 올라 더 이룰 것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포는 자신의 후계자를 찾기 싫어한다.
포는 아직도 자신이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자신의 뒤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포의 말대로 여전히 할 일은 남아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포도 퇴장해야 할 시기가 분명히 온다. 시푸는 이미 많은 마스터들이 물러나고 은퇴하는 것을 봐왔다. 아마도 자신의 기술을 미처 전수하지 못한 채 사라져 간 수많은 마스터들도 목격했을 것이다. 그래서 시푸는 계속 다음 용의 전사를 찾으라는 이야기를 포에게 반복해서 말한다.
영화에는 여우 젠(목소리: 아콰피나)이 등장한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크고 작게 속이며 살아온 사기꾼이다. 포가 머무는 사당에도 찾아온 그녀는 사당 안의 보물들을 건드리며 포를 자극한다. 실제로는 이 영화이 빌런인 카멜레온(목소리: 비올라 데이비스)이 파견한 스파이였지만, 포와 함께 작은 모험을 하면서 포의 따뜻함과 유쾌함에 동화된다. 젠은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저 자신을 키워준 카멜레온의 말을 충실히 따르며, 끌려가는 삶을 살아간다.
팬더 포의 또다른 성장기
포는 젠을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하게 되는데, 왜 젠일까? 포의 주변엔 다음 용의 전사가 될 가능성이 더 높은 다양한 전사가 이미 존재한다. 그런데 왜 평범한 사기꾼 젠을 선택한 것일까. 그건 젠의 선함과 용기를 봤기 때문이다. 젠은 사기꾼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존재다. 그것을 포 앞에서 증명했고 자신도 옳은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치 포가 처음 용의 전사가 되었을 때처럼, 젠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면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믿어주는 포가 있어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 쓰게 되었다. 포가 처음 용의 전사로서 힘을 쓰게 된 순간도, 자신의 능력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고, 그 힘이 이미 내면에 있다는 것을 본인이 알게 되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순간이다.
<쿵푸팬더4>에서 포는 쿵푸 마스터에서 스승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한다. 오직 자신의 임무와 일만을 생각했던 그는, 젠을 만나면서 비로소 이제 자신이 스승이 될 차례라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자신이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포에게 여전히 성장할 것이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의 능력을 나누고 또 전수해야만 그 평화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시리즈의 네 번째 영화인 <쿵푸팬더4>는 지난 시리즈들이 가지고 있었던 긴박함이나 빌런의 강력함이 훨씬 줄어들었다. 능력을 흡수하는 카멜레온을 등장시켜, 모든 쿵푸 마스터들의 능력을 재활용하지만, 조금은 허무하게 제압되고 만다. 포와 젠이 카멜레온을 만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경쾌하고 리듬감도 괜찮지만, 후반부 카멜레온과의 대결은 무척 싱겁게 마무리되고 만다.
포는 자신의 후계자를 찾아서 내면의 평화를 찾았다. 앞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관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로는 등장인물이나 배경을 달리하여 계속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잭 블랙의 목소리 연기는 여전히 유쾌하지만, 무적의 5인방이 등장하지 않고 그 외에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다는 점은 이 시리즈의 동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youtube.com/shorts/IG8-zWN9vfg?si=2JiLVW8Z2XUbzF59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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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 더럽게 안 좋은 한 킬러의 운수 좋은 날
운이 없더라. 만약 사회복무요원 복무지에 노트북을 놓고 오는 건 운이 안 좋은 편에 속할까? 그런 것도 운이 안 좋은 것에 해당하면 난 정말 옴 붙었다. 좀 재미있는 일 없을까? 아니면 갑작스러운 행운에 걱정 없이 살 순 없을까? 금세 길거리에서 시비 붙었던 어떤 사람의 말이 떠오른다. 착하게 생겨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날 건든다. 진짜 좀 짜증 난다. 나 좀 안 건들 수 없나?
하지만 불운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웃픈 일들은 보통 한꺼번에 몰려온다. 받아들이는 사람 속사정 같은 건 고려해주지 않는 부자비한 놈이다. 만인에게 평등한 불평등. 이 우연 같은 불평등을 만나 사람 인생이 종종 바뀌곤 한다. 긍정적인 사람이 부정적으로 변하는 게 인간 아니겠어? 이런 모티브는 수많은 영화에 공통적으로 자리 잡혀있다. 이번에는 브래드 피트가 운 없는 킬러로 돌아왔다. 또 <불릿 트레인>을 시사회에서 본 입장에서 이 정도의 글이 감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운수 참 좋은 날
인생사의 많은 것들은 사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른다. 유달리 운이 없는 이 남자는 방금 쓴 문장에 격하게 공감할 것 같다. 운이 없는 킬러 코드명 레이디버그. 갑자기 느닷없이 주위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건 일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원래 임무를 하기로 했던 킬러가 아파서 불참한다는 건 그냥 무덤덤하게 넘기기로 한다. 아니 뭐 고등학생이야? 아파서 조퇴하게? 툴툴대는 레이디버그. 그런 레이디버그를 마리아가 격려한다. 임무를 전달하는 마리아. 오늘 레이디버그가 해야 할 일은 일본을 경유하는 기차에 찌그러져 져 이 가방 하나를 무사히 가져오는 것. 그게 임무야? 일본의 한 지하철에서 가방만 찾으면 되는 게? 왠지 이번 임무는 확실히 쉬운 것 같다.
