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1-09 15:01:25
골든글로브 수상작 한눈에 보기
큐레이션
제 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지난 7일 열렸는데요.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매년 전세계의 영화와 미국 TV
드라마를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인데요. 씨네픽은 '영화부문' 대표 수상작들을 정리해서 가져왔습니다
골든글로브에서 선정한 2023년을 대표한 영화들 같이 알아보실까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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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상상력을 살려낸 열연
영화 '행복의 나라'는 공개 타이밍이 아쉽다. 비슷한 시대 배경을 소재 삼은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엄청난 화제성을 몰고 온 뒤에 개봉됐기에 여러모로 비교가 된다. 영화를 보고 온 많은 관객들이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이선균)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조정석)의 이야기를 그린다. 실제 10.26 사건과 12.12 사태를 배경으로 이를 관통하는 재판의 대상인 실존인물 박흥주 대령의 이야기를 팩션으로 다룬다.
격동의 상황 속에서 극을 끌고 가는 건 추창민 감독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주인공 정인후다. 이념 대립이나 거대 담론엔 관심 없고, 직업적 소신도 없는 캐릭터로 자신의 신념 때문에 가족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에 분노해 세속적으로 살아왔다. 그랬던 그가 아버지와 닮아있는 박태주를 변호하며 비정한 시대의 야만성에 분노하고 충돌하면서 싸운다.
그러면서 '행복의 나라'는 정인후와 박태주, 두 사람과 16일간 졸속으로 이뤄진 재판과정을 통해 역사적 사건보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을 깊게 들여다본다. 10월 26일과 12월 12일, 두 사건 사이에 숨겨진 이야기와 희생된 사람들에 더 호기심이 생긴 추창민 감독의 기획 의도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더불어 정인후와 박태주라는 두 인물을 통해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신념과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도 되돌아보게 한다.
정인후를 앞세워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정인후에 공감하고 몰입한다면 그와 함께 뜨거워지겠지만, 뜨거워지는 명분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올드하고 진부하게 다가온다. 후자를 택했다면 아무래도 시대의 아픔 속에 담긴 개인의 이야기가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점이 추창민 감독의 상상력이 비범이 아닌 평범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리고 먼저 개봉한 '서울의 봄' 여파도 무시할 수 없다. '행복의 나라'가 먼저 개봉했고, 대형 사건, 상징적 인물들을 픽션과 팩트를 여러 톤으로 다채롭게 사용했으나, 관객들의 마음을 울릴 무기들이 부족했던 셈이다.
전자의 관객들처럼 가슴이 먹먹하게 다가왔다면, 평범한 상상력에 몰입하게 만든 배우들의 열연이 컸을 것이다. 정인후를 연기한 조정석은 2주 전 개봉한 자신의 주연작 '파일럿'과는 180도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키다가도 울분을 토하고 감정을 터뜨리면서 자신의 연기 A부터 Z까지 다 쏟아낸다. 그가 대세 배우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행복의 나라'가 마지막 작품이 된 故 이선균의 존재감도 강하게 다가왔다. 박태주로 분해 인물의 우직한 면모를 깊은 눈빛으로 표현한다. 후반부 박태주로서 정인후에게 건네는 마지막 대사와 모습이 마치 관객에게 남기고 떠난 것 같은 인상을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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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잡초처럼 뻗어나간 뿌리들
영화제에서는 미개봉할 것 같은 영화, 혹은 찾아보기 어려울 영화를 골라 보는 재미가 전부라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 봐야지'하고 끝없이 미루기만 했던 영화를 보는 즐거움도 있음을 <미나리>를 통해 알았다. 주목받는 인물들 속 가려진 이야기를 찾는 재미도.
미나리
Minari
SYNOPSIS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 가족에게 뭔가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도 일자리를 찾는다. 아직 어린아이들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가 함께 살기로 하고, 순자는 가방 가득 고춧가루, 한약, 미나리씨를 담아 찾아온다. 앤과 데이빗은 여느 '그랜마' 같지 않은 할머니가 영 못마땅하다.
감독
Lee Isaac CHUNG (정이삭)
출연
한예리, 스티븐 연, 윤여정,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 영화는 지극히 한국적이었다. 한국인과 동양계 미국인이 나와서, 혹은 한국어가 대사 대부분을 차지해서 등의 이유는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구조가 느껴졌다. 아빠 제이콥은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명분과 위세를 분명히 하고자 사업을 벌였다. 캘리포니아에서의 삶을 모두 청산하고 시골 한구석에 들어와 한국 채소를 가꾸는 농장을 만들겠노라고.
어린아이가 둘이나 있는 집에서 한 사람이 일에만 집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으니. 식사는, 땀에 절은 옷가지들은, 누가 처리해준단 말인가. 결국 이 모든 것을 받칠 사람이 있어야만 한다. 역할을 도맡은 건 엄마 모니카.
모니카는 남편의 꿈이 불안해 보이기만 한다. 아들 데이빗은 심장이 좋지 않아 병원 가까이 있어야 하는데, 학교는 커녕 아이들과 어울릴 다른 아이들도 거의 보이질 않고, 자신 또한 컨테이너의 네모난 공간 외엔 아무것도 없는 기분이 든다. 실은 그보다 더 작은지도 모르겠다. 병아리의 성별을 구분하여 살릴 것과 폐기할 것을 가르는, 그 작고 조악한 바구니가 하루의 전부인 것 같으니.
모니카와 제이콥은 자꾸 다툼만 늘어간다. 언성을 높이고, 아이들은 방에 들어가 둘의 싸움을 중재할 방법을 고안하고. 싸우지 말라는 바람은 종이비행기를 타고 날아갔지만 엄마 아빠 둘 중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다. 아이들은 할 수 있는 게 없는 셈이다.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싸움이 눈앞에서 들리는데 어떤 발언권도 없이 그저 관망하거나 외면하는 수밖에는.
불안정한 균열의 틈 사이로 또 다른 엄마, 그러니까 모니카의 엄마인 순자가 들어선다. 이토록 밝은 얼굴의 모니카는 관객에게도 가족에게도 낯설기만 하다. 독특한 유머감각을 지닌 순자는 데이빗의 눈에도, 앤의 눈에도 이상했다. 할머니인데 할머니 같지 않은 어떤 노인. 데이빗은 경계하는 마음으로 모니카의 뒤에 숨기만 한다.
