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4-02-29 23:00:30
이렇게 귀여운 약초 오타쿠라니
약사의 혼잣말
간만에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생겼다. 나는 소위 말해 머글이기 때문에 매니악한 애니는 보지 않는다. 그냥 관심이 안 간다. 오히려 소소한 애니만 보는 편인데, 넷플릭스를 표류하다가 세상 귀여운 애니를 발견했다. 뭐, 워낙 나는 늦박을 타는 인간이라 이걸 왜 이제 알았을까 싶었다. 뭔가 맘편히,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스무스하게 보기 좋은 애니메이션이다. 물론, 추리부터 살인까지 서스펜스가 있지만 주인공이 너무 귀여운 점이 더 와닿는다.
주인공은 유곽에서 약사로 일하는 마오마오. 양아버지가 유곽의 약사라서 그녀도 녹청관이라는 기생집에 드나들며 약사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수많은 약에 대한 실험을 하기도 하고 사람을 치료하면서 일종의 과학자 같은 성향의 여자라고나 할까. 여자로 태어나면 남자의 사랑을 받는 게 당연한 시대에서 그녀는 그저 약사로서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약초를 캐러 돌아다니는 게 더 좋다. 그러니 후궁으로 팔려가서도 절세미남 진시를 보고서도 역겨워하는 것이겠지. 이 캐릭터의 성격이 너무 호감이었다. 픽션이라서 가능한 일이겠지만 모든 일을 척척 잘 해내는 점도 참 부러운 지점이었다. 하지만 너무 만능이기도 하고 추리의 과정에 추측에 기반하는 것이라 추리의 과정이 오, 그럴듯하다는 느낌까지 들진 않는다. 말하자면 추리 과정을 견고히 쌓지는 않은 서사라는 것이다. 그저 주인공이 귀엽고, 호감이니 계속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꾸준히 새로운 캐릭터들의 매력이 보여서 그 점도 질리지 않고 보게 되는 매력이다.
궁궐의 절세미남이자 환관인 진시도 흥미로운 인물이다. 하지만 조금 억지스러운 설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스포가 될 테니 말은 안하겠지만 진시의 존재가 뭐랄까 현실적이지 못한 설정을 가진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아직 수면위로 올라오진 않았지만 진시의 출생의 비밀이 있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그 과정이 너무 읭스러운 감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뭐, 흥미진진한 서사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직 완결이 난 작품은 아니라서 나의 글이 그저 '오, 이런 것도 있었어?'라며 누군가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면 그거면 됐다. 혹시라도 부담없이 볼만한 애니메이션이 취향이시라면 넷플릭스로 ㄱㄱ 해보기시를 바란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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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오는 4월 30일부터 5월 9일까지 진행되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가 한국 영화의 거장 배창호 감독 특별전 개최 소식을 알렸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과 공동 주최하는 코리안시네마 섹션 미니 특별전 ‘배창호 특별전: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에서’는
대중성과 실험성을 사이를 고뇌하며 작품활동을 해온 감독의 삶, 영화 철학, 내면세계 등을 조명하며,
다큐멘터리 <배창호의 클로즈업>과 디지털 복원작 3편(<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황진이>, <꿈>)을 포함해 총 4편이 상영될 예정입니다.
영화 상영과 더불어, 관객들이 배창호 감독을 만날 수 있는 GV도 준비되어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일정과 게스트는 추후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하니, 잊지 마세요!
배리 젠킨스 차기작, SF 스릴러 <더 내추럴 오더>
<문라이트>, <무파사: 라이온 킹>을 연출한 배리 젠킨스 감독이 차기작을 확정했습니다.
유니버설이 판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더 내추럴 오더>는 맷 올드리치의 원고를 바탕으로 하며,
“영생을 향한 추격전”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SF 스릴러로 알려졌습니다.
<탑건: 매버릭>, <트위스터스>를 출연했던 글렌 파월이 주연을 맡았고,
앞으로 몇 주 내로 추가 캐스팅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르면 올해 촬영이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콜린 파렐, DCU 영화 <서전트 록> 출연 논의 중
다니엘 크레이그가 갑작스럽게 하차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DCU 영화 <서전트 록>에 콜린 파렐이 출연을 논의 중입니다.
파렐은 DCU 영화 <더 배트맨>에서 ‘펭귄’을 연기한 바 있으며,
이번 작품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를 상대하는 ‘이지 컴퍼니’의 리더, 프랭크 록 중사 역을 맡을 예정입니다.
<서전트 록>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연출을, 그의 오랜 협업자 사욤부 무크디프롬이 촬영을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클로버필드 2>, 여전히 제작 진행 중
영화 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클로버필드>의 새로운 속편 소식입니다.
2022년 파라마운트가 <클로버필드>의 후속작을 바박 안바리 감독이 연출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후,
몇 년간 소식이 없어 프로젝트가 취소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했던 가운데, 최근 진행된 인터뷰에서 안바리 감독은
“너무 말하고 싶지만, 그 팀은 아주 비밀스럽게 움직이고 있어요.”라고 답하며, 프로젝트가 여전히 진행 중임을 암시하는 답변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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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래곤 길들이기 | 모범생이지만 아류일 뿐인 리메이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수백 년간 이어진 바이킹과 드래곤의 전쟁. 드래곤과의 전투가 곧 삶의 모든 목적인 버크 섬에서 강력한 무력도 없고, 드래곤을 죽일 용기도 없는 '히컵'(메이슨 템즈)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히컵은 족장이자 혼자서 드래곤을 대적할 수 있는 전사이고, 히컵의 아버지인 '스토이크'(제라드 버틀러)와 갈등을 빚는다. 드래곤에게 아내까지 잃은 스토이크가 보기에 히컵은 바이킹으로서도, 아들로서도 낙제점이기 때문.
