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5-02 12:13:53
5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왕가위 차기작 '생 로랑'과 함께 선보일 예정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생 로랑은 ‘생로랑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패션 영역을 넘어 영화계에도 발을 들이고 있는데요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는 “나는 수년간 나에게 영감을 준 모든 훌륭한 영화계
인재들과 함께 일하고 싶었고 그들에게 플랫폼을 제공하고 싶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왕가위 감독 뿐만 아니라 <네이키드 런치>와 <크래시> 등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유스> <그레이트 뷰티> 등으로 유명한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과 작업을 함께한다고 합니다.
‘생 로랑’과 거장 감독들의 조합, 어떤 시너지를 보여줄지 너무 기대가 되는데요?
드웨인 존슨 상습적 태만 논란
더 랩(The Wrap) 기사에 따르면 드웨인 존슨의 아마존 프라임 영화 <레드 원>의 예산이 최근 몇 달 동안 2억 5천만 달러로 급증했다고 하며, 이에 대한 책임은 존슨에게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드웨인 존슨은 평균 7-8시간 촬영장에 늦었고, 때때로는 나타나지 않아 5천만 달러의 비용을 증가시켰다고 합니다.
<범죄도시4> 500만 관객 돌파
영화 <범죄도시4>가 일주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올해 개봉작 가운데 가장 빠른 흥행속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올해 최고 오프닝 스코어, 시리즈 최다 일일 관객수, 최단기간 500만 관객 돌파 등 올해 개봉작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특히 오는 4~6일 어린이날 연휴를 앞둔 만큼 <범죄도시4> 흥행세는 더욱 거세질것으로 보입니다.
왕가위 신작 X 생 로랑과 협업
최근 장편 영화 제작 배너를 시작한 프랑스 쿠튀르 ‘생 로랑’이 왕가위 감독의 차기작과 함께한다고 합니다.
줄거리와 캐스팅 등 세부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왕가위 감독은 전작 <일대종사> 영화 이후 10년만에 영화를 선보이게 됩니다.
김윤석 X 구교환 <폭설>
영화 <소리도 없이>로 제 41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 감독상을 차지한 홍의정 감독이 배우 김윤석과 구교환이 캐스팅된 영화 <폭설>에 합류합니다. 역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 심리 스릴러 <폭설>은 박선우 감독이 연출을 맡다가 최근 영화 제작사 ‘루이스 픽처스’에서 홍의정 감독을 공동감독으로 선정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개막
전주국제영화제가 1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개막식을 열었습니다.
민성욱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전주국제영화제는 매년 독립과 대안이라는 가치 아래 많은 영화를 관객에 선보이고 있다"면서 "영화에는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과 감정을 담고 있다. 이런 영화를 통해서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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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 알 수 있었던 당신의 몸짓 그 모든 것
봄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영경(한예리)과 수환(김설진)이다. 친구의 결혼식, 외로운 영경의 눈에 누군가 들어온다. 과묵한 남자 수환. 둘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지만, 깊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이미 서로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국어교사였던 영경, 사업에 실패한 수환. 두 사람의 마음에는 깊은 흉터가 있고, 몸은 이미 망가지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건 무엇일까? 사는 길은 있는 걸까? 거리의 나뭇잎과 꽃은 환하지만, 두 사람은 시들어간다. 더 시들기 전에,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죽음으로 향하듯
이 영화에 나오는 두 사람은 세상과 멀리 떨어져있다. 이 거리감을 표현하는 방식은 이 영화의 첫 시작부터 잘 드러난다. 기본적인 설정 중 하나는 두 사람이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결혼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영화 역시 새롭게 시작한다. 영경과 수환의 첫 만남. 운명처럼 만났다. 대화가 통하는 두 사람. 글쓴이가 어제 본 <슈퍼맨>처럼 대화가 통하는 남녀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 수많은 사람들이 다 검은 옷을 입고 엎드려있는 장면을 보여줄 뿐이다. 검은 옷을 입고 누워있다는 건 자연스럽게 죽음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대화하는 남녀가 엎드려있는 군중 속에 있다. 결혼식이라는 행사에 고의적으로 생기를 없애버렸다. 심지어 결혼식에서도 죽음에 가까운 두 사람. 세상과의 거리감과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 사이들 중 가장 죽음에 가까운 남녀의 모습을 초현실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후에 이어지는 장면. 두 사람이 포장마차에서 만난다. 서로의 사연을 공유하는 수환과 영경. 영경은 국어교사였다. 남편과 헤어진 영경. 영경에겐 아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친권을 뺐겼다. 마음에 흉이 졌다. 술로 빈자리를 채웠던 영경. 마흔셋의 이른 나이에 교직을 내려왔고 술로 일상을 보내야만 한다. 수환은 결혼에 실패했다. 사업에도 실패했다. 병이 생겼다.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는 수환. 온 몸이 아파 심지어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육체는 살아있을지 몰라도 두 사람은 죽어있다. 여기서 수환이 내뱉는 대사는 이 영화의 플롯을 한 번에 요약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동시에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나기 전 각자가 쌓아온 사연을 함축한 대사이기도 하다. 죽음으로 향하다가 새롭게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죽음 사이에서 나누는 사랑이 남는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이 소설이었다는 점 역시 본작이 죽음에 관한 작품이라는 암시처럼 느껴진다. 원작 권여선의 <봄밤>은 두 주인공의 일대기가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가족들이 나온다. 영경의 자매들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심지어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이 12년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있기도 하다. 이야기로서의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원작. 영화는 이 구조와는 거리가 있다. 인물들의 사연은 캐릭터들의 대사로 짧게 묘사된다. 과거회상을 통해 극적으로 몰입되는 감정선도 배제한다. 거두절미하고 딱 죽음 사이의 인물만 보여준다. 여자는 여자의 삶을 살다가 죽어가고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그 둘이 서로를 만나 함께 죽어가고 있다. 영화는 그 이미지와 고유의 리듬감이 핵심인거지 이야기로 구구절절 설득할 생각 없다. 카메라도 동선을 최소화한 방식을 차용한다. 수환이 영경을 업을 때 업는 동작마다 짧게 잘라서 숏을 구성한다던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던가하지 않는다. 그냥 행위와 잔상만 남는다. 편집도 마찬가지. 위의 촬영방식과 연장선상으로 죄다 분절되어있다. 감정을 극적으로 몰아붙인다던가 하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던 듯 하다. 인물들은 움직이기만 하고 그 움직임만 영화가 보여준다. 죽어있지만 단 한가지만 살아있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영화라는 점을 영화가 표현하고 있다. 아마 감정이입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 하다. 어차피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화가 동정이나 연민을 허락한다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처연함과 모순된다는 점에서 타당한 선택이다.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이 영화는 생동감을 보여주는 장면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며, 그 반복의 중심에는 김수영 시인의 시 ‘봄밤’이 있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로 시작하는 이 시는, 영경이 수환에게 업혀가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며, 사랑이 깊이 자리잡힐 때까지 반복된다. 영경은 자주 이 시를 읊고, 수환은 그 곁에서 듣는다.
영화는 마치 1시간짜리 음악처럼 각기 다른 장면과 상황을 이 시의 반복으로 이어간다. 시의 각 구절이 달라지지만,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 오오 봄이여’와 같은 후렴은 매번 같아, 인물들의 변화 없는 삶을 암시하는 듯 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시를 읊음으로서 느껴지는 리듬감이다. ‘삶은 결코 죽은 동일성의 복제가 아니다. 매 순간 새로운 차이를 생성하는 생성의 운동’이라고 말한 들뢰즈처럼 이 시는 죽음을 형상화한 플롯에 생기를 부여한다. 그 사이 시의 이미지들은 영화의 배경이자 정서적 풍경이 되고,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않는 두 사람의 태도처럼, 이들의 사랑 또한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조용히 스며든다.
