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05-05 23:46:39
[JIFF 데일리]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공간
영화 <럭키, 아파트>
SYNOPSIS.
안정된 주거 환경을 꿈꾸던 레즈비언 커플 선우와 희서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작은 아파트를 마련한다. 하지만 선우가 불황으로 일자리를 잃고 다리까지 다치게 되면서 전적으로 희서가 대출금과 이자를 떠안게 되자, 둘 사이는 삐걱대기 시작한다. 집에서 쉬게 된 선우는 일자리를 찾지만 쉽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악취로 두 사람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PROGRAM NOTE.
한 동성 커플의 갈등이 한국 사회의 구조 안에서 발현되는 과정을 담은 <럭키, 아파트>는 한국 퀴어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품이며, 소수자를 대하는 우리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뛰어난 사회 드라마다. 제약회사 직원인 희서와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직장을 잃은 선우는 9년 차 동성 커플이다. 객관적으로 경제적 차이가 나는 상황이지만 서로 크게 티를 내진 않는다. 하지만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면서, 아파트 구매 자금 대부분을 부담한 희서와 기여도가 거의 전무한 선우 사이 갈등은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아래층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는 커플의 간극을 더욱 키운다. 냄새의 근원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선우가 아파트 가격 하락의 주범으로 찍히며 동 대표 등 주민들과 갈등을 겪는 반면, 직장에서 겪는 성차별로 스트레스를 받는 희서는 커플 관계가 주변에 알려질까 두려워하며 선우의 행동을 비판하고 둘의 관계는 악화일로에 처한다. <럭키, 아파트>의 또 다른 미덕은 갈등과 배제라는 이야기 속에 사랑과 연대라는 희망의 싹을 집어넣는 점이다. 아래층에 살던 할머니의 사진을 갖고 싶어 하는 친구분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무단침입까지 감행하는 선우는 “왜 그랬냐”는 희서의 질문에 “남 일 같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감동적인 대사는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우리는 매일매일>(2019) 같은 여성주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강유가람 감독은 첫 극영화에서도 놀라운 역량을 보여준다. (문석)

몇 년 전 <이태원>을 보고 받았던 충격이 생생하다.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도 들여다볼 수도 없는 세상의 이야기를, 이토록 섬세하게 연출하여 가져다 주는 영화라니. 강유가람 감독의 이름을 그렇게 알았고, 그 후 다큐멘터리 작품만 만나다가, 첫 극영화 연출작이라고 해서 고민 없이 선택했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공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영화는 희서와 선우가 나란히 앉아 있는 푸른빛 자동차에서 시작하여, 이내 푸른빛 침구와 소파가 놓인 두 사람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부동산 문제는 한국 사회의 머리 아픈 과제이자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기회여서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보이고, 이 영화 속에도 집값을 우려하는 사람들이나 대출이자에 한숨 짓는 희서를 통해 그런 문제의 면면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아파트에서 내게 가장 먼저, 가장 깊이 각인된 것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집안일에 필요한 도구들은 정갈하고 생활감 있는 위치에 표현되고, 운동 기구도 깔끔히 놓여 있으며, 설거지하는 선우 뒤로 걸려 있는 와인잔 같은 것들은 두 사람이 각자의 삶과 함께하는 삶, 일과 관계의 낭만까지 허투루 하는 구석 하나 없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집은 사는 사람을 드러내니까.
그런데 그 공간에 자꾸 퍼지는 냄새가 있다. 쓰레기를 비우고 박박 문질러 닦고 락스를 부어 봐도 사라지지 않는 냄새. 문제를 올곧게 직면하며 정공법으로 해결하려는 선우와, 적당한 불편함을 삼키면서 피할 수 있는 갈등은 최대한 피해 가려는 희서의 방법은 냄새를 두고도 계속 부딪게 된다. 시작부터 두 사람의 갈등은 진작 지나간 일, 이미 어쩔 수 없는 일들을 논하고 있고, 우리 모두 가까운 사람과 싸워 봐서 잘 알듯 그건 필연적으로 '탓'이 된다. 쌓이는 쓰레기를 내어 버리고 바닥을 박박 문대어 닦듯, 좋지 않은 감정도 주기적으로 그래 주어야 하는데, 두 사람에겐 그럴 여유가 없다.

자격: 더 필요한 자에게 더 문턱이 높은
아파트는 한국 사회에서 공간인 동시에 거의 어떤 정체성의 일부처럼 기능하고 있다. 어느 동네 산다는 것으로도 모자라 어느 아파트에 산다는 것을 꼬리표로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 중 일부는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를 심어주는 '부적절한' 입주자를 걸러내고 싶어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임대주택이 단지 내에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차별하면서, 차별이 아니라 차이라고 말한다든지. 이들에게 아파트는 자본으로 거래한 재화보다는 오히려 봉건시대의 성직이나 성기사직처럼 거의 부여받은 자격에 가깝다.
주거지의 위치나 입지뿐 아니라, 주거지를 획득하기 위한 과정 또한 마찬가지로 자격을 요한다. 고공행진이라는 말을 쓰기도 머쓱할 정도의 매매 비용으로 인해, 노동소득만으로 매매할 준비가 되는 사람이 거의 없이 사회에서, 빚도 재산으로 인지하는 이 사회에서, 대출 또한 일정한 자격을 필요로 한다.
사실 고정비를 줄일 필요성이 더 절실한 이들에게 이 문턱은 더 높다. 빈곤은 단순히 돈의 많고 적음 혹은 그 돈을 획득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 정도로만 얄팍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에도, 이 사회의 천민 자본주의는 너무 쉽게 문턱 아래 있는 사람을 업신여긴다. 게다가 빈곤 문제만 엮여 있지도 않다. 번듯한 직장에서 돈 잘 버는 희서는 물론, 대출 자격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선우도 배우자의 존재를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어 이 문턱 앞에서 더욱 불리하다.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은행이 공짜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니, 일정한 자격이 필요하고 좋은 아파트 사는 게 잘못도 아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악의조차 없이, 타인에 의해 존재가 흐릿해지는 경험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모인 이 영화 속 인물 다수가 그렇다. 명백한 성차별 혹은 업무상 클라이언트라는 이유로 갑을 관계처럼 대우하는 의사 앞에서 표정을 마음껏 굳히기도 어려운 희서, 배우자가 있냐는 질문에 말문이 막혀야 하는 사람들.
