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05-13 07:40:31
로맨틱 코미디, 그런데 기후위기를 곁들인
영화 〈디피컬트〉
두 사람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모든 영화에는 인물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차이가 있다. 〈타이타닉〉에서는 귀족과 하층민이라는 신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앙숙 가문, 〈엽기적인 그녀〉에서는 성격, 〈베이비 드라이버〉에서는 선량한 시민과 범죄자라는 시민적 지위 등등이 그렇다. 이들 영화는 서로의 세계를 살아보지 못한, 그래서 상대방과 그가 속한 세계가 너무나 낯선 주인공이 상대를 알아가며 조금씩 자신이 기존에 속한 세계를 허물고 나와 상대의 세계에 진입하고, 종국에는 두 사람의 세계를 결합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로 나아간다. 물론 꼭 사랑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맥락에 따른,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하지만 사랑 영화에서는 두 사람의 사랑을 더 극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위해 이 차이를 더 극단적으로 확장한다. 〈디피컬트〉가 그러하듯이.

코미디, 로맨스를 아우르는 영화 〈디피컬트〉의 배경은 파리다. 주인공은 알베르와 발렌틴. 알베르는 채무에 시달리며 주거도 일정하지 않은 가난한 하층민 남성이고, 발렌틴은 급진적인 기후 활동가다. 둘이 처음 만난 곳은 블랙 프라이데이를 앞둔 어느 쇼핑몰. 알베르는 TV를 싸게 구입해 비싸게 팔 목적으로, 발렌틴은 지구를 망치는 무의미한 소비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일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는 첫 만남이다.
다시는 만날 일 없을 듯한 두 사람은 뜻밖의 장소에서 재회한다. 알베르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 브루노의 손에 이끌려 무료로 맥주와 음식을 나눠주는 곳에 간다. 발렌틴과 활동가 동료들이 친목과 결의를 다지고 다음 활동을 계획하는 모임의 장소였다. 알베르는 자기 입장에서는 얼토당토않은 일을 진지한 표정으로 도모하는 사람들을 보며 피식거리기를 멈출 수 없지만, 어쨌거나 함께하면 먹을 것이 나오고 그들이 재활용을 위해 수집한 물품을 몰래 비싼 값에 팔아넘기는 재미도 쏠쏠하기에 브루노와 함께 슬쩍 발렌틴의 활동에 동참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어느덧 솟구친 발렌틴을 향한 알베르의 호감이 가장 큰 동기다. 알베르는 발렌틴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활동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활동의 다음 단계가 곧 로맨스의 다음 단계와 맞물리며, 영화는 전개된다. 쇼핑몰, 패션쇼, 농장, 박물관, 심지어 은행까지. 기후정의를 촉구하는 이들의 시위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영화는 이들의 시위 장면을 온라인 생중계를 위해 참가자들이 핸드폰으로 촬영한 불안정하고 흔들리지만 바로 그 이유로 생동감이 느껴지는 장면과 화면 밖 카메라가 주인공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와이드숏을 교차하며 보여주어, 시위 현장의 박진감을 고스란히 전한다. 이는 자연히 시위와 연계된 두 사람의 로맨스가 무르익는 과정과도 맞물리며 극의 감정선과 재미를 더욱 고조한다.
위기도 있다. 알베르와 발렌틴의 관계를 질투한 또 다른 활동가가 알베르가 실은 단체 물품을 장물로 팔아넘기는 등 운동에서 개인 잇속을 챙겨왔다는 점을 폭로한 것이다. 기후 우울증으로 감정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대한 동력을 잃었으나 조금씩 알베르에게 마음을 열던 발렌틴은 이후 알베르에게서 완전히 멀어진다.
당연하게도 둘은 결국 위기를 극복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건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위기를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뻔한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영화가 두 사람의 거리를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캐릭터, 서사 설정이다. 〈디피컬트〉에서 누군가 기후위기를 얼마만큼 심각하게 인식하는지는 〈타이타닉〉의 신분,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문, 〈엽기적인 그녀〉의 성격, 〈베이비 드라이버〉의 시민적 지위만큼이나 커다란 차이다. 즉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의 차이가 귀족과 하층민이 살아가는 세계의 차이만큼이나 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코미디와 로맨스를 버무린 영화라기보다는 동시대에 기후위기에 대한 감각‧인식의 지형이 어떻게 구획되어 있는지를 질문하는 영화로 볼 때 더 재미있다. 만약 당신이 기후 음모론자라면, 푼돈을 벌어 하루하루 근근이 사는 남자와 기후 우울증 때문에 감정적으로 파산한 여자가 사랑과 연대로 그들 개인뿐 아니라 자신들이 사는 세상까지 더 좋게 만든다는 이 영화의 서사가 한없이 지루하고 허황되게 느껴질 것이다. 〈디피컬트〉의 서사 구조는 2022년에 열린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된 2021년작 프랑스 영화 〈지평선〉과 유사한데, 두 영화를 유럽에서(혹은 적어도 프랑스에서) 기후 시민이 멜로 영화의 주인공이 될 만큼 분명하게 가시화되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로 해석해도 무방해 보인다.
같은 징후를 포착한 한국의 상업영화를 나는 알지 못한다. 즉, 한국에서 기후 시민은 아직 하나의 분명한 시민적 정체성으로 부상하지 않았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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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도와 해석이 빚어낸 광기의 끝
3년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다. 작품 전체가 휘청이는 위기도 있었지만, 연상호 감독은 이를 극복하고 혼돈에 휩싸인 아수라장(阿修羅場)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시즌 2로 돌아온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은 정체불명의 '사자(使)'들이 갑자기 등장하면서 한순간에 혼란에 빠진 세계관을 그렸던 시즌 1에서 8년 뒤 시점을 주요 배경으로 삼고 있다. 시즌 1 말미를 장식했던 시연에서 살아남은 배영재(박정민)-송소현(원진아) 부부의 딸, 새진리회 1대 의장 정진수(유아인→김성철)의 시연, 부활한 '죄인' 박정자(김신록)로 포문을 연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고지(告知)-시연(試演), 이 재앙으로 인한 혼란과 갈등을 시즌 1 6부작을 통해 설명했다면, '지옥' 시즌 2는 재앙이 만연화된 사회의 주요 구성원인 새진리회, 화살촉, 소도 등 여러 단체들이 각자의 상징을 내세워 주도권을 잡으려고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 주류를 이룬다. 그 사이에 희생되는 개인의 서사까지 조명하며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정점을 찍는다.
