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2-09-01 19:18:39
[SIWFF 데일리] 러시아군의 침략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이야기!
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
감독:이리나 칠리크
출연: 돈바스 지역의 한 가족
시놉시스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에 러시아군이 쳐들어오자 그 속에서 일어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인 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는 영화 맨 초반에 어느 한 가족이 나오는 장면과 함께 포격 소리가 크게 들리고 폭탄이 터지는 전장 속에서 일반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자신들의 삶을 보여준다. 트라우마로 남는 전쟁의 현장 속에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피난을 가거나 그 도시에 남아있기도 한다. 이 영화는 가족이 등장인물로 나오면서 전쟁에 대한 참혹한 이야기를 여러 가지 씬으로 보여준다.
러시아군이 침공한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에 있는 이 가족은 어린아이부터 대학 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여학생까지 다양하게 나온다. 대학 장학생이 되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해서 목표를 이루는 장면도 나오는데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게 어머니뿐만 아니라 주위 친척들까지 입시에 성공하면 포옹을 하거나 놀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야 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적군인 러시아군에게 맞서 싸우는 모습도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점점 러시아에 있는 많은 미국 기업들이 떠난다고 한다. 그러나 푸틴은 자신들에게 경제 보복하려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일본,우리나라까지 천연가스를 수출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평화를 원했던 러시아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소련을 무너뜨리고 독일 통일에도 기여했으며 평화를 위해 앞섰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 내에서는 고르바초프가 러시아를 망쳤다는 이야기를 하는 극우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뉴스에서는 전쟁이 금방 끝나지 않을 것으로 나오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다치고 피해를 입는 사례들이 들려오고 있다. 참혹한 전쟁을 경험하면서 트라우마가 일어나거나 죽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느낌이 많이 들기도 한다.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겹게 살아가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어서 기쁜 소식이 들려오길 바란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08/25(목) - 09/01(목)
2022-08-27 16:00 - 17:4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4관
2022-08-31 16:00 - 17:4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5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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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섭'에 대한 우려는 접어도 될 듯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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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마
살짝 낡은 버스가 아프가니스탄 일대를 지나가고 있다. 버스 안에는 한국인이 있다. 어떤 남자가 버스 가운데에 서서 말을 하고 있다. 아마 교회에서 온 사람들 인 것 같다. 어수선한 2007년. 사실 아프가니스탄은 나라 내, 외적으로 어수선했다. 분쟁의 한가운데 있었던 아프가니스탄. 이들은 위험한 여행길에 있었다. 종교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판국에 교회 사람들이 간 것이다. 지금 당장 아무나 달려가서 ‘당장 한국으로 귀국하세요’라고 하고 싶지만 이들에게 그런 자각은 없었다. 이 걱정이 무색하게 갑자기 버스에 총알이 날아든다. 동시에 버스를 막아선 몇몇 군인들. 총기로 무장한 군인들이 버스에 난입해 교회 사람들을 데려갔다. 피랍 사건이 발생했다. 분쟁지역에 간 한국 사람들이 총기로 무장한 탈레반들에게 납치당한 것이다.
외교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재호. 재호는 교섭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뉴스를 보는 재호. 탈레반이 한국인들을 납치했다는 영상을 배포했다. 탈레반의 협상조건은 아프가니스탄에 잡혀있는 탈레반들을 석방하는 것이다. 아니 왜 가지 말라고 한 곳을 가는 거지? 납치된 사람들의 신상정보부터 확인한다. 다 같은 교회 사람들이네? 그럼 이 사람들 종교로 내전 중인 나라에 선교하러 간 거야? 부하 공무원을 부르는 재호. “야. 이 사람들 지금 다 자원봉사 차 갔다고 말해. 안 그럼 이 사람들 다 죽어!” 살해 시간은 24시간. 이 업무지시를 시작으로 장재호와 외교부 직원들은 탈레반을 상대해야 한다. 과연 재호는 피랍된 한국인들을 생환시킬 수 있을까?
믿고 보지
사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이전에 우려의 시각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바로 주제가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 피랍 사건은 약 15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교회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 입국을 강행해서 일어난 이 피랍사건. 당시에 엄청 큰 일이었기 때문에 초등학생이었던 글쓴이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 이 일이 그렇게 먼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 교회인들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우려가 몇몇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영화에서 감독이 이들을 우호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 교회 사람들을 좀 비꼬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 이전에 글쓴이는 이 영화에 대한 그런 비판적 시각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바로 전작 <제보자> 때문이다. 전작에서 다뤘던 소재는 '황우석 사기 사건'이다. 줄기세포 복제와 관련해서 온 나라를 속이던 과학자를 고발하는, 진정한 저널리스트에 다뤘던 이 영화는 나름 갖고 있는 균형감각이 좋았다. 당연히 <제보자>와 흑막이자 현대사의 빌런 중 하나였던 그 과학자는 나름 잘 구현했다. 이 외에 이 과학자를 믿는 일반 국민들의 관점이 어떻게 주인공에게 딜레마로 작용하는지를 영화 내적으로 팽팽하게 드러내서 좋은 직업영화가 되었다.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동하는 대사는 '국익이 우선이냐, 진실이 우선이냐'인데, 이를 영화의 내적 리듬으로 잘 구현해 과연 임순례라는 인물의 경험치가 그냥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영화는 이미 그런 걸 만들어 본 적이 있는 듯이 침착하게 이야기를 끌고 갔다.