이 가정은 현실로 드러났다. 굉장히 쉬운 임무였다. 손님들이 가방을 넣는 칸에 간 레이디버그. 어렵지 않게 돈이 들어있는 가방을 찾는 데 성공한다. 이게 이렇게 쉽다고? 근데 사실 일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 같은 열차 안에 있는 손님 중 몇몇은 레이디 버그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미 ‘백의 사신’에게 의뢰인의 아들을 엄호하고 돈가방을 챙기라는 지시를 들은 킬러 레몬과 탠저린이 있었다. 또 뭔가 아들과 관련한 사연이 있어 보이는 남자와 어려 보이는 여자도 기차에 탑승했다. 이 사람들은 평범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전부 킬러였다. 운도 더럽게 없는 레이디 버그. 이 사람들은 각자 목적과 계기를 가진 채로 열차에 탑승한 것이었다. 단순히 돈가방만 찾아서 빼돌리면 되는 미션인 줄 알았는데 오늘도 잘못 걸렸다. 지독한 불운을 무릅쓰고 레이디 버그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보는 재미는 있는 편
이 영화의 강점 중 하나는 보는 재미다. 이 영화의 보는 재미는 촘촘하게 잘 구성되어 있다. 일단 보는 재미 첫 번째. 액션이다. 액션 잘 뽑았다. 이야기의 배경과 설정 상 기차라는 속성은 극에서 중요한 지분을 차지한다. 기차는 한번 탑승하면 다음 역까지는 못 내린다. 또 승객끼리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점도 그 특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넓게 탁 트이지는 않았다는 점이나 역이라는 게 있어 정류장 도착시간마다 서로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비행기, 버스와는 다른 대중교통으로서의 차이점이다.
영화는 이 특징을 십분 활용한다. 일단 좁은 공간에서 액션 잘 활용했다. 예고에도 나오는데, 이 영화의 액션이 공간이 좁았다면 상상하기 어려웠을 지점이 몇 군데 있다. 예를 들어서 극후반부엔가 열차의 운전석쯤에서 액션신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열차를 운전해야 함 + 근데 그 좁은 곳에서 총, 칼을 맞을 것 같은 긴박감이 잘 조합돼서 시너지가 난다. 이런 식으로 영화 내부에서 맨몸액션을 하는 것도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이것 때문에 막 벽에 부딪힌다거나 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그리고 인물들끼리 숨는 것도 한계가 있다. 어차피 직선 쭉 돌아다니면 보이는 게 승객들 얼굴인지라 어디 숨고 이런 묘사가 나오지는 않는다. 이렇게 '좁다'라는 특징에서 오는 큼지막한 요소들을 잘 살린다. 또 공간이 좁고 따닥따닥 붙어 있으면 소리 전파가 잘 된다. 막 멀리 있고 이러면 소리가 잘 안 들리지 않나? 또 일반 대중들이 출퇴근하며 오고 가는 지하철의 특성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 의심 사기 쉽다. 이 덕에 총소리를 줄이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거나 주요 인물 암살을 가리려고 노력하는 등 초중반부까지는 영화의 강점이라고 볼 수 있게 잘 작동하는 편이다. 이 공간 활용은 반대 맥락에서도 작용한다. 지하철이 정차한다. 역에서 내린다. 그럼 그 하차하는 시간 동안 잠깐은 역에서 인물들이 대화할 수 있다. 이 넓은 공간에서 벌이는 액션신도 영화의 완급조절을 위해 잘 사용한 것 같다. 글쓴이 개인적으로는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보다 넓은 곳에서 일어나는 액션이 더 기억에 남았다.