재밌는 건, 한 배를 탔던 새진리회와 화살촉이 고지-시연에 대해 서로 엇갈리는 견해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여기에 부활자 2인(박정자, 정진수)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세상은 사자들이 처음 등장했던 8년 전과 비슷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부활 또한 고지-시연과 마찬가지로 원인 모를 불가해한 현상인데, 저마다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의도'를 찾고 '해석'을 가져다 붙이려고 급급하다. 심지어 정진수마저 같은 부활자인 박정자를 통해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을 찾으려고 했으니 말이다.
사실 '지옥' 시리즈에서 고지와 시연, 부활이 의미하는 바, 혹은 상징성을 찾아내는 건 무의미하다. 천세형(임성재)의 극 중 대사처럼 아무 의미도 없는 것에 광적으로 의미를 부여해 인간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참혹한 '지옥'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연상호 감독의 진짜 목적인 셈. 시즌 2 6부작이 끝난 뒤에도 말끔히 해소되지 않은 떡밥이 남았다고 생각드는 것도 어찌보면 드라마 속 인물들 같이 의도와 해석에 집착하는 게 아닐까.
이러한 유형의 작품 특성상, 출연 배우들의 밀도 높은 감정 연기가 필수이며 시즌 2에 새롭게 합류한 배우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마약류 투약 혐의 건으로 하차한 유아인을 대신해 정진수 역을 맡은 김성철이 모두의 관심이 받았다. 누가 더 우위라고 비교하여 판정 내릴 순 없으나, 최소 실점 위기를 훌륭히 틀어막은 구원투수 역할은 톡톡히 해냈다. 좌중을 휘어잡는 아우라와 더불어 본연의 감정에 깊게 빠진 정진수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화살촉의 교리에 경도되어 세력의 리더격으로 활약한 햇살반 선생님 오지원 역의 문근영의 파격 변신은 매우 강렬했다. 배우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모두 가린 괴기한 분장과 괴성에 가까운 소리, 급격한 변화와 혼란을 겪는 과정 등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문근영이 아닌 새로운 얼굴을 선보이며 충격을 선사했다.
그 외 '무빙', '최악의 악' 등에서 비릿한 악역으로 눈도장받았던 임성재의 절절한 감정 연기와 새진리회, 소도, 화살촉을 주무르며 잇속을 챙기려는 정무수석 이수경 역의 문소리의 영악함도 인상깊었다.
다만, 시즌 1에서 강한 임팩트를 심어줬던 사자들의 CG나 광기로 폭주하는 화살촉 집단의 분장은 기대치에 못 미친 게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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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트맨 대 슈퍼맨>, 스나이더 컷을 기다리는 이유
작년 5월 20일, 잭 스나이더 감독은 본인이 제작, 감독을 맡은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 컷'이 2021년에 HBO 맥스에서 공개될 거라고 발표했다. 프로젝트에서 그가 개인사로 하차한 후, 메가폰을 이어받은 조스 웨던 감독이 <어벤져스>를 의식한 듯 밝고 유머스럽게 완성시킨 <저스티스 리그> 개봉 후 혹평을 받으며 흥행에 실패한 바 있다. 이에 많은 DC 팬들은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를 공개해달라는 캠페인을 온라인에서 개시해 왔고, 3월 18일에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마침내 공개를 앞두고 있다.
사실 팬들의 요구로 이미 개봉되었던 영화가 재편집되고, 심지어 공개에 이르는 경우는 그다지 흔한 사례가 아니다. 이는 바꿔 말해서 잭 스나이더의 비전과 세계관이 유달리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스티스 리그>의 전편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고전적인 서사시와 신화에서 느낄 수 있는 숭고함이 바로 그 매력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슈퍼맨(헨리 카빌)'의 승리로 끝난 슈퍼맨과 조드 장군 간의 격렬한 전투는 메트로폴리스를 파괴했고 일반 시민들에게 수많은 피해를 남겼다. 전투 과정에서 부하 직원들이 죽고 다친 모습을 생생히 경험한 브루스 웨인, '배트맨(벤 애플렉)'은 그동안 타락했던 많은 자들처럼 슈퍼맨 역시 언젠가 타락을 할 것이라 생각하며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로 여기기 시작한다. 한편 마찬가지로 슈퍼맨을 경계하는 '렉스 루터(제시 아이젠버그)'는 슈퍼맨에 대한 논쟁에 불을 붙이고, 그 논쟁을 지켜보던 배트맨은 세계의 미래를 위해 슈퍼맨의 무모하고 제어할 수 없는 힘을 막기로 결심한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DC 히어로들의 팀인 '저스티스 리그'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를 가장 유명한 두 영웅의 대립을 통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 대립의 중심에는 팀 이름에 걸맞게 정의(justice)에 대한 상이한 신념이 위치한다. 영화의 영어 제목을 보면 대결을 의미하는 표시로 vs가 아니라 v가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잭 스나이더 감독은 인터뷰에서 단지 두 영웅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념, 가치, 정의가 충돌하는 지점을 그려내려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두 영웅이 생각하는 정의는 어떻게 다를까? 배트맨에게 정의란 공포와 형벌이고 그 심연에는 의심이 존재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강도에게 살해당한 장면을 목격하고, 그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그는 박쥐들이 자신을 빛으로 인도하는 꿈을 꾼다. 그래서 그는 배트 시그널로 밤하늘을 수놓은 채 박쥐가 되어서 직접 수많은 범죄자들을 처벌하고, 그 과정에서 친구를 포함해 수많은 이들을 잃으며 점점 인간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는다. 대상이 누구든 조금의 위험도 좌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슈퍼맨은 도시 하나를 손쉽게 파괴할 수 있는, 반드시 막아 세워야 할 위협 그 자체다.
