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2021-03-18 00:00:00
아리 애스터의 <미드소마>, 공포영화? 이별영화?
사교(邪教)를 통해 보여준 예술과 종교의 존재에 대한 사유
사교(邪教)를 통해 보여준 예술과 종교의 존재에 대한 사유
눈부시게 아름다울수록 공포와 두려움은 커지고 기이한 오컬트 속에서 왠지 모를 위로가 느껴진다. 개봉 전부터 로튼 토마토에서 고득점을 하며 많은 관심을 받은 아리 애스터 감독의 작품이다. 전작 <유전>과 <미드소마> 모두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지만 <미드소마>는 <유전>과 달리 주인공을 불안과 어둠으로 둘러싸인 한 가정에서 개인으로 옮겨 귀신이나 신이나 초자연적 현상과 같은 요소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를 보여주며 화려하고 이색적인 풍경에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기이함에 놓여 방향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영화이다. 전작 <유전>으로도 큰 호응을 얻은 것도 한몫했겠지만, <미드소마>가 로튼 토마토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데에는 수많은 걸작의 탄탄한 레퍼런스와 실제 연출을 위한 감독의 섬세한 연구 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미드소마>는 감독이 연인과 싸우고 쓴 각본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영화에서 연인의 관계, 결혼, 이별, 이혼 들을 통한 의존적 관계에 대해 고심한 감독의 노력이 다방면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국내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의 팬임을 밝히고 할리우드판 리메이크 작의 제작까지 참여 예정인 아리 애스터는 이 외에도 다수의 작품을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이미 여러 번 인터뷰에서 밝혔다. 시나리오 레퍼런스로 <결혼의 풍경(1973)>, <결혼과 이혼 사이(1981)>, 미장센 레퍼런스로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1964)>, <석류의 빛깔(1969)>, <2층에서 들려오는 노래(2000)> 등 치밀하게 준비한 덕에 1970년대의 <위커맨(1973)>의 뒤를 이을 2019년의 포크 호러작 <미드소마>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이 돋보이는 미장센의 대표적인 예로, 영화의 초반부인 대니의 집의 벽에 걸린 축제를 벌이는 듯한 기이한 그림의 액자 등과 같이 많은 이스터 에그들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들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사원이나 제물이 불에 타는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은 감독은 버림받은 주인공이 과거와 연관된 물건들을 태우고 나서야 그 관계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처럼, 관계의 파탄을 보여줄 수 있는 전형적인 방식을 차용하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는 대니가 가족을 잃으며 시작하여 새로운 가족(공동체)을 얻으며 끝나는 시나리오와도 맞닿아있다.
아리 애스터의 또 다른 두드러진 연출로는, 다른 대중적인 호러물과는 다르게 ‘일반적인’ 남성 제작가의 시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릴러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의 작품부터 다수의 호러물, 스릴러에서 관객의 몰입도와 교감 신경 자극을 위하여 성적 긴장감을 이용하곤 한다. 하지만 <미드소마>의 경우 ‘일반적인’ 성적 긴장감을 조성할만한 요소들이 다수 있으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수동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이러한 감독의 시각의 영향으로 감독의 성장 배경 및 개인사를 고려해 볼 수 있는데, 이성애와 권력의 관계를 뒤집어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전 단편작 <The Strange Thing About The Johnsons>에서도 보이듯 동성애와 종교적으로 받은 억압이 감독의 시선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어느 정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우리는 종종 삐뚤어진 소망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감독은 관객들이 밝고 화려한 호르가 구성원들의 의식에 함께 빠져들기를 바랐을 것으로 보이지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자 감독이 정말로 전하고자 했던 장면은 바로 대니가 울자 함께 더 크게 울어주는 호르가 구성원들의 장면일 것이다. 주인공 대니가 겪은 어려운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대니의 상실에 공감해주지 못하는 남자친구와 대니의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지만 울고 있는 대니의 옆에서 함께 울어주는 호르가 구성원들 중 후자를 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또한 주인공을 철저하게 상실로 인한 결핍 속에 배치한 뒤 서서히 권력을 부여하며 주인공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특이한 오컬트 영화로 포장했지만 속은 대니의 이별 영화인 셈이다. 예술이라는 기술이 하는 능력은 소외와 결핍을 공감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가진 또 다른 것이 종교이다. 기이한 행위들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새 그들의 사이엔 유대가 생기고 공감을 자아내 서로의 결핍을 채워준다. 따라서 영화라는 예술을 이용하여 종교의 능력을 보여준 것 자체가 예술로써의 역할까지 완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과 종교가 사회에서 유지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사유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미장센적인 측면에서, 장르적 특성에서, 컬트 영화사의 한 작품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작품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대니와 함께 울어주는 호르가 구성원들의 장면이다. 다양한 흥미로운 요소들로 꾸며진, 속은 제대로 된 알맹이 덕에 영화는 잘 만들어진 작품으로 평을 받을 수 있었다. 단순한 오컬트 영화 이상으로 결핍에 대한 바람직한 자세를 보여준 예술이라 할 수 있으며 앞으로의 작품에서 보여줄 감독의 시선이 매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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