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5-02 12:13:53
5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왕가위 차기작 '생 로랑'과 함께 선보일 예정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생 로랑은 ‘생로랑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패션 영역을 넘어 영화계에도 발을 들이고 있는데요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는 “나는 수년간 나에게 영감을 준 모든 훌륭한 영화계
인재들과 함께 일하고 싶었고 그들에게 플랫폼을 제공하고 싶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왕가위 감독 뿐만 아니라 <네이키드 런치>와 <크래시> 등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유스> <그레이트 뷰티> 등으로 유명한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과 작업을 함께한다고 합니다.
‘생 로랑’과 거장 감독들의 조합, 어떤 시너지를 보여줄지 너무 기대가 되는데요?
드웨인 존슨 상습적 태만 논란
더 랩(The Wrap) 기사에 따르면 드웨인 존슨의 아마존 프라임 영화 <레드 원>의 예산이 최근 몇 달 동안 2억 5천만 달러로 급증했다고 하며, 이에 대한 책임은 존슨에게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드웨인 존슨은 평균 7-8시간 촬영장에 늦었고, 때때로는 나타나지 않아 5천만 달러의 비용을 증가시켰다고 합니다.
<범죄도시4> 500만 관객 돌파
영화 <범죄도시4>가 일주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올해 개봉작 가운데 가장 빠른 흥행속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올해 최고 오프닝 스코어, 시리즈 최다 일일 관객수, 최단기간 500만 관객 돌파 등 올해 개봉작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특히 오는 4~6일 어린이날 연휴를 앞둔 만큼 <범죄도시4> 흥행세는 더욱 거세질것으로 보입니다.
왕가위 신작 X 생 로랑과 협업
최근 장편 영화 제작 배너를 시작한 프랑스 쿠튀르 ‘생 로랑’이 왕가위 감독의 차기작과 함께한다고 합니다.
줄거리와 캐스팅 등 세부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왕가위 감독은 전작 <일대종사> 영화 이후 10년만에 영화를 선보이게 됩니다.
김윤석 X 구교환 <폭설>
영화 <소리도 없이>로 제 41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 감독상을 차지한 홍의정 감독이 배우 김윤석과 구교환이 캐스팅된 영화 <폭설>에 합류합니다. 역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 심리 스릴러 <폭설>은 박선우 감독이 연출을 맡다가 최근 영화 제작사 ‘루이스 픽처스’에서 홍의정 감독을 공동감독으로 선정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개막
전주국제영화제가 1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개막식을 열었습니다.
민성욱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전주국제영화제는 매년 독립과 대안이라는 가치 아래 많은 영화를 관객에 선보이고 있다"면서 "영화에는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과 감정을 담고 있다. 이런 영화를 통해서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
- 엄마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찾다
엄마라는 존재는 모두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 엄마의 몸에서 생을 시작해 출산의 과정을 함께 거치고, 세상에 나와서도 엄마라는 존재에 크게 의지한다. 태어난 아이에게 엄마는 하나의 세상이다. 자신이 살던 좁은 뱃속의 세상에서 나와 큰 세상으로 나와서도 모두는 엄마가 만든 세상 속에서 성장해 나간다. 성장하고 자의식이 생기면서 우리는 그 세상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엄마가 만든 세상은 아빠와 엄마가 함께 만든 세상이다. 그 세상은 아마도 엄마의 부모들, 그리고 그 이전부터 만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세대를 거쳐 나라는 존재가 탄생해서도 그 세상은 계속 유지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엄마나 아빠에게 사고가 생겨 아이 곁을 떠난다면 그 세상은 갑작스럽게 무너져버린다.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했다면 그 과정이 조금 느리겠지만 결국에는 과거의 세상은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 그것이 우리의 의지로 된 것이든, 주변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든 우리는 그 세상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해야 하는 11살 남자아이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해야 하는 마히토(목소리: 산토키 소마)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갑작스러운 화재로 엄마를 잃는다. 그가 받았을 충격은 엄청났을 것이다. 그에게 세상을 만들어준 큰 존재 하나가 사라져 버린 것이니까. 그 일이 있고 몇 년 후 그는 아빠를 따라 다른 집으로 가게 된다. 바로 아빠가 재혼할 상대이면서 엄마의 동생인 나츠코(목소리 : 기무라 요시나)다. 과거에 이미 알고 있던 익숙한 사람이고 가족이었지만 닮은 듯 새로운 엄마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집으로 가는 마히토의 얼굴은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충분한 예의를 갖춰 상대를 대하지만 속마음을 알 수 없어 새엄마 나츠코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숙제 같은 상대다. 나츠코는 배속에 새로운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 조금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마히토를 데리러 역 근처로 온 나츠코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노력 중인지를 잘 알 수 있다. 마히토와 나츠코는 서로를 가족으로 인정해야 하고 각자 노력하고 있지만 완전히 마음을 열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과거의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와 같이 주인공인 마히토는 알 수 없는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세상으로 초대한 이상한 왜가리는 미스터리한 탑으로 마히토를 이끈다. 이 영화는 이제 82세가 된 노감독의 마지막이 될지 모를 그만의 세상으로의 초대장이다. 관객은 마히토와 함께 이상한 생명체가 가득한 신비의 세계로 조금씩 들어가게 된다.
마히토는 그 세상으로 간 것으로 추정되는 나츠코를 찾으러 간다. 나츠코는 출산이 가까워오자 부쩍 입덧이 심해진 상황이었다. 그때 마히토는 형식적인 안부만 묻고는 퉁명스럽게 방을 나섰다. 마히토는 새엄마인 나츠코를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었고, 학교에서도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마히토는 자신의 원래 세상이던 죽은 엄마의 세상을 완전히 잊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라진 새엄마를 찾기 위해 과감히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간다.
