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1-12 15:49:12
푸르른 청춘, 하이틴 드라마 추천작
명대사와 함께보는 추천작
스물다섯 스물하나
1998년, 시대에게 꿈을 빼앗긴 청춘들의 방황과 성장을 그린 청량 청춘 케미스트리
“시대는 충분히 네 꿈 뺏을 수 있어.
꿈 뿐만 아니라 돈도 뺏을 수 있고, 가족도 뺏을 수 있어.
그 세 개를 한꺼번에 다 빼앗기도 하고.
오늘 네 계획이 망한 건 내가 망쳐서가 아니야,
틀린 계획이었기 때문에 망한 거야. 다시 세워, 계획.”
그해 우리는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로 끝났어야 할 인연이 10년이 흘러
카메라 앞에 강제 소환 되어 펼쳐지는 청춘 다큐를 가장한 아찔한 로맨스 드라마
"사람들은 누구나 잊지 못하는 그 해가 있다고 해요
그 기억으로 모든 해를 살아갈 만큼 오래도록 소중한
그리고 우리에게 그 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라켓 소년단
배드민턴계의 아이돌을 꿈꾸는 라켓소년단의 소년체전 도전기이자,
땅끝마을 농촌에서 펼쳐지는 열여섯 소년소녀들의 레알 성장드라마
"항상 이길 순 없어. 때론 포기하는 것도 용기야. 진짜 용기. 근데,
그게 지금은 아니야. 오늘 결승은 무조건 이긴다."
반짝이는 워터멜론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코다. 소년이 수상한 악기점을 통해 낯선 공간에 불시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수상쩍은 청춘들과 함께 밴드 '워터멜론 슈가'를 결성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판타지 청춘물.
"은결아, 이제 그만 네 인생을 살아. 내 인생은 내가 어떻게든 살아낼게.
가끔은 너도 현재를 즐겨봐. 나처럼 사랑도 해 봐, 나처럼.
나 때문에, 가족 때문에 아까운 네 청춘 낭비하지 말고 반짝일 수 있을 때 반짝여봐. 야, 심장이 뛰는 일을 해 봐. 그런다고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
좋아하면 울리는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m 안에 들어오면 알람이 울리는 '좋알람' 어플이 개발되고, 알람을 통해서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세 남녀의 투명도 100% 로맨스를 그린 이야기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난 학교도 다니고 내 방도 있었어. 그렇게 따지면…나도 힘들어하면 안 되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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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 여성의 성장기
* <바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바비 (2023)
감독: 그레타 거윅
출연: 마고 로비, 라이언 고슬링, 아메리카 페레라, 케이트 맥키넌, 엠마 맥키, 시우 리무 등
장르: 드라마, 판타지, 코미디
상영시간: 114분
개봉일: 2023.07.19
전 세계 여자아이들의 클래식 장난감, '바비 인형'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설령 어릴 적 바비 인형을 갖고 논 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 이름을 모를 수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날씬하고, 수려한 외모를 가진 여성을 두고 만들어진지 60년도 넘은 이 오래된 인형의 이름을 붙이고 있으니까. 모두가 바비 인형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바비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저 마르고 예쁜 백인 금발 여성을 모델로 한 스테레오타입 인형 정도로만 여겨져 왔을 뿐 '바비'로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궁금함을 가진 사람은 아마 많지 않았을 것이다. 미디어 속 '바비'는 언제나 예쁘기만 하면 되는, 그런 존재로만 비쳤으니까.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의 성공으로 할리우드 차세대 여성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그레타 거윅' 감독. 그는 예쁜 인형의 전형으로 소비된 '바비'에 생명력을 불어넣기로 결정했다. 주연과 제작을 함께 맡은 배우 '마고 로비'와 함께 '바비 프로젝트'를 이끌며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Barbie is everything'. 사실 '바비인형'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젊은 여성을 모델 삼아 수많은 종류의 인형을 생산해 전 세계 여자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되어주었던 존재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착안한 '그레타 거윅' 감독은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불어넣어 핑크빛 낭만으로 가득 찬 '바비랜드'를 구현했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깃든 바비의 드림 하우스를 현실 공간에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것만으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긴 충분했다.
'바비랜드'를 소개하는 극의 초반부는 아기자기하고 황홀한 핑크빛 세상 그 자체다. 주인공 '바비(마고 로비)'를 비롯해 극에 등장한 수많은 '바비'와 '켄'들은 어딘가 핀트가 조금 나간 듯한 행동들로 놀이 속에 등장하는 장난감들처럼 그려지고, 실체 없는 모션만으로 이뤄진 행동들은 이곳이 현실과 분리된 판타지적 공간임을 인식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기보다는 '바비랜드'의 곳곳을 스크린에 최대한 예쁘게 펼쳐 놓아 시각적인 재미를 주는 정도에 그친다. 그럼에도 지루하거나 껍데기뿐인 장면이라는 감상을 유발하진 않는다. '바비'들의 흥겨운 댄스파티 같은 장면들은 세상이 평화롭고 완벽할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의 단편적이고 순수한 가치관을 보여주기에 아주 적절했다. 매일 그런 바비들처럼 산다면... 아마 '전형적 바비'처럼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일은 절대 없을 터이다.
하지만 동화는 딱 거기까지다. '바비랜드'를 벗어나 현실 세계로 넘어온 '바비'는 세상이 마냥 아름답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자신만의 단꿈 속에서 비로소 깨어난다. '바비'가 마주한 인간 세상의 첫인상은 무언가 뒤틀린 듯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비랜드'에서 여성은 말 그대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 대통령도, 대법관도, 물리학자도, 의사도 모두 여성인 '바비'였고, 남성인 '켄'은 그저 '켄'일뿐이었다. 현실 세계 역시 '바비'가 살고 있는 이상향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는 눈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에 당황을 금치 못한다. 여성차별을 해결하고, 페미니즘을 완벽하게 실현하는데 자신이 일조했다는 착각 속에 살았던 '바비'는 친구라 여겼던 여학생들에게 잔인한(?) 팩트 폭격을 맞고 충격에 휩싸이기까지 한다.
'바비'의 각성을 기점으로 극의 템포와 장르는 급격히 뒤바뀐다. 앞서 '바비'와 '켄'을 통해 남녀의 전복된 성 역할을 보여준 '바비랜드' 시퀀스만으로 본작이 페미니즘 성향을 띤 영화라는 걸 예감하긴 어렵지 않다. 주체적인 여성들과 그들에게 눈길조차 못 받는 엑스트라 남자들로 이뤄진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보편성을 탈피한 영화이니까. 하지만 '바비'가 현실 세계로 넘어온 직후부터 <바비>는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며 페미니즘 자체가 스토리의 핵심임을 또렷이 각인시킨다. 모든 여성들이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게 살고, 자신의 꿈을 맘껏 펼칠 수 있던 '바비랜드'와 달리 현실은 '바비'를 성적 대상화하는 남성들의 시선이 가득하고, 그들은 숨 쉬듯 추파를 던지며 당연하다는 듯 존중 없는 태도를 보인다. '바비랜드'에서 여성들이 차지했던 직업군들은 모두 남성들의 손아귀에 있고, 하물며 '바비인형'을 만든 마텔사의 임원들도 온통 남자뿐이다. 하지만 이들이 여성보다 뛰어나다는 이유로 고위직을 하나씩 차지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마텔 사의 임원들은 도망친 '바비' 한 명을 붙잡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고 멍청하게 그려지기까지 한다.
