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enine2023-12-12 15:24:23
켄 로치, 나의 올드 오크 (2023)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는 카메라를 든 시리아 난민 소녀 야라의 사진 컷들로 시작된다. 같은 시리아 난민 소년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은, ‘사망한’, ‘무고한’, ‘망명에 끝내 실패한’ 난민의 이미지를 세계에 각인했다. 10대 후반의 야라는 살아있으며, 망명에 성공한 10대 소녀다. 그녀는 카메라 시선 아래 대상화 되지 않는다. 되려 새로운 정착지인 영국의 한 폐광촌 마을을 자신의 관점으로 카메라에 담는다.
TJ가 운영하는 펍 '올드 오크'는 마을의 유일한 공론의 장으로, 영화 안에서 직접적으로 명시된다. 이 펍은 경계를 두고 '바깥의 장소'와 '안의 장소'로 나뉜다. 그중 안쪽은, 과거 연대의 기억이 아카이빙 된 장소다. TJ의 아버지 세대에 광부들의 파업이 그것이다. 하지만 끝내 광산은 폐업하고, 상처로만 남은 기억은 환부처럼 숨겨져 있다. 그리고 난민이자 새로운 이주민 야라가 카메라를 들고 그 환부를 파고든다.
이 공간을 다시 연다는 것은 희망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한 희망을 위해서 열 것인가가 쟁점이 된다. 크게는 기존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공론의 장으로 쓸 것인지, 새로운 식구들인 난민들과 밥을 굶는 아이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할지이다. TJ가 후자를 선택하며, 올드 오크는 두 진영의 대립으로 첨예하게 나뉜다.
다음으로는 회생에 대한 비용의 문제다. 마치 야라의 카메라를 고치기 위해 오래된 카메라 2대가 들어가듯, 올드오크의 주방은 유지비도 많이 들고, 수리비도 감당할 수 없이 커진다. 여기서, 이민자(난민) 출신 기술자들의 노동력을 빌리며 두 집단 사이의 연대의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야라는, 외부인이자 동시에 내부인으로서 공동체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사진 전시회). '힘, 연대, 저항(Strenghth, Solidarity, Resistance)'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두 공동체는 점차 연대하지만, 일부 주민들의 자국민 우선주의 그리고 인종차별과 혐오주의로부터 시험을 받는다. TJ의 강아지 ‘마라’의 죽음은 과거 공동체를 지탱하던 상식과 공감, 신뢰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는 절망감을 더한다.
TJ와 일부 지역주민들은, 교회의 지원을 받아 무료 배식을 한다. 이것은 광부들의 폐업에서 모여 식사를 했던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다. TJ의 아버지는, 교회가 노동자들의 손으로 지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귀속된다는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연대가 실패하자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 야라의 새로운 관점과 더불어, TJ는 과거 노동계급(교회)과 미래의 노동계급(난민, 이민자)의 연대 가능성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과거가 아닌) 현재의 노동자 계층과, 난민 수용으로 이뤄진 미래의 노동 계급 간의 연대가 몇 순간의 마법 같은 이벤트, 예컨대 사진 전시회나 무료 배식으로 성사된다는 주장은 어딘가 헐거웁다. 동네 대다수의 주민이 야라의 아버지를 애도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여들고, 거리 행진으로까지 이어지는 이들의 공통된 동기가 무엇인지는 되려 설득적이지 못했다.
<미안해요, 리키>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위시한 전작들에서는, 인물들의 행동 이면에 깔린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토대가 촘촘하고 견고했고, 무엇보다 시스템적인 부조리를 꼬집었기에, 이 부분에서 거장의 은퇴작에 아쉬움을 더 진하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경제성장 둔화, 지방인구 소멸, 노동 허가제 안의 수많은 불평등적 요소, 급변하는 국제정세 가운데 난민을 어떻게 이 시대에 맞게 재정의하고 지역사회에 수용하는가의 문제… 등등에 직면한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주지하듯이 '올드 오크'는, 브렉시트 이후 노동력 부족과 물가상승,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는 영국의 국가적 현실을 보여주는 스케치이기도 하다.
<나의 올드 오크>는 상식과 공감, 연대 의식을 잃어버린 분노 어린 개개인의 얼굴을 전시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그 분노에 저항하고 연대하는 이들의 모습도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이 도덕적 의무감에서, '힘, 연대, 저항'이라는 가치에 공감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희망의 가능성을 본다는 주장은 어딘가 명확하지 않고, 공허하다. 자선, 혹은 온정주의에 기대지 않고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다음의 한 챕터가 더 필요했다고 생각된다. 거장이 그 챕터를 마치기 위해서라도, 다른 작품으로 극장으로 한번 더 돌아오기를 바라본다.
[Eurofilm 12. 영국, 프랑스, 벨기에]
- 이미지 제공 : 씨네랩
2023년 12월 8일 감상 / 2023년 12월 11일 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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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맨헌트 : 유나바머 vs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 :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의 차이.
살인자에게 스토리를 부여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우리는 연쇄 살인마를 비롯한 범죄자를 대상으로 영화를 만들거나 드라마를 만든다.
