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6-03 14:45:40
준호적 사고, 긍정기운 넘치는 봉준호 감독 어록 모음
봉준호 자체가 곧 장르다
봉준호 자체가 곧 장르다
-BBC-
그의 영화를 일단 한번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비주얼 아티스트인 동시에 유머감각도 뛰어나다.
봉준호는 정말 국가적인 보물이다.
-제이크 질렌할-
"영화를 한 지 이제 24년이 됐지만, 나는 여전히
영화 작업이 버겁다. 왜 이렇게 힘들어하면서 한 편
한 편 완성하고 있지, 이걸 손 안에 넣고 만만하게
요리하는 날이 오긴 오는 걸까.
우리가 흔히 거장이라고 불러왔던
이들은 어떻게 하나, 궁금증이 들 때도 많다.
-봉준호-
영화도 유머도 말도 못하는게 없는 준호 감독님 귀여워...
저는 앞으로 '준호적 사고'로 살아가겠습니다.저는 앞으로 '준호적
사고'로 살아가겠습니다.
"본인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하세요"
"오늘 아침 행복했습니다.
기자들이 오프닝 시퀀스를 두 번 볼 수 있었으니까요"
"어릴 적부터 영화를 공부하며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란 말인데요.
그 말을 한 분이 바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입니다"
"진정한 독창성은 외로워야 나옵니다."
"스토리 자체보다 스토리를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반대를 자극으로 받아 들이세요."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 넘으면 여러분은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컷은 다 먹고 나서도 찍을 수 있지만,
면은 불어버리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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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 아렌트가 자랑스럽게 생각할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독일인 부부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에델)와 헤트비히 헤스(산드라 휠러)다. 세계 2차 대전 중이다. 일에 충실하는 루돌프 회스. 아예 집 옆에 일터가 있을 정도로 일에 진심이다. 조용한 일상.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사니 두려울 것이 없다. 다만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사는 집 옆에 있는 것이 아우슈비츠 수용소고, 루돌프는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임무를 받았다는 것이다.
우선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생각난 건 가까스로 다 읽은 한나 아렌트의 책 두 권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개념 ‘악의 평범성’에 대해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악의 평범성’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누구나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인 함의를 품고 있다. 바로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가 중요한데, 생각하거나 관심 갖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다 보면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녀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한 남자를 조명한다.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아이히만은 재판 중에서 당당하게 “나는 조직이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남자의 궤변에 격분한다. 하지만 서서히 관찰하면 관찰할수록 아이히만이 우리 평범한 사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발상의 전환이 일어난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는 이 아이히만의 모습을 포착하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타인의 입장에 대한 무사유(Thougtlessness) 하나만으로도 평범한 직장인이 역사에 남는 전쟁범죄자가 된 것이다.
이 ‘악의 평범성’을 제시한 것은 후대에 엄청난 파급력을 낳는다. 당연하다. 원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잖아? 이긴 자들은 승자의 입장에서 상대방, 그러니까 악의 근원을 “이 집단이 이래서 문제야!”로 퉁칠 수 있다. 아니면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라고 규정하면 쉽다. 잔다르크가 마녀로 지목당해 화형 당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종교라는 잣대가 명확하다. 또 서양의 기독교나 동양의 맹자가 인간에겐 원죄/악한 본성이 있다고 해석한 것도 악이라는 개념이 특정한 상황 하에 만들어진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리고 그게 되게 대단한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인류 역사상 히틀러 같은 존재는 흔하지 않다. 이런 측면을 고려해 보면 악은 특정한 무언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는 이를 전적으로 거부한다. 특정한 무언가가 있기에 대단하다던가 굉장히 특이한 게 아니다. 그냥 전적으로 평범한 사람일 뿐, 생각 없이 산 것의 총합체라고 정의한 것이다. 물론 한나 아렌트 이전의 역사가들이 악에 대해 이렇게 규명한 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도 그 악의 형태가 구현되고 있다. 가령 영화에서 온갖 비명소리가 들리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회스 부부의 모습은 분명한 악이다. 아니면 유대인의 코트를 빼앗아 입는 헤트비히의 모습 역시 분명한 악이다. 하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무사유’의 과정을 두 측면에서 보여준다. 어떻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아이히만이 보여주듯, 조직에 흘러가는 남자(루돌프)와 타인에게 무관심한 여자(헤르비히)를 통해서. 또 <인간의 조건>에서 한나 아렌트가 역설하듯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을 강조한 방식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다.