가진 자가 나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숱하게 부정당하는 순간들을 마주했던 인물이지만, 모르는 척 개인정보 유출이라도 해달라는 선우까지도 타인의 존재를 흐릿하게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사회 전체가 거대한 아파트처럼, 서열화되고 파편화되고 서로를 볼 수 없는 이 사회에서는,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타인의 존재를 흐릿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유독 중첩되어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도 떠오르게 만든다. 꼭 동성애 커플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에 질문은 자연스레 확장된다. 원가족과 연결되어 있지 않거나(혹은 그렇지 못하거나), 원가족이 찬성하지 않는 결혼으로 새 가정을 이루어 인정받지 못했거나, 1인 가정을 이루어가는 사람... 이 모두가 사후 장례나 청소조차 이루어지기 어려운 얄팍한 세상을 밟고 살아야 한다니. 최대한 모두를 촘촘히 보호할 망을 짜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들만 보호하는 법으로 남겨두기엔, 그 자격 부여받지 못하거나 걷어차고 나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이니까. 1인 가구가 갈수록 증가하고, 가족의 형태와 개념과 사회적 합의가 많이 변해 가는데, 언제까지 저출생 염불만 외고 있을 것인가. 이런 고민들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사랑: 남는 건 그저 소중하게 빛나는 마음뿐
사회의 자장에서 매우 투박하게 다뤄지며 변죽만 울리는 이 문제들을 영화는 섬세하게 담아낸다. 그리고 이 문제와, 그 안에서 심화되어 가는 인물들 간의 갈등이 뒤엉키며 영화는 점점 심란하게 흘러간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사람을 피로하게 혹은 절망하게 하지 않는다. 시의적절하게 작고 소소하게 기웃거리는 희망은 마지막에 뽀얀 빛을 발한다.

아무도 이 영화에서 법과 제도를 들어엎는 식의 해결을 기대하지는 않겠지만 (이 영화의 국적이 인도였다 해도, 요즘 인도 영화도 그 정도는 안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사랑과 희망의 이름을 빌려 우리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마음을 가득 안겨준다.
희망이나 연대는 아주 거대한 단어 같지만 이 영화는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그것들을 보게 한다. 거드는 말 한 마디, 지키는 말 한 마디, 공감의 감탄 하나. 사소한 이웃의 대화. 그런 말이 놓인 자리라면 거기야말로 럭키, 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랑.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고 스러져 결국 낡은 사진으로만 남을, 그러나 그 사진이 낡아가도록 바라보는 마음. 다친 데를 감싸 주며 사는 게 결국 사랑일 것이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말과 법도에 지치고 밀려 스스로 손톱을 뜯을 때, 손톱을 뜯은 사람을 타박하는 게 아니라 그 손톱을 뜯게 된 과정이 결국 타의에 의한 상처임을 함께 아파하며 감싸 주는 것.
상처는 언젠가 낫는다. 부상도 그렇다. 다만 남는 건 그저 사랑이다.
2024. 05. 02. 21:30 CGV전주고사 3관 (상영코드 157)
2024. 05. 04. 13:30 CGV전주고사 3관 (상영코드 323)
2024. 05. 09. 20:30 메가박스 전주객사 2관 (상영코드 840)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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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손에서 탄생하고 그 손으로 파괴되는 <지옥>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22년 한국. 어느 날 불가사의한 괴물이 나타나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새진리회의 의장 '정진수(유아인)'는 이를 시연이라고 부르며, 죄를 지어도 제대로 벌주지 않는 세상에 불만을 가진 신이 인간을 직접 단죄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설파한다. 그러나 형사 '진경훈(양익준)'과 변호사 '민혜진(김현주)'처럼 새진리회의 해석과 설명을 믿지 않는 이들이 등장하고, 정진수는 자신의 교리가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지옥행을 고지받은 박정자의 시연을 생중계하기로 결정한다. 이후 실제로 시연이 고지된 시간에 이루어지자 새진리회가 새롭게 정의한 죄와 그 해석은 새로운 사회의 진리가 된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의심을 끈을 놓지 않은 민혜진과 '배영재(박정민)'로부터 정진수와 새진리회가 구축한 진리, 정의, 질서에는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한다.
동명의 웹툰을 영상화한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은 감독의 전작인 <반도>와 유사한 작품이다. 좀비 영화의 외관을 한 <반도>가 정작 보여주고 싶었던 대상이 좀비가 아니라 좀비로 가득한 땅에서 생존한 인간 군상이었던 것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옥> 역시 신과 천사, 사자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면서 판타지 영화의 외관을 갖추지만, 정작 보여주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비현실적 존재를 대하는 인간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의도는 정진수와 민혜진의 대화에 함축되어 있다. 신의 존재, 더 나아가 종교가 대체 무슨 효용이 있냐는 민혜진의 비판에 정진수는 "제사장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준 게 아닐까요? 원래 인간들이 의미가 없으면 자멸해버리는 족속이잖아요"라고 응수한다. 신의 존재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그보다는 신을 내세워 만들어진 종교의 의미에 주목하는 대화가 오가는 것이다. 실제로 <지옥>은 6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종교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질서를 부여하며, 또 사람들은 그 종교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염세주의적이면서도 도발적으로, 더 나아가 희망적인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지옥>의 내용은 크게 1-3부와 4-6부,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전반부의 내용은 새진리회라는 신흥 종교가 어떻게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서울 한복판에서 대낮에 좀처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연'이 이루어지자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고, 수년 전부터 이 현상을 경고해온 정진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된다.
