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1-09 15:01:25
골든글로브 수상작 한눈에 보기
큐레이션
제 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지난 7일 열렸는데요.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매년 전세계의 영화와 미국 TV
드라마를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인데요. 씨네픽은 '영화부문' 대표 수상작들을 정리해서 가져왔습니다
골든글로브에서 선정한 2023년을 대표한 영화들 같이 알아보실까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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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TAR 타르' 리뷰
현대인들이 뒤집어쓴 얼굴 이면에는 직업인의 자아와 자유인의 자아가 있다. 직업인의 자아가 만들어진 건 일이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면서부터다. 사람들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 그 이상의 가치가 일에 포함되어 있다고 믿어야 했다. 일은 인간의 숙명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노동의 지위는 올라갔다. 노동은 노력으로 성취해 낼 수 있었다. 특정 직종의 면허, 자격증, 인증서는 그러한 노력의 징표다. 노력은 단순하고 당연한 진리를 내포한다. 그래서 노력이 필요 없는 성질은 설명이 불가하기에 경외하게 된다. 천재성에 놀라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일하는 모습에서 자기표현의 경지를 맛보기 때문이다. 일이라는 건 원래가 반복적이고 의미 없는 일상인지라 그 이상의 요건을 달성하면 일종의 상징이 된다. 달인의 몸놀림에 경탄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아함, 그 이상의 카리스마. 타르의 몸짓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그러했다. 마에스트로의 지휘를 실제로 가까이 보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커리어나 능력,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위대한 직업인들의 면모에는 공통점이 있을까? 공통점을 정리하면 그들과 같이 설 수 있을까?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적용이 가능할까? 특정 장면에서 타르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부드럽게 본인의 의견을 주장하는데 좌우로 넓게 팔과 다리를 뻗고 대화를 나눈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그 자세에서 이 영화의 무게중심이 온전히 느껴졌다.
리디아 타르는 자신의 지휘 경력에 중대한 변곡점이 될 교향곡 리허설에 들어간다. 그녀는 커리어와 능력 어느 면으로 보나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첫 여성 수석 지휘자로 얼마나 다양한 곡을 지휘했는지 셀 수도 없다. 무대와 스크린을 위한 음악을 작곡하기도 해서 4개의 주요 엔터테인먼트 수상식에서 모두 수상하기도 했다. 후학 양성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자서전 출간과 함께 콘서트를 준비하는 바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철옹성 같은 바위를 산산조각 내는 건 작은 틈새로 스며드는 물방울이다.
리허설 현장을 기록한 과정들은 단적으로 그녀가 얼마나 놀라운 실력을 가진 사람인지 보여준다. 인터뷰 장면부터도 그랬지만 지휘, 심사, 의사소통 등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다. 언어를 뒤섞어가며 표현해내고자 하는 정확한 음과 리듬을 짚어내며 지시한다. 그녀는 일련의 천재들이 그렇듯이 유별나게 괴팍하거나 괴상하게 특이점을 짚어내지는 않는다. 다만 정확한 의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미 오래전에 죽은 작곡가들이 악보에 남겨둔 단서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지휘자가 해석을 하는 과정은 적극적으로 악보의 여백에 뛰어들어 빈틈을 채워가는 일에 가깝다. 타르는 본인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행동에 거침이 없다. 그만한 실력이 뒷받침되기에 거침없는 행동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용인되는 것은 오롯이 그녀가 그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마에스트로의 자리에 올려놓은 건 '카바너',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이었다.
사람이 날카로워지면 불안해진다. 의도는 바늘과 같다. 찌를지 꿰맬지 결정해야 한다. 타인이 원하는 바를 이해하고 있다는 건 일단은 고지에 올라있는 것이다. 그 이점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개인의 판단에 달린 일이다.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 활용할 수도 있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해석은 주관의 소관이니까. 상대방을 내 속도로 잡아당길지 맞춰갈지 정해야 한다.