범죄자의 행동이나 범행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든다면 관객의 관심은 물론 어떤 면에선 스토리의 큰 틀을 기댈 수 있기 때문에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많이 나온다.
수사물이나 스릴러를 자주 보는 편이라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도 종종 만난다.
때로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처럼 범죄자인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는 작품들이 있었고,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한다는 것에 대해 크게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상황이 좀 무서운 것이라는 인지가 생겼다.
"범죄자에게 부여된 서사로 인해, 드라마 속 캐릭터나 범죄자의 행동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이런 고민 없이 소모하듯 작품을 봐도 되는 걸까?
이 고민에 길을 잡아준 작품이 있었다.
실화 기반 미드, 맨헌트 : 유나바머[MANHUNT : UNABOMBER]와 다큐멘터리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 [Unabomber : In His Own Words]였다.
범죄물 / 다크 / 실화 기반 / 추리 / 테러 / 몰입도 높음 / 미국 드라마 / 미드 / 스릴러 / 넷플릭스 드라마 / 맨헌트 : 유나바머[MANHUNT : UNABOMBER]
미드 [맨헌트 : 유나바머]는 외로운 늑대형의 테러리스트 유나바머(시어도르 카진스키)의 성장과 범죄 체포까지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어린 나이에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천재였던 유나바머는 대학 생활 중 지원했던 잘못된 심리 실험으로 인해 인격이 망가지게 된다.
이미 천재이기 때문에 보통의 평범함을 몰랐던 그는 인격이 망가지게 되면서 일반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병든 사람이 되게 된다.
현대 문명이 인류를 파괴한다는 문명 혐오주의자가 된 유나바머는 자신의 천재적인 지식을 이용해서 폭탄 테러를 저지른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살아서, 미국의 수사 기관에서는 유나바머를 찾지 못한다.
맨헌트는 유나바머와 수사관들의 스토리르 절묘하게 합쳐 스토리가 탄탄한 드라마를 보여준다.
분명히 테러범인데 맨헌트를 보고 있자면 이상하게 유나바머를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유나바머가 잡혔을 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려는 유나바머가 경이롭기도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다큐멘터리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 [Unabomber : In His Own Words]를 보면서 바뀌게 되었다.
범죄물 / 실화 / 테러 / 몰입도 높음 / 미국 다큐멘터리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 [Unabomber : In His Own Words]
미드 맨헌트를 흥미롭게 봤기 때문에 선택하게 된 다큐멘터리가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였다.
드라마와는 다르게 다큐멘터리는 유나바머의 가족, 주변 인물, 그를 쫓던 수사관들의 인터뷰를 통해 입체적으로 유나바머를 그려낸다.
맨헌트에서 필터를 씌워서 유나바머를 그려냈다면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유나바머를 그린다.
특히 드라마에서 비중을 두지 않았던 테러 피해자의 인터뷰와 유나바머 주변에 살았던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민낯을 그려낸다.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까지, 자신의 신념을 위해 테러리스트가 되었던 외로운 늑대 유나바머란 이미지가 이 인터뷰들을 통해 깨지게 된다.
그가 겪은 일은 안타깝지만, 유나바머는 그저 살인을 저지른 테러범에 불과했다.
특히 드라마 맨헌트에서 이상하리 만큼 선하게 그려졌던 유나바머가 매우 거칠고 폭력적인 사람임이었을 알게 되었을 때 묘한 느낌이었다.
드라마보다 다큐멘터리를 먼저 보았다면 드라마를 보면서 어딘지 모르게 불쾌감을 느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맨헌트 : 유나바머[MANHUNT : UNABOMBER]와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 [Unabomber : In His Own Words]는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다.
그리고 맨헌트를 본다면 꼭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라는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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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 '탐욕의 끝을 보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
개봉일 : 2014.01.09 (한국 기준)
감독 : 마틴 스콜세지
출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조나 힐, 매튜 맥커너히, 장 뒤자르댕, 존 번탈, 로브 라이너, 마고 로비
‘탐욕의 끝을 보다'
빨간 선과 파란 선이 위로 올라가느냐, 아래로 내려가느냐에 따라 하루가, 아니 몇 달, 몇 년, 어쩌면 인생이 바뀌기도 하는 그곳 ‘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한 영업 천재 또는 주가조작의 대가 ‘조단 벨포트’의 실화를 담은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절대 실패하지 않는 조합인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로, 아주 자극적이고 혼을 쏙 빼놓는 작품이다. 주인공들은 시도 때도 없이 흰 가루를 흡입하고, 선정적인... 장면들이 굉장히 자주 등장하며, 그 김에 욕설도 시원하게 뱉어내는 이 영화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그냥 미친 것 같다고 밖엔 할 말이 없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광기 어린 눈동자와 3시간의 러닝타임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란의 순간들을 보고 있자면, 눈이 핑핑 돌다 못해 나도 그들의 일부가 된 것처럼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월 스트리트는 조금 전까진 억만장자가 될 운명이었던 사람이 한낱 휴지조각을 안고 쓰러지게 될지도 모르는 곳이다. 꿈을 좇아 대금융가를 찾아온 사회 초년생 조던은 회사에 완벽하게 적응하기도 전에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월 스트리트에서 밀려난다. 그는 월 스트리트에서 갈고닦은 말빨을 살려 죽어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주식들을 훌훌 팔아넘긴다. 주식 천상계인 월 스트리트에선 말단 사원이었던 그는 인간계로 내려오자마자 족족 홈런을 치기 시작한다.
