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03-09 18:36:40
꿈결의 사랑에 기대어
영화 <로봇 드림> 리뷰
SYNOPSIS.
뉴욕 맨해튼에서 홀로 외롭게 살던 ‘도그’는 TV를 보다 홀린 듯 반려 로봇을 주문하고 그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해수욕장에 놀러 간 ‘도그’와 ‘로봇’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휩쓸려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데··· “기다려, 내가 꼭 다시 데리러 올게!”
POINT.
✔️ 대사 없는 애니메이션인데, 대사 공백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촘촘한 연출력!
✔️ 색감도 아름답고 음악도 귀에 딱 붙는 명작
✔️ 도그와 로봇의 관계가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몽글몽글... 이건, 사랑입니다
✔️ 스페인 애니 낯설다고? 배경은 뉴욕 맨해튼! 감독 오피셜, 뉴욕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이자 뉴욕 오마주라고 해요. 그리고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정서가 펼쳐져요.
✔️ 칸영화제 특별 상영에서 최초 공개되어, 지금은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후보로 노미네이트! 쟁쟁한 기술력의 작품들 사이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작품을 만나 보세요

이 영화의 시놉시스를 읽는 순간, 보기도 전에 마음이 퐁당 녹았다. 따뜻한 관계와 갑작스러운 이별... 그 애틋함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 같은 건 모르니까. 뚜껑을 열어 보니, <로봇 드림>은 그런 기대를 기분 좋게 충족시키는 영화인 동시에, 뜻밖의 면면으로 기대를 기분 좋게 배반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어떤 사랑은 눈 마주치는 순간 시작된다
도그를 비롯해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모두 동물로 표현되고 있지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어렵지 않게 도그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다. 차갑고 어두운 도시의 밤, 2인용 게임도 혼자 해야 하는 도그는 외로움을 감출 수 없는 캐릭터다. 창문으로 보이는 이웃집 가족의 단란한 시간을 부러워 하기도 하고, 레토르트 식품을 혼자 데워 먹기도 하면서, 그는 외로운 생활을 채워 가고 있다.
그러다 문득 텔레비전 광고 속에서 보게 된 한 마디. "외로우십니까?" 그리고 마치 홀린 듯이 '반려 로봇'을 주문한다. 그냥 지나치려면 지나칠 수도 있었을 광고를 보게 된 것, 그런 순간도 어쩌면 운명적 순간이라 할 수 있을까? 답은 광고 이후의 관계에 달렸을 것이다. 두 존재가 특별하게 맞닿는다면, 그 시작점이 어떻게 운명이 아닐 수 있겠어.

'친구'를 의미하는 스페인어 Amigo/Amiga를 연상케 하는 (이탈리아어로 친구가 Amico/Amica이기도 하다) 로봇이 배달되고, 도그는 조립을 시작한다. 마침내 두 존재가 서로 눈을 마주쳤을 때, 둘에게는 편안한 미소가 떠오른다. 어떤 사랑은 그렇게 눈 마주치는 순간 시작된다. 당연한 것처럼, 더없이 자연스럽게.

둘은 더없이 행복하다. Earth, Wind & Fire의 명곡 <September>는 곧 둘의 주제가가 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은 도시의 주인공이다. 더이상 도그에게 어둡고 차가운 밤은 없다. "우리가 밤에 춤을 출 때 별들이 어두운 밤을 걷어가던 걸 기억하나요?" 노래 가사처럼 이제 그의 일상은 반짝거리고 사랑으로 가득하다.

그리움은 사랑의 그림자
그러나 둘의 관계는 신나게 해변을 찾았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이별로 귀결된다. 이후 둘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장면 하나하나가 정서를 어찌나 고스란히 담아내는지, 내가 연애하다가 헤어진 기분이 들 정도로 도그와 로봇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꿈결에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시간. 어쩌면 꿈처럼 기묘하게 정직한 것이 또 있을까? 트라우마처럼 남은 꿈에도, 무지개와 꽃으로 아름다운 꿈에도, 서로가 어른거린다. 그리움은 사랑의 해질녘 그림자가 아닐까. 사랑이 긴 만큼 더 길고 검게 늘어져, 둘을 놓아주지 않는다.

어쩌면 사랑은 돌봄의 방법을 아는 것
로봇과 도그는 서로의 유일무이한 친구로서 우정을 주고 받았을 수도, 아니면 독점적인 사랑을 주고 받는 연인 같은 관계였을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으로 받아들여도 이상하지 않거니와, 관계를 무엇이라고 명명하는지가 중요하지도 않다. 중요한 건 둘이 서로 함께 있는 시간을 온전히 기쁘게 즐겼고, 헤어지고서는 깊이 그리워했다는 것. 웬만한 로맨스 영화보다 깊게 그 기쁨과 슬픔을 전달한 영화는 이내 결말로 우리를 데려간다.
