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5-14 09:50:00
[JIFF 데일리] 상영작 100편의 포스터를 한눈에
2024 100 Films 100 Posters 전시 행사 취재
2024 100 Films 100 Posters 전시2015년 시작된 ‘100 Films 100 Posters’는 매해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100편에 대해 100명의 그래픽디자이너가 고유의 포스터를 디자인하는 대규모 기획전시로 국내외 영화계뿐아니라 한국 시각디자인분야에서도많은 관심을 모으는 전시로 인정받고있습니다.
이 행사에서만들어지는 영화 포스터들은,영화 포스터의 관습과 상업적압력이배제된, 영화의핵심을 그래픽 디자이너가 자유롭게해석한 것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서만볼수있는유일무이한창작물이라는 특성을 가집니다.
행사는 팔복예술공장에서는매해 진행했던방식대로 제25회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100편을 선정, 100명의 그래픽디자이너가각자만의 포스터를만들어 전시하는 ‘제10회100 Films 100 Posters’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올해 전주남부시장에서새롭게조성된문화공판장 작당에서 10년동안 제작된1,000장의 포스터를 전시·판매하는 대대적인 아카이브전시 이벤트가 진행되며, 완판본문화관(한옥마을),인후도서관, 영화의거리 등 관광거점도시 전주시만의특징적인 공간에서도 특색있는 전시겸이벤트로도만나볼수있습니다.
또한, 역대 ‘100 Films 100 Posters’에참여했던디자이너들을초청, 행사의 의미와기록을되짚는 디자이너토크와간담회및그래픽 디자인에 관심있는 일반인이나전공생,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한 원데이 포스터만들기워크숍등 다채로운 이벤트도 진행한다고 합니다.
디자이너, 전공생이라면 한번쯤 들려보면 좋을만한 공간이었습니다. 많은 인원이 들어와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넓찍한 공간과 체험존들이 있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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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롱 리브 더 퀸!
6★/10★
1952년 여왕의 자리에 올라 2022년 사망까지 70년간 영연방을 통치한 엘리자베스 2세에 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의견이 있다. 첫 번째는 여왕이 영연방의 상징으로서 품위와 위엄을 갖추어 많은 이의 존경을 받는 사회의 어른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때때로 품위와 위엄이 과해 여왕이 권위적이고 폐쇄적으로 왕실을 운영했다는 비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각각의 사례에 대한 영화적 레퍼런스를 갖고 있다. 전자는 〈더 퀸〉(2007), 후자는 〈스펜서〉(2022)다. 한편 여왕에 대한 평가는 단지 여왕 개인의 인격에 대한 판단에 그치지 않기도 한다. 민주주의와 입헌 군주제의 병립 가능성(혹은 필요성)에 대한 논의와도 쉽게 연계되는 것이다. 어쨌든 엘리자베스 2세는 재위 기간 내내 영연방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고, 세상을 떠났을 때 많은 이의 추모를 받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녀는 분명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퀸 엘리자베스〉는 그런 여왕을 위한 애정 어린 헌사다. 즉위 후부터 재위 말기까지 여왕의 연설과 인터뷰, 일상 등이 기록된 영상을 콜라주해 오랜 세월 사랑받고 존경받은 여왕의 생애와 임기를 톺는다. 중요 변곡점이나 굴곡을 깊이 있게 조명하기보다는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조감하는 방식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비판 의식보다는 옅은 미소를 곁들인 회고에 가깝다. 영화 말미에 다이애나 왕세자비 사망이 야기한 혼란과 위기, 최근에 불거진 해리 왕자의 인종 차별 폭로 등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여왕이 이 모든 논란을 잘 갈무리했다는 점을 부각한다. 여왕이 ‘21세기의 군주’라는, 정치적 기반이 쉬이 흔들릴 수 있는 자리에서 놀라운 균형감과 예민한 정치력으로 그 모든 긴장을 조율하고 관리해왔다는 데 더 무게를 둔다.
엘리자베스는 영국인의 여왕이자 영연방의 여왕이었다. 턱시도를 입은 기득권 남성부터 흑인 이민자와 펑크 스타일의 뮤지션까지, 모두의 여왕이기도 했다. 영연방에 속하지 않는 나라에서, 여왕의 전성기가 지났을 때 태어난 내가 〈퀸 엘리자베스〉와 같은 영화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생경함과 부러움이다. 먼저 생경함은 도대체 군주의 권위가 어떻게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는지에서 나온다. ‘왕’을 전근대적 권력관계의 상징이자 정점이라고 인식하는 곳에서 나고 자랐기에 모두가 자연스레 그 권위를 인정하는 절대적 존재가 어떻게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생경함은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문화, 역사, 제도 등의 차이를 간략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정작 중요한 건 부러움이다. 모두가 존경할 수 있는 지도자 혹은 어른이 있다는 데에 대한 부러움 말이다. 민주 공화제 국가에서는 정치 지도자를 투표로 뽑는다. 이런 사회에서는 모두가 동의하는 전 사회적 어른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 품위와 도덕의 화신으로 존재하는 군주는 ‘품위 없고 부도덕한’ 존재를 비난하는 근거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모두의 상처를 보듬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사회적 참사가 나도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날로 정치적 갈등이 격화되는 한국에 엘리자베스와 같은 존재가 있었다면 그 문제에서만큼은 우리나라가 조금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다. 나이브하고 근거 없는 기대라는 점을 안다. 입헌 군주제가 필요하다는 (한국이 맥락에서)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가끔은 매우 ‘불온한’ 사람까지도 아주 조금이나마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자체를 떨치기는 어려웠다.