끈질긴 전화 한 통이면 몇천, 몇만 달러가 내 것이 되고, 돈이 있으니 큰 집이 생기고, 큰 집이 있으니 파티를 열 수 있고, 파티엔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이 잔뜩 몰려든다. 여자들과 함께 밤을 보내고, 코를 통해 약을 후웁- 들이키면 그곳이 천국인 거다. 조던은 이제 어리버리한 사회 초년생이 아니다. 차고 하나를 임대해 친구들과 함께 시작한 사업은 점점 덩치가 커졌고, 그들은 번듯한 건물로 이사를 간다. 주식을 내다 팔아 버는 이익의 숫자도 점점 커진다. 커지는 돈의 액수만큼 조던과 친구들의 욕망도 함께 커져간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돈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탐욕스러워질 수 있는지,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여과 없이 보여준다. 어차피 평생 놀고먹을 돈은 다 번 것 같은데,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조던 밸포트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던 건가요..- 그에게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작품 중에 또 다른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를 연기한 <캐치 미 이프 유 캔>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그와 비교해보자면.. 이건 사기의 질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주인공 프랭크도 위조지폐를 만들거나 신분을 속이는 사기꾼이었지만, 그는 정말 순한 맛이었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조던 벨포트의 이야기는 정말 강한 마라맛이다. 처음 이 영화가 개봉하던 당시엔 미성년자여서 바로 보진 못했고, 그 다음 해에 성인이 되어 벼르고 벼르던 ‘아직 다 못 깬 레오의 청불 영화 깨부수기’에 각잡고 도전하며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적잖은 충격을 먹기도 했다. 굉장한 경험이었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레오의 청불 필모 몇 작품을 깬 상태였는데.. 이 영화가 그중에서도 가장.. 선정성이 강한 작품이었다.
오늘은 빨간색이었던 것이 내일은 파란색이 될 수도 있고, 오늘의 동업자가 내일의 밀고자가 될 수도 있는 치열한 주식판에서 조던은 한 마리의 야생 늑대가 된다. 쉼 없이 사냥감을 물고, 흔들고, 뒤집어놓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던을 연기하는 레오의 연기력에 압도되기도 했다. 언젠가 레오가 자신은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던 인터뷰를 본 기억이 있는데,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다.. 극 중에서 레오가 표현해낸 광기 어린 인물의 대담함에 나도 모르게 동화되어 웃기게도 그를 응원하는 친구가 되기도 했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총 3시간의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다. 누군가에겐 지루할 수도, 누군가에겐 차원의 문을 열어줄 수도 있는 영화다. 개인적으론 2시간에서 대략 10분 정도 넘긴듯한 피로감을 선사하는 영화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하긴 했으나, 극 중에서 워낙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다 보니 그 자극으로 인해 가끔씩 시간의 흐름을 빡-하고 맞는 느낌이었달까. 아무튼 시간 날때마다 가볍게 보는 영화라기보단, 딱 마음먹고 집중해서 제대로 즐기고 싶은 영화다.
레오의 신들린 연기가 궁금하거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작품 중 가볍고, 재치 있는 작품을 찾는다면 추천하겠다. 하지만 약물복용과 선정적인 장면, 욕설을 불편하게 느끼는 편이라면 감상을 고려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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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따듯해지는 <나 홀로 집에> 명대사 모음
어렸을적 겨울에 TV앞에 가족이 모여 앉아 <나 홀로 집에>를 보며 깔깔 웃으며 하루를 보냈는데, 그땐 악당을
물리치는 장면들이 마냥 재밌었는데 커서 보니 새삼 케빈이 해주는 말들이 따듯하고 와닿는거 있죠?
우리 천재 갱얼쥐 케빈의 대사 같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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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에나 있을 법한 현실적인 가족 이야기, 영화 '남매의 여름밤'
“빨리 내 방으로 와 봐! 급해!”
“왜?”
“불 좀 꺼줘^-^”
남매들의 밤은 항상 치열하다. 서로 아웅다웅 괴롭히고 못 살게 군다. 사실 남매라는 관계는 형제나 자매에 비해 훨씬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해님 달님' 속 오누이 같이 다정한 사이가 있는 반면, 좋아하는 게 달라서 서먹서먹하거나 얼굴만 봐도 으르렁 거리기도 한다. 때론 자신의 남매보다 ‘엄마 아들’ 혹은 ‘아빠 딸’이라는 호칭이 잘 어울릴 때도 있다. 제목부터 이렇게 복잡한 단어를 넣은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그들을 어떤 관계로 그리고 있을까?
