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4-03-29 09:22:38
댓글부대 | 거짓과 진실 사이 공간에 빠질 시간
<댓글부대>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특종을 놓치지 않기로 유명한 사회부 기자 '임상진'(손석구). 그런 그에게 대한민국 최고의 대기업 '만전'의 비리를 폭로하고 싶다는 제보가 들어온다. 제보자의 증언과 나름의 취재 내용을 더해 단독 기사를 출고한 상진. 그러나 다음 날 기사는 오보로 판명되고, 상진은 그를 기레기라고 비난하는 수많은 댓글과 문자에 시달린다. 심지어 회사에서도 잘리면서 그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어느 날, 상진 앞에 의문의 제보자 '찻탓캇'(김동휘)이 나타난다. 자기를 온라인 여론 조작 댓글부대 ‘팀알렙’의 멤버라고 소개한 찻탓캇. 그는 상진이 만전 댓글부대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자기와 두 친구 '찡뻤킹'(김성철), '팹택'(홍경)의 여론 조작 수법을 고발하는 기사를 써 달라고 부탁한다. 그의 제보를 토대로 상진은 댓글부대의 진실을 찾기 위한 취재를 맹렬히 이어간다. 만전에게 복수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콘셉트 그 자체가 되어버린 <댓글부대>
파울 요제프 괴벨스. 나치 독일의 중앙선전국장이자 국민계몽선전부 장관. 그는 뛰어난 대중 선동 능력을 갈고닦아 나치의 반유대주의를 최전선에서 선전했고,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나치의 악행에 앞장선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는 다른 의미로도 유명하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권력 장악과 정치적 동원에 탁월했던 선전 방식이 재조명받으면서 그의 이름은 프로파간다의 대명사로도 널리 알려졌다.
괴벨스의 명언으로 알려진 어록도 여럿 전해진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라는 문구가 대표적이다. "100%의 거짓말보다는 99%의 거짓말과 1%의 진실의 배합이 더 나은 효과를 보여준다"는 말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괴벨스가 이러한 말을 했다는 근거나 출처는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위의 문구는 그의 능력을 역설적으로 더 잘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출한 안국진 감독의 신작 <댓글부대>는 위의 어록을 체화한 영화라 할 수 있다. 극 중 캐릭터는 물론 관객마저도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헤매게 만드는 전개와 반전이 인상적이기 때문. 댓글부대의 역할이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재와 콘셉트에 지극히 충실한 작품인 셈이다. 이는 <댓글부대>가 일반적인 사회 고발 영화와는 차별화된 존재감을 보여주는 원동력이다.
아는 맛이 맛있는 전반전
<댓글부대>는 영리하다. 관객의 기대를 정확히 파악한 뒤 가지고 놀 줄 안다. 실제로 <댓글부대>의 전반전은 일반적인 사회 고발물의 전개를 따라간다. 주인공의 내레이션을 따라 댓글부대의 역사와 흐름을 추적한다. 주인공의 사연을 쌓아 올린 서사 덕분에 이 전반전은 쾌감이 상당하다. 댓글부대의 피해자인 기자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친다는, 뻔하지만 검증된 스토리텔링의 힘을 적극 차용했기 때문.
물론 제보자는 말하고, 기자는 듣는 구도는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 <댓글부대>는 이를 물량공세로 만회한다. ‘팀알렙’ 삼인방이 활동한 에피소드만 4개를 선보인다. 그들은 특종 기사를 가짜뉴스로 호도하고, 담배 신상품 바이럴 마케팅을 진행하고, 인스타그램 테러를 자행한다. 영화는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 화면을 빠르게 넘기며 보여주는 몽타주까지 곁들여 이미 익숙한 여러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관음증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경로를 이탈한 후반전
그러나 <댓글부대>는 후반전이 시작되는 순간 급격하게 방향을 꺾는다. 임상진은 끈질긴 취재 끝에 마침내 댓글부대의 진실을 손에 넣는다. 회사에도 복직하고, 1면을 장식하는 특종을 터뜨린다. 그렇게 댓글부대의 실체가 온 세상에 알려지고, 상진의 울분도 말끔하게 해소된다. 이처럼 장르적으로 쾌감이 극대화되고 카타르시사 터져 나오는 바로 그 순간, <댓글부대>는 반전을 선사한다.
