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위험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얼굴 없는 가수 그레타(키아라 나이틀리)다. 어느 날의 공연장. 친구 스티브(제임스 코든)가 노래를 끝냈다. 마이크를 넘기는 그레타. 사람 앞에 나서는 게 싫다. 싫다고는 말하지만 시선이 집중됐기 때문에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노래를 부르는 그레타. 사람들은 그럭저럭 잘 듣는 것 같다. 군중들 속에 눈이 반짝이는 남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다른 주인공 댄(마크 러팔로)이다. 음반 제작자인 댄. 예전에는 그래미 상까지 받았지만 현재의 그는 그냥 술주정뱅이다. 오늘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남자 댄. 하지만 그레타를 바라보는 안목 자체는 녹슬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레타에게 명함을 건네는 댄. "네 앨범을 만들어 줄게"라고 접근한다. 하지만 그레타는 음악에게 상처를 입었다. 거절하는 그레타. 하지만 댄과 술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음반 제작, 내일까지 고민하고 답 줄게요"라고 말하는 그레타. 그레타는 상처 입은 마음을 뒤로하고, 댄은 스스로를 위한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 다시 시작하는 음악에 뉴욕 시가 반응한다.
음악의 의미
글쓴이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좋았던 것. 음악의 의미를 영화가 플롯 안에서 구현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댄이 직접 “음악은 지루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지”라고 말한다. 글쓴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의미를 부여한다'라는 점이다. 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일상과 인간과의 관계에만 국한 짓는 것이 아니다. 1차적으로 이 영화가 음악으로 뉴욕이라는 도시를 재구성하기도 하지만 인간과 인간사이에도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어떤 인물들은 음악으로 소통한다.
후자부터. 영화에서 중요한 관계 네 개만 뽑으라면 댄과 바이올렛 부녀, 댄과 그레타, 댄과 콜, 그레타와 세상과의 관계다. 이 네 관계가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단점은 서로를 잘 모른다는 점이다. 이 네 관계 중 단점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댄-바이올렛 부녀다. 댄과 바이올렛은 서로를 잘 모른다. 초반부에 나오는 장면을 보면 아버지는 딸의 나이조차 모른다. 딸도 아버지가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른다. 돈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서 무기력하게 도망 다니는 장면도 있다. 이렇게 서로 멀리 떨어진 것 같은 부녀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영화 안에 두 장면이 있다. 이 요소가 동일시되는 지점이 어느 순간 등장하는데 영화가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을 그대로 보여준 장치라고 생각한다. 대화 대신 음악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음악이 아니라면 서로 아는 척도 안 했을 댄과 그레타가 처음으로 만나는 과정, 마음을 여는 계기 등등 영화 안에서 어떻게 묘사되는지도 이것의 연장선상이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으로 이 영화의 과제가 뭘까? 바로 프로듀서 댄이 그레타의 프로듀서가 되어 그녀가 세상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부터 그레타가 음악을 통해 세상과 대화하고 싶어 한다는 걸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설정이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타인과 타인과의 관계를 음악으로 이어 낭만적으로 표현한다.
이런 설정은 영화가 장르적인 성격을 강화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 영화는 음악영화이기 이전에 영화다. 적어도 이야기가 들어가야 음악이 들어가는 데 있어 연출적으로 중점을 둘 수 있다. 영화는 이 연출을 위한 이야기를 잘 짰다. 인물도 섬세한 성격으로 설정해서 음악에 따른 리액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줬고 노래하는 인물들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그레타와 콜이 교감하는 모든 장면이 그렇다. 음악으로 인물들이 교감한다는 전제 하에 예술을 받아들이는 캐릭터들의 리액션을 보여준다. 충분히 낭만적이고 사랑스러운 영화라고 부를 만 한 지점이다.
뉴욕 여행기
또 이 영화는 뉴욕 시의 일상을 보여주는 일종의 로드무비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 '그레타의 앨범 만들기'에는 특징이 있다. 바로 도심 한가운데에서 음악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설정의 배경에 결함이 있어 보이는 거 같긴 하지만 이건 음악영화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음악 만든다면 멋있잖아? 실제로도 영화가 이 광경을 멋있게 그 의미를 충실히 구현한다. 그리고 어떤 논리적 결함을 감수하고서도 이 영화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게 있다. 뉴욕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그리고 사람에겐 누구나 마음속 하나 상처가 있다. 이 영화는 이 상처 가득한 도시의 일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배경을 뒤로하고 음악을 녹음한다. 그레타의 이야기를 담은 앨범인 것과 동시에 뉴욕 시민들을 위로하고 싶었던 댄(내지는 감독)의 의도가 들어간 것이다. 'A Step You Can’t Take Back'같은 삽입곡의 가사를 보면 지하철이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는 공교롭게도 일상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지하철을 수시로 등장시킨다. 심지어 세상에게 상처받고 지하철에 탑승한 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 더 나아가 그레타와 댄이 함께 뉴욕의 시민들을 바라보는 장면까지 있다. 이 장면에서의 사람들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영화가 고의적으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비춘 것이다.