영화 ‘남매의 여름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아빠(양흥주)와 함께 작은 지하방에서 살던 남매 ‘옥주(최정운)’,’ 동주(박승준)’는 할아버지(김상동)가 계시는 2층집에서 방학을 보내게 된다. 게다가 오랜만에 만난 고모(박현영)까지 같이 지내게 되며 한 지붕 아래 두 남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는 제24회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감독 조합상, 시민 평론가상, 넷팩상, KTH상을 수상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이후 제49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밝은 미래상 수상,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 선택상 수상, 제8회 무주 산골영화제의 대상으로 불리는 뉴비전상을 연이어 휩쓸었다. 평론가의 선택이 반드시 관람할 이유가 되지 않지만,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관객들이 공감할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현실적인 가족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보면, 흠칫 놀라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어느 집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을 법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가족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관계를 현실감 있게 묘사했다. 연로하신 할아버지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아빠, 가출한 고모, 질풍노도의 시기가 시작된 ‘옥주’, 세상 물정 모르고 해맑은 막내 동주’까지 서로 다른 인물들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대화하고 행동한다.
영화 속에서 여러 차례 밥 먹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수저를 건네는 모습이나 ‘콩국수 동주한테 덜어줘.’, ‘이거 맛있다,’ ‘포도가 햇빛을 많이 받아서 달아요.’ 등의 대사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인물 위주가 아닌 식사 장면 전체를 촬영해서 실제 가정의 식사시간을 지켜보는 느낌이 든다. 영화의 포스터에서도 사용된 할아버지의 생신 축하 장면은 핵심 장면으로 꼽힐 만큼 가족 간의 소중한 순간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남매의 여름밤’의 윤단비 감독은 영화의 첫 시사회에서 식사 장면에 대한 질문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식사를 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고, 말 그대로 가장 일상적인 식사 장면을 담고 싶었다. 옥주의 가족이 처음 할아버지의 양옥집에 왔을 때는 주방에서 고모가 왔을 때는 거실에서, 동주와 옥주는 2층에서 식사를 하는데 가족들이 어떤 위치에서 식사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답했다.
영화의 배경인 할아버지의 2층 집도 현실적이다. 담금주와 각종 살림살이가 쌓여서 창고가 된 작은 방과 오래된 재봉틀은 그곳의 세월을 가늠케 한다. 인천에서 어느 노부부가 살고 있는 집을 빌려 촬영했으며, 영화의 시나리오도 집에 맞춰 일부 수정했다고 한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할아버지 집 마당은 관리 안 된 텃밭이 있는 걸로 설정했지만, 촬영 장소에 맞춰 할아버지와 아이들이 추억을 쌓는 하나의 매개체로 사용되었다. 결과적으로 영화의 시간적 설정인 ‘여름’의 분위기가 한층 강조되었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선 14살 ‘옥주’
영화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자체는 극적이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자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처럼 영화의 시간이 흐르고 사건이 정리된다. 화면도 감성적인 색감을 사용해서 따뜻한 느낌을 준다. 담담하게 그린 가족의 일상을 통해 관객들에게 공감을 느끼게 하고 잔잔한 울림과 여운을 남긴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이 담백한 표현 방식에는 주인공 ‘옥주’의 영향이 크다. 주요섭 작가의 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 어른들의 복잡한 관계를 순수한 아이의 시선에서 담아낸 것처럼 ‘남매의 여름밤’도 마찬가지다. 14살 ‘옥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어른들의 현실적 어려움이나 불편한 상황이 많은 부분 생략된다.
차이점이 있다면, ‘옥주’는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서있다. 여전히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마냥 즐거운 아이이자 또래 친구들처럼 외모와 이성에 관심을 갖고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춘기 소녀다. 하지만 어른들의 미묘한 관계를 눈치채고 그들의 대화를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옥주’는 어른의 세계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몰랐던 진실이 밝혀지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변화를 겪으며 관계와 감정에 혼란을 느낀다.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앞으로도 ‘옥주’네 가족은 평탄하지 않을 것이다. ‘옥주’와 ‘동주’는 계속 싸울 거고 아빠와 고모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껄끄러운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러면서 괜한 자존심과 미안함에 부끄러운 모습을 숨길게 분명하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그들은 같은 식탁에 앉아 별 거 아닌 이야기에 함박웃음을 지을 것이다. 내면의 민낯까지 솔직하게 보여주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한 지붕 아래 지내던 여름밤처럼 말이다. 어느 가족의 현재이자 추억할 과거, 견뎌야 할 미래인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보며 가족의 의미를 고민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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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 오브 도그>서부극이라서 가능했던 강렬한 퀴어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25년 미국 몬타나, 거대한 목장을 운영하는 '필(베너딕트 컴버배치)'은 막대한 재력은 물론 위압적이고 묘한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공포와 경외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어느 날, 그의 동생 '조지(제시 플리먼스)'는 '로즈(키얼스틴 던스트)'와 그녀의 아들 '피터(코디 스밋 맥피)'를 가족으로 맞이한다. 동생의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에 분노한 필은 피터를 볼모로 삼아 그녀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자신이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랑이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되돌아 올 것임을 깨닫지 못한 채.