음악은 시간을 다룬다. 음악을 핵심 소재로 다루는 영화에서는 '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을 집중해서 보면 좋다. 정해진 시간 내에 각각의 음이 저마다의 속도로 이어져야 비로소 음악이 된다.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한다. 지휘자가 시작과 끝을 선언한다. 또한, 그들이 메트로놈과 다른 이유는 템포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속도를 올리거나 내려서 각각의 소리를 유기적으로 밀고 당기며 감정을 자아내는 일은 전적으로 지휘자의 몫이다. 신의 존재를 모방하는 형태로 지휘자는 음악을 통해 그 권한을 시험한다. 영화의 중간중간에 신성을 다루는 비유를 통해서 이런 관념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음악의 바깥에는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 놓여있다.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 잠시 멈추거나 두 배로 감거나 되돌아갈 수 없는 절대적인 시간이다.
통제할 수 없는 시간 앞에서 타르는 무너진다. 옆집 노인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돌아가거나 멈출 수 없어서 도망친다. 도피처는 중요치 않다. 무엇으로부터 도망갔는지가 중요하다. 음악 바깥에는 리허설이 없고 해석해야 할 여백은 너무나도 넓다. 매 순간순간 자신만의 능력으로 의도를 파헤쳐나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 앞에 거장은 없으니까. 태어난 데에는 이유가 없으니 의도 또한 없다. 해야 하는 일은 정해지지 않았고 추측은 무의미하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 궤적을 충실하게 채워갈 뿐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행동을 모방할 뿐이다.
인성과 능력의 연관성을 따지는 건 우스운 일이다. 우린 둘 중 어느 것도 어느 누구에게서도 제대로 알 수 없다. 직업인의 자아나 자유인의 자아나 불안정한 건 매한가지니까. 완벽할 수는 없다. 완벽한 인간상이 정해지는 건 이 현실 세계 속에서는 비현실적인 일이다. 두 자아상을 온전하게 갖추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드는 감상이 인간의 면모는 아닐 것이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TAR 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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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 ‘꾸미지 않아도 우린 모두 판타스틱한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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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Fantastic Mr. Fox)
개봉일 : 2009.12.24. (한국 기준)
감독 : 웨스 앤더슨
출연 : 조지 클루니, 메릴 스트립, 제이슨 슈왈츠먼, 빌 머레이, 월레스 우로다스키
‘꾸미지 않아도 우린 모두 판타스틱한 존재니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문라이즈 킹덤>, <다즐링 주식회사> 등의 영화로 유명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또 다른 이야기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빼다 박은 동화 속 마을이 이 영화 안에 있다.
모두에게 판타스틱한 여우가 되고 싶은 미스터 폭스와 운동신경이 조금 떨어지는 아들 애쉬. 미스터 폭스는 야생동물인 여우의 습성을 따라 살고 싶어 하고 아들 애쉬는 멋진 아빠의 모습을 닮고 싶어 한다.
닭이나 새끼 비둘기를 훔치고 잡아먹는 여우의 본능을 마음껏 표출하던 미스터 폭스는 미시즈 폭스를 만나 아이를 갖게 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 새로운 호칭과 책임감을 얻게 된 그는 미시즈 폭스의 바람대로 닭 도둑질을 그만둔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미스터 폭스 가족은 조금 더 멋진 나무집에서의 삶을 위해 보기스, 번스, 빈이라는 농장주들이 꽉 쥐고 있는 마을로의 이사를 결심한다. 그렇게 정착한 새로운 나무집에서 미스터 폭스는 애써 외면해왔던 야생동물로서의 본능을 다시 풀어놓게 된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면서 자연스레 나의 개성보다는 무난함을 선택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잡은 채 살아가게 된다. 위험해서, 가능성이 높지 않아서, 사회와 어울리지 않아서, 또는 남들과는 다르거나 멋있지 않아서 고쳐야 했던, 또는 숨겨야 했던 나만의 습관이나 특성이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나라는 존재를 숨기면서까지 꼭 모든 사람들에게 멋진 존재일 필요는 없다. 우리는 각자 다른 장단점을 지니고 태어났으며, 누군가가 가진 장점을 나는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단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겉모습과 신체능력, 표정과 말투, 성격이 다르다 해도 우린 모두 소중하고 멋진 존재다.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시놉시스
12년 전 깨끗하게 손을 씻고, 가정적인 남편이자, 지역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Mr. 폭스. 큰맘 먹고 장만한 새집에서 즐기는 평온한 전원생활은 오히려 그의 잠자고 있던 야생 본능을 깨우고… 급기야 예전 신기의 절도 기술을 활용, 인간 마을 악질 농장주 3인방의 창고를 습격하고 만다. 이에 분노한 농장주들은 Mr. 폭스의 집을 송두리째 파괴해가며 그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고, Mr. 폭스와 가족은 물론 이웃들까지도 식량 하나 없는 지하 세계에 갇혀버리는 위험에 처한다. 이제 생존권을 되찾고 동물 사회 전체를 구하기 위한 Mr. 폭스의 판타스틱한 작전이 시작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여우의 본능을 따라 매일같이 도둑질을 하는 미스터 폭스. 그는 유연하고 재빠른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새들을 잡아챈다. 미스터 폭스의 도둑질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미시즈 폭스는 이 위험한 도둑질을 그만두길 바란다. 야생의 본능을 따르는 미스터 폭스와 본능대로 살기보단 이성적인 삶을 원하는 미시즈 폭스. 둘은 이내 아이를 갖게 되고, 마지막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면 ‘다른 삶’을 살기로 약속한다.