영화를 보면 숱한 위기와 끊이지 않는 비판에도 영국민들의 마음속에 결코 훼손되지 않는 여왕의 위엄과 권위가 분명 존재했다는 감상이 자연히 솟는다. 아마도 입헌 군주제 자체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엘리자베스 2세가 비상한 감각과 타고난 영국적 고귀함으로 쟁취한 결과물일 테다. 여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The crown is a idea more than a person.” 영화의 정확한 자막은 기억나지 않는데, 직역하자면 왕위라는 관념이 개별 인간보다 더 무겁다는 의미다. 여왕이기 전에 한 인간이었을 그녀가 느낀 왕관의 무게가 느껴지는 발언이다. 그래서인 것 같다. 어른이 부재한 사회에서 ‘여왕 폐하 만세(Long Live the Queen)!’라고 외치는 듯한 〈퀸 엘리자베스〉가 부러웠던 이유 말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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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동안 이어 온 ‘시네마’란 불가능한 작전!
<미션 임파서블>의 마지막 편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30년 동안 이어진 이 장대한 시리즈의 마무리를 본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고,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환갑이 넘은 나이에 몸을 던지는 톰 크루즈의 액션에 더 놀라웠다. 여기에 언제나 말보단 행동으로 불가능한 작전에 임했던 그의 마지막 임무라는 점은 1편부터 8편까지 극장에서 이 작품을 관람한 이로써 뭉클함도 전해졌다. 이렇듯 오만가지의 감정을 휘몰아치다 보니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이 시리즈가 그동안 무엇을 보여주고 말해왔는지, 그리고 어떤 걸 남기려는지에 대한 것. 완성도를 떠나 이 자체는 에단 헌트에게, 톰 쿠르즈에게, 그리고 시리즈의 팬들에게 큰 의미를 부여한다.
엔티티의 위협은 더 거세졌다. 디지털상의 모든 정보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이 AI는 인류 말살을 목표로 미국, 러시아 등 핵보유국의 핵 발사 시스템을 해킹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막을 수 있는 건 에단 헌트(톰 크루즈)와 IMF 요원들 뿐. 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72시간이다. 에단 헌트와 요원들은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마지막 여정을 떠난다.
| 72시간 동안 해결해야 하는 2가지 숙제
에단 헌트는 72시간 동안 2가지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전작인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으로 시작된 엔티티의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 한 이야기를 두 편으로 나눠 공개한 건 시리즈 중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장대한 이야기를 이번 작품에서 마무리해야 하는 게 톰 크루즈와 제작진에게 하달된 가장 큰 임무다.
전작의 중요한 소재였던 십자가 모양의 열쇠는 빙산의 일각. 에단 헌트는 엔티티를 무너뜨리기 위해 위치가 불분명한 러시아 잠수함 세바스토폴호를 찾아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 중요한 소스 코드가 담긴 포드코바를 찾기 위해서다. 이뿐만이 아니다. 빌런 가브리엘(에사이 모랄레스)이 가져간 일종의 AI 바이러스 포이즌 필을 회수해야 하고, 이를 포드코바에 업로드해야 막강한 엔티티를 무력화할 수 있다. 한마디로 에단 헌트는 생고생은 전편보다 더 강도가 세다.
표면적으로 가장 큰 숙제인 엔티티와의 대결과 함께 중요한 건 전체 시리즈의 마무리다. 이번 작품은 최종장으로서 그 의미를 살리고 관객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영화가 가져온 건 시리즈의 유산이다. 유독 이번 작품은 전작들(특히 1, 3편)의 장면들이 플래시백으로 소환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리즈 팬들이라면 그토록 궁금했던 ‘토끼발’(3편에서 등장)의 정체를 소개하고, 에단 헌트의 CIA 내부 침입으로 좌천된 던로(롤프 색슨)를 등장시키며, 시리즈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다. 이 활용은 시리즈 총결산의 의미도 담기면서 그동안 쉼 없이 달려왔던 에단 헌트의 역사를 곱씹게 한다.
|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
2시간 57분 동안 2가지 숙제를 차근차근 풀어가는 동안 영화는 관객들에게 그동안 잊었던 이 시리즈의 묵직한 주제를 설파한다. 그건 바로 미래를 바라보는 시점이다. 에단 헌트는 정해진 미래를 살아가는 이가 아니다.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누명을 쓰고 죽을 위기에 놓이거나, 생명을 담보로 세상을 구하는 IMF 요원의 삶만 보더라도 그의 인생은 보통의 삶과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평범하거나 정해진 미래에 순응하지 않는다. 마치 운명 개척자라고 말하는 것처럼, 매번 자신에게 닥쳐오는 변수와 위기에 대처한다. 어떻게해서든 이 불가능한 작전에 임하면서 단 1%의 성공 가능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애쓰고, 버티며 끝내 자신만의 미래를 만들어간다.
물론, 그 성공에 희생이 따른다. 그동안 그가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볼모로 삼아 악당과 한판 대결을 벌이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희생양 된 동료들이 꽤 있다. 이단 헌트는 그 부채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가면서도 끝내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이유는 그게 자신의 운명이고, 그것이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정확한 미래를 예견하는 AI가 빌런이라는 설정은, 이단 헌트를 또 한 번 시험에 들게 한다. 인간보다 더 정확도가 높은 AI의 공격은 그에게 미래와 운명을 바꾸려는 시도가 아예 먹혀들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진짜 그 자체로 불가능한 작전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 승부를 받아들이고, 자신과 팀, 그리고 사람들이 가진 일말의 선의를 믿으며 앞으로 계속 걸어나간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작전임에도 전편과 마찬가지로 모든 짐을 다 짊어진 채 고행의 길을 끝끝내 가는 그는 흡사 정해진 운명을 바꾸려는 구도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계획’이다. 거의 모두가 에단 헌트에게 계획이 있냐고 물어볼 정도로 잘 짜인 계획만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타개책을 만들것 이라고 믿고 있다. 그 또한 자신만의 계획은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변수에 막히고 어떻게든 타개책을 마련한다.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그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니까 말이다. 어쩌면 톰 크루즈는 이 시리즈를 통해 말이 아닌 자기 몸으로 변수로 둘러싸인 우리 내 인생을 논하고, 그럼에도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8번을 이야기했으니 이번엔 믿어보고 싶다.
| 톰 크루즈가 몸으로 실천한 시네마란?