이때 정진수와 새진리회가 핵심적으로 언급하는 기제가 있다. 바로 죄와 죄책감이다. 그는 시연이 스스로를 엄격히 정죄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신이 직접 벌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하며 사람들을 죄책감이라는 공포에 휩싸이게 한다. 이는 그가 고지를 받은 박정자와 시연을 중계하는 것을 두고 협상하는 자리에서 아이들의 아버지가 없다며 그녀가 불륜 내지는 성매매를 저질렀을 것으로 기정 사실화하는 이유다. 또 자신의 해석과 사람들의 죄책감에 힘을 싣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시연당한 것으로 가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정진수의 일련의 행동과 발언, 고지와 시연에 대한 그의 해석이 정신분석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프로이트가 자신의 저서인 <문명 속의 불만>에서 분석한 종교의 구조 및 작동 양식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는 모든 인간에게 에로스(사랑과 성욕)와 타나토스(죽음과 파괴)의 욕동이 있으며, 종교는 이 욕동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에로스적 욕동은 가족을 이루고 사회와 문명을 이루는 기반이지만 지나치게 탐닉하면 문명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고, 타나토스적 욕동 역시 자기 파괴적인 욕망이기에 문명을 위협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특히 프로이트에게 종교는 두 욕동의 발현과 실천을 죄로 규정하고 개인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며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기제다. 이러한 종교 이해는 제사장이 의미를 부여해 인간의 파멸을 막았다는 정진수의 대사, 그리고 그가 성과 관련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암시되거나 가장 파괴적인 욕동인 살인을 저지른 이들을 자신의 설명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희생자로 선택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볼 때, 곧 정진수에게 신의 존재와 시연의 대상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이미 중요한 논점이 아니다. 종교는 단지 사람들에게 죄와 죄책감이라는 삶의 의미를 부여해서 사회를 유지하면 그것으로 역할을 다할 뿐이다.
이 대목은 사실 <지옥>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프로이트가 인간을 억압한다고 비판한 종교의 모델이 기독교인데다가 작중 정진수의 모습에서는 예수의 알레고리로 느껴지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진수가 성인이 되길 기다렸다가 향한 티베트 고원에서 시연을 목격하고 깨달음은 얻은 후 새진리회를 만든 것은 예수가 광야로 나가 신의 가르침을 깨달은 후 신의 말씀을 전하는 공생활을 시작한 것과 다르지 않다. 정진수가 사이비로 취급받는 것, 그가 꾸준히 선행을 베풀어 온 것, 심지어 그가 일찍이 자신의 운명과 최후를 알고 있던 것 모두 예수의 공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티브다. 그러다 보니 종교는 그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제이고, 더 나아가 인간이 만들어 낸 종교가 인간을 죄책감으로 억누를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드라마는 다분히 도발적인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다.
반면에 후반부에서 <지옥>은 사회의 유일한 질서로 거듭난 종교와 그로 인해 강림한 지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진리회가 만든 질서와 진리에 순응한다. 또한 종교가 지나치게 효과적으로 인간의 욕동을 통제한 나머지 심리적으로나 내면적으로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입는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처럼 엄청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린다. 고지를 받은 이는 곧장 범죄자로 몰리고, 자신의 가족까지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하며, 아이들이 부모의 죄를 대신 자백하며 용서를 빌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처럼 카메라는 인간을 자멸로부터 구한다는 종교가 역으로 만든 지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하지만 드라마는 작중 묘사되는 모습이 프로이트가 제시한 인간상과 유사한 배영재를 등장시키면서 지옥을 비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이성을 활용할 때 신경증에 시달리게 하는 종교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당대의 확신이나 진리, 믿음을 있는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대신 근본적인 의심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PD인 배영재는 새진리회 다큐멘터리 제작을 두고 새진리회 덕분에 범죄율이 줄어들었다는 사제의 주장을 화살촉 범죄를 포함하면 그럴 리가 없다면서 반박하기도 한다. 새진리회에 저항하는 조직 '소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더 나아가 소도의 도움을 받아 시연이 인간의 죄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현상임을 간파하는 등 '의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언론인의 책무에 충실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성적이고 의심으로 가득한 배영재라는 인물의 존재는 획일화된 정의와 진리로서 종교의 구조를 만드는 정진수와 대립항을 이루고, 전혀 다른 전후반부의 이야기를 연결해준다. 작중 죄와 죄책감 못지않게 중요한 키워드가 자율성인데, 배영재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율성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면서 정진수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극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이에 더해 드라마는 다른 인물들을 통해서도 배영재라는 캐릭터가 상징하는 바에 힘을 실어준다. 새진리회의 폭거에 온몸을 던져 싸운 민혜진에게 한 택시기사가 "제가 확실히 아는 건 여긴 인간들의 세상이라는 겁니다. 인간들의 세상은 인간들이 알아서 해야죠"라고 말하며 격려와 위로를 건네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중요한 것은 <지옥>의 주제의식이 단지 종교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한국 사회의 병폐와 구조적 문제, 어두운 면을 비판하고 했던 연상호 감독답게 <지옥> 역시 한국의 현실에서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 하나의 믿음과 진리, 확신만을 강요하는 사회를 비관하고 언제나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한국 사회의 여러 측면에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는 특정 정치인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팬덤 정치 현상이나 특정 담론의 논리에만 의지하는 정치 활동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작품 내에서는 언론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강조된다. 작중 언론은 그저 받아쓸 것인지 아니면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진실을 추구할 것인지 이지선다를 강요받으며, 전자를 선택하며 스스로의 책무를 저버린다. 정진수가 박정자의 시연이 중계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카메라 구도로 등장해 자신의 교리를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것, 그리고 그런 그에게 뉴스 앵커가 압도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새진리회의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새진리회 측의 요구를 방송국이 그저 수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에 더해 허위정보와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인터넷 방송으로 인한 혼란을 통해 현재 한국에서 언론이 마주하는 병폐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측면을 지적한다.
하지만 후반부의 주인공인 배영재의 직업이 PD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옥>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새진리회가 강조해온 죄와 죄책감, 처벌의 교리가 부정되는 현상은 개개인, 평범한 시민의 핸드폰과 sns를 통해서 중계된다. 한 명 한 명의 시민이 정보를 만들고 공급할 수 있는 힘을 가지면서 어젠다를 세팅할 힘이 개인에게 넘어간 현상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며 밝은 미래를 그려낸다. 아무리 강력한 프레임이 사회를 지배하더라도 이성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의심할 때 그 프레임을 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연상호 감독의 <지옥>은 그 원인도, 그 해결책도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 지옥이다.