데이빗의 반응이 어떻든 모니카와 순자는 서로를 살뜰히 살핀다. 순자는 매콤한 고춧가루처럼 모니카에게 위로가 될 식재료, 그리고 약간 묵직한 돈 봉투를 내밀어 실질적으로 보탬이 될 만한 손길까지 내민다. 맞벌이하는 두 사람이 집을 비울 때 아이들과 함께해 줄 어른이 있다는 것 또한 모니카에겐 큰 힘이 된다. 완전히 농장 일에 빠진 제이콥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전보다는 모니카가 일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모니카는 순자가 데이빗을 위해 가져온 약재를 함께 달이고, 끼니를 챙기고, 집을 나설 때마다 걱정 담긴 인사를 건넨다. 순자 또한 엄마로서의 역할을 오래 해왔을 터. 자신이 아닌 남을 챙기고, 받치고, 때로는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일상이 익숙하다. 미나리는 모니카, 제이콥, 앤과 데이빗 네 가족이 힘겹게, 그러나 강인하게 뿌리내린 모습을 상징한다. 모니카와 순자처럼 가정의 기반이 된, 지난 세기의 모든 '어머니'들이 어디에서나 쑥쑥 뻗어나가는 확장성 또한 같은 맥락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들의 모성애를, 지고지순함을, 희생을 숭고하게 여기는 마음보다는 그들의 고생스러움이 피어낸 푸릇푸릇하고 질긴 줄기를 기억하고 싶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SIWFF
8/25(THU) ~ 9/1(THU)
2022-08-26 | 13:30 - 15:26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9관
2022-08-29 | 13:00 - 14:56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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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리버레이터 : 500일의 오디세이
더 리버레이터 : 500일의 오디세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즌1은 1-4화로 완료.
'밴드 오브 브라더스' 이후 제대로 만든 전쟁영화를 만났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미군의 전투 영화는 이미 수백 편 나왔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중심으로 이전과 이후 영화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2000년 이전의 전쟁영화가 '자연주의', '낭만주의'적 요소가 주류였던 것은, 영화 제작 기법의 문제와 함께 '세계의 경찰'이자 '영웅'을 선호하는 미국인의 정서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였다.
특히 미국이 소련과 냉전을 펼치던 1950년대부터 2000년 이전까지 시기는 급격한 군비 경쟁과 동서 진영의 냉전 상황이 전쟁영화에도 영향을 끼쳤고, 미군 참전 영화는 필연적으로 독일군에 의한 유대인 학살 장면과 이어지게 된다. 미국은 1970년대 베트남 전쟁에서 패퇴하면서, 세계경찰 또는 군사패권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이후 중동에 개입해 이란,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예전의 '국제경찰'에서 '국제깡패'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결국 미국이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전쟁은 유일하게 '2차 세계대전' 뿐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참전하지 않았지만, 연합국에 군수물자를 대량으로 판매하면서 연합군이 무기와 군수물자로 독일군을 압도할 수 있는 뒷받침을 해주었다. 1940년대 미국의 생산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탱크나 군함이 전쟁터에서 부서지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대량으로 생산되어서 전투로 손실되는 양보다 더 많은 물자를 공급해 연합군을 든든하게 지원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군이 쏘련을 침공했을 때, 미국은 쏘련에 군수물자를 제공했다. 쏘련군은 초기 독일군의 공격에 밀렸으나 겨울이 되면서 반격을 시작해 독일군을 궤멸시키게 되는데, 이 독-쏘 전쟁이 이후 2차 세계대전의 운명을 가를 정도로 쏘련군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이 영화는 주인공 필릭스 스파크스가 이탈리아 전선에 참전해 프랑스, 독일 지역을 옮기며 전투한 과정을 다루고 있다. 영화 내용을 언급하기 전에 영화의 형식에 관해 짚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영화는 왜 그래픽노블 형식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을까.
첫째는 미학적 표현을 추구한 것이다. 전쟁, 전투 영화는 그 자체로 잔혹하고 참담한 상황이기에 전쟁을 아름답게 그릴 수는 없다. 전쟁영화를 가장 미학적으로 표현한 영화는 테런스 맬릭 감독의 '씬 레드 라인'인데, 전쟁, 전투와 개인의 존재를 다룬 철학적인 내용이다. 전쟁 자체가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전투를 다룬 장면은 물론, 전투를 하지 않는 군인들의 일상에서 순수한 '개인'의 사유와 내면의 목소리를 철학적, 미학적으로 뛰어나게 표현한 작품이다.
'씬 레드 라인'처럼 미학적으로 완성도 높게 만들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형식에 변화를 주어 관객이 신선한 느낌을 갖도록 만들 수 있다. 이 영화는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반씩 섞은 효과를 낸다. 배우들은 실제 배우들이 움직이는 걸 찍은 다음, 그래픽 효과를 주어 만화적으로 표현했다. 오로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 수 있지만, 그러면 사실성-리얼리티-이 떨어져 관객의 감정에 울림을 주는 효과가 줄어든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중간 형태는 전쟁영화에서 드러나는 참혹함을 완화하고, 사실성을 완화해 관객으로 하여금 실사보다는 감정적 거리를 만들어 전쟁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효과를 갖는다. 여기에 그래픽노블 효과를 내면서 영화와 만화의 장점을 결합 또는 융합한 형식을 만든다.
미국의 '히어로물'들이 그래픽노블에서 실사 영화로 옮겨오면서 사실성-리얼리티-을 강조한 것과는 반대 이유다. '히어로물'을 실사로 제작하는 이유는, 사실성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고, 이는 관객이 상상과 현실의 간극을 최대로 좁히는 것에 목적이 있다. 사실성을 높이면 관객은 영화 속 '히어로'를 실제 인물처럼 생각하게 되고, 친근하고 가깝게 느끼게 된다.
이는 만화 속 인물이 생명을 얻으면서 관객(대중)에게 더 가깝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으며, 이는 이후의 비슷한 '히어로물' 영화의 제작과 기존의 만화(그래픽노블)의 판매에 긍정적 효과를 낳는다.
둘째는 제작비를 줄이기 위함이다. 전쟁영화는 제작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 동원되는 물자도 많고, 2차 세계대전 상황을 고증하고, 그때 쓰던 물건은 물론 배경이 되는 건물을 구현하려면 일반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건 당연해 보인다.
