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2024-08-19 21:10:48
출입 금지된 곳이라서 낙원
기타노 타케시, <기쿠지로의 여름>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에는 기쿠지로가 정확히 마츠리 날 밤에 죽었고 그 후 소년 마사오는 천사들 귀신들 도깨비들(을 방불케할 정도로 이상하리만큼 친절한 어른들)과 한껏 즐거운 놀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패싸움 후 이상한 꿈을 많이 꾸는 마사오의 도깨비 꿈, 최고로 많이 다치고 해진 기쿠지로의 모습, 그리고 천사의 종을 열심히 울려댄 오후 덕에 더 굳게 믿었다.
영화를 다시 보니 기쿠지로는 굳이 그 마츠리가 아니라 어디서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찻길 위에서 히치하이크하려다 뺑소니 차에 치었을 때든, 호텔 수영장에 빠졌을 때든, 싸움난 길거리(들)에서든, 훔친 택시에서 운전 미숙으로 연기가 났을 때든, 심지어 경륜으로 한탕하고 아가씨들 있는 술집에서 진탕 퍼마신 여행 첫날밤이든.
<탑건 : 매버릭>의 오프닝에서 마하 10을 넘긴 매버릭이 바로 그 사고에서 이미 죽었고, 나머지 2시간은 그의 아름다운 인생을 기리는 주마등이라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같은 간편하고 모호한 표현을 끌어오지 않고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단호히 가정한) 김병규 평론가의 글처럼. <기쿠지로의 여름>도 초반부 새벽 풀밭에 세워진 택시와 거기서 사람이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장면이 너무 피안 같아서, 혹시 이전에나 이후에 기쿠지로가 이미 죽은 건 아닐지 계속 의심했다.
그러니까 이건 언제 어디서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기쿠지로가 “너도 나와 같구나”를 말하더니 소년을 어떻게든 엄마에게로 또 집으로 데려다주려고 애쓰는 얘기. 자기는 엄마를, 유년기를, 제대로 된 인생을 되찾는 데에 실패했지만 소년에겐 조금 이른 화해를 선물해주려고 하는 얘기. 그렇게 기쿠지로는 어른이 된다, 마사오를 아이로 만들어주기 위해.
그래서 이 영화가 ‘마사오의 여름’이 아니라 ‘기쿠지로의 여름’일 거란 걸 새삼 느꼈다.
또 예전엔 마사오를 놀아주는 후반부가 다소 지루할 만큼 길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이 왜 마사오를 놀아주려 하는지는 알았지만 왜 자기들이 더 신난 것마냥 그렇게 필사적으로 분장까지 해가며 온몸으로 놀아주는지는 몰랐고, 그래서 더 그들이 명계에서 온 상상친구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보니 알 것 같다. 오프닝부터 여름 방학을 맞이한 마사오가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아이는 축구교실을 친구들 집을 길거리를 찾아다니지만 모두 돌봐줄 가족이 있고 저만 혼자다. 엄마가 정말 돈을 벌러 갔다면 할머니가 손자를 위해 방학 중 하루도 못 빼고 가게에서 일할 것까진 없었을 텐데. 어쩌면 엄마가 새살림을 들었단 것까지 마사오는 어른스레 다 직감하고 있었을 테고… 다른 아이의 엄마가 된 엄마를 처음으로 보면서 애가 (불쌍하게도) 별로 안 놀라보였으니까.
놀아주는 어른들이 생겼기에 ‘무슨 애가 저렇게 울상이냐’던 마사오는 히힛 히힛 밝게도 잘 웃는 애가 된다. 애어른 아니고 진짜 애. 마사오가 달려갈 때마다 하늘에서 지켜봐준 누군가도 더이상 걱정되지 않을 만큼 해맑은 애.
왜 마사오가 얼마나 외로운지 예전에는 제대로 몰랐을까? 어떤 시기는 완전히 지나오고 나서야 그게 남들 눈에 어때 보이는지 알 수 있어서겠지.
그보다도 정말 미치겠는 건 기타노 타케시의 표정들.
피를 닦아주는 마사오에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처음 말하는 표정
요양원에 모셔둔 괴팍한 어머니를 창 너머로 바라보던 표정
소년 마사오를 그러니까 소년 기쿠지로를 보내주던 마지막 표정
(그러니까, 우두커니 선 기타노 타케시의 얼굴이란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도 하나비에서도 소나티네에서도 왜 이렇게 사람을 울리는가. 더이상 마사오의 엄마가 아닌, 더이상 스기모토가 아닌 요시무라 사토코를 멀거니 바라볼 때에도. 사고 때문인 건 알지만 기타노 타케시의 파르르 규칙적으로 떨리는 왼쪽 눈마저도 마사오 대신 울기 위한 것 같다.)
현실의 타케시란 폭력적이고 자주 막말하고 틀린 구석도 있는 노인네란 거 알지만. 어떤 사람의 얼굴은 타인의 슬픔을 너무 깊이 너무 깊이 깊이 깊이 이해하고 있어서, 그걸 대신 짊어져주고 있어서 도무지 미워할 도리가 없다는 거..
바로 이런 얼굴
그리고 또 하나의 마음에 걸리는 얼굴 - 마사오가 올려다본 밤하늘 별자리에 비친, 옛사람 혹은 도깨비 정도로 분장한 기타노 타케시의 표정. 딱 세 컷 지나간 그 얼굴이 이전에도 이상하게 계속 오래 남았었는데, 전엔 그 이유를 몰랐지만 이제는 좀 알겠다. 곱게 화장하고 자신만만하게 눈을 치뜨는 그 얼굴이 너무 자부심에 가득찬 희극인의 것이라 그랬나보다.
봐주는 사람 없어도 계속 뭘 새로 배우고 연습하고 선보이던 기쿠지로. 수영과 탭댄스와 저글링, 맹인 흉내와 직접 고안한 그 모든 놀이까지.