슈퍼맨의 정의는 정반대다. 그는 크립톤과 지구, 양쪽 부모님의 사랑과 신뢰 속에서 인류의 희망과 도움이 될 운명으로 자라났으며 사람들은 위기의 순간에 그의 가슴팍에 놓인 희망의 상징을 찾는다. 한편 그 역시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자신에 비하면 무력하지만, 그들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가 불합리한 의회의 청문회에 기꺼이 참석하고, 사람들이 만든 질서를 파괴하는 배트맨의 정체를 추적하는 이유다. 그래서 두 영웅, 사람에 대한 의심과 믿음은 거듭 부딪힐 수밖에 없다. 실제로 배트맨이 슈퍼맨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를 죽일 고민을 하는 데 비해, 슈퍼맨은 배트맨에게 기회를 주고 직접 싸우기 직전까지 그를 설득한다.
정반대를 바라보고 있는 두 영웅이 한 팀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마음을 돌려야만 한다. 영화는 생각을 바꾸는 영웅으로 배트맨을 지목한다. 슈퍼맨을 궁지에 몰아놓은 그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는 슈퍼맨을 본다. 꿈속에서도 괴물이나 위험한 외계인 정도였던 그로부터 자신처럼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는 한 사람을 목격한다. 위험은 결코 좌시할 수 없다는, 믿을 수 있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본인의 신념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마주한 것이다. 이후 슈퍼맨과 힘을 합쳐 둠즈데이와 싸우고, 슈퍼맨이 목숨 바쳐 희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배트맨은 조금씩 생각을 바꾼다. 슈퍼맨의 장례식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팀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가 살아서 이루지 못한 것을 죽어서라도 이루게 해 주겠어"라고 말하는 이유다.
영화는 배트맨과 다양한 공통점을 지닌 렉스 루터를 빌런으로 등장시키면서 그의 변화를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배트맨과 렉스 루터는 모두 명망 높은 사업가이면서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법을 가볍게 무시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으며 영웅과 악당으로서 이중생활을 한다. 또한 부모가 없거나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성장배경의 영향으로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의심하기도 한다. 슈퍼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둘은 그의 힘과 선함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한 가지 존재한다. 슈퍼맨을 직접 만난 뒤 자신의 신념과 생각을 바꾼 배트맨과 달리 렉스 루터는 그렇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언론의 프레임을 이용해 배트맨에게 슈퍼맨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면서 두 영웅의 갈등과 대립을 유도하고, 대중들의 불안감을 자극한 루터. 그는 자신이 슈퍼맨의 부정적인 면, 잠재된 위험성만을 바라보듯 다른 이들도 그 면만을 바라보기를 원한고, 슈퍼맨을 직접 만난 후에도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며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 이러한 두 인물의 대비는 배트맨이 믿음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슈퍼맨의 신념에 동조하게 되는 과정에 힘을 실어준다. 배트맨과 루터의 존재는 슈퍼맨의 선함과 그가 믿는 신념과 정의가 옳더라도, 그를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와 관점에 따라 그가 선함과 악함 사이를 오갈 수 있음을 결국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캐릭터들이 지닌 사상, 가치, 철학의 차이를 잭 스나이더 감독은 전작인 <맨 오브 스틸>이 그러했듯, 고전적인 서사시와 신화를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예를 들어 슈퍼맨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구도로 등장하거나 그의 뒤에 해가 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는 제우스를 비롯한 많은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를 사실상 신의 위치에 둔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자신에게 거는 막중한 기대를 무거워하고, 자신이 그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절망하며, 그 가운데 산에 올라 아버지를 만나면서 마음을 다잡는 슈퍼맨은 마치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던 한 남자를 연상시킨다. 목숨을 바쳐서 지구를 구한 슈퍼맨을 보면서 그의 뜻을 따르기로 하는 배트맨과 그러지 않는 루터의 대조는 예수의 제자들 혹은 그와 함께 못 박힌 두 죄수들이 보여준 태도 변화를 닮았다. 이렇게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표현 방식은 전체적으로 진중하고 어두운 영화 톤에 더해지면서 '숭고함'이라고 부를 만한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는 상당히 직설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MCU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MCU는 가장 아주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동기를 기반으로 서사를 진행하며 '인간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의에 대한 대립에서 만들어진 저스티스 리그와 달리, 어벤져스는 기본적으로 죽은 동료의 복수를 위해 만들어진 팀이다. <엔드게임>에서 마지막 타노스와의 대결 역시 결국 타노스에게 원한이 가득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복수하는 이야기였다. 물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처럼 그들도 자유, 통제, 책임을 사이에 두고 토론을 벌이지만, 그 토론은 이내 가족과 친구에 대한 애정과 관련된 이야기로 이어진다.
개봉 당시 <배트맨 대 슈퍼맨>은 대중적으로나, 상업적으로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상징과 비유를 읽지 않으면 매우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전개, 스케일은 크고 거대하나 시종일관 피곤하게 만드는 액션, 히어로 간의 애매한 분량 배분, 다음 시리즈를 염두에 둔 무리한 연출 등 여러 단점을 노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배트맨 대 슈퍼맨>이 보여준, 다른 프랜차이즈와 차별화된 비장하고 숭고한 분위기의 세계관은 여전히 많은 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특히 슈퍼맨의 죽음이 아직 잭 스나이더 감독이 구상한 서사의 중간 지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수많은 팬들은 자신만의 매력으로 재무장할 스나이더 컷을 기다리고 있다.