우리의 시간으로 2년, 여우력으로는 12년 후. 미스터 폭스는 도둑질을 그만두고 지역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아들 애쉬는 이제 막 사춘기라도 왔는지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으며 틱틱 말을 던져댄다.
미스터 폭스는 자신의 일상에 권태감을 느낀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여우굴, 본능을 따를 수 없는 현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있지만, 그는 자기 자신의 내면을 완전하게 채우지 못하고 있다. 미스터 폭스는 미시즈 폭스가 차려준 아침을 쓸어 담듯 입안에 집어넣는다. 하지만 빈속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미스터 폭스는 만족스럽지 못한 일상을 바꿀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어두운 굴이 아닌 남은 인생만이라도 좋은 풍경을 보고 살면 괜찮지 않을까? 그는 더 좋은 나무 위 풍경을 볼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말한다.
“난 누구지, 카일리?”
보기스, 번스, 빈이라는 못된 농장주들이 있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마을. 미스터 폭스는 새로운 집에서 행복한 전원생활을 즐긴다. 그리고 그는 이내 텅 비어버린 창고를 채우기 위해 도둑질을 시작하고, 새들과 사과주를 물고, 실어 나르며 행복감을 느낀다. 다시 도둑질을 시작하기 전, 미스터 폭스는 닭도 안무는 여우가 여우냐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묻는다. 야생동물로서의 본능을, 나의 본능을 숨기고 외면해야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짜 나의 삶이 맞는 걸까? 고민을 끝낸 그는 총 3단계의 계획을 짜 보기스, 번스, 빈의 농장을 탈탈 털어버린다. 그는 까만 강도 모자를 쓰는 순간, 가장 설레 보인다.
“저도 같은 재능이 있지 않아요?”
운동신경이 좋아 학교에서 가장 뛰어난 왝뱃 선수였던 미스터 폭스와 다르게 애쉬는 키도 작고 운동신경도 떨어진다. 애쉬는 자신이 멋진 아빠의 아들이니 같은 재능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사촌 크리스토퍼슨을 보며 열등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나보다 다이빙도 잘하고, 어른스럽게 명상도 하고, 키도 크고, 심지어 왝뱃 경기에서 나의 대타까지 하는 사촌이라니. 질투심이 차오른다. 그래도 아빠만은 나의 편이길 바랐는데, 미스터 폭스는 사과주 도둑질에 애쉬가 아닌 크리스토퍼슨을 데려간다. 어린 애쉬의 눈엔 아직 나도 받지 못한 강도 모자를 쓴 사촌의 모습이 한없이 얄밉다.
“나 자신에 대한 진실을 말할 뿐이야.”
미스터 폭스는 보기스, 번스, 빈의 농장을 터는데 ‘일단은’ 성공한다. 하지만 그 마을의 악당이라 불리는 세 농장주가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리가 없다. 세 사람은 총을 들고 미스터 폭스의 집에 찾아와 그의 꼬리를 빼앗아간다. 찰랑찰랑한 털을 가진 기다란 꼬리가 한순간에 떨어져 나가고, 미스터 폭스와 동물들은 농장주들을 피해 땅속으로 들어간다. 미시즈 폭스는 위험한 도둑질을 다시 시작한 미스터 폭스에게 묻는다.
“왜 거짓말했어요?”
미스터 폭스는 답한다.
“나 자신에 대한 진실을 말할 뿐이야.”