가장 먼저 탐구해야 할 인물은 루돌프 회스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루돌프 회스가 조직 내에 꽉 박혀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영화 연출을 통해 보여준다. 이 연출은 꼭 필요했다. 왜? 루돌프 회스가 실존인물이기 때문에.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역사적인 상황과 결부시켜 강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래야 이 영화가 비판하고자 하는 악의 속성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영화는 이를 위해 건조하게 그의 직장인으로서의 일상을 보여준다. 가령 외부 협력업체가 와서 회스에게 뭔가를 설명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장면 속 두 남자는 그냥 대표자들끼리의 대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영화는 그가 직장인으로 얼마나 자기 하는 일에 투신하는지를 묘사한다. 좀 필요 없어 보이는 전화 장면이 여러 번 들어간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여기에 특별한 설정이 영화에서 빛을 발한다. 아우슈비츠 옆에 사무실이 있고 거기서 산다는 특징은 가정적이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루돌프 회스의 모습을 보여주기 쉽다. 열심히 일하고 난 다음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아버지 회스의 모습은 지극히 평범한 악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루돌프라는 인물에게 가장 첫 번째로 수행해야 하는 과제는 직장인으로서의 업무나 가정의 안녕이 아니다. 나치라는 조직이다. 나치의 일원으로서 소속됐다는 한 가지 사실이 이 사람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 왜? 초반부터 영화가 이 인물의 내면을 이미지로 강조하고 있다. 루돌프 회스가 누군가에게 축하받는다. 그런데 그 축하를 해주는 사람들이 나치 조직원들이다. 얼핏 보면 회색 옷 입은 사람이 떼거지로 몰려들어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안 된다(심지어 배경도 회색 저택이다). 영화가 고의적으로 카메라를 멀리 떨어트려서 누가 루돌프 회스인지 알 수 없게끔 묘사하는 것이다. 축하받는 사람과 하는 대상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명백하게 수신자와 발신자가 정해진 행동을 흐려놓겠다는 감독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개인보다 조직을 강조한 것이다.
또 이 인물이 직장인으로서의 활동반경과 쉴 수 있는 집의 바운더리가 그렇게 선명하지 않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옆에 산다는 것도 이상한데 거기서 일을 한다는 건 더 기괴하다. 자연인으로서의 모습이 조직에 잡아먹힌 루돌프의 모습을 보여주는 설정이 되는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 루돌프가 전출을 가니 마니 하는 설정이 들어간 것도 흥미롭다. 사실 이 에피소드 자체가 굳이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안 간 거라서 굳이 알 필요도 없고, 갈등이 격정적이지도 않다. 영화의 기-승-전-결이 이 전출 여부를 두고 쌓아 올린, 소위 ‘빌드업’ 한 것도 아니라 맥 빠지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일이 이 가족에게 끼친 영향이 중요하다. 조직이 루돌프 회스의 가족공동체를 해체시킬 정도로 주인공(회스)에게 절대적이었다는 의미다. 나치와 히틀러의 말이라면 뭐든 다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엔딩신에서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내면의 무언가를 갖고 있지만 결국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 역시 인물의 이런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그의 무의식이 영화의 플롯에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루돌프의 내면을 보여주는 연출은 후반부에서 다시 반복된다. 초반 루돌프가 축하받는 장면과 후반부 나치 조직원들끼리 회의하는 장면은 수미상관처럼 반복된 것 같다. 왜? 회의를 주체하는 장면을 가장 첫 신에선 보여주지 않는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부감 숏으로 화자를 숨긴 것이다. 이다음 장면을 보면 영화 안의 회의 주제에는 회스가 제시한 근거가 중요하게 설정되어 있다. 다음 장면은 회스가 자기 의견을 역설하는 장면을 넣으면서 회의의 끝을 분명하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루돌프 회스가 회의에서 중요하다는 것만 묘사하고 그 안의 내용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루돌프 회스가 이 당시 나치라는 조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에도 근거를 찾을 수 있으나, 영화 초반부를 생각해 보면 수미상관처럼 조직 안의 루돌프 회스를 강조하기 위함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사운드의 힘만 믿은 게 아닌 비주얼의 힘이 조직에 휩쓸리는 루돌프의 모습을 보여줬다. 악의 평범성을 드러내는 연출인 것이다.