A(Acceptable, 무난함)
잭 스나이더 서사시의 확장을 맡은 2막. 그래도 그의 3막은 봐야 확실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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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나간 탕아, 조폭하러 돌아오다
ㅐㄱ
영화 <컴백홈> 포스터
컴백홈 (2022)
감독 : 이연우 │ 장르 : 한국, 코미디·드라마
출연 : 송새벽(기세), 라미란(영심), 이범수(강돈)
등급 : 15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19분영화 <컴백홈> 스틸컷
개그맨이 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지
꿈은 이루어진다는 달콤한 말. 개그맨이 되겠다는 꿈 하나를 가지고 서울로 온 ‘기세’에게도 유효한 말이었을까. 영화 <컴백홈>의 주인공 기세는 공개코미디 무대에 열렬히 오르고 싶어하는 ‘아직 뜨지못한’ 개그맨이다. 그래도 개그맨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또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는 애매한 삶. 열심히 하면 기회가 주어지겠지 싶었던 그에게 굴러온 현실은, 날벼락 같은 프로그램의 폐지였다. 소를 키우던 시골에서 맨몸으로 서울까지 왔는데, 인생을 베팅한 직장이 사라져버리니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이 따로 없다. 하물며 월세를 밀린 원룸에서는 그만 쫓겨나기까지 하는데..., 그런 기세 앞에 어떤 ‘삼촌’이 나타난다.
영화 <컴백홈> 스틸컷
20억과 조폭 승계, 사전에 없던 선택지
그가 삼촌이라 부르는 사람은 ‘강돈’. 조폭 두목이던 기세 아버지의 오른팔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안 그래도 속이 시끄러워 죽겠는데, 오랜만에 불쑥 찾아와 강돈이 전하는 소식은 다름아닌 아버지의 부고 소식. 아버지가 칼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폭인 아버지가 끔찍하게 싫었던 기세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도 눈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꿈쩍하지 않는‘척’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돈이 제시하는 현금 20억에는 살짝 구미가 당기는데. 돈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만큼 기세의 현실이 암담했기 때문이다. 강돈은 20억을 주며 조폭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으라 제안한다. 어차피 실질적 일은 강돈이 할 것이고, 자신은 바지사장 마냥 아버지 자리를 이어받는 시늉만 해주면 되는 것 같았기에, 고민하던 기세는 강돈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싸움 따위 1도 할 줄 모르는 개그맨의 조폭 승계 스토리가 시작되는데.
영화 <컴백홈> 스틸컷
개그맨이 조폭이 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내는 줄 알았던 이야기는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중반부가 지나가자 생각지도 못한 빌런을 보여준다. 그는 바로 무식하고 유치하지만 진심으로 기세를 아끼는 듯 보였던 강돈이었다. 알고보니 강돈은 기세의 아버지를 제끼고 일선이 되고싶었던 그저 그런 양아치였던 것. 아버지의 죽음부터 시작하여, 기세에게 20억을 줬다가 도로 뺐기까지, 기세는 강돈이 깔아놓은 시나리오에 자기가 걸려들었다는 걸 알게되고 전에 없던 분노를 느낀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평생 원망만 하며 지냈던 아버지가 실은 자신을 끔찍이 아꼈다는 사실까지 뒤늦게 알게 되는데..., 모든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고, 단지 20억이 필요했던 기세는 그렇게 얼떨결에 목표를 수정하게 된다. 아버지를 배신한 가짜 삼촌을 처단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기세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고향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얼마나 웃기고 뭉클하던지.
영화 <컴백홈> 스틸컷
내 고향에 두고 온 것들, 왜 이제야 보일까
상경의 꿈을 안고 대도시로 간 자가, 고향을 얕잡아보고 오만해지는 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대도시의 냉혹함에 치여 고향으로 돌아와보면 자신이 얼마나 오만불손했는지를 또 깨닫게 되는 게 인간의 간사함 아닐까. 기세는 승계와 복수를 핑계로 다시 머물게 된 고향에서, 전에는 미처 알지 못한 감정들을 하나씩 꺠우쳐간다. 촌스럽고 짜증나서 떠나고만 싶었던 곳. 조폭 따위나 하던 아버지. 번듯하기는커녕 별볼일없이 늙어가는 유치한 친구들. 사랑했지만 개그맨이라는 원대한 자신의 꿈에는 걸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중국집 딸내미 영심. 한때 떨쳐버리고 싶던 그 모든 것들이, 반짝이지는 않아도 얼마나 따뜻하고 정겨운 존재들이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개그맨이 조폭이 되는 B급 코미디를 외피로 한 이 영화의 제목은 <컴백홈>. 그러니까 잘 곱씹어보면 이 영화는, 집으로 돌아온 탕아가 자신의 집이 얼마나 따뜻하고 정겨운 곳이었는지를 알게되는 따뜻한 성장스토리에 더 가까운 듯 싶다. 돈도 성공도 좋지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만큼 사람을 든든하게 하는 게 있을까. 촌스러워서 떨쳐내고 싶었던 나의 고향, 노잼도시 대전이 어쩐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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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를 위한 엘리베이터는 없다.
이 글은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최근 유퀴즈에 출연한 김종기 이사장은 학교 폭력 근절에 앞설 수밖에 없었던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끊어지는 것 같은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에 마음이 아팠고,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더 심한 형태로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최근 촉법소년을 필두로 청소년들에게서 발생하는 범죄에 대해 다루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직설적인 제목에 연기 귀신들로 채워진 듯한 출연진을 앞세워 관객들을 찾아왔다.
이 영화는 학교 폭력의 현실을 얼마나 정확히 직시하고 있을지. 포스터 가득한 비장하고도 비열한 분위기를 영화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지 기대된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권력 없는 아이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이 건물은 왜 엘리베이터가 없어.