새엄마를 찾으러 신비의 세계 속으로
영화는 신비의 세상은 마히토의 엄마인 히미(목소리 : 아이묭)가 존재하고 있다. 또한 실제 세상에서 할머니의 모습인 키리코(목소리 : 시바사키 코우)는 젊은 모습으로 신비의 세계 한쪽에서 물고기를 잡아 나누며 모든 존재들이 균형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생활을 만들어가고 있다. 히미와 키리코는 이 세상에서 현실 세계를 이어주는 선의를 가진 존재이며, 신비의 세계를 유지하는 일종의 균형추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세상에 몰래 숨어 들어온 마히토는 그 균형을 완벽하게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깰 것인지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아직 성장 중인 마히토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모른다. 신비의 세계에 등장하는 다양한 기이한 생명체들처럼 그도 무의식 중에 그 세계에서 행동하지만 그가 죽은 펠리컨을 땅에 묻는 장면에선 그가 가진 선의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 선의는 그 세계에 도움이 될 듯 보이지만, 마히토는 다시 엄마를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무척 크다.
기본적으로 마히토는 엄마를 잃은 아픔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아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새엄마와 재혼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마히토의 마음속에는 죽은 엄마의 세상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가 새로운 집에서 새엄마의 노력을 보면서도 가까워질 수 없는 건, 그렇게 함으로써 무너지는 엄마의 세계가 두렵기 때문이다.
영화 속 마히토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선택을 한다. 새엄마인 나츠코와 함께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온다. 엄마가 살고 있던 신비한 세계는 천천히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그 세계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마히토는 새로운 가족을 인정하며 다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보여주는 그만의 세계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얼핏 한눈에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단순하게 보고자 하면 그 의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분히 느껴볼 수 있다. 과거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들어냈던 이야기들보다 이번 영화의 이야기가 좀 더 열려있다는 느낌이 든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꼭 한 두 가지의 해석만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관객의 흥미를 끄는 면이 분명히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큰할아버지(목소리 : 히노 쇼헤이)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사는 세계의 균형을 지킬 다음 존재가 마히토가 되었으면 하고 그에게 묻는다. 하지만 마히토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잉꼬대왕(목소리 : 쿠니무라 준)이 그 균형의 블럭을 모두 칼로 갈라놓는다. 어쩌면 큰할아버지는 현재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니었을까. 과거의 자신인 마히토가 그 세계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하게 갈라놓은 어떤 일 혹은 존재에 대한 원망이 담겨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 영화는 엄마라는 한 세계에 대한 영화이자, 감독 본인이 경험했던 삶의 선택을 보여주는 이야기일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화방식과 히사이지 조의 영화음악은 여전히 무척 잘 어울리고,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다. 이야기의 전개가 직선적으로 달려간다고 느껴지기보다는 병렬적으로 벌린 후 조금씩 좁혀들어가는 느낌이라 조금 느리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를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충분히 그의 세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주간 영화이야기 뉴스레터!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제 뉴스레터를 구독하실 수 있어요.
https://contents.premium.naver.com/rabbitgumi/rabbitgumi2
https://taling.me/vod/view/53700
https://www.notion.so/a9ada82f547a4c6f84e664ba59eb5377?pvs=4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
-
- 태양, 피부, 돼지로 그려낸 일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셸 프랑코 감독의 신작이자 제78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썬다운>의 첫인상은 여유롭고 느긋하다. 동생 '앨리스(샤를로뜨 갱스부르)'와 조카들과 함께 멕시코 해안 리조트에서 바캉스를 보내는 '닐(팀 로스)'은 문자 그대로 평화롭다. 그가 칵테일에 위스키를 추가로 넣어 마시는 조카와 장난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이 가족의 휴가에 함께 온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이들의 즐거움과 행복은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도 느껴진다. 어울리지 않는 타이밍에 삽입된 죽어가는 물고기의 눈빛, 뭐가 보이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통해 스크린에 비치는 닐의 피부는 보이지 않는 불안감을 자극한다. 활달한 조카들과는 대조적으로 묘하게 무기력한 닐의 모습은 그 불안감에 물음표를 더한다.
물음표에서 태어난 모호함은 닐이 겪는 일련의 사건, 그리고 그의 선택 때문에 더욱 커져 간다. 갑작스레 전해진 어머니의 임종 소식에 공황에 휩싸인 앨리스와 조카들을 데리고 급히 공항으로 향한 닐. 그런데 그는 갑자기 여권이 없다면서 호텔에 돌아가 여권을 찾은 뒤 다음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공항을 빠져나온 닐은 가족과 머물던 호텔이 아닌 다른 호텔로 향하며, 호텔방에서 짐을 푸는 그의 캐리어에는 여권이 보인다. 이후 핸드폰을 아예 끈 다음 유유자적하는 닐은 해변가 상점 주인인 '베리디세(이아주아 라리오스)'와 함께 밤을 보내고, 해변에서 난데없이 총살이 발생했음에도 닐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휴식에만 집중한다. 이러한 닐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고 비윤리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잔혹하기에 충격적이다.
이때 영화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닐의 동기를 알 수 있는 첫 번째 힌트를 제시한다. 바로 태양이다. 작중 닐의 시점에서 태양을 보는 숏은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런데 태양을 대하는 닐의 태도가 미묘하다. 일반적으로 해변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는 이들에게 태양은 반가운 존재다. 반면에 닐은 시종일관 태양빛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태양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더욱 부자연스럽다. 예로부터 인간에게 태양은 언제나 가장 긍정적인 요소들의 집합이었다. 어둠을 이기고 떠오르는 태양은 세상의 창조와 생명의 시작, 그리고 희망을 뜻했다. 또한 태양에서 나와 어느 곳이든 공평하게 비추어주는 햇빛은 정의였다. 이집트의 태양신인 라, 아몬, 프타 등이 창조신이고, 그리스의 태양신인 아폴론이 광명의 신이었던 이유다.