또 다른 강점으로는 코미디 타율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이런 미국식 B급 유머가 살짝 식상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근데 그건 영화를 많이 본 글쓴이(나) 같은 분들의 입장일 것이다. 다른 일반 대중들이 보기엔 이런 유머가 충분히 먹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전작인 <데드풀 2>에서 봤던 라이언 레이놀즈의 입담이 이 영화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일례로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을 활용한 유머 난 솔직히 좀 재미있었다. 내가 이런 실없는 농담 좋아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 대사를 하는 캐릭터들이 그렇게 순수한 이야기를 하는 건 봐도 봐도 재미있다. 또 극 중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레이디버그의 대사를 듣고 중후반부쯤에 나를 제외한 다른 관객분들이 많이 웃는 걸 들었다. 이런 거 보면 코미디가 막 아예 재미없다고 말할 부분은 아닐 듯하다. 뭐 앞에서 쓴 부분 이외에도 'F' 단어가 많이 나오는 타란티노식 유머나 순간순간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인물들의 행동은 충분히 재미있다. 이런 맛은 익숙한데도 웃길 땐 웃긴다.
말이 너무 많아
그러나 이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 두 가지가 있다. 일단 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주인공 레이디 버그부터 시작해서 극후 반부 장면까지 말이 너~무 많아서 러닝타임 내내 늘어진다. 레이디버그도 자기 운 없다는 거 좀 적당히 좀 하지 초중반부까지 내내 말한다. 그리고 레몬, 텐저린 뭐 그리 말이 많은지 서로 쓸데없는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해서 이야기 전개가 느려진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또 모든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기까지 해서 지나치게 친절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례로 레몬, 텐저린 두 형제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 이때 레몬, 텐저린이 대화하는 내용 1/2를 쳐도 사실 아무 문제없을 것 같다. 또 두 형제 중 한 명이 레이디 버그와 액션신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예고에도 나오는 장면이기도 한데, 이 때도 왜 굳이 싸우는데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점이 든다. 아니 그런 식으로 대화할 거면 청부살인 업을 왜 해? 진짜 그럴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이 말 많아서 짜증 나는 지점은 극후 반부에서 다시 한번 나타난다. 엔딩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레이디 버그. 주절주절 말을 하는데 좀 영양가 없는 말이라서 몰입이 깨진다. 분명 중요하고 클라이맥스일 텐데 굳이? 싶은 것이다.
그리고 각본에 구멍이 있다. 이 부분을 전부 서술하기엔 살짝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대략적으로만 써보자면, 원작 소설을 읽어야 설명이 될 거라고 드는 지점이 있다. 일본에 있는 신칸센을 저렇게 관리한다고? 싶은 부분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영화의 줄거리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이 영화는 총 쏘고 뱀 왔다 갔다 돌아다니고 주먹으로 때리고 창가 깨지고 불타는데 실질적인 열차 관리에 대한 대응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물론 감독이 이에 대한 대응을 하긴 했다. 이와 관련해서 후반부에 어떤 인물이 대사를 하긴 하는데 그 한 줄로 이 모든 설정의 오류가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뭐 그렇다고 아예 개연성이 붕괴되는 영화는 아니다. 반대 측면에서 각본에서 딱딱 맞아떨어지게 설정한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왜 대타로 일을 하게 되었는가? 에 대한 부분이다. 또 어린 소녀의 개인 서사나 그 소녀와 함께하는 남자의 가족사까지 허술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을 타당한 전개로 잘 틀어막은 건 각본의 섬세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외의 설정 몇 군데를 장르적으로 소비하기 위해 'ㅋㅋ 이래도 되겠지?' 하며 소비한 부분은 좀 아쉽다. 충분히 킬러들 간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묘사했다면 이야기의 긴장감이 더 잘 나타났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방형 멋있어요
아무튼 뭐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확실한 건 역시 브래드 피트는 멋있다. 이제 그의 얼굴에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한다. 근데 이목구비를 따로따로 분리해서 보면 아직도 소년 같다. 그리고 액션 신도 깔끔하게 잘 소화한다. 굉장히 젊은 옷차림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이와 관련해서도 사람이 멋있으니 무리 없이 소화하는 연예인 아우라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 영화가 괜찮다고 느끼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브래드 피트의 스타 성일엔 텐데, 이 지점은 감독이 십분 이해해 잘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브래드 피트가 아니더라도 레몬/텐저린 역을 맡은 두 배우의 코미디 연기와 중반부 갑자기 튀어나오는 암살자, 또 조이 킹이 연기한 어린 소녀 캐릭터도 캐릭터 설정과 생동감을 잘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심각하게 많은 말에도 코미디에서 안타와 홈런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뭐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후반부에 카메오 느낌으로 두 명이 나온다. 영화판에서 굉장히 알려진 슈퍼스타들이다. 그런데 우정출연 느낌으로 등장한 배우가 있다. 다른 영화에선 몰랐는데 이렇게 험한 조폭 포스도 잘 연기하는 것 같아서 신기했다. 약간 더 착하게 생긴 윌렘 더 포 느낌..