흥미로운 건 '켄'의 태도 변화다. 언제나 '바비' 옆에서 조역에 머무를 것만 같았던 그는 현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접한 가부장제에 신선한 매력을 느끼고, 주인공이 되려는 욕망을 표출한다. 급기야 그는 '바비랜드'를 마초적 정신과 구시대적 성차별이 만연한 '켄덤'으로 바꿔버리기까지 한다. 앞서 주체적인 여성들의 표상으로 여겨졌던 '바비'들이 덜떨어진 '켄'의 옆에서 커피를 타거나 치어리딩이나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개탄스러움에 이마를 퍽 짚게 된다. 특히 가부장제에 취한 '켄'들의 모습은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같잖은 이유로 서열 싸움을 벌이는 뮤지컬 신은 실소를 유발할 정도다. 이에 맞서는 '바비'들의 활약은 남성 중심 사회에 가려진 여성들의 기지와 단결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대립이 아닌 화합으로 뭉친 여성들은 영리한 전략으로 '바비랜드'를 원상복구시키는 데 성공한다. 결국 '바비'는 시대착오적인 가부장제에 사로잡힌 남성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허울뿐인 남성 중심 사회의 비효용성, 그리고 스스로가 성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착각하는 이들을 적나라하게 풍자한다. 특히 후반부 '글로리아(아메리카 페레라)'의 긴 독백 신은 페미니즘 교과서라 느껴질 정도로 극의 메시지를 강하게 주입하는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바비'는 남성은 원래 멍청하고, 여성은 우월하며 뛰어난 여성들이 이끄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장하는 영화일까. 각본상 그렇게 보일 만한 지점이 있긴 하지만 본작이 '성별 갈라치기'나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하는 작품이라는 데 동의하지는 않는다. '켄'의 허점이 남성을 비판하는 요소로 활용되었지만, '바비' 역시 마냥 완벽한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켄'이 '바비'에 대한 존중을 잊은 채 '켄덤'을 건설하려 했던 것처럼 과거 '바비'들 역시 '켄'의 기분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완벽하고 단단해 보였던 '바비'들의 논리는 '켄'의 허점 투성이인 가부장제가 들어서자마자 쉽게 무너졌고, '전형적 바비'는 누군가 구하러 올 때까지 가만히 주저앉아 있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수동적인 면을 지녔기도 하다. 특히 한 나라 안에서 권력 신장을 위해 성별 다툼을 벌이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한국의 현 사회와도 많이 닮았다. 급진적인 전개이긴 하지만 '바비'와 '켄'은 결국 화해를 한다. 투표를 통해 '바비랜드'로 다시 복구한 대신 '켄'의 역할도 존중할 것이라는 게 결론. 이를 통해 <바비>는 여성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게 아닌 여성을 억압하고, 괴롭혀 온 사회의 편견을 무너뜨리고, 모두가 화합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이야기를 주창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마고 로비'가 연기한 '전형적 바비'의 서사를 살펴보면, 이는 곧 여성들의 성장 과정을 상징하는 듯하다. 아무런 변화 없이 평화로운 나날들이 매일 같이 반복되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극 초반부의 '바비'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시선을 가진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 같다. 현실 세계에 나와 비로소 세상은 온갖 위험과 문제들, 불합리와 불평등이 숨 쉬듯 벌어지는 곳이란 걸 깨달은 '바비'는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조금씩 알아가는 십 대들을 닮았다. 그리고 '바비'의 발명가 '루스 핸들러'를 만나 자아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토로하는 장면은 마치 사회에 막 진출하려는 성인들의 내적 혼란을 대변하는 듯하다. 인간으로 살 것인지, 인형으로 살 것인지 깊은 고민과 함께 불안을 느끼는 '바비', '내가 그래도 될까'라며 확신을 못 가지는 '바비'. 그런 '바비'에게 마음 가는 대로 하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루스'. 캐릭터에 갇혀 주어진 역할대로만 살려고 했던 '바비'는 끝내 여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주체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바비'들이 '바비랜드'를 '켄'으로부터 되찾는 과정보다 '전형적 바비'로 보여준 한 여성의 성장기가 더 깊은 울림을 남겼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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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안전한, 슴슴한 누아르
경관의 피 (The Policeman's Lineage, 2021)
개봉일 : 2022.01.05.
감독 : 이규만
출연 : 조진웅, 최우식, 박희순, 권율, 박명훈, 이얼, 이현욱, 백현진
쿠키 영상 : 없음
관람 등급 : 15세
너무 안전한, 슴슴한 누아르
멋진 중년 배우의 표본인 조진웅 배우와 삐약삐약한 시절을 지나 <기생충>을 통해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은 최우식 배우, <마이네임>을 통해 “엄마, 나 아저씨 좋아해.”드립의 주인공이 된 박희순 배우. 그리고 권율, 박명훈, 이얼, 이현욱 배우 등 기대감이 절로 드는 배우진을 갖춘 누아르 영화 <경관의 피>.
일찍이 2020년 2월에 크랭크업이 됐으나, 코로나로 인한 극장의 침체기를 의식해서인지 꽤 오랜 시간 부유하고 있던 이야기가 2022년이 되어서야 제자리를 찾았다.
누아르의 불패 소재들을 모으고 모아
사사키 조의 동명 소설 [경관의 피]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3대째 경찰의 길을 걷고 있는 신입 경찰 민재가 흙탕물 속에서 뒹굴고 있는 광역수사대 반장 강윤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융통성 없다는 취급을 받으면서도 올바른 길을 추구하는 신입 경찰 민재는 최우식 배우가, 악인인지 선인인지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는 광수대 반장 강윤은 조진웅 배우가 맡았고, 민재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청문 담당 인호 역은 박희순 배우가 맡았다.
빠릿하고 올바른 신입 경찰, 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정체와 속을 알 수 없는 광수대 반장. 두 남자가 만들어내는 얕은 우정과 완전히 털어내기 힘든 불신. 그리고 강윤의 비밀을 알아오라는 언더커버 작전까지. 누아르의 불패 소재들을 잔뜩 가져와 섞어놓은 느낌이다.
기대감과 그 뒤에 남은 실망감
경관의 피 시놉시스와 주연 배우들의 이미지 합을 보자마자 문득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 떠올랐다. 언더커버 작전을 벌이는 대상은 사뭇 다르지만, 이와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경관의 피>는 나의 기대감을 모두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많은 관객들이 한국 영화의 아쉬운 점으로 꼽는 대사의 낮은 명확도. 그리고 컷이 바뀔 때마다 심하게 튀는 엠비언스와 날카로운 치찰음이 꽤 있었다. 거기에 캐릭터와 완벽히 부합하지 않는 배우의 이미지. 길을 정하지 못하고 헤매는 진행까지. 겉으로 보이는 깔은 좋았으나, 막상 마주해보니 단점이 명확히 다가오는 영화였다. 그중에서도 음향의 퀄리티가 정말 아쉬웠다.
더불어 조진웅, 최우식. 멋진 두 배우의 케미를 기대했으나 기대감이 너무 컸는지 적지 않은 실망감이 남았다. 민재와 강윤이 부딪히고 뒤섞이며 케미를 만들어냈다면 좋았을 텐데, 민재는 둥둥 떠있고 강윤이 그를 감싸 안기만 하는 느낌이었달까. 딱 막걸리 장면까지는 괜찮았는데 말이다.