여우인 미스터 폭스에게 새를 무는 것은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도둑질이라기보단 본능이었다. 그는 그런 자신의 본능을 숨기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본능은 보기스, 번스, 빈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리게 된다. 자연을 다 파괴했지만 아직 여우는 잡지 못한 빈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부여잡고 미스터 폭스를 잡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땅을 파고, 폭탄을 설치하고, 크리스토퍼슨을 인질로 잡는다. 세 농장주를 약 올리며 이리저리 피해나가던 미스터 폭스는 크리스토퍼슨이 위험해지자 농장주들에게 ‘야생동물답게’ 맞서기로 결정한다.
“우리는 야생동물이야.”
함께하는 플랜 B. 미스터 폭스는 왕년의 왝뱃 실력을 뽐내며 불붙인 솔방울을 던지기 시작한다. 크리스토퍼슨을 구하기 위해 세운 플랜 B는 미스터 폭스와 애쉬, 카일리 그리고 모든 동물 친구들이 함께한다. 각 동물들은 빠르게 달리기, 그림 그리기, 리드하기 등 자신의 본능과 관련된 장점들을 말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계획에 가담한다. 토끼에게는 칼질보다는 달리기가, 여우에게는 신문 칼럼을 쓰는 것보다는 새의 목덜미를 무는 것이 더 잘 어울린다.
“하지만 다르기에 멋진 점도 있지 않겠니?”
애쉬는 작은 몸집으로 창살을 통과해 크리스토퍼슨을 구하는데 성공한다. 애쉬의 작은 몸집은 여태껏 다른 친구들에게 놀림거리였고, 몸집이 더 큰 크리스토퍼슨이 애쉬를 지켜주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애쉬만이 창살을 통과할 수 있었고, 애쉬는 총알을 피해 창고 문을 열 수 있을 만큼 재빠른 운동신경을 가진 여우였다. 미스터 폭스는 아들의 장점을 인정하며 별이 그려진 강도 모자를 씌워준다. 애쉬는 이제 양말로 만든 강도 모자가 아닌, 별이 그려진 가장 특별한 강도 모자를 쓰게 된다.
동물들은 힘을 모아 세 농장주와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땅굴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들은 그 안에서 나름의 마을을 구축하는데 성공했고, 주말이면 일찍 닫는 보기스, 번스, 빈의 마트를 점령한다. 이들이 세 농장주를 이길 수 있었던 건 각자가 가진 장점 덕분이었다. 빠르게 달려 주의를 분산시킨 동물들, 일목요연하게 작전을 지시하고 기록한 동물들. 하수관을 깨끗하게 청소한 어린 동물들. 모든 동물들이 각자의 장점을 한곳으로 모아 이뤄낸 성취였다. 생각해 보면 미스터, 미시즈 폭스가 마지막 도둑질을 하던 날 밤, 덫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도 여우가 가장 잘하는 일인 ‘땅굴 파기’ 덕분이었으니, 본능이 그들을 살린 것이라 봐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행운을 빌어요. 늑대”
플랜 B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미스터 폭스는 멀리 보이는 늑대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두발이 아닌 네발로 서서 자유를 느끼고 있는, 진정한 야생동물의 모습을 한 늑대. 미스터 폭스가 가장 그리워하는 야생 그 자체의 삶이었다. 미스터 폭스는 한참이나 늑대를 바라보고는 그에게 행운을 빌어주며 자리를 뜬다. 미스터 폭스는 세 농장주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고, 새로운 가족을 얻는다. 미스터 폭스는 앞으로 땅굴 마을에서 보기스, 번스, 빈의 마트를 털며 한 명의 가장으로 살아갈 것이다. 식량 걱정은 전보다 덜하겠지만, 인조 거위와 비둘기 새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사과가 있는 마트를 터는 것이 그의 행복을 완전하게 채워줄 수 있을까? 혹시 그가 마지막에 봤던 늑대처럼, 한없이 자유로운 야생 동물의 삶을 원하고 있지는 않을까? 궁금증이 생기기도 한다.