몸짓과 눈빛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적 요소는 몸짓이다. 몸짓은 죽어가는 삶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가장 단적인 증거다. 대사가 아닌 몸의 움직임, 그 느릿하고 무거운 동선 속에 인물들의 감정과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다. 영경이 수환에게 업히는 장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 병든 몸을 간신히 이끄는 수환의 걸음걸이. 잠시 떨어져있던 두 사람이 재회할 때. 영경의 외로움. 그 외로움을 못이겨 술을 들이키는 영경. 이 모든 몸의 궤적이 말보다 선명하게 인물의 상태를 보여준다. 간단하지만 명료한 상태. 이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지만, 서로 사랑하고 있다.
이 몸짓을 바라보는 인물들의 시선은 몸짓을 보여주는 단적인 연출방법 중 하나다. 표정을 보여주면서 감정적인 여운을 부각시키기도 했지만 이 시선은 타인의 존재를 기본적으로 전제했다는 점에서 이야기에 맞닿는다. 움직이는 몸이 있고 그 움직이는 몸을 바라보는 장면을 카메라로 촬영한다. 감정이 오고감에 따라 영향받는 캐릭터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선을 보여주는 카메라워킹은 결국 후반부로 갈수록 하나의 키워드로 이어진다. 사랑이 죽었다는 건 물리적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결국 사랑이 인간에게 남기는 유산은 상대가 나에게 선물했던 모든 몸짓이라는 점이다.
영화에 서린 밤
볼 때는 내내 무표정이지만 보고 나서 계속해서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아프다면서 왜 저렇게 술 마셔? 너무 거리두는 거 아닌가? 술 살 돈은 어디서 났대? 하지만 이런 무던함이 무색하게 극장을 나오고 나서는 길에 그 아팠던 상처가 나에게도 생겼다. 언제는 운명처럼 반해야만 사랑이었나. 나에게 기억에 남았던 건 사랑하던 것/사람들이 생생하게 펼치던 몸짓이었다. 그 몸짓이 나의 밤에 선명하게 남았다. 이 영화는 이 밤을 상기시키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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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화에 걸맞은 그 이름 '리들리 스콧'
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고 싶다. 내가 사고 싶은 것들을 맘껏 살 수 있는 인생이면 괜찮을 것 같다. 돈이 없다는 건 사람의 기분을 많이 좌지우지한다. 가령 이 사회복무요원 제도도 200만 원 월급을 받으면 할 만하다고 느낄 것이다. 한 달에 70만 원 받고 일하는 건 아무리 봐도 심했다. 또한 돈이 많으면 이 카페에서 초코 라테를 마시고 돈가스를 맛나게 먹고 가도 괜찮으니 금전적인 여유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인생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솔직히 내가 글을 쓰는 것도 돈 벌고 싶어서라고 했을 때 '아니오'라고 하면 거짓말이다. 애써 아닌 척했지만 나는 사랑받기 위해서, 혹은 돈 벌고 싶어서 어떤 일을 벌인다. 난 배 굶주린 게 너무나도 싫다. 그래서 일을 하고 돈을 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만약 굉장히 유명한 언론사에서 나를 스카우트하면 어떡하지? 나 내가 쓴 글이 있는 한 회사가 엄청나게 유명세를 타면 좋을 텐데! 같은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유명세를 타 인세를 받았다 치자. 그 후의 내가 계획한 행동들도 있다. 300만 원은 저축하고 100만 원은 내가 사고 싶은 걸 살 것이며 100만 원은 내 생활비로 쓸 거다. 유명해지면 인세만 받고 끝나지 않잖아? 강연 같은 것도 들어오게 될 테니 부수적인 수입도 있지 않을까? 그럼 기획자로서, 작가로서 인정받는 것이니 외적인 사랑도 날 찾아올 거라 생각한다.
돈은 이렇게 미래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다. 그래서 모두의 삶에서 돈은 참 중요하다. 생활이 편하니까. 맛있는 거 먹을 수 있으니까. 근데 앞에서도 언급했듯 돈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무슨 범죄를 저질러서 착복한 돈이 아니라면 잘 나가는 기업의 CEO나 정치인쯤 되는 사람들은 존경까지 받는 경우가 많이 있다. 돈이 없는 건 아무것도 아닌데, 돈이 많으면 그 외 부수적인 것들도 따라오니 사람의 인생은 돈이 많거나 그렇지 않거나로 나눌 수 있다는 말도 그렇게 거짓말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나 열심히 살았다'를 증명하기 위해 우리가 스스로를 만족하고, 또 타인의 관심을 얻는 방식엔 '비싼 브랜드 제품 사기'가 있을 것이다. 브랜드 구찌는 이런 우리의 욕구에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라이톤이나 지갑, 가방 뭐 그런 것들은 나같이 스니커즈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돈 하나로 내가 사고 싶은 걸 산다는 건 별게 아닌데 우습게도 가끔 우리는 이런 것들로 개같이 일 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 에휴. 돈이 별건가. 쉽게 딱 얻고 끝나면 좋을 텐데. 내 아내(남편)가 돈 많은 사람이라면 일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통장에 꽂힐 텐데. 이걸 얻기 위해서 난 어떤 노력까지 해야 할까? 생각하면 할수록 첩첩산중이란 걸 느끼게 된다. 그럼 '내가 돈에 농락당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싶다. 결국에 내 인생에 중요한건 재미라는 거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거다. 자, 지금 상영관에 어쩌면 중요하고, 또 그 사람의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이 매개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가 있다. 작년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의 메가폰을 잡았던 감독 리들리 스콧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막장 드라마를 가지고 돌아왔다. 영화 보기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이 글이 좋은 참고자료가 되면 나는 많이 기쁠 것 같다.
소시민이었던 한 여자의 사랑이야기로 시작해서
이 영화는 이탈리아 밀라노를 기반으로 한 브랜드 '구찌'의 운영과정에서 있었던 살인사건이 중심이 되는 영화다. 파트리시아 레지아니는 20대 중반의 운송회사를 운영하는 부모를 둔 평범한 여자다. 그러다 구찌 일가의 구성원이었던 마우리시오 구찌를 한 파티장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처음엔 가족 간의 갈등이 있어 구찌 운영의 실질적으로 개입하지는 못했지만 점점 그녀는 돈에 대한 욕심을 밖으로 표출하게 된다. 영화는 이 욕망에 대해 조명한다. 욕망을 어떻게 발현시키고 또 이 이야기의 결론이 어떻게 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금방 찾아보면 이 영화의 엔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가 진짜 '무엇'에 관해 다루는 가에 있어 중요한 건 결론이 어떻게 나느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면이다. 어떻게 욕망에 의해 사람의 내면이 변해가는가. 그런 철학적인 문제를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국엔 변해가는 인간 군상에 대한 이야기
이 영화는 '욕망에 의해 변해가는 사람'에 대한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레이디 가가가 맡은 파트리시아 레지아니를 국한 짓는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그녀뿐만 아니라 변호사, 이른바 '금수저' 집안 등 다방면의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행동들을 벌인다. 이를 통해 관객들이 '와 이거 내 이야기 아닌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영화의 줄거리가 리들리 스콧이라는 거장의 손 아래에서 매끄럽게 뽑혔으니 블랙코미디로서도, 스릴러로서도 좋은 기능을 한다.