실패하지 않을 명확하고 자극적인 소재들을 버무렸지만 <경관의 피>는 슴슴한 맛이 강하다. 성공할 확률이 높은, 속된 표현으로 ‘안전빵’ 같은 소재들을 사용했음에도, 이 이야기는 그저 같은 궤도를 머물다 못해 서서히 텐션을 잃어간다. 심장을 조이기 위해 열심히 음악의 힘을 빌려보지만 끓는 점에 가닿지 못한다. 배우의 매력을 제외하고 캐릭터 자체만의 매력도 크지 않다. 누군가는 어울리지 않고, 누군가는 너무 뻔하고, 누군가는 큰 사건의 중심으로서 응당 지녀야할 존재감을 부여받지 못하고 묻혀버린다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완전히 거친 누아르보다 슴슴한 맛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잔인하거나 성애적인 장면은 없고 욕조차도 거의 나오지 않는 이 진라면 같은 누아르를.
아쉬움 속에서 살아남은 것들
아쉬운 부분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히 살아남은 부분들이 있다. 조진웅 배우의 묵직한 연기와 올바른 수트핏. 간간이 등장하는 믿음직스러운 얼굴들이 터주는 작은 숨통. 그리고 완전하진 않았지만 새로운 연기 스타일을 보여준 최우식 배우. 개인적으로 그의 연기가 호에 가깝진 않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용기였다고 한마디 보태고 싶다. 최우식 배우가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라 믿으면서.
흑과 백. 그 경계에서
브로맨스, 3대째 이어져오는 경관의 피, 사명감과 가장 효과적인 범죄 소탕 방법 등 여러 주제들이 솟아오르고 그 안에서 가장 그럴싸한 물음은 하나뿐이다. ‘나쁜 놈들을 잡을 때, 넘어도 되는 선은 어디까지인가?’
독보적으로 유능하지만 어딘가 검게 느껴지는 강윤과 사수가 징계를 받게 될 것이 명확함에도 사실을 고하는 꿋꿋하고 하얀 신념을 가진 민재. 그리고 민재가 경찰의 꿈을 갖게 만든, 흐린 회색만을 남긴 그의 아버지 최동수
강윤은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고, 민재는 눈앞에 있는 현행범조차도 손대지 못한다. 완전한 흑과 백의 특징을 가진 강윤과 민재가 만나고, 두 사람은 흐린 회색빛을 띈 민재의 아버지, 동수에 대한 기억을 공유한다. 그리고 민재는 강윤의 강한 색에 물들기 시작한다.
선을 지키기 위해 악을 타도하는 방법의 수는 무궁무진하다. 무작정 사건에 뛰어들고, 우직하게 법을 지키는 일명 ‘깨끗한 방법’이 있고, 큰 사냥을 성공하기 위해 작은 끄나풀을 남겨두거나 흙탕물에 함께 뒹굴며 함정을 파는 등 처절하고 강력한 ‘지저분한 방법’도 있다.
경찰로서 ‘악을 타도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숙명인데, 이를 이루기 위해 깨끗함을 포기해도 되는 것인지, 민재는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혼란을 느낀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어두운 세계와 기밀로 부쳐졌던 진실이 커다란 공이 되어 민재에게 부딪힌다.
경관의 피 시놉시스
출처불명의 막대한 후원금을 받고 고급 빌라, 명품 수트, 외제차를 타며 범죄자들을 수사해온 광역수사대 반장 강윤(조진웅)의 팀에 어느 날 뼛속까지 원칙주의자인 신입 경찰 민재(최우식)가 투입된다. 강윤이 특별한 수사 방식을 오픈하며 점차 가까워진 두 사람이 함께 신종 마약 사건을 수사하던 중 강윤은 민재가 자신의 뒤를 파는 두더지, 즉 언더커버 경찰임을 알게 되고 민재는 강윤을 둘러싼 숨겨진 경찰 조직의 비밀을 마주하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서로 다른 색을 가진 강윤과 민재의 만남
범인을 꿇어앉혀놓고 사건의 관계자를 캐내기 위해 주먹을 휘두른 선배를 말리던 민재는 법원에 앉아 그의 폭력을 인정한다. 범인의 증언은 수사에 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민재는 폭력을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야 최민재, 너만 옳은 것 같지?” 분노 반, 비꼬는 마음 반으로 던진 질문에 민재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이게 올바른 선을 행하는 경찰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융통성이 없다고 생각될 만큼 올곧은 사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길을 따라 그들을 이해하고 싶어 이 길에 뛰어든 사람. 그게 바로 최민재다.
독보적으로 유능한 능력을 가진 강윤은 뒤에 무언가를 숨겨놓고 있는 광수대 반장이다. 혼자 해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크기의 조직들을 척척 잡아넣는 그는 비교적 몸집이 작은 악을 이용하는 경찰이다.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 선을 아슬히 넘나드는 그는 자신보다 더 나쁜 놈들을 다 잡겠다며 위험한 수사를 계속한다.
민재는 경찰의 뒤를 캐는 것은 불명예라며 언더커버 작전을 거절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인호가 내민 동수에 대한 기밀문서를 보고 마음을 바꾼다.
밝혀진 비밀과 새로운 길
기밀로 묻혀있었던 조직 연남회와 흐려진 물 안에서 살다 떠난 동수의 흔적을 발견한 민재는 고민에 빠진다. 조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스폰서를 모집하고,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주사기를 배에 꽂았던 동수. 강윤은 그가 키워낸 새까만 그림자다.
연남회의 시작은 새하얀 눈밭이었지만, 끝은 더럽게 녹은 눈만이 가득한 진흙 밭이었다. 윗선에서는 썩어버린 뿌리를 뒤흔드는 노란 이파리들을 털어내고 싶어 한다. 이들은 연남회와 동수의 사건 경위를 극비에 부치고 강윤의 꼬리를 밟기위해 민재를 이용하려 한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민재는 강윤과 함께 아버지가 걸었던 그 길을 그대로 밟기로 결심한다. 영화의 마지막, 출소한 강윤을 태우러 온 민재는 “저보다 더 나쁜 놈들을 모두 잡을 때까지 해보려고요”라고 말한다. 흑과 백, 명확히 나눠져있던 선안을 벗어나 그 위를 아슬하게 걸어가겠다는, 막무가내인 조금은 나쁜 놈이 되겠다는 이야기다.