우리는 관계에서 배운다. 처음 로봇이 도그의 손을 너무 꽉 잡아 아팠지만, 이내 적절한 세기로 손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만남을 통해서도, 만남이 지속되는 시간을 통해서도, 헤어짐을 통해서도, 헤어짐 이후의 시간을 통해서도 우리는 배운다. 도그와 로봇이 주고받는 마음과 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내 사랑의 기쁨과 슬픔 사이에 하나를 슬며시 추가하고 싶어진다. 그건 돌봄이다. 서로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아는 것. 돌봄 없는 사랑은 모래 위에 지은 성 같다.
2시간 넘는 영화가 남발하는 세상에, 100여분의 산뜻한 러닝타임 안에서 영화는 그 모든 감정들을 고스란히 쏟아내고, 별사탕을 가득 받은 사람 같은 기분이 되어 기분좋게 영화관을 떠나게 만든다.

그런데 모두가 별사탕처럼 사랑스러운 것들만 끌어안고 있는 가운데, 나는 어쩐지 도그와 로봇에게서 자꾸 인간과 반려동물의 관계를 읽어내게 된다. 동물이 숱하게 유기되고 학대 당하는 사회에 살기 때문이겠지만, 서로를 기억하고 주고받는 감정은 분명 대등함에도 불구하고 한쪽이 한쪽을 구매하는 형태로 이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점이 어쩐지 마음에 자꾸 남는다.
하긴, 반려동물과 주고받는 감정은 우정과 사랑 모두를 아우르는 커다란 마음이니, 그렇다고 해도 꼭 이상하지는 않겠다. 내게도 몇 년째 꿈결에 그리워하는 동물 얼굴들이 있으니까.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얼굴들을 생각하면, 로봇과 도그의 마음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헤어지지 말자. 이 위험한 도시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일상의 낭만과 행복을 들이마시자. 우리만의 노래를 틀자. 그리고 혹시 헤어진다면, 꼭 다시 행복해지자.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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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관 확장하고픈 욕망만 한가득
'스위트홈 2'를 정주행 한 감상평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시즌 1 성공에 힘입어 세계관을 확장하고픈 욕망만 가득한 반면, 어디 하나 쉽게 몰입할 구석 없이 산만하기만 하다.
3년 만에 시즌 2로 돌아온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은 욕망이 괴물을 만드는 디스토피아를 배경을 삼고 있다. 시즌 1에서는 생존을 위해 그린홈 아파트에서 정체불명의 괴물과 사투를 벌이던 차현수(송강)와 그린홈 주민들에게 포커싱 했다면, 시즌 2에선 그린홈 밖으로 나온 이들의 생존기와 또 다른 존재의 등장,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현상들까지 드러난다.
'스위트홈 2' 스토리 초반은 다양한 이야기 갈래로 나눠서 조명한다. 정의명(김성철)에게 몸을 탈취당한 편상욱(이진욱)은 군인들에게 잡혀가던 차현수를 빼돌려 신인류가 되어보자며 자신의 편이 되길 회유하고, 임신한 서이경(이시영)은 남편을 찾기 위해 밤섬특수재난기지에 숨어들어 진실에 접근한다.
그리고 이은유(고민시)와 윤지수(박규영)를 비롯한 그린홈의 나머지 생존자들은 군인들을 따라 안전캠프로 가는 길에서 예상치 못한 역경을 겪는다. 여기에 탁상사(유오성)가 이끄는 까마귀 부대와 괴물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임박사(오정세)의 이야기가 맞물린다. 그러면서 주무대는 그린홈 아파트가 아닌 안전 대피소 스타디움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이야기와 갈등으로 엮어낸다.
시즌 1이 공개될 당시 시청자들에게 혹평을 받았던 '몰입도 빌런' OST 삽입은 말끔하게 해결됐다. 최대한 극에 집중하게끔 최대한 잔잔한 톤으로 깔아 두면서 자신들의 장기인 '한국적 정서'로 끌어들인다. 이번 시즌에선 가족애, 모성애로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려는 게 보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링크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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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러의 보디가드 2> 전 세계 박스오피스 접수하러 등장!
2017년 개봉한 액션 코미디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의 후속작인 <킬러의 보디가드 2>가 북미 박스오피스 차트 1위에 도전할 예정입니다.
<킬러의 보디가드 2>가 이번 주 북미에서 개봉하는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박스오피스 1위 달성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으로 추측됩니다. 국내도 마찬가지입니다. <킬러의 보디가드 2>는 국내 2021년 6월 23일에 개봉 예정인데, 조우진 주연의 영화 <발신제한>을 제외한다면 딱히 경쟁작이 없는 상황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라이언 레이놀즈, 사무엘 L. 잭슨 그리고 셀마 헤이엑이 주연을 맡은 <킬러의 보디가드 2>는 16일에 개봉하여 오는 23일까지 1,500만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킬러의 보디가드 2>는 몇 안 되는 극장 개봉작 중 하나로서, 이 영화는 영화 사업이 코로나 침체기에서 회복됨에 따라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킬러의 보디가드 2>는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대형 스크린에서 공개된 첫 코미디 작품인데요. 이는, 슈퍼 히어로와 서스펜스 스릴러의 인기로 인해 많은 영화 팬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장르이기도 하기에, 이번에 얼마나 많은 관객들을 이끌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이번 후속작은 1편보다 더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킬러의 보디가드 2>의 제작비는 5천만 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고, 1편은 6천9백만 달러의 예산이 소요됐습니다. <킬러의 보디가드>가 북미 박스오피스 티켓 판매 2,100만 달러로 시작하여, 북미 박스오피스 최종 7,500만 달러, 그리고 전 세계 1억 7,6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다소 부족한 흥행 성과와 함께 극장 개봉을 마친 이력이 있기에, 줄어든 예산에 대한 문제점을 납득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킬러의 보디가드 2>는 마이클(라이언 레이놀즈)과 다리우스(사무엘 L. 잭슨)가 유럽 전역을 위기로 몰아넣는 미치광이들의 사악한 음모를 없애기 위해 다시 뭉치게 된다는 줄거리로, 다리우스의 아내 소니아(셀마 헤이엑)까지 합세한다는 차별점을 담고 있습니다.