앞서 소개했듯이 톰 크루즈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배우다. <탑건: 매버릭>이나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에서의 그의 액션은 의미를 더했는데, 그 이유는 OTT 시대 속 위축된 극장 영화 산업 흐름 때문이다.
큰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는 게 더 이상 관람 기준이 아닌 세상. 톰 크루즈는 보란 듯이 자신이 생각하는 시네마를 보여준다. 그건 바로 액션이다. 전작에서는 육지에서 벌이는 액션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 영화는 바다와 하늘에서 벌이는 액션을 선보인다. 그야말로 육해공 액션 만찬이다. 다채로움과 더불어 그가 행하는 액션은 CG가 아닌 아날로그 액션이라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다른데, 전작에서의 오토바이 액션 장면과 버금가는 경비행기 액션은 그 자체로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과 스펙터클함을 전한다. 도대체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매달리며 리얼 액션을 펼쳤다는 것에 경외감이 들 정도.
아날로그 액션의 대단함은 곧 데이터 로직을 기반한 엔티티를 대항한 에단 헌트만의 무기이자 OTT 플랫폼, CG에 의존하는 영화에 일침을 놓는 환갑 넘은 할리우드 노장의 무기다. 비행기에 매달린 채 일그러진 얼굴을 하며, 어떻게든 임무를 완수하려는 그의 연기는 왜 우리가 지금도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하는지 아주 강하게 알려준다. 관객에게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과 직업 정신도 느껴진다. 그가 영화에선 세계를, 현실에서는 영화를 지키는 구원자처럼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극 중 캐릭터와 배우가 혼연일체 한 모습을 찾기란 진짜 드물다. 예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찾아보길 힘들 것이다. 30년 동안 8편의 프렌차이즈 시리즈를 계속 만들어낼 사람은 톰 크루즈 한 명뿐이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말: 쿠키는 없다. 1, 3, 7편은 보고 가는 더 좋을 것 같다. 최종작이라는 점에서 초반 30분 동안 썰을 푸는 과정이 살짝 지루할 수 있지만, 꼭 필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조차 시리즈의 팬에게는 소중하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평점: 4.0 / 5.0
한줄평: 30년동안 행복했습니다. 에단 헌트 & 톰 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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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엄마 탓 아니야, 내 탓도 아니고
- 경아의 딸Gyeong-ah’s DaughterCast감독: 김정은출연: 김정영, 하윤경Synopsis홀로 살아가는 ‘경아’에게 힘이 되어 주는 유일한 존재인 딸 ‘연수’는 독립한 뒤로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 그러던 어느 날, 헤어진 남자 친구가 유출한 동영상 하나에 ‘연수’의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 버리고 이 사건은 잔잔했던 모녀의 삶에 걷잡을 수 없는 파동을 일으킨다. (출처: 서울국제여성영화제)Review2022년 8월, 또 불법촬영물 유포자가 검찰에 기소됐습니다. 1만 개 이상의 불법촬영물을 유포했으며, 이는 올해 적발된 사례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합니다. ‘또’라는 말도, ‘가장 큰 규모'라는 말도 화가 납니다. 이런 뉴스가 그리 놀랍지 않을 만큼 디지털 성범죄가 만연한 이 세상이 정말 두렵습니다.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감상한 영화 <경아의 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자행되는 대한민국의 디지털 성범죄 현실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언제쯤이면 이런 이야기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에피소드로 남을까요? 씁쓸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경아의 딸>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았습니다.⊙ ⊙ ⊙존엄한 인간으로서 용기 있게 전진현실에서 얼마든지 벌어질 법한 소재를 다룬 <경아의 딸>은 일면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한 다큐멘터리 같기도 합니다. 저는 이 글을 쓰기 바로 직전에도 불법촬영물 유포에 관한 뉴스를 맞닥뜨렸으니까요. <경아의 딸>을 만든 김정은 감독은 GV를 통해 “영화가 충분히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 확신했다"고 밝혔습니다. 딸 ‘연수'의 전 애인이 유포한 불법촬영물을 엄마인 ‘경아’가 받은 것처럼, 가족에게 불법촬영물이 유포되는 경우를 자문 단계에서 다수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의 70%가 전 애인과 같이 친밀한 관계의 사람이라는 통계 자료는 이미 유명하고요.여성은 연애하는 것만으로 디지털 성범죄의 가능성에 노출됩니다. 사실 여성으로 태어날 때부터 여러 범죄의 가능성에 노출된다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죠. 그런데도 사회는 익숙하게 피해자를 탓합니다. 극 중 ‘연수'는 경찰을 비롯한 여러 사람으로부터 “합의 하에 찍은 영상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질문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안은 여성을 향한 질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 영상을 유포한 것이 문제인데도, 사회는 여성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립니다. 엄마 ‘경아'마저 “왜 그런 남자를 만났느냐”며 ‘연수’를 탓하기만 하죠. 아주 작은 질타 거리만 있어도 여성은 애먼 공격을 받습니다. 논점을 오도하는 손가락질을 수없이 겪으며 자라왔기에, 러닝 타임 내내 마음속에 일렁이는 공감과 울분을 억눌러야 했습니다.<경아의 딸>은 디지털 성범죄를 소재로 하는 영화, 더 나아가 여성이 피해자로 등장하는 여러 영화와 분명한 차별점을 갖습니다. ‘연수'가 전형적인 피해자성을 탈피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말이죠. 