착한 놈들 중에 가장 나쁜 놈
수사를 위해, 아주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 위장을 하고, 법의 울타리를 넘는 강윤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인물은 착한 놈들 중에 가장 나쁜 놈이라고. 근데 도저히 척결할 수 없는 나쁜 놈이라고. 옳고 그름을 명확히 나누기엔 너무도 애매한 회색 선 위에서 민재와 강윤이 나쁜 것들의 잔재를 훌훌 털어낼 수 있을지, 그대로 물들어버리진 않을지. 그들의 패기가 어디까지 뻗쳐나갈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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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7일의 자기 위안
세상을 등진 채 대학 온라인 강사로 살아가며 272kg의 거구가 된 찰리가 9년 만에 딸과 재회하며 쓰는 마지막 에세이를 통해 주인공의 다채로운 감정 변화를 보여주는 ‘더 레슬러’, ‘블랙 스완’, ‘마더!’에 이어 5년 만에 돌아온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신작 영화 더 웨일입니다. 동명 연극을 원작으로 하여,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 소수의 인물들이 전하는 심리 변화를 세밀하게 접근하는 이번 작품은 미디어를 통해 알려져 있듯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브렌든 프레이저가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할 만큼 인생 연기를 펼치며 깊은 여운을 전해줍니다. 유명 소설 모비딕을 길잡이 삼아 펼쳐지는 구원의 길, 누군가에는 뜻깊은 시간이 되어주리라 생각됩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내 인생에서 하나라도 잘한 일이 있는지 알아야겠어”
고도비만 때문에 죽어가는 대학 에세이 강사 찰리가 아내와 이혼 후 만나지 못했던 딸 엘리와 9년 만에 재회합니다. 딸에게 함께 시간을 보내달라 부탁하지만 과거 동성애인 때문에 자신을 버렸고 그동안 연락 한 번 없었던 그이기에 단번에 거절하죠. 하지만 이제껏 모아둔 거액의 재산을 물려준다고 하자, 엘리는 에세이 과제를 도와달라고 하며 만남을 이어가는데...
예고편│Trailer
원제: The Whale│감독·각본: 대런 아로노프스키
각본: 사무엘 D. 헌터│원작: 사무엘 D. 헌터의 동명 연극
출연진: 브렌든 프레이저, 세이디 싱크, 홍 차우, 타이 심킨스, 사만다 모튼 외 多
장르: 드라마│상영 시간: 117분
국가: 미국│등급: 15세 관람가
평점: 평론가 6.57, 왓챠피디아 예상 4.1, 로튼토마토 신선도 65% 팝콘 91%, IMDB 7.8, 메타 스코어 60점
수입: 그린나래미디어(주)│배급: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수상 내역: 38회 산타바바라 국제영화제(아메리칸 리비에라상, 버라이어티 상), 28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남우주연상), 45회 밀 밸리 영화제(관객상- 미국장편), 29회 미국 배우 조합상(영화부문 남우주연상)
개봉일: 2023년 3월 1일
“심플한 서사의 여백”
기본적인 서사가 대런 감독의 다른 작품에 비해 굉장히 심플해서 언뜻 보면 아버지와 딸의 감동적인 화해 무드처럼 보이지만, 여러 가지 여지를 남기며 마지막에 다가갑니다. 주인공 찰리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한정된 인물들 모두가 각자 스스로 위안을 삼기에 역시나 이야기의 핵심은 관객 각자가 생각하게 되죠. 연극이 원작이라 그런지 집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가며 몰입도를 높여주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고 이러한 장점들은 엔딩의 다층적 해석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도록 이끌어줍니다. 그렇게 이야기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후회하고 불안해하며 또 다른 선택을 통해 감당해야 할 결과로 나아가지만, 완전히 희망적이라 볼 수 없는 미묘한 감정선에 걸쳐진 채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으로 내딛는 그의 마지막 7일을 묵묵히 지켜보게 해줍니다.
“브렌드 프레이저의 진정성”
이러한 1인 극에 가까운 설정은 이미 많은 수상은 물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른 브렌든 프레이저의 연기력으로 더욱 빛나고 보는 내내 긴장감을 유지시킵니다. 전형적인 미국 마초 스타일의 가벼운 쾌남 캐릭터를 주로 맡아서 우리에겐 ‘미이라’ 시리즈로 친숙한 1990년대와 2000년대의 할리우드 스타, 그는 찰리를 맡아 자신이 가진 겪었던 모든 감정들을 쏟아낸 듯합니다. 272kg라는 힘든 특수 분장을 거쳐 탄생한 인물의 시시각각 변화하는 감정들은 관객들을 숨죽이게 만들고, 딸 엘리를 비롯해 주변인들에게 내뱉는 한 마디, 한마디는 완전히 재기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배우 본인의 진언처럼 폭발력을 보여줍니다. 마치 굴곡진 인생에서 값지게 얻은 무언가를 전하는 브렌드 프레이저의 진정성이야말로 작품성과 연출력을 떠나 이 작품을 봐야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어준 듯합니다.
“마지막 순간의 구원”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인지하고 자신이 했던 수많은 선택의 후회를 떠올리며 마음의 짐을 덜고자 남은 7일의 기간 동안 스스로 미안함을 덜어내는 과정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자기만족에 급급한 찰리의 묘사가 불쾌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모두에게 미안하다 말하는 그의 옆에 있는 리즈, 토마스, 메리, 엘리 또한 각자의 만족을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어 무조건 부정적으로 그려진 건 아니라 여겨집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잠시라도 행복을 느끼겠다는 자기 위안과 생을 이어가겠단 의지보다 스스로 구원받고픈 이기적인 마음이 그저 더 클 뿐이었던 것입니다. 삶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주마등처럼 스치는 어릴 적 엘리와의 행복한 시간에 놓인 아버지로서 자신을 떠올리 듯, 그렇게 찰리는 최소한 죽음 앞에게서는 만족스러운 자기 구원의 위안을 얻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런 감독의 작품 치고는 대중적이지만, 그럼에도 생각할 부분은 많아서 관객 개개인의 취향을 많이 탈 것 같네요. :)
한 줄 평 : 스스로의 위안으로 얻은 최소한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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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새
벌새
1994년에 나는 30대 초반이었다. 다행히 2년 전, 산본신도시에 작은 아파트를 분양 받아 입주한 것이 30년 동안 살아온 보람이자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산동네 빈민촌에서 월세, 전세를 전전하다 어렵게 집을 마련했으니 큰 짐은 덜었지만, 나는 여전히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프리랜서 활동을 하며 출판사, 잡지사와 계약을 맺고 이러저러한 책을 만들고 있었는데, 수입은 적었고, 그나마 불규칙하게 발생하는 수입으로 생활은 어려웠다. 마침 이 무렵 써 놓은 일기가 있어서 찾아봤더니, 이 영화에 나오는 사건들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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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6월 18일 토요일
아침에 월드컵 축구 한국과 스페인의 경기가 있었다. 2대 2로 비긴 경기. 나라가 온통 월드컵 열풍에 휩싸여 있다.
1994년 7월 9일 토요일
김일성 주석 사망.
1994년 12월 19일 월요일
연말이 되면서 나날이 바쁘기만 했다. 주위를 돌아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지만 집에서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에는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 텔레비전, 신문, 잡지를 보면서 그때마다 떠오르는 숫한 상념들이 나의 감정을 흔들었다. 이제 일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지만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우리의 삶은 연속되고 있다. 오늘은 사무실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글을 쓴다. 정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짧은 글이라도 내 마음을 정리하고 깊은 생각 속에서 나온 글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기능적인 글만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기저기 걸리고 널린 인간관계 속에서 사람은 때로 위안을 얻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이제 서서히 1994년을 정리할 때도 되었다. 꼭 정리를 하지 않아도 힘겹게 달려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숨을 고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신문의 활자를 키운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하늘은 온통 먹구름으로 덮여있다. 가끔 그 속으로 나타나는 햇살은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대형 사건과 사고가 줄을 이어 터지고 김영삼 정권은 무능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 나라의 정치는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만큼 저질이다.