서부극 하면 늘 떠오르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석양을 배경으로 말을 타는 카우보이가 방랑자 내지는 보안관과 펼치는 결투. 서부를 개척하는 이주민들과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려는 원주민의 대립과 갈등. 서부개척시대와 시대적 배경이 겹치거나 이어지는 남북전쟁이나 노예제와 같은 이슈의 등장 등등.
이러한 클리셰를 기대한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실망스러울 것이다. 서부개척시대가 끝나가던 1925년을 배경으로 하기에 서부극다운 상징적인 클리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79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드라마), 감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제인 캠피온 감독의 작품이 여전히 뛰어나고 아름다운 서부극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익숙한 장면은 없어도 서부극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며, 퀴어영화의 요소를 더해 그 본질을 유려하면서도 색다르게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서부극의 본질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특히 이분법적 관점의 묘사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동부의 이주민이 금광을 비롯한 자연을 개발하고 착취하며 원주민의 영역을 침범한 서부개척시대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세계가 충돌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당장 <파워 오브 도그> 속 배경만 봐도 그렇다. 마음껏 뛰놀아야 할 소들은 목장 안에 갇혀 있고, 들리지 않는 말굽소리는 자동차 엔진 소리가 대신하며, 평원에는 철도가 들어온다. 자연의 영역은 인간과 문명에게 잠식당하고, 광활한 서부에는 점차 안정적인 질서가 자리 잡는다. 그래서 서부극은 선과 악, 삶과 죽음, 자연과 문화, 무지함과 교육, 야만과 문명, 남성과 여성처럼 상이한 세게의 총체적 대립을 묘사하기에 용이하다.
<파워 오브 도그>에서 두 세계와 관점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지점은 캐릭터들이다. 소를 몰고 가던 필이 평원에 누워있는 소 시체를 보고 탄저균이 옮을 수 있으니 절대 만지지 말라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강조하는 것은 단적인 예시다. 로즈와 조지 부부가 조지의 부모님, 주지사 부부가 참석한 저녁 파티 장면처럼 대비되는 인물상을 통해 무지함과 교육, 야만과 문명의 경계선을 확실하게 그어버리기도 한다. 서부에서만 지내온 로즈는 교양 넘치는 대화에 전혀 끼어들지 못한다. 그녀는 피아노 연주를 부탁받지만 도시 출신 손님들 앞에서 지나치게 긴장해 연주를 망친다. 파티에 꼭 참석해달라는 조지의 부탁을 무시한 필은 씻지도 않고 연회복도 입지 않은 채 식사자리에 난입해 손님들을 당황시킨다.
이때 수많은 대립 구도 중 캠피온 감독이 유달리 관심을 기울이는 대목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대립이다. 이는 필과 로즈, 필과 피터의 첫 만남에서부터 알 수 있다. 목장의 주인이자 카우보이의 리더로서 마초적 가치를 중시하는 필은 창백한 피부를 지닌 피터의 유약함을 조롱하면서 피터가 만든 종이꽃을 불태운다. 이를 목격한 로즈가 피터를 걱정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도 필은 남자애를 약하게 키우면 안 된다면서 자신의 강인함을 더욱 뽐내려고 한다. 로즈가 조지와 결혼해 한 집에서 살게 되자 필의 행동은 더욱 거칠어지고 조롱의 강도도 더해진다. 로즈는 필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피난처로 술을 선택하고, 피터도 필 앞에서는 제대로 걷지조차 못하다. 이렇게 영화는 남성성과 여성성 간의 일방적인 충돌 양상을 그려낸다.
흥미로운 것은 남성성의 대변자인 필이 정작 동성애자이자 누구보다도 여성스러운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동생이 자신의 곁을 떠나거나 자신에게 소홀하면 불안해하고, 종이꽃을 만들던 피터처럼 섬세하게 기타를 연주할 줄 안다. 그는 자신에게 승마를 알려주고 카우보이의 삶을 가르쳐준 브롱코 헨리를 사랑했고, 그 애정을 항상 간직해 왔다. 결국 필에게 카우보이들을 장악하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마음 여린 동생을 향한 조롱, 지나치게 마초적이고 남성적이었던 그의 언행은 상실감을 가리지 위한 포장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처럼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갖는 필의 성적 지향은 그를 모순적이고 양면적인 인물로 만들기도 한다. 영화가 묘사하는 또 다른 경계들까지 무너뜨리는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일대학교에서 고전학을 전공한 필은 서양적 관점에서 볼 때 문명의 시작을 심도 있게 공부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그는 문명과 거리가 먼 카우보이로서의 삶과 정체성을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추구한다. 그에게 말, 카우보이, 자연, 언덕과 그림자, 이 모든 자연은 브롱코 헨리를 떠올리게 하는 대상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은 문명과 도시 안에 안주하기보다는 루이지애나를 탐험하며 태평양까지 향했던 메리웨더 루이스와 윌리엄 클라크의 정신을 동경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동성애적 성향을 지닌 필이라는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서부극 속 영웅들인 존 웨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같은 전형적인 영웅처럼 느껴진다. 서부극의 영웅은 농장과 황야를 오가고 이주민과 원주민의 특성을 모두 가지면서 두 세계 사이의 경계를 오간다. 두 세계 사이의 긴장, 충돌, 모순을 보여주고 둘 사이를 매개한다. 브롱코와의 사랑의 흔적을 아무도 올 수 없는 내밀한 숲 속에 숨겨두는 이 남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랑을 매개로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두 세상을 그려낸다. 동성애자로서 자신과 닮은 이들을 조롱하고 탄압하고 짓밟아야 스스로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당시의 시대적 모순을 보여준다. 그저 총을 쏘지 않고 결투를 펼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파워 오브 도그>는 서부극이기에 가능한 퀴어영화다.