어쩌면 이건 세상을 하나의 거대한 무대로 보는 뼛속까지 예능인(‘게닌’ 비트 타케시)의 자기충족적 실험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장 친숙하고 가장 순진하며 가장 날카로운 관객인 어린아이를 데려다놓고 한 극 무대에서의 실험. 그리고 밤하늘에서 반짝반짝 빛난 그 표정으로 유추해보건대 다케시와 눈에 익은 극단 출신 후배 배우들은 성공한 무대에 굉장히 기뻐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 마사오라는 아이 자체도 기타노가 자기 유년기에 보내는 연민의 상징물이나, 성숙으로의 관문보단 ‘곧 내(창작자)가 될 너(관객)’와의 합일을 위해 심어둔 것 아닌가? 싶지만. 그러니까 이 극이 그려내는 좋은 어른이니 성장이니 우정이니 하는 것에 계속 집중하기보다도, 끝에는 ‘감독으로서의 나’를 우위에 두는 메타영화로 무게중심이 기울어질 법도 한데 끝까지 그래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결국 예술품이 다룬 무언가 중 어떤 게 가장 귀중한가를 따질 때, 그 무엇보다 시간에 구애받는 영화라는 매체는 어느 씬에 얼마 정도의 시간을 할애했는가로 일차적 판단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마사오의 감정 묘사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한 - 걸 넘어 오로지 그 감정을 매만져주고 위로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마냥 애쓰는 - <기쿠지로의 여름>은 정말이지 모범적으로 다정한 성장 동화다.
물론 기쿠지로는 여자를 사고 팔고 사람을 갈취하고 패고 죽이는 일을 여전히 우습게 아는 전직 야쿠자일 테지만. 적어도 영화 속에선 기쿠지로가 저지르는 모든 폭력, 절도, 강탈, 사사로운 시비까지도 아이인 마사오를 저 멀리에 두고 진행된다. 기쿠지로는 언제나 마사오에게 “꼬마야 저기 가있어”라고 하는 대신 “꼬마야 여기서 기다려”라고 말하고 자기가 (카메라 프레임 바깥의) 폭력의 자리로 돌아가서 일을 해치우고 온다. 그것이 어른의 태도니까.
물론 마사오도 종종/영영 세상의 잔혹함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나 영화는 살면서 한 번도 안 겪어보는 게 무조건 나을 끔찍한 일이 있다면, 당연히 최선을 다해 네가 그 일을 겪지 않게 해주겠다고 말하듯 든든한 보호자처럼 개입한다. 여행 초입 보호자 기쿠지로가 잠깐 취한 사이, 소아성애자 대머리 중년을 만나면서 중학생 형들보다 훨씬 위험한 폭력에 노출된다. 그때 영화는 현실은 이런 거야,라는 듯이 뻐기며 폭력의 정밀 묘사에 공들이지 않는다. 또한 폭력적 응징의 과정에도 전혀 관심이 없어보인다. 굳이 너의 상처를 훈장 삼을 일도 없고, 세상의 가장 어두운 쓰레기장이 얼마나 끔찍한지 입 아프게 말 얹을 것도 없단 듯한 태도.
사실 이 영화에서 폭력은 대부분 무자비하게 생략/압축된 슬랩스틱 코미디의 결과물로서 소비될 뿐이다. 다케시는 아이에게 좋은 웃음을 선물하고 싶었던 어른-코미디언의 태도로서 그정도가 딱 적절하다고 여긴 것 같다.
그러니 다시.. 예전에는 기쿠지로가 죽었다고, 단지 마사오를 안전히 집까지 데려다주려고 유령처럼 남아있었던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기쿠지로를 마사오에게 딸려보낸 그 이웃집 친절한 여자는 갑작스레 남편을 잃고 어떻게 살아가면 좋나 괜히 걱정도 됐는데.
다시 생각해봤더니 혹시 기쿠지로가 죽었더라도 부인은 그냥 잘 살아갔을 것 같다. 그 사람도 기쿠지로가 어디서 어떻게 죽든 어쩔 수 없단 것쯤 알고 살았을 것이다. 세 번째 결혼이기도 했고… 남자들의 사라짐에 그냥 그렇구나 할 것 같은 어른.
그리고 그보다 먼저 기쿠지로는 안 죽은 것 같다. 소리도 없고 그림자도 없고 발자국도 없고 미련도 없어보여서 마치 귀신같고 이상한 움직임이 줄곧 나왔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기쿠지로다, 빠가야로 라고 해줬으니까.
건강하라고, ‘다음에 또’ 엄마 찾으러 가자고 말해줬으니까,
그리고 멀어지는 기쿠지로가 아니라 힘차게 달려가며 멀어지는 마사오가 막의 마무리를 장식했으니까.
귀신이고 도깨비고 천사고 꿈이고 뭐고 .. 그냥 안 죽었을 것 같다 그냥.
마사오에게 다 큰 마사오가, 기쿠지로에게 어린 기쿠지로가 함께 노는 일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게 영화의 목적지였으니까. 그게 전부였으니까. 그리고 삶은 결국, 출입금지인 풀밭에 연못에 밭에 해변에 마구 헤집고 들어가더라도 함께 있는 순간의 재미를 찾아내는 게 전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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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을 빼앗긴 두 남자의 벌거벗은 몸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쓴 글입니다.
얼마 전 한국토지주택공사 LH의 직원 비리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그들이 업무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를 활용해 투기놀음에 나섰고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내 집 마련’이 중산층임을 입증하는 표지가 되어 모두가 목숨 거는 시대에, 정작 이 꿈을 실현시켜줘야 할 공공기관의 직원이 자기 잇속을 챙기고 있었다는 데 모두가 분노한 사건이었다.
영화 〈사상〉은 이제는 사람들이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 LH의 또 다른 문제를 다룬다. 〈사상〉에서, LH는 원주민의 주거권·생존권을 위협하는 폭력의 주체다. 부산 사상에 벤처타워가 들어오게 되었다. 보상을 받고 마을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삶의 공간을 빼앗길 수 없다며 버티는 사람도 있다. 〈사상〉은 각각 자본과 공권력을 대표하는 건설회사·LH와 맞서 오래도록 이어지다 끝내 패배해 버리고만 싸움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 〈사상〉 스틸컷
주인공은 두 명의 중장년 남성이다. 먼저 박성희. 그는 감독의 아버지다. 새로 살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그의 삶은 고단해 보인다. 산업 재해로 검지를 잃은 왼손, 보호대 착용이 필요한 허리, 육체노동으로 거칠어진 발. 그리고 우울. "이 나이 되도록 집 하나 못 산 건 내 팔자려니 싶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니 눈물이 팍 쏟아졌다"는 그의 말은 LH가 늙고 약해진 남성을 집이라는 안식처로부터 몰아내는 무던함과 대비되어 무력감을 자아낸다. 또 다른 주인공 최수영은 굴삭기 기사이자 운동가·활동가다. 그는 사상에서의 싸움을 강제이주의 역사 속에 맥락화한다. 그럼으로써 집·주거권을 체계적으로 박탈해 온 국가·자본의 폭력을 고발한다.