사회에 어울리는 누군가로 살아가기 위해 나 자신을 숨기거나 바꾸며 살아가고 있는 많은 어른들에게, 이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나 자신에 대한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그것이 멋진 장점이든, 남에게 보여주기 민망한 단점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가 가진 모든 장단점이 모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라는 존재를 만드는 것이니 진실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장단점을 가졌든, 우린 모두 소중한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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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의 음모를 말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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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스피라시 (Seaspiracy, 2021)
감독 : 알리 타브리지 │ 각본 : 킵 앤더슨
제작 : 영국, 다큐멘터리 │ 러닝타임 : 1시간 30분육식에 대해 맨 처음 생각해보게 된 건,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책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를 읽었을 때였다. 채식에 대한 이해가 풍성해진 요즘에 와서는 다소 뻔한 이야기다. 동물이 우리 식탁으로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으며,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때 나는, 잠시나마 내가 내 식습을 조절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으로 채식을 실천해보기도 했었다. 물론 얼마 가지 못했다.
그 이후로 채식을 해 본 기억은 없다. 살면서 영원히 고기·생선을 안 먹을 자신이 없었다. 물론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내가 먹는 동물들이 피를 뿜고 절단되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알면서도 고기를 끊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그게 나 스스로의 절제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씨스피라시>를 보고 난 이후, 나는 내가 품고 있던 생각 세 가지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첫째는, 인간이 동물을 먹는다는 것이 비단 동물보호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환경 문제로까지 연결된다는 점. 둘째는, 이런 문제를 알고도 채식을 하지 못하는 것이 단지 ‘개인의 절제력’ 문제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점. 셋째는, 우리가 채식을 이야기할 때 주로 포커싱하는 육지동물만큼이나 해양동물들도 고통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영화의 제목 ‘씨스피라시(Seaspiracy)’는 ‘바다(sea)’와 ‘음모(conspirac)’를 합쳐 만든 말이다. 바다의 음모. 우리가 오해하고 있던, 우리를 오해하게 만들었던 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고발성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사람은, 감독 ‘알리 타브리지’다. 알리는 어린 시절 돌고래와 바다를 좋아했고, 그래서 바다에 대한 작품을 만들려다가 우연히 이 ‘바다의 음모’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바다를 사랑하는 의식 있는 사람답게, 바다를 더럽히는 플라스틱을 줍고 다녔다. 이는 우리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태평양에 모여 섬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 빨대가 바다거북이의 콧구멍을 찔러 죽이고 있다는 사실들 말이다. 그래서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로 바꾸고 커피 매장에서 유리컵 사용량을 늘리면, 다시 바다가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우리 모두 힘쓰고 있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게 바로, 음모였던 것이다.
우선 이 다큐멘터리가, 감독 자신이 직면한 사실들에 너무 충격받은 나머지 흥분을 하여, 몇 가지 통계적 오류와 극적인 편집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는 걸 밝히고 싶다. 하지만 몇 가지 오류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대단히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분명 방향성 때문일 테다. ‘어류 섭취’와 ‘해양 보호’에 대해 우리가 까마득하게 모르던 뒷면이 이 다큐를 통해 처음 세상에 드러났으니까.
문제는, 빨대도 미세 플라스틱도 아니었다. 물론 그것들도 해양생태에 문제를 야기한다. 하지만 더 광범위하고 중요한 건 ‘상업적 어획’에서 오는 문제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이 먹는 고등어를 잡기 위해 바다사자나 돌고래가 그물에 함께 걸려 죽는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모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부수어획’에 의해 죽는 해양생물들이 엄청나다고 한다. 고등어를 잡기 위해 걸린 거북이, 상어, 돌고래, 바다사자 등등 대다수의 부수어획 생물들은, 원래 잡으려던 대상이 아님에도 그물에서 올려지면서 죽는다고 한다. A를 먹기 위해 B, C까지 포획하게 되는 것이 바로 어업의 실상이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충격적이었던 건, 바다를 오염시키는 주범이라고 알고 있던 플라스틱에 ‘어구’가 포함되어있다는 점이었다. 그물을 포함한 이 어구들은 모두 플라스틱이며, 매해 엄청난 양의 어구들이 바다에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바다거북이를 떠올리며 사용을 자제하는 플라스틱 빨대에 비해 상상도 할 수 없는 양이다. 하지만 그간 어디에서도 바다를 오염시키는 플라스틱의 상당수가 ‘어구’라는 것을 말해준 적 없었다. 바다의 음모가 아니면 무엇일까.