개봉 예정작인 <킬러의 보디가드 2>를 제외하고, 현재 북미 박스오피스 시장은 <인 더 하이츠>와 <피터 래빗 2>가 이끌고 있는 상황입니다. 두 영화 모두 예상보다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데, HBO Max에서도 관람 가능한 <인 더 하이츠>는 총 1,14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피터 래빗 2>는 1,01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백신 접종으로 인해 되살아나는 극장 시장과 액션 코미디 장르의 귀한! 과연 <킬러의 보디가드 2>는 <인 더 하이츠>와 <피터 래빗 2>를 넘어서 북미 박스오피스 시장 1위에 안착할 수 있을까요? 국내에서도 6월 23일 개봉 예정이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씨네랩 에디터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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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후의 초상화 밖으로 뛰쳐나간 여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코르사주>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이름을 날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후 '엘리자베트(비키 크립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인 '프란츠 요제프(플로리안 테히트마이스터)' 황제는 인형과도 같은 황후의 역할만을 요구한다. 이에 엘리자베트는 답답한 코르사주(코르셋)를 조인 채 무거운 머리를 지탱하며 그저 우아하게 앉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마흔 살이 넘어가면서부터 그녀는 아들인 '루돌프(아론 프리즈)' 황태자의 경고도 무시한 채 여행, 불륜, 마약에 손을 대며 한 명의 여성이자 개인의 삶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2022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되어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고,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오스트리아 공식 출품작으로 선정된 영화 <코르사주>. <코르사주>는 흔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후이자 ‘시씨’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사실 엘리자베트 황후의 이야기는 뮤지컬 '엘리자베트(엘리자벳)'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는 자유분방한 소녀였지만 황후가 되었고, 전통과 관습이 지배하는 궁정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아름다운 미모로 전 유럽 사람의 찬사를 자아냈지만, 미모를 관리하던 중 거식증에 걸리는 등 온갖 고초를 거쳐야 했다. 그러면서도 궁전을 벗어나 자유를 갈망한 비운의 황후였다. 마치 다이애나 스펜서의 선배처럼 보이기도 한다.
<코르사주> 속 엘리자베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영화는 그녀의 일대기를 그려내는 대신 '마흔이 된 황후 엘리자베트’의 변화에 주목한다. 특히 그녀가 어느 시점부터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착안해 왜 그러한 선택을 내렸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렇게 영화는 황후라는 이미지에 가려진 한 인간 엘리자베트의 얼굴을 세상에 내보인다.
영화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숨을 참는 엘리자베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목욕을 마친 그녀는 코르사주로 허리를 동여맨다. 준비를 끝내고 황제와 함께 미술관 개장 행사에 참여한 그녀는 코르사주를 지나치게 세게 묶은 나머지 돌연 정신을 잃고 기절한다. 하지만 그 후로도 그녀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계속해서 아름다운 인형으로 남아야 한다. 일례로 그녀의 식단은 만찬과 연회 중에도 철저한 관리 대상이다. 그녀는 남들이 먹는 화려한 음식들에 손조차 댈 수 없다. 황후에게는 황제 옆에 서서 인형처럼 웃는 것 외에 다른 일이 없으므로, 조금이라도 인형의 외관에서 벗어나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마흔 살 생일을 맞이하자 더 많은 압력이 가해진다. 황실 소속 화가가 그녀의 변화를 눈치채자 주치의는 여성의 평균 수명이 마흔이니 더 각별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오프닝은 엘리자베트라는 역사적 인물의 삶을 빌려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지를 명확히 암시한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아름다움'이라는 미적 기준이 개개인을 억압하고, 삶을 피폐하게 만들며, 수동적인 존재로 격하한다고 비판한다. 이전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권리가 보장되었는데도 여전히 아름다움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엘리자베트를 구속한 악습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탈코르셋’(탈코) 운동처럼도 보인다. 사회구조적 외모 강박 혹은 여성성 강요에 저항하려는 목적으로 화장이나 긴 머리, 여성적 옷차림 등 ‘사회적 여성성’을 부정하는 시도가 엘리자베트의 삶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는 한 개인으로서 엘리자베트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포기하는 선택과 황후로서 엘리자베트가 자신을 옥죄는 규범을 어기며 자유를 갈망하는 모습을 같이 위치시킨다. 그녀는 코르사주를 벗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단발로 잘라버린다. 동시에 황제의 부인이라는 지위를 거부한다. 황제에게 정부를 소개하고, 영국인 승마 선수 조지 베이나 사촌 루트비히 2세와는 사랑과 우정 사이의 관계를 유지한다. 한편으로는 황후로서 참석해야 할 공무를 외면한 채 자유를 즐긴다. 또 고정된 이미지로 남아야 하는 초상화 작업은 거부하지만 자유롭게 들판을 거니는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동영상 촬영에는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황후의 삶을 포기하고 여성으로서의 자유를 추구하는 엘리자베트의 노력은 그녀가 갖고 있던 또 다른 가능성 때문에 더 인상적이다. 