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2024-02-08 14:24:02
어디갔을까? 엄마 이전의 나 자신으로 살던 삶은.
<어디갔어, 버나뎃>리뷰
‘나 자신’으로만 살던 내가 아이를 낳고 ‘워킹맘’으로 불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단한 수식어가 붙은 삶을 살게 되었다. 엄마인 나와, 직업인 나라는 2인분의 인생. 한 사람이 갖는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사회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수행하기에 녹록지 않은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엄마라는 역할과 나 자신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가, 하나를 포기하던가. 후자로 마음이 저울이 기울게 되는 순간, 엄마가 된 이상 엄마라는 단어를 지울 수는 없으니, 나 자신은 사라지고 엄마가 남게 되는 일이 대부분이 된다.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기꺼이, 우리는 그렇게 엄마로 살아가게 된다.
버나뎃은 최연소 맥아더상을 수상한 천재건축가이다. 남성들의 영역이었던 그 시절 건축계에서 독보적인 아이콘이 되었지만, 유망한 프로그래머인 남편 ‘엘진’을 따라 LA에서 시애틀로 이사를 온다. 네 번의 유산을 겪고, 어렵게 낳은 딸은 심장이 약한 상태로 태어나, 출생 후 여러번의 수술을 받게 된다. 버나뎃은 자신을 지우고 딸 ‘비’의 엄마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렇게 건축계를 떠나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그 딸이 어느새 중학교 졸업반이 되었다.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을 넘어 사회불안장애라 칭해도 될 만큼 타인과 함께 있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 인 탓에 도움이 필요한 일은 온라인 비서 만줄라에게 의지하고 자발적으로 고립된 삶을 택하고 있으면서도 딸에겐 한없이 다정한 엄마 버나뎃.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원하지 않지만, 딸 ‘비’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하며 가족이 함께 떠나는 남극 여행을 소원으로 말하자 어쩔 수 없이 남극행 티켓을 끊는다. 남극여행을 어떻게 가야 하나 두려움과 피하고 싶은 마음들이 겹겹이 쌓여 예민함을 표출하는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오랜만에 친구이자 동료인 폴을 만나, 남편이나 딸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데, 폴은 그녀에게 간단한 처방을 내린다. ‘너같은 사람은 창작을 해야해. 그러지 못하면 사회에 위협이 된다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하나야. 다시 일을 시작하고 뭐라도 만들어.’
버나뎃은 폴과의 대화 이 후 피하고 싶었던 남극여행을 적극적으로 준비한다. 아주 다른 공간인 남극을 여행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FBI가 찾아온다. 버나뎃이 의지하고 있는 만줄라, 그러니까 온라인 비서시스템이 러시아 범죄조직의 위장회사이며, 이들은 버나뎃으로부터 수집한 정보를 이용해 이들 부부의 재산을 뺏으려 하고 있다.FBI와 심리치료사가 집으로 들이닥쳐, 버나뎃이 지내고 있던 조용한 일상을 뒤흔들고 버나뎃은 떠나버린다. 문제가 생기자 건축계에서 떠나버렸듯, 또 문제를 두고 도망가버렸다고 생각하는 ‘엘진’ 과 엄마를 찾아가고 싶은 ‘비’
예정되어 있던 남극으로 항하는 버나뎃은 생각보다 사람들과 부딪힐 일은 적었고, 밤이 없는 세계, 사람도 거의 없는 대자연에서 버나뎃은 자유를 느끼고,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고, 열망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한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를 차단했던 20년을 지나온 뒤, 마치 스위치를 켠 것 처럼 아이와 남편이 없는 환경에서 본능적으로 자신의 마음만을 따라간다.
이웃을 상대하기도 싫고 타인과 함께 있는 것은 너무 싫지만, 가족에게는 따듯한 사람. 집안에 싹튼 새싹을 위해 능숙하게 카펫을 찢는 사람. 버나뎃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었을까?
버나뎃의 주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 유튜브 영상같은 타인의 이야기만 듣고 주인공의 마음을 직접 듣지 않는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한 행동이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세상. 빠르게 변화하고, 정해진 길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하고 싶은 가치를 추구하며,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삶은 계속 따분해지는데, 그것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 이라고 폴에게 울먹이며 말하던 버나뎃을 떠올린다. 버나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로 사느라 꺼내지 못한 열망을 품고 얼마나 끙끙 거리고 있었을까?
버나뎃처럼 화려했던 과거가 아니더라도 모든 엄마들에겐 엄마가 되기 전의 자기자신으로 살던 인생이 있었다. 그 삶은 지금 어디 갔을까? 지금 나자신은 사라지고, 엄마와 아내 딸과 며느리의 역할만 남아 있는 것 처럼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면, 버나뎃이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따분한 삶을 재미있고 가치있게 만들수 있는 것은 나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