사실 완성도의 측면에서는 <지옥>이 마냥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다. 사자를 묘사하고 시연의 모습을 그려내는 CG의 퀄리티는 부족함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연기력 역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배우 개개인의 연기력은 분명 뛰어나지만 하나의 앙상블을 이룬다는 인상은 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상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라는 연장선상에서 보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대목도 찾을 수 있는데, 신파의 활용이 대표적이다.
전작인 <부산행>이나 <반도>에서 그러했듯이 이번 작품에서도 눈물겨운 모성애와 부성애, 곧 사랑의 힘이 한 생명을 구하는 내용이 결말을 이룬다. 하지만 전작과 달리 해당 장면이 상당히 담백하게 연출된 결과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염세적이고 어둡고, 잔인한 작품 분위기를 뚝심 있게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이에 더해 프로이트가 <문명 속의 불만>을 "에로스가 자신처럼 불멸하는 맞수와의 투쟁에서 자기를 당당하게 드러내기를 기대한다"는 구절로 마무리하는 것을 고려하면, 억압적 기제로서의 종교에 균열을 불러일으키는 사랑과 눈물은 서사와 메시지 측면에서도 일관성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신과 종교를 빌려 인간이 스스로 만든 비극과 일말의 희망을 속삭이는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은 인상적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신과 종교라는 거울에 비춰 보는 한국 사회의 절망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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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주부의 평범한 '스파이' 되기 프로젝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평범한 주부가 '평범하게 살기'라는 임무를 받아 스파이 활동을 하는
아주 재미난 소재의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입니다.
앞선 소개에서도 예상할 수 있듯이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굉장히 골 때리게 웃긴 영화입니다.
누가 출연하나요?
우에노 주리 | 스즈메
FILMOGRAPHY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
스윙걸즈 (2004)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2005)
AWARDS
28회 일본 아카데미상, 2005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2005
요코하마 필름 페스티벌, 2005
아오이 유우 | 쿠자쿠
FILMOGRAPHY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2005)
훌라 걸스 (2006)
스파이의 아내 (2020)
AWARDS
요코하마 필름 페스티벌, 2007
제 30회 일본 아카데미상, 20007
제 15회 아시안 필름 어워드, 2021
어떤 내용인가요?
반려 거북이에게 밥을 주며, 아주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스즈메.
손을 씻고 있는 스즈메는 한 아줌마에 의해 밀쳐지기도 하고,
버스도 스즈메를 그냥 지나치자
스즈메는 자신의 존재감이 점점 옅어져 자신이 사라질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아침에 넘어지면서 발견한 스파이 모집 공고가 떠오르는데...!!
Reviews
"평범함 속 특별함"
ⓒ 네이버 영화
영화를 보고 나면 평범한 것들,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 특별하게 다가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독특한 소재로 가볍게 보기 좋은 영화이기는 하지만, 나름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 영화 뭐지?'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이 영화를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정말 오묘하고 웃기고 신기한 영화입니다.
"일본 특유의 감성과 유머"
ⓒ 네이버 영화
일본 특유의 감성과 개그 코드가 가득한 영화이기 때문에
호불호가 굉장히 갈릴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개그 코드가 얼마나 잘 맞냐에 따라 영화의 평점도 갈릴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딱 5분만 봐도 판단할 수 있으니 궁금하다면 일단 시청해보는 거 어떨까요?
지금까지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를 간단하게 살펴보았는데요.
어떠셨나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일본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 일상의 지루함을 느끼시는 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찾고 계시는 분에게 추천 드리고 싶은데요.
영화는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티빙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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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어> 마이클 조던 영화에 조던이 없어야 하는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84년, 농구화 시장에서 업계 꼴찌를 전전하는 나이키. 나이키의 농구 선수 스카우트 담당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는 새 농구화 모델을 살펴보던 중 유망주 마이클 조던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스타플레이어보다 조던이 더 위대한 선수가 될 거라고 확신한 소니. 그는 CEO '필'(벤 애플랙)에게 가용한 모든 금액을 투입해 조던을 붙잡아야 한다고 강변한다. 소니는 필의 승인을 얻어냈지만, 이미 업계 1, 2위를 다투는 컨버스와 아디다스가 그와의 계약을 노리는 상황. 소니는 상사 및 동료 '하워드'(크리스 터커), '롭'(제이슨 베이트먼), '피터'(매튜 무어)와 머리를 맞대고 조던을 설득할 전략을 짜기 시작한다.
조던 영화에 조던이 없다?
할리우드 대표 절친 스타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이 감독과 주연으로 합을 맞춘 영화 <에어>. 나이키 '에어 조던' 브랜드의 탄생 비화를 그려냈다. 1984년, 나이키는 농구 유망주 마이클 조던을 내세워 새 농구화 에어 조던 마케팅을 펼쳤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나이키는 컨버스와 아디다스를 제치고 농구화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마이클 조던이 은퇴한 지금도 에어 조던 시리즈는 계속해서 제작 중이다. 농구 이외의 스포츠 영역에도 진출했다. 2018년부터는 프랑스 축구 클럽 파리 생제르맹 FC 스폰서로 나섰다.
그런데 <에어>는 이상하다. 마이클 조던 영화인데 조던이 없다. 경기 분석 영상만 빼면 그는 항상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얼굴이 스크린에 나오는 순간은 없다. 대신 <에어>는 에어 조던이라는 이름 아래에 모인 수많은 사람을 조명한다. 나이키 스카우트 소니는 조던의 잠재력을 가장 정확히 꿰뚫어 봤다. 나이키 창립자 필과 농구 부서 책임자 하워드는 선수 한 명에게 올인하자는 소니의 과격한 마케팅 전략을 승인했다. 소니의 직속 상사 롭과 나이키 신발 디자이너 피터 무어는 빨간색과 흰색을 조합한 혁신적인 첫 조던 에어 신발을 만들었다.