그녀는 우울증에 시달린 자기 경험을 투사하며 정신병 치료와 정신병원 시설 개선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림을 그리는 예술적인 면모도 지녔고,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발칸반도 진출과 관련해 전황을 판단할 줄 아는 식견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만약 그녀가 미모를 가꾸는 데 열중해야 했던 시간과 노력을 다른 데에 투자했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의 지향점을 생각하면 꽤 의미심장한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는 황실의 모습을 비추면서도 화려한 궁전 내부를 기대보다 자주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각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칙칙하고 어두운 통로들을 더 자주 비춘다. 마치 겉보기에는 화려하나 실제로는 생기가 없는 엘리자베트의 외관과 내면을 한 공간에 담기라도 한 듯이. 또 그렇기에 <코르사주>가 완성한 황후 엘리자베트의 새로운 초상도 인상적이다. 황후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바닷속에 몸을 던져 자유를 얻는, 비극적이면서도 엄청난 해방감을 선사하는 결말의 순간에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숨 쉬고 있는 엘리자베트를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인과 황후라는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엘리자베트의 변화를 <코르사주>가 과연 적절히 전달하는지는 의문이다. 영화는 엘리자베트라는 실존 인물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요소만 부각해 원하는 인물상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마리 크로이쳐 감독은 "영화적 내러티브로 전환하면서 내용과 형식적으로 많은 자유를 부여했다"면서 "이야기하거나 묘사하는 것에 있어 모든 역사적 ‘실수’는 모두 예술적 결정이었다. 나는 멋지고 깔끔한 전기 영화를 만드는 데 관심이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코르사주>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 또한 조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선택은 그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스트리아의 황후라는 지위가 얼마나 부담되고 무거운 자리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엘리자베트의 고난과 시련이 구체적으로 와닿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쇠락기에 접어든 제국이었다. 1866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오스트리아를 통치하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제국이 붕괴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헝가리의 요구를 일부분 받아들여 1867년에 오스트리아 황제가 곧 헝가리의 군주를 겸임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군주제 체제를 구축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나름 동등한 위치로 제국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제와 황실의 존재는 붕괴 위기에 빠진 제국을 지탱할 몇 안 되는 도구 중 하나였다. 마치 엘리자베스 2세와 영국 왕실이 영국이라는 국가와 영연방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어 유지한 것과 유사한 역할을 맡아야 했다. 즉, 당시 황제와 황후, 그리고 황실은 서로 다른 민족과 국가를 하나로 묶는 상징이자 실질적 제도로서 기능해야 했다. 실제로 엘리자베트의 막내딸 발레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제국의 통합을 상징하는 공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황후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은 단순히 미모를 관리하는 것 이상으로 무거운 책임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나 맥락을 알 수 있는 장치는 많지 않다. 특히 오스트리아 관객이 아니기에 더욱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 결과 엘리자베트가 겪은 여러 어려움은 그저 막연하다. 짐작하고 동조할 뿐, 설득될 수가 없다. 황후로서 역할이 얼마나 막중했는지, 그녀의 역경이 얼마나 큰지, 또 그녀의 고통이 얼마나 강한지 명확히 드러날수록 해방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큰 쾌감이 느껴질 것이고, 그녀에게 자유가 의미하는 바가 더 절실히 느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왜 승마를 그토록 사랑했는지, 왜 그토록 손쉽게 마약에 빠져들 수박에 없었는지 그 동기와 계기도 더 잘 설명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듯 보이기도 한다. 다음처럼 이해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엘리자베트가 황후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도 져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전자를 누릴 뿐, 후자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 배경이 어떻든 간에 작중 엘리자베트가 결국 무책임한 인물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몸이 약한 막내딸을 굳이 새벽에 외출시켜서 감기에 걸리게 하는 것, 그토록 엄중한 상황에서 자신의 스케줄을 마음대로 거부하는 것, 평생 여행을 다니며 황후의 역할을 회피하는 것도 마냥 동정을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제목인 코르셋(코르사주)이라는 상징에 담긴 <코르사주>의 메시지는 여전히 시의적절하다. 그 메시지를 현현한 엘리자베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충분히 흥미롭다. 하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다소 부적절한 것도 사실이며, 그 결과 과연 이 영화가 원하는 대로 수용되거나 해석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결국 <코르사주>는 황후와 여성 사이에서 길 잃은 엘리자베트만큼이나 모호한 인상을 남긴 채 막을 내리고 만다.