이에 더해 <파워 오브 도그>는 전형적인 서부극의 영웅인 필의 파트너로 피터를 내세우면서 서부극의 서스펜스를 조성함과 동시에 퀴어영화적 요소를 심화시킨다. 창백한 피부를 지녔고, 테니스도 잘 못 칠 뿐 아니라 말 타는 법도 모르는 피터. 그러나 피터는 필요하면 언제든 눈 깜짝하지 않고 토끼를 죽이고 해부할 수 있는 담력을 지닌, 의외로 강인한 인물이다. 즉, 피터 역시 필처럼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 걸쳐 있는 인물이고, 그 모순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는 필이 숨겨 왔던 가장 내밀한 공간을 찾아내 수 있고, 필만이 볼 수 있었던 개 모양의 그림자를 언덕 위에서 발견해낸다.
그런데 영화는 두 남성의 공통점으로부터 오히려 가장 큰 차이를 끄집어내며, 그 대조가 낳는 묘한 감정선을 통해 액션이나 결투 하나 없이 강렬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이 긴장감은 영화 제목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파워 오브 도그(Power of Dog)'는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Power of Dog)'으로부터 구하소서"라는 내용의 시편 22장 20절 속 표현이다. 이때 '나'를 필로 본다면, 그를 위협하는 개의 세력은 그의 동성애적 성향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이며 그를 구할 수 있는 것은 그의 파트너가 되어줄 수 있는 피터의 존재다. 그래서 필은 피터를 강하게 밀어냄과 동시에 그를 눈여겨본다. 하지만 피터에게 개의 세력은 따로 있다. 어머니와 함께 필에게 모욕과 위협을 당해온 피터에게 칼과 개의 세력은 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격적인 태도 밑에 숨은 사랑과 열정의 감정으로 다가오는 필과 달리, 피터는 사랑을 가장한 냉철함을 유지한 채 필에게 다가간다. 필은 피터에게 승마를 알려주고 애정의 증표인 밧줄을 만들어 주지만, 피터에게 이 모든 것은 자신과 어머니를 구할 날카로운 칼날로 보인다. 즉, 둘의 접점은 선악의 경계마저도 불분명하기에 더욱 긴장되고 강렬한 것이다. 단적으로 보면 피터는 선이고 필은 악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더 과장되게 포장해야 했고, 자신 본연의 모습과 정체성을 감춘 채 스스로를 잠그고 살아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필은 단순히 평면적인 악인으로 규정되지도 않느다. 그래서 둘이 함께 하는 장면은 정적이지만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고, <파워 오브 도그>는 서부극이기에 강렬한 퀴어영화가 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연명하던 서부극에 섬세하고 감성적인 새 숨결을 불어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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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의미에서든 절반의 성공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무기 ‘텐 링즈’의 힘을 이용해 수세기 동안 끊임없이 더 강한 권력을 쫓아온 '웬 우(양자 위)'. 만다린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아버지 웬 우 밑에서 어린 시절부터 암살자로 훈련을 받아온 '샹치(시무 리우)'는 어느 날 아버지의 통제를 벗어나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 도망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둘도 없는 친구 '케이티(아콰피나)'를 만나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아버지의 테러 조직 텐 링즈의 습격을 받은 후 그의 야욕이 자신은 물론 동생 '샹리(장멍얼)'에게까지 미친 것을 눈치챈 샹치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고 어머니 '장 리(진법랍)'의 고향이자 신비의 마을인 탈로로 향한다. 가족의 비밀과 내면의 힘과 관련해 이모 '장 난(양자경)'의 도움을 받으면서 샹치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거이자 두려움인 아버지 웬 우와의 전투를 준비한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시작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4에서 <블랙 위도우> 다음으로 개봉한 두 번째 영화다. 현재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 중인 드라마를 포함하면 페이즈 4의 여섯 번째 작품이다. 다만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페이즈 4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앞서 나온 영화와 드라마들이 어디까지나 이른바 '인피니티 사가'의 부록이었던 것에 비해, <샹치>는 <캡틴 마블> 이후 2년 만에 마블이 선보인 새로운 히어로인 만큼 페이즈 4라는 새로운 시대의 막을 알리기에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첫 선을 보인 샹치라는 캐릭터는 물론 그와 텐 링즈를 중심으로 암시되는 MCU의 미래 모두 불안감을 배제할 수 없는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는 점이다.