이것은 음악영화의 장르적인 특성을 하나 더 강화시킨다. 왜 영화가 뉴욕 시민들을 보여줬을까? 에 대한 당위성을 덧붙이는 것이다. 음악으로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 이것이 음악영화 장르에서 음악이 차지하던 방식이기도 하다. <사랑은 비를 타고>라는 영화를 본다. 이 영화는 시간적 배경이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전환되던 때다. 유성영화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인물들이 영화 제작을 위해 노래를 연습한다. 이것은 단지 극적 요소가 아니라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인물의 내면이 노래와 춤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시각적, 청각적으로 보다 색다르게 접근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연출임과 동시에 이야기가 아닌 것이 어떻게 플롯에 틈입할 수 있는가라는 점에서 중요했다. '음악으로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겠어!'라는 고민이 극 중 안으로 구현된 것이다. <비긴 어게인> 역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음악을 삽입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 몇 나온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그레타와 댄이 뉴욕 시민들을 바라보는 장면'이나 '생활소음을 영화가 활용하는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이 모든 뉴욕의 단면이 그레타 앨범의 하나라는 것, 이들의 일상 역시 예술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후술 하겠지만 이런 도시, 일상, 예술을 한 번에 결합시킨 존 카니의 연출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원스>도 더블린이라는 장소가 중심이다. 여주인공(그녀)의 집을 비롯한 더블린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도시를 배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싱 스트리트>도 음악을 통해 개인적 성장, 그러니까 살던 고향을 벗어난다는 성장서사를 플롯으로 삼았다(이것은 가장 최신작 <플로라 앤 썬>에서도 구현된다). 존 카니 감독이 잘할 수 있는 방식의 화법을 두 번째 영화에서 확립한 것이다.
복사+붙여 넣기?
글쓴이가 몇 년 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며 느낀 것. 기존 존 카니 감독 영화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우선 영화의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1) 아버지로서는 낙제점인 댄 2) 그레타의 앨범 제작기 3) 그레타와 댄의 관계다. 4) 도시 활용하기다. 1번. 최신작 <플로라 앤 썬>에서 주인공 플로라는 아이를 대하는 법을 몰라 전전긍긍하는 인물이다. 또 <싱 스트리트>에서 주인공의 친형으로 나오는 캐릭터는 내면에 거대한 상처를 품고 있지만 형제로서의 유대감이 극 안에서 강렬한 카타르시스가 된다. 2번. 그레타가 앨범을 제작하는 과정에 대한 부분은 <원스>라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전작의 모티브를 <비긴 어게인>에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3) 그레타와 댄의 관계.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쓰긴 어렵지만 존 카니의 네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음악만 다르지 영화의 어떻게에 해당하는 부분이 자가복제 쪽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규모든 대규모든 공연장을 활용하는 방식이 존 카니의 영화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 특히 <플로라 앤 썬>에서 사용된 연출이 <비긴 어게인>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은 본작(<비긴 어게인>)이 평범해지는 계기가 된다. <원스>에서 'falling slowly'라는 불후의 트랙을 남긴 것 말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시선을 있는 그대로 섬세하게 묘사한 건 존 카니의 데뷔작이라 신선했던 걸까? <비긴 어게인>이 전작의 공식을 답습했고 이후에도 감독은 비슷한 화법을 구사했다는 것이 치명적으로 느껴진다.
부족한 상상력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점은 섬세함이다. 영화를 잇는 연결고리'만' 존재하고 나머지가 부실한 것이다. 그레타의 앨범 제작기가 영화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럼 이 방식에 있어 전문적인 지식이 조금 더 나왔어도 크게 이질감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야기를 다룬 예술로서 창의성이 생겼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극후반부 그레타의 선택과 댄의 직업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그레타가 그런 선택을 고른 이유가 내적으로 다 근거가 있다. 그것까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다른 대안을 고른다거나 하는 방식은 없었을까? 단순히 내적 논리만 따라가기엔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쉽게 판단하는 것 아닌가? 영화로서의 창의성을 고려하지 않고 낭만적인 음악의 속성만 강조하니 빈 부분이 많아 보인다. 부족한 상상력이 현실에 찌든 주인공과 낭만적인 영화가 충돌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 댄의 직업에 대한 부분은 영화의 반을 포기한 듯하다. 이 영화에서 댄은 음악'만' 만드는 인물이다. 인간관계가 굉장히 좁은 인물로 묘사된다. 댄이 음악인으로 활동하면서 아는 아티스트와 행정가가 이렇게 적을 일인가? 영화에 나온 것처럼 이 <비긴 어게인>과 댄이 아예 한 길만 우직하게 팠으면 '이 인물이 이렇게 생각할만한 근거는 다 있다'라고 생각할 법하다. 그렇다기엔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을 염두한 흔적이 보인다. 염두했으면 확실하게 그 길로 트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100%중 65%만 써 애매하게 마무리짓는다. 이 영화는 뮤지컬 공연이 아니라 전적으로 영화다. 러닝타임을 길게 가져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야기를 확실하게 끝낼만한 수가 있어야 이야기로서의 강점을 가질 것이다. 애매하게 끝낸 덕에 그냥 앨범에 대한 이야기'만'하고 끝낸 감이 있어 이야기가 전달하는 쾌감은 부족하다.
'Lost Stars'
이 영화에 대한 총평은 사랑스러운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레타라는 여성을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지만 괜히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또 어느새부턴가 비호감 그 자체인 댄에게 마음이 가고 입체적인 콜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생각하게끔 만든다. 사실 영화가 이거면 역할을 다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살아 넘치는 생동감으로 잠시나마 환하게 웃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런 우리를 'lost stars'로 데려다주는 것이 존 카니가 이 영화를 기획한 의도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이후 존 카니의 두 영화에 대한 예고편이 됐다는 점에선 아쉽지만 'Lost stars'를 위시로 한 수많은 명곡들을 품은 영화라는 점에서는 충분히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후에 호크아이가 되는 헤일리 스타인펠드와 이미 헐크인 마크 러팔로가 부녀관계로서 연기한다는 점 역시 소소한 재미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