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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tto2023-12-21 14:32:12

자선(charity)이 아닌 연대(solidarity)

<나의 올드 오크> 리뷰



중립을 유지하는 일은 어찌나 힘든지, 기울어진 운동장 바닥에 매달려 자꾸만 우리를 끌어당기는 중력에다 대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스스로를 변호하느라 사람들은 목이 쉴 지경이다.
<나의 올드 오크>는 조롱을 퍼붓는 사람들의 모습을 주인공 야라의 카메라로 포착하면서, 그런 차별은 곧 추한 이미지로 기록되어 역사에 남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시작된다.


시리아의 내전을 피해 여성과 아이들이 영국에 이민을 온다. 사람들은 동네에 이민자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악을 쓰고, 이후로도 낯선 동네에 떨어진 난민들은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낯선 땅에 떨어진 난민 뿐만 아니라 그들을 맞아들인 원주민 중 한 명인 TJ이다. <나의 올드 오크>의 특별한 점 역시 이 점에서 비롯된다. 옷가지 몇 벌만 들고 빈 집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필요한 생활용품을 모아 전달해주고, 야라의 망가진 카메라도 고쳐 준다. 그가 운영하는 펍에 모인 친구들은 자신들과 자신의 아버지들이 살면서 가꿔온 마을에 난민들이 아무런 댓가 없이 눌러앉았다면서 탐탁치 않아 하고, 끊임없이 조롱한다. 마을을 먹여 살렸던 탄광에서의, 노동자들의 연대의 역사와 기억이 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곳을 독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을 연달아 잃고, 죽음을 결정한 순간 만나게 된 강아지와 함께 사는 TJ는 단골들이 없으면 잘 굴러가지 않는 펍을 붙들고 우정과 선의를 모두 지키려 애쓴다.



하지만 <나의 올드 오크>가 짚어내는 부분은 그중 무언가를 결정하라는 것이 아니다. 줄 수 있는 도움을 주고, 교류하며 지내는 것은 새 이웃이 된 이들에게 베푸는 단순한 '선의'가 아니라 바로 '연대'라는 것이다. 이전에 탄광 노동을 위해 그들이 그러했듯, 그리고 자신들이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듯이 그들과 함께 먹고 말하는 형태로 연대하라. 그러면 바로 그것이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켄 로치 감독은 마을을 오가는, 의미 없어 보이는 짧은 말들부터 주인공의 길고 긴 연설까지 바로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중립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미 연대도, 선의도 선택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의 올드 오크>는 모든 관객에게 똑바로 말한다. 이 땅에서 역사를 쓰고 세금을 내고 산다고 해서 독점할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며, 전쟁을 피해 자신의 역사를 모두 남겨둔 채 떠나온 이민자들과 함께 살게 된다고 해서 그들이 무언가를 '거저' 얻은 게 아니라고, 우리는 이미 전쟁이 없는 땅을 거저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관객 뿐 아니라 사람들이 베풀어 줄 선의에 기대어 낯선 땅에 내려 주기만 하는 것은 결코 인도적인 방식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꼬집으면서 사람들의 태도만이 아니라 제도를 향해 해결책을 묻고 있다. 그래서 또 다시 세계가 전쟁의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한 이 시점에 켄 로치 감독이 연출해낸 이 이야기를 들으러 온 관객들은 어쩌면 연대의 역사에 함께 기록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성자 . ri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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