우선 영화는 샹치라는 새로운 히어로를 두 가지 측면에서 소개한다. 첫 번째는 액션으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전반에는 <와호장룡>이나 <살파랑>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중국 무협 영화의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정교하고 화려한 합을 맞춰서 마치 하나의 춤을 추는 것 같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액션을 원테이크로 선보이는 것이다. 그 안에서 웬 우의 절도 있는 움직임과 장 난 혹은 장 리의 유려하고 부드러운 선이 이루는 대조, 즉 상이한 액션 스타일의 조화를 통해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표현해낸다. 일례로 웬우와 장 리의 대련은 사랑의 시작을, 웬우와 샹치의 대결은 부자의 갈등과 화합 등을 격한 춤에 싣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단지 중국의 전통을 오마주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대적인 재해석도 보여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초반부 대마무 숲에서 펼쳐지는 웬 우와 장 리의 맞대결이 많은 이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 전형적인 중국 영화의 한 장면이라면, 마카오 고층 빌딩 외벽에 설치된 대나무 가건물에서 샹치와 샤링이 텐 링즈를 상대로 격투를 벌이는 것은 대나무 숲이라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이소룡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동양인 히어로를 21세기에 소개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
또한 그간 마블 영화들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신선한 스펙터클로 무장한 것도 흥미롭다. 새로운 무기인 텐 링즈의 활용은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그 존재감은 토르의 묠니르 혹은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에 비견될만하다. 이에 더해 동양 판타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용과 그에 맞대응하는 존재인 서양의 악마적 존재가 펼치는 대결은 같은 디즈니 작품이자 동양 문화권을 배경으로 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을 연상시키면서 마치 괴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색다른 쾌감을 선사한다.
문제는 영화가 새로운 히어로를 소개하는 두 번째 방식에 있다. 영웅 서사의 구조적 측면에서 샹치라는 캐릭터는 결코 MCU에 안착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샹치는 다른 영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아버지 죽이기 신화의 전형을 따른다. 주인공인 아들은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진정한 영웅이 되기 위해서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아버지의 뜻과 철학을 수용하고, 부정적인 의미에서는 아버지를 꺾어야 한다. 실제로 샹치에게 웬 우는 그의 모든 기술, 힘과 뜻을 전수하면서도 자신의 방식을 아들에게 강제하는 두려운 존재다. 이때 샹치는 아버지를 꺾는 대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도 알려주었지만 그가 잠시 잊고 있었던 가르침으로 그를 설득하려 한다. 그래서 텐 링즈를 이용해 파괴적인 전투를 벌이는 웬 우 앞에서 샹치는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고 상대방까지 포용하는 어머니의 방식으로 대항한다.
그런데 이 부자 관계는 사실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와 루크 스카이워커, <아이언 맨> 속 토니 스타크와 하워드 스타크, <토르> 시리즈 속 오딘과 로키의 관계를 연상시킬 정도로 익숙하다. 그래서 영화는 샹치-웬 우의 관계에 역사, 사회적 맥락을 덧붙이며 단순한 이야기를 확장시키고 다채롭게 변주한다. 그 중심에는 샹치의 조력자인 샹리와 케이티가 있다. 예를 들어 샹치의 동생이지만 아버지에게는 거의 없는 존재로 취급받고 오빠가 받는 교육도 공식적으로 허락받지 못했던 샹리는 전통적 가부장제를 전복하는 여성을 상징한다. 웬 우-샹치의 부자 관계 그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아버지 죽이기 신화를 변주하는 셈이다. 이 상징성은 마카오에서 거대한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는 그녀가 아버지의 제국을 차지할 수 없다면 자신의 것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만 봐도 알 수 있으며, 두 번째 쿠키영상까지 보고 나면 더욱 확실해진다.
한편 샹치의 절친인 케이티는 중국계 미국인(넓게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현재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초반부에 카메라는 중국말을 쓰고 중국 전통대로 생활하는 할머니, 미국인이고 영어를 사용하지만 사고방식은 중국인인 어머니, 그리고 외관만 동양인일 뿐 보통의 미국 사람인 케이티 간의 갈등을 비춘다. 웬 우 - 샹치의 부자 관계를 성공을 위해 이민을 선택한 부모 세대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자녀 세대의 대립, 가정과 사회 사이의 문화적 차이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아시아계 이민자 2세의 이야기로 간략하게나마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는 영화의 초반부 배경인 샌프란시스코가 골드러시와 미국 대륙 횡단 철도 공사의 영향 때문에 중국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한 첫 번째 도시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샹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와 아픔을 다룬 <블랙 팬서>와 궤를 같이 하는 면이 있다.
문제는 샹치, 샹리, 케이티가 각각 뜻하는 아버지 죽이기 이야기가 하나로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케이티의 이야기를 다른 주인공들과 하나로 연결시키기에는 감정적 유대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주인공 일행의 가족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서사를 굳이 함께 붙여 놓을 공통분모가 부족하고, 케이티의 이야기는 중반부부터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유달리 겉도는 경향을 보인다.