따라서 닐은 태양을 거부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생명의 소중함을 신경 쓰지 않고, 희망도 품지 않은 채 무기력하고, 아들과 가족으로서 그에게 주어진 의무를 외면하며 정의와 질서를 무시한다. 그저 자신만의 휴가와 안식만을 지키고자 한다. 닐은 늘 사회적 통념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이처럼 닐의 기이하고 이해 불가능한 행동이 서스펜스의 주재료다. 장례식과 뒷수습을 홀로 마친 앨리스가 잠적한 채 자신 만의 루틴으로 휴가를 즐기는 닐의 앞에 나타났을 때 닐이 보여준 태도가 대표적이다. 그는 당황하기는커녕 자신의 거짓말을 전부 인정한다. 가족이라는 인연에 연연하지 않으며 그저 월급만 받으면 된다며 손쉽게 계약서에 서명한다. 앨리스가 그들의 재산을 노린 괴한의 습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평정심을 유지한다. 용의자로 지명되어 교도소에 갇힌 후에야 심리적으로 불안해 하지만, 이마저도 여동생을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베레디세의 안위만 걱정하고,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그녀를 만나 섹스를 하는 모습이 그 증거다.
평화로운 휴가 이면에 깃든 불안함과 모호함을 잔뜩 끌어올린 후에 비로소 영화는 닐이 태양을 거부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답은 그의 피부에 있다. 교도소에서 나와 베리디세와 함께 장을 보고 그녀의 집에 방문한 닐은 갑작스레 계단에서 굴러 기억을 잃는다. 베리디세 덕분에 무사히 멕시코시티에 있는 대형 병원으로 이송된 닐. 그러나 의사는 피부에 생긴 악성 종양이 이미 온몸으로 전이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닐도 본인의 남은 삶이 시한부임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제야 영화 초반부터 등장했던 태양과 클로즈업된 피부 간의 관계에는 의미가 생긴다. 남은 삶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닐의 입장에서 밝은 태양은 자신의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청객이다. 이처럼 무언가를 태워버릴 듯한 태양과 햇빛에 의해 타오를 듯한 피부 이미지의 유사성은 남은 삶에 대한 닐의 집착을 암시한다.
그 순간 태양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미셸 프랑코 감독은 작가노트에 "태양은 태곳적 공간을 지배한다. 햇빛은 항상 무자비하고 직접적으로 사물을 때린다. 태양의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두 가지를 반영한다. 인물들의 정서적 상태, 그리고 그 주위의 만연한 폭력"이라고 적었다. 마치 이집트 사람들이 태양의 호의적인 측면과 포악한 측면을 각기 암소의 모습을 가진 하토르 여신과 암사자의 모습을 한 세트메트 여신으로 생각한 것처럼, 영화 속 태양 역시 양가적 측면을 모두 지닌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 속 햇빛이 유달리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밝은 태양은 아름다운 휴가를 빛내지만, 즐기기에는 지나치게 따갑고 강렬하다. 즉,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접했던 태양이 삶을 의미했다면, 이제 태양은 죽음을 뜻한다. 그래서 닐은 남은 삶에 집착하면서도 그 삶을 무기력하게 소비하는 아이러니한 태도를 취한다. 죽어가는 자신과 대비되는 태양은 물론, 죽어가는 자신과 유사한 햇빛마저도 밀어내려는 것이다.
이렇게 양가적인 닐의 태도는 마지막 힌트, 난데없는 돼지의 등장에 집약되어 제시된다. 어머니의 죽음을 외면하고, 여동생의 슬픔을 짓밟으며, 조카들의 실낱같은 희망을 파괴하고, 눈앞에서 벌어진 타인의 죽음에 무감각한 채 그저 자신만의 시간과 쾌락에만 몰두하는 그. 그런데 교도소에서 닐은 영국 축사에서 키우는 돼지 한 마리가 보이는 환시를 겪더니 작중 처음 심리적으로 흔들린다. 심지어 장을 보고 베리디세의 집 계단을 오르던 중 피투성이가 된 돼지 사체 환시를 보더니 기겁하면서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외부의 그 어떤 사건과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던 닐이기에 그의 리액션은 더 의미심장하다. 축사에 갇힌 돼지들에게 주어진 운명이 '죽음' 밖에 없다는 걸 고려하면, 죽어가거나 죽은 돼지를 본 닐은 그 역시 돼지처럼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그의 격렬한 반응은 자신의 쾌락만을 생각하며 지냈지만 결국은 죽음을 외면할 수도, 죽음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숙명을 마주한 좌절과 절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썬다운>의 끝을 장식하는 간접적인 일몰의 이미지는 죽음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고요함으로 가득하고, 자조적이고 체념적이다. 마지막 순간 카메라는 바다를 배경으로 테라스에 놓인 의자를 비춘다. 이 장면 속에서는 어떠한 생명도 느껴지지 않는다. 햇빛은 가득하지만 정작 화면에는 죽음의 이미지만이 가득하다. 태양의 따뜻함을 담당하는 하토르 여신이 역설적으로 죽음과 망자를 돌보는 '아름다운 서방의 여신'으로도 여겨졌듯이, 마지막 장면에는 일몰이 없어도 일몰이 느껴지는 태양의 양가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다. 이는 평화와 불안함이 동시에 느껴지던 초반부를 환기하는 서늘한 수미상관과도 같다.
더 나아가 <썬다운>이 단지 한 개인의 이야기 너머를 말하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태양, 피부, 그리고 돼지라는 부자연스러운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 모호하고 상징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사이에는 더 다양한 해석의 공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셸 프랑코 감독이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투쟁을 다루었던 디스토피아 스릴러 <뉴 오더>로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차지했던 바 있음을 고려하면, 닐의 이야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몰락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로도 읽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닐의 집안이 축산업으로 상당한 자산을 축적한 가문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맥없는 그의 모습은 돈에 신물이 난 사람처럼 보인다. 또 축산업처럼 다른 대상을 수단적으로 이용하는 돈벌이에 실망하고, 그 과정에서 트라우마 혹은 죄의식에 빠진 사람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모든 관계를 끊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그의 발악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밖으로 탈출하고 싶은 심정의 표출로 느껴진다. 하지만 여동생과 조카들이 끝내 그를 찾아내고, 그들 간의 대화가 결국 돈과 계약서로 귀결되는 것은 닐이 죽음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듯이, 계속해서 죽은 돼지를 보듯이 시스템 밖으로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닐이 영국인이라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영국에서 최초로 탄생했기에 어머니의 죽음은 마치 자본주의 사회의 쇠퇴를 말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시한부 인생을 받아들이고 일몰을 기다리는 닐의 모습은 해답을 찾지 못한 이들의 자조이자 한탄에 가깝다. 달리 말해 <썬다운>은 현대 사회에서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위한 시인 셈이다. 이렇게 <썬다운>은 평화로운 해변의 일몰에 담긴 죽음이 과연 누구의 죽음 일지 거듭 고민할 공간을 열어 놓은 채 싸늘하게 마무리된다.