덜어서 완성시킨 영화의 이야기
이 영화는 자체적으로 완급조절을 잘 했다. 실화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쳐내 비교적 순한 맛의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한 가족이 있다. 근데 이 영화의 엔딩신으로 끝이 나는 가정이 있다고 치자. 이게 한국 아침드라마 감성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서 그렇지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국가에서 상영된다고 치면 ‘이게 뭔가’ 싶은 구석이 있을 것이다. 감독 리들리 스콧은 이 과제도 효과적으로 해낸다. 일반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사건을 그대로 실으면 '이게 내 이야기가 아니고 금수저들의 속사정일테니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근데 영화는 오히려 톤을 적당히 가볍게, 또 무겁게 유지해 극의 설득력을 높였다.
또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람들의 내면을 각본상의 허점이 없게 무난하게 표현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감독이라고 치자. 여자 주인공이 극의 중심이라고 쳤을 때, 사랑도 사랑이지만 '그녀에게 돈이 더 중요한 결혼 사유였다'를 표현하려면 어떻게 장면을 그릴 것인가? 난 '돈만이 결혼의 이유'이거나 '사랑이 결혼의 이유'로 연출할 것 같다. 감독은 이 사이의 묘한 선을 잘 타고 넘어간다. 사랑도, 돈도 놓치지 않는 캐릭터 작법을 보여준다. 이 두마리 토끼를 잡을만큼 뛰어난 거장이기 때문에 이 실화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고, 또 무난하게 뽑아낼 수도 있으니 과연 그가 이 극의 감독인 게 다행인 셈이다.
레이디 가가의 재발견
나에게 있어 레이디 가가는 가수다. 내가 10대 때 '포커페이스'가 나왔고 길거리 지나가다 많이 들었으니 그 곡의 후렴부를 지금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연기를 잘한다는 말을 전작 <스타 이스 본>에서도 듣기야 했지만 이렇게 카리스마가 있는 줄은 몰랐다. 은근히 작은 체구의 그녀가 뛰어난 호연을 펼쳐 주인공을 중심으로 영화를 보는데 큰 무리가 없다. 다른 배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역시 아담 드라이버일 것이다. 감독의 전작 <라스트 듀얼 : 후의 전투>에서 인면수심의 무식남 역할을 맡은 것과 비슷하다가도 다른 느낌을 풍긴다. 집에 박혀서 변호사 공부만 하는 숙맥에서 역시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인물을 묘사하는데 이 역시 탁월했다.아, 이 영화에 자레드 레토 나온다. '자레드 레토 나온다'를 강조하는 이유? 보면 안다. 꽤 중요한 역할을 맡고 나름대로의 배역의 어려움도 있다. 근데 유심히 안 보면 그를 알아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다른 역 알 파치노는 해마다 기력이 쇠하는 노인 역할을 잘 완수했다.
어떻게 구했어? 소품으로 구현한 당시의 구찌
브랜드 구찌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서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 회사의 제품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난 구찌 제품을 보고 한 번도 고급스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루이비통이나 에르메스같이 돈이 많이 드는 브랜드가 왠지 모르게 꺼려지는 나의 습성 때문은 아닐 것 같다. 그냥 구찌는 요즘 들어서 뭔가 촌스러워지는 것 같다. 그런데 1980~1990년대의 구찌 제품을 보고 엥? 싶었다. 이래서 구찌가 구찌구나! 하는 생각을 거의 처음으로 하게 됐으니 말이다. 영화 전체에 구찌 제품이 쓰이는데 이걸 일부러 소품용으로 제작했는지 않았는지 모르겠으나 꽤나 고증을 잘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명품 보는 재미로도 영화는 즐겁다.
꼭 실화를 읽고 나서 영화를 보지 말 것
이게 실화 바탕이라 관련 기사 쓱 읽고 가는 게 도움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난 이거 오히려 반대한다.우리 한국에 살면 '막장 드라마'에 익숙하지 않나? 그 글을 읽으면 관련한 드라마들이 생각나서 영화가 주는 재미를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스윽 가는 게 관객 입장에서 도움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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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기록하는 역사에서 느끼는 역사로
7★/10★(클라우디아 폰 알레만 감독 작품, 1981년, 113분, 독일.)
플로라 트리스탕. 이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혹 트리스탕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도 그를 고갱의 외할머니 정도로만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의 가족’이라는 호칭은 중요한 업적을 남긴 여성을 모욕하고 삭제하는 가장 흔하고 쉬운 방법이다. 여성 인물의 생애를 논할 때 늘 남성의 이름으로 채워진 ○○를 걷어내고, 가족이라는 사회적 울타리를 경유해야만 하는 상황 자체가 기울어진 역사를 증거한다.
트리스탕은 탁월한 저술가였으며 걸출한 사회주의 활동가였다. 그녀는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자본주의 도시화가 야기한 계급 격차가 처참한 결과로 이어졌음을 고발한 기념비적인 저서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을 쓰기 4년 전에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런던 산책》을 썼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그 유명한 문구를, 노동자 스스로 쟁취하는 해방이라는 아이디어를 마르크스보다 먼저 썼고 제시하기도 했다. 그녀가 죽었을 때 1만 명이 운구에 참여할 정도로 노동자를 반자본주의 전선에 조직하는 데 탁월한 활동가이기도 했다. 동시에 자신의 여성 정체성을 해방의 전망에 반영한 탁월한 정치 감각도 갖고 있었다. 억압받는 남성일수록 아내를 더욱 강하게 억압한다는 그녀의 문장이 이를 증언한다. 요컨대 플로라 트리스탕은 정부와 경찰이 두려워하는 저술가‧활동가이자 남성 노동자의 젠더 기득권에도 반기를 든 선구적인 여성이었다. ‘죽어가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그녀의 결기가 서슬 퍼렇다.
그러나 이 중 그 무엇도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다. 엘리자베트가 리옹으로 떠나는 건 이 때문이다. 〈리옹으로의 여정〉은 기억되지 못한 혁명가 플로라 트리스탕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젊은 여성 역사학도 엘리자베트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트리스탕이 리옹에 머물며 기록한 일기가 여정의 바탕이 된다.
영화의 템포에 주목해보자. 영화는 지극히 느린 속도로 리옹의 일상적 풍경과 트리스탕의 발자취를 좇으며 고뇌하는 엘리자베트의 모습을 오간다. 이는 트리스탕을 연구하는 엘리자베트의 방법론과 관련이 있다. 그녀의 지도교수는 자기를 삭제하고 남아 있는 기록과 주변인의 증언을 활용한 객관적 방법으로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엘리자베트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방법론은 트리스탕을 수동적 앎의 대상에 고정시킬 뿐이다. 엘리자베트는 트리스탕을 ‘느끼고’ 싶다. 그래서 그녀가 걷던 길을 걸으며, 그녀가 자주 향했던 강을 거닐며 그 소리를 녹음하고 이를 수시로 듣는다. 지금은 외국인과 노인만 남은 스산한 거리에서 트리스탕이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고 노동자 조직화에 투신했는지를 느끼려 한다.
트리스탕이 앎이 아닌 느낌의 대상이기에, 엘리자베트는 연구하는 동안 많이 ‘아프다’. 처음에는 가 닿을 수 없어서 고통스러웠지만, 어느덧 너무 깊게 들어온 트리스탕이 그녀의 몸과 마음을 뒤흔든다. 트리스탕이 점점 엘리자베트에게 스며들고 있다. 그 동질감이 그녀를 울렁거리게 하고 토하게 한다. 하지만 그 고통의 시간을 견뎌냄으로써 마침내 “내 걸음은 그녀의 것이 된다.”