컴퓨터그래픽으로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하면, 제작비를 많이 줄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도 각종 화기, 포, 탱크에서 발사하는 탄환과 포탄의 폭발은 컴퓨터그래픽으로 표현했다. 실제 폭약을 설치해 터뜨리는 것보다 아주 적은 비용으로 효과를 낼 수 있으며, 배우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실사 영화에서 폭약을 터뜨리는 것보다는 가시적 효과가 부족한 건 분명하지만, 이 영화가 그래픽노블 형식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폭발, 화염 등의 효과는 만화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살레르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부대 선더버즈. 독일군과 전투 중에 스파크스 대위는 독일군 포격에 부상당해 후방으로 이송된다. 살레르노는 이탈리아 중남부 지역으로, 나폴리, 폼베이, 소렌토, 아말피로 이어지는 바닷가 지방이다.
장면이 바뀌어, 2년 전, 오클라호마 포트 실에 있는 부대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이때 스파크스는 소위였으며, 하와이에서 3년을 복무하고 있었다. 부대장과의 짧은 면담에서 드러난 것만 보면, 그는 17살에 집을 나와 독립했고,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가 하루 세 끼를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모병관의 말을 듣고 입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학공부를 위해 학비를 벌 목적으로 입대한 것이다.
스파크스 소위가 오클라호마로 오게 된 이유는, 통제가 안 되는 중대를 지휘해 병사들을 훈련시켜 제대로 된 군인으로 만들라는 임무 때문이었다. 'J중대'는 'Jail' 즉 감옥을 뜻하며, 실제로 이 중대원들은 전부 군대에서 사고를 치고 감옥에 갇혀 있는 병사들이었다.
부대장은 스파크스 소위에게 일주일의 시간을 준다. 스파크스는 '감옥 중대'를 찾아가 그들에게 사격 훈련을 통과하면 외출을 시켜주겠노라고 말한다. 이때 스파크스가 보여주는 태도는, 사고 친 병사들에게 동등한 군인으로 또는 남자 대 남자로, 친구처럼 담담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고, 그의 태도는 감옥에 갇혀 있던, 상급자를 폭행하고 들어온 사병들에게 믿음을 준다.
스파크스와 J중대 사병들이 가까워지는 첫번째 사건은, 사격장 교관과의 싸움 장면이다. 사격장 교관은 백인 상사로, 몸집도 크고, 입에 걸레를 문 전형적인 백인우월주의자인데, J중대는 주로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 멕시코계 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인종차별 발언을 하면서 사병들을 자극한다. 이를 보던 스파크스가 나서서 사격장 교관에게 훈련을 제대로 가르치라고 말하자, 교관은 스파크스 소위에게 계급장을 떼고 화장실 뒤에서 붙자고 도발한다. 상사가 소위에게 덤비는 건 분명 항명이지만, 상사는 소위보다 경력이 더 많고, 군 생활도 오래했기 때문에, 소위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스파크스는 교관의 도발을 받아들이고, 화장실 뒤에서 한바탕 결투를 벌이는데, 체격이 좋은 교관이 묵사발이 된다. 교관과 싸운 사람은 스파크스 소위가 아니라 J중대원인 콜드풋이었고, 스파크스와 J중대원은 즐거운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부상으로 후송된 스파크스는 북아프리카 알제리, 알제의 야전병원에서 치료하다 전선에 있을 때의 지휘관을 만난다. 그도 스파크스가 부상당하고 일주일 뒤에 지뢰폭발로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군생활을 끝내게 되면서 우연히 만난 것이다. 지휘관은 스파크스에게 전쟁터에서의 기억은 다 잊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스파크스는 귀국하는 지휘관의 가방에 아내 메리에게 보내는 편지를 넣고, 지휘관의 명령 없이 스스로 최전방 부대로 돌아간다.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 스파크스의 나레이션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이다. 스파크스의 심경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으며, 그가 '전우', '동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음에도 다시 최전방으로 돌아가 전우들을 만나는 심정과 갈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영화는 스파크스가 J중대를 만나는 것으로 간략하게 보여주지만, 157연대는 미국 중남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인종의 미국인이 등장한다. 아파치족, 세미놀족, 체로키족, 수족, 촉토족, 멕시코계의 미국인 등이 등장하고, 이들은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독일군들은 이들 미국의 소수인종, 소수민족이 백인들에게 차별당하고 있는 현실을 조롱하면서, 미국에서 차별당하는 너희들이 미국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건 웃기는 짓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 옳은 지적이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거대한 악에 맞서 공동으로 투쟁한다는 점에서, 이들 소수인종의 참전은 '연합군'의 성격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미 흑인으로만 구성한 부대가 있었으니, 미군의 구성은 그 자체로 '연합군'이다.
넋이 나간 듯한 스파크스 대위는 부대에서 안치오(Anzio) 전투에 관한 내용을 진술한다. 안치오는 로마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 바닷가 지역으로, 선더버즈 부대는 살레르노 전투에서 독일군을 밀어내며 로마 가까운 곳으로 진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1944년 1월 22일 안치오 해변에 상륙한 미군은 독일군을 8km 밖으로 내몰지만, 이후 3주 동안 전진하지 못하고 대기만 하고 있었다. 스파크스 중대는 다가올 독일군의 공격에 대비해 참호를 파고 수비하는데, 예상대로 독일군이 먼저 쳐들어오고, 적은 병력으로 독일군을 상대하게 된 157연대 E중대는 아군의 포격으로 위기를 넘긴다.
안치오 상륙작전은 이탈리아 내륙에서는 험준한 산에 가로막혀 연합군의 진군이 이탈리아군의 방어를 뚫지 못하게 되자, 바다를 통해 로마로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주력부대는 여전히 내륙으로 진군하고 있었고, 이탈리아, 독일군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안치로 상륙작전을 펼쳤으며, 이 작전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
이 와중에 헌병 장교 칠더스 중위가 전선으로 찾아와 스파크스 대위에게 소환장을 내민다. 근무지를 이탈했다는 이유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독일군의 공격이 거세질 것이 분명하지만, 157연대는 병력의 절반이 사라진 상태에서 포병의 지원을 받으며 사흘을 버티다 바닷가 근처 동굴로 후퇴한다.