두 번째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인물은 루돌프의 아내 헤트비히 회스다. 이 인물이 이 영화에 차지하는 물리적 비중은 굉장히 많다. 하지만 그 비중치고 영화 안에서 유효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이 인물은 플롯 전면이 아닌 영화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이야기를 담당한 캐릭터처럼 보인다. 근거는 간단하다. “내가 이 집을 가지려고 17년 동안 고민해 왔다!”라는 대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강조하고 싶은 것. 이 인물의 동선이다. 이 인물은 집 밖에 멀리 나가지 않는다. 루돌프가 타 지역으로 나가거나 헤트비히 어머니가 그녀의 집으로 도착한 것과는 대비된다. 전업 가정주부인 것으로 보이는 헤트비히. 남편 루돌프에게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라는 말을 듣는다. 후반부 루돌프와의 갈등에서도 이 사람은 집 밖에 나가기 싫다. 남편을 속여서라도, 유대인들 고용해서라도 만든 집이니 만큼 애착이 강한 것이다. 이렇게 집에 박혀있는 헤트비히.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면 자기 집 안에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 능통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이 인물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인물은 집안사정에 그렇게 밝은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관심이 짧은 것처럼 느껴진다. 첫 번째 근거. 이 사람이 집 안에 일어나는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증거는 대놓고 드러난다. 이 영화의 사운드 지분 중 크다고 볼 수 있는 아기의 울음소리도 그 예시 중 하나다. 그냥 ‘왜 이렇게 울까?’ 한 마디면 엄마로서의 역할이 끝나나? 후반부에 남자 형제들끼리 비닐하우스 같은 곳에서 다투다 형이 동생을 장난으로 가두는 상황이 벌어진다. 여기서 동생이 울고불고 소리 지르지만 어머니 헤트비히는 알아채지 못한다. 중후반부 폴란드 소녀가 사과를 수용소 근처에 묻는 장면이 있다. 그때도 이 헤트비히는 인기척을 느끼지만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강가에 재가 떠다니는 것도 헤트비히가 아이들을 씻는 장면은 있지만 원인을 예방한 다 던가 하는 진단이 없다.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취해있기만 하지 실질적으로 ‘일 잘한다’라는 말을 듣기엔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영화 후반부에 묘사되는 루돌프 회스의 불륜은 이 인물(헤트비히)의 무능력함을 암시하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어디 다른 곳에서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니다. 루돌프의 집 근처에 있는 사무실에서 불륜이 이어진다. 루돌프의 아이가 “아빠 땀 냄새나!”라고 말할 정도로 이 남자의 불륜은 이 가정과 분리된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남편이 속였기 때문에 불륜을 저지른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루돌프 회스는 실제로도 가정적이지 않은 인간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헤트비히 의 대사 “오래전에 (전출이) 결정 난 것으로 보이는데 왜 말하지 않았냐”라는 말은 과연 그녀가 남편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이 집안이 화기애애하다는 시각적인 만족감에 도취되어 가정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자각하지 못한다는 건 그녀의 분명한 패착이다. 마치 나치 독일과 히틀러가 집권하고 난 다음의 모습이 1차 대전 전후의 독일을 재건하고 있다고 믿었을 독일인들처럼 말이다. 글쓴이가 헤트비히가 2차 대전 당시의 독일인들을 비유하고 있다는 건 여기에서 온다. 나의 행동이 독일의 재건을 위해서라는 자기기만, 가정에 착실한 어머니라는 자기기만이 나치당의 지지자들과 헤트비히에 중요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이 비유에 의미를 부여하니 영화 안의 두 대사가 더 와닿는다. 유대인 학살이 기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은 채, “너희들(유대인)은 나 덕에 편하게 사는 거야”라며 남편이 널 재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고 폭언을 하는 것. 그녀가 가진 모순을 이 영화가 폭넓게 묘사하는 것이다. 또 후반부에 루돌프가 헤르비히에게 “우리의 성과”라는 식으로 “우리”를 강조하는 것이 흥미롭다. 당연하다. 자국민들을 속인 나치의 군인들도 당연히 문제가 있지만, 심정적 동조자로서 학살에 ‘무관심’과 ‘자기기만’으로 참여한 당시 독일인들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단지 일상만 보여주는 줄 알았는데 그 이면에 담긴 의미가 무시무시한 좋은 각본의 힘이다.