프레젠테이션, 에어(Air)의 진짜 의미
조던이 없어야 하는 이유는 영화 제목에 숨어 있다. 에어(Air)는 여러 의미를 갖는다. 일단 나이키와 조던이 합작한 브랜드명이다. '누구에게나 점프하는 순간이 온다'는 포스터 문구처럼 농구화 브랜드 이미지에 걸맞은 작명이다. 나이키 운동화 밑장에서 충격을 흡수하는 쿠션을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는 영화 소재를 직관적으로 연상시킨다.
그런데 에어는 다른 뜻으로도 쓰인다. '발표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실제로 <에어>는 발표의 연속이다. 소니는 상사와 CEO를 설득해야 한다. 농구 선수 3명과 계약할 수 있는 돈 25만 달러를 전부 마이클 조던에게 투자하자고. 조던은 그럴 가치가 있는 선수라고. 그의 에어전트,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마이클 조던 본인도 설득해야 한다. 나이키만이 조던의 스타성을 터뜨려 줄 수 있다고. 그러려면 조던에게 투자해야 하는, 또 나이키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줘야 한다. 영화가 프레젠테이션의 연속인 이유다.
<에어>, 나이키의 프레젠테이션
영화는 마이클 조던을 위한 발표를 준비 과정으로 가득하다. 전반부가 발표 내용과 주제를 선정하는 작업이라면, 후반부는 발표 방식을 결정하는 단계다. 소니는 여러 계약 후보 중 조던에게 주목한다. 그의 플레이를 반복해 보면서 아직 아무도 깨닫지 못한 조던의 위대한 잠재력을 알아본다. 목표가 정해지자 소니와 나이키는 조던을 설득할 수단을 강구한다. 업계의 관행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다. 에이전트 선에서 제안이 자꾸 끊기자 직접 조던의 집을 찾아가 '들로리스'(비올라 데이비스)를 만난다. NBA가 규정한 농구화 배색 조항도 어긴다. 강렬한 레드로 가득한 농구화를 제작한다.
경쟁사의 약점을 흘려 차별화도 시도한다. 컨버스는 계약을 맺은 스타가 워낙 많아 조던을 전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아디다스는 가족 간의 경영권 분쟁 때문에 좋은 선택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반면에 나이키는 조던에게 올인했다며 진심을 전한다.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조던은 단순한 농구 선수 이상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나이키 역시 평범한 스포츠 의류 회사 그 이상이 되리라 확신한다고.
그 과정이 쉽지는 않다. 생일 파티나 가족 행사는 언강생심이다. 이틀 안에 조던을 사로잡을 농구화 디자인을 개발해야 하니 밤샘 작업은 기본이다. 하지만 이들의 끈기 덕분에 모두가 알고 있는 결말에는 호소력이 깃든다. 물론 실제 사건과 다른 내용도 적지는 않다. 소니와 동료들에게 주목한 각색 덕분에 실화는 비로소 영화가 된다. <에어>에 설득 대상일 뿐인 조던의 자리가 없는 이유다.
관객을 사로잡는 말의 힘
접근 방식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법도 '의견을 말한다'는 제목에 충실하다. 인물의 감정이나 욕망, 조던이라는 슈퍼 스타의 이미지까지 오직 말로써 전한다. <에어>는 대사가 많다. 주로 사무실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당연하다. 그런데 과하지 않다. 현란한 티키타카가 유쾌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애런 소킨이 각본을 쓴 <소셜 네트워크>나 <스티브 잡스>를 보는 듯하다. 일례로 소니와 '데이비드 포크'(크리스 메시나)의 통화는 단순한 코미디처럼 들린다. 서로를 비난하고, 놀리고, 자극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다양한 비유가 덕분에 말의 재미도 살아있다. 그러나 통화가 이어질수록 이들의 대화는 극의 분기점처럼 들린다. 막다른 벽을 만날 때마다 소니는 포크와의 대화로부터 해결책을 찾아낸다.
독특한 화법도 예상 못한 울림을 선사한다. 극 중 등장인물은 다들 선지자 같다. 미래를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대사를 반복한다. 이는 자칫 터무니없거나 과한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예언'과 실제 자료 화면이 교차되는 연출이 반복되다 보니 확신에 이들의 만용은 점차 확신으로 변해간다.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나이키와 조던의 미팅 장면이 대표적이다. 나이키가 준비한 영상을 돌발적으로 끊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소니. 그는 조던과 나이키가 쓸 영광과 비극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간중간 삽입된 자료화면 덕분에 그저 앉은 채 말을 이어갈 뿐인데도 상당히 감동적이다.
전반적인 영화 분위기도 수많은 대사에 힘을 더한다. <에어>는 1984년의 분위기를 살려내려고 노력한다. 단순히 그 시절 음악이나 필름 질감 등을 활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 중심 세계 질서와 자본주의를 광고한 LA 올림픽처럼 화려했던 미국의 전성기를 보여주려 한다. 베트남 전쟁 패전과 끝나지 않은 냉전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유명한 슈퍼볼 광고를 활용한 오프닝을 통해 도전 정신으로 가득한 당시 미국 사회 분위기를 스크린 위로 불러온다. 덕분에 예언에 가까운 확신에는 설득력이 생긴다.
심심한 점근법과 매력이 부족한 소재
다만 <에어>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접근법이 담백하다. <에어>는 갈등이 두드러지는 영화가 아니다. 직원이 고생하는 모습은 있지만, 그들끼리 갑론을박을 벌이는 장면은 많지 않다. 에어 조던 개발은 큰 난항 없이 신속하게 완료된다. 조던과 나이키의 계약도 생각보다 무난하게 진행된다. 소니와 조던 가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장면도 없다. 실화에 없던 대립도 추가해 긴장감을 높이는 영화가 많은 걸 고려하면 <에어>는 이단아에 가깝다. 그 대가로 신선함과 심심함 사이에서 호불호가 명확할 수밖에 없다.