어느 날, 히컵은 부상당해 숲에 고립된 전설 속의 드래곤, 나이트 퓨어리를 만난다. 히컵은 그를 죽여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 하지만, 끝내 드래곤을 죽이지 못한다. 오히려 그는 나이트 퓨어리에게 ‘투슬리스’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바이킹의 규칙을 어긴 뒤 그와 친구가 된다. 이를 계기로 인간과 드래곤이 공존할 방법을 고민하는 히컵. 그러나 스토이크가 드래곤과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인간과 드래곤의 우정은 시험대에 오른다.
리메이크 영화의 숙명
리메이크 영화에게는 한 가지 숙명이 있다. 원작을 다시 만들어야만 하는 이유를 작품 내에서 증명해야 한다는 것. 리메이크의 대상이 되는 영화들은 보통 평단의 호평이나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미 잘 만들어진 작품에 손을 대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는 리메이크 영화는 근본적인 존재의의를 찾기 어렵다. 단순히 원작을 재현할 거라면 원작을 다시 보는 게 적절한 선택일 테니까.
디즈니가 리메이크한 <라이온 킹> 실사영화가 대표적인 예시다. 실사판 <라이온 킹>은 어색한 CG만큼이나 리메이크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내용을 구체화한 것 외에는 원작 애니메이션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다시 만들어야 할 이유를 납득시키지 못한 결과 <라이온 킹> 실사판은 전 세계 15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기록하고도 원작 애니메이션의 아성을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영화 중 처음으로 실사화된 <드래곤 길들이기>도 비슷한 함정에 빠졌다. 원작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감독이었던 딘 드블루아가 연출을 맡은 덕분에 <드래곤 길들이기>는 원작의 설정, 볼거리, 메시지를 모범적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 시점에 리메이크가 필요한 이유를 끝내 못 보여준 나머지 <드래곤 길들이기>도 결국 원작 애니메이션의 아류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영리한 '정치적 올바름' 활용범
지난 몇 년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실사화 프로젝트가 불만족스러웠던 관객이라면 <드래곤 길들이기>는 사실 꿈같은 선물과도 같다. '실사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원작의 설정과 볼거리, 메시지를 모범적으로 재현해 냈기 때문. 특히 근래 할리우드에서 끊이지 않는 정적 올바름과 관한 논란을 영리하게 피해 가고, 더 나아가 정치적 올바름을 적재적소에 활용한 각색이 인상적이다.
겉보기에는 <드래곤 길들이기>에도 논란거리가 될 만한 장면이 존재한다. 바이킹이 주인공인 작품에 흑인, 동양인 바이킹이 등장하고, 흑인 혼혈 배우인 니코 파커가 전형적인 금발 백인 여자 주인공 '아스트리드'를 연기하기 때문.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실사 영화에서 변경한 버크 섬과 바이킹 설정 덕분에 세계관은 더 확장되고 비장한 분위기가 강조된다.
애니메이션과 달리 실사영화에서 버크 섬은 인류의 최전방 기지처럼 묘사된다. 인류는 전 세계에 있는 드래곤들과 싸워왔고, 그 과정에서 사막도 비단길도 건너온 여러 민족의 전사가 드래곤들의 둥지에 인접한 버크 섬에 보여서 자신들을 바이킹으로 칭했다는 것. 그 덕분에 흑인이나 동양인 바이킹의 존재는 원작 왜곡이나 훼손과는 다른 맥락으로 수용될 수 있다.
초반부 회의 장면만 봐도 그 맥락을 확인할 수 있다. 원작에서 이 장면은 스토이크가 계속되는 드래곤들의 공격에 지친 바이킹들을 격려하는 장면에 가깝다. 반면에 실사 영화에서 스토이크는 회의를 통해 바이킹의 역사를 언급하며 드래곤과 싸워야 하는 당위, 드래곤들의 둥지로 원정을 떠나야 하는 이유를 역설한다. 여러 인종이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은 개연성과 실사화에 어울리는 비장미, 두 마리 토끼를 영리하게 잡는 셈이다.
특별관이 아깝지 않은 액션
영리하게 구축된 세계관 위에서 <드래곤 길들이기>는 기대와 예상을 뛰어넘는 볼거리를 선보인다. 특히 <드래곤 길들이기>를 상징하는 투슬리스와 히컵의 첫 활공 장면은 압도적이다. 마치 <맨 오브 스틸> 속 슈퍼맨의 비행 장면처럼 흔들리는 카메라는 투슬리스의 속도감을 강조하고, 제삼자의 시점과 히컵의 시점을 오가는 카메라워크는 생동감과 현장감을 극대화한다.