A(Acceptable, 무난함)
평범한 여성이 되고 싶었던 황후. 실존적 불안과 치기 어린 불평 사이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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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피커 인터뷰] 프로덕션 대표 / 영화, 그리고 나_2
Q. 안소회 감독의 인생 영화는?
A. 제일 많이 본 영화가 하나비라는 영화였는데 그것들을 그걸 말을 해야 하는지 그 인생 영화의 기준이 요즘 좀 모호해지고 있는 것 같고요.
사실은 지금까지도 근데 인생 영화가 나한테 가장 큰 영향을 줬던 영화다라고 정의를 한다면 하나비라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뭔가 영화에서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대사나 뭐 연기라든지 여타 이런 것들로만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라 이미지로 이렇게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구나라는 것들을 좀 처음 알게 됐었던 영화인 것 같습니다.
한합이라는 영화가 중간에 실사 이미지는 아닌데 그 그림이 이렇게 나와요.
그 화면을 오프닝 시퀀스에 기타노 다케시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이렇게 나오는데 몸은 동물이고 얼굴은 꽃인 그런 이미지들이 쭉 나와요.
처음 볼 때는 그게 뭔지 모르겠었는데 그 영화를 거의 한 9번 10번은 봤던 것 같아요.
근데 그러면서 끝을 보고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그 이미지를 보면 또 느껴지는 게 있더라고요.저게 어떻게 보면 살아있는 삶과 죽음이라는 것들을 되게 모순적이지만 하나로 표현하는 것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비라는 제목도 되게 인상이 깊었던 것 같고요.Q. 좋은 연출이라고 생각하는 영화는?
A. <연애의 온도>라는 영화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제가 사실 막 사람들이 되게 좋은 영화는 맞지만 그 영화가 뭔가 정말 작품성이 있다 막 그렇게 평가를 많이들 하지 않잖아요.
그 영화를 근데 저도 처음에 학교를 다닐 때 연출이 잘 된 영화다 그러면 뭔가 정말 좋은 이미지가 나와야 하고 그 사람만의 색깔 작가주의가 뚜렷하게 보여야 하고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들어 생각하는 정말 좋은 영화는 그 영화를 보고 되게 내 감정이 움직일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연애 온도라는 영화가 저한테 그랬던 영화고 그렇게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연출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연애의 온도>가 연출이 되게 잘 된 영화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Q. 영화 연출할 때 가져야 할 덕목이 있다면?
A. 좀 고집이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자기가 딱 생각나는 것들이 있으면 사실 때로는 비굴한 순간들이 있고 때로는 억지 같은 순간들이 있잖아 있겠지만 자기만의 확신을 갖고 끌고 갈 수 있는 밀고 갈 수 있는 고집이 좀 있어야 된다라고 생각을 하고요.
처음에는 저도 리더십이 있어야 되나 영화 감독은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솔직히 말을 하면 그것들은 뭐 PD님들이나 조 감독님들이 알아서 잘 굴려주시는 거고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말들 꿋꿋이 하는 게 좀 더 좋은 감독이지 않을까 그리고 책임을 져야 되는 자리라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본인이 밀고 가고 끝까지 고집을 부렸을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그렇게 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또 하나의 덕목이라고 생각을 합니다.Q. 감독님이 생각하는 좋은 영상이란?
A. 목적에 부합하는 영상이 가장 좋은 영상인 것 같아요. 영화도 마찬가지고 영상도 마찬가지고 모든 것들은 목적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화라고 하면 내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여야겠다가 될 수도 있고 영상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영상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제가 생각할 때 좋은 영상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상이라고 생각을 하고 제가 항상 어디 가서 메일이 됐든 만나 뵙든 저희 회사 소개를 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문구가 마음을 담은 영상을 제작하는 프로덕션이다라고 표현을 하는데, 누군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만드는 사람들이 마음이 담겨야 움직인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좋은 영상이라고 하면 만드는 사람들이 마음을 담고 그 마음을 담은 영상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는 영상이 좋은 영상이라고 생각합니다.Q. 영화를 꿈꾸는 친구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
A. 저는 개인적으로 본 이제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뭔가 딱 나는 이것만 해야 돼라는 것들을 정해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그게 나는 무조건 영화만 할 거야 나는 무조건 드라마만 할 거야. 아니 나는 뮤직비디오만 할 거기 때문에 이건 안 봐도 돼.
그런 시대는 좀 지난 게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냥 즐거운 것들을 계속하다 보면 이게 좀 더 맞는 것 같다 정도는 나오는 것 같거든요. 근데 저도 아직 그것들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는 상태지만 뭔가 그때부터 나는 연출이니까 연출만 해야지 촬영만 해야지 녹음만 해야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냥 다 열어놓고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이 영상을 보고 있거나 아니면 입시를 준비한다는 친구들은 그래도 또래 다른 친구들보다는 조금 더 영화를 좋아하고 영상을 좋아하는 친구들일 테니까 뭔가 자신이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미리부터 이렇게 딱 제한하고 정해놓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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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피어날 것은 피어난다
SYNOPSIS.