각색에 비해 소재의 매력도 부족하다. 물론 에어 조던이라는 브랜드는 유명하고 익숙하다. 그러나 나이키와 조던의 협업이 영화가 묘사하는 만큼 중요한 '세기의 딜'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스포츠 산업 관행에 큰 변화를 준 것은 사실이지만 큰 관심이 없다면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의문을 피하려는 시도가 엿보이기는 한다. 단순하고 직접적인 접근법을 취해 의문을 가질 여지를 없애려 한다. 조던과 나이키가 함께 위대해질 거라는 믿음을 강조하는 게 그 일환이다. 하지만 의문이 드는 순간, <에어>의 매력이 감소하는 것도 사실이다.
Acceptable 무난함
말로써 조던이라는 미끼를 던졌고, 나름대로 대어를 낚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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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릴러, 오컬트, 미스터리로 포장한 부부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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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딸 출산을 앞둔 신혼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 연극계에서 매체로 넘어가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과 워킹맘 임산부 아내는 서로를 끔찍이 챙기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느 날 밤, 잠자던 현수가 벌떡 일어나 앉아 중얼거린다. “누가 들어왔어”. 수진은 남편이 연기 스트레스 때문에 대본을 외우는 거라고 생각하며 다시 잠에 든다. 그러나 그날 이후 현수는 이상해진다. 그는 잠만 들면 다른 사람이 되어 온갖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고, 수진은 매일밤 잠드는 순간마다 공포에 시달린다.
치료를 받아도 차도가 없고 현수의 몽유병은 나날이 심해지자, 수진은 곧 태어날 아이도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에 빠진다. 이에 수진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현수를 치료하기로 결심한다. 귀신에 기대서라도.
잠, 죽음, 그리고 밤
타나토스(Thanatos). 그리스 신화 속 죽음의 신이다. 그에게는 쌍둥이 동생이 있다. 히프노스(Hypnos). 잠의 신이다. 밤의 여신 닉스(nyx)가 형제의 어머니다. 이 가족 관계를 보면 고대 그리스인이 잠과 죽음을 유사한 개념으로 여겼다고 짐작할 수 있다. 잠이 많아질수록 영원한 잠,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것. 잠에 든 순간만큼은 죽은 상태나 다르지 않다는 것. 또 밤은 삶과 죽음이라는 두 세계의 경계가 모호한 시간이라는 것.
이 오래된 관념은 유재선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 <잠>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간결한 제목만큼 강렬한 이 작품은 잠과 죽음이 공존하는 시간을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문법으로 묘사한다. 정신은 자고 있지만 몸은 깨어 있는 몽유병 환자의 사연을 삶과 죽음의 사이 어딘가에 있는 오컬트, 미스터리, 스릴러의 세계로 초대한다.
이 초대를 거절하기는 어렵다. 누구나 하루에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잠이라는 일상의 시간을 비틀어 버린 까닭이다. 스크린 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고, '나'나 '내 가족'은 다를 거라고 안심할 수도 없는 섬뜩함으로 가득하다. 이는 장르적 관습을 자유롭게 활용한 스토리와 전혀 예상치 못한 장르를 한 데 묶어 결말의 맛을 더 풍부하고 깊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잠>은 근래 한국 상업 영화 중 가장 눈 여겨볼 만하다.
일상과 오컬트의 만남
어느 날 밤, 현수가 자다 말고 이상한 말을 중얼거린다. 그다음 날에는 자다 말고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곧장 냉장고로 향하더니 생고기와 날생선을 마구 먹는다. 그러더니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 한다. 심지어는 애완견을 죽여서 냉동고에 넣어 버린다. 이 모든 광경을 수진은 바로 옆에서 목격한다. 매일 밤마다 자기와 태아를 죽일지도 모르는 남편과 한 침대를 공유한다.
맞다. <잠>에서 무서운 건 귀신도, 혼령도 아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가장 두려운 대상이다. 자연히 <잠>은 일반적인 오컬트, 정통 호러와는 다른 공포를 자아낸다. 1인칭의 공포다. 일상의 공간인 집과 침실은 공포의 공간으로 돌변한다. 밤이 되면 수면 클리닉 치료법을 함께 따르는 다정한 부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증세가 나아지지 않는 남편과 지쳐 가는 아내 사이에서 피어나는 애증이 자리를 대신한다.
1차원적이지 않아서 더 괴기스럽다. 현수는 몽유병에 걸린 스스로가 무섭다. 딸과 아내를 죽일까 봐 차에서 잠을 자고, 침실 문에 자물쇠를 건다. 편집증에 물드는 아내도 두렵다. 수진은 이제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현수에게 귀신이 씌었다며 무당과 부적에 의지한다. 냄비로 남편 머리를 내려치고, 칼로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두 인물의 시점에 따라 공포의 주체와 객체가 뒤바뀐다. 그 결과 일상의 공포는 배로 커진다.
오컬트 문법에 충실한 아내
두 배로 커진 공포와 서스펜스. <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두 배로 커진 미스터리를 함께 안겨준다. 현수의 몽유병, 수진의 광기에 대해 말끔히 설명하지 않는다. 어떻게 받아들여도 말이 되는 두 가지 답을 함께 보여주며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관객을 혼란에 빠트린다.
수진 시점에서 보면 귀신이 현수에게 빙의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우선 층간소음 때문에 갈등을 빚은 아랫집 할아버지가 죽은 시점과 현수의 몽유병이 시작된 시점이 일치한다. 현수의 몽유병이 멈춘 시기와 침대 아래에 부적을 붙인 시기도 동일하다. 현수를 처음 본 무당의 말 역시 그의 행적과 맞아떨어진다. 남편 몰래 무당을 찾아가 아랫집 할아버지 49재를 드리는 동안 현수는 수면 장애를 겪지 않는다.
따라서 <잠>의 결말은 명백하다. 아랫집 할아버지는 생전 갈등 때문에 죽어서 현수 몸에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복수를 하기 위해 현수를 이용해서 현수-수진 부부네 일상을 파괴했다. 이를 간파한 수진의 노력 덕분에 현수 몸에서 할아버지의 혼이 떠났고, 부부는 일상과 평화를 되찾는다. 오컬트 영화의 정석과도 같다.