독일군의 포위망을 뚫고 적진을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E중대는 독일군에 들켜 치명적 피해를 입는다. 중대원 대부분이 이 후퇴 상황에서 전사하고, 스파크스 대위를 데리러 왔던 헌병 장교 칠더스 중위도 이 전투에서 전사한다. 스파크스 대위에게는 무엇보다 오클라호마 포트 실에서 만나 생사의 전투를 함께 치른 동료 병사를 여럿 잃은 것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
스파크스는 아내 메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전우들이 어떤 존재인지 말한다. 그는 생사를 함께한 부대원들을 가족보다 더 가까운 존재라고 여기고 있었다.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것이 행운이 아니라, 평생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으로 생각하고 있다.
스파크스가 속했던 157연대는 부대를 재편해 제6군에 소속되고, E중대는 새로운 병사들로 채워진다. 두달 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었고, 스파크스의 부대는 프랑스 남부 생뜨막씸므에 상륙해 '용기병 작전'을 펼치게 된다. 생뜨막씸므는 마르세유와 칸느 사이에 있는 바닷가 지역이다.
'용기병 작전'은 두달 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이어 프랑스 남부를 장악해 보급로를 확보하려는 작전으로 미군이 주도했다. 이 작전에서 미군은 약 2천여 명이 전사하고, 자유프랑스군은 1만 명 이상이 전사한다.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한 스파크스가 이끄는 157연대는 바짝 긴장하고 상륙하지만, 독일군은 이미 퇴각한 뒤였다. 부대는 북쪽으로 계속 이동하며 프로방스 지방을 지난다.
1945년 1월, 스파크스 연대는 독일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프랑스와 독일 국경에 있는 보주 산맥을 넘는다. 독일 노이슈타트, 프랑스와 독일 국경에서 독일 쪽으로 조금 들어간 지역에 있던 독일군 산악부대는 미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보주 산맥에 진을 치고 미군을 기다린다.
스파크스가 이끄는 대대가 부대 표창을 받는다. 157연대 2대대 전체가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지만, 정작 생존자는 스파크스를 포함해 세 명에 불과했다. 안치오 전투에서 대부분 전사했기 때문이다.
미군은 보주 산맥의 중턱에 참호를 파고 독일군의 공격에 대비하는데, 이 지역을 잘 알고 있는 독일군은 길목을 차단하고 미군의 보급로를 끊는다. 독일군은 대전차 지뢰를 매설하고, 삼각 매복을 통해 화망을 집중할 수 있는 자리에 기관총과 저격수를 배치해 걸리기만 하면 전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첫번째 보급팀이 거의 전멸당하고 몇 명만 살아남은 상태에서, 장갑차를 포함해 두번째 팀이 올라가지만 역시 독일군에게 전멸당한다. 눈이 많이 쌓였고, 몹시 추운 날씨에 병사들은 감각을 잃고 얼어죽기 직전에 이른다. 독일군이 공격하고, 아군의 포격 지원으로 겨우겨우 버티고는 있으나 지리와 지형을 잘 아는 독일군의 매복 공격을 당하지 못한다.
고립되어 있던 병사 가운데 한 명이 산 아래를 향해 뛰지만 독일군 저격수에게 당하고, 두 번째 병사가 겨우 스파크스 소령에게 상황을 보고한다. 결국 스파크스 소령이 직접 고립되어 있던 병사들을 구출하러 올라가고, 부상당한 채 눈덮인 땅에 쓰러진 병사들을 보고 몸을 사리지 않고 병사를 업어 나른다. 이 장면을 독일군들이 모두 보고 있었지만, 총을 쏘지 않는다. 비록 적이지만 자기 생명을 내놓고 병사를 구하는 장교의 모습을 보면서, 독일군도 감동한다.
산중턱에 참호를 파고 방어하던 157연대 약 500명은 결국 독일군에 항복하고, 항복에 동의하지 않는 병사는 개별적으로 산 아래로 내려가는데, 독일군 매복조에 걸리면 사살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스파크스와 함께 싸웠던 병사들은 모두 항복을 거부하고 살아서 부대로 귀환한다.
스파크스 소령은 사단장에게 강력하게 항의하지만, 사단장도 어쩔 수 없는 명령을 내려야 할 때가 있는 거라고 말한다. 스파크스로서는 참패한 전투였고, 무엇보다 부하 병사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갖는다.
1945년 3월 31일, 독일 아샤펜부르크로 진입하는 미군. 프랑크프루트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크지 않은 도시인 아샤펜부르크에서 저격수에 맞서 시가전을 치른다. 이 시가전에서 지금까지 무수한 전투에서 살아남았던 J중대 고메스 병장이 전사한다.
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일부 병사들의 감정이 흔들리고, 이성보다 감정에 이끌리는 행동을 하는 병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군의 죽음을 너무 많이 봤고,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다보니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샤펜부르크로 진입하기 전에, 독일군 지휘관이 총동원령을 내렸고, 병가를 낸 독일군 장교를 반역자라고 누명을 씌워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매다는 사건이 있었다. 그것도 아내가 보는 앞에서. 미군이 도시를 점령하고 항복을 받으러 가는 길에 길거리에 매달린 독일군 시신과 그의 아내를 발견하고, 억울하게 죽은 독일군 장교의 시신을 내려 예를 갖춰 장례를 치르게 한다.
이런 장면을 비롯해 전편에서도 독일군이 스파크스 중령을 충분히 쏠 수 있었음에도 쏘지 않았던 것처럼, 작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장면이 보인다.
1945년 4월 29일, 미군은 뮌헨이 있는 바이에른주로 진입한다. 뮌헨에 이르기 전, 다하우에서 포로수용소를 발견하고 수색하는데, 열차에서 무수한 유대인의 주검을 발견한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엄청난 민간인(유대인)의 주검을 발견한 미군들은 증오의 마음이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수용소를 수색하던 병사들은 항복하는 독일군을 사살하고, 살아 있는 유대인들을 발견한다. 수용소에는 부상당한 독일군들이 있었는데, 병사들은 지휘관인 스파크스의 명령 없이 이들 가운데 일부를 살해한다. 나중에 병사들의 행동을 알게 된 스파크스가 달려가 저지하지만, 이때는 이미 17명의 독일군이 사살당한 뒤였다. 스파크스는 총을 쏜 병사를 체포하고, 부상당한 독일병사를 치료하도록 조치한다.