나는 단지 이 영화가, 인류가 생선을 너무 먹어대서 고갈되고 있다는 이야기쯤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어류 섭취가 생각보다 복잡한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놀랐다. 무분별한 포획으로 인한 어류 개체수 감소는 물론이고, 부수어획으로 걸려드는 다른 생물들의 불필요한 죽음, 바다에 버려지는 어마어마한 플라스틱 어구, 어류 감소로 인해 바다의 산소배출량이 줄어드는 점, 그게 지구의 온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까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필연적으로 이런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지구는 정말로 하나의 유기체이고, 우리 인류가 전적으로 지구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이 커다란 지구를 보호하는 데에 개개인에게 그 무거운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인류의 숫자는 자그마치 70억이다. 그 많은 숫자로 빚어진 인류는 이를 통제해 줄 시스템의 영향 아래에 있다. 위에서의 강력한 통제 없이, 개개인의 어류 섭취 중지를 요구하는 것은 과연 합리적인 방향일까. 지구가 고통받고 있으니 당장 채식해!라고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발상이 아닐까.
이 영화를 본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말을 몇 마디 인용해보겠다. 「해산물을 더 이상 소비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진정한 힘은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할 때 빛을 발합니다.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변화를 일으키려면 세계 여러 국가 정부에 압박을 넣어야 합니다. 바다를 위한 정책과 규제를 만들 수 있도록 말이죠. 바다에게는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채식주의자가 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
내 생각도 그렇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고등어 한 마리를 구워주고 싶었을 엄마, 부모님에게 참치회를 사드린 여느 자식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만이 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느낀다. 조금 더 조직적인 힘, 시스템의 강력한 변화 등을 통한 ‘위에서 아래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나는 인류가 고기와 생선의 단백질 섭취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종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온 세상 사람들이 지구를 위해 채식을 감행하는 날이 올 리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어류 섭취 제한에 대한 정치적 제도를 마련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월화수목금 살 수 있던 생선을 월수금만 살 수 있다면, 까다롭고 투명하게 포획된 어류만이 우리의 식탁에 오를 수 있다면, 어업종사자들이 플라스틱 어구를 모두 친환경 어구로 바꾸어야만 바다로 나갈 수 있다면. 툴툴대더라도 사람들은 점진적으로 그 궤도를 결국 따라가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그렇게 개고기 시장을 없앴고, 미세 플라스틱 제조를 금지했으며, 플라스틱 빨대와 컵 사용량을 줄여왔으니까.
환경도 채식도 페미니즘도 모두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무지만 탓해서는 아무것도 바뀔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운동은, 올바른 사회 시스템에 개인의 의식이 더해져야 완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바다를 지키는 일도 분명히 그 선상에서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그러나 이 거대한 문제들 속에서도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하나가 있다면, 그건 바로 ‘샥스핀’을 먹지 않는 것이다. 지느러미만 잘린 채 바다 밑을 동동 굴러다니다 죽어가는 상어의 모습을 검색해보시라. 우리가 참치는 당장 못 끊어도, 상어 지느러미를 소비하지 않는 것쯤이야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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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성보다는 감독의 고집이 더 중요했다
90년생들은 알 것이다. 정도에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지브리와 해리포터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그런 추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브리의 신작이 나온다는 사실은 설레이게 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지브리의 최근작들이 조금 주춤했던 적이 있긴 하지만 그 신작들도 거의 10년은 된 작품이니 새로운 지브리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그래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고들 하던데 그 팬심 하나로 영화를 보러 갔다. 보고나니 느껴지던 것은 영화가 정말 관객의 눈치를 볼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관객이 어떤 것을 보여줘야 좋아할까를 고민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예술혼과 철학을 담는 데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가는 관객의 몫이지만 관객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일념이 보여서 좋았다.