요컨대 〈사상〉의 두 남성 주인공은 모두 무언가를 ‘잃은’ 존재다. 집, 주거권, 삶 그리고 마을 공동체. 이들이 상실한 것이 과연 그리 아름답기만 한 것이었을지에 관한 의문은 잠시 제쳐놓고, 영화가 자본·공권력이라는 체계적 폭력을 재현하는 방식을 살펴보자.
영화 〈사상〉 스틸컷
〈사상〉은 자본과 공권력의 얼굴을 명료하게 그리지 않는다/못한다. 자본·공권력의 악행을 가능케 하는 메커니즘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자본과 공권력은 그저 ‘나쁜 대상’으로 말해지고 보여질 뿐이다. 체제로서의 폭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토록 느슨하게 조명한 〈사상〉의 연출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거대한 폭력에 대한 적확한 분석을 결여한 채 그저 끝없이 괴로워할 뿐인 감독을 냉소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고민이 필요할까? 그럼으로써 우리는 어떻게 감독이 세상을 느끼고 바라보는 방식에 비판적으로 개입하여 함께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고민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감독이 ‘남성’이라는 점에 주목해 보는 것이다. 자본·공권력이 휘두르는 권력을 비판하는 그는 정작 두 주인공과 자기 자신이 기대고 있는 젠더 권력에는 다소 둔감해 보인다. 〈사상〉을 보는 내내 성차별적인 장면, 발화가 불쑥 튀어나오진 않을까 불안했다. 영화가 '남성적 방식'으로 재현되는 '남성 서사'였기 때문이었다. 박성희의 가족이 모여 제사를 지낼 때 정작 제사 음식을 준비한 여성(그녀가 박성희 가족과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다)은 함께 절하지 않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영화가 낭만적 공동체로 재현하는 '사상에서의 삶'은 자본·공권력과는 다른 또 다른 권력(가부장제)이 작동하는 공간이었을 수도 있다.
감독이 내레이션으로 ‘봉분 같은 아파트’와 ‘밀양 할매들과 함께한 식사’를 대비시킬 때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차갑고 무뚝뚝한 건축물을 따뜻하고 정겨운 할매의 품이라는 젠더화된 비유와 대비시킨다. 삭막한 과학/문명과 여성이 제공하는 포근함의 대비는 오랜 역사를 지닌 성차별적 구도다. 현실의 척박함을 고발하기 위해 밀양 할매들을 호명하는 〈사상〉의 발화는 조금 더 섬세했어야 했다.
영화 〈사상〉 스틸컷
하지만 젠더 권력에 대한 감독의 무관심, 둔감함만으로 〈사상〉을 평가할 순 없다. 〈사상〉이 자본·공권력을 치밀하게 묘파하지 ‘않음으로써/못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중요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사상〉의 '결점'은 영화가 어떤 계보에서 작업되어 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만회될 수 있다. 감독의 내레이션이 말해 주듯, 〈사상〉은 4대강 사업, 밀양 송전탑을 기록한 작업의 연장이다. 또한 최수영이 말하듯, 사상에서의 싸움은 1970년대의 강제이주에 대한 저항의 계보에 놓여 있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본·공권력에 대한 〈사상〉의 두루뭉술한 묘사는 구체적 경험의 지위를 획득한다. 감독과 사상의 주민에게 자본·공권력이 폭력임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는 너무도 자명한 경험적 사실이다. 즉, 자본·공권력에 대한 〈사상〉의 느슨한 묘사는 영화의 결함이 아닌 영화의 핵심 메시지다. 왜 ‘우리’에게 자명한 것이 ‘당신’들에겐 그렇지 않느냐는 성찰적 물음으로써 권력에 대한 허술한 묘사가 기능하는 것이다.
〈사상〉은 그 어떤 다른 해석도 허락하지 않은 채, 완고한 태도로 자본과 공권력을 불신한다. 공사장에서 발생한 진동으로 무너진 집, 기울어진 벽을 지탱하는 나무 받침대, 밝은 표정의 정치인의 달콤한 약속과 그 약속에서 배제된 자들 등등. 〈사상〉의 이미지들은 마치 자신이 그 자체로 폭력의 증거이기에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는 듯 스스로를 쓸쓸히 전시한다.
영화 〈사상〉 스틸컷
그리고 두 남자의 벌거벗은 몸. 영화는 박성희와 최수영이 벌거벗은 채로 씻는 모습을 꽤 오랫동안 비춘다. 질병, 장애로 인해 느리게 움직이는 이들의 취약한 몸은 자본·공권력 앞에서 벌거벗겨진 생명의 표상일 수 있다. 또는 시종일관 진지한 남성의 목소리로 자본·공권력을 비난하던 영화가 남성의 몸을 취약성과 연결짓는 이 급작스러운 균열로부터, 고난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쉬는 삶의 리듬이 새겨진 장소로써 벌거벗은 몸을 독해할 수도 있다.
용산참사 이후 10여 년. 이제 아무도 강제철거, 원주민을 내쫓는 재개발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투쟁’이라는 말에 빨간딱지가 붙었던 때는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빨갱이’의 목소리는 시끄럽게 '들리기'라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변화에 너무 빠르게 적응했다. 우리를 분노케 했던 문제의식은 몰아치는 신자유주의 앞에서 증발해 버렸고, 여전히 ‘투쟁’을 외치는 사람은 낡은 구닥다리가 되었다.
이토록 빠르게 도달한 파국 앞에서 벌거벗은 두 남자의 몸*은 우리의 기억을 일깨워 〈사상〉의 문제의식에 동참케 할 수 있을까? 4대강, 밀양, 사상으로 이어지는 투쟁은 사라지지 않고 자본·공권력을 비판하는 동력으로 남을 수 있을까? “원주민을 내쫓고 세워진 미래”에 빼앗긴 자들의 삶을 다시 기입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우리는 과잉 남성 자의식으로 자본·공권력에 대한 ‘피해의식’에 빠져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상〉의 감독과 연대할 수 있을까? 〈사상〉은 해소되지 않은 여러 질문을 남기는 영화다.
