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비2025-04-02 03:14:24
그리움의 색을 칠해가는
영화 <행복의 노란 손수건> 리뷰
*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으로 3월 25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행복의 노란 손수건>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존재합니다.
바람 불던 차가웠던 겨울이 가고, 꽃향기가 물씬 풍기는 계절이 되었다. 동네를 걷다 보면 보이는 수줍은 색들. 흰 빛에 감춰져 있던 색들 중에서 우리 눈에 가장 들어오는 건 ‘노란색’이다. 긴 겨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이제서야 그 빛깔을 드러내는 노란색. 그 색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영화 <행복의 노란 손수건>은 말한다. 노란색에 담긴 의미는 그리움이라고.

영화 속 인물들은 차를 타고 홋카이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들의 목적지는 정해지지 않았고, 즉흥적이며 불분명했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을 떠나는 인물들 역시도 불분명하게 느껴졌다. 차갑고 무뚝뚝해보이는 말투를 가진 ‘시마 유사쿠’, 어딘가 불량하고 가벼워 보이는 ‘하나다 킨야’, 수동적이고 연약해보이는 ‘오가와 아케미’까지. 이들이 어딘가 결격사유가 있는 좀 어려워 보인다는 느낌에 정이 안 가, 어느 누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는 결국, 내가 잠깐 본 그들의 말투와 표정에 그들의 모든 삶을 재단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요동친다는 걸 무시한채, 여행을 떠나는 것은 영화 속에서 연기하는 그들이라고. 나는 그들과 여행을 떠나는 존재가 아닌 관찰자일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울어진 생각과 마음을 비우고, 정말 어디론가 멀리 떠나야 했던 것은 나였다.
그들과 함께 차를 타고 달리면서, 그렇게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 변해가는 계절의 흐름 속에서 변해가는 풍경들. 그리고 그들의 대화소리. 대화를 엿들으며 홋카이도를 달릴 때, 인물에 대한 나의 마음도 조금씩 변해갔다. 시마 유사쿠는 강한 의지로 너무나 단단해 보였지만, 자신이 변해버린 연인에게 상처받을까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하나다 킨야는 색욕에 빠진 한량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타인의 아픔에 눈물을 흘린다. 오가와 아케미는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의견도 없어 보였지만, 누구보다 소신 있고 강인한 사람이었다.

이처럼 주인공 세명 모두 각자의 변화를 보여주지만, 그 중에서도 나의 마음에 가장 들어왔던 인물은 ‘하나다 킨야’였다. 그는 작품 속에서 가장 극적인 성장을 보여준다. 처음 그는 단연 미성숙의 상징이었다. 자신의 가벼운 욕구로 오가와 아케미에게 상처를 주기도, 재치 있는 유머와 나름의 배려로 아케미에게 웃음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킨야가 아케미에 진심을 솔직하게 표현하자 아케미는 그에게 키스를 한다. 그제서야 사랑이라는 완전한 화합이 이루어졌다.
사실 그는 정말 아케미 자체를 사랑했으며 방법이 미성숙했을 뿐이라는 사실. 그 사실은 작품 내내 변하지 않았지만, 그 진심을 표현하는 방법이 변했다는 것을 아케미와 우리가 느꼈을 때, 킨야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다.
그들이 여행은 홋카이도에서 펼쳐진다. 흔히 홋카이도하면 눈이 떠오르지만, 작품 속에서 눈은 자주 등장하지 않았다. 눈이 가장 많이 등장한 장면은 시마 유사쿠가 자신의 애인 시마 미츠에와의 행복했던 과거를 생각하면서였다. 하지만,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그 과거를 상상만해도 유사쿠가 고통스러워할 정도로 차갑게 얼어 붙어있었다. 작품을 기준으로 현재, 그들이 타는 차는 빨간 마쓰다 자동차였다 여행을 떠나는 홋카이도의 풍경 역시도 녹색으로 가득하다. 시마 유사쿠가 차가웠던 눈 덮인 과거를 넘어, 바로 지금 현재 빨강과 초록이라는 반대되지만 명확한 그 색은 생명의 색이었다. 영화 속, 노란 손수건이 걸려있는 것은 흡사 나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언제나 훨훨 날아갈 수 있는 나비가 그 자리를 내내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움 때문이다.

작품은 인물들이 갑자기 넘어지거나 차가 도랑에 빠지는 장면처럼 관객을 웃게 하는 유머도 적절했다. 마치 봉준호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특징인 ‘삑사리’를 보는듯 하였다. 또한 과거와 현재를 몇 번 오가는 전환 외에는 정말 영화는 일관된 흐름으로 흘러간다. 마땅한 인물간 대립구조도 존재하지 않고 흐지부지 되어, 잔잔하다. 주인공들처럼 관객도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풍경까지 감상할 수 있을 정도이다. 즉, 중간중간 헤매긴 했지만 결국 유사쿠가 돌아가는 곳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 역시도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신파적이라고 느끼지 않을 정도로 완전했던 해피엔딩은 미소를 자아냈다.
목적 없이 길을 따라, 가는 것만으로도 나의 삶에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가다보면,어느새 차의 기름은 떨어지고, 다른 길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종착지에 도착한 것이다. 종착지에 내려 조금만 걷다 보면 표지판이 보인다. 그리고 그 표지판에는 노란 손수건이 둘러져있었으며, 문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내가 그리워서 돌아왔구나”

-4월 2일 극장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