과한 에너지
이렇게 직업윤리를 두고 갈등하는 인물의 모습을 잘 드러내면 역시 임순례!라는 말을 듣기 충분했을 것이다. 역시나 결론적으로 이 영화가 막 엄청나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임순례라는 작가의 개성을 느끼기는 좀 어렵다. 왜냐하면. 일단 주인공 재호의 설정방식은 좀 아쉽다. 재호는 굉장히 헌신적인 공무원이다. 극에서 온갖 개고생을 다 한다. 게다가 후반부를 보면 이 사람은 외교의 신이 점지한 느낌까지 난다. <제보자>의 주인공 윤민철과 공통점이 있다. 직업윤리적으로 굉장히 높은 수준의 것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두 인물 간의 차이점이 너무 짙어 아쉽다. <제보자>에서 윤민철은 이 이장환 박사의 사기 행각 피해자를 몇 번 만나며 동기부여가 생긴다. 반대로 재호는 이에 대한 묘사가 없다. 그래서 감정선이 좀 얕았다. 글쓴이는 균형감각에 대한 지나친 의식 때문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덩그러니 탈레반에게 살해당하라고 놔두는 것도 웃기는 짓이다. 그럼 이를 생환하기 위한 나라의 노력이 중요하겠지? 영화는 이것에 집중하기 위해서 재호를 이 쪽에 지나치게 헌신적으로만 묘사한다. 만약에 재호 입에서 이 사람들을 욕하는 대사가 나왔으면 영화의 내적인 논리가 분산될 것이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당시 피랍 피해자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염두하고 각본을 썼다면 인간적으로 이 인물이 이렇게 처절한지를 묘사할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사기 사건은 온 나라가 이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아서 윤민철의 내면묘사를 살짝 얕게 설정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 2007년 피랍 사건은 많은 국민들이 이 교회인들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람들이 이 공무원 분들의 존재감을 비교적 옅게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얕은 감정선 덕에 재호가 하는 대사가 살짝 이질감이 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영화 전체적으로 '이게 핵심이야!'라고 때려 박는 듯한 대사가 좀 아쉬웠다. 어떤 장면에서 한 인물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 중반부에 뿌렸던 떡밥을 수거하며 영화의 키워드가 되는 어떤 대사를 한다. 글쓴이는 이 대사와 그 후의 장면이 좀 아쉽게 느껴졌다. 너무 관객에게 '이거 멋있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면 아니더라도 다들 그렇게 느낄 것 같다. 그러니까 같은 말을 너무 직접적으로 두, 세 번 하는 것이다. 이는 대식이라는 인물에게는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식이 어떤 일이 있어서 이 교섭 일에 진심이고 왜 아프가니스탄에 있는지를 다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 중간에 보여주는 액션 신은 역시 현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액션 신까지 잘 뽑혔으니 극 연출에서 재호보다 대식에게 힘을 더 준 셈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대식이(역시나 헌신적이지만) 재호의 직업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됐다는 것은 영화의 큰 단점으로 뽑힐 것이다. 시각적으로 셔츠 색을 이용해서 대비를 준 것부터 시작해 영화 안에서 중요한 결정권이 누구한테 있는가? 가 그에 대한 근거가 될 것 같다.
임팩트 한 방이 없어
이렇게 재호가 성자 같은 인물이라 <제보자>와 같은 맛이 없다. 몰입도는 좋다. 그런데 이 몰입도가 후반부의 협상 기점으로 뭔가 힘이 빠지더니 엔딩에서 밋밋해지는 것이다. <제보자>는 장르적인 특성을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 <데어데블> 시리즈의 '킹핀'이 연상될 정도의 빌런인 이장환 박사. 당시 한국에서 끌던 인기가 선풍적이었기 때문에 국민 여론이 그의 편이었다. 이를 활용해서 인물을 어떻게 압박하는지, 또 이 사람이 어떻게 정체가 드러나는지를 본다면 영화가 기본적으로 직업영화 이전에 스릴러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영화가 이런 장르적인 강점을 가진 것에는 기획력에 있었다. '우리가 말하고자 했던 직업의식을 장르 특성으로 바꾸자'라는 창의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실을 외면하고 피상적인 국익에 집중하는 것이 <제보자>의 주인공에게 중요했던 걸 이야기로 잘 설계한 감독의 꼼꼼함, 섬세함이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 <교섭>에게는 이런 느낌이 없다. 그냥 재호가 처음부터 끝까지 헌신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인물이 단점을 가진 것 때문에 뭔가 위기가 일어나지 않는다. 비협조적인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탈레반의 악함을 영화의 굴곡으로 사용하고 그 나머지는 없다. <제보자>의 윤민철은 좀 밑도 끝도 없어서 이에 대한 리스크가 있었는데 재호는 우직하게 하나만 판다. 그럼 뭐가 단점이냐? 이는 영화를 보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는 영화가 지나치게 쉽다고 뽑고 싶다.
의문이 드는 기획
이렇게 영화가 좀 단면적이다 보니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부족했다고 느꼈다. 올바른 직업윤리를 묘사할 것이었다면 이 일을 포기하는 내면 묘사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 주인공들이 고민을 해야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볼 법하지 않을까? 그러나 아무 고민도 없이 무작정 들이박는 인물을 보면서 헌신적인 직업윤리보다는 과함이, 교회인들에 대해 '왜 쓸데없는 짓을 하나'하는 탄식이 느껴졌다. <리틀 포레스트>와 <제보자>의 중간단계 느낌? <리틀 포레스트>에서 현생으로 돌아오고 난 다음의 낙관적인 시각과 <제보자>가 가진 숭고한 직업의식 사이에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무언가가 탄생한 것이다.