오컬트 영화를 부정하는 남편
그와 동시에 또 하나의 완벽한 답이 함께 제시된다. <잠>은 현수 입장에서 오컬트적 요소를 배제하고 과학적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기도 한다다. 장르적 관습에 충실했던 이야기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 핵심은 3막 구조의 완결성과 배우라는 현수의 직업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1막에서 3막까지의 내용은 몽유병 정신질환 치료기일 따름이다.
1막을 보자. 현수의 몽유병 때문에 수진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아랫집도 층간소음 때문에 괴롭다. 수진이 냉동고에서 반려견을 발견한 순간 현수는 명백한 악이고, 수진은 선이다. 하지만 2막과 3막을 거치면서 현수는 선의 편으로 되돌아온다. 현수가 약을 바꿔서 치료받았다는 점은 2막과 3막에 걸쳐서 거듭 강조된다. 그 결과 현수의 수면 장애는 3막에서 완전히 해결된다.
따라서 현수에게 <잠>은 오컬트 영화가 아니다. 심리 스릴러다. 수진이 선에서 악으로 변질되는 모습은 과도한 불안감과 편집증이 한 사람을 망가뜨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2막에서 수진은 남편이 침대 밑에 있는 부적을 떼어내자 극도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는 수진은 현수를 테이프로 묶고, 칼로 그를 위협하기까지 한다. 3막에서는 귀신적인 요소에 집착한 나머지 남편 모르게 굿을 벌이고 온 집안을 부적으로 뒤덮는다.
3막 구조 속 부부의 변화를 고려하면 엔딩에서 현수가 연기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는 자기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는 수진에게 무엇을 하면 되냐고 묻는다. 그러고 할아버지의 혼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부여주며 수진이 원하는 배역을 훌륭히 소화한다. 그 모습을 본 뒤에야 수진의 광기는 사라진다. 남편의 몽유병도, 아내의 정신병도 말끔히 치료된다.
오컬트 탈을 쓴 부부싸움
누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일련의 사건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구성. 이 때문에 <잠>은 더 특별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스터리, 스릴러, 오컬트의 외피 안에 숨은 로맨스와 멜로라는 속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이미 뛰어나지만, 결말에 이르러 더 풍부한 함의를 맛볼 수 있는 이유다.
수진과 현수의 집에는 현판이 하나 걸려 있다.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부부는 이 문구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1막에서 수진은 꼭 그래야 되나 싶을 정도로 현수의 몽유병을 함께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반면에 3막에서는 현수가 이 문구를 이행한다.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보여주면서 부부의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결말을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부부는 서로의 방식과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둘 다 여전히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더 흥미롭다. 잠을 매개로 삶과 죽음이라는 전혀 다른 두 세계는 만나듯이, 부부의 상이한 세계도 잠을 매개로 충돌한다. 또 잠깐의 죽음을 맛보고 다시 삶을 이어가듯이, 부부의 세계는 결국 하나로 지속된다.
즉, 잠이라는 일상 속 소재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듯이 <잠>은 평범한 결혼 생활의 극단을 보여준다. 수진과 현수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왔다. 무당을 모시는 장모. 무당에게 설득되는 수진. 끝까지 설득되지 않는 현수. 이들만 보더라도 두 세계의 차이는 극명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문제 해결도 온전히 둘의 몫이다. 결혼 생활은 원래 전혀 다른 사람이 만나 함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니까. 때로는 현수가 클리닉에 가고, 수진은 무당을 믿듯이 다른 힘에 기대고 싶더라도. 결국 <잠>은 괴기한 탈을 쓴 부부싸움인 셈이다.
이는 <잠>이 여운을 남기지 않고 칼같이 끝나는 이유일 것이다. 현수가 몽유병을 치료했고 수진이 광기에서 빠져나온 순간, 극장에는 곧바로 불이 들어온다. 어느 한쪽에 명백한 답을 주지도 않고, 누가 더 옳다고 고민할 여지조차 남기지 않고 종료된다. 이러한 결말은 다음같이 말하는 듯 보인다. 어느 쪽에 동의하든 다 맞는 해석이다. 잘못된 게 아니다. 그저 맞춰가면 될 뿐이다. 다른 사람과 산다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로부터 괴기한 세계를 거쳐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마무리까지. <잠>의 참신함과 과감함은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더욱 빛난다. 이선균의 존재가 중심을 잡아주는 가운데, 정유미의 연기력이 특히 반짝인다. 과거 정유미에 대해 카메라의 초점에서 벗어나는 배우라는 평을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오히려 예측할 수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는 것. <잠> 속 수진의 모습이 딱 그렇다.
<잠>은 개봉 이후 1주일 간 박스오피스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누적 관객 수도 60만 명을 넘겼다. 여름휴가철과 추석 사이 비수기에 개봉한 선택이 적중한 듯 보인다. 다만 아쉬움도 남는다. 전체 관객 수가 더 많은 여름, 독특한 한국 공포 영화로 포지셔닝했다면 어땠을까. 입소문 덕분에 1위는 못해도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근래 한국 영화 중 유달리 추천하고 싶을 만큼 인상적인 작품이기에 남는 아쉬움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다음 출전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데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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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만난 두 토르, 로맨스를 완성하다
일생에 한 번은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그것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지만 그 사람과 이별의 순간을 맞은 이후에 그것으로 인한 공허함이 마음을 채운다. 그 공허함은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잊게 만든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위로를 받고 또 할 일을 해나가지만 과거와 같이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지난한 마음의 혼란스러움이 정리된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그건 마음의 성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완벽한 짝이라고 믿었던 사랑과 이별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건 그렇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들여다본 후에나 가능하다.
이별은 마음속엔 늘 채워지지 않았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토르> 시리즈에서 연인 관계였던 토르(크리스 햄스워스)와 제인(나탈리 포트만)은 서로 잘 맞는 커플이었다. 하지만 토르는 인간을 뛰어넘는 신적인 존재였고 제인은 조금 똑똑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둘은 어느 시점 이후 관계를 정리한다. 하지만 이별 후 이들은 과거의 상대방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토르는 세상의 반이 죽어나가는 극한의 경험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자신을 가두었고, 제인은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했다. 토르는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제인은 자신에게 슈퍼히어로 같은 극한의 능력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함을 잃었다.