여기에 원작에도 참여했던 존 파월의 더 웅장해지고 풍성해진 음악이 더해지면 3분가량 이어지는 활공 시퀀스는 무아지경에 가까운 경험을 선사한다. <탑건: 매버릭>과 유사한 형태로 특별관의 존재 의의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초점이 자주 흔들리다 보니 눈이 쉽게 피곤해진다는 단점도 있지만, 전체적인 쾌감이 그 단점을 상쇄해 주기에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여러 장면이 원작을 초월한다. 클라이맥스인 레드 데스와의 전투는 레드 데스가 더 거대해지고 위압적으로 묘사된 덕분에 긴박함이 극대화됐다. 또 온 인류와 드래곤의 맞대결이라는 비장미가 더해지면서 슬픔과 감동도 더 절절해진다. 반대로 원작에 못 미치는 장면들도 있다. 일례로 오프닝 시퀀스는 실사화의 한계가 느껴진다. 어두운 화면으로 인해 드래곤들이 버크 섬을 습격하는 액션을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아쉬움이 두드러지는 순간도 있다. 투슬리스가 히컵과 아스트리드를 태우고 오로라를 보여주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이 장면은 본래 아름다운 밤하늘을 함께 날면서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을 보여줘 한다. 그런데 어색한 CG로 인해 배경과 두 주인공이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이 진하다 보니 이 흐름이 순간적으로 끊기고 만다.
실사라서 가능한 감정선
설정과 세계관, 볼거리 못지않게 메시지도 인상적이다. <드래곤 길들이기>의 핵심 키워드는 '소통'이었다. 좀처럼 대화가 안 통하는 부자 관계와 종족을 뛰어넘은 인간과 드래곤의 우정을 대조하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공통점과 관심사를 찾고, 상호 존중하면 오랫동안 쌓아온 종족의 벽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 진정으로 소통하는 관계를 이루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곧 <드래곤 길들이기>였다.
원작의 메시지는 실사영화의 특성 덕분에 더욱 돋보인다. 실사답게 크기도 커지고, 위압감이 더해진 투슬리스의 모습은 드래곤과 서서히 우정을 쌓아나가는 히컵의 서사에 몰입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준다. 이미 관객들에게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투슬리스와 히컵의 관계성을 무리하게 각색하는 대신, 투슬리스와 히컵의 거리감을 부각하면서 분위기를 조성한 셈이다.
또 실사영화이기에 히컵과 스토이크의 관계도 더 실감 난다. 그 중심에는 원작에서 스토이크의 목소리를 연기했고, 이번에도 같은 배역을 맡은 제라드 버틀러가 있다. 그의 연기력 덕분에 막상 대화하려고 마주 보면 서로 할 말이 없는 부자의 미묘한 공기가 생생하게 전달되기 때문. 그 결과 마음을 열고 진정으로 소통하는 법을 모르는, 익숙해서 더 안타까운 두 남자에게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다.
짧게나마 다른 부모 자식 관계도 비추는 컷도 히컵과 스토이크의 관계성에 깊이를 더한다. 원작과 달리 실사영화는 아스트리드나 '스낫아웃'(게이브리얼 하월)의 아버지도 등장시킨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자녀의 노력, 실패했을 때 그들이 겪는 좌절감과 상실감을 증폭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히컵, 투슬리스, 스토이크의 관계가 더 입체화된 결과 아버지가 아들을 인정하고, 인간과 드래곤이 친구가 되는 변화 또한 더 드라마틱하다.
개인을 넘어 공동체와 사회로
히컵과 스토이크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모와 자녀 관계를 묘사한 대목은 영화 외적인 맥락과 맞물리면서 의도치 않게 더 의미심장해진다. 여러 가족의 공통점이 부각됨에 따라 히컵과 스토이크의 갈등이 가족 내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적 차원의 이야기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즉, 히컵과 스토이크의 대립은 새 언어와 상식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가 기존 상식과 관성을 고집하는 기성세대에 맞서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드래곤을 대하는 태도는 이 갈등 구도를 단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히컵과 그의 친구들은 그들은 드래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언어로써 세상에 접근하고, 세계를 이해한다. 드래곤과 우정을 쌓은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평생을 드래곤과 싸운 어른들보다도 그들의 약점을 더 많이 발견한다. 더 나아가 드래곤들의 둥지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인간의 힘만으로는 대적할 수 없는 레드 데스와의 전투도 승리로 이끈다.
스토이크와 부모 세대는 다르다. 그들에게 드래곤은 이유 불문하고 제거해야 하는 적일 뿐이다. 뿌리 깊은 적대감과 관습과 한 몸이 된 그들에게 인간 대 드래곤의 이분법 외에 다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토이크만 하더라도 온 공동체를 파괴할 뻔한 패착과 위기를 겪은 후에야 비로소 히컵의 세상, 드래곤과의 공존이라는 변화를 수용한다.
세상을 새롭게 직시하는 이들과 기존 세계를 유지하려는 이들의 대립. 안타깝게도 이 갈등은 한국 사회의 거부할 수 없는 미래이자, 이미 일부분 현실화 현재라고 할 수 있다. 세대에 따라 첨예하게 갈린 정치적 의사가 그 방증이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드래곤 길들이기>를 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상념에 빠질 수 있다. 한국의 히컵과 스토이크들이 만들 버크 섬에서 드래곤이 적일지 친구일지는 아직 물음표로 가득하니까.
아류를 벗어나지 못한 모범생
하지만 <드래곤 길들이기>는 한편으로 공허하다. 실사화 작품으로서는 더 바랄 게 없을 완성도를 보여줬지만, 관점을 바꿔서 보면 명확한 한계점 또한 노출했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실사화 프로젝트와는 달리, 상업성을 제외하면 이 실사영화가 필요한 이유를 작품 내에서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 한계다.
그간 디즈니의 실사화 작품들은 현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 재해석이라는 의도를 꾸준히 제시해 왔다. <알라딘>은 '자스민'(나오미 스콧)'의 주체성을 강조했고, <백설공주>도 그저 주인공의 피부색만 바꾸는 게 아니라 그녀를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들의 연대를 상징하는 존재로 탈바꿈시키려 했다. 물론 그 의도에 관객이 호응할 때도, 안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 리메이크 영화의 필요성을 작품 내에서 설명할 수는 있었다.