E(Exceed Expectations, 기대 이상)
죽어가는 것들을 위한 시. 죽지 않을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
- 4등 (2015)
영화 <4등>의 중심 인물은 모두가 피해자다. 이미 첫 아시안 게임에서 신기록을 세우고, 다가오는 아시안 게임의 유망주로 떠오르는 젊은 수영 천재 ‘광수’, 수영이 좋아서 시작했으나 매번 4등만 하는 ‘준호’, 기자이자 준호의 아버지인 ‘영훈’, 악착같은 준호의 어머니인 ‘정애’. 간략한 소개로만 보아선 이들이 무슨 피해자인지 의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영화속 이들을 지긋이 바라보면 그들이 어딘지 말도 안되는 선택을 하며, 그 선택의 원인을 좀처럼 찾을수 없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속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 중력을 행세하는 힘의 주체는 대체 무엇인가? 쉽게 보이지 않는 이 희미한 중력장의 실체는 영화속 인물들을 하나 하나 정리하다보면 발견할 수 있다.
1-1. 광수
가장 먼저, 광수의 경우는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태릉선수촌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태릉으로 출발하는 날 그의 오래된 고향의 폐건물에 들러서 광수는 불법 도박을 하고 있는 고향 선배들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폐건물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광수의 뒤에 떨어진 말. “내일 가도 되잖아, 너 천재잖아”라는 그 말이 광수를 다시 도박판으로 불러들인다. 서울로 떠나려던 광수는 뒤를 돌아보며 입맛을 다시고 뒤돌아서더니, 다음 컷에는 어느덧 광수가 도박판에서 도박을 하고 있는 컷으로 이어진다. 광수는 이 지점에서 어촌 마을의 도박에 빠진 ‘형님’들이 만들어 놓은 덫에 빠진 셈이다.
광수는 몇날며칠을 도박에 빠져 태릉선수촌에 늦게 들어가게 되고, 뒤늦게 들어간 광수를 본 선수촌 코치는 대걸레 자루로 광수에게 체벌을 가한다. 대걸레 자루로 백 대. 그 체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광수의 몸은 분명 곤죽이 되고 말 것이다. 광수는 저항하고, 저항은 코치의 심기를 건드린다. 곧 체벌은 감정적인 폭력으로 변질되고, 광수는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선수촌을 떠난다.
1-2. 어머니 정애
정애는 아들 준호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아들 준호는 매번 4등만 하고, 정애는 준호의 성적이 아쉽기만 하다. 정애는 준호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기꺼이 악역이 되고자 한다. 준호에게 일부러 밉살스럽게 ‘4등’이라고 부르는 모습, 준호에게 대놓고 “엄마가 싫지? 그러면 수영할 때 엄마가 뒤에서 쫓아온다고 생각하고 해 봐”라는 식의 말들을 하며 준호의 성공을 위해서 기꺼이 악역을 자처한다. 정애가 아들에게 거는 기대는 첫째로 아들이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고, 둘째는 정애가 열정을 부을만한 것이란 이제 아들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극심한 교육열로 유명한 한국사회 수많은 어머니의 초상을 담은 것이 영화 <4등> 속에서 그려진 정애의 모습이다. 특히나, 그 자식에게 거는 간절함의 깊이는 사회적인 계급과 지위가 낮을수록 짙어진다. 출산과 육아후 전업주부로서 아이들의 삶만을 좇는 정애에게는 사회적 지위가 없다. 그녀가 사회속에서 온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로지 아이들의 교육밖에 없다. 이는 한국사회의 구조, ‘여성’에게 부과되는 독박육아와 강력한 사회적 단절의 탓이다. 이런 구조 탓에 어머니 정애는 자기 자신에게서 더이상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닫고 두 아들을 다그친다. (자신처럼)구질구질하게 살기 싫으면, 노력해서 성공하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1-3. 아버지 영훈
아버지는 수영 천재이자 유망주인 광수를 만나고 이 유망주를 일찍이 알아보고 친해진다. 영훈은 광수의 성적을 묻고 광수가 높은 기록을 세웠다는 대답을 듣고는 광수에게 기대를 걸며 명함을 건네준다. 그때까지만해도 그는 광수에게 호의적이다. 기자인 그가 수영 유망주와 친해지고자하는 목적은 어느정도 알 법하다. 그리고 이런 가벼운 인간관계는 작은 균열에도 쉽게 무너져내린다는 사실 또한 충분히 알 법하다.
광수가 태릉을 박차고 전화를 건 것은 ‘영훈’의 번호였다. 광수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한다. 대걸레 자루로 100대를 맞으라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자신이 있어서 늦게 간 겁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1 주일 늦었습니다. 그리고 광수의 절박한 전화를 받은 영훈의 대답은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았겠지”였다. 그리고 이런 영훈은 후에 자신의 아들 준호가 새로운 수영 코치 광수에게 체벌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광수를 찾아가 그에게 아이에게 체벌을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를 통해서 영훈은 분명하게 체벌에는 반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체벌에 반감을 갖고 있는 영훈은 광수의 전화를 외면하는데, 이 행동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란 영화를 통해서 다 알 수 없기에 추론만 가능할 뿐이지만, 가장 높은 가능성을 가진 이유를 제시해보자면, 영훈이 광수를 두둔한다고 하여 이득이 될 것이 없다는 점이다. 앞으로 자신의 업으로 한 집안을 이끌어가야 할 영훈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 비주류의 물결에 몸을 떠맡기라는 선택은 어렵다. 영훈에게는 일단 제 식구들을 먹여살려야 할 의무가 있고, 그 의무는 전적으로 영훈에게만 짊어져 있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영훈은 다소간에 뻔뻔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역시 그 기형적인 한국 사회의 구조탓이라고 하겠다. 여성에게는 독박육아가, 남성에게는 생계유지의 의무가. 한쪽 성별에게 주어지는 전적인 의무들이 그 의무를 짊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제멋대로 헤집고, 망쳐놓는다.