토르와 제인의 재회를 보여주는 네 번째 단독 영화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는 토르와 제인이 다시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마블의 1세대 히어로인 토르는 이번 영화가 네 번째 시리즈다. 다른 히어로 영화들과는 다르게 가장 많은 단독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1편과 2편에 등장했던 제인 캐릭터를 3편에는 등장시키지 않았다가 이번 4편에는 다시 등장시키게 되는데, 그래서 이번 영화에는 로맨스적인 요소가 상당 부분 다시 포함되었다. 3편이 유머와 경쾌함을 극대화시켰던 영화라면, 이번 4편은 유머와 경쾌함은 조금 톤을 낮추고 로맨스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영화 속 다시 등장하는 제인은 암 말기로 건강을 잃은 상태다. 반면 토르는 여전히 심리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자신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확신을 하지 못해 명상을 하거나 다른 친구들을 도우면서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시기에 제인은 지구에 있는 아스가르드 마을에 있는 망치 묠니르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느낌을 받고 그 묠니르를 얻게 된다. 적어도 묠니르를 들고 영웅으로 활동할 때는 그에게 아픈 모습은 없다. 활기차고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망치를 놓는 순간 다시 말기 암 환자의 핏기 없는 모습이 나온다.
제인과 토르가 다시 만나게 되는 건 영화의 빌런인 고르(크리스찬 베일)가 하려는 일 때문이다. 누군가와 거래하여 온 세상의 신을 죽이고 다니는 빌런 고르는 자신의 딸이 죽은 이후 신들에게 반감을 가지게 되는 캐릭터다. 이 영화에서 그가 신들을 죽이는 목적은 결국 우주의 절대적 존재인 이터널과 소통하여 죽은 딸을 다시 살리는 것이다. 그의 목적에 따른 행동은 토르를 지구로 불러들이고 과거 연인이었던 제인과 다시 만나게 만든다. 그리고는 이들이 다시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좀 더 집중하여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기능적으로만 활용되는 빌런 고르
영화는 빌런 고르가 가지게 되는 분노에 대해 이해시키려 하고 그가 신들을 죽이는 행동을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긴장을 만들어가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가 죽이려는 신들의 모두가 타락한 것은 아닐 것이고 그 방법 자체도 너무나 폭력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가 아스가르드의 아이들을 납치하여 토르를 협박하는 장면은 딸을 잃은 아빠가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고르가 왜 빌런이 될 수밖에 없는지 그의 사연을 먼저 보여주고 시작하게 되는데, 그것이 가진 설득력은 영화의 말미 아이들을 납치하고 협박하면서 없어져버린다.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빌런 고르는 단지 제인과 토르를 만나게 하는 기능적인 역할로 보인다. 마블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전체 마블 유니버스 안에서 봐도 고르의 역할은 매우 한정적으로만 소비된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렇게 빌런을 소비하면서 영화는 마이티 토르가 된 제인과 토르가 만나면서 벌이는 로맨스에 좀 더 집중한다. 전작인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보여줬던 재치와 유머들이 여전히 이번 영화에도 포함되어 있다. 토르의 우스꽝스러운 말투와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행동은 제인과의 재회 순간에 활용되며 독특한 웃음을 선사한다. 또한 두 토르가 같이 전투를 벌이면서 서로 도와주는 장면은 꽤 완벽해 보인다.
그렇게 힘을 얻어 마이티 토르가 된 제인과 토르는 비슷한 힘을 가졌고, 서로 만나며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졌다. 결국 이 영화에서 이들이 다시 만나 서로가 겪은 혼란과 정신적인 성장을 서로 확인하고 진정한 사랑을 발견해 낸다. 과거 <토르> 1편과 2편에서의 제인은 상황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고 토르에 의지해야 했지만 이번에 다시 등장한 제인은 자신의 운명을 자기 자신이 결정한다. 위기의 상황에서 토르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좀 더 주도적인 캐릭터로 거듭나게 된다.
유머는 줄이고 로맨스는 늘리고
사실 토르라는 캐릭터는 초기 마블 세계관에서 그렇게 인기 있는 영웅은 아니었다. 케네스 브레너 감독이 연출했던 <토르 천둥의 신>은 너무 어둡고 심각한 스타일의 영화였고, 마블 특유의 경쾌한 느낌이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 영화였다. 알랜 테일러 감독으로 연출자를 변경하고 완성한 <토르 다크 월드>도 마찬가지였다. 분위기는 너무 심각하고 어두웠다. 영화 완성도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았다. 마블은 다시 감독을 타이카 와이티티로 바꾸고 <토르 라그나로크>를 내놓는다. 과거 토르 시리즈와 다르게 유머와 경쾌한 음악이 들어간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영화로 성공적으로 재탄생되었다.
이번 <토르 러브 앤 썬더>는 3편의 감독인 타이카 와이티티가 다시 연출을 맡았다. 유머와 경쾌한 음악이 포함되어 있지만 전편에 비해서는 조금 강도를 낮췄고 로맨스를 추가시키면서 조금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런 시도가 그렇게 성공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유머와 로맨스가 균형 있게 들어가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 애매한 느낌이 든다. 빌런 고르가 만들어내는 긴장감 있는 분위기도 적절하게 살아나지 않는데 긴장감이 올라갈 때마다 유머나 로맨스 장면이 이어지면서 그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는 결국 일생에 한 번은 만나는 완벽한 연인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다. 토르와 제인이 만들어내는 우스꽝스러운 재회와 러브스토리가 영화의 마지막 전투까지 이어진다. 이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확인한 이후 보여주는 각자의 모습은 심리적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모든 이야기를 토르의 성장과 치유의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전반적으로 유쾌하게 볼 수 있는 마블 영화지만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분위기다. 토르가 던지는 유머와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조금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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