장르적으로 잘 잡았다? 이것도 좀 아쉽다. 각본에서 딱히 허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극에서 전개되는 몇 개의 협상이 들어가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다 근거가 있다. 왜 이 일이 벌어지는지 다 꼼꼼하게 묘사한다. 한 사건이 어떤 분들에겐 좀 아쉽다도 느껴질 부분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를 동의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그런 상황이니까 그 사람이 그런 선택지를 골랐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영화는 이야기를 어떻게 쥐고 펴야 긴장감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근데 이 긴장감이 후반부의 카타르시스로 이어지지 않는다. 왜? 후반부의 하이라이트신이다. 이 인물들은 좀 급발진한다. 주제를 위해 이 사람들은 그래야만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 선택지만 딱딱 고른다. 김이 새는 것이다. 갑자기 서스펜스가 쭉 추락하니 그냥 적당히 볼만 한 영화가 나왔다. 임순례라는 큰 이름에 이런 걸 기대하고 가는 건 아닌데 말이다. 직업인에 관한 영화인데 직업인에 몰입이 안되고. 장르적으로도 실화 바탕이라는 한계가 있고. 아~무것도 아닌 모호한 영화가 나왔다. 주제? 그렇다기엔 단순히 그냥 숭고한 한 직업인인을 보여줄 거라면 다큐멘터리 하나가 더 의미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연출력은 돋보였지만 기획력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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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삶이 착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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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삶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믿는다면 <브레이킹 배드>를 볼 필요가 없다. 넷플릭스 -<브레이킹 배드>는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다.- 를 끄고, 자기 능력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도와줄지 고민하는 게 훨씬 낫다. 요즘 나는 그러한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 중 몇몇은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있었다. 남들을 잘 살게 도와주면서! 그 사람들의 이타심 덕에 나도 성장했다. 글쓰기의 본질도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사람들처럼 되고 싶은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레이킹 배드>에는 그 사람들이 주지 못한 깨달음이 있다. 자신의 착한 삶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라는 깨달음이다. 드라마의 내용부터 그걸 일으키도록 의도했다. <브레이킹 배드>의 주인공은 가난한 고등학교 교사 월터 화이트(브라이언 크랜스턴)이다. 그는 가족을 위해 마약을 제조해 파는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가족을 위한다는 목적은 분명 본받을 만하다. 하지만 불법적인 일로 그 목적을 이루려 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보면, 어느새 월터를 응원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는 월터의 범행을 막으려는 사람들에 대한 의문으로까지 발전된다. 특히 월터의 아내 스카일러(안나 건)를 보면서 이걸 많이 느꼈다. 그의 행적을 두루뭉술하게 넘기는 것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남편이 하는 일은 범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면 그녀의 집요한 질문이 거슬리는 때가 찾아온다. 심지어 그녀는 임신 중이었음에도 담배(!)를 남편 몰래 피우기까지 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건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월터처럼 행동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브레이킹 배드>의 매력은 이러한 도덕적 딜레마로부터 나온다. 선행과 악행의 불분명한 경계선. 그 딜레마를 <브레이킹 배드>는 마약 범죄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접목시켰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볼 때도 똑같은 딜레마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하우스 오브 카드>는 프랜시스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클레어 언더우드(로빈 라이트) 부부에게만 이런 딜레마가 나타났을 뿐이다. 덕분에 주변의 선한 인물들에게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브레이킹 배드>는 등장인물 거의 전부에게 이런 딜레마가 드러난다.
서론에서도 이야기했다. 자신의 선한 삶을 세상이 알아줄 거라 생각한다면 <브레이킹 배드>는 안 어울린다. 솔직히 볼 필요가 없다. 그들은 알아서 자신의 삶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제공하려 블로그, 유튜브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이러지 않았기에 <브레이킹 배드>를 재밌게 보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브레이킹 배드>는 나한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드라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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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과 귀를 열어야 '붉은 하늘'도 아름답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펠릭스'(랭스턴 위벨)와 함께 뜨겁고 건조한 여름 발트해 해변을 방문한 '레온'(토마스 슈베르트). 그러나 숲 속 별장에서 예상치 못한 손님 '나디아'(파울라 베어)와 '데비트'(엔노 트렙스)를 조우한 이후 그들의 여름 계획은 점차 꼬이기 시작한다. 레온은 사사건건 펠릭스와 충돌하고, 새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한 채 자기 일에만 몰두한다. 반면에 펠릭스는 나디아, 데비트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이에 더해 휴가뿐만 아니라 일도 레온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막 완성한 소설 출판을 앞두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빠진 레온. 산불 소식이 들려오고 소방 헬기가 오가는 가운데 그의 마음속에서도 불길이 꿈뜰거린다. 나디아를 향한 욕망, 데비트를 향한 질투, 펠릭스를 향한 분노가 점점 치솟기 시작하고, 그렇게 네 청춘의 여름은 조금씩 파국을 향해간다.
<어파이어>, 페촐트다운 신작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이른바 ‘베를린 학파’(Berliner Schule)라 불리는 감독들 중 1세대로 불린다. 이들은 외국 도시나 휴양지 등을 무대 삼아 현재 독일인의 일상적인 삶을 관찰하는 작품을 주로 만들기로 유명하다. 페촐트는 비슷하다. <피닉스>, <운디네>와 같은 작품은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다룬다. 다만 차이도 있다. 페촐트의 영화는 독일 근현대사를 배경 삼아 독일인의 혼란과 상실감에 주목한다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어파이어>도 마찬가지다. 물론 전작만큼 무겁지는 않다는 인상은 분명하다. 여름휴가라는 시간적 배경, 바닷가 휴양지라는 공간적 배경이 큰 역할을 한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삼각, 혹은 사각 관계의 청춘 로맨스라는 소재 역시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진다. 산불이라는 위협이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장면이 마지막에 몰린 구성도 한 가지 이유다.