피해자의 핸드폰 (불법) 감식을 위해 강호창이 허름하다 못해 내일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건물 계단을 오르며 한 말이다.
강호창의 한 몸을 편하고 빠르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존재. 출발은 같은지 몰라도 도착하는 속도만큼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르게 만들 수 있는 존재. 엘리베이터는 영화에서 권력이나 재력(돈)의 동의어처럼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결국 이 "엘리베이터"의 유무는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르는 잣대가 되었다.
피해자 김건희는 사회적 배려 전형으로 국제 학교로 오게 된 인물이고. 가해자들은 그 점을 이용했다. 바꿔 말하면 가해자들은 권력과 돈이 든든한 방패가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점이 건희를 바닥에서 기게 만들었고. 가해자들은 건희를 보며 키득거릴 수 있게 만들었다.
무언가 부족하다 해서 미워해야 할 근거는 되지 않으며. 반대로 가졌다 해서 없는 사람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것이 당연해지는 순간. 강호창처럼 투덜거리게 된다. 왜 원래 "있어야"할 것이 없냐고. 그것은 "없는" 너희의 잘못이지 있는 상태에 익숙해진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이다.
문소리, 설경구 두 정상회담.;뭔가 엄청나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배우 설경구와 문소리는 영화 [오아시스]에서 만났다.
배우로서의 초반 커리어를 쌓아가는데 서로의 이름은 시너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긴 세월 동안 자신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빚어내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고. 서로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을 법한 내공을 가진 배우가 되어 이 영화에서 재회했다.
젊은 시절(?)의 두 배우는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파격적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힘이 들어가 있었다면. 이제 두 사람은 자신의 나이와도 얼추 맞아떨어지는 역할로 한 화면에서 만났다.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을 가장 점잖지만 스스로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편안한 옷을 입은 모습으로.
덕분에 한 사람이 퇴장하면 한 사람은 등장하고. 누군가가 울고 있다면 또 누군가는 그 모습을 경멸스럽게 쳐다볼 뿐이지만. 그들 사이에는 그 어떤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한 인물에게 힘이 치우치지 않은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진다. 그만큼 두 배우가 누구에게도 짐을 전가하지 않는 배우가 되었다는 뜻일 테니까.
두 배우의 영화를 보고 자란 내겐, 스치듯 안녕을 고하며 지나쳐가는 모든 장면들이 그저 귀하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나쁜 이유.;주인공이 가장 나쁘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 속 보호자들은 그 누구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이기적이고 나쁘다. 아이들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신의 명성을 떨어뜨릴까 두려워하는 듯한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진 행동들을 하기도 한다. 이들이 앞다퉈 자신의 자식들을 권력의 그림자 안으로 숨기는 와중에도. 영화 속에서 가장 "나쁜 놈"을 꼽으라면 나는 결말로 가기도 전에 강호창이라고 말할 것이다.
강호창, 혹은 영화는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태도를 취한다.
자신의 아들도 학교폭력의 피해자라는 것이 밝혀진 뒤에야, 강호창은 자신의 직업의식을 십분 사용한다. 무시했던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이고, 진실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영화는 후반부에 강호창이 아들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한 노력을 하는 과정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다지 돈독해 보이지도 않던 아들과 아버지의 사이는 이때부터 둘도 없는 부정(父情)의 탈을 쓴다.
이 과정에서 실제 피해자인 건우의 존재감은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그러니 강호창이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 장면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
후반부의 반전(?)을 빼고서라도. 선택적으로 정의를 부르짖는 강호창의 모습은 촌극에 가깝다.
마치면서
흔히 하는 말처럼 연기 구멍이 느껴지지 않는 영화다. 그러나 영화 속 메시지는 아쉽게도 피해자보다는 설경구 부자의 억울함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이걸 보며 대체 무엇을 느껴야 할지 잘 알 수가 없다. 마지막 장면이야 예상을 했지만.
트릭은 너무 쉽고. 정작 써야 할 증거들은(자동차 블랙박스, 수표 일련번호 등) 법정에서 들이밀지도 않는다. 그저 감정에 호소하는 것만 같은 법정 신(Scene)이 나쁘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 글의 TMI]
영화관에서 팝콘 등의 음식물을 잘 먹는 편은 아니지만.
내 의지로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2022년 4월 25일 이후로 팝콘을 상영관에서 먹을 수 있게 되어서, 기분도 낼 겸 팝콘 하나를 샀다. 이직 후 주 4일 근무라 쉬는 평일 아침 조조영화를 보며 먹는 팝콘은. 당분간은 꽤 기분 좋은 경험으로 마음에 남아있을 것 같다.
물론 와그작거리는 소리가 거슬려 한동안은 사 먹을 리 없겠지만.
#니부모얼굴이보고싶다 #최신영화 #영화추천 #설경구 #문소리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책원작영화 #네이버인플루언서 #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브런치작가 #Munalo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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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을 처단하는 직쏘 모방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도덕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하지만 살아가며 누구나 하나 즘은 잘못을 하면서 살아간다. 아주 큰 범죄가 될 수도 있지만 말실수를 하거나 다른 사람의 작은 무언가를 몰래 가져오는 것 같은 아주 사소한 일들도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잘못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면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잘못을 인지하고 사과를 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사람마다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에 대한 판단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잘못을 인지했더라도 은근슬쩍 그냥 그 순간을 넘기기도 한다.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따라야 하는 법을 만들고, 그것에 위반되는지를 사법기관에 판단을 요청한다. 그리고 잘못이 있으면 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이 일련의 과정은 수십 년 이상 인류가 사회에서 질서를 지키기 위해 확립한 어떤 체계다. 하지만 모든 잘못을 법이 다 잡아낼 수는 없다. 어떤 잘못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고 그 잘못을 아는 사람이 없어지면 그 잘못도 자연스럽게 묻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웅 같은 존재를 이상화한다. 경찰이나 검찰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의 잘못도 누군가가 바로 잡아 주길 원한다. 하지만 그 존재는 분명 인류가 만든 법의 테두리에서는 벗어나 있다.