1-4. 준호
“형. 1 등하면 무슨 기분이에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4등 준호는 1등을 해낸 초등 수영부 선수에게 자신이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묻는다. 이런 준호는 광수의 과거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준호는 그저 수영이 좋아서 시작했고, 엄마는 성적이 나오지 않는 준호탓에 애가 타서 새로운 코치 광수에게 준호의 지도를 맡긴다. 그리고 광수는 준호에게서 재능을 발견한다. 광수는 재능있는 준호를 키우고자 체벌로 엄하게 가르치며, 어린 준호는 당연히 맞는 게 싫다. 하지만, 준호는 가정으로 돌아와 어느순간 자신의 동생에게 자신이 받은 체벌을 그대로 재현하며 동생의 울음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치 광수처럼.
역설적으로도 준호는 새로운 코치인 광수에게 ‘엄하게’ 교육을 받으면서, 성적은 점차 좋아진다. 하지만 성적과는 반대로 준호는 점차 코치의 체벌이 두려워 수영에서 느꼈던 순수한 흥미와 즐거움을 점차 잃게되고, 급기야 광수의 체벌 탓에 더 이상 수영을 하지 못하겠다며 아버지에게 고백하고, 수영장을 떠난다.
2. 기성 사회의 구조와 구조속의 피해자들.
이 네 명의 중심인물을 정리하다보면, 영화가 그려낸 그들의 삶은 도덕적 딜레마에 의한 긴장의 장력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선 광수는 태릉으로 떠아냐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박장에 남고, 모욕적이고 감정적인 체벌이 싫어 태릉을 떠났으면서 체벌을 대물림하며, 정애는 자신이 악역을 맡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악행을 중단하지 않고, 영훈은 타인의 고통은 외면하더라도 자기 자식의 고통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준호는 마찬가지로 체벌이 싫었으면서 체벌을 대물림하고 권위적으로 누군가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갖게 된다.
앞서 정리한 바와 같이 이 도덕적 딜레마들은 모두 어떤 원인에서 부터 발생하고 있는데, 이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귀납적으로 접근하면 그 원인을 밝혀볼 수 있을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영화속의 모든 문제는 불합리한 기성 사회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어촌마을의 기성세대인 ‘형님’들이 만들어 놓은 도박판에 어쩔수 없이 빠져드는 광수, 그리고 잘못은 체벌을 통해 몸속에 교훈을 새겨야 한다는 기성의 교육 방식, 양심적인 비주류에 휘말리면 생계를 보장할 수 없는 사회속에서 생계를 위해 뻔뻔해져야 했던 영훈, 이 사회속에서 이젠 자신이 무엇도 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자식들은 무엇이라도 근사한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정애.
영화 <4 등>속 인물들을 통해서 “어떤 사물의 의미는 개별로서가 아니라 전체 체계 안에서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구조주의 이론에 따라 잘못된 기성의 구조속에서 상처받는 이들의 면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어쩔수 없이 잘못된 구조를 따르기 위해 자신들의 개별적인 의미와 신념을 잃고, 사회 주류의 신념과 구조를 따르는 이들의 삶이 멀리에 있지 않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사회적 지위와 계급이 낮을 수록 구조의 요구와 강요에 더욱 순종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글이 기성 사회를 만든 기성 세대들을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이런 아픔은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시대적 상처이며, 일반적인 역사적 기류에 의한 것이지 특정한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으로 기성의 세대를 비판하는 것이아닌 기성의 사회 구조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되돌아보며 무엇을 고쳐나가야 할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3. 구조속에서 잃어가는 것들
영화 <4 등>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현재까지 앓고 있는 상처를 재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이며, 몇몇 사람들에게는 지난한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처지와 영화속 불합리한 상황들을 동일시 여겨볼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 <4 등>속 인물들은 구조에 의해서 요구된 악역을 어느정도 떠맡는다. 이를 통해 관객은 상처를 지닌 자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역설적인 비인간성을 영화속에서 목격하며, 이 영화가 마냥 통렬한 사회비판의 영화로만 다가오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아마도 비판만을 담은 영화였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테지만, 영화 <4등은> 사회구조의 문제성에 대한 비판만을 하지 않고, 더 나아가 한 줄기의 희망을 예술적으로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 그 때문에 <4 등>은 조금 높게 평가하고 싶은 영화다.
구조속에서 잃어가는 것은 개별체의 순수한 특성이다. 우리 인간은 모두의 지문과 홍채가 다르듯이 인간이 가진 개별성은 인간 종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개별적인 인간이 모인 사회의 다양성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때때로 ‘구조’는 구성원들에게 특별한 지위와 책무를 떠맡기거나 강요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순수한 특성, 개별성과 주체성을 잃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강요와 구조가 정의한 개체성에서 탈피하여 자신만의 순수한 개체성을 추구할 때 아름답게 빛난다. 영화 <4등>에선 그 아름다움을 묘사하는데, 사회적 구조 속에서 정당화되는 체벌이 두려워 수영장을 떠난 준호가 다시금 수영을 하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로 늦은 새벽에 수영장을 찾아와 홀로 어둡과 차가운 물속에서 빛을 따라 헤엄치는 장면에서 그렇다.