넷플릭스 오리지널 같다
이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나오면서 느낀 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같다는 것이다. 그게 나쁜 건 아니다. 이 영화도 사실 마음 놓고 웃고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로서 충분하게 기능한다. 아니 액션 코미디 영화에 주인공이 싸움 잘하고 웃기면 장땡이지. 이 부분에서는 나름 괜찮은 평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다. 극장에서 돈 주고 상영관에 맞게 그 시간에 들어가서 영화를 본다. 이때 뭐 재밌고 이런 거 다 좋은데 우리가 알고 있던 액션 영화들, 특히 넷플릭스 오리지널같이 뭔가 미국 중심주의적인 작품을 보기엔 살짝 아쉽다. OTT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다. 이제 극장 가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면 OTT 영화들과는 다르게 더 밀도 있는 영화를 만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질 못하니 넷플릭스로 봐도 충분한 느낌? 그냥 단순히 볼만한 영화 만들기엔 넷플릭스가 너무 잘 나가니 앞으로 영화 제작의 난이도가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든다. 뭐 나름 재미있었다고 생각하는 이 영화지만 솔직히 주변 사람들이 극장에서 뭐 보면 되냐고 물었을 때 이 작품을 거론하긴 좀 힘들 것 같다. <헌트>보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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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방지축 얼렁뚤땅 혜수의 하루~
시놉시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스타트업 대행사 대표를 맡고 있는 혜수(김재화)는 충청남도 망진에서 정종 문화제가 연산군 문화제로 바뀌어버린 축제를 성공시키고자 고군분투한다. 무늬만 이사이면서 책으로 수입을 연명하고 있는 상민(조민재)과 해고당한 극작가인 래오(박강섭)를 불러 일을 시키지만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한편 새로 들어온 인턴인 은채(장세림)도 똑 부러져서 몸 둘 바를 모르는데...
이 영화에서 혜수(김재화)를 방해하는 건 극단의 보이콧과 초대 가수 펑크,논란이 있는 MC 섭외이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지만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끝까지 해내려는 혜수(김재화)의 모습을 보면서 중꺾마라는 표현이 여기에 잘 어울렸다. 망해가는 회사에서 상민(조민재)은 실수만 하는 역할이고 해고당했지만 알바생으로 다시 근무하는 래오(박강섭)도 혜수(김재화)의 일을 방해한다.
결국 망진의 군수에게도 버림받은 이 축제는 유야무야 끝나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의 병맛 코믹 요소는 인물들의 갈등에서 빚어내는 찰진 욕과 맨손 싸움이다. 또한 인턴 은채(장세림)를 보면 지금의 MZ 세대와 많이 닮아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기 위해 인턴으로 경험하러 온 은채(장세림)는 혜수(김재화)에게 자신의 수상 경력과 학과 이야기를 하며 자신을 취업시켜달라고 한다. 허나 실상은 달랐고 만족하지 못하는 은채(장세림)는 다른 곳을 알아보기로 한다.
지금의 청춘과 많이 닮아 있다. 학력과 수상 경력은 갖췄는데 막상 입사해 보니 자신하고 안 맞는 회사여서 이직하거나 다른 회사에 취업하는 그런 안타까운 현실 말이다. 혜수(김재화)도 무리하게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군수의 비위에 맞춰야 했고 이 일을 책임지는 공무원들도 극단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지 못해 보이콧까지 하게 되는 상황까지 벌이지는 걸 보면 아무리 영화라도 현실은 이보다 더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기자 간담회에서 배우들과 감독이 한 말은?
이 영화는 김홍기 감독의 장편 독립영화이다. 조민재(상민) 배우와는 예전 단편영화인 중성화에서 만나 호흡을 맞췄다. 박강섭(래오) 배우도 폭력의 씨앗에서 인상 깊은 역할을 보고 섭외한 배우라고 한다. 또한 신인 여배우인 장세림(은채)도 첫 기자 간담회에서 너무 떨리지만 이 영화를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민재(상민) 배우는 한국 영화 침체기에 한국 영화 매니아로서 범죄도시 3에 밀릴 수도 있지만 매진이 되었을 때 한 번 봐달라고 관객들과 기자들에게 당부했다.
중꺾마보단 그냥 하는 거야!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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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의 꼬리처럼 힘차게
PROGRAM NOTE.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여섯 살 클레오가 사랑하는 보모 글로리아를 떠나보내며 겪는 이별과 상실의 과정을 그린 작품.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급히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글로리아와 마지막 여름 휴가를 보내며 인생의 한 단계로서 이별의 의미를 받아들이려는 클레오의 이야기가 뭉클하고 따스하게 그려진다.