두 캐릭터 말고 이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중요한 것은 카메라와 사운드다. 우선 카메라. 이 영화가 카메라로 일상을 담는 방식이 특별하다. 그냥 일상적인 걸 담으면 모르겠는데 어디에서 훔쳐보는 것처럼 화면을 담았다. 실제로 검색해 보면 어렵지 않게 이 영화의 촬영 기법을 찾을 수 있다. 세트장을 만들고 카메라를 많이 설치한다. 대신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이건 중요하다. 억지로 드라마를 배격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대놓고 있다. 그럼 그건 대놓고 영화다. 배우들이 서로 얼굴 보면서 연기한다. 감정의 이입을 유발하고 곡진한 무언가를 탐구한다는 것. 이건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에 대치되는 부분이다. 관심을 떼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응집성을 위해서라도 감정이입을 유발하면 하고 싶은 걸 보여주기 어렵다. ‘얘 나쁘지?’가 되는 순간, 인물의 표정이 보이는 순간 비명의 의미가 옅어진다. 영화가 그은 선을 스스로 넘는 것이다. 촬영 구도만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명확하게 만드는 연출이었다.
하지만 이 카메라를 활용한 연출 중에 정말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시각적인 것으로 사방이 막힌 이미지를 강조한 것이다. 모든 샷에서 벽이 강조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벽이 필요하지 않은 장면에서 굳이 벽을 보여준다는 게 핵심이다. 중후반부에 어떤 남자가 벽 너머의 풀숲에 어떤 것을 뿌리는 장면이 있다. 일반적인 카메라워킹이라면 벽을 등지고 찍는 게 맞다. 그런데 굳이 이 장면에서 벽과 남자, 풀숲이 같이 등장한다. 벽을 보여주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가 읽힌다. 더 나아가 청각적인 요소는 벽과 충돌하며 영화에 균열을 낸다. 남자가 숲에 무언가를 뿌리는 장면에서 들리는 소리. 어떤 남자가 비명인지 절규인지 질문인지 모를 소리를 지른다. 곧바로 총성이 들린다. 카메라는 여기서 총에 맞는 사람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벽만 보여준다. 마치 소리가 벽에 부딪힌 것처럼. 그 대신 관객들은 상상력이라는 게 있어서 벽과 소리만 보여줘도 이 상황이 어떤 일인지 대충 예상할 수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사운드를 강조하는 이유? 아니 그 이전에 사운드를 어떻게 강조했을까? 벽의 이미지를 강하게 보여줘서 이 영화 안에 쳐져있는 벽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본 사람에게 벽의 의미는 간단하다. 무관심이라는 벽이다. 계속해서 안에 있는 야채니 꽃이니 라일락이니 수영장이니 하는 것들을 보여주지만 무관심이라는 벽이 인물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벽의 의미는 앞에서 언급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닿고 있다. 악의 평범성을 이 영화가 사운드와 카메라의 존재로 보여준 것이다. 이 벽의 존재 덕에 카메라는 무엇을 찍을지에 대한 고민도 끝냈다. 분명한 악에 대해서는 카메라로 찍고 희생자들은 사운드를 통해 표현한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악에 익숙한 악인이 되는 셈이다. 이 맥락에서 열 카메라로 표현한 소녀를 설명할 수 있다. 악이 아닌 무언가의 존재, 그러니까 유대인에게 사과를 주는 따뜻한 마음이 이 영화의 카메라에 담기지 못한 선의가 된다. 사운드만 부각되는 것이 아닌 촬영에 의한 연출이 영화의 주제를 강조했다.