두 번째 이유는 웬 우의 가족사나 텐 링즈의 역사에 관한 정보가 굉장히 단편적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필요한 순간에만 플래시 백의 형태로 이들의 과거사가 등장하다 보니 샹치나 샹리가 아버지를 기필코 막아 세우려고 하는 동기나 각오는 머리로 이해되는 선에서만 머무를 뿐,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는다. 이는 마블이라는 프랜차이즈 차원에서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만다린의 존재와 텐 링즈라는 테러집단은 <아이언 맨> 시리즈에서 10년 전부터 꾸준히 등장하고 암시가 되었던 존재이기에 이처럼 빈약한 묘사는 팬들의 호기심과 갈증을 모두 해결해주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는 곧 양조위의 웬 우, 만다린이라는 빌런의 존재감이 히어로인 샹치를 넘어설 정도로 뛰어나게 느껴지는 이유로 이어진다. 부족한 감정적 유대와 가족사를 대신해 배우의 존재, 그의 카리스마와 여유로운 분위기만이 영화에 통일감을 부여하기 때문에 샹치에게 향해야 할 삼중의 서사로 쌓아 올린 스포트라이트마저 자연히 빌런에게 쏠리는 것이다. 그 결과 샹치의 데뷔전은 데뷔 자체로만 만족해야 하는 애매한 성공에 머무른다.
이에 더해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확장되는 MCU의 세계관 역시 절반만 성공적이다. 물론 MCU만의 매력이 돋보이는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아이언맨 3>에서 가짜 만다린으로 등장했던 '트레버 슬래터리(벤 킹슬리)'의 재등장이 대표적이다. 반쯤 정신이 이상한 것으로 이미 각인된 이 캐릭터는 전개 상의 구멍을 피해 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곤경에 처한 샹치 일행에게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적재적소에 제공한다거나, 자칫 작위적이나 편의적인 전개로 보일 수 있는 대목에서도 그는 모든 것을 말이 되게 만드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다. 이번에도 빠지지 않은 MCU 특유의 유머 역시 예상외로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자칫 가벼울 수 있는 일부 캐릭터들의 변심에 최소한의 개연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앞으로 이어질 페이즈 4의 기반을 놓아야 한다는 과제를 수행하다 보니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는 내려갈 수밖에 없다. 출처를 알 수 없는 텐 링즈라는 무기가 수천 년 간 존재했고 만다린이 천 년간 늙지 않았다는 점, 또 만다린의 존재를 누구도 알지 못했다는 본작의 의문점들을 일부러 해결하지 않는 게 대표적인 예시다. 마블의 다음 영화인 <이터널스>가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던 인류 문명의 숨은 전파자이자 수호자들의 이야기를 다룰 것이기에 이에 대한 복선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후반부에 장르가 히어로 영화에서 괴수물로 급격히 변하면서 히어로와 빌런의 존재감을 약화시키고 괴리감을 안기는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급전개는 최근에 큰 화제를 모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예고편에서도 볼 수 있는 멀티버스와 우주로의 세계관 확장을 염두에 둔 전개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10여 년 전 복선 뿌리기에 급급하던 마블처럼 텐 링즈를 인피니티 스톤처럼 활용한 결과 이번에도 단독 영화의 완성도에 큰 부담을 안기는 셈이다. 이렇게 한 편의 영화로서도, 시리즈의 한 부속으로서도 뚜렷한 명암을 보여준 채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데뷔전을 마무리한다.
A(Acceptable, 무난함)
아직은 안갯속에 쌓여 있는 샹치와 마블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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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 오브 더 데드(2021, 넷플릭스Netflix)" 예고편 분석
"새벽의 저주(2004)" 영화리뷰 결말포함-영화 정보
장르: 액션, 공포, 범죄
감독: 잭 스나이더
각본: 잭 스나이더, 조비 해롤드, 셰이 해튼
제작: 웨슬리 콜러, 데보라 스나이더, 잭 스나이더
출연: 데이브 바티스타, 엘라 퍼넬 외
촬영: 잭 스나이더
음악: 정키 XL
촬영 기간: 2019년 7월 15일 ~ 2019년 10월 20일
제작사: 미국 국기 스톤 쿼리
배급사: 넷플릭스
공개일: 넷플릭스 2021년 5월 21일
화면비: 1.85:1
상영 시간: 2시간 11분
제작비: 9,000만 달러
독점 스트리밍: 넷플릭스 N아이콘 (넷플릭스)- 잭 스나이더의 첫 장편 영화 촬영 감독 데뷔작
- 새벽의 저주 정보
감독: 잭 스나이더
각본: 제임스 건, 조지 로메로
출연: 사라 폴리, 빙 레임스, 케빈 지거스 등
장르: 공포, 스릴러, 액션- 조지 A. 로메로의 1978년작 동명 좀비 영화 리메이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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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오브더데드 #새벽의저주 #넷플릭스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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