대출과 빚에 허덕이는 ‘브루노’와 ‘알베르’ TV 중고거래에서 우연히 만난 둘은 공짜 맥주와 감자칩에 이끌려 얼떨결에 환경 운동에 동참하고,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블랙 프라이데이에 반대하는 ‘캑터스’를 만나 환경 운동에 점점 진심이 되어가는데… 살기는 어렵지만 사랑은 하고 싶은 두 남자와 환경 문제 외에는 모든 것이 무감각한 여자까지… 갓생을 꿈꾸는 파리지앵 3인의 동상이몽 라이프가 시작된다!
POINT.
✔️ 프랑스 영화는 난해하다는 인식을 깨고 한국에서도 흥행했던 <언터처블: 1%의 우정> 감독 작품이에요
✔️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사랑받은 <알로 슈티>처럼 가볍고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예요
✔️ 팬데믹과 기후위기 속에서 젊은 세대가 느끼는 감각을 전제로 한 작품이라서 흥미로워요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노에미 멜랑 주연! 마티유 아말릭 등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 얼굴들도 반가워요
계절을 따라 부지런히 옷장 정리를 하다가 한숨이 나온다. 아직 멀쩡하다 못해 새 옷에 가까운 상태이지만 여태까지 손이 잘 가지 않았고 앞으로도 입을 것 같지 않은 옷부터, 마르고 닳도록 입었긴 해도 버리긴 애매한 옷까지... 버릴 것이냐 말 것이냐, 늘 고민하는 동안에도 옷장에는 새 옷이 들어오고, 더 이상은 공간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큰맘먹고 옷을 덜어냈다. 그리고 이제 당분간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한다. 내 돈 주고 산 옷이 나에게 짐이 되는 게 싫다. 그러는 동안 밖에는 종일 그치지도 않고 장마 같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강원도 어디에는 눈이 왔다고 한다. 지금 5월인데요.
우리가 이런 시대를 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텀블러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 단톡방에서 대놓고 부정 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천 번을 써야 한다는둥 그건 의미가 없다는둥... 나는 더 이상 그 단톡방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 텀블러에 대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예의 차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기후위기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제 몇 남지 않은 것 같지만, 그럼에도 개인의 민감도 차이는 분명 존재하고, 거기에 타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엔 너무 바쁘고 지치고 화가 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가 이런 시대를 산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런 우리 삶과 닮은 현실을 산다. 그래서 이 영화는 흥미롭다.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몰랐던 시절의 로맨스처럼 부요한 재정 상태나 환경 상황을 자랑할 수 없는, 낭비할 거라곤 없고 그래서 휘청거려도 기댈 데 없는 세대를 담고 있어서.
심지어 이 영화의 주축을 이루는 브루노와 알베르는 소액 대출을 계속하다가 파산에 이르른 사람들이다. 공짜 맥주를 따라가다 보니 환경 단체 사람들을 만났고, 지금껏 그래왔듯 어영부영 돌려막기 하는 태도로 이들의 활동에 합류한다. 닉네임제로 운영되는 환경 단체 규칙에 따라 '캑터스(Cactus, 선인장)'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여자를 보며 점차로 환경 운동에 진심이 되어가는데, 앞날은 여전히 캄캄하다. 브루노도 알베르도 각자의 행복을 찾아갈 수 있을지 궁금해 하며 이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캄캄하고 답답한 상황임에도 어쩐지 실 없이 웃게 된다.
올해도 힘든 한 해가 될 거예요
사실 이 영화의 원제는 '힘든 한 해 une année difficile'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가 익히 아는 프랑스의 대통령과 고위 정치인들이 나와서 "올해도 힘든 한 해가 될 것입니다" 같은 문장들을 말하는 장면들이 모여 나오는데 이 오프닝 시퀀스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 모든 시대에는 그 시기의 어려움이 있고, 모든 세대는 각자의 어려움을 돌파하며 살아가야 한다. 캑터스와 친구들은 그 문제를 환경 문제로 정의했고, 그에 따라 스크럼을 짜고 구호를 외치며 시대에 맞선다.
이들에게는 낭비할 자원도, 기댈 환경도 없다. 그렇기에 과격해진다. 환경 문제보다 부동산과 주식이 더 중요한 한국의 기성세대에게는 믿고 싶지 않겠지만, 전세계적으로 청년과 청소년들은 이 불만을 말하고 있다. 신자유구의 구조에서 빈부격차는 점점 빅토리아 시대의 그것에 가까워지고 있어 청년 세대는 점차 가난해지고 있으며 (이 부분은 한국 사회에서도 대체로 동의하는 것 같지만), 환경적으로도 기댈 곳 없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소리만 듣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앞에서 목소리를 냈지만 들리지 않아 더 이상 말할 수 없다며 입을 꿰매고, 환경 문제의 시급성을 가장 큰 소리로 외치기 위해 미술품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영화 속 환경단체 사람들도 가게를 막고, 차량 통행을 막고, 심지어는 비행기 출발까지도 막는다.