이 씬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어둑한 새벽, 어둑한 물속에서 감감히 출렁이는 빛의 주변을 헤엄치는, 절대적인 어둠속 희미한 빛의 주위로 떠도는 여리고 어린 피사체의 모습이 씬에 아름답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본래 밝기만 해서는 그 밝음의 정도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인지라, 어둠속에서의 그 희미한 빛을 향해 헤엄치는 준호의 모습은 그 어떤 희망적인 언어보다도 강렬한 희망의 언어로 읽힌다. 비록 그 빛이 준호를 수영장에서 꺼내올리는 빛에 불과했다 할지라도, 카메라에 담긴 영상은 그 결과로만 축약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4 등>은 이렇게 구조속에서 피해받는 이들의 고통과 초상들을 보여주는 한편으로는, 우리 각자가 지니고 있는 사회구조 내의 개별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에서 탈피하여 개별적인 존재를 추구하는 과정이 지닌 순수함의 미학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희미하지만, 희미하기 때문에 강렬한 희망의 메세지를 유려하게 그려내어, 작금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비판의 메세지와 함께 영화의 미학적인 추구 또한 충실히 따르고 있는 꽤나 괜찮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
- 아리 애스터의 <미드소마>, 공포영화? 이별영화?
사교(邪教)를 통해 보여준 예술과 종교의 존재에 대한 사유
눈부시게 아름다울수록 공포와 두려움은 커지고 기이한 오컬트 속에서 왠지 모를 위로가 느껴진다. 개봉 전부터 로튼 토마토에서 고득점을 하며 많은 관심을 받은 아리 애스터 감독의 작품이다. 전작 <유전>과 <미드소마> 모두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지만 <미드소마>는 <유전>과 달리 주인공을 불안과 어둠으로 둘러싸인 한 가정에서 개인으로 옮겨 귀신이나 신이나 초자연적 현상과 같은 요소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를 보여주며 화려하고 이색적인 풍경에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기이함에 놓여 방향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영화이다. 전작 <유전>으로도 큰 호응을 얻은 것도 한몫했겠지만, <미드소마>가 로튼 토마토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데에는 수많은 걸작의 탄탄한 레퍼런스와 실제 연출을 위한 감독의 섬세한 연구 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미드소마>는 감독이 연인과 싸우고 쓴 각본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영화에서 연인의 관계, 결혼, 이별, 이혼 들을 통한 의존적 관계에 대해 고심한 감독의 노력이 다방면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국내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의 팬임을 밝히고 할리우드판 리메이크 작의 제작까지 참여 예정인 아리 애스터는 이 외에도 다수의 작품을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이미 여러 번 인터뷰에서 밝혔다. 시나리오 레퍼런스로 <결혼의 풍경(1973)>, <결혼과 이혼 사이(1981)>, 미장센 레퍼런스로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1964)>, <석류의 빛깔(1969)>, <2층에서 들려오는 노래(2000)> 등 치밀하게 준비한 덕에 1970년대의 <위커맨(1973)>의 뒤를 이을 2019년의 포크 호러작 <미드소마>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이 돋보이는 미장센의 대표적인 예로, 영화의 초반부인 대니의 집의 벽에 걸린 축제를 벌이는 듯한 기이한 그림의 액자 등과 같이 많은 이스터 에그들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들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사원이나 제물이 불에 타는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은 감독은 버림받은 주인공이 과거와 연관된 물건들을 태우고 나서야 그 관계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처럼, 관계의 파탄을 보여줄 수 있는 전형적인 방식을 차용하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는 대니가 가족을 잃으며 시작하여 새로운 가족(공동체)을 얻으며 끝나는 시나리오와도 맞닿아있다.
아리 애스터의 또 다른 두드러진 연출로는, 다른 대중적인 호러물과는 다르게 ‘일반적인’ 남성 제작가의 시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릴러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의 작품부터 다수의 호러물, 스릴러에서 관객의 몰입도와 교감 신경 자극을 위하여 성적 긴장감을 이용하곤 한다. 하지만 <미드소마>의 경우 ‘일반적인’ 성적 긴장감을 조성할만한 요소들이 다수 있으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수동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이러한 감독의 시각의 영향으로 감독의 성장 배경 및 개인사를 고려해 볼 수 있는데, 이성애와 권력의 관계를 뒤집어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전 단편작 <The Strange Thing About The Johnsons>에서도 보이듯 동성애와 종교적으로 받은 억압이 감독의 시선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어느 정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우리는 종종 삐뚤어진 소망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감독은 관객들이 밝고 화려한 호르가 구성원들의 의식에 함께 빠져들기를 바랐을 것으로 보이지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자 감독이 정말로 전하고자 했던 장면은 바로 대니가 울자 함께 더 크게 울어주는 호르가 구성원들의 장면일 것이다. 주인공 대니가 겪은 어려운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대니의 상실에 공감해주지 못하는 남자친구와 대니의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지만 울고 있는 대니의 옆에서 함께 울어주는 호르가 구성원들 중 후자를 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또한 주인공을 철저하게 상실로 인한 결핍 속에 배치한 뒤 서서히 권력을 부여하며 주인공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특이한 오컬트 영화로 포장했지만 속은 대니의 이별 영화인 셈이다. 예술이라는 기술이 하는 능력은 소외와 결핍을 공감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가진 또 다른 것이 종교이다. 기이한 행위들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새 그들의 사이엔 유대가 생기고 공감을 자아내 서로의 결핍을 채워준다. 따라서 영화라는 예술을 이용하여 종교의 능력을 보여준 것 자체가 예술로써의 역할까지 완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과 종교가 사회에서 유지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사유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미장센적인 측면에서, 장르적 특성에서, 컬트 영화사의 한 작품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작품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대니와 함께 울어주는 호르가 구성원들의 장면이다. 다양한 흥미로운 요소들로 꾸며진, 속은 제대로 된 알맹이 덕에 영화는 잘 만들어진 작품으로 평을 받을 수 있었다. 단순한 오컬트 영화 이상으로 결핍에 대한 바람직한 자세를 보여준 예술이라 할 수 있으며 앞으로의 작품에서 보여줄 감독의 시선이 매우 기대가 된다.
