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3-08-24 11:11:30
강력한 폭발이 불러온 감정의 분열
-<오펜하이머>(2023)
자신이 한 일이 복합적인 방향으로 뻗어나갈 때, 우리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양한 결정을 하고 그것은 당연히 최선의 고민 끝에 나온 결과여야만 한다. 당연히 그것은 그 모든 주변 상황 속에서 얻은 최선의 결과일 것이고 그렇게 생각해야 그 성취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결정이 다른 방향의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분명히 그것은 내 안위를 위한, 주변 사람을 위한 최선의 결정이었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것으로 인한 피해를 받게 된다.
전쟁이라는 소용돌이는 그런 아이러니를 무수히 만들어낸다. 국가를 위해 전쟁에 참전한 여러 일반인들은 최전선에 투입되어 목숨을 걸고 적군에게 총을 겨눈다. 상대 적군으로 참여한 병사도 마찬가지다. 서로 총구를 겨누고 명령에 따라 상대방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그 결정하나만으로도 우리 병사가 쏜 총탄은 평화를 위한 것이지만 상대방에게는 죽음의 총탄이 된다. 이렇게 곳곳에서 벌어지는 아이러니는 전쟁 속에서 무수한 결정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합적인 고민과 감정을 만들어준다.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 팀장 오펜하이머의 이야기
영화 <오펜하이머>는 핵개발 연구였던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결국 핵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의 이야기를 다룬다. 독일 그리고 일본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나치가 원자폭탄을 개발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상황을 뒤집기 위해 노력했고,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오펜하이머라는 물리학자를 중심에 세워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나치에 퍼부울 원자폭탄을 개발했다.
영화는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 개발을 한 이후 정보 열람권을 놓고 작은 청문회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과거 회상을 섞어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천천히 보여준다. 다른 한 편으로는 미국 원자력 협회 소속인 스트라우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장관 후보 청문회 과정을 보여주면서 오펜하이머에 대한 조금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이미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있다. 영화가 맨해튼 프로젝트의 초창기부터 원자폭탄 개발 성공의 과정을 대부분 보여주긴 하지만, 정말 이 영화가 관심이 있는 건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의 감정과 생각이다. 그래서 오펜하이머의 복잡한 심경을 풍부한 음향과 음악으로 표현함으로써 그가 느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감정들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필자는 영화 <오펜하이머>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것보다는 영화 속 오펜하이머의 변화되는 감정을 생각해 보면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오펜하이머는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과 후 꽤 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원자폭탄 개발 과정에서 많은 물리학자와 군인들을 설득하고 시너지를 만들어내야 했고, 서로 다른 의견들을 한 곳에 융합해 내기 위해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여러 트러블이 있었음에도 그는 그 압박을 이겨냈다. 원자폭탄 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난 직후 오펜하이머의 모습에선 잠시나마 안심이라는 감정을 볼 수 있다.
오펜하이머가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면 보이는 것
하지만 그 안심은 오래가지 못한다. 일본에 수많은 일반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것은 조금씩 오펜하이머의 마음을 조여왔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는 경전의 말을 그 자신도 인용하듯,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사용 이후 정치인들이 자신이 개발한 무기를 활용하는 방식을 보면서 꽤 불안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 속 그가 아인슈타인에게 나쁜 연쇄반응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그가 가진 불안이 시작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오펜하이머는 정치인들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국가를 위해 최고의 무기를 만들었지만 그는 메카시즘 광풍에 희생당하는 처지가 된다. 과거 공산당의 이론에 관심이 있었고, 동생을 비롯한 주변 사람이 공산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어 결국 정치적으로 희생당하고 각종 권한을 모두 박탈당한다. 그 당시 오펜하이머는 왜 그렇게 정치적인 논쟁거리 속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저항했을까. 자신의 지위를 보존하는 데에 조금은 부족한 생각이었을지 모르지만 그건 오펜하이머가 스스로 만들어낸 악마 같은 무기의 통제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는 최선을 다해 자신을 방어함으로써 신무기에 대한 정보와 권한을 가지길 원했고, 심지어 그 당시 트루먼 대통령(게리 올드만)을 만나 손에 피를 묻혔다는 말을 하며 그가 개발한 핵무기의 위험성을 전달하려 했다. 비록 인류 모두를 위협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했지만 그 자신은 그 위험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세계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는 청문회 이후 가지고 있던 지위를 모두 박탈당하면서 그 자신의 자신감이나 뿌듯한 감정도 분열되어 조금씩 사라져 버리고 만다.