객관적‧일반적 역사 연구가 아닌 동질감을 느끼는 엘리자베트의 연구 방법은 소수자 연구에서 특히 중요하다. 어떤 소수자의 역사든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대상과 맞서 싸운 사람이 있다. 그들의 동기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들의 용기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결국 ‘느껴야’ 한다. 그러나 이 느낌은 늘 제대로 된 역사‧저항의 방법론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런 방법론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늘 ‘과몰입’했다는 손가락질, 너무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라는 비난에 직면한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불가능한 싸움을 시작하겠다는 다짐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저항을 무마하려는 반동적 시도일 때가 많다. 트리스탕이 자본주의적 폭력과 남성 중심주의적 세계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을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용기였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 용기를 객관적 방법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어떤 연구방법론이든 독자를 설득하려면 어느 정도의 ‘선동’이 필요한 법이다. 이는 세계를 향한 ‘총체적‧객관적’ 전망을 필요로 하는 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SWIFF)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5일부터 9월 1일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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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스러운 두 배우와 동력을 잃은 리메이크
내 맘은 이게 아닌데
위이잉. 회로가 굴러가고 있다. 어떤 회로? 행복회로와 연애회로. 95학번 한국대 기계공학과 복학생 김용은 현재 행복회로를 굴리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수업 들으러 가는 용. 친구 놈이 말을 건다. "야. 너 그거 들었냐? 우리 과에 똑똑한 여자 애 들어온다는 거." 사실 학과에 신입생으로 여학생이 들어온다는 것은 '내일 일어나서 밥을 먹는다'에 준하는 흔한 이야기다. 아니 들어 올 수도 있지. 그런데 이 여학생이 다른 사람이 아닌 '서한솔'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수수한 외모. 그렇게 꾸미지 않았는 데도 한솔이의 미모는 저 멀리 있는 용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혼란스러운 세기말 1999년. 많은 것들이 바뀌기 바로 직전이었다. 두근 반 세근 반 용이의 계절도 봄으로 바뀌기 직전이다. 그렇게 설레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신나는 대학 생활. 어느 날 용은 은성이가 갖고 있는 'HAM 무전기'를 발견한다. 야. 은성아. 나 이거 써봐도 돼? 뭐라도 있으면 좋잖아? 한솔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전기를 빌리는 용. 용은 그 무전기에서 의외의 상대와 대화한다.
내 맘은 이게 아닌데. 무늬에게 사랑은 너무 어렵다. 무늬의 오랜 '남사친' 영지. 무늬는 영지를 사랑하고 있다. 21학번 대학생인 무늬. 무늬에겐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과 수다 떨 때는 떡볶이를 먹으며 노닥거리고, 인스타그램을 끄적이며 일상을 공유한다. 별 다를 바 없는 무늬의 20대. 그러나 무늬의 짝사랑 영지는 뭔가 다르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대학을 다니지 않았던 영지. 어느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하면서 보내고 있다. 난이도가 올라가는 무늬의 사랑. 영지가 다른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 하더라도 무늬에겐 용기가 없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영지. 불안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교양 과제를 위해 누군가를 인터뷰해야 하는 무늬. 집에 고물처럼 박혀있는 'HAM 무전기'의 수화기를 켠다. "씨큐. 씨큐. 혹시 들리시나요?" "네 들립니다. 제 이름은 김용이라고 합니다."
비주얼 합격
시놉시스를 4초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영화의 주인공은 용과 무늬다. 용은 여진구 배우가, 무늬는 조이현 배우가 맡았다. 드라마를 잘 안 보는 나. 여진구 배우의 대표작 하면 <화이>가 생각난다. 그래서 이 배우가 이렇게 좋은 배우였나? 싶었다. 일단 이 극에서 용(이)의 서사가 제일 중요하다. 전반부는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를 찌질하면서도 풋풋한 양면성을 띄는 톤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연기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작위적인 무언가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여진구 배우가 보여준 연기는 연기가 아닌 것 같았다. 이 연기에는 굴곡이 있어야 한다. 사랑에 빠졌기에 달달하고 멋있는 듬직한 모습과 사소한 것에 일희일비하는 궁색맞음이 한 사람의 톤 안에 있어야 극에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 여진구 배우는 이를 이해한 듯 풍부한 감정연기를 선보인다. 아마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조이현 배우의 화보집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말하는 분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진구 배우의 팬이라면 베테랑이 된 이 배우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이에 힘입은 배인혁, 김혜윤 배우도 그 시절 티가 나는 파릇파릇한 대학생을 잘 소화했다. 특히 김혜윤 배우는 96년생으로 한국 나이 27세다. 건국대학교를 다녔다고 검색하니 나온다. 아마 이때 15학번 신입생으로 들어온 많은 남학생들의 마음을 실제로 훔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대학생 연기가 아니라 진짜 대학생 같았다.
현대 시점으로 와서, 무늬 역을 맡은 조이현 배우는 극에서 가장 빛난다. 아마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라고 글쓴이에게 묻는다면 조이현 배우의 모든 것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나머지는 하이라이트 신에 삽입된 명곡이라고 답하고 싶다) 조이현 배우가 그렇게 장신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큰 화면으로 보면 조이현 배우의 비율이 더 뛰어나게 느껴진다. 또 조이현 배우가 무쌍 미녀의 대표 격 아닌가? 귀여운 외모와 더 귀여운 목소리 톤으로 사랑스러운 현대 시점의 이야기를 이 배우의 매력으로 끌고 간다. 연기도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역할로 잘 골랐다. 소심할 땐 소심하지만 인물이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씩씩한 내면을 잘 보여줬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볼 수 있던 남라 캐릭터의 강점을 어느 정도는 옮겨 온 듯하다. 후술하겠지만 영화에서 무늬의 감정선이 거의 이해되지 않는 것은 굉장히 치명적이다. 그러나 이 무늬에게 집중해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조이현 배우의 비주얼과 연기력 덕이다. 또 멜로드라마의 구성에서 과거 시점이 현재 시점보다 훨-씬 존재감이 세다. 대신 반대 측면에서 현재 시점이 영화가 정말 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서도 중요할 때 감정에 힘을 빡 주는 연기로 영화를 소화한다. 이 무늬를 지원 사격하는 영지 캐릭터, 그러니까 나인우 배우의 비주얼도 좋았다. 아니 대학생활하다 보면 꼭 저런 형이 여학생들한테 인기 많았다. 그 모습을 꼼꼼하게 묘사한 성실함이 돋보였다.
좀 갑작스럽네
그렇게 두 주인공의 비주얼을 예쁘게 뽑았다. 이런 로맨틱 코미디 장르나 청춘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이런 게 필수 아닌가?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이야기의 흐름이다. 일단 영화는 과거 시점과 현대 시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중요한 설정은 이 두 시점에서 두 인물이 대화를 나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22년 전 과거의 대상과 무전을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과거 시점이나 현재 시점이나 이 판타지적인 소재를 받아들이는 데 심리적인 장벽이 있어야 몰입이 쉬울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를 묘사하다가 말았다. 서로 '당신이 거짓말하고 있는 거 아냐?'라고 말하다가 갑자기 서로를 이해한다. 여기서 몰입이 어그러진다. 그럼 영화의 핵심으로 닿는 부분까지 감정 이입이 안된다는 단점이 있다.