*영화의 음악이 흥미롭다. 영화에는 중간중간 분절되고 끊어지며 뒤로 감는 듯한 독특한 음악이 나온다. 자본과 결탁한 국가폭력에 짓눌려 어긋나 버린 두 남자의 삶 리듬을 형상화한 것일 수도 있고, 우리 사회를 변주할 새로운 리듬일 수도 있는 이 음악은 '벌거벗은 두 남자의 몸'과 같은 이중적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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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지망생의 크리스마스 동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함
12월 9일 목요일(내일!) 국내 개봉하는 <마이 뉴욕 다이어리>의 원제는 <My Salinger Year>로, 이 영화는 조안나 라코프가 쓴 동명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이다. 뉴욕의 전통 있는 작가 에이전시 '해롤드 오버 어소시에이츠'에서 일했던 라코프는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2010년에 BBC 라디오 4 채널을 위한 라디오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방송도 전에 이 다큐멘터리는 영국 출판계에서 유명해졌고, 라코프는 격려를 받아 다큐멘터리 대본을 토대로 회고록을 써 2014년에 출판한다.
국내 개봉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갓 대학을 졸업한 23세의 조안나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뉴욕에 상경한다. 작가로서의 데뷔 전까지 수입이 필요했던 조안나는 꿈과 가까운 출판계에서 일하고 싶어하고, 직업소개소는 그런 조안나를 작가 에이전시에 소개해준다. 이 에이전시는 아가사 크리스티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헤럴드 핀처 등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담당했던 회사이다. 조안나의 주 업무는 역시나 쟁쟁한 작가이자 동시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라고 할 수 있을 J. D. 샐린저에게 쏟아지는 팬레터에 답장하는 일이다. 그는 팬레터에 하나하나 답장하고 싶은 욕망과 무서운 상사 마가렛 사이에서 갈등하는데, 샐린저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는 즐겁지만 그가 하는 말들은 고민거리를 더한다...
많은 관람객들이 공통적으로 느꼈듯이, <마이 뉴욕 다이어리>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무섭지만 멋진 상사와 뉴욕이라는 배경 때문도 있겠지만, 두 영화가 공유하는 특징은 그게 다가 아니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의 조안나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는 모두 원하는 것이 있어 비싼 집세를 지불해가며 화려하지만 정신없는 뉴욕에 살고 있고, 현재 직장은 그들의 꿈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고뇌를 멈출 수 없다. 또한 조안나는 작가(문학), 앤디는 기자(저널리즘)가 되기를 원한다. 다른 분야이나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직업들인데, 오랜 시간 미디어에서 부여해온 뉴욕의 낭만적인 정취가 느껴지는 직업 선정이다. 꿈과 아메리칸 드림의 도시, 지망생의 도시(그러나 지망생들만의 것이 아니기에 지망생들이 모이는) 뉴욕.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쇼퍼홀릭> 등 오랜 세월 칙릿 소설의 무대는 뉴욕이었다. (조안나가 영화에서 말하듯) 비좁은 아파트에 낑겨 살더라도 그 아파트가 뉴욕의 어느 모퉁이에 있다면 젊은이들은 행복하게 잠들 수 있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에서 관객이 즐길 수 있는 묘미 중 일부도 친구네 집에 얹혀 사는 조안나의 허름한 침대를 비추는 불빛이 얼마나 따스한지, 남자친구와 구한 조안나의 집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각자 편지를 읽고 글을 쓰는 연인의 모습이 얼마나 낭만적인지, 조안나의 90년대 패션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와 같은 것들이다. 고급스러운 디저트 가게에서 혼자 여유를 즐기는 조안나, 소설을 독파하며 도시 곳곳의 카페를 섭렵하는 조안나의 모습은 대도시의 낭만의 결정체라고 할 만하다. 심지어는 조안나의 고민 원인인 팬레터 읽기마저도 낭만적이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의 주인공은 조안나이지만, 조안나를 돋보이게 하는 매력적인 다른 인물들도 주목할 만하다. 1990년대라는 디지털 시대에 도입하기 시작한 시간적 배경, 조안나의 보스인 마가렛은 컴퓨터를 못마땅해하고 녹음 테이프와 타자기를 선호하는 아날로그한 인물이다. 갓 입사한 조안나를 엄하게 대하지만, 조안나와 마찬가지로 관객 역시 마가렛과 마가렛을 연기하는 시고니 위버의 매력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세 번째 축이자 이야기의 핵심인 샐린저는 영화 내내 전화로, 혹은 멀리 떨어진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샐린저의 작품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조안나지만, 이 노작가의 수줍은 성격과 그를 둘러싼 소문들은 이 어린 작가 지망생의 흥미를 자극한다.
30년 가량의 세월이 지나며 정작 뉴욕에서는 예전 뉴욕다운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그 덕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올 겨울, 용감하게 대도시를 누비는 젊은이와 비밀스러운 대작가를 만나러 극장을 방문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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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셋째 주 OTT신작 추천작 <프렌치 디스패치>,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좋좋소 시즌4>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
매 주 월요일,
한 주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다양한 OTT 플랫폼의 신작 소개를 하는 시간!
1월 셋째 주의 관심 가질만한 신작은 무엇이 있을지 다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 프렌치 디스패치, 디즈니 플러스 +
코미디 | 미국 | 107분
감독 : 웨스 앤더슨 | 출연 : 틸다 스윈튼, 프란시스 맥도맨드, 빌 머레이, 제프리 라이트, 애드리언 브로디 등
개봉일 : 2021년 11월 18일
디즈니플러스 공개일 : 2022년 1월 19일 (수요일)
"20세기 초 프랑스에 위치한 오래된 가상의 도시 블라제 다양한 사건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미국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
어느 날, 갑작스러운 편집장의 죽음으로 최정예 저널리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마지막 발행본에 실을 4개의 특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당신을 매료시킬 마지막 기사가 지금 공개된다!"
*관전 포인트* : 제74회 칸국제영화제 공식 선정작 초청 등 해외 유수의 영화제 초청과 국내의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초청된 작품.
이 영화를 추천하는데 그리 긴 수식어나 설명이 필요할까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과 <문라이트 킹덤> 등 독보적인 미쟝센과 예술적인 영화적 색감,그리고 위트 넘치는 유머와 관객들로 하여금 기억에 남고 여운을 가질 수 있는 대사로 항상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세계적인 거장 감독의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입니다.