하지만 주인공 레온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파이어>는 평범한 청춘 로맨스가 아니다. 독일어 제목인 <Roter Himmel 붉은 하늘>의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레온과 다른 인물의 관계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현대인의 소통에 대한 고찰과 경계, 그리고 일말의 희망까지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를 한 대 치고 싶은 주인공
단언컨대, <어파이어>의 주인공 레온은 끔찍한 인물이다. 첫 등장부터 그렇다. 별장을 가는 차 안. 운전 중인 펠릭스는 차가 이상하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하지만 조수석에 앉은 레온은 친구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자기 생각에 갇혀 있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차는 고장 나고, 펠릭스와 레온은 짐을 지고 별장까지 걸어가야 한다. 이 짧은 장면만 봐도 레온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하고, 폐쇄적인지 손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첫인상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준다. 숲이 우거진 지름길을 이용해 별장으로 가려는 레온과 펠릭스. 펠릭스가 길을 하기 위해 잠시 떠난 뒤 레온은 숲에 홀로 남는다. 그곳에서 레온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헬기 소리를 듣지만 하늘에서 헬기를 보지 못한다. 멧돼지 소리도 듣지만 멧돼지 꼬리도 보지 못한다. 차가 이상하다는 펠릭스의 말을 듣지 못한(혹은 않은) 것처럼, 레온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그의 한심한 성정은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벽이나 문 뒤에 숨은 채 타인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데 특출 나다. 예술학교 입시를 준비 중인 펠릭스의 포트폴리오를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지적하며 기분을 상하게 한다. 나디아에게 첫눈에 반한 뒤에는 데비트에게 괜히 시비를 건다. 정확히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나디아와 데비트가 연인 관계라고 지레짐작한다. 호텔에서는 호텔 직원의 실수를 대놓고 조롱한다.
자기 손으로 파괴하는 청춘 로맨스
사실 주인공이 짜증 나면 좀처럼 영화에 몰입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파이어>는 예외다. 페촐트는 주인공의 비 호감도를 역이용해서 평범하지 않은 청춘물을 만들어냈다. 자기만의 좁은 세상과 아집에 갇힌 한 청년이 인생을 망치는 비극을 신랄하게 보여주며 예상에서 살짝 벗어난 쌉쌀함을 안겨준다.
우선 레온은 자기 손으로 로맨스를 파괴한다. 생체발광으로 빛나는 밤바다를 보러 가자며 나디아가 호감을 보여주는데도 소통을 거부하며 스스로 가능성을 없앤다. 자기가 집필한 소설 '클럽 샌드위치'를 나디아가 엉망이라고 평가하자, 고작 아이스크림 판매원의 비평이라고 깎아내린다. 그녀가 문학을 전공하고 박사 과정 중이라는 사실을 안 뒤에는 자괴감 때문인지 그녀에게 더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즐거워야 할 휴가도 망친다. 펠릭스와의 대화는 철저히 일방향이다. 펠릭스는 계속해서 제안한다. 해변에 가자고, 같이 해수욕하자고, 저녁 식사를 하자고, 지붕을 같이 수리하자고. 하지만 레온은 '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전부 거절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도 거절한다. 나디아, 펠릭스, 데비트가 잘 어울리는 가운데, 레온은 해수욕장 인명구조원인 데비트의 직업을 평가절하하며 선민의식을 드러낸다.
보고 듣지 못한 자의 비극
커리어도 엉망으로 만든다. 소설 피드백을 위해 별장을 방문한 출판사 사장 '헬무트'(마티아스 브란트)는 갑자기 몸이 아파 입원한다. 검사 후 신장에 문제가 생겨 일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헬무트. 이에 그는 레온에게 진심으로 충고한다. 능력 좋은 편집자를 붙여줄 테니 <클럽 샌드위치>를 포기하고 잠재력을 떨칠 수 있는 새 작품을 집필하라고.
하지만 레온은 복을 걷어찬다. 헬무트가 자기와 자기 소설을 무시했다고 분개한다. 나디아가 일갈하기 전까지는 헬무트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그의 진심을 전혀 보지 못한다. 붉게 물든 하늘만 보고 산불을 알지 못하듯이, 그는 자기 앞에 있는 대상을 제대로 보거나 듣지 못했다.
대가는 처참하다. 산불에 초토화된 숲처럼 비참한 현실이 레온을 덮친다. 안전하다고 믿은 해변까지 밀고 들어온 열기와 새하얀 잿가루를 목격한 순간에는 이미 늦었다. 레온이 걷어차 버린 가능성과 잠재력은 불 속에서 서로 끌어안은 채 타 죽은 펠릭스와 데비트의 모습으로 그의 눈앞에 등장한다. <어파이어>가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이름값이 어색하지 않은, 쌉쌀한 청춘 영화인 이유다.
아닌 척하며 독일 사회를 꼬집다
다른 관점에서 보더라도 <어파이어>는 독특한 매력을 뽐낸다. 실제로 <어파이어>는 곱씹을수록 묵직한 영화다. 아무리 감독의 전작보다 가볍다고 하지만, 페촐트의 통찰력마저 없어지지는 않았다. 어두운 현실을 직접 그려내지는 않지만, 가벼운 스케치와 터치만으로도 충분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레온이 데비트 이름을 듣고는 그가 동독 출신이냐고 되묻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 순간 데비트를 향한 그의 멸시는 단순한 인간관계의 범주가 아니다. 동독 주민의 2등 국민(Deutscher zweiter Klasse) 정서가 스쳐 지나간다. 레온이 데비트의 직업을 무시하는 대목도 서독에 비해 동독 지역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소득 수준이 낮다는 현실을 환기시킨다.
