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또비됴2024-02-16 01:54:59
통쾌한 느낌표 대신 도덕적 자문의 물음표
<살인자 o 난감> 리뷰
나쁜 짓을 해서라도 짐승만도 못한 이들을 처단하는 이야기가 환영받는 시대! 근데, 그 나쁜 짓이 살인이라면, 그리고 그 횟수가 많아진다면, 과연 우리는 두 팔 벌려 환영할 수 있을까? <살인자 o 난감>은 법의 사각지대 안에서 한 개인이 범죄자를 처단하는 이야기로, 드라마 <모범택시> <비질란테>처럼 공권력 대신 정의 구현에 힘쓰는 다크 히어로(혹은 자경단)가 등장한다. 통쾌함을 주 무기로 사용했던 비슷한 콘셉트의 작품들과 달리, 이 시리즈는 법을 어기면서까지 범죄자를 죽이는 행동이 과연 옳고 정의로운 일인지, 죄는 아닌지에 대한 딜레마를 안긴다. 마치 통쾌한 느낌표보다는 도덕적 자문의 물음표를 던지는 것처럼.
삼류대에 다니며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이탕(최우식)은 편의점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도중 인생이 바뀐다. 근무 중 친절했던 손님과 퇴근길에 마주친 후, 갑작스럽게 몸싸움을 벌이다 편의점에서 가져온 망치로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근데 신이 도와준 것일까? 살인 증거는 모두 사라지고, 그 남자는 죽여도 마땅한 연쇄살인범이었다.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이탕의 우발적 살인은 계속되는데, 거짓말처럼 증거는 모두 증발하고,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죽는 이는 모두 흉악범이다.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라 했던가. 이탕은 스스로 악인을 알아보는 능력으로 악을 처단하는 일을 하며, 그들은 죽어도 싸다는 자기 합리화에 빠진다. 한편, 편의점 사건 담당 형사 장난감(손석구)은 이어지는 살인 사건을 마주하며, 유력한 용의자로 이탕을 지목, 그의 행적을 뒤쫓는다.
|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난감한 제목?
<살인자 ㅇ 난감>은 시작도 하기 전에 난감하다. 과연 이 제목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설마 오타가 아닐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동명 웹툰 제목도 마찬가지이니 원작자 꼬마비나 이창희 감독이 등장해 이건 이렇게 읽어줘달라고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제목에 대해 이창희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공식적으로 ‘살인자 ㅇ(이응) 난감’이다. 하지만 누구의 관점에서 이 작품을 보는가에 따라 제목이 달라지지 않는가 싶다.
공식적으로 부르는 제목이 궁금하기도 전에, 누구의 관점에 따라 제목이 달라진다는 그 말이 확 와닿는다. 감독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듯, 최우식은 제목을 ‘살인자 장난감’으로 읽는 게 많이 끌렸다며, 뭔가 장난감처럼 놀아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손석구와 이희준은 ‘살인자 ㅇ(오) 난감’으로 읽었다고 밝혔고, 이희준은 ‘모두가 다 난감한 상황’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덧붙였다.
관객은 물론, 출연 배우들도 제목을 받아들이는 게 제각각인 영화는 각각의 관점에 따라 각 인물과 상황이 달리 보인다. 주인공 이탕만 봐도 우발적이지만 악랄한 죄인을 살인한 그의 행동을 놓고, 누군가는 죄인으로, 누군가는 영웅으로 바라본다. 전자는 난감, 후자는 이탕에게 자경단 활동을 하자고 권한 사이드킥 노빈(김요한)의 시선이다.