더불어 <프렌치 디스패치>에서는 할리우드 슈퍼스타, 대배우들의 향연이었습니다.할리우드의 내노라하는 캐스팅 라인업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영화는 챕터별로 나눠진 영화에서 배우들의 독특한 케미를 선보이는 다채로운 매력의 영화입니다.
만약 극장에서 놓치셨다면, 이번 디즈니플러스에서 꼭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2.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디즈니 플러스 +
액션 | 미국, 영국 | 152분
감독 : 리들리 스콧 | 출연 : 맷 데이먼, 아담 드라이버, 조디 코머, 벤 애플렉 등
개봉일 : 2021년 10월 20일
디즈니플러스 공개일 : 2021년 1월 19일 (수요일)
"부조리한 권력과 야만의 시대, 14세기 프랑스. 유서 깊은 ‘카루주’ 가의 부인 ‘마르그리트’는 남편 ‘장’이 집을 비운 사이,
불시에 들이닥친 ‘장’의 친구 ‘자크’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한다.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른 ‘자크’는 ‘마르그리트’에게 침묵을 강요하지만,
‘마르그리트’는 자신이 입을 여는 순간 감내해야 할 불명예를 각오하고 용기를 내어 ‘자크’의 죄를 고발한다.
권력을 등에 업은 ‘자크’는 강력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가문과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장’은 승리하는 사람이
곧 정의로 판정 받게 되는 결투 재판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장’이 결투에서 패할 경우, ‘마르그리트’는 즉시 사형에 처해지는 운명에 놓이게 되는데…
단 한번의 결투가 세 사람의 운명을 가른다!"
*관전 포인트* : 할리우드에서 <글래디에이터>, <에일리언>, 최근의 <하우스 오브 구찌>등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킨 거장 중의 거장감독인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입니다.
오스카, 에미상, 유수의 시상식에서 수상을 한 이력이 있는 대배우들인 맷 데이먼, 아담 드라이버, 벤 애플렉 등의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했습니다.특이한 점은 제70회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굿 윌 헌팅> 의 각본가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24년만에 다시 만나 공동으로 각본으로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는데요!
최고의 감독과 최고의 배우들, 그리고 최고의 배우 2명이 각본으로 참여한 작품을 디즈니플러스에서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3. 좋좋소 시즌4, 왓챠
웹드라마 | 한국
감독 : 서주완 | 출연 : 남현우, 강성훈, 김태영, 김경민, 장명운 등
왓챠 공개일 : 2022년 1월 18일 독점 공개
"취업에 번번이 실패하던 충범에게 걸려온 지금 와줄 수 있냐는 의문의 전화.
그 날 이후 충범은 중소기업 '정승네트워크'의 일원이 됐다. 극강의 리얼리즘으로 돌아온 좋좋소 시즌4,
정승네트워크와 백인터내셔널의 처절하고도 치졸한 생존 전쟁이 펼쳐진다. "
*관전 포인트* : 중소기업 직원들의 애환을 그린 작품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지난 해 1월 시즌1을 시작으로 시즌 3까지 많은 사랑들의 사랑을 받은 시리즈입니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중소기업 '정승네트워크'의 직원들을 통해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현실을 그리고 있습니다.
<좋좋소> 시리즈는 유튜브 누적 조회 수 5300만 뷰를 기록한 작품이기도 하며, 유튜브상에서 먼저 화제가 된 작품을 드라마화 작품입니다.
1월 18일 왓챠에서 독점 공개하는만큼 <좋좋소>시리즈를 그동안 시청하고 좋아해주신 많은 시청자들은 왓챠에서 직접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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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기회라는 <엔칸토>의 마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콜롬비아의 깊은 산속에 위치한 마법이 가득한 마을 ‘엔칸토’에는 저마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마드리갈 가족이 살고 있다. 그러나 ‘미라벨(스테파니 베아트리즈)’만큼은 엔칸토의 마법 덕분에 초인적 괴력이나 치유력 같은 힘을 지닌 가족과 달리 아무런 능력도 가지지 못한 채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미라벨은 엔칸토를 둘러싼 마법의 힘이 위험에 처한 것을 발견하지만, 할머니 '아부엘라(마리아 세실리아 보테로)'를 비롯한 가족들조차 자신의 말을 믿지 않자 평범한 자신이 오히려 가족과 엔칸토를 구할 마지막 희망일 것이라 생각하며 마법을 되살릴 방법을 찾아 나선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60번째 작품인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디즈니에게 기대할 수 있는 매력이 총망라된 영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답게 '가족'과 '성장'이라는 보편적 키워드가 여전히 중심을 잡는 가운데,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과 넷플릭스의 <틱, 틱.. 붐!> 등을 제작하며 가장 핫한 뮤지컬 음악가로 떠오른 린-마누엘 미란다의 라틴풍 음악은 마드리갈 가족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꾸며준다. 이에 더해 폴리네시아 문화를 녹여낸 <모아나>와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뒤를 이어 콜롬비아의 마을 엔칸토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보편적인 감성에 문화적 다양성을 더하려는 시도 역시 눈에 띈다.
그러나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그저 가족 간의 사랑과 우애를 재확인하고 평범한 주인공이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는 전형적인 동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주토피아>로 소수자와 약자의 정의와 진정한 역차별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겨울왕국 2>에서는 노르웨이의 '알타 분쟁'을 재해석해 서구 중심의 제국주의적 시각을 비판했던 바이론 하워드 감독의 작품답게 <엔칸토>도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엔칸토> 속 마법은 뒤쳐질까 두려워하고 밀려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든 이들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의 상징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악역이 존재하지 않는 <엔칸토>는 가족 중 본인만 능력이 없는 미라벨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녀는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할머니 아부엘라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무시당하고 중요한 일에서 배제당하기 일쑤이며, 가족이 아닌 이들로부터는 동정과 위로를 산다. 무엇보다도 능력의 유무가 자신의 노력과 관계없이 선천적으로, 또 우연히 주어진 것이기에 미라벨의 아픔은 나날이 커져간다. 그래서 사촌동생인 안토니오가 능력을 받는 날 그녀는 실패로 끝났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동생을 온전히 축하하지 못한다. 동물과 소통하는 능력을 얻은 안토니오와 가족들이 사진을 찍을 때 함께 끼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고통과 트라우마는 절정에 달하고, 엔칸토의 마법에는 균열이 생긴다.