이들에 대한 관객의 반응 차이가 흥미로운데, 현실에서의 환경 단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폭도처럼 묘사하거나 오히려 이들 때문에 반감이 생긴다며 어깃장을 놓는 사람들이 있다. 너희 때문에 더더욱 채식하기 싫어. 식물은 안 불쌍하니? 같은 사람들 말이다. 골프장의 환경 오염을 지적 당하기는 싫어하면서, 환경 단체 사람들의 행동은 하나씩 문제 삼는 사람들.
하지만 이 영화 속 마티유 아말릭이 분한 캐릭터를 보라. 그는 은행에서 일하는 기성세대이자, 파산 위기에 놓인 젊은이들을 위해 봉사활동까지 하는 훌륭한 어른이지만, 동시에 카지노 출입에 미련을 못 버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다 조금씩 모자란 채로 산다. 그것을 청년 세대만의 문제로 취급하거나,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의 유난으로 치부하는 자세는 별로 어른스럽지 못하다. 물론... 이 영화 속 청년들도 무분별한 소비를 그만두고 좀 미래 지향적인 재정 계획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게 꼭 골프장 부동산 주식으로만 귀결되는 모양새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우리 모두가 동일한 가치를 지향할 수는 없으니 그렇다면 조롱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바로 그런 자세들이 가뜩이나 힘든 올 한 해를 더 힘들게 해요...
올해도 힘든 한 해가 될 거라는 오프닝 시퀀스는, 역시나 2024년에도 들어맞는다. 우리 시대가 유독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지금 세대이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서 보면 과거의 '힘든 한 해'는 다 지나간 것들이기에 단순해 보인다. 1920년대는 독립운동이었겠지. 1970년대에는 민주화였겠지. 하지만 당대에도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립운동 하에 치열하게 갈라졌을 생각을, 민주화와 경제화 앞에서 각양각색으로 펼쳐진 담론들과 그 안의 우선순위 다툼들. 지금도 마찬가지다. 환경이 먼저냐, 경제가 먼저냐. 어려움조차 각자의 몫으로 흩어져 버린 것 같은 절망적인 한 해, 역시나 올해도 힘든 한 해다.
하지만 유쾌하게 해나갈 수 있지
세상 모든 단체처럼 이들이 활동하는 환경 단체 안에서도 다양한 다이나믹이 펼쳐진다. 물론 환경을 위한 활동을 펼친다는 점은 다름이 없지만, 환경 외의 모든 것에 무감한 채 앞만 보고 달려나가는 캑터스와 달리, 브루노와 알베르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 안에서 다른 감정들이 동기로 작용하기도 하고 결정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OO에서 만나서 결혼하게 됐어요"라고 말하며 웃는 커플들 모두 그런 시간을 거쳤을 것이다.
이들이 주고받는 사랑 또한 여느 영화와는 다르다. 장미꽃과 안개꽃 뒤섞인 90년대 테이블 위의 로맨틱한 식사도 없는, 고급스러운 명품 선물도 없는 만남. 단지 스스로가 살기 위한 구호를 외치며 만나고, 스스로가 좀더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선물 하나를 고르거나 받을 때에도 신중하다. 자연스럽게 삶에 녹아든 구호들은, 가끔은 아주 비장하지만 또 매일 묵직하지만은 않다. 이들의 사랑도 이들이 외치는 구호도 삶에 그렇게 녹아든다. 투쟁과 경각심, 기후 우울의 세대이자 가난과 채무의 세대인 이들은, 그렇게 삶에 유쾌한 순간들을 녹여낸다.
동시에 이 영화는 사랑의 작대기에만 집중하지도 않는다. 동병상련 브루노와 알베르의 적당하고 느슨한 협력, 얼레벌레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모습. 전형적인 끈끈한 우정과는 거리가 있지만, 원래 우정이라는 게 그렇게 얼레벌레 쌓이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이따금 알지 못했던 서로의 모습을 보고 시원하게 깔깔 웃어버리기도 하고, 영웅 서사 같은 일을 겪기도 하면서, 이들은 하루씩 나아간다. 남들과 다른 감각으로, 그러나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답게.
그 즐거운 모습을 보다 보면 짙은 기후우울이 조금 달아나는 기분이다. 그치. 내일이 없는 삶 같은 기분이 들지만, 오늘을 차곡차곡 이어가는 거지. 비록 낭비할 낭만도 기댈 환경도 없이, 혼란스럽게 흔들리는 빈곤한 세대이지만. 이들의 투쟁이 아무리 불안하게 휘청거리는 것처럼 보여도, 이들의 선택이 아무리 빈곤한 것처럼 보여도, 화낼 필요 없다. 아무튼 피어날 것들은 피어난다. 마음도, 사랑도 우정도, 그 안에서 내일도.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하여 시사회에 참석해 감상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 개봉은 5월 15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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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까운 작품에서 빛나버린 배우들의 연기력
어떠한 정보도 없이 조승우가 나오는구나! 사극이구나! 라는 점만 알고 왔던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이 작품이 명성황후, 민비에 대한 이야기인 줄 꿈에도 모르고 봤다. 극이 시작하면서 민자영이 어쩌고 이래서 민,,,자영,,? 명성황후? 하고 뒤늦게 깨달았고, 역사왜곡은 이해하더라도 과연 그 입장 차이를 잘 풀어낼 수 있을지 불안해 하며 본 작품이었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시놉시스
세상에 존재를 알리지 않은 채 자객으로 살아가던 무명은 어느 날,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피비린내에 찌든 자신과 너무나 다른 여인, 자영을 만나게 된 것. 하지만 그녀는 곧 왕후가 될 몸으로, 며칠 후 고종과 자영의 혼례가 치러진다. 무명은 왕이 아닌 하늘 아래 누구도 그녀를 가질 수 없다면, 자영을 죽음까지 지켜주겠다고 다짐하고, 입궁 시험에 통과해 그녀의 호위무사가 되어 주변을 맴돈다.