그에 반해 <드래곤 길들이기>는 수익 창출이라는 기초적인 목적 외에 특별한 이유나 의도를 제시하지 못했다. 원작 애니메이션 개봉 후 불과 15년 만에, 3편 개봉 시점 기준으로는 6년 만에 제작된 리메이크이다 보니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명분도 성립하지 않는다. 결국 <드래곤 길들이기> 리메이크는 아무리 원작의 볼거리, 내용, 메시지를 충실히 재현한 모범생이라 하더라도 결코 아류라는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첫 실사화 작품이라는 점에서 <드래곤 길들이기>는 충분히 합격점을 받고도 남을 수작이 아닐까 싶다. 차별점이 부족하다는 단점 또한 첫 시도인 만큼 가급적 안정적으로 원작을 다시 보여주는 데 집중한 대가라고 이해할 수도 있으니까. 만약 드림웍스가 속편이나 다른 애니메이션도 실사화한다면, 그 초석인 <드래곤 길들이기>를 시급히 재평가하고, 추가로 고평가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모범생이 아니라 우등생이었다면 더 좋았을 리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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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유망한 그녀의 복수극 <프라미싱 영 우먼>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포스터
프라미싱 영 우먼 (Promising Young Woman, 2020)
장르 : 미국, 범죄·스릴러 │ 감독 : 에머랄드 펜넬 │ 각본 : 에머랄드 펜넬
출연 : 캐리 멀리건(캐시), 보 번햄(라이언), 레버른 콕스(게일) 외
등급 : 15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14분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스틸컷
그녀는 왜 복수의 화신이 되었나
‘캐시’는 한 때 의대를 다니던 촉망받는 여성이었으나, 현재는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며 친구의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을 딸이 대학을 중퇴하고 서른이 넘어가도록 방황만 하니, 부모는 늘 혀를 차기 바쁘다. 하지만 캐시가 성공가도가 보장될 대학을 포기하고 부모님의 눈치나 받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조용히 치러야만 하는 자신만의 과업이 있기 때문. 그건, 남자들에 대한 응징이다. 정확히는 술 취해 몸을 못 가누는 여성을 강간하려는 남자들을 향한 응징.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스틸컷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캐시는 매일 밤 클럽에 나가 술에 떡이 된 연기를 펼치며, 불특정 다수의 남성들이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백이면 백, 남성들은 캐시를 데려다주겠다며 나서고 결국엔 “우리 집 가서 술 한 잔 더 할래?”를 핑계로 손쉬운 성관계를 꿈꾼다. 여자는 취했겠다, 자신의 집에 자발적으로 따라왔겠다, 남성들은 온갖 아부를 떨어가며 캐시를 침대에 눕히는 데에 성공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성관계를 시도하려는 순간, 캐시는 벌떡 일어나 술기운 하나 없는 얼굴로 묻는다.
“너 뭐 하는 거야?”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스틸컷
쉽게 용서받은 너희들을 위해
대체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궁금해질 때 즈음, 캐시의 사연이 밝혀진다. 의대를 다니던 시절, 캐시에게는 ‘니나’라는 둘도 없는 절친이 있었다. 니나는 대학 파티가 있던 날, 만취상태가 되어 남학생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했는데 심지어는 그 영상이 찍혀 돌아다니자 결국 자살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곳은 무려 의대가 아닌가. 대학 당국은 훗날 사회에 큰 이바지를 하게 될 안타까운 청년들의 삶을 지켜주고자 사건을 덮어버렸고, 결국 가해자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사회의 재목이 되었다.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스틸컷
사회가 못하면 내가 너희를 벌하겠어
캐시에게는 이런 니나의 죽음이 트라우마이자 커다란 죄의식이었다. 때문에 대학도, 자신의 전도유망한 미래도 포기한 채, ‘술 취한 여성은 강간해도 된다’는 은근한 합의 속에 살아가는 남성들을 직접 벌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자신에게 투명한 진심을 보이는 남자 ‘라이언’을 만나 잠시 주춤하기도 하지만, 나쁜 놈들과는 다르다고 여겼던 라이언 조차도 실은 니나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캐시는 그 일을 계기로 더욱 열이 올라, 니나 사건의 결정적 가해자를 찾아 처단하기로 결심하는데. 의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앞날이 창창하다는 이유로 사회의 용서를 받았던 가해자 ‘알’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는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일로 누군가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잘 살고 있었다. 심지어는 모델 출신 여자 친구와 결혼까지 앞둔 상태였는데. 어처구니가 없어진 캐시는 알의 결혼전야 총각파티에 스트리퍼로 잠입한다.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스틸컷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했지?