영화 <스파이럴>은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 가지고 있는 잘못들을 바로잡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다룬다. 경찰들의 잘못은 큰 것도 있고 사소한 것도 있지만 받는 형벌은 매우 가혹하다. 공포 스릴러 <쏘우>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는 극 중 유명한 연쇄살인범 직쏘(토빈 벨)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 모방범을 등장시켜 비슷한 패턴의 연쇄살인을 묘사한다. 과거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희생자들은 잔인한 고문 기계에서 깨어나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테스트를 받는다. 원작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특정 신체를 절단하는 것과 목숨을 구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인데 고민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서 잔인한 결과로 이어지고 이 장면들이 그대로 화면에 묘사된다.
비리 경찰을 처단하는 연쇄살인범 이야기
<쏘우>의 스핀오프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스파이럴>은 돼지 머리 인형을 내세우는 직쏘 모방범과 그를 쫒는 지크 형사(크리스 록)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지크 형사는 동료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하지만 꽤 도덕적이고 믿을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과거 경찰서장이었던 마커스(사무엘 잭슨)의 아들인 지크 형사는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고, 새로 온 신참 파트너 윌리엄(맥스 밍겔라)만이 그를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 상황에서 지크의 동료 형사들이 하나둘씩 직쏘 모방범에게 납치되어 살해당한다. 결국 연쇄살인범과 직접적으로 대결을 벌이게 되는 것 지크 형사뿐이다. 다른 형사들도 같이 추적을 해나가지만 왠지 모르게 지크와 협력하기보다는 독립적으로 수사를 하며 움직인다.
경찰은 사회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잡아 처벌할 수 있는 집단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도덕적인 신념은 중요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지크 형사는 도덕적인 신념이 꽤 명확한 인물이다. 주변 동료를 챙기면서도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동료라고 해도 동료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직언을 할 줄 아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런 성향은 그에게 동료들이 등을 돌리게 만든다. 지크 형사는 동료들이 연쇄살인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동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찌 보면 그는 경찰 내부에서 마지막 남은 최후의 보루라고도 볼 수 있다.
이전 시리즈가 그랬듯이 지크 형사는 늘 범인보다 한 발씩 늦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아주 잔혹한 묘사를 하는 시리즈의 특성을 조금은 완화시켜준다. 또한 범인의 단서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도 어느 정도는 설득력이 있다. 과거 시리즈보다 속도감은 조금 떨어졌지만 논리적 서사를 보강했고, 무엇보다 영화를 끝까지 흥미롭게 보도록 만드는 것이 있다면 바로 지크 형사 캐릭터에 대한 신뢰감 때문일 것이다. 그는 최대한 동료를 구하려고 뛰어다니고 단서를 찾아 결국 모든 살인의 범인을 찾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결정의 딜레마에 빠지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그래서 긴장감이 높아진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스파이럴>은 일그러진 영웅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연쇄살인범 직쏘가 그랬던 것처럼 개인적인 원한으로 시작된 살인은 비리나 잘못함 일이 있는 경찰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형벌을 준다. 과거 언젠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고문 기계에서 눈을 뜬 순간 자신이 과거에 잘못한 모든 것을 나열하며 생각할 것이다. 거기에 살인범이 들려주는 특정 사건에서 자신의 죄를 마주하고 결국 형벌에 처해진다. 아주 잔인한 살인범의 형벌은 세상을 위한 정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반론권이 전혀 주어지지 않으므로 올바른 정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를 영웅으로 보기는 힘들다. 그 자신이 행하는 정의에 이유와 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그저 잔혹한 악당으로만 보인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야기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
또한 연쇄살인범은 돼지 가면과 인형을 이용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스코트만 바뀌었을 뿐, 직쏘가 이용했던 방식 그대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살인범 역시 새로운 직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동일한 방식과 메시지는 <스파이럴>의 이야기가 <쏘우> 시리즈의 동어반복처럼 느끼게 한다. 이미 했던 이야기를 다른 캐릭터를 가져와 재구성하여 풀어가기 때문에 스핀오프라기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리부트로 보이기도 한다.
감독 대런 린 보우즈만은 공포영화 전문 감독으로 <쏘우 2> 편으로 연출 데뷔를 한 이후, <쏘우 3>. <쏘우 4>까지 연출하여 <쏘우> 시리즈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이후 여러 가지 공포영화들을 연출하고 있지만 만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많지 않다. 이번 <스파이럴>로 다시 <쏘우> 시리즈의 연출을 맡게 되면서 자신이 가장 잘했던 영화를 다시 한번 만들어냈고, 팬들이 만족할만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기시감을 느끼게 하지만 과거 시리즈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고, 서사의 구멍도 그렇게 많지 않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스릴러로 탄생시켰다.
영화 주인공 지크 형사를 연기한 크리스 록은 <쏘우> 시리즈의 팬으로 <스파이럴>의 기획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각본 작업에도 참여하여 이 시리즈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코미디 배우로 많이 알려져 우스꽝 스러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게 되는데, 이번 <스파이럴>에서는 과거와 다르게 심각하고 진지한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배우를 비롯해 감독까지 시리즈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영화 <스파이럴>은 여러 가지 단점을 보여주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시리즈가 이어갈 동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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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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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기자와 국가, 그리고 한 개인의 변화를 논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뉴스 채널의 간판스타인 ‘프랑스 드 뫼르(레아 세두)’는 성공한 언론인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명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물론 그녀의 삶이 완벽하지는 않다. 소설가 남편과의 불화와 학업에 관심이 없는 어린 아들의 존재는 그녀를 괴롭힌다. 완성도 높은 그녀의 리포트는 현실과 조작 사이에서 줄을 타며 그녀의 약점이 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길 위에서 발생한다. 프랑스는 운전 중에 모로코계 이민자 출신 남성 바티스트의 오토바이와 충돌하고, 이 교통사고는 뉴스가 된다. 언제나 기자이자 동시에 프랑스의 대표자였던 그녀는 한 개인으로서 어떻게 대처할지 알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점점 당황하고 흔들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한다.