1. 인류애가 사라진 전쟁의 시기, 선택에 갈림길에 선 주인공
이 영화의 중요한 화두는 죽음이다. 죽음을 당한 사람도 있고, 죽음을 목도한 이들도 있고, 죽음을 방관한 이들도 있다. 전쟁의 시기에 들어서면, 여러가지의 방식으로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끝없이 생겨난다. 그런 시기를 살아내고 있는 마히토는 어느 날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괴기한 새의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면서 어떤 환상의 세계로 인도된다. 그 세계는 새 생명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니 태초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 같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된 세계인 것은 확실한데, 그 곳에서 마히토는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의 젊은 나날을 보게 된다. 미래에 화재로 죽게되는 그녀는 태초에 세계에서 불을 다루는 것을 보니 그녀의 삶에서 불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매개체인 것 같다. 이런 세계를 보고 있자면 인간의 운명은 어쩌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결국 만나게 되는 어떤 매개체는 존재하는 것 같다. 내 삶에서는 그것이 글인 것 같은데, 글 쓰기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일은 직업으로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글로 먹고 살고 있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아무말 대잔치 글을 써내고 있는 것을 보면 철자와는 뗄 수 없는 걸까 생각한다. 아니, 그냥 이과적 머리가 없는 인간의 변명일까.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의 운명은 결국 정해져 있는 걸까 싶다가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현재의 집중해야 한다고 다시 생각을 고쳐먹는다. 과거는 지나간 일이니 어떻게 할 수 없으나 현재, 미래는 결국 한 인간의 선택으로 결정되는데, 현재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나의 미래는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거지같은 과거에 얽매여 있을 것인지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마히토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과거에 매여 있었다면 어머니를 죽였던 전쟁의 광기를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구축할 수 있는, 자신만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그 세계에 남아 있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히토는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거지같은 현실이라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던 것 같다. 현실을 도피해 새로운 나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 보다는 현실에 부딪혀 보고 싶었던 것 같다고 이해했다.
2. 다소 허무한 결말
영화가 전체적으로 친절하진 않다. 결말에 현실 세계로 돌아온 마히토는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등등 모험을끝내고 돌아온 그의 모습을 끝으로 뒷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아 엥? 스럽긴 하다. 뭐, 돌아오고 바로 끝나는 게 어딨어 라고 생각했는데, 곱씹어보니 약간 구운몽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걸까. 꿈에서 깨어난 마히토의 삶은 관객이 알아서 상상하라는 뜻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마히토는 그 곳에서의 경험들을 점점 잊어갈 것이지만 그의 무의식 속에 깊게 자리해 결국 그의 인생의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어머니의 죽음을 덜 떠올리게 될 것이고 새엄마와의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새 생활에 적응해 나갈 것이다. 마치 불로 인해 죽게 되었어도 '널 낳았던 멋진 일'을 놓칠 수 없다는 마히토 엄마의 말을 곱씹고 있자면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살다보면 간헐적으로 좋은 일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준다. 나의 과거가 거지같았을 지언정 이 거지같음이 영원하지 않고, 뜻밖에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인생은 예상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오는 것이기에 한 번은 살아볼 만 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라고 내 나름의 결론을 내었다.
영화가 친절하지 않으면 보는 동안에는 당황을 하게 되는데, 오히려 곱씹게 되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나름의 정답을 찾으면 그걸로 영화 한 편 다 본 게 아닐까. 그러다보니 오히려 영화의 메시지가 정확하다 못해 관객을 가르치려고 하는 영화들이 더 비호감을 느껴질 때가 있다. 이번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은 관객에게 메시지를 정확하게 구현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여기저기 숨겨놓은 듯하다. 그리고 마무리조차 정확하게 짓지 않았다. 관객에게 불친절한 영화이긴 한데, 모든 해석의 자유를 관객에게 넘긴 것 같다. 혹자는 그걸 무책임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혹자는 어떻게든 의도를 찾아내고자 기를 쓸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답을 찾아 합리화를 할 수도 있다.
그 결론이 뭐든 미야자키 하야오는 관객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저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어떻게 보면 지독히도 예술가스러운 그의 기질이 느껴져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 계속 타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영화로 돈을 버는 사람이지만 뚝심이 없는 것만큼 멋없는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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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각의 에피소드가 모두 개성 있었던 일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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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가지 에피소드를 담은 일본 영화!<우연과 상상>
하니엘의 영화 미리 알기
스구미와 메이코는 절친이다. 메이코는 스구미에게 소개받은 남자에 대해 어떻냐고 물어본다. 카즈야키라는 훈훈한 남자이며 첫 만남에 성관계를 하려고 했는데 쉽게 돼질 않았다. 메이코는 카즈야키와 스구미의 관계에 대해서 계속 물어본다. 카즈야키라는 남자는 전 여자친구가 있고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 스구미는 음담패설을 한다. 서로의 이야기가 코드가 통했는지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이야기가 계속된다. 스구미가 집에 도착해 내리고 난 후에 메이코는 자신이 가는 목적지와 다른 원래 있었던 회사로 돌아가는데 그곳에는 회사의 사장이자 스구미의 남자인 카즈야키가 있었고 메이코는 계속해서 카즈야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데...