피해자가 된 ‘연수’도 세상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고립을 택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책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영화도 그녀가 괴로움에 몸부림치거나 오열하는 장면을 일부러 보여주지 않죠. <경아의 딸>이 피해자가 다시 '살아내는' 과정에 집중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김정은 감독은 <경아의 딸>이 “피해자가 아닌 한 사람의 존엄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감독의 말처럼 ‘연수'는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매 순간 용기를 냅니다. 겨울 끝에 언제나 꽃 피는 봄이 오듯이 ‘연수'는 잠시 멈추었던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흘러가기를 택합니다. 봄을 향해 걸어가는 ‘연수’의 모습과 함께 흘러나오는 엔딩곡 ‘눈 오는 밤'은 성차별의 세상에서 또 한 번 살아낼 용기를 내는 현실의 ‘연수'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 ⊙사랑하는 만큼 갑갑한 K-모녀 관계영화 제목이 <연수>가 아닌 <경아의 딸>인 것도 이 작품의 차별점입니다. 제목처럼 영화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중요하게 묘사합니다. 엄마 ‘경아'와 딸 ‘연수'는 꼭 어디엔가 존재할 것 같은 사실적인 모녀입니다. 이마트 장바구니에 바리바리 음식을 싸주는 엄마의 모습이나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영상 통화를 하며 자취방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딸의 모습이 그렇죠. 아마 K-딸이라면 영화를 보면서 ‘아, 우리 엄마도 저러는데.’,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네.’ 싶은 장면들이 있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요.‘연수'는 불법촬영물 유포 사건만으로도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든데, 엄마는 ‘연수’에게 더 큰 짐을 지워줍니다. K-엄마의 고정적인 멘트를 내뱉으면서요. “다 내 탓이다. 내가 너를 잘못 키웠다.” 엄마의 자책이 딸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엄마들은 모를 겁니다. 아니, 어쩌면 엄마들은 알면서 저런 말을 뱉는지도 모릅니다. 자책은 딸에게 속상한 마음을 전하는 너무나 쉽고 간편한 방법이니까요.‘딸이 최고'라는 말, 한 번쯤은 들어보셨지요? 부모를 잘 챙기는 건 아들보다는 역시 섬세하고, 친근하고, 착한 딸이라면서요. 그렇기에 K-딸들은 착한 딸로 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자꾸만 비밀을 늘리면서도요. 그러니 '잘못 키웠다'는 말이 비수로 날아와 꽂힐 수밖에 없죠. 김정은 감독은 영화의 제작 배경을 설명하며 “내게 이런 사건이 벌어졌을 때 가장 두려울 것 같은 대상이 이상하게도 나를 가장 잘 이해해줄 것 같았던 엄마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기묘하게도 엄마와 딸은 제일 가깝고도 먼 사이입니다.‘경아’도 과거 남편에게 부당한 성관계를 요구 받고, 동네 사람들의 입소문에 오르내리는 등 성차별로 인한 고통을 겪은 적이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관념에 잠식된 그녀는 언젠가 남편에게 들었던 “걸레 같은 년"이라는 말을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는 딸에게 쏘아붙이고 말았죠. 그러나 ‘경아'와 ‘연수’는 결국 디지털 성범죄의 고통을 함께 겪으며, 애증의 모녀 관계를 해소할 첫 발걸음을 뗍니다. 자기 잘못을 참회한 '경아'가 '연수'에게 사과를 건넸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그런데 과연 딸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는 ‘경아'가 현실에도 존재할까요? 딸에게 용기 있게 사과를 건넨 ‘경아'가 엄마에게 단 한 번도 사과받지 못한 K-딸들의 마음속 응어리를 조금은 해소해주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이 세상의 모든 ‘경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저 나와 연대해주세요. 우리에겐 당신의 연대가 무엇보다 큰 힘이 됩니다.⊙ ⊙ ⊙<경아의 딸>은 불법촬영과 모녀 관계부터 성차별과 여성 노동까지 여성의 삶에 관한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익숙한 얼굴의 김정영 배우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하윤경 배우의 탁월한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언제든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영화, 그래서 더 공감이 가는 영화, <경아의 딸>이었습니다.Schedule in SIWFF2022.08.28(일)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6관 10:002022.08.30(화)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5관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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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벙커를 나갈 수 있는 열쇠는 내게 있다
줄거리
*스포일러 포함*
애인과 다툰 후 집을 나온 '미셸'은 한적한 도로를 달리다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다. 눈을 떴을 땐, '하워드'라는 남자의 지하벙커였다. 그는 지구가 외계인의 침략을 당했으며, 대기가 심각하게 오염되어 벙커에서 나가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자진하여 이 벙커에 들어왔다는 '에밋'이라는 남자.
처음엔 이 말을 믿지 않아 난동을 피우던 미셸은 이내 봉쇄된 출입문 앞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여자를 보고 나가기를 포기한다. 그런 미셸에게 하워드는 자신이 교통사고를 냈고,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미셸을 데리고 왔다고 고백한다. 그의 진심을 믿기로 한 미셸은 하워드, 에밋과 함께 사는 공동생활을 받아들인다.
벙커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던 어느 날. 갑자기 공기 여과기에 무언가가 걸려 몸집이 제일 작은 미셸이 환풍구를 타고 여과기 전원을 작동하러 가게 된다. 미셸은 그 공간의 창문 안쪽에 긁어서 도와달라는(help) 메시지를 남긴 흔적과 귀걸이 한 쪽을 발견한다. 그것은 하워드가 계속 말했던 딸 '메건'의 귀걸이.