스파크스는 사단장에게 히틀러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전쟁이 끝난 것이다. 하지만 수용소에서 독일군을 임의로 처단한 사건에 대해 군 사법기관에서는 엄정한 처벌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제6군은 유럽에서의 전투를 마무리하고 재정비한 다음 일본과의 전투를 위해 아시아로 갈 계획이었으나 스파크스 중령은 여기서 제외된다. 군 사법기관에서 전쟁범죄 혐의가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군사법원장을 만나라는 명령을 받은 스파크스는 지휘부 건물에 도착하고, 자신의 혐의가 매우 심각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는 다음 날, 군사법원장이 지시한 건물에서 한 장군을 만나는데, 그는 패튼 장군이었다.
패튼 장군 - 이때 이미 별 네 개의 대장이었다 - 을 만나는 스파크스. 패튼은 스파크스의 혐의가 매우 무겁다고 입을 연다. 패튼 장군은 스파크스의 기록을 읽는다. 스파크스는 이탈리아 전선에 참전했으며, 시칠리아의 찰리 앵콘의 부대, 살레르노에서는 미들턴과 싸우다 부상당해 알제리의 알제에 있는 야전병원에 입원했다 다시 이탈리아 전선으로 자진 복귀한다. 비아 안치오 전투에서 독일의 케셀링 부대의 진격을 저지하고, 이 전투로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는다. 용기병 작전, 프랑스 전선으로 이동해 보주산맥에서의 전투, 아샤펜부르크 전투, 끝으로 독일 다하우에서 유대인 수용소를 발견한다. 1945년 4월 29일 09시 30분 경, 스파크스 중령의 지휘 아래 있는 157연대 I중대원들이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비무장 독일군 17명에 대해서.
패튼은 자신도 37년 동안 직업군인으로 살았지만, 실제 전투는 350일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스파크스의 전투는 500일이나 된다. 그것도 만만한 전투가 아니라 언제든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격렬한 전투에서. 패튼 장군은 스파크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패튼 장군이 스파크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다면, 스파크스는 아마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아시아로 갔을 것이다.
스파크스는 패튼의 명령에 따라 - 물론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중령으로 예편하고, 이후 콜로라도 볼더대 법대를 졸업, 변호사가 되어 후에 콜로라도주 대법원에서 근무. 2007년 사망한다. 아내 메리와 65년을 함께 살았다.
이 작품을 쓴 원작자 알렉스 커쇼는 이 시리즈의 조연출로도 참여하고 있다. 알렉스 커쇼는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나만 모르고 있을 수도 있지만-작가다. 그가 쓴 책은 한국에 겨우 한 권이 번역되어 있을 뿐이다. 알렉스 커쇼는 '잭 런던', '로버트 파카'의 전기를 쓰기도 했으며,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여러 작품을 작가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미군 전쟁, 전투 작품(소설, 영화)에는 거의 대부분 유대인 수용소와 유대인 학살 장면이 나온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므로 전혀 문제가 없지만, 특히 영화(헐리우드) 제작에서 영화 자본을 장악하고 있는 유대자본의 '의도'가 개입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있었던 사실을 드러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그것을 반복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유대인들이 역사적 피해자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고, 그 피해자의 권리를 이익으로 치환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유대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이 살던 지역을 점령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했으며, 지금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패권국가이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는 학살자로 변했다. 그럼에도 헐리우드에서는 여전히 피해자 유대인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며, 미국을 등에 업고 중동의 깡패로 살아가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이 영화에서도 유대인 수용소 장면이 나오고, 그 참혹함은 실사 영화가 아닌, 그래픽노블 형태의 형식이어서 충격을 완화하는 효과를 갖지만, 유대인 학살, 유대인 피해자의 각인 효과는 엄청나다. 작가인 알렉스 커쇼가 유대인이어서 이런 장면을 의도해서 넣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의도하지 않았어도 이런 장면이 주는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알렉스 커쇼의 홈페이지
http://www.alexkershaw.com/about/
알렉스 커쇼의 트위터
https://twitter.com/kershaw_alex
알렉스 커쇼의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battlesofww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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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에게 즐거운 한때가 되었기를, <로봇 드림>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로봇 드림(Robot Dreams), 2024
스페인 / 애니메이션 / 102분
감독: 파블로 베르헤르
모두에게 즐거운 한때가 되었기를, <로봇 드림>
어두컴컴한 집 안, 맛없는 냉동 도시락이 전자레인지 안에서 빙빙 돌아간다. 2인용 게임을 혼자 하는 게 익숙한 도그의 저녁밥이다. 도그는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설렘이나 기쁨, 행복은 곁을 떠난 지 오래다. 일상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간혹 찾아오는 새로움은 앞으로 다가올 지겨움으로 여겨질 뿐이다. 무엇 하나 즐겁고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삶 속에서 도그는 오늘도 옆집 커플의 행복을 애써 외면하며 입에 숟가락을 집어넣는다. 무료한 하루가 또 이렇게 가나 싶었는데, 돌연 TV 광고 하나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외로우신가요? 지금 바로 주문하세요!” 도그는 곧바로 반려 로봇을 주문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존재가 등장하자 도그의 일상은 180도 바뀐다. 도그의 친구이자 가족, 어쩌면 그 이상의 존재가 된 로봇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알아간다. 반려 로봇이지만, 나의 짝을 의미하는 ‘반려’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로봇 역시 (도그처럼) 하나의 인격체로 묘사된다. 영화는 도그와 로봇의 존재를 특정한 종으로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하게 표현한다. 우린 냉동 도시락이 데워질 때부터,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 속에 어떻게든 머무르고 싶어 하는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로봇 드림>은 모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도그와 로봇을 만나게 했다.