-
- 이 영화가 드러내는 문제의식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물론 최근에 아이가 없이 지내는 사람들도 늘어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육아의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아이를 키워내는 과정을 통해 한 가족을 만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몸도 가누지 못했던 아이를 보호하고 또 키워내면서 부부는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다. 꽤 많은 힘이 들어가는 그 육아의 과정에는 어렵고 힘든 일이 포함되어 있지만 아이의 웃음 한 번에 그런 마음이 사그라들기도 한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육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만큼 더 신경 쓰게 된다. 그 과정 자체가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 힘든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직장이나 일 때문에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가야 하는 경우 같은 급한 상황이 바로 그런 때다. 아직 한국 사회는 아이 때문에 일을 빠지고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해 유연하지는 못하다. 물론 과거보다 많이 유연해지긴 했다.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육아 휴직제도를 이용하고 또 개인 연차 휴가를 이용하면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개별 구성원들의 인식은 아직 거기에는 따라기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실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현재에도 아직 더 많은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전히 육아를 맞이한 많은 직장 여성들은 제대로 자신의 경력으로 다시 복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방송사 간판 앵커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
영화 <앵커>는 방송사의 간판 앵커로 자리 잡은 세라(천우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방송사 9시 뉴스를 진행하고 있는 간판 앵커다. 어느 날 자신에게 온 전화 제보를 받게 되고 관련한 취재를 하던 중 제보자와 그의 딸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사건을 통해 만나게 되는 정신과 의사 인호(신하균)를 만나게 되고 이상한 점을 느낀 세라는 계속 그 사건에 매달리며 이상한 환영을 보게 된다. 세라의 주변에는 엄마 소정(이혜영)이 있고 소정은 늘 세라에게 잔소리를 한다. 세라가 제보자의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소정과의 관계는 계속 악화되어 버린다.
영화는 세라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엄마 소정도 영화의 중요한 동력이다. 이 모녀 관계는 소정이 세라에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혼자 키운 소정의 입장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영화가 후반부에 공개하는 엄마 소정에 대한 반전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 형태로 이야기를 구성했지만 영화는 내내 엄마 소정의 사연을 공개하기 위한 디딤돌을 놓기 바쁘다.
세라는 9시 뉴스 진행자로 자리 잡았지만 무척 불안해 보인다. 그를 대체할 수 있는 후배는 그를 견제하고 기회만 되면 자신이 돋보일 기회를 찾는다. 영화는 그 과정에 세심하게 집중한다. 또한 세라는 남편과 아이를 만들어 키우는 것에 이견이 있다. 세라는 아직 아이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계속 말한다. 이런 것을 종합해서 보면, 세라는 이제 겨우 올라간 간판 앵커라는 자리를 뺏기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 만약 임신을 하게 된다면 그가 그동안 이루어놓은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는 수많은 대체자 중의 하나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세라의 머릿속에는 그렇게 자신의 경력이 망가지는 그림이 수없이 반복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세라가 겪는 불안으로 현재 직장 사회가 직장 여성에게 주는 불안을 잘 표현하고 있다. 직장에서 아무리 잘 나가는 여성이더라도 임신과 육아의 과정을 거치면 경력이 중단된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할 즈음이 되면 중요한 자리에는 이미 다른 누군가가 일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직장에서 해고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런 분위기 탓에 결혼을 했더라도 쉽게 임신의 단계로 발을 내딛지 못한다. 그 상황이 주는 불안감이 영화 속 세라가 겪는 혼란스러운 얼굴에 그대로 담긴다.
정신과 의사 인호는 믿을 수 없을 얼굴을 하고 있다. 영화에서 만들어내는 스산한 기운은 배우 신하균의 얼굴로 만들어진다. 그가 믿을 수 있는 인물인지에 대한 판단을 뒤로하고 그가 세라를 환자로 대하는 과정을 보면 세라가 겪고 있는 불안감을 잘 알고 있는 눈치다. 하지만 그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기 어렵다. 그가 세라에게 더 아픈 상처를 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도우려는 것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점들은 세라 주변의 사람들 또한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인물이 없다는 것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임신을 앞둔 여성들의 주변 동료들은 임신에 대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임신 상황이 닥치면 얼굴을 바꾸는 동료들도 많다. 그런 것들도 세라의 불안감을 더 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캐릭터로 드러나는 직장여성의 경력단절에 대한 불안감
영화 <앵커>는 결국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직장 여성으로서 겪어야 할 사회적 불안감에 대한 영화다. 출산율 자체가 낮아지고 있고,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문제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문제다. 영화 속 세라의 엄마인 소정의 이야기가 이 문제가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여자라는 존재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받는 사회적 불안감이 세습을 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한다.
세라 역을 맡은 배우 천우희는 실제 앵커처럼 발성을 연습해 실제 뉴스 진행을 해도 될 만큼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그가 겪는 두려움과 혼란이 잘 표현되고 있고, 결국에 분노로 표출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엄마 소정 역을 맡은 배우 이혜영은 오랜만에 극장 개봉 영화에 모습을 드러냈다. 꽤 차갑게 딸을 관리하고 제어하는 모습의 엄마를 연기하고 있는데, 어떤 때는 따뜻하지만 어떤 모습은 섬뜩하게 느껴진다. 정신과 의사 인호 역은 사실 이 영화의 핵심 역할은 아니지만, 세라를 진실로 이끄는 인물이다. 배우 신하균은 선한 이미지와 악한 이미지를 오가며 영화의 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정지연 감독은 주로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커리어를 쌓아왔다. <봄에 피어나다>라는 단편영화로 2008년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대상을 수상했고, <소년병>으로 영등포국체초단편영화제 SESIFF 심사위원 특별상을 타기도 했다. 그가 연출한 장편 영화 <앵커>는 사실 보면서 여러 영화들이 떠오를만한 장면과 상황들이 많다. 또한 쉽게 예측 가능한 영화의 결말이나 반전도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 싶어 하는 주제와 문제의식만큼은 끝까지 또렷하게 남기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앵커>
https://www.youtube.com/watch?v=guYrFwQwgu0
-
- [JIFF 데일리] 세상이 뜯어내 버린 역사의 한 페이지
코파 1971(Copa 71)
레이첼 램지, 제임스 얼스킨
France | 2023 | 90min | DCP | Color/B&W | Documentary | 전체관람가 | Asian Premiere
기록적인 관중들이 지켜본 가운데 치러진 1971년 여자 축구 월드컵. 월드컵에 참가한 선구자들이 모여 50년간 공개되지 않았던 기록을 바탕으로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축구 종주국이나 다름없는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여성 축구가 활발하던 와중인 1921년, “축구는 여성의 신체에 적합하지 않다”며 여성의 축구장 사용을 금지하였고 ‘누구에게나 찬란한’ 스포츠인 축구는 그로부터 50년 동안 남성의 전유물이 되었다.