그러나 그 개자식을 제대로 밟아주길 바랐던 관객의 기대와는 달리, 힘에서 밀린 캐시는 역으로 알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 만다.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걸었던 과업을 미처 끝내지 못한 채로. 캐시의 복수에서 간신히 살아 나왔지만 살인자가 되고 만 알은 결국 캐시의 시신을 유기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결혼식을 치른다. 자신의 숭고한 모델 여자 친구 ‘아나스탸사’와 함께. 그러나 결혼식이 끝날 무렵 경찰차가 결혼식장을 향해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온다. 자신이 죽게 될 상황까지 고려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캐시의 복수극이 끝내, 빛을 발한 것이다. 니나를 강간했으며 죽음으로 몰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창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용서받은 강간범 알은 그렇게 7년이 지나서야 죗값을 치르게 된다. 살인 혐의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스틸컷
이 제목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 영화의 제목은 <프라미싱 영 우먼>, ‘전도가 유망한 젊은 여성’이라는 뜻이다. 이는 2016년에 있었던 스탠퍼드 대학의 유명한 성추문 사건에서 기인한 제목이다. 사건의 내용인즉슨, 스탠퍼드에 재학 중이던 ‘브록 터너’라는 남학생이 술에 취한 여학생을 쓰레기통 뒤로 끌고 가 세 번에 걸쳐 성폭행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초범인 데다 전도가 유망한 젊은 청년”이라는 말로 브록 터너를 두둔했다고 한다. 명문대를 졸업해 사회의 빛이 될 청년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라는 거였다. 이 사건은 여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이런 망언을 남긴 판사는 결국 주민투표로 해임되었다.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스틸컷
갈 길은 멀고, 본질은 간단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미투 운동을 거쳐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의 목소리가 존중받는 시대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고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피해 여성이 ‘만취 상태’였을 때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네가 취하질 말았어야지. 네 발로 따라갔으니 너도 반은 책임이 있지. 그런데 정말 그럴까.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은 그런 모순을 찌르는 영화다. 강간범이 제 아무리 의대를 나왔든 장학생이든 그것은 면죄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여성을 강간해도 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설파한다.
현재 미국의 대통령이자 당시 미국의 상원의장이었던 ‘조 바이든’은 스탠퍼드 성추문 사건을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동의 없는 섹스는 강간이다”라고. 그의 말처럼 문제의 본질은 사실 간단하고 명료한 것 아닐까. 뭐가 어떻든 간에 강간범은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잘못을 했으니까.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스틸컷
언제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길 바라
몸을 가누지 못하는 캐시를 슬슬 구슬려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성관계를 시도하려던 수많은 남성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은 캐시가 겁박하자 이렇게 말한다. “나 좋은 사람이야” 그러나 상대가 취약하지 않을 때만 골라서 좋은 사람이면 뭐할까.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니나는 강간해도 되는 여자고, 결혼상대인 아나스타샤는 존중해야 하는 여자일까. 그래도 되는 여성과 그러면 안 되는 여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모든 남성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언제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기를 바란다. 자신의 전도유망한 미래가 안전하길 바라는 만큼.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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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죽어도 그 욕망은 남을지니
들어가며
지난주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 <귀신들> 시사회에 초청을 받아 개봉전에 미리 만나보고 왔다.
AI가 상용화된 근미래 세대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다섯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였다. 제목이 <귀신들>이지만 정말 귀신이 나오지는 않는다. 공포영화도 아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디스토피아적인 부분에서 공포감을 느낄 수도 있음.) 그렇다면 제목을 왜 귀신들로 지었을까? 리뷰와 함께 살펴본다.
#1. 보이스피싱 Boy's fishing
체감상 가장 인기가 많았던 에피소드였다. 첫번째 에피소드이기도 했고 아이돌 출신 배우 찬희와 고인이 되신 이주실 배우의 유작으로 알려진 보이스피싱은 영어제목대로 voice가 아닌 boy's라는 점이 반전이었던 이야기였다. 드라마적으로도 연출적으로도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에피소드가 아니었나 싶다.
첫 장면에서 엄마와 아들의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는 그림부터 이들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더니 1억이나 되는 돈을 달라는 아들의 재촉에 결국 노모는 그 돈을 주고 만다. 아들이 피싱 AI였다는 설정은 반전이 되지 못한다. 진짜 반전은 그녀가 아들을 닮은 피싱 AI를 이용해 사실 가장 바라왔던 일을 해내려고 하는 순간 벌어진다. 그녀에게는 오래전 실종된 아들이 있었고 평생을 그 집에서 혼자 아들을 기다렸다는 사실은 설정을 넘어서는 비통함이 있었다.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모든 기술이 사실은 그녀를 영원히 상처입힌 세상 속에 가두어버렸다는 사실도 많은 생각이 들게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죄와 상처, 욕망을 밸런스 있게 그려낸 좋은 작품이었다.#2. 모기지 Mortgage
원본인간의 AI로 남아 새 아파트로 이사오기 위해 자신의 사후(비활성화 이후) 일할 또 다른 AI를 만들까말까한 딜레마에 처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에피소드도 재미있었다. 그와 시종일관 다정하게 대화하던 분양사무실 직원도 사실은 키오스크 AI였다는 사실도 소소한 반전으로 재미를 더 했다.
부동산 신화가 건재한 대한민국에서 집을 사기 위해 인생 몽땅을 저당잡히는 것도 모자라 죽은 뒤의 자신의 분신에게까지 빚을 연대하게 만드는 설정에서 집이 인간을 사는건지, 인간이 집을 사는건지 모르는 아이러니를 깔끔하게 잘 풀었다. 다만 재밌는 설정을 전달하는 정도로 싱겁게 끝나버리는 점이 아쉬웠다.