사무실을 얻기는 8월부터 얻었지만 출근은 9월부터 했다. 사무실 출근이 하루를 규칙성있게 하는 면이 있어서 좋다. 매달 지불되는 비용이 결코 적지 않지만 그것은 일을 하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오지 않았던가. 사무실 유지는 그런대로 잘 되고 있는 편이다. 함께 지내고 있는 이00 씨와 00희 씨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조금 성격의 차이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약간의 양보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도 많고 참여했다 떨어져나오는 모임도 수없이 많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반복은 줄어들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른글을 정리하고 새해에는 사람을 정리하고 맺는 관계를 보다 깔끔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정리를 잘 하는 편이지만 조금이라도 걸리고 널린 관계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힘들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언제나 지켜온 원칙이 '양보다 질'이었다. 친구는 적게 사귀되 깊이 사귄다. 무릇 사람의 관계란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과의 관계도 잘 정리를 해야 하겠지만 일과 관계된 것도 잘 정리를 해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 쓰는 실용서 단행본 작업을 그만둘 수는 없지만 빨리 소설로 돌아서야 한다. 결국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다.
언제나 넉넉한 마음으로 살고 싶은 것은 마음뿐일까. 인간이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복잡하고 열악한 도시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마음 속에 생각하고 떠오르는 것들이 거의 모두 작고, 말초적이고, 표피적인 내용들 뿐이다. 출퇴근을 하면서 보게 되는 그 많은 사람들의 모습, 그들의 행동이 나의 감정에 분노와 짜증을 일으킨다. 사람들, 거의 모든 사람들은 교양이 없고 무식하며 질이 낮다. 또스또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꼴리니꼬프'는 이런 주장으로 전당포 노파와 딸을 도끼로 살해한다. 인간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정말 인간은 교양이 있는 사람과 무지한 사람으로 갈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은 이론적으로 이미 나와있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존재는 경제적 토대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으며 인간의 질적인 수준은 결국 경제문제에 달려있다고 본다. 계급이 없고 착취가 없다면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교양있게 살아갈 수 있다. 나 역시 이런 주장을 믿고 있다. 인간은 처음부터 저열하거나 무지하거나 무례하지는 않다. 다만 사회의 제도, 교육, 빈부의 격차, 권력의 억압, 착취, 계급제도 등 각가지 모순들이 인간들을 기형으로 만들어 갈 뿐이다.
현상은 왜곡된 인간성의 발현일 뿐이다. 이기적인 인간, 조잡스러운 인간, 한심한 인간, 사악한 인간, 더러운 인간, 비참한 인간, 음흉한 인간, 불쌍한 인간, 교활한 인간 등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인간들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독버섯으로 키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조건 희생자인가.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 품성은 어떤 사회에서든 존중되어야 하고 지켜져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본 품성이란 결국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할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품성의 미덕은 분명 있다. 권력을 소수가 장악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에 대항하는 주체는 결국 민중일 수 밖에 없고 그 민중은 권력자와 자본가를 대상으로 언제나 대립의 관계에 있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민중의 단결되지 못한 현실을 이용하여 수없이 많은 이해관계를 만들고 서로 경쟁하도록 만든다. 산업예비군, 실업율, 대학의 경쟁, 학력중시, 심지어는 지방색까지 만들어서 가능하면 민중들의 단결이 안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구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극도의 이기주의가 번지는 것은 자본주의 제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경쟁을 최우선으로 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가와 권력자들은 민중의 삶을 피폐하고 메마르게 하기 위한 여러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
이러한 제도는 국가의 경제와 깊은 관계가 있다. 50년대와 60년대는 국가 전체가 경제를 일으키기 위한 목표를 설정하여 모든 노력을 경제부흥에 쏟았다. 경제발전 속에서 최소한의 인권이나 복지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죽어가야 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은 그들이 단지 이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80년대 이후, 경제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게 되자 자본가와 권력자는 민중을 계속 파편화하고 우매하게 묶어두기 위해 '성'과 '스포츠'를 도입했다. 초기의 권력도 파쇼이고 80년대의 권력도 파쇼임에는 갖지만 경제의 발전정도에 따라 민중을 분열시키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노동악법과 국가보안법 등 탄압과 착취를 강제하는 채찍은 언제나 동일했다.
'개발독재'로 불려진 70년대 파쇼의 시절을 지나 대외 수출이 호황을 맞이하던 80년대와 90년까지 경제의 토대는 성장했다. 대중이 누리는 물질의 풍요는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이었고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한 증거이다. 하지만 이들도 자신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다. 민중의 기본 삶은 조금 나아졌지만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 소외는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생활이 나아진 만큼 씀씀이도 커지고 경제의 개념이 소비 위주로 바뀌면서 생활 문화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일정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시간을 노동에 바쳐야 한다. 직장과 직위,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과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며 갑작스러운 변수, 이를테면 질병, 사고와 같은 변수가 생기면 사회에서 도태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회의 복지제도가 기본으로 지원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는 분명한 일이다. 또한 일정한 수입은 소비문화를 따라가기에도 벅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범죄의 유혹을 받고 있다. 공무원의 범죄가 전국에서 발생하는 현상은 그래서 너무 당연한 것이다. 공무원 뿐 아니라 몫돈을 만질 수 있는 일이라면 직업과 나이에 관계없이 한탕주의에 빠져든다. 마약의 밀매, 매춘, 인신매매, 성을 파는 모든 서비스업 등이 그것을 증명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격은 경제력으로 대체된다. 아파트 평수와 고급 승용차, 월 수입 등이 지위와 권위를 대신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 무차별하고 단순한 비교로 심한 박탈과 소외를 느낀다. 경쟁을 부추기고 인간성을 물질로 대신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쟁하지 않고 평등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근본에서 잘못된 제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조차 모르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마저도 무시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이다. 나와 우리 가족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무시되고 필요없고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가족 이기주의는 자본주의가 만든 가장 성공한 분열방법이다. 사회에 범죄가 극성이고 온갖 사고, 사건, 위험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가족끼리만 다정하고 평화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단위는 경제단위의 중심이기도 하다. 부(물질)의 승계가 가부장제도로 이어지기 때문에 가족은 자본가가 대대로 이어받을 수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이런 경제단위는 소비문화의 주체이기도 하다. 가족으로 연결되는 수많은 소비문화가 대중을 유혹하고 빈부의 격차를 더욱 확실하게 확인하도록 만들고 있다. 가족(주로 가부장)은 고급 주택, 아파트를 구입하고 외제 승용차를 사고, 외제 의류를 철마다 사 입고, 고급 백화점에서 날마다 쇼핑을 하고 자녀를 외국에 유학시킨다. 한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보다 결국 자본가이겠지만 가부장의 존재가 가족을 대상으로 이러한 소비를 촉진시키는 것은 수없이 많은 다른 가족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족은 없다. 엄격히 말하면 가족이 아니라 언제 깨질지 모르는 최소한의 경제단위일 뿐이다. 가족은 부모와 피를 이어받은 자식으로 구성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혈연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쓸모없는가는 단적인 몇 개의 예만 들어도 충분하다. 비록 자본가라 할지라도 그들이 풍요롭고 넉넉한 물질생활을 누리는 것이 가족을 유지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이미 고유한 의미에서 혈연공동체나 평등한 관계의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먹고 살기 위해 아버지, 어머니, 자식이 아침이면 뿔뿔히 흩어져 공장이나 일터로 나갔다가 저녁에 잠을 자기 위해 들어오는 가정을 어떻게 가족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 돈이 없어 생활이 궁핍하면 가족은 해체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란 '굶어죽을 자유'밖에 없다고 마르크스는 말했지만 가족의 모습 역시 그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가족의 문제는 가족 구성원의 성격, 이해관계, 희망, 욕심 등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자본주의 제도, 경쟁, 수입원 등 경제적 이해관계가 더 중요하다. 부모가 넉넉한 수입이 없다면 자녀는 제도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제도교육을 일정하게 받지 못하면 좋은 취직자리를 얻을 수 없으며 이것은 결국 수입의 한계에 부닥치게 되는 것이다.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이런 한계를 극복하지만 거의 모든 민중들은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가난한 가족은 가난함때문에 가족이 갖는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하고 살며 서로에게 부담이 된다. 단칸방에서 서너 식구가 끼어 자야하는 주거생활이 그렇고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일상생활이 그렇다. 여기에 가족 구성원이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하면 그 가족은 거의 궤멸에 이른다. 당장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치료비며 생활비 등 들어가야 할 돈은 평소보다 몇 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다른 대책이 없다면 빚을 짊어져야 하고 이 빚은 그 가족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올가미가 된다.