출처: 영화 <로봇 드림> 스틸컷(다음)
둘의 시너지는 순풍을 타고, 재미없던 삶은 무한한 행복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들의 시간은 해수욕장에서 강제 종료된 로봇으로 인해 멈추고 만다. 로봇이 고장 난 이유는 언급되지 않는다. 바다를 헤엄치고 잠수까지 한 로봇이 고장 나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영화는 이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도그가 외로움에 빠진 이유나 로봇을 움직이는 주요 부품에 관한 설명, 로봇의 자연스러운 감정 및 이성 습득도 마찬가지다. 전부 영화의 몰입도를 깨트릴 수 있는 물음표지만 이야기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전개된다. 눈에 빤히 보이는 빈 곳에 별표를 붙이고 시간을 들여 메우려 하지도 않는다. 움직이지 못해 주인과 더는 함께할 수 없는 로봇에 더 집중한다. 무엇보다, 도그와 로봇의 과거가 아닌 현재에 의미를 두고 앞으로 직진하기 바쁘다. 일찍부터 작고 사소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구분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중요한 건 뒤가 아니라 앞에 있고, 어제도 오늘도 아닌 ‘내일이 될 오늘’이 더 가치 있다는 <로봇 드림>만의 심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폐장을 선언하고 여름 개장을 예고한 해수욕장 공고문 앞에서 도그는 절망한다. 외로움을 떨쳐내기 위해 반려 로봇을 샀는데 한순간에 외로움을 반납받게 된 상황이라니, 도그와 로봇에게 벌어진 첫 번째 위기가 분명했다. 그러나 둘의 첫 이별(위기)은 별다른 사건충돌 없이 영원한 이별로 남는다. 이야기는 도그와 로봇의 각자 입장으로 나눠 두 갈래로 진행된다. 역시 <로봇 드림>이 가진, 아주 능숙하고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로봇을 데려올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한 도그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보라는 신문 광고에 또 반응한다. 설산에서 처음 본 동물들과 썰매를 타며 나름 어울리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눈사람에 눈코입을 선물하며 제2의 로봇을 만나고, 새해 기념으로 연을 날리다 멋진 선글라스를 낀 오리도 사귀지만, 역시나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의 마음만을 기준으로 한, 기울어진 저울을 가진 도그에게 다른 동물과의 관계 형성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해수욕장에 멈춰 있던 로봇은 꿈을 연속적으로 꾸며 진짜 세상을 경험한다. 꿈이 전부 악몽이지만, 꿈을 꾸고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로봇은 ‘성장’한다. 도그 없이도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맛보고, 관계는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영역임을 몸소 체험한다. 슬픔과 별개로 기존 관계가 깨지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인생의 아이러니한 흐름도 깨닫는다.
출처: 영화 <로봇 드림> 스틸컷(다음)
뜻하는 대로 되지 않는 관계(삶)가 주는 진짜 교훈은, 전제를 잘 알고 있음에도 매번 다시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로봇은 해수욕장 개장 후 원숭이에게 구출되지만, 악어가 운영하는 철물점에 팔려 온몸이 산산이 조각난 후 전원이 꺼진다. 삶이 끝났음을 받아들인 순간, 너구리의 도움으로 다시 태어난다. 외로움에 결국 굴복한 도그는 상점에 반값으로 나온 틴(로봇)을 산다. 한때 도그의 반려였던 로봇은 몸통 대신 달린 카세트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완전한 이별과 함께, 낯설지만 곧 익숙해질 ‘반려’가 또 등장한 순간이다.
너구리와 살기 시작한 로봇은 틴과 함께 걸어가는 도그를 우연히 발견한다. 둘을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 로봇은 다시 한번 꿈꾼다. 도그는 몸이 바뀐 로봇을 단번에 알아보고, 둘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껴안지만, 곧이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한다. 틴은 도그를, 너구리는 로봇만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로봇은 카세트 되감기 버튼을 눌러 꿈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곤 도그와 함께 들었던 노래를 틀고 볼륨을 높인다. 도그는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고, 로봇도 팔과 다리를 흔든다. 나란히 서서 같이 췄던 춤을 각자 다른 곳에서 추는 도그와 로봇. <로봇 드림>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이다음에 등장한다. 호텔 꼭대기 층에서 춤추던 로봇이 도그의 시선이 느껴지자 재빨리 숨는 장면이다. 로봇과의 추억에 젖어있던 도그는 돌아선다. 그렇게 틴과 손을 잡고 로봇과 영영 멀어진다.
출처: 영화 <로봇 드림> 스틸컷(다음)
우리는 알고 있다. 왜 로봇이 꿈을 꾸고, 도그가 왜 틴을 사고, 로봇이 마지막 순간에 왜 숨어버렸는지. 우린 모두 각자의 외로움에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 나를 위한, 오직 나만을 이해하는 단 한 사람을 찾느라 시간을 두 배로 더 빨리 쓰기도 한다. <로봇 드림>은 이를 로봇(꿈)과 도그(외로움 탈피)로 보여줬다. 로봇이 겪은 불행과 도그가 겪는 슬픔은 형태만 다른 특별한 데칼코마니였다. 꿈(로봇)은 현실(도그)이고, 현실을 겪은 로봇은 다시 현재를 살기 위해 꿈을 꿨다. 도그도 멈추지 않고 로봇과 같은 모양을 찍어내며 아침을 맞이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원하는 대로 되는 일 하나 없는 세상에서 외로움과 이별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한다. 나아가 전반에 깔려있던 구멍에 과거가 돼버린 관계(기억)들을 채우게 하고, 불완전한 관계를 향한 갈망이 메마르지 않도록 열심히 응원한다. 특히 도그와 로봇이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에 맞춰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어나더 라운드> 속 엔딩과 연결되면서 짜릿한 쾌감을 선물한다(주인공도 삶에 허덕이다 마침내 자기만의 알코올 농도를 찾고, 엔딩 삽입곡 Scarlet Pleasure의 'What A Life'에 맞춰 막춤을 춘다).
출처: 영화 <로봇 드림> 스틸컷(다음)
완벽하지 않고 때론 상식적으로나 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인간관계 안에서 꿈을 꾸다 다시 꿈을 접고, 또다시 꿈꾸며 사는 모두에게 즐거운 한때가 되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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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후보작 발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드디어 2022년도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작이 발표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상하신대로 수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 많이 보이고 있는데요!
많은 분들의 예상을 빗나간 수상 후보작 선정도 여럿 눈에 띕니다.
시대 흐름을 반영한 OTT작품들의 작품상 후보 선정, <돈 룩 업>이 대표적이구요,
인디영화 <코다>의 작품상 후보 선정도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드라이브 마이 카>의 약진입니다. 작품상은 물론 감독상, 각색상, 그리고 국제영화상까지 4관왕에 올랐습니다.
<기생충> 이후 또 한번 아시아 영화 감독의 놀라운 성과를 기대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국제영화상은 <드라이브 마이 카> 수상이 유력하지 않을까 많~~이 예상해봅니다.
그럼 주요 부문 수상 후보작은 톺아보도록 할게요! :)
작품상
1. <파워 오브 도그>
2. <드라이브 마이 카>
3.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4. <듄>
5. <코다>
6. <킹 리처드>
7. <리코리쉬 피자>
8. <나이트메어 앨리>
9. <벨파스트>
10. <돈 룩 업>
▶너무 쟁쟁한 후보군들이 많지만 조심스레 <파워 오브 도그>의 수상을 예상해봅니다.