또 이는 무늬라는 인물의 캐릭터성과도 이어진다. 무늬는 관찰자이면서도 능동적인 입장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관찰자로서는 용의 사랑을 모니터링하며 조언하는 역할을 아끼지 않는다. 이 관찰자의 관점에서 푸는 이야기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앞 문단에서 언급한 것의 연장선상에서, 용(이)에게 쏟는 감정선이 관객이 생각하는 것보다 깊게 느껴진다. 또 현재의 무늬가 갖고 있는 문제는 영지에게 어떻게 마음을 표현할 것인가? 에 대한 것이다. 이 이유가 단순히 용의 첫사랑에 같이 몰입해서 마음이 깊어졌다기엔 내면 묘사가 너무 안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이야기 비중을 좀 줄여서 무늬의 사랑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든다. 또 무늬가 HAM 무전기로 대화하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교양과목 발표다. 이 교양과목 발표가 너무 흐지부지 마무리된다. 영화를 보는 분들 중에 분명 대학생 신분이 있을 것이다. 보다 보면 친구들은 발표를 잘하는데 무늬만 굉장히 평면적으로 발표한다. 이는 '우리 모두 다 사랑하고 있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와 '낭만'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살리기 위해 희생한 것으로 보인다.
소소하지 않아
22년을 돌아온 리메이크다. 올해 후속작이 참 많았다. 그중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은 <탑건 : 메버릭>이다. 36년 전의 1편은 미국의 군인들에게 사기를 진작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22년의 이 <탑건 : 메버릭은>은 아날로그가 왜 사라져선 안 되는지에 대해 소리 한 방 크게 지르는 영화가 됐다. 이를 반영하는 호쾌한 액션으로 톰 크루즈의 대표작이 되었다. 36년이 걸린 이 영화. 두 영화는 차이점을 보여주며 왜 리메이크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이 <동감>은 22년을 걸린 리메이크의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구체적으로 굳이 영화의 시점을 2022년과 1999년으로 설정한 이유를 찾기도 어렵다. 뭐라고 적을 것도 없이 현대 젊은이들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없다. 또 과거라는 설정이 영화에서 엄청 중요했나? 그것도 아니다. 용과 한솔의 사랑이야기에서 터닝포인트가 되는 부분은 시대상과 관련이 없다. 이런 소재와 메시지가 따로 노는 현상은 자잘 자잘한 것에서 더 신경 쓰인다. 가령 무늬가 2022년 봄에 아이폰 13을 쓰는 것이나 3월에 패딩을 안 입고 다니는 것이 그렇다. 섬세한 힘이 부족해 고증에 실수가 있는 것이다. 또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소재로 거북이와 달이 있다. 이 두 소재를 통해 연출가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얕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개기월식이라는 소재는 영화에서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 또 거북이라는 소재는 영화에서 연결고리를 위해 기능적으로 툭 던진 느낌이 강하다. 굳이 마음의 이동을 표현하기 위해서 거북이가 있어야 하나? 아니라고 본다. 또 수위 아저씨가 극후반부에 어떤 이미지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조이현, 여진구 두 배우의 극후반부 퍼포먼스로 아련한 느낌을 잘 살렸다. 그런데 나레이션에 이것까지 더해지니 계속 들었던 말을 두,세번 반복하는 느낌이 강하다.
사랑스럽기만 한
영화는 사랑스럽다. 조이현, 여진구 두 사람의 캐릭터성이 통통 튀기 때문에? 맞다. 나인우, 배인혁의 훈훈한 비주얼? 김혜윤의 미모? 맞다. 영화는 이 배우들의 매력을 중심으로 사랑스러운 느낌을 잘 풍긴다. 그러나 첫사랑의 달달함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이렇게 짝사랑과 첫사랑에 대해 다룬 영화라면 뭐랄까 나 혼자서 품고 있는 짝사랑의 상대에게 메시지라도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무언가 동기부여가 생기지 않았다. 그냥 조이현 배우 같은 여사친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 정도였다. 이는 절대 관객들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닐 것 같다. 무슨 말이냐면. 영화가 사랑스럽긴 한데 굳이 이걸 봐야만 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영화 볼 거면 <건축학개론>을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니까. 더 사려 깊은 연출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아. 이 영화와 협업한 츄, 미노이의 리메이크 곡을 지금 글 쓰면서 듣고 있다. 이 <고백>과 <습관>이 아주 잘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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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욱한 안갯속을 부유하는 눅진한 에로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구소산 정상에서 추락한 남성의 사망 사건을 담당한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인 '서래(탕웨이)'를 만난 후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중국인이라서 말이 서툴기는 하나, "마침내 죽을까 봐" 걱정했다고 말하는 등 서래가 남편의 사망 소식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단순한 유가족이 아닌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 서래. 그러나 해준은 사건 당일 서래의 알리바이를 파악하고, 잠복수사를 통해 그녀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하며, 그녀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잠정적으로 판단한 후 그녀에게 더욱 빠져든다. 반면에 해준의 관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서래는 그를 이용하는지 그와 사랑에 빠진 것인지 좀처럼 속을 알려 주지 않는다. 이렇게 진심과 의심 사이를 오가는 두 남녀의 관계는 조금씩 불이 붙는다. 서래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보통 직선적이고 직설적이라는 인상을 남기곤 했다. 그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정인 복수심은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었다. 복수가 주제가 아니어도 다르지 않았다. 가장 최근의 장편 작품인 <아가씨>는 그녀들의 사랑을 가슴에 날아와 꽂히듯 강렬하게 제시한 바 있다. 그렇지만 그에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선사한 영화 <헤어질 결심>은 다르다. '헤어질 결심'이란 제목만 봐도 그렇다. 제목만 놓고 보면 도통 헤어지겠다는 것이지, 헤어진 것인지, 헤어지는 중인 전지 그 의미를 쉽사리 파악할 수 없다. 영화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녹색인지 파란색인지 알 수 없는 드레스만큼이나, 바다에 핸드폰을 던지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사진만큼이나, 영화는 눅진하고 갑갑한 안갯속을 헤매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박찬욱 감독의 불륜 멜로는 해준과 서래 사이의 에로스를 맞춰나가는 묘미로 가득하다.
<헤어질 결심>은 모호하다. 영화의 장르와 구조부터 그렇다. 얼핏 보기에는 스릴러 혹은 범죄 영화이나, 정작 서래의 신분이 유가족이 아닌 용의자로 바뀌는 순간부터 영화의 분위기는 진한 멜로로 급변한다.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누아르 영화와 진한 멜로드라마 사이에서 줄을 타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실제로 해준과 서래의 대화는 취조이면서 동시에 소개팅처럼도 보인다. 서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대해 정보를 알려주고, 서로에게 한 발짝씩 더 나아간다.
서래를 감시하는 해준의 시선도 그렇다. 그는 그녀가 남편을 살해했을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 그녀를 감시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그러나 정작 그가 지켜보는 것은 범죄 용의점이 아니다. 그는 그녀가 슬퍼하거나 밥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을 걱정하고, 홀로 드라마를 보다가 잠드는 상황을 동정하며, 그녀가 간병인으로서 할머니를 극진히 간병하는 모습에 빠져들어간다. 어떻게 보면 관음적인 시선이고, 또 한편으로는 에로스가 사랑의 화살을 겨누는 듯 보이기도 한다. 서래 역시 범죄 용의자를 현장에서 체포하는 해준을 보면서 그가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조금씩 마음을 연다. 취조실에서 고급 초밥을 함께 나눠먹는 둘의 모습에서는 형사와 용의자 간의 관계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의 다른 장치들도 둘의 관계를 확실하게 매듭짓지 않는다. 언어를 활용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중국인인 서래는 기본적인 한국어만 구사하기에 일상어가 아닌 '유일한'과 같은 어휘는 '단일한'이라고 말하며, '붕괴'처럼 자연스럽게 사용되지 않는 단어로 의사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에 늘 중국어로 말하고, 그들은 진정으로 소통이 필요할 때 스마트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성 화자인 서래의 말이 번역기를 거치면 부자연스러운 남성의 목소리로 변환되듯, 그들의 소통도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마찬가지로 취조실 안에서 카메라는 그들을 서로 다른 공간에 가둔다. 서로 마주 보는 장면이라 해도 꼭 한 명을 창문에 반사시키거나 모니터 안의 모습으로 등장시키면서 둘 사이의 연속성을 깬다. 이러한 어긋남은 서래가 범죄 혐의를 벗기 위해 해준을 이용하는지 아니면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는지, 또 후자라면 그들의 사랑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두고 의심을 거듭하게 만든다.
