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02-13 07:37:53
좌파 엘리트는 노동자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프랑스 남부의 항구 도시 캉. 한 여성이 복지센터에 들어와 거칠게 항의한다. 서류 미비로 기초수급자 자격을 상실한 그는 잔뜩 화가 난 상태다. 직원들은 예약을 잡고 다시 오라고 달래지만 서류와 자격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그는 좀처럼 물러날 것 같지 않다. 그런 여자를 조용히 지켜보는 또 다른 여자가 있다. 이름은 마리안이다. 그는 장내가 정돈된 후 상담실로 들어가 자기 처지를 털어놓는다. 법대를 졸업했으나 결혼 후 23년 동안 가사노동만 했고, 취업 시장에서 통할 이렇다 할 경력은 없다. 남편이 외도로 떠난 후 직접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태이기도 하다. 상담사는 마리안에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비정규직 청소 일밖에 없다고 말한다. 마리안은 그것도 좋다고 답한다. 마리안은 이내 일터로 투입되고 청소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그녀가 갑자기 수첩을 꺼내 들더니 무언가를 빠르게 적는다. 그러고는 누가 볼까 싶어 얼른 수첩을 주머니에 넣는다.
그렇다. 마리안의 사연은 모두 가짜다. 그는 저명한 르포 작가로 직접 현장에서 취재한 내용으로 책을 쓴다. 이번에 쓰려는 책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험난한 삶이다. 그래서 지인이 없는 도시로 왔고 사연을 꾸며내 상담받은 후 일자리까지 얻은 것이다.
마리안은 빠르게 일터에 적응한다. 동료들과도 가까워진다. 문제는 동료들이 마리안의 정체를 모른다는 점이다. 일을 마친 청소노동자들이 함께 볼링을 치는 장면을 보자. 술과 음료를 판매하는 볼링장이지만, 이들은 주차장으로 나와 직접 가져온 술을 마신다. 볼링장 안에서 파는 술은 비싸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가 그 행위 동기를 안다면 수치스러울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수치심이야말로 마리안이 포착하고 싶었던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많이 담아낼수록 마리안 책의 가치도 높아질 것이기에.
마리안은 몇몇 동료 중 크리스텔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크리스텔은 마리안이 복지센터에서 상담을 기다릴 때 기초수급 자격을 잃었다며 소란을 일으킨 인물로, 현재 혼자 세 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중이다. 마리안은 크리스텔과 친구/취재원의 경계를 오가며 점차 깊은 관계를 맺는다. 크리스텔과의 인상적 대화를 기록하며 책 집필 방향을 잡는다. 크리스텔의 아이들과도 친해진다. 처음엔 팍팍한 삶에 불쑥 들어온 마리안을 경계하던 크리스텔 역시 마리안에게 완전히 마음을 연다. 마리안이 계산적인 목적만으로 접근한 것은 아니다. 마리안은 크리스텔이 마음에 들며 그와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크리스텔은 마리안이 자신과 ‘같은’ 처지라는 데서 동질감을 느낀다. 소득과 생활수준이 비슷하고, 노동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이 두 사람 유대의 핵심이다.
마침내 마리안의 정체가 폭로된다. 크리스텔은 큰 충격을 받는다. 마리안은 크리스텔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호소하지만 거짓 위에서 정초된 관계에서 그의 진심은 오히려 상대의 화를 더욱 돋울 뿐이다. 둘이 진정한 친구였다는 사실이 강조될수록, 크리스텔이 느끼는 배신감과 모독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얼마 뒤 책이 출간된다. 마리안의 책은 큰 관심을 받는다. 서점에서 진행한 출간 기념 행사에는 마찬가지로 마리안의 비밀을 몰랐던 또 다른 동료들이 참석해 마리안의 작업을 칭찬한다. 마리안이 자신들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것이다. 즉, 마리안의 작업에는 그 의미를 확정적으로 재단하기에는 어려운 구석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관심조차 갖지 않는 엘리트보다는 잠깐이나마 비정규직의 삶을 ‘체험’하고 그를 세상에 알려 문제를 해결하려는 엘리트가 확실히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한’ 의도를 갖고 한 일이 ‘좋은’ 결과를 낸다고 해서 모든 윤리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마리안은 아직 크리스텔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마리안에게 마지막 기회가 찾아온다. 크리스텔은 마리안을 불러낸다. 그리고 이전처럼 여객선 청소를 하자고 제안한다. ‘너’가 정체를 숨기고 하고자 한 일을 이룬 후에도 ‘나’의 세계에 들어올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크리스텔은 단 한 번이라도 마리안이 다시 자기 세계로 돌아올 수 있다면 마리안과 친구로 남을 의향이 있다. 마리안의 선택은? 눈물지으며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마리안은 근사한 옷을 청소복으로 갈아입지 않는다. 크리스텔은 그럴 줄 알았단 냉소적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곧바로 일터로 향한다. 좌파 엘리트는 노동자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논쟁적인 질문에 대한 이 영화의 답은 ‘아니오’다. 영화는 좌파 엘리트가 자신의 대의와 업적, 명예를 위해 노동자를 이용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가 어떤 효과를 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기만 할까? 조지 오웰과 프리드리히 엥겔스 등 당장에 떠오르는 몇몇 반례(어쩌면 무수한 반례)가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질문과 대답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새롭게 쓰일 수 있다. 물론 누군가는 이 반례가 적절하지 않다고 정당하게 문제제기할 수도 있다. 토론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이 논쟁적인 영화가 무척이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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