(2023년 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POINT.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쁘띠 마망>… 셀린 시아마를 좋아하세요? 셀린 시아마 감독의 모든 장편영화를 제작한 바로 그 제작사의 신작! 속속들이 아름다운 작품을 또 한 편 만나보세요
✔️ 안경을 쓰면서 바로 클레오로 변신했다는 놀라운 신인 배우, 루이스 모루아-팡자니! 클레오가 웃을 때마다 행복해졌어요
✔️ 겨울 코끝을 찡하게 만들어줄 따뜻한 작품. 생의 처음에 있던 것들을 헤아려보게 만드는 영화라서, 2024년 새해 첫 영화로도 좋을 것 같아요
✔️ 2023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 개막작, 2024 선댄스영화제 스포트라이트 부문 초청! 자꾸 시선이 가는 영화
✔️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100%! 받을 만 하지
✔️ 믿고 보는 조합, ‘그린나래미디어’ & ‘하이스트레인저’!
✔️ 2024년 1월 3일 개봉
#최초의 세계
이 영화의 원제는 ‘아마 글로리아(Ama Gloria)’, 그저 정직하게 ‘보모 글로리아’이다. 안경점에서 시력 검사를 하는 클레오의 모습과 함께 보이는 글로리아를 통해, 우리는 금방 꽤나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첫째, 그는 클레오의 어머니가 아니다. 둘째, 그는 클레오와 다른 뿌리를 갖고 태어났다. 셋째, 그럼에도 시력 검사 결과조차 도와주고 싶어할 만큼 그는 클레오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보모. 사어(死語)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어쩐지 빅토리아 시대 고전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느낌의 단어다. 실제로 요즘은 ‘베이비시터’ 같은 표현을 더 많이 쓰기도 하고. 하지만 보모라는 말에는 더 끈적하고 진득한 느낌이 배어 있다. 한자로 ‘모母’ 자를 쓰고 있어 그런지, 옛날에 더 많이 쓰던 단어라서 그런 건지. <클레오의 세계> 속 글로리아 또한 베이비시터보다는 보모라고 부르고 싶은 존재다. 그건 단순히 클레오의 아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오래 함께해왔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둘은 서로에게 온전히 기대는 존재다. 아이 얼굴의 밀가루를 털어주고, 놀이터에서 생긴 상처를 후 불어주는 사람. 걷고, 씻고 하는 모든 순간을 놀이와 웃음으로 채워주는 사람. 오래 전 읽은 소설 <봉순이 언니>의 문장이 떠올랐다.
그녀만이 우는 나를 달래주었고, 그녀만이 내 잠자리의 베개를 고쳐놓아 주었다. 그녀는 나와 마주친 최초의 세계였다.
클레오에게 글로리아는 최초의 세계다. 그렇기에 클레오는 글로리아를 작은 몸과 마음 다해 힘껏 사랑한다. 갑작스럽게 전화로 전해져 온, 글로리아 어머니의 부고 소식 앞에, 슬퍼하는 글로리아 옆에 조용히 앉아 통통한 뺨과 곱슬머리를 기대며 앉는다. 그렇게 클레오는 온 존재로, 글로리아의 슬픔에 고요히 귀를 기울인다. 때로는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하는 작은 아이는, 조용히 흐르는 슬픔을 감쌀 줄도 알 만큼, 그만큼 자신의 최초의 세계를 사랑했다. 자신을 키우는 존재의 콧노래, 그가 숨죽여 이불로 작은 몸을 덮어주는 순간의 기억, 이런 것들은 어린 시절의 어느 정도를 차지할까. 평소 크게 기억하지 않고 사는 어떤 기억들이 사실은 나를 지탱하게 하고 있음이, 영화에서 부드러운 색채로 그려진 애니메이션을 타고 관객에게로 흘러온다.
#세계는 깨어지고 확장된다
그러나 힘껏 자신을 다 기댄 클레오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이별은 온다. 글로리아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이제 글로리아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장례를 치러야 하고, 어머니에게 ‘황혼 육아’로 맡겨두었던 자신의 진짜 아이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으므로. 그렇게 글로리아로 가득하던 클레오의 세계는 최초의 균열을 맞이한다.