감독상
1. <벨파스트> (케네스 브래너)
2. <드라이브 마이 카> (하마구치 류스케)
3. <리코리쉬 피자> (폴 토마스 앤더슨)
4. <파워 오브 도그> (제인 캠피온)
5.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티븐 스필버그)
▶ 작품상과 마찬가지로 올해 너무나 많은 극찬을 받은 작품 <파워 오브 도그>의 제인 캠피온 감독의 수상을 예측해봅니다.
남우주연상
1. <비잉 더 리카르도> (하비에르 바르뎀)
2. <파워 오브 도그> (배네딕트 컴버배치)
3. <틱, 틱!...붐!> (앤드류 가필드)
4. <맥베스의 비극> (덴젤 워싱턴)
5. <킹 리처드> (윌 스미스)
▶ 앤드류 가필드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대결로 보입니다. 하지만 올해 <파워 오브 도그>의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가 역대급 인생연기로 극찬 받으면서,
조금 더 수상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여우주연상
1. <타미 페이의 눈> (제시카 차스테인)
2. <잃어버린 딸> (올리비아 콜먼)
3. <페러렐 마더스> (페넬로페 크루즈)
4. <빙 더 리카르도> (니콜 키드먼)
5. <스펜서> (크리스틴 스튜어트)
▶ 가장 수상의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려운 부문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가장 각축을 벌이는 부문으로 많은 분들의 관심이 클 것으로 예상되네요.
남우조연상
1. <벨파스트> (키어런 하인즈)
2. <코다> (트로이 코처)
3. <파워 오브 도그> (제시 플레먼스)
4. <비잉 더 리카르도> (J.K 시몬스)
5. <파워 오브 도그> (코디 스밋 맥피)
▶ <파워 오브 도그>의 코디 스밋 맥피과 제시 플레먼스가 같은 작품에서 가장 큰 수상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래도 역시 흐름이 코디 스밋 맥피의 수상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습니다.
여우조연상
1. <잃어버린 딸> (제시 버클리)
2.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아리아나 드보스)
3. <벨파스트> (주디 덴치)
4. <파워 오브 도그> (커스틴 던스트)
5. <킹 리처드> (안저뉴 엘리스)
▶ 여우조연상은 <파워 오브 도그>의 커스틴 던스트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아리아나 드보스 배우의 대결로 보입니다.
다만 할리우드에서는 보통 떠오르는 신예 배우를 선호한다는(?) 면에서 아리아나 드보스 배우의 수상이 예상되네요.
각색상
1. <코다>
2. <드라이브 마이 카>
3. <듄>
4. <잃어버린 딸>
5. <파워 오브 도그>
▶ <드라이브 마이 카>의 원작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서구권에서 인지도가 높은 작가인데요.
그래서 충분히 <드라이브 마이 카>의 수상 가능성도 크다고 짐작됩니다. <듄> VS <파워 오브 도그> VS <드라이브 마이 카>의 대결로 보입니다.
각본상
1. <벨파스트>
2. <돈 룩 업>
3. <킹 리차드>
4. <리코리쉬 피자>
5.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 < 돈 룩 업>과 <리코리쉬 피자>의 대결로 예상됩니다. 각본상도 수상의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려운 부문인 것 같습니다.
촬영상
1. <듄>
2. <나이트메어 앨리>
3. <파워 오브 도그>
4. <맥베스의 비극>
5.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프로덕션의 힘, 촬영상 부문인데요. 아무래도 2021년 엄청난 스케일로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던 <듄>의 수상 가능성을 예상해봅니다.
의상상
1. <듄>
2. <나이트메어 앨리>
3. <크루엘라>
4. <시라노>
5.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편집상
1. <듄>
2. <킹 리처드>
3. <파워 오브 도그>
4. <돈 룩 업>
5. <틱, 틱...붐!>
분장상
1. <크루엘라>
2. <듄>
3. <타미 페이의 눈>
4. <커밍 투 아메리카>
5. <하우스 오브 구찌>
미술상
1. <나이트메어 앨리>
2. <듄>
3. <파워 오브 도그>
4.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5. <맥베스의 비극>
음향상
1. <벨파스트>
2. <듄>
3. <파워 오브 도그>
4. <007 노 타임 투 다이>
5.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음악상
1. <돈 룩 업>
2. <듄>
3. <엔칸토: 마법의 세계>
4. <페러렐 마더스>
5. <파워 오브 도그>
주제가상
1. <킹 리처드>
2. <엔칸토: 마법의 세계>
3. <벨파스트>
4. <007 노 타임 투 다이>
5. <포 굿 데이즈>
시각효과상
1. <듄>
2. <프리 가이>
3.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4. <007 노 타임 투 다이>
5.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장편 애니메이션상
1. <엔칸토: 마법의 세계>
2. <나의 집은 어디인가>
3. <루카>
4.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
5.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장편 다큐멘터리상
1. <중국몽>
2. <아티카>
3. <나의 집은 어디인가>
4. <소울, 영혼, 그리고 여름>
5.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쏘다>
국제영화상
1. <드라이브 마이 카> (일본)
2. <나의 집은 어디인가> (덴마크)
3. <신의 손> (이탈리아)
4. <교실 안의 야크> (부탄)
5.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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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씨네랩의 전신인 하이,스트레인저의 공동배급 작품인데요.
각본상과 국제영화상, 2관왕에 올랐습니다. :)
올해 상반기 개봉 예정 중에 있으니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오늘 2022년 미국 아카데미 수상 후보작 발표 콘텐츠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 더욱 유익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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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과 영문 제목 사이의 괴리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정치가 싫었던 인권 변호사 문재인은 왜 대통령이 되었을까? 청와대 5년, 그는 왜 권력의 칼을 휘두르지 않았을까? 사저 시위대의 욕설 속에서 그는 왜 묵묵히 꽃만 심었을까? 그를 지켜본 이들이 한 조각씩, 숨겨진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그는 왜 대통령이 되었을까?', '그 시절은 왜 '대통령 문재인'을 원했을까?' 그 퍼즐이 비로소 완성된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양날의 검
노이즈 마케팅. 가장 많이 알려진 마케팅 기법 중 하나다. 이 기법의 핵심은 이슈다. 자극적이거나 부정적이어도 좋다. 사람들의 입에만 많이 오르내리면 된다. 품질에 관계없이 관심을 끌고, 일단 제품을 알리는 것. 노이즈 마케팅의 핵심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재인입니다>는 노이즈 마케팅의 정수를 보여줬다. <사이에서>, <길위에서>, <목숨>, <노무현입니다>를 연출한 이창재 감독의 신작은 공개 전부터 논란의 한가운데에 섰다. 정치적 갈등을 초래할만한 발언이 담긴 영상을 '김어준의 다스 뵈이다' 258회에서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그 영상은 본편에 포함되지 않았다. 제품 품질과 무관하게 관심을 끈다는 목적을 120% 달성한 셈이다.