한편, 차가운 궁궐 생활과 시아버지와의 정치적 견해 차이로 하루도 안심할 수 없는 나날들을 보내던 자영은 무명의 칼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일본의 외압과 그로부터 조선을 지키기 위한 자영의 외교가 충돌하면서 그녀를 향한 무명의 사랑 또한 광풍의 역사 속으로 휩쓸리게 된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왜곡이야 그렇다치고,, 그럼 개연성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명성황후, 민비에 대한 재현은 언제나 역사왜곡 논란이 거듭된다. 왜냐면 그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개혁 개방 정책을 한 왕후를 좋게 보기도 하지만 그 방향은 옳았을지 모르지만 그 방법은 옳지 못했기에 나쁘게 평가를 하기도 한다. 더불어 을미사변으로 시해됐을 때 목격자들 마저 모조리 몰살당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 대해서 상세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그 소재는 미디어 재현으로서 굉장히 적합한 소재이면서도 역사 왜곡이 너무나도 쉽게 될 수밖에 없는 소재이기도 하다.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이처럼 논란이 많은 명성황후, 민비를 소재로 택햇기 때문에 역사 왜곡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왜곡을 한다 하더라도 그 왜곡된 내용 안에서는 개연성이라도 갖춰야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보는 내내 도대체 저 둘은 왜 사랑에 빠진 것인지 알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 봤는데...? 수애 정도의 미모면 물론 한 눈에 반할 수도 있겠지만 저렇게까지 목숨바쳐 사랑할 일인가? 저렇게까지 식음을 전폐할 수 있는 것인가? 사랑이라는 큰 주제 자체에서 이미 개연성을 잃어버려서 영화를 보는 내내 큰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불필요한 장면들이 너무 많았던 작품
주제 자체로도 개연성이 없는데 장면장면도 개연성이 없었다. 불필요한 장면들이 너무 많이 나왔다. 무명이 자객이고 무술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굳이 저렇게 티나는 CG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휘영청 달빛이 쏟아지는 바다 위 쪽배에서 칼로 싸우는데,,, 무슨 만화영화를 보는 줄 알았다. 물 마시며 보다가 사례 들릴 뻔 했다. 그리고 연희장에서 뜻하지 않게 펼쳐진 대련에서 갑자기 빙판 CG라니.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격동적이고 화려한 무술을 보여주고 싶다면 저런 CG 말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게 훨씬 더 임펙트가 있었을텐데 안타까웠다.
또한, 무명을 의식하기 시작한 고종이 무명의 자존심을 깎아 내리기 위해 일부러 무명을 침실밖에서 호위를 하게 하고 자영과 관계를 갖는다. 굳이,,? 이런 질투유발작전을 펼칠 이유가 있었을까? 이렇게 정말 쓸데없는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잇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안타까운 작품에서 빛나버린 배우들의 연기력
이렇게 안타까운 작품에서 더 안타까웠던 점은 저렇게 평면적인 캐릭터들을 배우들이 너무 연기를 잘 소화해냈다. 진짜 너무 안타까웠다. 어떻게 조승우, 수애를 데리고 와서 이런 작품에 출연시킬 수 있었을까? 솔직히 조승우, 사극, 액션, 멜로 이 조합을 보고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보는 내내 손발이 오글거리고 대본을 보고 출연을 결심한 것이 맞을까? 어디 누구한테 협박당해서 출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작품은 정말 안타까웠지만 그 와중에 배우들은 무명과 자영의 캐릭터에 온전히 녹아들어서 그들은 빛이 나고 있었다. 하지만 빛이 난다고 해도 이 영화는 추천할 수가 없다. 킬링타임용으로도 아까운 작품이니 말이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조승우 필모 깨기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보지 않았을 작품이었을 텐데,, 정말 안타깝고 씁쓸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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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버린 듯 무료함으로 가득 찬 작은 섬마을. 이곳에 카리스마 넘치지만 미스터리한 젊은 신부가 부임한다. 그 이후, 고립된 채 살아가던 크로킷섬 주민들에게 기적 같은 일과 불길한 사건이 함께 찾아오는데. 마이크 플래너건이 제작한 오리지널 시리즈 《어둠 속의 미사》, 9월 24일 넷플릭스에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