하필이며 펠릭스와 데비트가 산불의 피해자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피부색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펠릭스는 일반적인 게르만족이 아닌 이주민이다. 펠릭스와 데비트는 성소수자이기도 하다. 사회적 소수자, 약자를 대변하는 인물들만 목숨을 잃은 셈이다. 그들의 운명은 바다로부터 바람이 불기 때문에 산불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레온의 말과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따라서 <어파이어>를 독일 사회의 현실과 떼놓고 볼 수는 없다. 이민자, 난민, 동독 주민 등의 불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독일 축구 대표팀은 러시아 월드컵 전후로 메주트 외질 같은 터키 출신 선수와 관련해 논란을 겪은 바 있다.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은 지지율 2위를 기록하고 자치단체장을 배출하며 약진 중이다. 즉, <어파이어>는 레온과 같은 무관심, 멸시와 외면이 독일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하는 영화다. 가장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거대하면서도 중요한 담론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래도 붉은 하늘은 아름답다
<어파이어>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레온의 실패와 좌절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레온은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변화한다. 그는 나디야가 함께 보자고 했던 빛나는 밤바다를 목격한다. 소리만 들었던 헬기와 멧돼지도, 붉게 물든 하늘로만 접한 산불의 모습도 두 눈에 똑똑히 담는 데 성공한다.
결말에서 레온의 변화는 더 극적이다. 그는 자기 세계에 갇힌 채로 쓴 '클럽 샌드위치'를 포기했다. 직접 겪은 비극적인 여름휴가를 가감 없이 글로 풀어내며 새 소설을 썼다. 암 투병 중인 헬무트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웃는다. 늘 그랬듯이 뒤에 숨는 대신, 앞으로 나서서 나디아를 마주한다. 그렇게 레온은 성장한다.
레온의 성장은 단순히 한 개인, 청년의 성장이 아니다. 한 사회를 구성한 공동체의 변화 가능성과 저력을 믿는 희망 찬가일지도 모른다. 이는 산불로 물든 붉은 하늘이 단순한 재난의 전조나 위협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산불이라는 위협을 알리는 붉은 하늘을 정확히 보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자체가 새 희망이기 때문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주인공이 짜증 나는 만큼 붉은 하늘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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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GA 선정 21세기 최고의 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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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Guild of America (미국작가조합)에서는 1949년부터 우수한 영화나 텔레비전, 라디오 등의
각본가들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는데요.
미국작가조합상의 영화 부문 각본상과 각색상은 아카데미상쪽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아 아카데미상 수상 예측에 활용되기도 합니다.
WGA에서 선정한 최고의 각본101편중 top 25 영화를 가져왔습니다.
저는 19편 봤네요. 여러분들은 몇편을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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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세상이 이렇게 귀여웠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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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을 보지 않아서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조금 걱정스러웠던 영화 <주먹왕 랄프2: 인터넷 속으로>. 하지만 그런 우려는 필요 없었다. 캐릭터만 가져왔을 뿐 내용은 완전히 다른 것이어서 충분히 이해하고 감동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영화 <주먹왕 랄프2: 인터넷 속으로> 시놉시스
오락실 게임 세상에 이어 이번엔 인터넷 세상이 발칵 뒤집힌다?! 각종 사고를 치며 게임 속 세상을 뒤집어 놨던 절친 주먹왕 ‘랄프’와 ‘바넬로피’는 버려질 위기에 처한 오락기 부품을 구하기 위해 와이파이를 타고 인터넷 세상에 접속한다.
얼떨결에 올린 동영상으로 순식간에 핵인싸에 등극한 ‘랄프’와 룰도 트랙도 없는 스릴만점 슬로터 레이스 게임에 참여하게 된 ‘바넬로피’.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엄청난 스케일과 새로운 재미에 흠뻑 빠진 ‘랄프’와 ‘바넬로피’는 랜섬웨어급 사고로 인터넷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주먹왕 랄프2 : 인터넷 속으로>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디지털 세상을 아날로그로 표현하다
오락실 게임방의 캐릭터들이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캐릭터로 표현된 영화 <주먹왕 랄프2: 인터넷 속으로>. 그래서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0과 1로만 이뤄진 디지털 세상을 나의 분신들이 돌아다니는 설정으로 구현한 것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네이버나 구글에 검색을 할 때 성가셨던 자동완성 검색기능을 리셉션에 있는 안내원이 안내를 해주는 것처럼 묘사를 하다니,,, 기발했다. 그런 상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지금 이 리뷰를 쓰는 와중에도 컴퓨터 속 나의 분신이 꼭 영화 <주먹왕 랄프2: 인터넷 속으로>에 나오는 것처럼 행동을 할 것만 같아 귀엽게 느껴진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아날로그적 시스템에 가장 최적화 되어 있고 그 기능에 굉장한 향수를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돈많은 우리의 디즈니
트레일러와 티저가 올라왔을 때부터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포털사이트 이름들이 아주 대놓고 등장한다는 것이다. 구글, 이베이, 유튜브를 보면서 랄프가 구글을 고글 파는데냐고 물어보는데 간접광고 아주,,, 아름다웠다. 현실에서 접하던 인터넷 사이트가 그대로 등장을 하나보니 랄프와 바넬로피가 훼방놓고 다니는 인터넷 세상이 내가 이용하는 세상처럼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었다. 그리고 요새 트렌드인 인플루언서가 랄프를 통해 잘 드러나서 애니메이션이지만 현실 반영이 참 잘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랄프, 돈을 너무 쉽게 버는 게 아닌가,,,, 얼마나 그 시장이 레드오션인데,,, SNS 가지고 돈을 벌려면 시간과 돈, 노력을 얼마나 퍼부어야 하는데!! 하면서 지난 날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오르며 질투가 나기도 했다. 랄프가 귀엽다가 듬직했다가 질투가 나가다 아주 감정이 복합적이었다.