이 영화의 사운드는 영화의 핵심을 담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단란한 가족들의 일상 속 비명이 틈입한다. 이 비명이 가지는 임팩트는 영화를 본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의견을 말할 것 같다. 비명도 비명 나름이다. 어떻게 기괴한 소리만 다 골라서 삽입했는지 이런 요소들도 다 감독의 감각이 크게 주요한 것으로 보인다. 전작 <언더 더 스킨>에서 외계인(스칼렛 요한슨)이 지구인들과의 교감을 표현하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사운드로 치환된 셈이다. 이 선택은 아주 좋았다. 학살의 진상을 원초적인 방식으로 다가가게 한다. 원초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우리 일상 속에서 비슷한 것만 보면 생각난다는 의미다. 이 의미는 중요하다. <헤어질 결심>에서 감정적인 임팩트로 관객에게 큰 효과를 낸 것과는 다르게 신기한 방식으로 관객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청각을 아주 잘 활용했다. 이 영화 예술의 근본에는 무성영화라는 게 있다. 이 말은 즉슨 영화라는 예술 자체가 시각적인 걸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인지심리학에서 인류는 시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연구도 있다. 이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영화라는 예술이 가진 두 특징을 과감하게 무시하며 청각적인 요소를 강조한다.
하지만 영화가 청각적인 것을 활용하는 방식의 화룡점정은 오프닝과 엔딩에 있다. 이 영화의 청각적인 요소에는 뭐가 담겨 있을까? 비명이다. 유대인들의 절규가 담겨있다. 오프닝을 본다. 오프닝은 검은색 화면인 채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 첫 장면부터 청각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힘을 꽉 주는 것이다. 이 기점으로 영화의 청각적인 것에 대해 연이어 생각해 보면 이후에 비명소리가 들린다. 대신 시각적인 부분이 청각적인 장면과 먼저 시작하지 않는다. 그럼 비명소리가 이 이야기의 이전에 깔려있다는 의미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으로 날아간다. 루돌프가 헛구역질을 한다. 현대의 박물관 노동자가 건물을 닦는다. 닦는 소리가 부스럭거린다. 그리고 다시 영화의 시점으로 돌아와 루돌프 회스가 어둠으로 걸어간다. 시점이 세계 2차 대전 한가운데로 돌아간 것이다. 그다음이 엔딩이다. 이 영화의 엔딩은 오프닝처럼 청각적인 요소만 부각한다. 영화 후반과 초반이 비명소리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간이 직선으로 흘러가는 일상이다. 이 영화는 일종의 타임라인인 것이다. 영화의 과거와 미래, 오프닝과 엔딩이 청각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영화 안에서 비명소리가 청각적인 요소로 강조된다는 것. 그렇다면 영화의 과거와 미래를 이 감독이 어떻게 해석했는지에 대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홀로코스트는 곧 비명과도 같았다는 의미처럼 들렸다. 악인들이 시선을 돌리지 않아 만든 비극이 홀로코스트라고 말한 셈이다.