크리스토퍼 놀란식으로 만들어진 파워풀한 전기 영화
이런 감정의 큰 변화는 그의 개인 연애사에서도 볼 수 있다. 오펜하이머는 결혼 전 진 태트록(플로렌스 퓨)과 깊은 연애를 했다. 서로 무척 사랑했지만 감정적으로 불안정했던 진과는 결국 헤어지게 된다. 마치 원자폭탄을 개발하듯 엄청나게 깊게 빠져들었고, 원자폭탄이 폭발하듯 터졌던 두 사람의 감정은 그 모든 과정이 끝난 이후 파멸을 맞는다. 진은 이후 감정적인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했고, 오펜하이머는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
그는 그의 아내인 캐서린(에밀리 블런트)과 결혼한 이후에도 진을 완전히 잊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진에 대한 죄책감이 평생 남은 것처럼 그가 주도해서 만들었던 원자폭탄과 폭탄 투하에 대한 죄책감 역시 평생 가지고 남은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영화는 그런 그가 짊어진 죄책감을 다양한 영상효과와 편집으로 표현해 낸다.
영화 <오펜하이머>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묵직하고 건조한 이야기의 시간 구조를 교차로 구성하여 영화적 흥미를 높인다. 특히나 오펜하이머의 반대편에 서서 안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오는 스트라우스의 청문회 장면과 서사는 흑백으로 처리되어 그 당시 메카시즘이 행해져 흑백으로 나눠졌던 상황을 잘 보여준다. 다르게 보면 스트라우스의 서사와 오펜하이머의 서사가 충돌하는 듯한 느낌도 주는데, 결국 두 사람의 간접적인 충돌과 원자폭탄이 터진 이후에 오펜하이머의 주변부가 폭탄처럼 분열되어 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이번 영화에는 음악과 음향이 큰 역할을 한다. 다양한 방식의 교차편집에 긴장감을 더해주는 건 영화음악이다. 이번 <오펜하이머>의 음악감독은 루드비히 고란슨이 맡았다. 그간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한스 짐머가 도맡아 했지만, 그가 다른 영화 음악 작업일정으로 인해, 이번 신작에서는 루드비히에게 넘어갔다. 루드비히는 2019년 마블 영화 <블랙 팬서>를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받은 바 있으며, 이후 <테넷>, <베놈> 시리즈의 음악도 작업한 바 있다.
다른 무엇보다 오펜하이머 역을 맡은 킬리언 머피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복합적인 내면을 가진 오펜하이머의 감정을 잘 전달하고 있고, 그가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고 영화의 주인공 역할도 훌륭히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킬리언 머피의 필모 중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그 외에 스트라우스 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나 레슬리 역의 맷 데이먼, 진역의 플로렌스 퓨, 캐서린 역의 에밀리 블런트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면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최고작은 아니지만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한 인물의 대한 이야기를 놀란 식으로 흥미롭게 재구성해서 보여주는 영화다. 다양한 교차편집과 힘 있는 음악으로 가장 무섭고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냈던 인물이 겪었던 일과 느꼈던 감정이 지루하지 않게 전개된다. 영화가 다 끝나고 나면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된다. 원자폭탄이 개발되고 투하된 이후, 전 세계에 뻗어나간 원자폭탄에 대한 복합적인 생각과 다양한 일들을 보며 오펜하이머는 어떤 생각들을 하며 남은 생을 살았을까.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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