이때 미라벨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트리거로 사진기와 사진이 등장하는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다. 이는 과거 콜롬비아의 작은 마을에 사는 한 소녀와 2021년을 살아가는 관객이 같은 아픔을 공유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디테일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작중 사진기는 현실 속 인스타그램의 메타포처럼 보인다. 이전까지의 SNS와 달리 인스타그램은 텍스트가 아닌 사진과 짧은 영상을 통해 내용을 전달한다. 문제는 사진과 이미지에 가득 담긴 자랑거리나 화려함이 여과 없이 전달되다 보니, 절망이 보이지 않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사용자들이 열등감과 정신적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그 화려함이 마치 마드리갈 가족에게 주어진 능력처럼 우연 혹은 선천적인 이유로 가능한 것이라면, 인스타그램을 보는 이들은 미라벨처럼 더 크게 좌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접점은 결국 <엔칸토>가 미라벨을 통해 현대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음을 암시한다.
흥미로운 것은 미라벨의 깊은 좌절감을 보여준 후, 영화가 일반적인 전개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엔칸토>는 미라벨을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고 숨은 능력을 찾기 위한 여정에 떠나보내지 않는다. 대신 그녀를 매개로 다른 가족들이 마음속 깊이 숨겨둔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이를 통해 특출 난 능력을 지닌 이들도 능력이 없는 미라벨 못지않게 깊은 흉터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미라벨의 두 언니인 루이사와 이사벨라는 자신의 솔로곡을 통해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누구보다도 강한 괴력의 소유자인 루이사는 마을의 모든 사람을 돕고 다가오는 그 어떠한 위험도 자신이 막아야 한다는 기대에 지쳐가고 있으며, 자신의 힘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완벽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 이사벨라는 설령 원하지 않는 상대와 결혼한다 해도 항상 같은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자신의 본모습을 가로막고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든다고 토로한다.
영화는 미라벨의 입을 빌려 이러한 가족들의 상처가 엔칸토를 만든 마법을 지켜온 할머니로부터 비롯한다고 지적한다. 갑작스러운 침략자들의 공격으로 인해 살던 집을 잃고 남편인 페드로와 사별해야 했던 그녀는 항상 가족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는 능력을 받아야만 하고, 그 능력을 완전히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그러나 그녀의 신념이 낳은 기대와 의무감 때문에 능력을 받지 못한 이는 무시당하고, 능력이 있는 이들도 실패해해서는 안 되고 더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점점 피폐해진다고 미라벨은 말한다. 또 능력이 없는 자신이 불행의 원인이라는 할머니에게 과도한 부담이 한 명 한 명의 개인을 억누르는 사이 공동체의 유대, 곧 마드리갈 가족의 유대와 가족을 감싸고 있던 마법의 힘이 무너진 것이라고도 항변한다.
사실 미라벨의 지적과 항변은 그저 영화 속 이야기로만 보이고 들리지는 않는다. 미라벨과 두 언니의 모습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 따르면 실패한 이들을 위한 마땅한 구제책이 없는 현대 사회에서 능력이 뛰어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실패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불안증, 강박적 완벽주의, 취약한 자부심"에 시달린다. 한편 능력이 없다고 판단된 이들은 "극심한 사기 저하와 함께, '나는 실패자야'라는 굴욕감"에 시달린다. 전자가 미라벨의 두 언니라면 후자는 미라벨이라 볼 수 있고, 이 경우 세 자매가 속한 마드리갈 가족은 결국 현대 사회에 대한 비유나 다름없다. 즉, <엔칸토>는 신자유주의가 만든 경쟁 체제와 이를 지탱하는 담론인 능력주의, 그로부터 배제되어 분노한 이들과 그로 인해 피폐해진 이들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가득한 작품인 것이다.
그와 동시에 <엔칸토>는 실패한 이들을 위한 재도전의 기회와 서로 다른 개인 간의 연대 의식과 책임이라는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중심에는 미라벨의 삼촌인 예언자 브루노가 있다. 불길한 예언을 하다 보니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심지어 가족의 미래를 잘못 보면서 할머니의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했던 그는 가족과 마을을 떠나는 것을 선택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처럼 가족 내에서 이질적으로 여겨지는 미라벨을 만난 후 자신의 실패를 만회할 두 번째 기회를 잡기로 결정하고, 미라벨의 조력자가 되어 마법이 약해지는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외에도 영화는 두 번째 기회를 잡은 다른 이들의 모습도 비춘다. 미라벨에게 능력을 얻을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나,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다시금 위기에 처한 마드리갈 가족이 그간 도움을 주었던 마을 사람들로부터 역으로 도움을 받으며 재기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모습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왜 <엔칸토>에서 미라벨이 집과 엔칸토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지, 왜 다른 디즈니 작품 속 주인공과 달리 여정을 떠나 성장하는 원형적인 영웅 서사를 따르지 않는지도 쉽게 알 수 있다. 미라벨의 할아버지가 침략자들에게 맞서다가 사망했을 때 할머니는 주어진 마법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으니, 엔칸토라는 마을과 그 마을을 만든 마법은 자체로 두 번째 기회다. 따라서 미라벨이 마주한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은 모두 엔칸토 안에 있다. 그래서 엔칸토에 깃든 마법과 그 마법이 만들어낸 화려함은 단순한 시청각적 즐거움보다 더 깊고 큰 감흥과 통찰, 더 나아가 위로를 선사할 수 있다.
물론 <엔칸토>가 결점이 아예 없는 작품은 아니다. 마드리갈 가족에 속한 인물이 너무나도 많아서 각 능력의 조합이 보여주는 재미와는 별개로 전개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것, 뮤지컬 애니메이션인데도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 넘버가 없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또 결국 마법이라는 환상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암시하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디즈니스러운 결말이 내포한 근본적인 한계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했거나 실패해서는 안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엔칸토: 마법의 세계>가 충분한, 어쩌면 충분함 이상의 위로를 건네는 디즈니다운 매력이 가득한 우화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A(Acceptable, 무난함)
배제당하거나 완벽해지는 것에 이골이 난 모두를 위한 두 번째 기회의 땅, 엔칸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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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리함을 뽑내는 펭귄, 그리고 관심이 필요한 문어
귀여운 것에 환장하는 사람으로서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귀여운 영화를 보는 것이다. 그렇게 웨이브의 늪에서 귀여운 영화 마다가스카의 펭귄을 발견했다. 정말 처음부터 귀여운 펭귄들이 잔뜩 나와서 행복했고, 남극의 빙하 위에서 뒤뚱뒤뚱 걸어가며 생각없이 살아가는 펭귄들과 이 생각없음에 개탄하는 4총사 펭귄의 대치가 초반부터 굉장히 귀여워서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다.