신화는 그저 옛날이야기 취급을 받으면서도 때때로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과 교훈을 준다.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의 형벌이 그렇다. 교활한 자로 알려진 그는 제우스의 치부를 드러내고, 하데스와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속여 두 번째 삶을 누리며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혔다. 그러자 신들은 그의 죄에 대해 평생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형벌을 내려 무의미한 노동 속에 시시포스를 영원히 가두었다.
흥미롭게도 시시포스의 형벌은 인간 삶에 대한 비유와도 같다. 바위를 산 정상에 올리는 행위로 시시포스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바위를 움직인다. 알베르 카뮈가 지적했듯이 설령 미래가 바뀌지 않는다 해도 바위를 올리며 스스로 움직이는 그 순간만큼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시시포스는 신들이 의도한 무의미함에 굴복하지 않는다. 대신 어떤 상황에 처하든 삶의 순간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즐길 때 비로소 진짜 살아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진정한 삶의 변화는 그 결과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때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2021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던 브루노 뒤몽 감독의 영화 <프랑스>는 이러한 시시포스의 교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프랑스>는 '프랑스'라는 이름의 한 기자, 국가, 개인의 변화에 대해 말하지만, 그 변화를 결과로써 설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영화는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지 못하는 굴레에 갇여 있다 하더라도, 시시포스처럼 지금 이 순간의 현재를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 자체가 변화라고 이야기한다.
기자 프랑스의 변화
기자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이견 없이 가장 먼저 발언권을 얻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닌 스타다. 특히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인 프랑스의 모습은 왜 그녀가 스타 기자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녀는 진행자로서 국제사회 이슈를 전달하고, 냉철하고 중립적인 태도로 정치인과 평론가들을 상대한다. 필요하다면 사헬 지역의 폭탄 사이를 뛰어다니며, 대통령을 당황시키는 질문을 거침없이 던지기도 한다. 또 촬영과 편집까지 신경 쓰며 화면에 담길 자신의 모습을 기획하는 데 능숙한 프로페셔널한 기자의 모습도 보여준다.
반면 후반부에 묘사되는 프랑스는 앞서 만나 본 그 기자가 아닌 듯싶다. 특히 영화 후반 바다로 국경을 넘는 난민에 대한 취재에선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다른 이에게 업혀 배에 탑승하거나, 난민들이 탄 배에서 필요한 때에만 영상을 찍은 후 더 쾌적한 요트로 넘어가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식이다. 물론 최종적으로 편집된 리포트 속 프랑스는 여전히 현장을 뛰어다니는 열정적인 기자이지만, 그 과정에서 프랑스는 이전과 매우 다른 인물처럼 보인다. 실제로 리포트 속 거짓이 밝혀지자 그녀는 격렬한 비난에 직면한다.
그러나 영화는 겉보기와 달리 전후반부의 기자 프랑스가 사실 변한 게 없음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그녀는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지만, 대통령의 답변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기 위한 퍼포먼스였기 때문이다. 전쟁지역을 생생히 담은 그녀의 리포트 역시 사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가로지르는 '연출'이라는 행위를 통해 얻어진 결과에 불과했다. 단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짓됨과 동시에 진실된 그녀의 행동이 어떤 모습으로 포착됐는지만 다를 뿐이다.
국가 프랑스의 변화
변화 없는 기자 프랑스는 변하지 않는 국가 프랑스와도 오버랩된다. 레아 세두의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 선명해지는 하얀 피부, 빨간 입술, 파란 눈동자의 조화가 상징적이듯이 영화는 '프랑스(국가)'와 '프랑스(레아 세두)'를 교묘하게 섞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강대국이지만 사회 내적으로 문화와 인종의 차이로 인해 분열이 가속화되는 프랑스의 모습은 사회적 성공과 별개로 가족과 여러 불화를 겪는 프랑스의 일상을 닮았다.
이때 프랑스가 직접 취재하러 가는 사헬 지역은 변하지 않는 국가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사하라 사막의 남쪽 경계인 사헬 지역은 아직 프랑스군이 주둔하며 테러집단을 막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프랑스군 주둔은 테러를 감소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지역 주민들의 프랑스에 대한 반감을 키우고 있다. 과거 식민주의 제국으로서 북아프리카를 지배했던 프랑스가 모양새만 다를 뿐 다시금 식민주의적 접근을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정치, 경제, 군사⋅안보 영역에서 아프리카에서 과거 자신의 식민지였던 국가들과 프랑사프리크(Françafrique)라고 불리는 후견 관계 및 불투명한 인맥 네트워크를 유지해 왔다. 그러다 보니 프랑스군의 주둔은 이 관계의 신식민주의적 성격을 강화하는 듯 보인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가 자신과 접촉사고를 당한 바티스트 집을 방문해 "제 행동의 결과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프랑스 개인은 물론 국가의 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처럼 기자이자 국가로서 프랑스는 같은 선택을 반복하며 무의미하게 돌덩이를 정상까지 올리는 듯 보인다.
개인 프랑스의 변화
흥미로운 것은 미디어와 저널리즘 군상 혹은 한 나라가 처한 상황에 대한 풍자나 비판처럼 느껴지려는 차에, <프랑스>가 반복의 무의미함을 벗어날 힌트를 한 개인인 프랑스의 내면으로부터 찾는다는 점이다. 뒤몽 감독이 자신의 관심이 “오직 프랑스라는 인물의 내면에 있다”라고 밝힌 것처럼. 실제로 국가로서도 저널리스트로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던 프랑스는 그저 한 개인일 때 비로소 균열과 변화를 경험한다. 항상 거시적인 차원에서 세상에 접근하던 그녀는 접촉사고를 계기로 타인과 일대일 관계를 맺게 되고, 그로부터 비롯된 인연은 한 가지 깨우침을 되돌아온다.