이탕 뿐만 아니다. 그에게 살해당한 첫 인물인 편의점 손님(조현우) 경우, 친절한 겉모습과 달리 살인을 일삼은 연쇄살인범이고, 두 번째 인물인 선여옥(정이서)도 시각 장애인처럼 보였지만, 한 쪽 시력은 남아있고, 부모의 사망보험금을 받아내기 위해 존속살인을 저지른 패륜아였다. 이처럼 겉선속악(겉으론 선하지만, 속으로 악한) 인물들은 매회 등장해 이탕과 우리의 눈을 교란한다. 감독 또한 극의 긴장감을 부여하고 혼란을 부추기는 장치로 매치컷(match cut, 시각적으로 유사한 두 장면을 이어 붙이는 편집 방식)을 자주 활용한다.
감독은 이런 이중성을 각 인물에게 투영하며, 각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극 중 난감은 후배에게 형사라는 직업의 경험에 기반, 가해자에서 한 글자만 바꾸면 피해자가 되는 것처럼, 한순간 가해자가 피해자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이는 이탕을 비롯해 난감 자신을 포함한 다수의 인물을 관통하는 주제로 마지막 8회까지 묵직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 도스토옙스키가 배트맨, 다크 히어로는 로빈?
<살인자 ㅇ 난감>의 큰 뼈대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그리고 배트맨을 앞세운 다크 히어로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스토예프스키가 배트맨(히어로), 다크 히어로는 로빈(사이드킥)이라 할 수 있다. 시리즈에서 이탕은 흉악범을 감별하는 능력으로 다크 히어로의 옷을 입는다. 하지만 이 능력이 신이 준 선물인지, 아니면 저주인지 매번 되묻는다. 살인을 거듭할수록 첫 살인 때보다 두려움과 고뇌는 줄어들지만, 꿈이나 환상에서 죽인 놈들이 나타나 그를 괴롭히는 건 똑같다. 능력이 곧 그에겐 족쇄인 셈. 그의 살인 행각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장면들이 즐비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캐릭터의 성향은 곧 기존 다크 히어로와 궤를 달리하는 드라마의 특성을 대변한다. 배트맨의 고뇌 중 가장 큰 부분은 과거 부모의 죽음과 이를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기인한다. 흉악범들을 처단할 때 그는 살인에 대한 정당성의 고민이 크지 않다. 이런 부분에 있어 이탕은 다크 히어로의 옷만 입은 채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옷을 입은 주체는 따로 있다. 바로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 그는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하고, 전당포 노파와 그녀의 이복여동생을 죽인다. 완전범죄였지만,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자수한다. 그 또한 자기합리화에 빠져 정당한 살인이라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인물로서 이탕과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편, 극 중 ‘죄와 벌’이란 책은 이탕의 마음을 대변하는 매개체이자, 다크 히어로 활약하는 그의 약점으로 활용된다. 후반부 이탕과 대척점에 있는 변질된 다크 히어로이자 빌런인 송촌(이희준)은 이 책을 훔치고, 이탕에게 가져가라고(한번 뺐어 보라고) 말한다. 이탕의 약점을 제대로 간파한 송촌의 공격이다.
| 피해자가 곧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
이탕, 장난감, 송촌의 공통점 중 하나는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된 사례라는 점이다. 이탕은 학폭, 장난감과 송촌은 부모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인해 오랜 시간 피해자로서 살아간다. 마치 누군가의 장난감이 되어 놀아나다가 싫증 나면 바로 버리는 존재처럼, 이들은 피해자로서 많은 상처를 받는다. 그러다 한 사건으로 인해 응축된 분노가 쏟아져 나오고, 결국 가해자의 길을 간다. 종국에 이르러 저마다 비슷한 내상을 입은 채 마지막 대결을 치른다.
세 인물과 더불어 성폭행 이후 자살한 딸의 고통스런 사연을 지닌 강상묵(이중옥), 안타까운 가족사를 가진 노빈 모두 피해자였지만, 살인을 담보로 한 가해자가 된다. 그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에.