우정에 대한 집착 = 랄프 바이러스
영화 <주먹왕 랄프2: 인터넷 속으로>의 배경은 인터넷 세상이지만 주제는 아름다운 우정이다. 참 디즈니스러운 주제다. 뻔한 내용이지만 사람을 울리는 디즈니는 참 매력적인 것 같다. 겨울왕국 이후로 개봉한 디즈니 작품들을 보면서 울지 않았던 작품이 없었던 것 같다. 바넬로피를 집착적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랄프가 약간 바이러스처럼 복제되어서 랜섬웨어처럼 인터넷에 엄청 빠르게 퍼져나간다. 그래서 바넬로피가 보면 칭구~~~~? 이러면서 쫓아다닌다. 컴퓨터 속에 있는 바이러스들이 저러고 돌아다닐 것 같아서 귀여운데 무서웠다. 심지어 내 노트북이 저런 친구를 두질 않길 바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 였다. 랄프가 스스로에게, 자신의 분신인 바이러스 랄프에게 ‘네가 하는 행동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야’라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떨어져 있어도 행복할 수 있고, 바넬로피의 꿈을 응원하는 모습에 기특하면서도 슬픈 감정이 들었다.
영화 <주먹왕 랄프2: 인터넷 속으로>는 인터넷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풀어내면서 그 속에 우정도 함께 그려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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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의 얕은 숨소리와 가족의 밥 씹는 소리
*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얕고 낮게 들려오는 가쁜 숨소리, 뒤이어 들려오는 남녀의 불안하고 높은 언성.
열두 살의 여름을 보내고 있는 하나(김나연 분)가 매일 호흡하는 곳은 위태롭다.
매일같이 높은 언성으로 다퉈대는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며 가쁜 숨을 내쉬는 게 하나의 아침이다.
아이들보다 더 아이들처럼 다투고, 어쩌면 초등학생의 말싸움보다도 더 유치한 어른들의 언쟁.
이 전장 같은 곳에서 얕고 낮게 색색거리는 하나의 가쁜 숨소리에는 그 모든 고민과 상처, 난감이 담겨있다.
영화 <우리집>에서 (하나의) '우리집'은 영화의 시작과 함께 하나의 불안한 숨소리로 모든 걸 설명한다.
늘 품 안 가득 무거운 짐을 양손으로 안고 다니는 하나는, 어린 나이에 세상의 모든 짐을 떠안은 것처럼 보인다.
일찍이 걱정 가득한 얼굴을 가져버린 하나는 우리 가족이 이대로 사이가 완전히 나빠질까 봐 무섭다.
액자에 끼워져 있지 않았더라면 기억조차 희미했을 시절에 찍은 가족사진을 바라보는 하나.
우리 가족의 표정이 온전히 담긴 바다여행 사진이다.
'이날 이후로 우리 가족 다 같이 여행 간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하나, 엄마와 아빠에게 문득 이런 제안을 한다.
"우리 가족여행 가요. 바다로"
일곱 살 유진(주예림 분)이의 유일한 친구는 언니 유미(김시아 분)다.
그래서 언니는 친구요, 엄마이자, 언니 자체다.
엄마와 아빠는 일을 하러 먼 곳에 계신다고 했고, 이 자매를 보호할 수 있는 건 집과 그들 자신뿐이다.
그나마 전화로 잠깐씩 엄마 목소리를 듣는 건 작은 안심이다.
열한 살 유미는 유진이 배고프면 먹을 걸 줘야 하고, 사라지면 찾아야 하고, 울면 달래줘야 한다.
그래도 둘에게 조금 넓은 '우리집'은 왠지 막연하고 유일하게 그들을 영원히 보호해줄 것만 같다.
요 며칠 새 잦아진 주인아줌마의 부름.
우리집인데 자꾸 모르는 사람들이 드나들고, 방 안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우리집인데 우리집이 아닌 이 상황을 유진이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이미 여섯 번인가, 일곱 번 정도 이사를 해왔지만 이사는 늘 싫고 두렵다.
크고 작은 박스를 모으는 걸 좋아하는 유미는 집 안에 박스로 만든 또 하나의 집을 지을까, 생각한다.
"우리집은 진짜 왜 이러지?"
"내가 지킬 거야 우리집, 너네집도"영화 <우리들>로 아이들에 대해 우리가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사려 깊은 시선을 보여준 윤가은 감독의 신작, <우리집>은 '가족'과 '집'에 관한 이야기다.
매일 위태롭게 다투는 엄마 아빠를 보며 불안을 삼키는 유미, 멀리 떨어진 엄마 아빠와 또다시 이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삼키는 유미와 유진.
세 소녀의 우연 같은 만남 이후, 하나는 가장 언니로서 우리집과 유미유진집(너네집)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명을 갖는다.
이 세 소녀의 시선, 그중에서도 하나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만 영화는 흘러간다.
윤가은 감독이 말하길, 이번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 바로 카메라의 시선이라고 한다.
카메라의 시선을 아이들의 눈높이와 최대한 맞도록 하고, 그 아이들이 보지 않는 것을 굳이 따로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는 거다.
그 말은,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으로서 체험한 불안과 착잡이 곧 결국 아이들이 온전히 느꼈을 감정이란 말과 같다.
영화 <우리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쩌면 어른과 가까워진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보다,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예민하고 섬세하지 않을까.
그렇담 이 세상에 무뎌져 버린 우리보다, 그들에게 이 세상의 문제들이 눈에 더 잘 보이지 않을까
. 그래서 그만큼 그들이 세상의 문제를 고스란히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집>을 보고는 이 생각에 대해 확신이 들었다. 아이들은 아프고, 나도 아팠고, 세상의 생채기가 무뎌질 때 즈음 나는 아이의 시선과 기억을 잃었다.