아이들도 알 건 다 안다. 그래서 그 균열의 순간은, 어둠 속에서 훌쩍훌쩍 우는 클레오의 모습. 떼쓰지도 조르지도 못하고 창틀만 꼭 붙잡은 클레오의 눈물 속에서 일방적 순간이 된다. 그러나 진짜 클레오가 균열을 감지하는 건, 오히려 방학을 맞아 글로리아의 고향 섬에 놀러 가서 작은 방에 몸을 뉘이는 순간이다. 가족들과 찍은 글로리아의 사진을 보며, 클레오는 처음으로 감지한다. 내 모든 것인 사람에게, 그에게는 내가 모든 것이 아님을 처음 깨닫는 순간.
그 순간, 머릿속에서 딱 클레오만했던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1학년 소풍 날이었고, 1학년이니까 보호자의 동행이 허락되었으며, 우리 엄마는 나뿐 아니라 동네 이웃집 아이와 동행하고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간호사로 근무하고 계셨던 아주머니는 미안한 얼굴로 아이를 챙겨달라고 연신 부탁했고, 그 모든 사정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엄마가 나 없이 다른 친구와 둘이서만 다정하게 앉아 이야기를 하거나 같은 프레임의 사진에 찍히는 걸 보는데,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조합을 목격했다는 생경한 기분이었으나 뭐라고 설명하지 못한 감정이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때의 내 마음이 이해된 것이다.
굳이 <인사이드 아웃>에서 빙봉이 사라지는 슬픈 장면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성장은 언제나 상실을 동반한다. 내가 알던 세계가 조각나는 아픔을 거친다. 그러나 깨지고 다친 세계는 무너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틈으로 더욱 확장된다. 글로리아에게 자신이 모든 것이 아님을 깨닫는 클레오의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이를 통해 글로리아는 물론 글로리아의 가족들과도 연결된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님을 차츰 배우고, 중심이 아닌 채로도 건강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성장이라고 부른다. 영원히 애정의 중심에만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글로리아뿐이었던 “클레오의 세계”는 이렇게 또 조금 확장되었다. (이 영화 제목 번안은 정말 멋지다.)
#그 후로도 우리는 자라겠지만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클레오의 세계”가 확장되는 아릿한 성장의 시간을 따뜻하고 다정하게 바라보는 동시에, 클레오를 둘러싼 사람들에게서도 사랑스러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주인공의 성장담을 서술하기에 벅차 허덕이는 영화가 아니라, 모든 인물의 성장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담은 넉넉한 작품이다.
자신이 낳은 아이들 대신 자신이 낳지 않은 누군가의 아이를 돌보고 사랑하며 사는 여성의 삶, 섬에 줄곧 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묘한 텃세를 받으며 그 거리감 안에서 다시 생활을 꾸려 가는 글로리아의 삶.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 조금은 떨떠름한 분노의 대상인 엄마를, 동생도 아닌 클레오와 공유해야 하는 세자르의 삶. 어쩌면 상실과 성장을 계속하는 건 클레오만이 아니다.
방학은 끝나고, 여정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막을 내린다. 이별은 필연적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애정 어린 돌봄을 필요로 하는 동시에, 그 애정의 바깥으로 가지를 뻗어야만 성장할 수 있는 존재이다. 유년시절을 꼬박 메운 글로리아의 애정 바깥으로, 클레오는 나아가야만 한다.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의 꼬리처럼 힘차게. 때로는 힘껏 존재를 던지듯 다이빙하고, 또 때로는 다른 이의 손에 의지하여 뭍으로 올라오면서. 그러면서.
왜 이렇게 그 장면들마다 눈물이 났을까. 개인적인 기억의 편린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오래 전 인도에서 “돌보던” 아이들을 두고 비행기에 오르면, 불 꺼진 밤 비행기에서 조용히 줄줄 울던 날들이 떠올라서. 따로 떨어져 행복해져야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걸 잊지 않아야 하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아서. 집이라고 부르는 곳을 두 군데 이상 가져버린 사람들은 그리움이라는 감정과 떨어질 수 없다는 걸 배워 버려서. 그래서.
딱 클레오만한 나이였을 때의 나, 글로리아 같은 상황이었을 때의 나… 이 영화는 내 안의, 이제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을 톡톡 끌어올렸다. 이 영화는 이렇게 보편적인 정서를 통해, 우리 기억과 감정의 문을 두드린다. 누구에게나 처음으로 인지하는 ‘온 세상’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그 사람의 애정 바깥으로 찢겨 나와 성장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누구나 이 영화에서 자신의 조각을 엿보게 될 것이다. 꼭 글로리아나 클레오와 같은 경험이 없더라도.
이 영화의 다정한 시선 속에서, 84분 동안 나는 또 무언가를 찢고 조금 자랐다. 이토록 부드러운 색채와 사랑스러운 감각 속에서 자랄 수 있다면, 상실도 두렵지 않다. 고래 꼬리처럼 이 영화를 품고, 또 열심히 발장구를 쳐본다. 생을 향해서.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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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이 뭐길래
“행복을 찾아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왜 한국을 떠나느냐고? 두 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국이 싫어서’.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계나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좇아 떠나기로 했다.