은밀하게 에밋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더니 에밋은 사진 속의 여자가 메건이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하워드의 말은 모두 거짓인 상태. 두 사람은 밖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다. 나가기 위해 방호복과 방독면을 만드는 미셸.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나 싶던 찰나, 결국 두 사람의 행각이 들통나고 만다.
극도로 화가 난 하워드 앞에서 자신의 잘못이라 거짓말을 한 에밋은 총에 맞아 죽는다. 조금의 시간을 벌었지만 이내 방호복을 들킨 미셸은 격렬한 몸싸움 끝에 탈출하게 된다. 미셸은 바깥세상에서 하워드의 말처럼 외계인과 그 군함을 보고 놀란다. 외계인에게 죽임당할 뻔했으나 기지를 발휘해 살아남은 미셸은 차를 타고 질주한다.
라디오에서는 생존자들의 피난처인 '배턴루지'와 전쟁 중에 지원을 요청하는 '휴스턴'에 대한 방송이 연달아 나온다. 마침 그 갈림길에 선 미셸. 결국 차를 꺾어 휴스턴으로 향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감상 포인트
1. 처음 보면 황당, 두 번 보면 이해, 세 번 보면 감탄.
2. 한정된 공간 안에서만 움직이는데도 지루하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된다.
3. 편하게 볼 수 있지만 잘 만든 영화.
감상평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는 개봉했을 당시 영화관에서 직접 봤던 영화였다. 영화관에서 남은 음료를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말도 안 되는 영화, 똥 싸고 안 닦은 영화 정도로 평가했던 기억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결말이 그때의 내게는 너무나도 파격적이었기 때문...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는 결말부의 외계인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생각이 앞선다. 보통 이런 영화에는 '음모론이 거짓이다'라는 결말이 어울리기도 하고, 익숙하기 마련이니까. 하워드가 미셸에게 가스라이팅을 했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은 '엥? 진짜 외계인이 나온다고?'하며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SF와 미스터리, 스릴러를 가장한 성장물이다. 그래서 벙커 안에서 일어나는 심리 싸움은 모두 맥거핀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미셸이 변화했다는 사실이다. 미셸이 자신을 학대했던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털어놓는 것부터가 진정한 이야기의 시작이었던 것.
미셸의 삶은 벙커를 기준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벙커에서 나오기 전과 후로 나뉜다.
여태껏 미셸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도망치고 외면해왔다. 첫 장면에서 미셸이 애인과의 문제에 부딪혔을 때, 사람들은 미셸이 심각한 폭력에 시달렸을 거란 예측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애인의 말마따나 '말싸움'을 했을 뿐이다. 전화를 건 애인과 한 마디 대화를 나눠보려 시도조차 하지 않는 미셸은 나약하다.
과거의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어 사사건건 그녀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어릴 적 아버지의 학대에 시달렸던 미셸로서는 문제에 부딪힐 용기도, 싸워서 이겨낼 자신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도망치고 외면하는 것만이 문제의 답이요, 그 밖의 방법은 그녀로선 알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미셸은 결국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앞을 막아주었던 에밋의 죽음을 목격하며 변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도, 자신조차 구원하지 못해 쩔쩔매던 미셸은 지하 벙커에서 나오기 위해 하워드와 사투를 벌인다. 방호복은 완성이 되었지만, 이제 더 이상 하워드를 막아줄 에밋은 없다. 즉, 자신이 직접 하워드와 맞서 싸우지 않으면 이 벙커에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벙커를 하나씩 품고 산다.
그곳은 어떤 위험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때 그곳으로 숨어버리면 안전하다. 문제가 나를 지나갈 때까지, 나를 절대로 헤칠 수 없게 문을 꽁꽁 걸어 잠그면 된다. 하지만 벙커를 나올 때는 바깥에서 날 꺼내주길 기다려선 안 된다. 스스로 나가기를 원치 않으면 이 벙커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이 지하 벙커를 나온다는 것은 끔찍한 현실의 위험을 마주해야 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하지만 사실 정말 무서운 것은 바깥의 위험이 아니라, 모든 위험으로부터 숨으라고 유혹하는 벙커 안의 나 자신이다. 미셸은 자신을 구석으로 내몰던 스스로를 집어던지고 결국 벙커 바깥으로 나선 것이다.
갈림길에 선 미셸은 편히 쉴 수 있는 피난처인 배턴 루지와 전쟁 지원자를 구하는 휴스턴에서 결국 전쟁터를 택한다. 내면의 자신을 이겨냈기 때문에, 피하고 숨고 외면하기보다는 들이받아보자는 결정도 할 수 있었다. 결연한 표정으로 차를 돌린 미셸은 이제 학대당하는 어린 소녀를 바라보기만 하는 소녀가 아니다. 앞으로 나서서 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맞서 싸울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 얼마 전 리뷰했던 [글리치]와 완전히 다른 양상이 된다. 전개 방식과 소재까지도 모두 흡사하지만, 단언컨대 [클로버필드 10번지]가 훨씬 더 나은 결말을 내놓았다고 할 수 있겠다. 지하 벙커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인물의 진정한 성장을 이끌어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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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단하되 느린 '용들의 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적군에게 살해당한 후 마침내 내전 '용들의 춤'을 개시하기로 결심한 '라에니라 타르가르옌'(에마 다시). 하지만 그녀는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남편 '다에몬'(맷 스미스)의 독단으로 인해 칠왕국의 비난이 그녀에게 쏠려 버린 것. 심지어 흑색파 가신들마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통치력과 리더십에 의문을 품고, 라에니라는 점점 곤경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전투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 가장 든든한 조언자이자 타르가르옌 가문의 큰 어른인 '라에니스 타르가르옌'(이브 베스트)이 녹색파 최강의 드래곤 바가르와 그 기수 '아에몬드 타르가르옌'(이완 미첼)에게 공격당해 사망한 것. 이에 라에니라는 결단을 내린다. 그녀는 타르가르옌 가문의 모든 서자를 불러 모은다. 주인이 없는 드래곤에게 새 주인을 찾아주고, 단기간에 전력을 강화해 전세를 뒤바꾸기 위해서.