이러한 모호함은 1막 이후 2막에서도 유지된다. 녹색과 파란색을 오가는 서래의 드레스와 도시를 감싼 안개는 여전히 사랑하는지, 이별한 건지, 단념한 건지 알 수 없는 두 남녀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정훈희의 노래 '안개'도 분위기를 고조한다.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다오"라는 가사는 상대방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만, 또 막상 벗어나자니 그렇게 할 수 없는 모호한 감정을 안개에 빗대고 있다. 덕분에 안개가 자욱한 도시에서 펼쳐지는 형사와 용의자이자 동시에 남자와 여자인 둘의 눅진한 이야기는 좀처럼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질 결심>이 멜로드라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 해준과 서래의 관계를 헷갈리게 만들면서도 박찬욱 감독다운 방식으로 관객을 그들의 눅진한 멜로 속에 초대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그 중심에는 에로스가 있다. 사실 폭력성 외에 박찬욱 감독을 대표하는 특징이라면 전작인 <아가씨>에서 보듯이 섹슈얼리티를 꼽을 수 있을 텐데, <헤어질 결심>에서는 성애적 요소가 명시적으로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다만 이상하게도 야하게 보이는 대목들은 적잖이 있다. 서래의 DNA를 채취하는 장면부터 그녀가 양치하고 흡연하고 손에 붙 밴드를 입으로 부는 장면들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계속해서 서래의 입에 주목한다.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보면 입과 관련된 성은 성애의 첫 단계(구강기)를 의미한다. 이를 고려하면 해준과 서래가 에로스적 관계로 얽혀 들어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에로스적 욕동은 다른 방식으로도 표출된다. 해준과 서래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서로에게 부족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모습에서도 입은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서래의 집을 감시하는 해준은 그녀가 좀처럼 밥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매 저녁을 아이스크림으로 대신하는 그녀를 걱정하는 해준. 이에 그는 취조실에서 비싼 초밥을 사주고, 중국식 볶음밥을 요리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대신한다. 한편 해준은 잠이 안 와서 잠복근무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그렇지만 서래를 감시할 때 그는 승용차 안에 누워 있더라도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잠을 잔다. 또 관계가 진전되어가면서 서래는 해준의 수면을 도와주며, 해준이 잠들 때까지 자신과 호흡을 일치시키면서 심신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이때 영화는 아이스크림과 초밥을 먹는 서래의 입, 그리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두 사람의 입에 포커스를 맞춘다.
이러한 두 사람의 에로스적 관계는 왜 이들이 제각기 붕괴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에로스적 욕동이 가족을 이루고 사회와 문명을 이루는 기반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사회적 질서가 지나치게 강해지면 오히려 인간을 억압할 수 있고, 개개인도 에로스를 탐닉하면 본인이 문명과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면에서 에로스적 욕동은 인간에게 내재된 자기 파괴적인 욕망인 타나토스(죽음)적 욕동과 쌍을 이루기도 한다. 해준은 서래가 남편 사체 사진을 보겠다고 말할 때 동질감을 품고, 그래서 그녀에 대한 수사는 유리하게 진행된다. 이는 죽은 자(남편)의 시선으로 망자의 아내와 사랑에 빠질 이를 응시하는 카메라 시점이 독특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해준과 서래의 사랑이 그들을 의무로 규정된 사회적 관계로부터 벗어나는 창구이자, 동시에 깊어질수록 그들을 파괴하는 부메랑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해준은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내와 의무적으로 섹스를 하던 중 서래를 떠올린다. 애정 없는 관계에 갇혀 있는 자신을 구해낼 방법을 찾는 데 성공한다. 또 그녀의 도움을 받아 오랜 기간 추적하던 범인을 잡는 데 성공하면서 경찰이라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데도 성공한다. 한편 서래에게도 해준과의 사랑이 진전되는 것은 자신의 이니셜을 그녀에게 새겨놓을 정도로 소유욕이 강했던 남편과의 강압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그들의 욕구는 커질수록 그들에게 또 다른 압력을 강한다. 프시케를 곤경에 빠뜨리려다가 오히려 자신의 화살에 찔려버린 에로스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 서래를 사랑한 해준은 경찰로서 하면 안 될 실수를 범하고, 성실한 경찰인 자신의 정체성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범죄자인 그녀의 죄를 밝히면 안 되는 딜레마에 빠진다. 서래도 마찬가지다. 해준이 자신을 포기하려 하자 오히려 더 사랑에 빠져버린 그녀는 자신의 모든 삶을 걸고 그를 쫓을 정도로, 경찰인 그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삶을 포기할 정도로 그에게 빠져든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헤어질 결심>은 내용이나 연출적 특징에 비해 상당히 보수적인 영화이고, 그래서 여운이 짙은 작품이기도 하다. 서래의 범죄는 용서받지 못하며, 범죄와 얽힌 에로스적 관계는 해준과 서래 모두를 마지막까지 위협해 온다. 그러자 그들은 자의와 타의가 혼재된 채로 불륜이라는 범주 안에 머무르기를 택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과 사회적 관계를 보호하며, 결국 이는 강렬한 신파로 향한다. 많은 사랑 이야기가 그렇듯이 사랑의 타이밍은 언제나 엇갈리기 마련이고, 상대를 소유하려 하기보다는 놓아줄 때 진정으로 사랑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당신을 떠났고 이제 내가 당신을 사랑하려 하니 당신이 나를 떠나네”라는 대사에 온전히 담겨 있다.
심지어 <헤어질 결심>의 신파는 뻔하지만 식상하지 않다. 1부와 2부, 산과 바다로 나뉘는 영화의 구성 덕분이다. 영화는 두 개로 쪼개져서 해준의 서래에 대한 사랑과 서래의 해준에 대한 사랑을 각기 맛보게 하는데, 이러한 구성은 사랑의 엇갈림마저도 하나의 영화적 장치로 활용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앞부분에서는 서래의 살인사건을 미결로 놔두어야 하는 해준의 사랑을, 뒷부분에서는 자신의 살인 사건을 미결로 만들어야 하는 서래의 사랑을 풀어낸다. 두 개의 미결 사건은 하나의 영화가 되어 그들의 관계를, 엇갈리고 빗나간 사랑까지도 서사적 완결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대조적인 장소나 소재는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구소산 정상에서는 남편을 떠밀어 살해하지만 호미산에서는 해준을 뒤에서 안아주는 서래. 서래가 살인 사건의 진범이라는 증거를 담은 핸드폰을 건네는 해준과 그 핸드폰 대신 본인을 바다에 던져 증거를 인멸하는 서래. 그래서 <헤어질 결심>의 신파는 오히려 매력적이다.