<한국이 싫어서> 줄거리
팍팍하기만 한 한국에서의 삶. 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지, 행복한 인생은 도대체 뭘까. 이 영화의 주인공, 계나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쳇바퀴 돌리듯 똑같은 일상, 더 나아지고 있다지만 아직도 아득한 그놈의 행복. 언젠가 올 행복을 기다리다 지친 계나는 결심한다. 그 행복 내가 직접 찾아가기로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니다. 지긋지긋한 조국을 벗어나 계나는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한다. 바로 뉴질랜드에서!
다들 한 번쯤은 나를 아무도 모르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길 원한적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낯선 타지에 대한 두려움, 한국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떠나야 한다는 부담감, 혹여나 다시 돌아온 후의 생활에 대한 걱정 등 불확실한 일에 대한 불안감에 한국이 편해라는 말로 위로하며 포기해버린 적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계나의 행보는 어쩌면 다른 선택지의 결말로 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시작된 뉴질랜드에서의 생활. 어학공부와 대학 공부는 계속되고, 동시에 돈도 벌어야 한다. 한국에서보다 더 빠듯해진 생활 그래도 계나의 얼굴은 좀 더 편안해 보인다. 이곳이 계나의 진정한 행복인 걸까?
뉴질랜드에서 계나의 삶은 웃고 울고 화내며 목표에서 멀어지거나 다른 길로 가야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게 행복인 것 같은 느낌이다. 계나가 이대로 새로운 곳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데 성공할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런 계나의 마음을 비웃듯 상황은 다시 계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앞에 놓인 두 개의 선택지. 다시 한국에서 남들이 말하는 보통의 삶을 살아가거나 아님 뉴질랜드에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거나.
계나는 뉴질랜드로 떠나기 이전과 같은 선택지 앞에 선다. 진짜 행복은 뭘까? 그 행복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해온 계나도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하진 못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껏 계나가 지나온 나날들은 헛된 실패였을까? 그건 아니라는 걸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생애에 하는 선택들을 어떻게 성공과 실패로 나눌 수 있을까.
행복은 너무 과장되어 있는 것 같아.
이 대사가 정말 공감되는 영화였다. 행복은 고단한 삶에 반드시 올 보상도 아니고 특정한 장소, 시간에서 발휘되는 것도 아니다. 맛있는 걸 먹어서 행복하기도 하고 좋은 영화를 봄으로써 행복해지기도 한다. 목표로 잡은들 이루는 게 아니기에 달성해낼 수도 없다. 계나의 여정은 이걸 알아차리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계나가 얻고자 했던 행복은 사실 별거 아니라고. 이미 계나가 한국에서도 뉴질랜드에서도 갖고 있던 것이라고. 행복이 더이상 압박이 될 수 있는 목표가 아니게 된 계나의 삶이 궁금해진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한국이 싫어서>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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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히 당신과 나를 ‘우리’라 부를 수 있다면
어릴 적, W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보았다. 국제 사회의 사건 사고를 다루는 프로그램의 에피소드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시에라리온의 여성 할례 이야기였다. 성차별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던 나이였지만, 불합리함에 분노했던 기억은 선명하다. 그러나 고백하고 싶은 게 있다.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타자화에 의한 안도감이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히잡 반대 시위를 촉발점으로 체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져 가는 이란 사회의 풍경을 담아내는 작품이다. 영화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한 가족의 모습이다. 국가를 위해 평생을 일한 이만은 수사 판사로 승진하며, 부와 명예에 한층 가까워진다. 그러나 독재 사회에의 고위직이란 체제에 복무하는 일로 조금이라도 체제에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은 제거하는 일을 수반한다. 이로 인해 내적 갈등을 겪는 이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족의 안전을 위해 받은 총을 집안에서 분실하며 이만의 가족은 차차 무너진다. 사라진 총에 가족들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이만. 그의 ‘거짓말쟁이’ 찾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사실 이 가족의 분열은 언제든 벌어질 일이었다. 그저 체제에 복무하는 이만의 공모자인 어머니 나즈메에 의해 유예된 일일 뿐이었다. 이 작품에서 이만은 구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지며, 두 딸 레즈반과 사나는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매일 같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시위를 두 세대가 바라보는 방식은 무척이나 다르다. 이만은 TV라는 레거시 미디어의 문법에 따라 반체제 시위를 폭동으로 바라본다. SNS를 통해 시위를 접하는 레즈반과 사나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현재의 시위를 어떤 혁명이라고 바라본다. 어느 날, TV를 틀어놓고 가족들은 식사를 한다. 시민들의 행동을 폭동에 불과하다고 규정하는 목소리에, 레즈반은 반기를 들고 가족 내의 균열은 가시화되기 시작한다.