드라마는 이런 인물들을 통해 계속해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며, 정의 구현을 목적으로 살인이 용인될 수 있는지, 그 목적이 살인이란 죄를 사해줄 수 있는지를 계속해서 묻는다.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피가 끓고, 사적 복수에 통쾌함도 느끼지만, 한편으론 살인이란 두 글자에 머뭇거리게 되는 건 바로 이 때문. 사회가 하지못하는 일을 개인이 했음에도 행하는 이도, 보는 이도 남는 건 죄책감 뿐이다.
| 살아 있네, 살아 있어! 캐릭터
<살인자 o 난감>이 추구하는 이야기와 주제 의식을 생생하게 살리는 건 배우들의 몫이다. 주요 캐릭터인 최우식, 손석구, 이희준은 각자 맡은 캐릭터를 자신만의 가공법으로 특색있게 만든다.
최우식은 목표 없이 살아가는 20대의 모습은 물론, 죄의식에 사로잡힌 다크 히어로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거인> <기생충> 등 그의 불안한 눈빛으로 발화하는 청춘의 모습은 물론, 피해자로서의 아픔과 가해자로서의 죄책감 등 기민한 감정 연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망치, 벽돌 등 둔기를 사용해 살인을 범하는 액션 또한 현실감 있게 구현한다.
손석구는 또 한 번 디테일한 설정이 돋보인다. 원작에서 가져온 껌을 계속 씹으며, 세상을 관조적으로 보는 특유의 눈빛과 걸음걸이는 장난감의 성격을 충분히 유추하도록 한다. 특히 껌을 씹는 건 마음 속 화와 분노를 조절하는 복용약처럼 느껴질 정도다. 여기에 법, 죄, 사회적 규칙 등 자신이 믿었던 것에 배신당하며 울분에 쌓이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이에 질세라 이희준은 느리고 친근한 말투와 빠르고 과격한 행동의 간극을 통해 공포감을 조성한다. 특히 개인의 기준으로 흉악범이라 생각한 이를 포박해 반성하면 죽이지 않을 것처럼 하다가도 결국 살인을 저지르는 그의 의외성은 극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극 중 당뇨 환자에 나이 든 캐릭터로 연기하지만, 다크 히어로이자 빌런으로서의 잔인함을 더 세게 가져가며 송촌이란 캐릭터를 쌓아 올린다.
이뿐인가. 최고의 사이드 킥으로, 등장하는 노빈 역에 김요한, 이탕의 첫 살해를 목격하고 그를 협박하는 선여옥 역에 정이서, 딸의 비통한 죽음에 결국 칼을 든 아비 강상묵 역에 이중옥, 리벤지 포르노에 당해 이름과 얼굴을 바꾸고 살아가는 최경아 역에 임세주와 약혼녀가 있음에도 그녀에게 접근해 착취하는 하상민 역에 노재원 등 이들은 각 회차를 잡아먹을 정도의 연기력으로 승부한다.
물론, <살인자 ㅇ 난감>도 제목처럼 난감한 부분이 있다. 기존 다크 히어로를 내세운 드라마와 다른 매력을 지녔고, 살인 및 성적 수위와 흉악범들의 턱 빠질만한 악행 구현, 5회부터 떨어지는 극적 긴장감, 정치인을 떠올리게 하는 유사 장면 등은 단점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다크한 장르 드라마로서의 매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이창희 감독의 전작이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였던 것만 봐도 진보했지 퇴보하지는 않았다. 이는 공개 3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 부문(비영어) 2위, 지난 11일 기준 한국·인도·태국·베트남 등 11개국에서 시청시간 1위(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오르는 등 각종 수치가 대변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구독자들이 이 드라마가 담고 있는 주제에 충분히 공감했다는 것. 시간이 더 지나 봐야 알겠지만, 시즌 2를 암시하는 장면으로 끝낸 드라마의 다음 행보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현실에서는 드라마보다 더 난감한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 아이러니하게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사진= 넷플릭스 제공
평점: 3.5 / 5.0
한줄평: 성장형 다크 히어로를 내세운 현대판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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