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또비됴2024-05-13 17:29:32
예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한 한 예술가의 답변!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리뷰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를 만나기 전까지 이 예술가에 대해 전혀 몰랐다. 첫 사진집 ‘성적 의존의 발라드’는 물론, ‘아트 리뷰 파워 100’ 1위에 선정될 정도로 예술가들의 예술가라는 사실, 더 나아가 사진으로 억만장자 일가에 맞선 P.A.I.N.(처방 중독 즉각 개입) 활동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일 등 낸 골딘은 알면 알수록, 파면 팔수록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든 장본인이다.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이 그녀가 이룬 결과물에만 주목하지 않았다는 점. 여느 예술가의 삶이 그렇듯 멋진 결과물 속엔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녀만의 투쟁 역사가 담겨 있다.
사진작가이자 사회 운동가인 낸 골딘. 그녀는 2017년부터 시위 단체 P.A.I.N.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단체는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를 무분별하게 판매해 막대한 이득을 챙긴 제약 회사 퍼듀 파마, 이 회사를 소유한 새클러 가문과 그들의 기부금을 받아 운영해온 전 세계 대형 미술관을 향해 시위를 벌인다. 2017년 말, 오피오이드 중독에 빠졌다가 벗어난 낸 골딘은 자신과 동일한 위기에 처했던 이들과 안타깝게도 운명을 달리한 이들의 가족을 위해 발벗고 나선다. 다큐는 그녀가 왜 이런 활동을 하는지, 아니 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알기 위한 과거로의 여정을 소개한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은 낸 골딘 개인의 투쟁 역사는 물론, 가족 및 사회 시스템에 억눌린 개인의 투쟁 역사로 말할 수 있다. 이는 다큐의 구성 측면에서 쉽게 알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총 7개의 챕터로 나눠 낸 골딘의 과거사와 현재 시위 활동을 병치한다.
<시티즌 포> 등 다수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해온 로라 포이트러스 감독은 먼저 챕터별로 그의 언니 바버라 홀러 골딘의 죽음, 위태로웠던 그녀의 유년시절, 1970년대 초 예술가 친구들과 이룬 공동체 삶, 언더그라운드 문화, 첫 번째 사진집인 ‘성적 의존의 발라드’ 이야기, 이후 성공과 나락에 빠진 삶의 굴곡 등을 다룬다. 그녀가 갖고 있거나 직접 찍은 사진을 슬라이드 쇼 형식으로 구성, 어느 덧 노년의 시기에 접어든 낸 골딘의 내레이션으로 각 사진에 담긴 이야기와 그 안에 숨겨진 개인사를 소개한다.
‘꼬꼬무’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그녀의 처절하고도 투쟁적인 개인사는 그 자체로 흡입력이 대단하다. 불안한 가정 환경, 여성으로서, 여성 사진 작가로서, 그리고 성적 소수자로서 겪는 사회적 편견은 그녀를 매번 시험에 들게 하는데, 오히려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요인으로서도 작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사진 작가로서 가감 없이 성적소수자 공동체, 에로티시즘, 에이즈, 약물 중독 등 그 누구도 담지 않은 당시 사회의 민낯을 찍은 작품은 기록물로서 예술로서 그 가치를 입증한다.
이처럼 각 챕터별 소개되는 그녀의 개인사는 현 시점에서 벌이는 그녀의 저항 운동에 당위성을 제공한다. 처방을 받았을 뿐인데, 약물에 중독된 낸 골딘은 또 한 번 개인으로서 사회적 불합리함에 희생양이 된 것. 자신이 처한 삶을 오롯이 카메라에 담으며 투쟁을 벌인 그녀에게 이 사건은 개인으로서 예술가로서 또 한 번 저항 운동의 중심에 서게 한다. 그리고 가열차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퍼듀 파마와 새클러 가문에 반기를 들고 투쟁을 이어가는 그녀는 대형 미술관들의 새클러 가문 기부금 거부 선언을 이끌고, 새클러 가문이 피해자들을 향해 진정한 용서를 하게 만든다.
삶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쉽다. 그러나 삶의 기억을 견디는 것은 어렵다. 이야기와 달리 삶의 경험은 악취가 있고 추잡하며 단순한 결말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의 첫 시작을 알리는 낸 골딘의 이 말은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나 다름없다. 이 작품이 극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로 담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기억을 담기 위해 노력한 이유는 바로 이 말을 온전히 실천하고 싶은 그의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생에서 용감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지만, 낸과 같은 사람은 결코 만난 적이 없다”는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의 말처럼,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새클러 가문을 향한 시위 운동에서 그리고 이 모든 걸 담은 다큐를 통해 실행으로 옮겼다. 마치 이야기를 직조하는 게 아닌 있는 시궁창 같은 삶이라도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은 것처럼 그녀는 용기있게 피하지 않고, 또 한 번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하려고 노력한다.
제79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에 빛나는 이 영화가 지닌 의미는 ‘예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끼’ 또는 ‘한 개인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한 예술가의 진솔한 답을 담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뒷걸음치지 않고, 세상이 보낸 수많은 공격을 온 몸을 다 받아내면서 끝내 자신만의 셔터를 누르는 그녀의 강단과 집념. 거대한 사회 시스템 앞에 개인의 힘이 무력화되는 현 시점에서 예술가가 지녀야 하는 마음과 용기, 그리고 가야 하는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영화가 가진 의미는 더 크게 다가온다. 노년의 예술가이자 운동가인 큰 누님의 가르침을 받아 저마다 개개인의 투쟁을 시작해보자. 그것도 아름답게!
사진제공: 찬란 제공
평점: 4.0 /5.0
한줄평: ‘예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한 한 예술가의 답변
*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 1
- 200
- 13.1K
- 123
- 1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