영화 마다가스카의 펭귄 시놉시스
넘치는 유머, 감쪽 같은 위장술, 똑소리 나는 브레인! 날 때부터 남달랐던 악동 펭귄 스키퍼, 코왈스키, 리코, 프라이빗! 어느 날 그들 앞에 복수심에 불타는 문어박사 옥토브레인이 나타나고, 그의 거대한 음모를 알게 된 펭귄 4총사는 비밀 조직 ‘노스윈드’와 함께 세상을 구할 사상 최대의 작전을 펼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마다가스카의 펜귄 스포가 존재합니다.
자그마한 관심도 못받던 문어의 발악
영화 마다가스카의 펭귄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관심받지 못한 문어가 열폭하고, 그 문어를 막기 위해 펭귄 4총사가 나서는 이야기다. 생김새만으로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펭귄들과 달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하던 문어 데이브는 이 모든 것이 펭귄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약물을 개발해 펭귄들을 세상에서 다 없애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 기회가 실패로 끝나면서 문어 데이브가 좌절하며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아진 문어 데이브를 향해 한 아이가 하핫! 너무 귀엽잖아~ 이 한마디를 시전하자 데이브는 굉장히 행복해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관심 한 번을 받지 못해 시작된 이 이야기. 어찌보면 사소한 관심이 막대한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이 마다가스카의 펭귄 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드러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특색을 잘 담아내다
문어 데이브가 세계 각지에 있는 펭귄들을 납치하면서 펭귄 4총사가 이를 막기 위해 문어 데이브를 뒤쫓는다. 그 과정에서 굉장히 여러 나라를 거치게 된다. 잠깐잠깐 등장하는 나라들이었지만 이탈리아면 이탈리아, 중국이면 중국 등 굉장히 해당 나라의 특색들을 잘 녹여내서 괜시리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데이브를 따돌리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모습에서는 베네치아의 가장 유명한 그,,, 배,,, 노래 불러주는 사공,, 뭐라 그러더라,,? 어쨋든 여유로운 베네치아의 모습과 상반되는 추격전이 대조되면서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뛰어난 능력이 없는 줄 알았는데 가장 멋있었어!
프라이빗은 다른 펭귄 스키퍼, 코왈스키, 리코보다 한참 어린 덕분에 사실 작전 수행을 하면서 큰 역할을 수행하진 않는다. 그래서 작품 중간쯤 프라이빗을 스피커에게 나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어!라고 말하지만 스키퍼는 지금 너가 맡은 역할도 중책이라며 어르고 달래서 쉬운 역할을 맡긴다. 하지만 그 역할마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스키퍼를 당황하게 만드는 귀여운 프라이빗이다.언제나 막내일 것 같은 프라이빗이었지만 형들이 다 데이브 문어에게 잡혀가서 이상한 괴생명체로 변하는 약을 맞고 정신이 오락가락하자 일사분란하게 형들을 구하고 형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우리 프라이빗이 달라졌다!
자신의 몸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프라이빗은 자신을 희생하며 결국 모든 펭귄들을 구하는데 성동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드래곤 시수가 생각났다. 가장 막내였기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세상을 구한 것은 막내였던 시수와 프라이빗이었다.
펭귄으로 좋아한다면, 작고 귀여운 펭귄이 얼마나 영리한지 알고 싶다면 영화 마다가스카의 펭귄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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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성인이고 누가 죄인인가
이 영화는 여러 면에서 당혹스럽다. 우선 액션 위주의 영화가 아닌데 <원맨>이라는 B급 액션영화 같은 타이틀을 달고 예고편을 만들어 착각하게 만든 게 당혹스럽고, 영화 내용이 한국의 역사가 오버랩돼서 당혹스럽다. 아마도 원래 타이틀인 <In the Land of Saints and Sinners (성도들과 죄인들의 땅에서)>로 개봉하고, 드라마 장르인 원래 메시지를 드러나게 했다면 더 관객이 안들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그렇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원맨>이라는 타이틀은 마치 <존 윅>이나 주연인 리암 니슨의 <테이큰>을 연상시키고, 영화를 본 관객들을 실망시키니까. 영화 <원맨>은 70년대 후반 북아일랜드 역사와 사람들을 보여주는 영화다. 우선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우선 간략하게 아일랜드와 영국의 관계, 아일랜드의 무장독립투쟁단체인 IRA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일랜드와 영국, IRA
아일랜드인의 주류는 켈트족이고 종교는 가톨릭이다. 영국인은 주류는 앵글로 색슨족이며 종교는 개신교 계열인 영국 성공회이다. 아일랜드는 아주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중세부터 이어진 전쟁과 간섭은 1600년대부터 완전히 지배당하고 1919년 독립선언을 하기까지 수백 년을 지배당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로 완전히 비교할 순 없지만, 이입을 해보자면 임진왜란 때 조선이 일본에 지배당하고 3.1 운동할 때 독립한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유럽의 오래된 진저(빨간 머리) 차별이 아일랜드인에 대한 차별과 엮여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아일랜드인 중 많은 사람이 빨간 머리와 주근깨, 흰 피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일랜드가 워낙 오랫동안 지배당했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인종적으로도 영국과 섞여있었는데, 그중 성공회의 영국인이 많이 거주하던 현재 북아일랜드 지역은 아일랜드가 독립할 당시 영국령으로 남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일랜드는 영국의 자치령으로 남아 남북 분단을 하려 했고, IRA는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하려 해서 아일랜드 내전이 일어난다. 결국 IRA는 지고 아일랜드는 남북으로 분단된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북아일랜드에서 성공회의 영국 계열 주민들이 가톨릭인 아일랜드인을 차별하고 핍박하는 게 점점 커져 '북아일랜드 분쟁'으로 확대된다. 이에 아일랜드 전체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IRA가 힘을 얻고, 점점 무장 투쟁이나 폭탄테러등을 하며 영국과 대립한다.