저조한 흥행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 후속작이자 프리퀄로 기획된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 1의 흥행은 놀라웠다. 첫 회부터 1000만 명 이상의 시청자를 기록했고, 평균 시청률도 회당 약 1,000만 명 이상을 유지했다. 시청률만 높은 것도 아니었다. 제80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드라마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고,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도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2년 만에 돌아온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두 번째 시즌은 실망스럽다. 당장 수치가 시즌 1에 못 미친다. 시즌 2의 첫 회는 약 780만 명의 시청자를 기록했다. 시즌 1 첫 방영 당시의 시청자 수보다 약 22% 감소한 수치다. 평균 시청률도 낮아졌다. 시즌 1의 마지막 화 시청률은 930만 명에 달했는데, 시즌 2 마지막 에피소드는 890만 명에 그쳤다.
재미와 완성도도 시즌 1에 미치지 못한다. 다음 시즌을 위한 징검다리라는 기획의 한계가 결정적인 이유로 보인다. 이번 시즌은 기존 인물들의 갈등을 일단락하고, 새 캐릭터를 소개하며 다가올 내전, '용들의 춤'을 위해 판을 까는 데 집중했다. 그 대가는 컸다. 캐릭터가 많다 보니 응집력이 약해졌고, 기승전결도 명확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 2는 시즌 1이 키운 기대감을 미처 이어가지 못했다.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해
물론 <하오스 오브 드래곤> 제작진의 선택도 일견 이해는 된다. <왕좌의 게임> 본편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최선의 노력이었기 때문. <왕좌의 게임>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혹평받았다. 캐릭터의 붕괴가 핵심 원인이었다. 외견상 <왕좌의 게임>은 판타지이나, 그 본질은 정치극 혹은 군상극에 가까웠다. 즉, 수많은 캐릭터가 자기 목표를 위해 이합집산하며 펼쳐지는 갈등과 대립,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재미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 후반부는 스케일을 키우다가 각 캐릭터의 매력을 놓쳤다. 칠왕국의 내전, 밤의 왕과의 전쟁에만 초점을 맞출 뿐 각 캐릭터의 행적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 못했다. 마지막 시즌에서는 모든 캐릭터가 붕괴됐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대너리스'(에밀리아 클라크)는 불과 한 회만에 타락해서 수많은 민간인을 살해했고, 예언 속 영웅인 '약속된 왕자'로 꾸준히 암시된 '존 스노우'(킷 해링턴)도 본인 역할을 잃었다.
그래서일까?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본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애쓴다.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각 인물의 서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다. 그 중심에는 흑색파의 리더인 라에니라와 녹색파의 기둥인 '알리센트'(올리비아 쿡)가 있다. 시즌 1에서 그들은 모성애라는 같은 이유 때문에 충돌했지만, 시즌 2에서는 같은 문제에 대처하는 상이한 방식 때문에 갈등을 빚는다.
어머니로 남거나, 여왕으로 거듭나거나
자기 아들들을 지키기 위해 왕좌를 노렸지만, 전쟁만은 피하려던 알리센트와 라에니라. 내전이 시작된 후에도 두 여성은 비슷한 곤경에 처한다. 전례가 없는 여성 정치인의 통치에 자꾸 분란이 생기니까. 알리센트는 왕대비로서 정국을 주도하려다가 오히려 두 아들에게 권력을 빼앗긴다. 라에니라도 휘하 영주들을 통제하지 못한다. 전쟁에 나선 적도, 칼을 휘둘러 본 적도 없는 여왕의 지시에 그들이 끊임없이 반기를 들기 때문.
그러나 난관을 뚫는 방식은 대조적이다. 알리센트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어머니다. 그래서 왕의 어머니라는 점을 내세워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 한다. 권력을 빼앗기고, 녹색파 내부의 갈등이 커져도 알리센트는 모성애와 가족애에 호소한다. 일례로 장남이자 왕인 '아에곤 2세'(톰 글린카니)와 차남이자 섭정인 아에몬드가 서로를 죽이려 할 때, 그녀는 정치적 거래를 이끌어 내지 않는다. 그저 어머니로서 두 아들의 싸움을 말리려 한다.
반면에 라에니라는 점차 여왕으로 거듭난다. 자기 권위와 권력이 타르가르옌 가문의 장녀라는 점에서 비롯함을 돌파구로 삼는다. 특히 타르가르옌 가문이 드래곤 혈통이라는 사실에 착안해 가문의 서자들, '드래곤의 씨'를 적극 활용한다. 장남 '자캐리스'(해리 콜렛)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드래곤을 길들인 이들을 선별해 전력을 강화한다. 또 자신이 타르가르옌 가문의 정당한 후계자임을 공표하는 도구로도 이용한다.
이 차이점은 드라마를 풍성하게 만든다. 작품 외적으로는 여성들이 현실의 역경에 맞서는 여러 방법과 겹쳐 보인다. 라에니라는 조금 더 현대적이고, 알리센트는 비교적 전통적인 여성이니까. 작품 내적으로는 그들의 선택을 옳고 그르다고 평가할 수 없어서 더욱 흥미롭다. 원작에서 두 여성은 자기 가치관과 반대되는 결말을 맞이해야 한다. 라에니라는 승전하고도 여왕이 되지 못하고, 알리센트는 모든 자식을 잃을 운명이니까.