단지 138분이라는 적지 않은 러닝타임에서 기인한 느슨함이 한 가지 아쉬운 점이다. 영화는 1막과 2막으로 나누어지는데, 사실 분기점에서 영화는 이미 절정에 다다르는 듯 느껴진다. 자신의 본심과 진실을 깨달은 해준이 '사랑한다'는 말만 하지 않았을 뿐 그 어떤 말보다 격렬한 사랑 고백을 한 순간 영화는 거의 끝에 도달한 듯 보인다. 1막에 꽤나 긴 분량이 주어졌기에 더욱 그렇다. 그 결과 산을 테마로 한 1막이 끝나고 바다를 테마로 하는 2막이 다시 시작될 때, 후일담처럼 느껴지는 2막에서 이야기가 다시 한번 절정에 이르기 전까지 영화의 템포는 다소 느슨해지는 인상이 남는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이 밝힌 대로, 그리고 전작인 <아가씨>처럼 1막을 '산', 2막을 '바다'라고 자막으로 표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다만 영화 자체가 안개에 싸인 듯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짜인 모호한 멜로드라마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아쉬움조차도 <헤어질 결심>의 질감과 감정선을 더 완벽하게 만드는 듯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내로남불이라는 명제에 담긴 감정을 완벽에 가깝게 영화적으로 풀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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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 어느 실패한 이상주의자의 이야기: <나사렛 예수>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비교
영화「Jesus of the Nazareth」와 「Jesus Christ Superstar」비교 분석하기
영화「Jesus of the Nazareth」(1977)와 「Jesus Christ Superstar」(1973)는 모두 신약성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전자는 예수의 전 생애를 다루고 있으며, 후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7일 전부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이 두 편의 영화는 예수의 공생애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형식, 그리고 성서와 성서 속의 인물들에 대한 해석의 부분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말하자면 고전에 현대적 입맛을 약간 가미한 현대 클래식 음악과 고전을 철저하게 현대적 관점에 따라 과감하게 변용한 록 음악의 차이라고나 할까. 이러한 두 작품은 성서라는 하나의 원형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각각 영화의 의도와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되었다는 점에서 썩 재미있는 비교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겠다.
영화를 감상함에 있어 중점을 두었던 것은 성서 속의 인물들이 각각의 영화 속에서 어떻게 달리 해석되었는가, 였다. 두 작품 모두 아주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수십 세기에 걸쳐 사랑받아온 예수와 온 세상 사람의 미움을 한 몸에 받던 갸롯 유다였다.
Jesus: 신의 아들이냐, 비극적 인간 영웅이냐!
먼저 예수에 관하여 이야기해보자. 「Jesus of the Nazareth」의 예수는 성서 속 인물과 꽤 일치한다. 그는 거룩하고 자애로우며 자비심이 넘친다. 고통 받는 이를 위해 먼저 손을 내밀고 그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고 가르침을 설파한다. 제자들을 비롯한 백성들은 그의 숭고함에 매료된다. 이를테면 그는 ‘신적 존재’로서의 예수다.
반면 「Jesus Christ Superstar」에서 그려진 예수는 이와 닮아있으면서도 다르다. 그는 보다 ‘인간적’이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 온 이유를 잘 알고 있으며 하나님이 자신에게 내린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열중한다. 그러나 백성들을 구제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많은 비탄 속의 백성들이 몰려들고,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신의 권세와 소임을 버거워한다. 몰려드는 환자들에게 ‘Heal yourselves!’라고 외치는 예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거룩하기 만한 성자로서의 예수와는 썩 다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러한 막대한 책임에 고통스러워한다. 창녀인 막달라 마리아의 무릎에 누워 유일한 위안을 청한다. 다소 우유부단하고 나약하게까지 느껴지는 그의 이러한 태도는 도리어 그에게 인간적인 공감과 연민, 심지어는 친근함마저 느껴진다. 이를 통해 예수라는 존재와 관객 혹은 신자와의 거리는 더욱 좁혀진다.
예수는 또한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며 자신이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는 하늘을 향하여(하나님에게) ‘왜 제게 독잔을 내리시나이까!’하고 원망한다. 죽음 앞에서 갈등하는 그의 모습은 흡사 비극의 주인공과도 같다. 그는 예정된 죽음이라는 비극에 고통스러워하며, 한편으로는 그러한 비극을 내리는 주체인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러나 그는 기어코, 결국에는, 자신의 운명을 정면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이야기한다. '주여,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하고. 그의 이러한 모습들은 죽음과 삶 속에서 갈등하던 햄릿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Jesus Christ Superstar」에서의 예수는 단순히 인간의 껍질을 쓴 신적인 존재로서의 예수가 아닌, 신성성과 인간성이 양립하는 어떤 비극적 영웅으로서 재탄생한다.
Judas: 어느 실패한 이상주의자의 이야기
한편 2천여 년의 세월에 걸쳐 악인으로 기록되어온 갸룟 유다에 대한 두 영화의 해석 역시 흥미롭다. 두 편의 영화는 모두 유다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성서 속에서 은전 30닢에 눈이 멀어 스승을 적에게 팔아넘긴 도적이었던 유다는 영화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악인의 길을 택해야만 했던 실패한 이상주의자로 탈바꿈한다.
「Jesus of the Nazareth」에서의 유다는 예수의 신실한 제자로, 예수를 진심으로 따르고 사랑했던 인물이다. 어쩌면 그는 예수를 가장 사랑했던 제자였을지도 모른다.
극 중 예수가 자신의 열두 제자들에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묻는 장면을 보면 유다의 예수에 대한 갈망이 잘 드러난다. 한동안 침묵이 감돌다가, 이내 베드로가 "당신은 메시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하니 예수는 '네가 가장 복이 있구나'하고 베드로를 껴안는다. 이때 유다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베드로를 제외한 열한 명의 제자들 중 다른 누구도 아닌 유다가 말이다. 이후 카메라는 점점 그들을 멀리 비추고, 스크린 너머에는 예수를 가운데 두고 왼쪽에는 유다, 오른쪽에는 베드로라는 극명한 대비가 보여 진다. 하나는 예수의 수제자로서 죽어서도 예수의 뜻을 이어받은 가장 거룩한 성인으로, 다른 하나는 예수를 배반한 배신자, 다시 말해 가장 사악한 악인으로 기록되니 무척 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예수에 대한 유다의 시선은 흡사 부모의 사랑을 갈망하는 아이의 그것과 닮아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스승인 예수를 향한 유다의 순수한 숭배와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다는 왜 예수를 배신했을까? 필자는 그의 이러한 극단적인 행동의 원인을 유다의 예수에 대한 ‘유아적인’ 애정과 지나치게 순진했던 이상에서 찾았다. 앞서 이야기했듯 유다는 예수에 대한 어떤 어린아이 같은 애정을 품고 있다. 그는 예수가 설파한 평화롭고 이상적인 세계 속에서 앞으로의 유대가 나아갈 방향을 찾았고, 그를 통해 이룩될, 해방된 유대를 그린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이 세상에 더욱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그의 훌륭함과 거룩함을 증명해보이기를 바란다.
언뜻 그의 생각은 논리적으로 보이나 사실 이는 무척 단편적인 발상이다. 어린아이가 제 아버지의 유능함을 타인에게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만하다. 그의 시야는 좁았고 마음은 급했다. 한시바삐 유대의 평화적 해방을 도모하고 싶은데, 예수는 그의 의도와는 정반대로만 갔으니 조바심이 났을 것이다.
그가 다른 제자들과는 다르게 학자 출신이었던 것은 이러한 견해에 박차를 가한다. 그가 극 중에서 이야기했듯 그는 ‘목수와 어부의 일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태어나 가장 낮은 곳의 사람들을 구원하고자하는 예수의 범인류적 차원에서의 뜻을 그는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비단 유대백성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고통 받는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했던 예수의 장기적인 안목을 유다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생각하라’던 예수의 말씀은 유다의 그러한 사정을 여실히 드러낸다.