집이라는 세계
"그건 어른들이 알아서 할 일이에요"
"실례 좀 할게요"
서울에 상경하고 혼자 살 자취방을 구하러 다니는 일이 잦았다. 우리집이 아닌 우리집에 사는 일은 물론, 우리집이 아닌 우리집을 구하러 다니는 일은 더욱 고통이었다.
계약이 끝나가는 집을 중심으로, 집주인과 함께 타인의 온기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집을 둘러보는 건 왠지 모르게 (집주인이 아닌 집주인에게) 매번 죄송스러웠다.
게다가 그 집에 살던 이가 잠시 외출이라도 했을 때라면, 집주인은 고민 없이 마스터키로 집 문을 열고 대수롭지 않게 방에 들어와 구경시켰다.
'집주인이니까 뭐 어때..'라는 생각은 자칫 위험하게 느껴졌다.
또한 이사를 위해 역시 우리집이 아닌 우리집을 타인에게 내보이는 것도 역시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이사를 가기 위해 누군가에게 우리집을 보여주는 것은 편치 않았다.
어색하게 정돈된 우리집 구석구석을 여러 명이 와서 버선발로 훑어보는 건 괜스레 이상하고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집은 세계다. 특히 아이들에겐 완전한 세계다.
가령 핵폭탄이 터져도 문 잘 닫고 침대 밑에서 이불 덮고 잘만 숨어 있는다면 안전할 것만 같은, 집은 날 완전히 보호해주는 세계인 것이다.
그런 세계를 침범하는 건 폭력적이다.
아이들에게 완전한 안전과 안정으로 느껴져야 할 집이 더 이상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 되어버린다면, 누구나 우리집 문을 활짝 열고 침범해올 수 있다고 느껴져 버린다면, 그것은 폭력이라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을 그런 집에 방치한 어른들의 무책임함이다.
"여기서 살자. 우리끼리만"
"근데 우리 뭐 먹고살아?"
더 이상 우리집이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 때, 세 소녀는 집을 벗어난다.
그리고 하나하나 조심스레 쌓아 만든 모형 집을 세차게 부순다. 새로운 세계로 날갯짓하기 위하여 기존의 세계를 짓부쉈던 <데미안>의 이야기처럼, 세 소녀는 용기 있는 걸음으로 발을 내딛는다.
물론 과정은 맘처럼 되지 않고 어린 감정도 늘 서툴다.
그러나 무책임이란 역할을 맡아버린 어른들 앞에서, 아이들은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이에요."라 말하지 않는다.
우연히 하룻밤 머물게 된 안락한 공간에서의 세 소녀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따뜻하고, 편하고, 먹을 것도 좀 있는 공간에서 소녀는 농담처럼 뱉는다.
여기서 살자고, 그것도 우리끼리만.
각자의 허공을 응시하며 까르르 웃는 소녀들에게 이 순간은 가장 편안해 보인다.
불안해 보이지도, 두려워 보이지도 않는다.
어른들의 세계와 우리집이 아닌 우리집에서 벗어나, 오직 세 소녀만 있는 작고 우연한 공간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안전한 곳처럼 보인다.
여기서 가장 어린 7살 소녀 유진이 대답한다.
"근데 우리 뭐 먹고살아?" 그들은 다시 까르르 웃는다.
그들도 안다. 여기서 우리끼리만 살자는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완벽한 농담인지를.
내일이면 떠나온 세계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 어린 소녀들은 각자의 맘 속으로 이미 알고 있다.
티 없는 해맑음이 유독 아프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가족'이라는 관계
"우리 밥 먹자. 든든하게 먹고 진짜 여행 준비하자"
우린 식구(食口)의 사전적 의미를 알고 있다.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영화 속 하나가 왜 이렇게 그토록 같이 밥을 먹고 싶어 할까 의문이 들었다면, 나는 '가족'의 의미를 가장 잘 아는 인물이 오직 이 어린 소녀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밥 같이 먹자"는 말은 가족의 문제를 누구보다 예민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본 하나가, 조금이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생각해낸 간절한 구호였다.
'가족여행'도 마찬가지다. 하나는 누구보다 바쁜 엄마 아빠에게 자신의 부탁이 철없는 어리광처럼 들릴 줄도 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기꺼이 철없는 어린 딸도 감수하는 하나의 모습은 영화 속 그 누구보다 성숙해 보인다.
물론 하나는 고작 5학년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어린 아이다.
아빠의 핸드폰을 비롯해 엄마의 여권 등 자신에게 골칫거리들만 모아놓은 상자처럼,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엔 당연히 서툴고 무력하다.
그 무거운 상자를 언제나 양 손으로 짐처럼 품은 하나는 명백히 여린 소녀다.
그런 소녀가 자꾸 가족들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하는 것 또한, 이 가족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할 거란 걸 우리 모두는 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불안한 눈에서 느낄 수 있다.
가족이 한 식탁에서 함께 밥을 먹는 게 어쩌면 하나에게 '가족여행'보다도 간절한 소원일 수도 있었겠다는 것.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잠시 이 식탁에서 만큼은 가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 같은 것.
하나는 말한다. "든든하게 먹고 '진짜 여행'을 준비하자"고.
여기서 '진짜 여행'이란 말의 의미를 마치 온 가족이 각자 마음으로 알아챈 듯, 영화는 가족이 식탁에 앉아 말없이 밥을 먹는 소리만 남긴 채 떠난다.