확실한 교통정리
두 여성이 정해진 비극으로 나아갈 것이 정해졌듯이, 다른 캐릭터들의 서사도 전면전을 앞두고 방향성이 명확해진다. 일례로 녹색파의 이합집산이 본격화된다. 특히 아에곤 2세와 아에몬드의 갈등이 두드러진다. 섭정 자리에 만족하지 못한 아에몬드는 형을 죽여서라도 왕좌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그로 인해 위기에 처한 아에곤은 수도인 킹스랜딩을 떠날 준비를 하며 다음 시즌에서 녹색파가 처할 위기를 암시한다.
독보적인 사고뭉치인 다에몬의 서사도 마침내 정리가 된다. 그는 왕좌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한 인물이었다. 형이자 왕인 '비세리스 1세'의(패디 콘시딘) 명령을 거부하고 정복전쟁을 벌일 정도였다. 시즌 2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여왕이자 아내인 라에니라의 장악력이 흔들리자 왕이 되겠다는 야욕을 곧바로 드러낸다. 드라마는 욕망덩어리인 그가 어떻게 욕심을 버리고, 라에니라를 여왕으로 인정했는지를 인상적으로 펼쳐 보인다.
특히 이 부분은 본편과의 연결고리라서 더욱 눈에 띈다. 다에몬은 여러 환상과 암시를 본다. 본인은 물론 '용들의 춤'에 관여된 모두가 '얼음과 불의 노래'라는 서사시의 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라에니라가 왕좌에 올라야 이 서사시가 비로소 이어질 수 있음을 확신한다. 이는 <왕좌의 게임>이 '티리온'(피터 딘클리지)의 입을 빌려 이야기의 힘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식으로 마무리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이야기의 지평이 넓어지는 지점 또한 인상적이다. 시즌 1이 궁중 암투였다면, 시즌 2는 그 암투가 평민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같이 탐구한다. 그 중심에는 드래곤의 씨 세 명, '휴 해머'(키에론 존 뷰), '울프 화이트'(톰 베넷), '아담 벨라리온'(클린턴 리버티)이 있다. 그들은 전쟁 준비와 식량난 때문에 고통받느니 죽을 각오로 드래곤을 길들이는 데 도전한다. 이는 단순한 권력 투쟁처럼 보이던 '용들의 춤'에 현실감을 더한다.
애초에 가지가 너무 많아
문제는 캐릭터가 너무 많은 나머지 구심점이 약하다는 것. 전개 속도를 고의적으로 늦추면서 캐릭터를 깊이 개발하고 긴장감을 구축했지만, 녹색파와 흑색파 모두 사분오열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난잡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다음 시즌을 앞두고 가지치기는 확실히 했는데, 애초에 가지가 너무 많다 보니 나무가 좀처럼 깔끔해지지 않은 셈이다.
무엇보다도 방점을 찍어줄 클라이맥스의 부재가 아쉽다. 물론 중간중간 등장한 드래곤들의 전투는 분명 놀라운 스펙터클이다. 본편에서는 드래곤이 일방적으로 군대를 학살하는 묘사가 대다수였고, 드래곤끼리 싸우는 장면은 마지막 시즌 한 에피소드에서만 잠시 등장했다. 그에 반해 이번 시즌은 거대한 드래곤 세 마리가 뒤엉키면서 싸우는, 그 자체로 전율이 이는 신선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하지만 드래곤의 전투가 중반부에만 등장하다 보니 시즌을 끝맺었다는 느낌은 덜하다. 여러 캐릭터의 서사가 전쟁이라는 종착점으로 모였음을 시각적으로 각인시켜 주는 장면이 부족한 것. <왕좌의 게임>이 매 시즌 후반부마다 결정적인 전투 시퀀스를 배치해 시즌을 명확히 끝맺은 것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다. 차라리 마지막 화에 전투씬을 짧게라도 보여주면서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게 어땠을까 싶다.
어쩌면 드라마 기획의 근본적인 한계와 과욕이 결합된 결과이기도 하다. 특히 원작 소설의 형식이 한계로 작용한 듯하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근본적으로 더하기의 미덕이 빛나야 하는 작품이다. 원작 자체가 역사서 형태로 쓰였기 때문에 드라마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오리지널 이야기를 삽입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각 캐릭터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려다가 군살이 다소 과하게 붙은 인상이다.
종합적으로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 2는 단단하고 풍성한 이야기로 무장한 기초 공사, 시즌 3의 전초전에 그친다. 독립된 작품으로 본다면 시즌 1로 인해 높아진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못한 속편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다만 향후 두 시즌의 만듦새에 따라 더 인상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어벤져스>를 위해 완성도를 희생한 <아이언맨 2>와 유사한 위치인 셈이다.
Acceptable 무난함
드래곤보다는 사람에게 주목한 '용들의 춤' 기초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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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복을 벗고 더 큰 우주로
안녕하세요~! 파노라마에서 첫번쨰로 작성하는 영화 리뷰 입니다~!
처음 리뷰할 영화는 원더입니다 줄거리부터 만나보실까요?
1. 원더 줄거리
‘원더’는 안면기형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기와, 어기의 주변 인물들을 다룬 이야기이다. 5학년이 되자 어기의 부모님은 어기를 학교에 보내기로 한다. 어기는 홈스쿨링 대신 처음으로 학교에 가게 된다. 어기의 가족들은 어기의 외모에 대해서 어기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학교는 아니었다. 친구들은 정말 다양한 시각으로 어기를 바라보았으며, 그 상황에서 어기는 상처와 행복을 받는다.
2. 원더를 보고 나서 - 플립과 원더의 공통점과 차이점
줄거리는 원더의 주인공인 어기를 중심으로 요약하였지만, 원더에서는 어기의 상황만을 다루지 않는다. 나는 비슷하게 연출한‘플립’이라는 영화가 떠올라‘플립’과‘원더’를 비교하며 글을 작성해보았다.