영화의 배경인 1979년에는 실제로 IRA가 루이 마운트백작을 폭탄으로 암살한 사건이 터진 해다. 이 사건으로 그의 가족들과 같이 요트에 있던 선원들까지 죽었고, 그가 아일랜드와 별로 척진 게 없기 때문에 아일랜드에서도 IRA의 행동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 영화의 시작에서 IRA가 폭탄테러를 하면서 죄 없는 아이들이 말려들어 죽은 것이 묘사된 게 이러한 IRA의 상황을 나타낸다. IRA는 강력한 아일랜드의 독립의지를 보여줬지만, 아일랜드의 은행을 털어 자금을 마련하는 등의 행동으로 나중에는 아일랜드도 등을 돌리게 된다. 하지만 영국군이 아일랜드에 계속 못할 짓을 하고 일반인들까지 IRA로 몰아 죽인 숫자는 더욱 컸기 때문에, IRA가 민간인 희생자를 내고 강도, 살인등의 행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IRA가 정말 선하냐 악하냐를 딱 구분 지을 수 없는 모양새다. 그러다 1998년 벨파스트 협정 이후, IRA는 공식적으로 무장투쟁을 철회하고 정당을 만들어 민주주의 방식으로 대항하고 있다.
성자도 죄인도 없다
주인공인 핀바 머피(리암 니슨)는 2차 대전 군대를 다녀온 전직 군인이다. 전쟁에서 돌아오고 나니 아내가 죽었고, 그 우울증 때문에 방황하다 살인청부업을 하게 된 거라고 설명한다. 핀바는 지역 주민들과 잘 지내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인 킬러다. 그리고 마을에 숨어 들어온 IRA와 대립하게 된다. 이 IRA는 독립 투쟁을 위해 폭탄을 터트려 요인을 암살했지만, 죄 없는 어린아이들까지 말려들어 죽게 한 죄를 가지고 있다. 그럼 독립운동가는 폭탄테러범이고, 그 테러범과 킬러가 싸우는 내용이란 말인가? 이 지점에서 한국인은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할 수밖에 없다. 현재 정치권에서도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테러범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볼 때, 아일랜드의 상황과 일제강점기 상황이 정확히 매치되지 않는다는 시선이 필요하다.
특히 영화에 잘 언급되진 않았지만, 핀바 머피는 킬러 이전에 죄가 많은 사람이다. 그가 2차 대전에 참전했다고 하는 것에 많은 것이 숨겨져 있다. 2차 대전 당시, 아일랜드는 내전 상황이었고 영국과의 관계 때문에 오히려 독일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공식적으로는 중립국을 선언하고 참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은 오히려 아일랜드를 침공하려 했고 이에 미국이 아일랜드를 점령해 연합국 기지로 활용한다. 이때 개인자격으로 참전한 이들이 있었고, 아일랜드에서는 이들의 존재를 크게 언급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한국이 해방 후 일본과 중국이 전쟁을 했다고 한다라고 가정했을 때, 한국인이 일본군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즉 핀바는 이제 막 독립한 나라에서 자신들을 식민지 삼았던 국가를 도우러 참전한 사람이었고, 거기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인 것으로 나온다. 영화에서 핀바는 킬러임에도 불구하고 인품이 좋은 할아버지처럼 나오지만, 사실상 영국을 도와 전쟁에서 공로를 세운 인물이고, IRA는 대의를 위해선 약자나 민간인에게 피해 입히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무자비한 인성으로 나오지만 사실 영국에 저항하는 독립군이다. 서로가 대의를 위해서는 반대편에 섰었지만, 이 영화에서 그 둘은 배경과는 정 반대로 서로의 개인적인 대립과 복수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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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편에 서서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이고, 평생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사람을 살해한 청부살인업자가 정말 선한가? 아니면 죄 없는 민간인들이 같이 죽어도 폭탄테러를 하고 폭행, 협박, 강도짓을 일삼는 IRA가 선한가. 서로가 서로의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믿는 바를 행하는 이들은 자신의 가슴속에 항상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며,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벌을 내린다. 마치 핀바가 읽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처럼.
영화를 보다 보면 자꾸 한국의 독립군의 상황 등이 생각나 미묘한 감정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영국-아일랜드-북아일랜드-IRA는 한국-일본 관계와 자세히 보면 많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을 대입하려 하기보다는 당시 북아일랜드가 겪어야 했던 많은 아픔들을 이해할 수 있는 영화라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 역사 드라마이기 때문에 '리암 니슨'이라는 이름이 주는 액션 스릴러로써의 시원함이나 멋짐 등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저 우리는 그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 그토록 많은 죄가 서려있다는 것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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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보도 얻고 상금도 받고! 영화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 씨네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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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이어트 플레이스 2]리뷰: 드디어 돌아왔다! 1편에 비해 아쉽지만 너무 재밌는 영화/약 스포
#콰이어트플레이스2#존크래신스키#콰플2
00:00시즌 1 이야기
02:28시즌 2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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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연애 실험 : 블라인드 러브 일본편> 공식 예고편
정말 아무것도 안 보고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연애 리얼리티 쇼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가 일본에 상륙한다! 외모보다는 자신의 참모습을 사랑해 줄 상대를 찾는 싱글들이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방식의 현대적 데이트에 참여한다. 남은 인생을 함께 보낼 상대를 만나고 싶은 남녀들. 단, 이 데이트 중에 상대의 외모는 볼 수 없다. 바깥 세계의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연애 상대가 될지도 모르는 상대와 대화를 이어가는 싱글들. 커플이 돼 현실로 돌아온 다음엔 함께 결혼을 준비하며, 속속 다가오는 예식일을 앞두고 함께 나눈 교감이 진짜 사랑이 될 수 있을지 곧 확인하게 된다. 후지이 타카시와 이타야 유카가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 일본편》의 진행을 맡아, 이번 사회적 실험의 진행 과정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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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낫아웃> 티저 예고편
고교 야구부 유망주 광호는 프로야구 드래프트 선발에서 탈락한다.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대학 진학을 원하는 광호. 하지만 광호의 선택은 동료들과 보이지 않는 갈등을 만들고, 기댈 곳이 없어진 광호는 친구 민철과 함께 가짜 휘발유를 판매하는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