가족이 단단히 결속을 하기란 쉽지 않다. 이렇게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고 살아가야 할 일이 막막해지면 빠르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어느 사회에서도 빠르고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은 없다. 그렇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결국 편법과 불법이 존재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 범죄가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며 여성은 매춘을 한다. 3차 산업의 발달은 제조업 중심의 경제에서 서비스업 중심의 경제로 옮겨간다는 것을 뜻한다. 서비스 산업은 성을 상품화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여기에 투여되는 여성의 인력은 언제나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유흥업이나 각종 서비스업에는 매매춘이 허용(?)되고 있다. 젊은 여성들은 자신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경제적인 이유때문에 건전한 가족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오게 된다. 여성의 경우 매매춘을 통해 인간성의 황폐화와 경제적 이익을 바꾸게 되고 남성은 극심한 노동이나 범죄의 방법을 찾게 된다. 가족은 결국 경제적인 이유로 흩어지게 되며 더 이상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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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은희의 가족에게 변곡점이 된다. 은희 개인에게도 가족의 문제와 함께 영지 선생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은희를 둘러싼 세계는 무겁고 답답하다. 떡집을 운영하는 부모는 일하느라 바쁘고, 학교는 성적 위주로 학생을 평가하고, 어디 한 곳 편하게 마음을 내려 놓을 곳이 없다.
부모는 아들 대훈이 학교 전교회장을 하고, 서울대학교를 들어가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은희와 은희의 언니 수희에게는 살뜰하지 않다. 수희는 남자 친구와 어울리느라 학원에 가지 않고,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소리나 지른다.
가족이라고 해도 다섯 명 모두 자기 삶을 사느라 바쁘고, 함께 모이는 시간은 아침 밥먹을 때 잠깐이다. 은희가 '왜 우리 가족은 모래알 같을까'라고 묻는 마음은, 그 이유를 모르지 않기 때문에 더 서글프다.
은희는 한문 학원에서 만난 영지 선생님을 보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다. 오빠가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대학을 다니던 은지 선생님은 다른 어른들이 하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학교가 재미있니, 성적은, 어느 대학 가야지, 같은 뻔하고 지겨운 질문이 아닌, 좋아하는 게 뭐지, 왜 좋아하지, 요즘 무슨 생각해, 같은 자아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질문을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른, 청소년 할 것 없이 모두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의 유일하게 영지 선생만이 세계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고, 은희가 놓여 있는 상황을 공감하고 있는 인물이다. 영지 선생은 서울대학교를 휴학한 상태인데, 그가 부른 노래, 그의 책장에 있던 책으로 보아 '운동권 학생'으로 보이고, 어쩌면 수배 당한 상태였을 수 있다.
은희의 부모는 90년대 한국 부모의 스테레오 타입이다. 아버지는 가부장적 태도를 보이고, 엄마는 가게 일과 집안 일을 하느라 남편, 아이는 물론 자기 자신을 돌볼 여유조차 없는 사람이다. 언니는 학업보다 남자 친구 만나며 노는데 신경을 쓰고, 오빠는 부모의 기대로 심한 부담을 진 채 학교를 다닌다. 은희는 아직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는 어린 영혼이지만,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는 관찰자 역할을 한다. 그의 세계는 아직 좁고, 부모, 학교, 학원 그리고 친구들이 세계의 전부인데, 은희가 세계를 깨고 나오게 되는 계기가 영지 선생의 죽음이다.
은희는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은희가 살고 있는 대치동은 지금이나 그때나 강남의 중심이고, 돈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여서 은희는 가난한 집 아이였고, 공부도 탁월하게 잘 하지 못하는 아이라 친구들에게 인기가 없다.
한국 자본주의 욕망이 응집된 강남에서 제한 없는 경쟁을 통해 사회의 기득권으로 진입하려는 부모와 그 부모의 욕망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 학생들의 삶은 그 자체로 지옥이지만, 이런 지옥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 또한 한국 사회의 특성이다.
영화에서 은희를 비롯해 왼손을 쓰는 인물이 여럿 있다. 주인공이 왼손을 쓰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지만, 왼손잡이는 소수라는 점에서, 이들이 이 사회의 소수에 해당하는 인물이라는 걸 드러낸다. 은희와 그의 가족은 강남에서 오히려 소수에 속하고, 은희는 학교에서 소수이며, 영지 선생도 한국사회에서 소수에 속하는 인물이다. 은희와 영지 선생이 여성이라는 점 또한 사회적 소수이자 약자라는 점에서 이들이 바라보는 사회는 폭력적이다.
이렇게 영화는 1994년의 한국사회 속에서, 중학생 은희가 바라보는 세상과 만나는 사람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은희의 모습을 보여준다. 악한 사람은 없지만, 악한 행동을 하고, 선한 사람도 때론 악한 모습을 보이는 것, 인간의 다면성은 의도가 필요 없는 삶 그 자체에서 나오는 모습이며, 은희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가부장적이고 때로 폭력을 휘두르는 은희의 아버지도 은희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울음을 터뜨리고, 성수대교가 붕괴되었을 때, 은희를 때리던 오빠 대훈은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수희를 보고 눈물을 터뜨린다. 이들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기득권을 공기처럼 가지고 살아가지만, 자신들이 휘두르는 폭력의 실체와 본질을 알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같은 해에 개봉한 영화 '기생충'이 한국사회의 계급성을 폭력적으로 드러낸 영화라면, 이 영화는 그 폭력성을 내재한 채, 체제의 무게에 짓눌린 채 살아가는 중하층 가족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 '계급성'을 드러내는 장면은 두 장면이 나오는데, 떡집에서 강남 '사모님'이 은희 아버지가 만드는 떡이 맛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에 반박했다는 은희 아버지의 말과, 은희가 남자 친구와 시완과 함께 있을 때, 시완의 엄마가 나타나 시완을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장면이 그것이다. 시완의 아버지가 의사라는 사실은 딱 한 대사에서 나타나고, 그것이 부르주아와 중하층 상인의 가족을 가르는 선으로 드러난다.
