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별2021-03-30 11:03:10
겪었고, 겪고있고, 겪을 이별과 가족이야기를 담은 영화 《남매의 여름밤》
독립영화는 엄청 찾아서 보는 스타일이 아니라 존재조차 몰랐지만 보는 내내 소소한 공감을 할 수 있었던 영화 《남매의 여름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굉장히 다양한 영화제에서 여러 상을 받은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스펙타클하고 자극적인 일반 상업영화를 선호하는 편이어서 평단에서 엄청나게 좋은 평을 받는 작품들을 봤을 때는 크게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아마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라면 어느 누구나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 시놉시스
남매 옥주와 동주는 방학기간 동안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다. 그렇게 오래된 2층 양옥집에서의 여름이 시작되고 불편할 줄만 알았던 남매는 할아버지 집에 적응하며 즐겁게 지낸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치매로 쓰러지시고 고모도 사정상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남매와 할아버지, 아빠와 고모. 이렇게 다섯 식구의 여름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었다.
평범함을 무기로 전세대에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작품
이렇게나 고증이 잘 되어 있는 작품이 또 있을까?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면 있었던 검정색에 휘황찬란한 자개장, 그리고 문고리에 달려있는 색색의 노리개, 노랗게 변색된 선풍기, 테이프와 CD를 넣을 수 있는 커다란 오디오 기계. 화면에 비춰진 공간이 너무나도 할머니 할머버지 집인 것 같아서 어린 남매의 모습에 나의 모습이 투영되다 보니 공감이 안될 수가 없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같이 영화를 본 친구 역시 다 보고 나서 ‘저 자개장 나만 익숙하니...?’, ‘겨울 배경이었으면 아주 비단이불 나왔겠다.’라며 코멘트를 달기도 했다. 그와 함께 자개장에 저 시대 혼수였던 것 같다며 자체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영화 속에는 노년층 캐릭터 하나, 장년층 캐릭터 둘, 청소년 캐릭터 둘 이렇게 설정이 되어 있다. 가족이라는 사회 구조 속에서는 어린 아이부터 노년층 까지 누구나 다 거쳐가는 과정이다. 그 모습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음으로서 관객의 나이에 따라 더 공감의 정도에만 차이가 있을 뿐, 겪어왔고, 겪고있고, 겪을 인생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침착함은 유전자인 것이 분명하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 작품이 평범함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쉽게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공감을 하면서도 이해를 할 수 없었던 특징이 있다. 바로 ‘침착함’이다. 어쩜 그리도 모든 가족 구성원이 침착할까?
친구와 대화를 하며 ‘와 너무 공감이 잘 되는데 다 내가 겪었던 내용이고, 앞으로 겪을 내용이라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왜 저렇게 침착해? 사람들이 왜 저렇게 다들 성숙한거야? 사춘기인 딸마저 저렇게 차분하다고? 우리집이 이상한거야?’라고 속사포 랩을 했다가 친구가 ‘우리집도 안그래^^’라고 해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딸이 아빠가 장사하는 물건을 훔쳐 중고거래를 하다가 들킨 후 파출소에 다녀왔는데 이유도 안물어보고 혼내지도 않고 넘어가는 모습에서 저게 가능하다고? 우리집이었으면 난리가 났을텐데? 등짝스매싱각인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서 큰소리 한 번 안나고 언성이 높아지지 않을 수 있는 가족 구성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런 집이 있을 수도 있구나 신기해 하면서도 영화의 내용이 평범하고 일반적인 가족들이 살아가며 겪는 일상 그 자체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공감이 완벽하게 이뤄지다보니 순간적으로 ‘우리집이 비정상인거야?’하는 생각이 언뜻 들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의 사례도 비슷한걸 보니 영화 속 가족의 유전자가 굉장히 Calm한 것으로 자체 결론을 내렸다.
누구나 겪는 부재에 관한 이야기
여름날 가족의 일상을 다루고 있는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조금만 들여다보면 부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옥주와 동주 남매는 부모의 이혼으로 아빠와 함께 살아간다. 옥주는 엄마의 부재에 대한 상실감을 엄마와 동생 동주에게 분노로 표출한다. 그리고 고모는 고모부와 이혼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족 전체가 함께 겪는 부재를 표현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사회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이상 누구나 이별은 겪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그 부재 속 상실감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상쇄시키며 하루하루를 다시 살아간다. 사람이라면 겪는 과정은 담담하고도 평범하게 과장없이 표현한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별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을 앞으로 언젠가 경험할 사람에게는 덤덤한 조언을 해주는 느낌이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는 잔잔한 영화 속에서 지루함을 잘 느끼는 내게 지루함 없이 공감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 거리도록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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