#3. 음성인식
반려 동물처럼 반려 AI를 맞이하는 세계라면 유기동물처럼 버려지는 AI도 있는 법. 이 에피소드에선 진짜 자식이 생긴 뒤 버려진 아이AI가 등장한다. 아이는 유기된 아파트 단지에 남아 계속해서 혼잣말을 해댄다. 이 설정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A.I.>가 떠오르기도 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주인공이 그런 AI들을 찾아다니는 여자(이요원)이 주인공이라는 점인데 사실 이요원이 맡은 캐릭터는 명확하게 설명되진 않지만 아마 애니멀 호더의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불명확한 스토리라인에도 불구하고 이 에피소드는 이 영화의 중심이다. 영화의 제목이 <귀신들>인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에피소드이기 때문이다. 귀신 역시 누군가의 '한'으로 만들어져 인간세상을 떠도는 존재라 생각하면 귀신과 버려진 AI의 유사성을 쉽게 연결지을 수 있다.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탄생된 AI는 인간이 프로그래밍한 대로 말하고, 생각하며 평생을 인간 맞춤형으로 살지만 시효가 끝나고 나면 간단하게 버림받게 된다.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혼자 남아 끊임없이 사람을 부르고, 애정을 갈구하는 설정은 작가이자 감독이 AI의 정체성을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남을 욕망의 헌신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었다.*약간의 스포가 있습니다*
외간 찻집에서 첫사랑을 기다리는 남자. 드디어 그녀가 오고 두 사람은 함께 했던 예전의 이야기를 나눈다. 여전히 말이 잘 통하는 두 사람. 남자는 어렵게 자신의 진심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데... 그는 이미 죽었고 그녀 역시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 AI였기 때문. 뒤늦게 나마 서로의 마음을 안 그들은 이제 행복해졌을까?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대사만으로 전달하기에는 핍진성이 떨어지는 점이 아쉬운 에피소드였다.
#5. 업데이트 update
정경호 배우의 1인 2역이 돋보이는 <업데이트>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설가 위기찬이 죽고난 뒤에서 그의 정신과 성격을 이어받아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서 보험사는 위기찬의 AI를 보내며 시작된다. 외모가 똑같은 두 사람. AI는 빠른 속도로 위기찬의 학습하며 그가 남들 앞에서 얘기하지 않은 욕망을 드러내게끔 하는데.... 드러나는 충격진실은? 그 역시 AI였다는 것.
이건 창작자라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만한 에피소드였다. <모기지>의 예술가 버전이라고 해야할까? 직장인은 AI로 대출금을 갚는 노동자 복제를 남기고, 예술가는 자신이 죽은 뒤에도 미완으로 남을 소설 끝까지 써줄 창작자 복제를 남긴다. 마지막 에피소드 <업데이트>는 앞에 나온 네 개의 에피소드를 하나로 묶는 책이었고 영화의 에피소드는 모두 위기찬이 상상한 미래사회의 AI에 대한 허구의 소설이었던 것으로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
<귀신들> 총평! 추천? 비추천?
이 영화는 확실히 호불호가 나뉠 듯 하다. 평소 기승전결의 짜임에서 깊이 있는 스토리나 영상미, 캐릭터의 변화와 성장을 즐기는 관객분들이라면 불만족스러우실 것 같고. 가볍게 친구들과 영화관 나들이를 하면서 새로운 소재의 이야기를 기대하는 관객분들 또는 배우분들의 팬들이라면 소소하게 즐거운 관람을 하실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영화개봉이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참고하셔서 즐거운 관극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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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계급, 여성
축구, 계급, 여성
잉글리시 게임.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니시리즈 영화. 1부 6화. 여성(대부분)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가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는 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의 대부분 남성은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로만 일주일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국가대표 축구경기만 가끔 보는 나처럼,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남자라도 군대에서 축구를 한 경험이 있으며, 국가대표 선수와 해외에서 뛰는 한국선수들의 성적에 관해 대략은 알고 있다.
축구는 '럭비'에서 갈라져 진화한 새로운 스포츠로, 축구의 원형은 세계 여러나라에서 비슷하게 나타나지만, 그것을 하나의 '운동'으로 만든 것은 영국이다. 축구공의 재료도 돼지오줌보, 실뭉치, 새끼줄 뭉치, 천(옷)뭉치 등 다양하지만, 핵심은 둥근 공 형태로 만들어 그것을 발로 차며, 상대방의 골대에 공을 넣는 것이다.
'럭비'가 적대적 관계에서의 국가, 부족, 영주들 사이의 전투를 평화적으로 재현한 것이라면, 축구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팀을 만들어 다른 팀과 경쟁하거나 승부를 가르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전투의 '우호적 버전'이다. 작게는 마을과 마을의 경쟁과 친선, 우호적 관계를 위해 적대감을 해소하고, 우정을 쌓기 위한 동기로 '운동'의 형태로 벌어지며, 이것이 국가 단위로 커지면 올림픽과 월드컵이 된다.
럭비, 풋볼, 축구는 고대부터 내려오는 전투를 재연한다. 팀과 팀이 서로 마주보고, 땅을 뺐거나(풋볼, 럭비), 상대의 성(또는 고지)을 점령(골을 넣는 축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때 팀과 팀은 극도의 적대감으로 자신의 전투력을 고조하며, 육체와 육체가 부닥치면서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난다. 공은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의 상징이자 현현이며, 창과 칼, 도끼, 화살, 낫, 망치처럼 잔혹한 무기는 아니어도, 상대방에게 충격과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분명한 무기가 된다.
현대 축구는 영국에서 1870년 이전부터 시작했다. 영국축구협회컵 대회(FA) 결승이 1871년에 있었으니 그때 이미 영국축구협회가 귀족과 부르주아 중심으로 설립되었고, 영국 전역의 지방에 축구팀이 활동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도 낯익은 '아스널'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팀이 최다 우승을 차지하고, 이 영화에도 나오는 '블랙번'도 6회 우승으로 상위권에 있다.