첫번째. 영화 플립과 원더의 공통점은 바로 화자가 한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더에서는 이름과 나레이션을 통해 화자의 전환을 보여준다. 플립도 마찬가지로 화자가 바뀔때마다 나레이션을 하는 인물이 바뀐다. 플립은 두 사람을 교차적으로, 원더는 여러명의 시선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누어서 보여준다. 플립에서는 줄리와 브라이스의 갈등상황을 보여줄 때 하나의 상황을 두 사람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연출을 사용하여 인물의 감정에 관객들이 따라갈 수 있도록 연출하였다. 원더는 처음에 어기로 시작해서, 어기 – 비아 – 미란다 – 잭 순서로 인물이 이야기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환된다. 플립은 둘의 상황에 모두 공감할 수 있었다면 원더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원더의 인물변화는 플립처럼 갈등 상황에서 주인공이 아닌 타자의 시선으로 한번 더 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어기를 다른사람들보다 특별하게 보이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어기는 학교에 간 첫날 친구들에게 외모로 놀림을 받았다. 슬퍼하는 어기에게 부모님은 위로를 해주며 어기의 상황이 마무리된다. 만약 어기가 가진 콤플렉스를 부각시키게 연출하고 싶었다면, 바로 다음 씬에서 어기가 부모님의 위로로 자신감을 얻게 되고 용기있게 자신의 콤플렉스를 드러나는 씬으로 구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원더는 그렇지 않다. 부모님이 어기에게 위로를 해주는 모습 뒤로 카메라는 누나인 비아에게 초점을 맞춘다. 어기와 같이 학교 첫날이었던 비아도 힘든 하루를 보낸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비아의 하나뿐인 친구인 미란다는 갑자기 비아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어기와 비아의 씬 연결을 통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어기를 마냥 측은지심의 시선으로 보지 말라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힘든 부분은 하나씩 있다. 물론 영화 안에서 어기가 비아에게 외모로 놀림받은 적이 있냐고 질문한 뒤 비아가 아니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지만, 서로 힘들었던 부분이 달랐을 뿐이다. 또, 원더는 플립처럼 같은 상황을 두 번 보여주지 않는다. 분명히 갈등 상황이 있음에도 갈등 상황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닌 인물의 마음을 나레이션을 통해 그대로 보여준다. 잭이 왜 다른 친구들에게 어기를 뒷담화 했는지의 사정은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잭이 얼마나 어기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잭의 시선으로 어기에게 사과를 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잭의 마음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두 번째.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는 어른이 있다는 것이다.
플립에서는 브라이스의 할아버지를 통해 이야기의 주제를 전달한다. 그리고 원더에서는 부모님, 학교 선생님들과 교장선생님인 터쉬만을 통해 이야기의 주제를 전달한다. 할아버지와 터쉬만의 공통점은 인물들의 편견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플립에서는 줄리에 대해 브라이스가 가지고 있던 편견에 대해서 얘기를 해준다. 마찬가지로 원더는 어기를 괴롭히던 친구의 부모님이 가지고 있던 편견에 대해서 얘기한다.
플립과 원더는 화자를 여러명으로 설정하여 인물의 마음을 각각의 시선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원더의 경우 화자가 여러명이 아니었다면, 보통의 영화처럼 어기를 기준으로 악과 선으로 나누어 그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어기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고, 놀립받거나 과도하게 배려받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화는 인물을 어기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인물로 만들지 않는다.
원더 명대사
-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싶을 때는 그냥 바라보면 된다 - 어기 풀먼
- You really are a wonder. - 이자벨
- 위대한 사람은 센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싸울 용기를 불어 넣는 사람이다 - 터쉬만
-> 원더 포스터
파노라마_이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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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스트 라이브즈 - 셀린 송 감독과 유태오 배우가 그리는 새로운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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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의 어느 날, '해성'의 인생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첫 사랑, '나영'. 12년 후, '나영'은 뉴욕에서 작가의 꿈을 안고 살아가다 SNS를 통해 우연히 어린시절 첫 사랑 '해성'이 자신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한 번의 12년 후, 인연의 끈을 붙잡기 위해 용기 내어 뉴욕을 찾은 '해성'. 수많은 "만약"의 순간들이 스쳐가며, 끊어질 듯 이어져온 감정들이 다시 교차하게 되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기억일까? 인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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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살인 리뷰 -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다룬 용기에 박수를 (약스포, 결말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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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었죠,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거”
봄이 되면 나타났다 여름이 되면 사라지는 죽음의 병.
공기를 타고 대한민국에 죽음을 몰고 온 살인무기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그들의 사투.
증발된 범인, 피해자는 증발되지 않았다!
영화라는 매개의 특성상 결국 극적인 연출과 전개를 끝끝내 놓지 못해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영화를 리뷰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작고 사회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들에 조금더 마음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으로서
[공기살인]같은 작품들의 개봉을 응원하고, 또 미디어의 선한 영향력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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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샤잠! 신들의 분노> 메인 예고편
입덕 부정기는 끝?났?다? 폭풍 성장해서 돌아온 [샤잠! 신들의 분노] 메인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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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위왓치유> 티저 예고편
평범한 집처럼 꾸며진 3개의 세트장,
12살로 설정한 페이크 계정을 만들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 선 배우들.
계정 계설과 동시에 전 세계 남성이 접촉해왔으며
열흘 간 나체사진 요구, 가스라이팅, 협박, 그루밍 등을 시도하는 남성은 총 2,458명이었다.
그리고 우린 그 중 21명과 대면하게 된다.
범죄의 형식이 온라인으로 확산된 언택트 시대.
성에 대한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아동·청소년들에게 일어나는 충격적인 디지털 성범죄를 추적한다.
그리고, 가해자들의 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디지털 성범죄자 검거 프로젝트
<#위왓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