어떻든, 은희의 가족은 '생존'한 가족이다. 수희가 성수대교 붕괴에서 살아온 것도 생존이지만, 강남에서 떡집을 하며 어렵게 세 명의 아이를 가르치는 부모의 열성 덕으로 은희, 수희, 대훈 모두 살아남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은희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1995년에는 강남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한다. 성수대교 붕괴보다 이 사건은 은희에게 더욱 직접적 충격과 트라우마를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의 친구들이 모두 강남에 살고 있고, 삼풍백화점에 갔을 확률이 높았을테니, 가능성이 높은 추론이다.
더구나 은희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1997년 말에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고, 수많은 사람이 파산하게 되는데, 이 가족이 과연 그때도 무사히 생존하게 될 지는 모를 일이다. 이렇게 1994년 이후, 한국, 특히 강남에 불어닥치는 사고와 불행으로 은희의 삶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영화는 1994년, 은희의 수학여행에서 끝나지만, 영지 선생의 죽음으로 은희는 조금씩 변할 것으로 보인다. 평생 마음에 품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내면은 꺼지지 않는 불을 간직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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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과 시선의 방향
SYNOPSIS.
1972년 뮌헨, 올림픽 생중계에 도전한 ABC 방송국 스포츠팀은 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이 선수촌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이고 있음을 알고 이를 생중계로 보도한다. 솟구치는 시청률과 9억 명의 시청자까지,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단독 특종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그들은 테러리스트들 역시 자신들의 방송을 보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올림픽 사상 초유의 테러 인질극 생중계! 방송을 멈출 것인가, 계속할 것인가!
POINT.
✔️ 실화 기반이지만, 1972년 뮌헨 올림픽 참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전개됩니다.
✔️ 그러나 잔인한 장면은 들어있지 않아요. 저는 이 지점이 좋았습니다.
✔️ 속도감 있는 전개 안에서, 방송국에서 일하는 언론인들의 책임감과 고민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 더불어 언론인들의 전문가다운 면모로 척척 손발이 맞는 장면들도 재미있었어요.
✔️ 그 장면들을 뒷받침하는 것은 다양한 배우들의 협연입니다. <퍼스트 카우>, <쇼잉 업>에서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존 마가로, <티처스 라운지>에서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준 레오니 베네쉬가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 포스터만 보면 <스포트라이트>보다 10년 앞서 나온 영화처럼 보여요... 하지만 영화는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영화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버거워하고, 영화라 해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테러를 기다리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본 건 존 마가로의 얼굴이 궁금해서였다. <퍼스트 카우>에서 소처럼 순박한 눈망울을 보여주었고, <쇼잉 업>에서 불퉁하게 세상과 불화하는 동생의 표정을 보여주었던 그가, 이번에는 어떤 얼굴을 보여줄까. 그리고 나는 존 마가로를 못 알아볼 뻔 했다. 아니 존 마가로를 궁금해 할 겨를이 없었다. 빠른 전개 안에서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 하느라.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영화관에 앉았지만, 극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언론의 생중계 현장을 담은 영화이다 보니 그들의 대화와 상황 설명을 통해 친절하게 정보가 전달되고, 방송을 만드는 과정을 척척 담아내어 그 설명이 늘어지는 법도 없다. LA 비평가 협회상에서 편집상을 수상한 이유를 알 것 같은 대목이다.
전개가 빠른 영화의 스토리라인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보고 나서 마음에 남은 생각들만 정리해 보고 싶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마음
영화 초반에 인물들이 서로의 국적을 인식하고 있음이 대사에서 수 차례 드러난다. 지네딘 수알렘이 연기한 캐릭터 자크의 경우, 자크라는 이름보다 프랑스인이라는 국적으로 더 많이 불리고 인지될 만큼 국적이 강조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당시의 상황을 조망한다. 독일에 대한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 세계, 세계에 대한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 독일. 앙금은 남아있지만 이제 가장 평화적이고 우호적인 이벤트가 펼쳐져야 한다. 국적에 따라 다른 입장은 개인의 감정에도 영향을 준다. 평화와 우호를 말하는 행사에서조차 국적을 고려하여 방영 우선순위를 결정할 만큼.
우리 각자의 자리는 과연 각자만의 자리인가. 독일과 프랑스, 미국의 관계 뿐 아니라 영화의 배경이 되는 테러 사건 또한 국적에 따라 다른 입장과 감정이 뒤얽힌 사건이다. 테러리즘 사건 하나만 놓고 가타부타 판단하기엔 너무 많은 사건과 역사가 줄줄이 얽혀 있으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맥마흔 선언과 밸푸어 선언의 발화자였던 영국을 비롯해 여기 얽힌 국가들이 더 많이 있다.
과거는 온전하게 과거로만 존재하지 못하고, 타자는 철저하게 타자로만 존재하지 못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무언가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으로 본다는 것은 가능한가? 언론인이라면 다르게 답할 수 있겠지만... 시민인 나로서는 그저 연결되어 있는 서로를 감각하며 나의 자리를 확인하고 내 시각이 어느 방향에 서 있는지를 좀더 명확히 아는 것, 그리고 그만큼을 감안하는 것, 어쩌면 그게 최선의 균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 밖에서 조심스러워지는 마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에, 영화를 보는 동안도 영화 바깥이 궁금했다. 그리고 보는 동안 혹시라도 이스라엘의 '피해자성'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올까봐 꽤나 긴장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일 먼저 감독과 제작진이 유대인인지 다급하게 찾아보게 될까봐 긴장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에. 영화의 안과 밖 또한 예외가 아니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인질이 석방되고 군이 철수하고 있다. 그동안 사람을 말살할 것처럼 쏟아붓던 공격이 멈춘 것은 참으로 다행이지만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 지구를 "장악"해서 "재개발"하곘다는 소리를 하고 있고, 휴전 협상 다음 단계는 아직 불투명하다.
이런 세상에서 팔레스타인 과격 단체가 이스라엘 대표단을 인질로 잡아 벌인 테러극을 담은 영화라면, 이 영화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어떻게 그리는지 민감하게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을 전혀 담지 않았고, 테러 사건의 전개는 전화와 전보를 비롯한 소식으로 전달되어 대사로 공유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본인 할 일을 하는 언론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주력한 영화다운 선택이다.
영화 속 언론인들은 이제 막 도입된 위성 생중계라는 신기술과, 자신들이 정통한 각종 기술을 펼쳐 보인다. 옛날 텔레비전에는 저런 식으로 자막을 깔았던 거구나, 사진을 저런 식으로 확대했구나, 스튜디오 연결은 저렇게 하는구나... 같은 생각들을 하며 본 그들의 능숙한 손놀림 뒤에는, 지금 어디와 연결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 소식을 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그때그때 선택해야 하는 언론인들의 본능이 있다. 역시나, 영화 밖에서 조심스러워지는 마음이다.