나오는 성적 매력을 가진 남자들에게 쉽게 몸을 내주는 여자이다. 그런 그녀에게 섹스 파트너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나오와 함께 TV를 보는데 자신의 대학교에서 불어(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세가와라는 교수가 쓴 소설로 상을 받는 것을 본다. 사실상 나오도 그 교수님을 아는지라 상을 받은 세가와 교수가 자신의 제자였던 나오의 남자에게 갑질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세가와 교수를 찾아가 미인계로 유혹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가정을 꾸리고 있었고 자식과 남편이 있었다. 세가와 교수 앞에서 나오는 책 중에 자신이 좋아했던 야한 구절을 자신의 목소리로 낭송을 하는데... 과연 나오에게는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걸까?
제논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은 편리한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끊게 되고 예전처럼 편지나 우편으로 소식을 전하게 된다. 나츠코는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가지만 존재감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는 동창이 있지만 나츠코는 쉽게 친해지지 못한다. 고등학교 동창회가 끝나고 나츠코는 미카 아야라는 자신과 유독 친했던 동창을 만나러 간다. 하지만 미카 아야라는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고 놀란다. 미카 아야와 닮은 여자의 집까지 찾아간 나츠코는 안절부절한다. 그러나 미카 아야와 닮은 여자와 나츠코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 둘은 과연 어떤 사이로 발전하게 될까?
난해했지만 코믹 요소도 있어서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였다.
하니엘의 주관적인 영화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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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의 감독 드니 빌뇌브 필모 모음_zip
여러분의 올 10월 기대작은 무엇인가요?
저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을 오랫동안 기다려왔습니다. :)
드니 빌뇌브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정말 화려하죠 !
그래서 가져왔습니다.
이달 20일 개봉하는 <듄>의 감독 드니 빌뇌브의 필모그래피를 보며 <듄>을 같이 기다려보아요!
[넷플릭스]
블레이드 러너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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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유골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었나.
진실을 찾으려는 경찰, 진실을 덮으려는 조직.
진실을 악용하려는 재계 거물의 쫓고 쫓기는 게임이 시작된다!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범죄,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ㅣ미국 ㅣ1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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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멕시코 마약 조직 소탕 작전에 참여하게 된 원칙주의 FBI 요원 메이서.
합동작전팀의 리더와 의문의 '사냥개'는 누구인가?
함정수사가 선을 넘자 갈등이 증폭된다.
프리즈너스
스릴러, 범죄, 드라마 ㅣ미국 ㅣ1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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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마을 ,두 부부의 딸이 사라졌다.
유력한 용의자를 범인이라고 믿는 아빠.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고 믿는 형사.
각각 다른 방식으로 추적을 시작한 두사람은,
마침내 세상을 충격에 빠트릴 진실과 마주치게 된다!
[왓챠]
컨택트
드라마, SF, 스릴러 ㅣ미국 ㅣ116분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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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비행 물체, 쉘이 세계 각지 상공에 등장했다.
웨버 대령은 언어학 박사 루이스와 과학자 이안을 통해 쉘에 접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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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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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아담은 우연히 본 영화에서
자신과 똑 닮은 배우를 발견하고 그를 찾아 나선다.
각자의 삶을 염탐하며 아담의 마음속에 욕심이 또아리튼다.
그을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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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opsis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가 남긴,
죽은 줄 알았던 생부와 형제를 찾아 자신의 편지를 전해달라는 유언을 위해
중동을 떠나 어머니의 과거와 마주한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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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디 액트> 공식 예고편
[왓챠 익스클루시브]
평생 휠체어에 앉아 튜브로 음식을 먹어온 집시.
이게 다 엄마의 과잉보호임을 알게 된 집시는 홀로서기를 계획하고,
그녀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방법을 찾아낸다.
"날 위해 엄마를 죽여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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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우주전쟁>
[2021년 4월 21일, 왓챠 공개]
‘그들은 왜 인류를 몰살했을까’
H. G. 웰스 소설 〈우주전쟁〉 원작!무자비한 외계 생명체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인류의 고군분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