영화는 하나의 얕은 숨소리로 시작해 네 가족이 말 한마디 없이 밥을 씹는 소리로 끝맺는다.
여기에 하나의 '진짜 여행'이란 말이 한 소녀의 깊은 체념을 담은 말처럼 느껴져 더 아팠다.
스크린에 담긴 순간은 끊겼지만, 그들은 어디선가 지금도 얕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을 것 같았다.
그 어느 것도 크게 바뀌지 않은 채 위태로운 공간에서 걱정스런 눈빛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크레딧이 올라가고는, 내가 이 여린 세 소녀들에게 그 무엇도 해주지 못하고 그 위태로운 세계에 남겨두고 와버린 듯한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약간의 생각 이후 든 생각은 죄책감보단 자책감이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항상 '우리집'이었을 테고, 그들은 원래 거기에 있었다. 항상 그곳에 남겨져 있었다.
나의 무뎌진 시선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 걱정스럽고 위태롭게.
그렇기에 죄책감보단 그들을 보지 못한, 그들의 시선으로 보지 못한 나에 대한 자책감이 괴로웠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책임을 떠맡게 돼 방치하는 어른들과, 뭐라도 행동하는 아이들이 이제 동시에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길 바랄 뿐, 마찬가지로 무책임을 떠맡은 어른에 가깝다.
누군가는 가족이란 누가 보지 않으면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라 말했다. 가족 하면 '화목'이 강제 덕목처럼 세뇌되었듯, 가족이란 모름지기 달큰한 사랑의 향이 풍겨야만 하는 것처럼 요구된다.
그러나 어린 소녀들의 시선으로만 봐도 이 시선은 무척 단편적이다.
현대사회에서 관계로 인해 생긴 다양한 숙제 중에서 가장 고질적이고 특수한 형태가 바로 가족이다.
너무 사랑하면서 동시에 너무 미워하기 때문에 쉽게 풀리지 않을 실타래.
그렇기에 이 영화는 완전히 '가족영화'다.
영원히 풀기 어려울지도 모를, 그러나 영원히 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가족의 실타래.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우리는 우리가 잠시 잊고 지낸 시야로 세상을 봤을 뿐
이것이 바로 이 세상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진은영 <가족>
원글 주소 : https://brunch.co.kr/@3mon9/27
메일 주소 : wlstkdaud@naver.com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진상명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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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민 염정아 주연의 넷플릭스 영화 "크로스" 후기 / 호불호는 갈리는 듯 / 안방에서 편히 보는 첩보 액션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크로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하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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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 오브 더 데드」 넷플릭스 제작비 1,000억원의 좀비영화ㅣ새벽의 저주 결말포함 영화리뷰ㅣ저스티스 리그 잭 스나이더컷ㅣ넷플릭스 오리지널ㅣ건데ㅣ
? "아미 오브 더 데드(2021, 넷플릭스Netflix)" 예고편 분석
"새벽의 저주(2004)" 영화리뷰 결말포함-영화 정보
장르: 액션, 공포, 범죄
감독: 잭 스나이더
각본: 잭 스나이더, 조비 해롤드, 셰이 해튼
제작: 웨슬리 콜러, 데보라 스나이더, 잭 스나이더
출연: 데이브 바티스타, 엘라 퍼넬 외
촬영: 잭 스나이더
음악: 정키 XL
촬영 기간: 2019년 7월 15일 ~ 2019년 10월 20일
제작사: 미국 국기 스톤 쿼리
배급사: 넷플릭스
공개일: 넷플릭스 2021년 5월 21일
화면비: 1.85:1
상영 시간: 2시간 11분
제작비: 9,000만 달러
독점 스트리밍: 넷플릭스 N아이콘 (넷플릭스)- 잭 스나이더의 첫 장편 영화 촬영 감독 데뷔작
- 새벽의 저주 정보
감독: 잭 스나이더
각본: 제임스 건, 조지 로메로
출연: 사라 폴리, 빙 레임스, 케빈 지거스 등
장르: 공포, 스릴러, 액션- 조지 A. 로메로의 1978년작 동명 좀비 영화 리메이크작
- 시체들의 새벽
#아미오브더데드 #새벽의저주 #넷플릭스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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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달링> 메인 예고편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아름다운 커플 로빈과 다이애나.
하지만 바이러스 감염으로 로빈의 전신이 마비되면서 두 사람의 빛나는 순간은 끝나는 듯 보인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로빈,
하지만 다이애나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에게 용기를 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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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사상 가장 화려한 쇼 | 그대, 화려하게 꿈꾸어라! | 재능, 열정, 그리고 필요한 마지막 하나
디트로이트 출신의 여성 트리오 디나(비욘세 놀즈), 에피(제니퍼 허드슨), 로렐(애니카 노니 로즈). 꿈과 재능, 열정까지 가진 그녀들이지만 오디션에 실패하는 등 화려한 스타의 길은 멀기만 하다. 그런 그녀들은 쇼 비즈니스 계의 성공을 꿈꾸는 야심찬 매니저 커티스와 절호의 만남을 갖게 된다. 그는 그녀들이 가지지 못한 성공의 카드를 쥐고 그녀들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이제 그녀들은 최고의 인기가수인 제임스 ‘썬더’ 얼리의 백보컬로 투입, 기회와 경험을 쌓아 가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으로 다가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커티스는 팀을 변모시키기 위한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음악 스타일 뿐만 아니라 리더인 에피 대신 뛰어난 외모를 가진 디나를 리드싱어로 교체하려는 것. 이에 에피는 반발하고 팀은 위기에 봉착하지만, 디나는 그렇게 찾아온 기회가 싫지는 않다. 이제, 더 드림즈의 운명는 어떻게 될까? 그녀들은 계속 노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