후반부 다니엘과의 대화는 그 정점이다.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무게에 체념했고, 더 이상 삶은 변화 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듯한 프랑스. 그녀는 살인 강간범이라는 전과 이력을 알고서도 20년간 남편과 함께 살았던 그녀에게 정말 사람이 변할 수 있다고 믿었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다니엘은 수 차례에 걸쳐 사람의 변화를 믿는다고 대답한다. 이러한 다니엘의 답은 영화의 첫 장면, 엘리제 궁에서의 기자회견과도 일맥상통한다. 프랑스는 "현재의 프랑스 사회를 관통하는 '반란적' 상황에 대해 무관심인지 무기력한 지" 묻는다. 마크롱 대통령은 "개선의 여지는 많고 무관심한 적은 없었다"라면서 국가인 '프랑스'와 영화 내 인물이자 기자인 '프랑스' 모두에게 답한다. 다니엘과의 인터뷰 후에 올 때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해변을 보면서 프랑스가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변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뒤몽 감독은 씨네유로파와 인터뷰에서 "이 세계의 진실이 아니라 하나의 '질적 변화(metamorphosis)'"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를 선과 악, 진실과 거짓으로 명확하게 규정하는 대신 그저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현재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는 '죽다'와 '부활하다'의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 'de meurs'가 프랑스의 풀 네임인 'France de meurs'에 포함된 이유이기도 하다. 진보와 이상은 죽었고 현재만 남았다는 대사에 걸맞게, 프랑스는 달라지지 않는 반복 속에서 벗어나 현재와 순간 속에서 시시포스처럼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분명 뒤몽 감독의 다른 작품들처럼 난해하고 어렵다. 영화가 끝난 후 검색을 해야 비로소 알 수 있는 프랑스의 사회 정치적 이슈들과의 연관성은 진입장벽이 된다. 또 쉽게 접하기 힘든 촬영 방식은 영화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카메라와 붐 마이크가 화면 안에 등장하는 것은 예삿일이다. 카메라는 차 안의 모습을 몰래 찍기도 하고, 인물의 바로 밑과 위에 위치하기도 한다. 제4의 벽을 넘어서는 듯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파란 두 눈은 그녀가 레아 세두인지 프랑스 드 뫼르인지를 분간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낯섦은 영화에 대한 호불호의 간격을 좁히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낯선 접근법이 신선함이 될 때, 이는 상반된 이미지를 천연덕스럽게 오가며 서로 다른 세 층위의 프랑스를 하나의 접점으로 연결시키는 레아 세두의 연기와 만나 <프랑스>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기도 한다. 자칫 '유명인의 시련, 좌절, 그리고 극복'이라는 뻔한 이야기에 묻힐 수 있었던 '프랑스'의 변화가 기자, 국가, 개인의 맥락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습을 드러내며 깊은 사유의 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A(Acceptable 무난함)
이 복잡한 이야기를 얼굴과 표정, 눈물만으로 담고 또 전달하는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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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에서 227일 동안 호랑이와 동거한 남자 #6
환몽(幻夢) CINE 리뷰 6화_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2012)‘ 해석
** 영상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스토리가 마음에 드나요?”
(“So which story do you prefer?”)3.14159265358979...
원주율(Pi, π)만큼이나 무한한 이 영화의 해석!
이 영화가 질문하는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안 감독 외계인설?!
- 하나의 사건, 두 개의 이야기
- 예민한 당신을 위해 준비한 교묘한 복선
- “당신은 어떤 스토리가 마음에 드나요?”
- 우리가 꼽은 명장면
- 환줄평 / 몽줄평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나서 마구 생각하고, 마구 떠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라이프오브파이 #영화추천 #환몽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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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th JIMFF 이은정 감독님 interview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오랜만이다 의 #이은정 감독님 본격 탐구! ?♀️
? JIMFF X HISTRANGER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HISTRANGER가 떴다!
JIMFF 공식 웹 데일리팀이 직접 취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을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한국경쟁 상영작 [오랜만이다]의 이은정 감독님을
하이스트레인저 웹 데일리 팀이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8월 25일 대개봉!! ??
? 씨네픽쳐(스틸컷 퀴즈) 절찬리 진행중!! ?
? 씨네픽 큐큐(Quote Quiz) 절찬리 진행중!! ?
? 씨네픽 숏-퀴즈 절찬리 진행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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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 매주 목요일 밤 11시 59분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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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와이 우먼 킬 시즌 2> 공식 예고편
[왓챠 익스클루시브, 2021년 7월 28일 공개]
쉿, 시체와 비밀은 묻어둘 것!
돋보이는 존재가 되고 싶은 평범한 주부 엠마.
탐나는 것이 생긴 80세 재벌의 젊은 아내 리타.
1949년 LA, 욕망을 선택한 여자들의 치밀한 계획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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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룸> 재개봉 예고편
램프 하나, 세면대 하나, 침대 하나…
감옥 같은 작은 방에 갇힌 24살 엄마와 5살 아들7년 전, 한 남자에게 납치돼 작은 방에 갇히게 된 열일곱 살 소녀 ‘조이’
세상과 단절된 채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던 중, 아들 ‘잭’을 낳고 엄마가 된다
감옥 같은 작은 방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던 엄마와 아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잭은 다섯 살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태어나 단 한 번도 방 밖으로 나가 보지 못한 잭을
더 이상 좁은 방안에 가둬 둘 수 없다고 생각한 조이는
진짜 세상으로의 탈출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들의 극적인 탈출과 충격적인 과거 때문에
세상은 두 사람을 또다시 보이지 않는 방안에 가두려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