<코파 1971>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아니 세상이 우리에게 숨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TV 시리즈 [디스 이즈 풋볼](2019), 장편 <리버풀 FC: 엔드 오브 스톰>(2020) 등 다양한 스포츠 작품을 연출한 ‘레이첼 램지’, ‘제임스 얼스킨’ 감독 듀오의 신작이다.
© 전주국제영화제
1991년,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여자 축구 월드컵에서 시작하여 비밀스러운 1971년의 기록 속으로 돌파해 나가는 영화는, 영화 속 대사처럼 보는 내내 “왜 이걸 몰랐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아르헨티나의 엘바, 영국의 캐롤, 이탈리아의 스키아보. 1971년 여자 축구 월드컵의 주역들을 한 명씩 소개하며 50년을 기다린 ‘영웅’들의 서사를 들려주는 다큐멘터리는 이들이 어떻게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핍박을 받으며 축구라는 꿈을 이어나갔는지를 들려준다.
1970년, 남자 축구 월드컵의 흥행으로 인하여 축구의 인기는 더욱 상승하고, 멕시코는 이 기세를 몰아 전략적으로 ‘여자 월드컵’을 개최하고자 했다. 당연하게도, 선수부터 협회 구성원까지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축구 업계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흥행을 예감한 멕시코는 자국 미디어 그룹을 등에 업고 월드컵 경기장보다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과달라하라 스타디움과 아즈테카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여는 작업에 들어간다.
© 전주국제영화제
티켓을 팔아 수익을 내는 것이 이들의 유일한 목적이었기에, 정작 참가한 선수들에 대한 보상은커녕, 선수의 인권까지 고려되지 않았지만, 인생 처음으로 환호와 열기 속에 잔디를 밟은 선수들은 경기를 뛸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 전주국제영화제
입이 떡 벌어지는 프리킥 장면부터 선방까지 압도적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 개개인이 이 능력을 발판 삼아 축구로 성공한다거나, 이 월드컵으로 인하여 여자 축구의 역사가 바뀌었다거나 하는 스토리를 기대했다면 큰 오산이다.
레전드 여자 축구 선수 ‘알렉스 모건’조차 이 월드컵의 존재를 몰랐으니 말이다.
“You don’t know then, but you will”
우리가 몰랐던 것을 알게 하고, 더 나아가 관심을 두게 하는 것.
다큐멘터리의 목적을 훌륭히 달성한 <코파 1971>은 여자 축구를 거부한 ‘영국’에서 절찬 상영중이다.
© 전주국제영화제
그래서 1971년, 비공식 여자 축구 월드컵의 우승 국가는 어디였냐구요?
X월 X일 극장에서 확인해 보세요!
를 외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Adios.
월드시네마 - <코파 1971> -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스케쥴
2024.05.02(목) 10:00 |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109)
2024.05.04(토) 20:30 | CGV전주고사 5관 (364) *GV
2024.05.06(월) 16:30 |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538)
씨네랩 에디터 Cammie
-
-
- [Movielog #27] 물회와 함께 펼쳐지는 남녀의 느와르- 낙원의 밤
신세계, 마녀의 박훈정 감독이 신작 낙원의 밤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엄태구와 전여빈, 차승원 배우와 함께 돌아왔는데요.
극장 개봉을 하지 않고 넷플릭스에서 단독 공개가 되었어요.
박훈정 감독의 신작을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았을텐데, 영화는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엄태구 배우나 전여빈 배우의 연기는 좋은데, 이야기를 보면서 관객들에게 주인공들의 감정들이 잘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고 중얼거리는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아 불편했어요.
느와르 장르의 색깔은 들어가 있지만 일단 어색하게 만나서 연대의 끈이 생기는 남녀의 드라마가 중점적으로 이어집니다.
영화에 대한 자세한 평은 영상을 참고하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영화 <썰> 메인 예고편
“내 얘기 들어볼래?”
일주일에 무려 200만원, 핵이득 꿀알바 VVIP 돌봄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공시생 ‘정석’(강찬희)이 인적 드문 산골에 위치한 저택을 찾는다.
역대급 말빨을 장착한 선임 알바생 ‘이빨’(김강현)은 만나자마자 쉴 새 없이 썰을 늘어놓고,
그 와중에 일명 전설의 10초녀 ‘세나’(김소라)가 눈앞에 등장한다.
믿기 힘든 썰의 스케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는데…
단단히 도른자들의 B급 전쟁이 시작된다!
-
- 영화 <걸어도 걸어도> 재개봉 메인 예고편
료타’와 가족들은 십여 년 전 바다에 빠진 소년을 구하려다 세상을 떠난 장남 ‘준페이’의 제사를 위해 매 여름 고향 집에 모인다 ‘준페이’가 목숨을 구해준 ‘요시오’ 역시 기일마다 그들의 집을 찾아오고 그런 ‘요시오’를 놓아주자는 ‘료타’의 말과 함께 가족들은 묻어뒀던 속마음을 꺼내 놓는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키키 키린, 아베 히로시, 나츠카와 유이 -재개봉: 2025년 5월 21일 -등급: 전체관람가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공동배급: ㈜하이스트레인저 #고레에다히로카즈 #걸어도걸어도 #5월영화 #영화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