성서 속 유다의 악인으로서의 면모는 실제 성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제라’라는 새롭게 창조된 인물을 통해 대변된다. 「Jesus of the Nazareth」에서는 이러한 교활한 제라라는 인물을 통해 유다가 선인이었으며 제라를 비롯한 유대 제사장들의 음모에 넘어간 불쌍한 인물로 나타낸다. 예수가 잡혀가 채찍질 당하는 것을 본 유다가 제사장들에게 은전 30닢을 돌려주겠으니 예수를 풀어달라고 간청하자 그를 조소하는 제사장들의 모습은 그가 철저하게 이용당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다.
「Jesus Christ Superstar」의 유다 역시 「Jesus of the Nazareth」에서 마찬가지로 유다를 동정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유다는 「Jesus of the Nazareth」에서보다 자신의 이상에 반하는 예수를 더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인물이다.
여기서 유다는 예수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는 값비싼 향유로 예수의 몸을 닦는 막달라 마리아와 그녀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는 예수를 질책하는 한편, 예수의 존재로 인해 유대의 백성들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지도 모른다고 염려하는 등, 다소 우유부단하기까지 한 예수의 태도와는 대비되는 이성적인 면모를 보인다. 신적 존재가 인간적으로 그려지고 인간(그 것도 예수를 배신한 악인으로 알려져 있는)이 이성적으로 그려지는 아이러니는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앞서 「Jesus of the Nazareth」에서 유다가 선인으로 표현되기 위해 ‘제라’라는 인물이 삽입되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유다는 ‘신(Jesus)의 뜻에 의해’ 예수를 죽이게 된 운명을 타고난 불쌍한 인물로서의 자신을 어필한다. 으레 다른 성서를 기반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예수를 죽이게 된 죄책감으로 자살을 선택하게 되고, 이때 "Poor Judas!"라고 외치는 앙상블이 울려 퍼진다. 이와 같이 영화의 전반에 울려 퍼지는 유다의 고뇌와 (배신의)결단, 그리고 후회 혹은 신에 대한 원망의 노래는 이러한 유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잘 보여준다.
막달라 마리아: 진실된 사랑을 행한 여성제자
이 밖에 성서나 「Jesus of the Nazareth」의 내용과는 달리 「Jesus Christ Superstar」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비중이 크게 다루어진 것 또한 인상 깊었다. 전자의 작품에서 다소 소홀하게 다루어졌던 마리아는 후자에서 예수에게 가장 진심어린 위로와 위안을 주는 사람이자, 그에게 가장 진실 된 사랑을 느끼는 여인으로 승격된다. 그녀는 예수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사람이자, 여느 열두 제자보다도 예수를 믿고 따랐던 여성제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녀의 예수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가능성이 떠올랐는데, 마리아가 수행한 여러 가지 역할들을 고려해 볼 때 이 애정은 아마 신에 대한 신앙과 스승에 대한 제자의 존경과 인간 남성에 대한 여성의 사랑 등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이리라고 사료된다. 단순히 하나의 구체적인 감정으로 해석되기에는 그녀의 행동들은 다각적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식적 비교: 클래식과 록 오페라
두 작품의 형식적인 차이는 이러한 각기 다른 관점의 해석에 걸맞게 나타난다. 「Jesus of the Nazareth」는 기독교 문화를 전도함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성서의 내용을 살려 표현하고자 애썼다. 그리하여 영화는 장장 6시간에 걸쳐 다소 엄숙하고 거룩한, 그러나 예수의 위대함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그려냈다. 이때 무조건적으로 성서의 내용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예수를 따라나서기 전에 약 하루 간 갈등하는 장면, 영화를 위해 창조된 인물인 제라, 선한 인물로서의 유다 등 영화적 장치와 현대적 재해석에 의한 약간의 변용이 나타난다.
한편, 「Jesus Christ Superstar」에서는 록 오페라의 이색적인 형식을 차용하여 보다 대중이 성서에 접근하기 쉽도록 성서의 내용을 각색했다. 흥겨운 노래와 춤들, 그리고 현대적 복장과 소품은 저도 모르게 시선이 그리로 가게끔 한다. 이 과감한 시도는 성서 속의 인물들에 대한 과감한 재해석과 맞물린다. 이때 「Jesus Christ Superstar」에서의 현대적 요소들(건축물, 소품, 복장 등)은 스크린 속에서 그려지는 세계가 현대의 이야기인지 과거의 이야기인지 아리송하게 만드는데, 이는 분명히 의도된 장치다.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할 때 흰옷의 입은 유다는 예수의 존재와 희생의 의미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이는 비단 예수에게만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 관객인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가 어떤 존재였으며 그가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지닌 인물인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두 작품에서 나타난 예수와 유다에 대한 색다른 시각은 놀랄만하다. 두 작품에서 두 사람은 단순히 선과 악의 차원에서의 평면적인 인물에서 벗어나 다양한 각도에서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성서의 이면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한번 상상해보자. 또 다른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이밖에도 성서를 모티프로 삼은 작품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것은 서양 문화권에서 그만큼 기독교 문화가 깊게 뿌리 박고 있음에 기인한다. 수 많은 영화 속에서 인물들은 예수가 되기도 하고, 유다가 되기도 하며, 때론 막달라 마리아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서, 혹은 성서 그 자체를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들을 살펴보는 것은 서양 사회 전반을 즐겁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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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 이 영상을 보셔야 예고편 이해가 100% 됩니다ㅣEBSㅣDUNEㅣ티모시 샬라메ㅣ듄 예고편ㅣ워너브라더스ㅣ드니 빌뇌브
? '듄(DUNE)' 영화 예고편 분석 및 원작소설 / 스토리 요약정리
- 영화 정보
장르: 스페이스 오페라
감독: 드니 빌뇌브
각본: 에릭 로스, 존 스페이츠, 드니 빌뇌브
원작: 프랭크 허버트의 듄(1965)
제작: 드니 빌뇌브, 케일 보이터. 메리 페어런트,조 카라치올로 주니어
주연: 티모시 샬라메, 제이슨 모모아 외
촬영: 그레이그 프레이저
음악: 한스 짐머
촬영 기간: 2019년 3월 18일 ~ 2019년 7월 26일
제작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워너브라더스
수입사: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2020년 12월 18일#듄 #듄영화예고편 #듄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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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썸머 필름을 타고 -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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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엔 너희들의 청춘을 내가 좀 쓸게”
시대극 찐팬으로 영화 감독을 꿈꾸는 고교생 `맨발`.
영화 동아리에서 자신이 기획한 [무사의 청춘]이 탈락되자
직접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절친 `킥보드`, `블루 하와이`와 드림팀을 결성한다.
우연히 극장에서 만난 미래에서 온 의문의 소년 `린타로`를 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한 `맨발`은
꿈에 그리던 촬영을 시작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지는데…
영화도, 꿈도, 사랑도 Ready Action!
올 여름 최고의 청춘+로맨스x시대극÷SF 걸작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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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강의 잠들어 있던 킬러 본능을 깨운자는 누구인가...! 짜릿한 액션 쾌감으로 7월 관객 취향을 저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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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언더그라운드> 메인 예고편
모두가 잰걸음으로 땅 위 삶을 향해 지하를 거쳐만 갈 때
'언더그라운드'에는 이 반듯한 공간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시끄럽게만 돌아가는 세상 아래
지하에서의 삶은 어떠한지 그들에게 다가간다
도시를 지탱하는 지하의 노선도, 언더그라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