하지만 노이즈 마케팅은 양날의 검이다.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구설수를 호평으로 바꾸지 못하면 역효과가 난다. 제품 품질에 대한 평가가 구설수에 먹힐 수도 있다. <문재인입니다>도 마찬가지다. 메시지에 쏠려야 할 관심이 정치적 공방에 묻혀 버렸다. 정치 성향을 떠나서 안타깝다. 지지 정당이나 정치인 문제를 떠나서 보더라도 <문재인입니다 This is the President>는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운명의 실타래를 풀어헤치다
이창재 감독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영화는 <노무현입니다>다. 하지만 이 영화로 이창재 감독을 단정 짓는 것은 성급하다. 정치적 성향을 지우고 나며 그의 작품에 깃든 독특한 세계관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매개체는 달라져도 그의 필모그래피는 일관적이다.
<사이에서>는 신내림과 속세 사이에서 갈등하는 무속인의 삶을 그려낸 영화다. <길위에서>는 비구니 스님을 통해 속세를 떠나야 하는 운명을 관찰한다. <죽음>과 <노무현입니다>는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삶에 대해 묻고, 한 시대의 얼굴이 되었지만 죽음을 선택한 대통령을 그려낸다.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삶과 운명의 관계를 찾으려는 사색으로 가득하다.
<문재인입니다>도 같은 길을 걷는다.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에서 퇴임한 한국 대통령은 이상한 존재다. 그 자체로 운명과 인간적 삶이 충돌하는 아이러니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아무나 될 수 없다. 모든 국민이 아는 정치인이어도, 가장 유력한 후보도 천운이 따르지 않으면 당선될 수 없다.
하지만 끝은 가혹하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현직 못지않게 무겁다. 죽거나, 망명하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자살하거나... 누구 하나 희극을 맛본 이가 없다. 그러니 퇴임 후 조용히 잊히고 싶다는 대통령은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다. 마모되고 부서지기 일쑤인 자리를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지지와 비난이 맞닿는 삶은 어떤 모습인지. <문재인입니다>는 그 삶의 의미를 찾는다.
대통령의 두 얼굴, 아틀라스와 프로메테우스
영화는 대통령이라는 운명을 마주한 인간을 둘로 쪼개 카메라에 담는다. 한쪽에는 아틀라스가 있다. 지구만큼이나 무거운 과업을 5년 동안 수행하는 사람이다. 다른 한쪽에는 헤라클레스를 만난 프로메테우스가 있다. 그는 마침내 형벌에서 풀려나 자유를 찾았다.
처한 상황이 상이한 만큼 두 이미지를 묘사하는 분위기도 다르다. 오랜 변호사 동료와 임기 동안 함께 일한 사람들의 진술은 아틀라스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이들의 증언은 단순한 '문비어천가'가 아니다. 문재인이라는 사람의 특징을 나름 객관적으로 들려준다. 인내하는 사람, 듣는 사람, 과묵한 사람의 장단점이 빠르고 날카로운 리듬으로 제시된다.
그 과정에서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사건도 등장한다. 주한미군 방위금 문제, 일본과의 무역 전쟁, 조국 사태 등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정치적 평가에는 관심이 없다. 굵직한 현안을 헤쳐 나오는 주인공의 습관과 태도, 정치 방식을 전할 뿐이다.
반면에 자유로워진 프로메테우스는 평화롭다. 대통령 퇴임 직후 그가 아내와 비서진의 도움을 받아 정원을 가꾸는 일상을 보여준다. 반려 동물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 산책에 나서는 모습이 뒤따른다. 전 대통령의 일상은 긴 템포로, 차분하게 전시된다. 물론 운명의 무게를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 반대파의 외침이 그의 집을 감싼다. 과거의 결정이 최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지울 수 없다.
조롱과 욕설에 침묵하며 농사짓고 반려 동물을 돌보는 삶. 이 전원생활을 보다 보면 천성적으로 정치에 걸맞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 난리 끝에도 조국 전 장관과 술 한 잔 기울이고 싶다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러면 '차라리 대통령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동정과 비난 사이로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이는 <문재인입니다>가 영화적으로 최소한의 목적은 달성한 듯 보이는 이유다. 아틀라스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프로메테우스가 얼마나 힘겨웠는지는 알 수 있으니까. 과중한 운명을 마주한 인간의 두 얼굴을 성공적으로 포착한 셈이다.
국문과 영문 제목의 괴리감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문재인입니다>의 영화 외적인 선택은 더욱 의아하다. 마케팅을 비롯한 선택 하나하나가 영화의 본질을 가리고 불필요한 논쟁과 소모전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제목부터가 문제다. 물론 전작 <노무현입니다>와 이어지는 영화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열망이 읽히기는 한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 분량도 일부 있다.
하지만 <문재인입니다>라는 제목은 내용이나 메시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영화는 문재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대통령직을 수행한 한 인간을 살핀다. 그런데 매개체에 불과한 문재인이라는 이름에는 수많은 의미가 깃들어 있다. 이 이름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름에는 한국 사회를 둘러싼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이슈와 논쟁이 함축되어 있다. 이슈 하나하나가 찬반이 격돌하는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다. 남북관계, 탈원전, 한일관계 등. 즉, 문재인이라는 이름 석 자는 역으로 영화의 참뜻을 가려 버린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영문 제목인 <This is the President>가 더 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본질에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다가간다. 잘못 번역된 외국 영화 제목이 오해를 초래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문재인입니다>는 보기 드문 반대 사례인 셈이다. 국문과 영문 사이의 괴리감은 영화 외적 요소가 평가와 해석, 감상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어떤 이유 때문이든 과소평가한 결과처럼 보인다. 감독의 전작이나 정치적 성향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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