괴물 같은 영화다. 음향, 촬영, 각본, 연출 모든 부분에서 한 부분의 극점에 다다른 능력을 보여줬다. 심지어 산드라 휠러를 위시로 한 배우들의 연기도 굉장히 뛰어나기까지 하니 무결점의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꼽자면 극의 재미를 부각한 영화가 아니라서 누군가는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위험부담(?)에도 글쓴이가 장점으로 확신하는 것이 있다. 정말 필요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이 영화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만큼 징글징글하고 강박적으로 관객에게 질문한다. 사실 이 사람들이 왜 인간 근처도 가지 못하는지는 영화가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하는 부분은 곧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과도 이어진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관계성에 대해 언급했다. 정치적인 행위부터 시작해 불멸하게 남는 여러 기록까지, 또 공/사적인 공간의 필요성까지 이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다 함께 살아가는 것에서 온다고 역설했다. 이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이 <인간의 조건>에 대한 깊은 통찰을 아주 속 깊게 우려낸 사골국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 대화하는 사소한 것들, 공간들, 하녀의 움직임부터 루돌프 회스의 동선과 공간까지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조건>의 목차처럼 느껴진다. 충격적인 영화다. <액트 오브 킬링>과 함께 과거의 비극이 단지 과거에만 국한될 것이 아닌, 날카롭고 깊은 인사이트를 보여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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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봐도 <길복순>이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청부살인 업계 최고의 회사인 MK 엔터테인먼트 소속 킬러 ‘길복순’(전도연). 맡은 '작품'은 반드시 완수해 내는 에이스인 그녀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다. 바로 소속사와의 재계약. 10대 딸 '재영(김시아)'을 제대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워킹맘인 그녀는 결국 퇴사를 결심한다. 하지만 그녀는 재계약 제안을 섣불리 거절하지도 못한다. 청부살인의 모든 것을 알려준 멘토, '차민규'(설경구) 대표와의 인연이 마음을 무겁게 하기 때문이다. 결국 답을 미룬 채 인턴 '김영지'(이연)를 데리고 마지막 작품에 들어간 복순. 모든 것이 순조롭던 그때, 임무에 숨겨진 진실을 발견한 그녀는 회사가 의뢰받은 일은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규칙을 처음으로 어긴다. 바로 그 순간, 복순은 이제 모든 킬러의 타깃이 된다.
액션 영화인 척하는 영화, 길복순
"액션이 많이 나오는 영화지만 액션 영화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영화." 변성현 감독이 설명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이다. 이상한 말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주인공 길복순은 청부살인업계 전설이다. 자연히 러닝타임 내내 액션이 쏟아진다. 길복순과 야쿠자의 일대일 결투가 시작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술집에서, 길복순의 단골 식당에서도 화려한 액션이 이어진다. 그런데 어째서 <길복순>을 액션 영화로 보지 말라는 걸까?
영화가 끝나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피비린내가 가득하고 비명과 총성이 끊이지 않지만, <길복순>은 분명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다. 눈요기를 위한 액션, 쾌감을 위한 액션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은 영화였다. <길복순> 속 액션은 워킹맘 길복순의 고민과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였다.
안타깝게도 변성현 감독의 야심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다. 다양한 잠재력이 보이지만, 무엇 하나 살지 못했다. 신파가 아닌 방식으로 풀어낸 모녀의 이야기는 색달랐다. 워킹맘을 킬러에 빗대어 일상 속 딜레마를 시각적으로 펼쳐 보인 아이디어도 신선했다. 그러나 둘 깊지 않다. 길복순의 서사를 함축한 액션이 부족한 깊이를 더하는 듯 보이나, 조악하다.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넘친 나머지 무엇 하나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 기시감으로 가득하다. 결국 <길복순>은 액션 영화라 해도, 아니라 해도 불만족스럽다.