이 드라마는 영국에서 있었던 실제 축구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실제 인물을 모델로 만들었으며, 당시의 축구와 계급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단지 축구만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주제별로 나눠 보면 대략 이렇다.
축구
초기 영국축구협회를 구성한 사람은 모두 귀족이거나 부르주아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팀을 만들어 운동도 하고, 다른 팀과 경기해서 여러 번 우승하기도 한다. 귀족과 부르주아의 권위와 권력은 대단해서 이들이 만든 규정에 따라 경기가 치러지고, 이들의 결의가 곧 축구협회의 권위였다.
드라마에서 귀족팀이자 영국축구협회 임원 대부분이 소속되어 있는 '올드 이트니안스'와 랭커셔의 면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다웬' 팀이 나온다. 주요 인물로 귀족이자 부르주아이며 '올드 이트니안스'의 주전 멤버인 아서 키나드가 있고, '다웬' 팀에서는 퍼거스 슈터가 있다. 이들은 각각 귀족(과 부르주아), 노동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현대 영국축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초기 축구는 지금으로 보면 '동네축구'여서 이렇다 할 전술과 전략이 부족하고, 공을 따라 몰려다니는 형태였다. 여기에 전술을 도입한 사람이 퍼거스였고, 퍼거스가 이적한 '블랙번'은 이후 네 번이나 우승하게 된다.
축구에서도 계급간 차별이 있었지만, 그래도 귀족(과 부르주아)과 노동자가 함께 땀을 흘리며 어울릴 수 있는 스포츠였다는 점에서 영국 축구는 비교적 평등하게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다 할 스포츠가 없었던 영국에서 대중 스포츠로 축구가 인기를 얻게 되는데, 드라마에도 나오지만, 일주일에 6일을 힘들게 일한 노동자들이 주말에 축구 경기를 보면서 힘든 노동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지역마다 축구팀이 있었고, 지역주민들은 자기 팀을 응원하며 일종의 경쟁심과 내부적 단결, 화합을 이끌어내는 효과도 있었다.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도 힘겨운 임금을 받으며 살고 있지만, 자발적으로 지역 축구팀을 후원하고, 팀은 팬을 위해 더 열심히 싸워 경기에서 이기려 노력한다. 이렇게 축구팀과 지역주민(대부분 노동자)이 단합하면서, 노동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노동계급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려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영국에서 극성팬을 표현하는 '훌리건'의 탄생 역시 이런 지역 기반의 축구문화와 관련 있다. 이들은 과격하고 비틀린 행동을 보여주는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하층 계급에서 느끼는 박탈감, 소외감이 폭력적으로 분출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영국에서 축구는 매우 중요한 스포츠이자 문화이며, 축구의 역사가 이미 150년을 넘어 역사가 되었다. 오랜 역사에서 쌓인 이야기는 대를 이어 내려오며 전설과 자부심, 자랑거리로 회자되면서, 지역과 가정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영국인들은 축구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자기 팀을 응원하는 팬들과 함께 동질감과 연대감을 갖는다.
계급
19세기 영국은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과정에 있었다. 유럽의 여러 나라도 이미 자본주의 발달 양식을 받아들여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었지만, 아시아만 해도 자본주의적 양식을 도입한 나라는 극히 드물었다. 한국은 여전히 봉건왕조 체제였으며, 외국과의 교류를 봉쇄한 채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것은 필연적 과정(마르크스)이었으며, 이것을 거부하는 국가는 강제로 주입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반대하는 사회주의가 탄생한 것 역시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발달한 이후였다.
드라마에서 귀족(과 부르주아)의 생활과 노동자의 생활은 극과 극이다. 노동자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마저도 일자리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해야 한다. 노동자는 쉽게 해고되거나 대체되어 일자리를 잃게 되고, 임금 수입이 없는 노동자는 사회안전망(복지)이 없어 당장 생계를 위협받는다.
따라서 노동자는 자신들의 생존과 권리를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해 자본가와 맞서게 된다. 자본(가)은 생산수단(토지, 공장, 시설)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강력한 힘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노동력은 소유할 수 없다. 모든 이윤은 바로 노동을 통해 창출되는데-노동가치설(아담 스미스, 마르크스)-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노동자이므로, 자본가는 노동자를 고용해야만 한다.
드라마에서 귀족(과 부르주아)의 대표로 나오는 '아서 키나드'는 합리적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노동계급의 어려움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또 그의 아내와 함께 극빈의 여성들을 돕는다. 하지만 이런 귀족(과 부르주아)은 극히 드물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시기-1880년대-만 해도 엥겔스에 의하면-영국노동자계급의 상태-아동 노동이 만연했고, 노동자의 하루 노동시간은 16시간에 이르기도 했다. 노동자의 평균 수명이 30년도 안 된다는 통계도 있는 걸 보면, 노동자는 자본의 착취에 쓰이는 단순한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축구팀을 만들고, 노동자들은 그 축구팀을 응원하면서 연대의식과 자부심을 갖는다. 이들은 '노동자 계급'이라는 단어에 자부심이 있으며,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노동자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노동자는 개인의 인격이 아니며,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노동자가 부끄러울 일은 결코 아닌 것을 알고 있다.