레즈반과 사나가 경험하는 시위의 모습은 스마트폰을 경유하여 전달된다. 시위대가 현실 속에 투쟁하며 보여주는 진실이 담긴 이미지들. 카메라의 기능뿐만 아니라, 동료 시민들에게 이미지의 확산을 가능케하는 스마트폰의 순기능이 여기에 있다. 이 작품에서 카메라가 긍정적인 기능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만은 가족을 데리고 고향으로 떠나, ‘거짓말쟁이’ 찾기를 시작한다. 특이한 점은 이만이 격식을 갖춘 수사를 행한다는 것이다. 캠코더를 놓고 증언을 구하고 증거를 찾아 남기려는 이만. 그 또한 이미지의 힘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진실을 기록한다고 착각한 채 기록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성찰은 놓친다. 누가 어떤 시선을 가지고 카메라를 쥐었는가에 따라 이야기는 극적으로 달라진다. 이런 상황은 언론의 모순을 드러낸다. 발화의 주체에 따라 소거되고 강조되는 이야기가 시민들의 시위를 폭동으로 바라보게 만들지 않았는가.
가족들에 대한 불신이 쌓이며 이만은 결국 가족들을 가두기에 이른다. 이때 상황을 뒤집는 것은 막내 사나이다. 총을 훔친 범인이기도 한 그녀는 레즈반과 나즈메를 구한다. 그리고 우스운 숨바꼭질이 이어진다. 고향의 유적지로 보이는 공간에서 이만은 가족들을 찾아 헤맨다. 긴장감이 극에 달해야 할 지점에 나는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구멍이 가득한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숨바꼭질. 이는 결국 현재의 이란이 가진 감시 체제는 허술하기 그지없고, 개인을 억압하기만 하는 사회는 언젠가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총을 든 사나와 이만은 대치 상황에 이른다. 이만에게서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과 체제의 모순에 내적 갈등을 하던 모습은 지워진 지 오래, 그는 사나를 도발한다. 이때 사나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 그녀는 불안감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과감하게 이만을 역사의 무덤으로 보내기를 선택한다. 영화는 이렇게 구세대와의 단절을 명확히 선언하며 끝을 맺는다.
영화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한국 영화계에 정치성은 소거된 지 오래다. 소수의 독립영화를 제외한 영화들은 오락성에 매몰되어 있다. 한편, 억압적이기 그지없는 이란이라는 나라에서는 용기 있게 체제에 반기를 드는 영화가 등장했다. 감독은 용기가 없어서 결국 망명을 선택했다 말하지만, 이런 작품을 만든 것 자체가 용기라고 생각한다.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언정, 사람은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언젠가 세상도 바뀌지 않을까. 사회와 유리된 영화는 결국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여전히 부족하기 그지없는 나는 해외의 상황을 보는 순간마다 여전히 타자화의 욕망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고 싶고 바꾸고 싶고 연대하고 싶은 마음만은 이전보다 강해졌다. 나와 당신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내가 당신을 우리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연대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
* 본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으로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작품을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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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1984년 영화 '듄' 기초 요약
- 1984 영화 '듄' 비하인드 스토리 소개
- 듄 영화 정보
장르: 스페이스 오페라
감독: 드니 빌뇌브
각본: 에릭 로스, 존 스페이츠, 드니 빌뇌브
원작: 프랭크 허버트의 듄(1965)
제작: 드니 빌뇌브, 케일 보이터. 메리 페어런트,조 카라치올로 주니어
주연: 티모시 샬라메, 제이슨 모모아 외
촬영: 그레이그 프레이저
음악: 한스 짐머
촬영 기간: 2019년 3월 18일 ~ 2019년 7월 26일
제작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워너브라더스
수입사: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2020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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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리뷰/결말포함]9.79점의 첫사랑을 자식들이 대신 이루어 준다면 설레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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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이.조> 시리즈 스핀오프
스네이크 아이즈 VS 스톰 쉐도우
친구였던 그들이 적이 된 이유는 있다
마스크 뒤 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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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갔다 완전히 달라져서 돌아온 판타스틱한 우주비행사 ④명 고마워요, 판타스틱④!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 7월 극장 대개봉 #판타스틱4_새로운출발 #TheFantasticFourFirstStep #판타스틱4 #마블 #Marvel #7월대개봉 #페드로파스칼 #바네사커비 #조셉퀸 #에본모스바크라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