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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tto2024-02-06 16:06:01

회색 지대에서 던지는 질문

<플랜 75> 리뷰

 

 

 

<플랜 75>의 이야기는 한 가지 위험한 아이디어로 시작된다. 대상이 확실한 죽음. 그리고 특이하게도 제목의 의미를 곧바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바로 75세 이상의 노인에게 죽음을 선택한 권리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지원금이 있고, 원하면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 죽음이 허용된 근미래의 사회를 배경으로 <플랜 75>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플랜 75’는 언뜻 보면 꽤나 설득력 있고 괜찮은 정책처럼 보인다. 원치 않는 인생을 중단할 권리, 존엄사를 향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사람들은 계속 있어 오지 않았나.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고통 없이 숨을 거둘 수 있고, 원하면 중단할 수 있고, 또 미리 고심할 시간도 충분할 것 같다. 노령인구는 줄어들 것이고, 어쩌면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양극화된 세상에서, 흑과 백 사이 회색 지대에 있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불현듯 떠오르는 이 생각을 한쪽 극단으로 만든다. 각자 대변성을 지닌 훌륭한 인물과 그들의 이야기가 세심히 설계되었고, 그들이 가진 세상의 가장자리를 조금씩 맞닿게 하면서 질문들을 가운데로, 또 가운데로 밀고 나간다.




<플랜 75>는 러닝타임 전체에 걸쳐서 이 제도를 소개한다. 그럼에도 제도 안에 있는 다양한 배경과 연령의 인물을 배치하면서 세계관을 소개하는 데에 그친 미완의 작품이 아닌 이야기로서의 힘을 획득한다. ‘플랜 75’괜찮은 정책처럼 보인다는 점이 위험한 이유는 죽음을 복지서비스처럼 제공한다는 데에 있다는 점이다. 정책 뒤에 있을 긍정적인 효과만을 바라보는 동안, 변화하는 인식은 고려하지 않게 된다. 사람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냈고 그래서 통제와 관리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은, 정책이 곧 개인의 인식과 관념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완전히 간과한 결과이다. 홍보 문구를 걷어낸 플랜 75’의 실상은 죽음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장려하고 또 죽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영화 속 사람들은 이미 75세 이상이 되면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존엄사가 지향하는, 삶과 죽음,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품위있게 삶을 마감하길 원할 만큼의 고통에 대한 고심 끝에 이루어지는 복지라는 점과는 확연히 다른 성격이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그린 근미래의 일본에서, ‘플랜 75’의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죽어도 된다는 생각은 결국 노인에 대한 혐오를 허용하는 현상까지 나아간다. ‘괜찮은 정책의 반대 급부는 바로 여기이다.




이 작품의 특별한 점은 영화 내내 제도를 소개하고 있지만 결코 설명하지 않고 그저 보여준다는 점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 살고 노동하는 모습을 모두 보여주면서 영화는 자신의 역할만을 완수하고, 생각은 관객 스스로가 하도록 한다. 그러자면 이 제도 내에 있는 인물들이 각자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보인다. ‘플랜 75’는 직접 여기에 참여해 죽음을 선택하려는 인물을 보여준다. 그 뿐만 아니라 여기에 참여하도록 장려하는 인물, 노인들과 직접 소통하는 인물, ‘플랜 75’가 시행되는 시설의 노동자의 뒤꽁무니를 따라 다니면서 꽤 괜찮아 보이는 복지 정책조차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음을 제시한다. 정책이 시행되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배제되는 것처럼, 일자리 창출이라는 멋진 현상은 사람을 죽여주는 직업이라는 실상을 가린다. 청년들은 결국 노인들과 상담하면서 죽음을 장려하는 사람이 되고, 시설에서 사체를 관리하고 유품을 처리하는 일은 또 다시 저임금 노동을 하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맡겨진다. 이런 방식으로 <플랜 75>는 회색 지대에 안착한다.




 

관객을 매혹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이미지와 치밀하게 설계되어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모두를 휘두르는 영화들이 있는 반면,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를 오래도록 사유하게 하는 영화들이 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관객들이 수많은 생각과 질문을 극장 밖까지 가져갈 수 있게 했다. 바로 그것이 <플랜 75>가 영화로서 가지는 힘이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자주, 계속 필요한 서술일 것일지도 모른다.


*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아 참석 및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작성자 . ri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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