영화는 명확한 답과 통쾌한 결말을 주지 않는다. 대신 관객을 혼란에 빠트린다. 알고 보니 상진이 만전의 댓글부대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다는 의심을 퍼트린다. 더 나아가 그가 알아낸 진실이 과연 진실일지 헷갈리게 만든다. 모든 사건이 사실이지만 명예훼손을 피하기 위해 가명을 썼다는 영화 첫 장면의 자막 때문에 이 반전은 더 혼란스럽다. 완전한 거짓보다는 진실이 약간 섞인 거짓이 더 효과적이라는 찡뻤킹과 괴벨스의 말대로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지우는 것이 댓글부대의 목적임을 고려하면 이는 콘셉트에 아주 충실한, 메타적인 전개라 할 수 있다. 감독의 전작을 고려하면 사실 놀랍지 않다. 또 코미디 요소가 거의 없는데도 <빅 쇼트>, <바이스>, <돈 룩 업> 같은 애덤 맥케이 감독 작품이 겹쳐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댓글부대>가 다른 사회 고발 영화와는 다른,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것만은 분명하다.
부실공사로 쌓은 반전
문제는 뒷심 부족이다. 반전은 그 자체로 분명 인상적이다. 반전을 주면서 의도한 효과도 충분히 느껴지며,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반전이 느닷없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이후의 묘사가 반전의 충격을 연착륙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상진은 다시 한번 진실을 추적한다. 새로운 제보자와 취재원을 찾고, 자료를 보강해 첫 기사를 보강할 후속 기사를 완성한다. 두 번 당하지 않기 위해서 댓글부대의 방식을 차용해 기사를 세상에 퍼트린다. 그런데 상진이 2년 간 기울인 노력이 영화 상으로는 5분 여에 불과하다. 에피소드를 여럿 배치한 중반부와 비교하면 균형이 안 맞는다.
끝내 열린 결말인 점도 감점 요소다. 익숙한 장르적 쾌감도 거부하고, 반전 이후의 과정도 생략하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반전 자체도 낯선데 낯섦이 배로, 혼란이 제곱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상업영화로서는 치명적인 결격 사유라 할 수 있다. 차라리 반전 이후의 내용을 조금 더 보강하거나, 반전을 준 지점에서 과감하게 영화를 매조지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다.
너무 많은 곁가지
이어 더해 <댓글부대>의 전반적인 만듦새도 세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초반부는 욕심이 과하다. 영화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역사도 역으로 추적해 댓글부대의 출발점을 찾는다. 이는 만전이 여론 조작에 유독 심혈을 기울이는 데에 당위성을 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불필요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촛불집회까지 거론한 스케일에 비하면 정치적인 면이 두드러지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 또 일반 시민도 대기업의 여론 조작 시도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눈치채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적 맥락을 굳이 초반부에 설명할 필요가 있나 싶다. 후반부의 급전개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마지막으로 <댓글부대>는 캐릭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주인공 임상진은 전형적이다. 대쪽처럼 곧았다가 꺾인, 그러나 재기를 노리는 기자라는 클리셰를 답습했다. 기자의 취재 과정과 습관을 세밀하게 살린 손석구의 연기를 보는 재미만 남을 뿐이다. 김성철, 김동휘, 홍경처럼 이미 대세이거나 유망한 배우들을 캐스팅했지만, 그들을 사건 전달 도구 그 이상 그 이하로도 활용하지 못하는 것 또한 한계라 할 수 있다.
결국 <댓글부대>는 매력적인 소재와 참신한 아이디어의 결합만 인상적일 뿐, 그 파괴력을 감당할 내실이 부족한 영화처럼 보인다. 나름의 열린 결말이 카타르시스의 부재로 읽히고, 완성도를 떨어뜨린다고 느껴지는 결정적인 이유인 셈이다.
Acceptable 무난함
콘셉트와 물아일체 되어 허우적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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