여성
이 드라마에서 여성의 삶이 중요하게 드러나는데, 귀족 여성과 노동 계급의 여성이 대비되는 한편, 이들이 오로지 '여성'이라는 존재만으로 동질감을 갖는 장면도 나온다. 사실 젠더로서의 성(여성)보다는 사회적 관계가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현실인데, 아서 키나드와 그의 아내처럼 귀족이나 부르주아라도 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먹고 살기 힘든 여성들이 모이는 '여성 쉼터'는 이때도 있었지만, 이보다 훨씬 앞선 15세기 이후 유럽 전역에서는 부랑자와 빈민을 위한 '구호소'가 생기고 있었다. 중세 시대에도 귀족과 영주, 교회에 의해 재산을 빼앗기고 부랑자, 극빈자가 된 농노, 민중이 많이 발생했고, 이들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왕과 교회는 이들을 사회에서 격리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때 유럽 전역에 있는 수많은 교회 공간이 수용소로 변하고, 부랑자와 극빈자, 미치광이, 병자, 고아를 수용하는 대가로 교회는 왕에게 지원금을 받는다.
초기의 이런 수용시설이 점차 감옥, 병원, 학교로 분화하는데-미쉘 푸코-이 드라마에서도 '여성 쉼터'에서 낳은 갓난 아이를 빼돌려 입양을 원하는 사람에게 돈을 받고 파는 장면이 나온다. 갓난 아이의 매매는 일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원작 소설인 세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에도 갓난 아이 매매 장면이 나온다.
19세기만 해도 그 이전보다는 나은 환경인 것은 분명하지만, 노동자들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만큼의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었고, 이것은 오늘 날에도 최저임금 또는 그 이하의 임금을 받는 모든 노동자들의 삶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삶은 남성에게 종속적이고, 피동적이며, 열등한 존재로 인식된다. 가부장 사회는 고대 이래 지금까지 줄곧 이어졌고, 어느 체제를 막론하고 가부장 체제는 유지되어 왔다.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지배계급의 철저한 전략이었지만, 대중 특히 남성은 이런 지배계급의 전략에 동조한다. 그것이 남성의 생존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여성은 사회 변화의 첨단에 섰고, 존재 자체가 진보적이며, 그들의 연대가 사회를 평화롭게 유지하는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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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와 클리셰가 합쳐진 변신
공포영화는 사실 거대한 스크린으로 보는 것을 무서워 하는 편이어서 영화관에 잘 안가는 편인데, 의도치 않게 영화관에서 보게 된 영화 <변신>.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으나 생각과는 다르게 클리셰 덩어리어서 실망감이 컸던 작품이었다.
영화 <변신> 시놉시스“어제 밤에는 아빠가 두 명이었어요”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악마가 우리 가족 안에 숨어들면서 기이하고 섬뜩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서로 의심하고 증오하고 분노하는 가운데 구마 사제인 삼촌 '중수'가 예고없이 찾아온다. 절대 믿지도 듣지도 마라.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변신>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무섭긴 했던 영화 <변신>
무서운 걸 좋아하지만 무서운 걸 잘 못보는 사람으로서,,, 옷으로 다 가리면서도 영화 <변신>을 꾸역꾸역 봤다. 청각적인 요소도 정말 잘 이용했고, 갑자기 악령에 빙의된 사람이 등장을 한다던지 아니면 피가 막 천장에서 비처럼 쏟아진다던지 그로테스크한 지점도 꽤나 있어서 무서움이 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았던 장면
그 무서움 속에서도 영화를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이 한 군데가 있었다. 바로 강구의 집 맞은 편에 살고 있는 이상한 남자의 죽음이다. 십자가가 거꾸로 메달려 있고, 염소의 사체와 각종 동물들이 사체가 집안에 널부러져 있는 아주 기괴한 집의 주인이었다.
그 이상한 남자는 중수가 방문을 했을 때 이미 죽어 구더기들의 밥이 되고 있었다. 그 순간 플래시백이 되면서 그 남자를 아내가 죽인 것처럼 보여주다가 다시 자신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는 이웃집 남자가 나온다. 본인이 본인을 죽인 것인지,, 아니면 살해를 당한 것인지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가족들의 내면 심리를 집중적으로 다뤘다면 명작이 되지 않았을까?
사실 영화 <변신>은 가족 내면의 심리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서운한 부분이 있을 것이고, 말하지 못한 것을 변신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풀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지점을 조금 더 심도 있게 그려냈더라면 가족 스릴러로 굉장히 밀도 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이러한 가족 간에도 말하지 못하는 생각들을 그저 소재로만 이용을 하고 악령에 빙의되어서 그 악령만 없앤다면 모든 것이 해결되어 버린다는 방책은 굉장히 아쉬웠다. 그리고 그 해결에 있어서 삼촌이자 구마사제인 중수가 십자가에 찔리면서 굉장히,,, 틀에 바긴 클리셰로 끝이 나는데 이 장면 역시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막판의 클리셰만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 내면 심리를 제대로 표현했더라면 한국 공포영화의 걸작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몰랐던 영화 <변신>.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지만 공포영화의 매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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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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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으로 구멍 뚫린 물 수송 차량,
하늘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비행 물체,
마을 곳곳에서 시신까지 발견되며
주민들은 혼란에 빠지는데…
이곳에 절대 발 들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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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지 마요! 뒤에....! ? #로스트시티 급 스릴러 모먼트? 보물 찾는 소설을 썼을 뿐인데... 거머리 무서워하는 허당 근육맨과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어드벤처라니? 로스트 시티 보물을 향해 쫓고 쫓기는 대유잼 어드벤처에 함께할 여러분(N명) 4월 20일, 극장에서 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