제작자의 마음과 시청자의 마음
능숙하게 자기 일을 하면서 그때그때 판단을 내리는 언론인들의 모습은, 전문가처럼 보여 한편으로는 멋있으면서도... 동시에 징그럽다. 선택을 내릴 때 그들은 인간성을 우선순위에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선택이 미칠 파장을, 그 경우의 수를 일일이 계산한다면 방송은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이 영화처럼 급박하게 굴러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뉴스 보도국이 아니라 스포츠국이지만 지금 상황을 곧바로 담을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라는 사명감과, 방송 자체의 완성도에 대한 욕심과, 갑작스럽게 굴러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따라가는 데 분주한 마음은 이리저리 뒤엉킨다. 그 안에서 최소한의 윤리 준칙이 무너지기 너무 쉬워 보이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동안 제작자의 마음보다 더 징그러운 것을 발견하는데, 내 안에서 발견한 시청자의 마음이다. 사건 전개를 궁금해 하면서 상황이 전개되기를 기다리는 기자의 마음, 또 나의 마음. 그건 어디를 향하고 있나. 심지어 온 가족이 둘러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모두가 각자의 스크린을 각자의 알고리즘 안에서 보고 있는 세상이다. 더블체크되지 않은 정보 채널이 마구 난립하는 세상. 영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언론인들이 서로 논의하며 갈등하여 적정선을 찾아가는 결과물조차 뜻하지 않은 사고를 칠 수 있는데, 그 과정조차 생략된 '가짜 뉴스 채널'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실시간으로 본다는 건 참 무서운 일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한때 실시간으로 보면서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던 어떤 순간들을 떠올렸다. 거대한 참사가 일어나는 장면을 몇날며칠 우리가 가만히 보고 있었던 순간들. 정제되고 편집된 뉴스 영상이 아닌, 마구잡이로 찍힌 사고 현장을 조용한 방에서 핸드폰으로 들여다 보면서 '이걸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맞아?' 싶었던 순간들. 가슴이 쿵쾅거려 잠들기 어려웠던 밤들로 이어졌지만, 이런 날들이 길어지고 아득해지면 무뎌질 수밖에 없다.
지난 15개월 동안 가자지구에서 얼추 추산하기로도 4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고, 이 중 70% 가량이 여성과 어린이라는 UN의 분석이 있었다. 실제 사망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거라는 추측이, 카더라 통신이 아닌 의학 학술지에 실렸다. 병원과 학교는 의례적으로 마지막 안전지대지만, 전쟁 규칙을 무시하고 조준 폭격하기도 했다. 하루에 몇 명씩 죽었다더라, 그 중 아이들이 몇이라더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끔찍한 소식을 무수히 들으며 나는 이미 무뎌졌다. 실시간으로 본다는 것은 사람을 미치게 괴롭게 하거나 무뎌지게 하거나, 둘 중 하나의 수순이 되기 쉽다.
그래서 이 영화의 엔딩이 의미있게 느껴졌다. 불 꺼진 스튜디오에서 제프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 그곳은 유일하게 희미한 빛이 드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의 얼굴 사진이 붙어 있는 게시판이다.
우리의 시선은 계속해서 흔들린다. 상황 전개 소식을 듣고 복도에 선 언론인들을 비추는 카메라가 흔들렸듯. 물론 흔들리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스스로를 다잡겠지만, 언론인도 흔들린다. (흔들렸을 때의 결과가 너무 끔찍하기에, 그들에게 남다른 균형 감각이 주어지길 간절히 바라게 되지만.) 시청자도 흔들린다. 시청자는 숫자가 되어 언론인에게 영향을 주고, 언론인들은 또 다른 숫자를 창조해낸다. 우리는 순환한다.
그러나 흔들림 끝에 우리의 시선이 희미한 빛 아래 사람의 얼굴에 머물 수 있다면. 결국 시선은 마음 가는 곳을 향하게 되어 있다. 95분을 빼곡하게 채우는 영화적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지만, 동시에 영화 바깥 나의 시선을 가다듬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었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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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여덟 살 그 여름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놉시스
갈색 머리와 눈동자를 가진 평범한 여고생인 이경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고교 축구선수 여고생인 수이를 만난다. 둘은 서로 친해지다가 사랑을 하는 관계까지 가게 되고 스무 살이 되어 서울에 상경한다. 이경은 서울에 있는 대학의 경제학과에 진학하고 수이는 자동차 수리공이 되기 위해 고시원에서 살면서 알바를 여러 개 한다. 이 둘의 만남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친구 간에 느낄 수 있는 우정이 사랑으로 번지는 건 사회적인 시선으로는 좋지 않다. 그러나 이경은 여자를 좋아하는 동성애를 가진 사람이었고 수이에게 이끌린다. 수이는 이경을 사랑하지만 레즈비언이라는 시선이 좋지 못하기에 둘은 사이가 멀어지려 한다. 그러다가 이경은 수이와 헤어지고 다른 여자 동기와 사귀다가 또 헤어진다. 결국 이경은 수이에게 받았던 물품들을 수이에게 돌려주며 진정한 이별을 하고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다. 이경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수이와 함께 했던 흔적을 찾으러 가며 끝이 난다.
사실 필자는 동성애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레즈비언이라는 사회적으로 좋지 못한 시선과 억압 속에서 이경과 수이가 남 몰래 사랑을 해야만 했던 걸 보면서 친구 간의 관계에 금기를 넘어서는 걸 보았고 사회가 정한 기준을 이미 넘어섰지만 이경은 자신의 성적 취향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이는 사회적인 시선에 초점을 두고 이경과 조금 경계를 두려고 한다.
애니메이션 <그 여름>에서 이경이 동성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추억은 의문으로 남겨지게 되고 수이도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열여덟 살에 만난 친구가 우연히 사랑까지 번졌다는 것을 흔적이나 추억으로 남겼다는 것만 알게 된다. 어떻게 보면 영화 <클로즈>와 살짝 비슷한 면이 있는데 그 영화에서는 친구 관계였던 래오와 레미가 동성애로 오해받고 놀림당해 레미가 자살하여 비극으로 끝나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오히려 친구 간의 사랑을 더 당당히 밝히고 있다.
대부분의 남들과는 다른 이경과 수이의 사랑 이야기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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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수의 모든 것을 걸은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
* 본 영상은 '타짜: 원 아이드 잭'(타짜3)의 스포일러를 담은 리뷰입니다. 영화를 보시고 감상해주세요!
타짜3가 개봉했습니다. 오늘은 타짜 원 아이드 잭 리뷰입니다.
광수 형님의 엉덩이는 나오지만, 순정파 곽철용 형님 같은 특급 조연은 없었습니다.
재밌게 감상해주세요!#타짜3 #타짜원아이드잭 #영화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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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18] 아동학대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
영화 고백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아동학대를 다루도 있는 영화여서 어둡고 슬픈 영화인데요.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사회 제도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면서
주변의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긎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알려주는 영화입니다.
박하선 배우의 연기와 하윤경 배우의 연기가 좋아요.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영화여서 많은 분들이 불편하겠지만 꼭 보면 좋을 것 같아요,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참고 하세요.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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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콘크리트 카우보이>
[2021년 4월 2일 넷플릭스 공개]
반항적인 10대 소년 콜(케일럽 맥러플린)은 숱한 사고를 치던 끝에 필라델피아 북부에서 여름을 보내게 된다.
서먹한 아버지(이드리스 엘바)가 있는 그곳, 범죄의 세계가 유혹하는 도시에서.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속한 도시 카우보이 공동체의 생기 넘치는 문화에 젖어 들며,
콜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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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워터> 30초 예고편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갇힌 딸의 무죄를 입증할 마지막 기회를 위해 나서는 아빠 '빌'.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예기치 못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