킬러보다 흥미로운 엄마 길복순
<길복순>의 스토리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킬러 길복순의 직장 생활, 길복순과 차민규 대표의 재계약 협상, 그리고 복순과 재영 모녀의 갈등. 앞의 두 이야기는 새롭지 않다. 살인청부업자가 등장하는 영화라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냉혹하고 비정하나 최소한의 규칙이 있는 킬러들의 세계는 <존 윅>과 <킬 빌> 시리즈를 보는 듯하다. 연예 기획사 시스템을 본뜬 킬러 회사 구조가 한국의 맛을 살짝 더할 뿐이다. 길복순과 차 대표의 사제 관계도 익숙하다. 서로 아끼고 인정하지만,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사이. 추구하는 가치 때문에 희생되는 사적인 애정. 킬러들의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설정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눈에 띈다. 사실 모녀의 사정은 익숙하다. 워킹맘 복순은 딸 재영을 온전히 챙기지 못한다. 딸이 자기를 필요로 하는 순간 항상 출장을 가야 해서 미안해한다. 또 그녀는 딸이 어렵다. 방문을 쉽게 열지 못할 정도로. 담배를 피워도 제대로 혼내지 못할 만큼. 재영도 엄마가 어렵다. 직업조차 말하지 않는, 항상 비밀이 있는 엄마라서. 결국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재영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로 협박하던 학교 친구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 하지만 엄마에게 쉽사리 진상을 밝히지 못한다. 동성애자라는 비밀을 털어놨을 때, 자기를 응원해 줄 거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갈등을 풀어내는 방법이 재밌다. 답답하지 않다. 거슬리지도 않는다. 대신 독특하다. 신파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각자 비밀을 담담하게 꺼내 놓는다. 엄마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항상 오가는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딸은 소수자로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라고 속마음을 꺼내 놓는다. 고백만큼이나 응답도 쿨하다. 엄마는 딸의 선택을 조용히 응원한다. 딸도 엄마에게 고생했다고 말하며 방문을 열어 놓으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응원하고 위로할 수 있을 뿐, 문제 해결은 각자 몫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처럼 <길복순>은 애정 넘치는 모녀 사이를 눈물바다 없이도 감각적으로 뽑아내는 데 성공한다. 전형적인 킬러의 이야기보다 시원하고 맵시 있는 가족 이야기가 재밌는 이유다.
엄마와 킬러가 공유하는 딜레마, 목적과 수단
흥미롭게도, 스타일리시한 모녀 관계에 주목하면 평범한 킬러의 이야기도 조금은 달라 보인다. 복순과 '오다 신이치로'(황정민)가 대결하는 오프닝이 힌트다. 복순은 그에게 검을 들고 싸울 기회를 준다. 국무총리 아들의 대학교 부정입학 스캔들 뉴스를 보던 중 딸의 일침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복순에게 재영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아무리 목적이 중요해도 그 수단이 잘못되면 안 된다는 말이다. 물론 그녀가 딸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대결이 불리하다 싶어지자 복순은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대신 오다를 총으로 쏴 죽인다.
하지만 복순은 이미 변했다. 주어진 작품의 동기나 배경을 신경 쓰지 않던 킬러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보고 듣는다. 흠잡을 데 없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이 과연 엄마로서도 적절한지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가 겪는 딜레마를 복순도 피하지 못한다. 단지 킬러라는 직업 때문에 유달리 핏빛일 뿐. 국무총리의 살인 의뢰는 전환점이다. 정치 경력을 가로막는 걸림이 되어버린 아들을 죽여 달라고 의뢰한 국무총리. 하지만 복순은 국무총리 아들을 자기 딸과 겹쳐 보고, 옳지 않은 살인이라고 판단한다. 결국 복순은 살해 대상이 미성년자만 아니라면 반드시 의뢰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규칙을 처음으로 위반한다.
이처럼 가치관이 달라진 이상, 복순은 다른 킬러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이 세계에서는 언제나 목적이 수단에 우선하므로. 일단 '차민희'(이솜)가 그녀 앞을 가로막는다. 길복순을 항상 눈엣가시로 생각했던 차 이사. 오빠 차민규와의 근친상간도 마다하지 않는 그녀는 복순을 죽이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아픈 아버지를 미끼 삼아 '한희성'(구교환)을 협박한다. 복순의 친구에게도 우정을 버리라고 제안한다. 그녀를 죽이면 MK 엔터로 스카우트하겠다면서. 멘토나 다름없는 차 대표와의 대립도 피할 수 없다. 그 역시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사로운 인연은 포기할 수 있는 인물이니까. 그는 업계 탑이라는 MK 엔터 위상을 지키기 위해 자기 손으로 정한 원칙을 기꺼이 뒤엎어 버린다. 복순을 지키기 위해 그녀가 작품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목격자, 인턴 영지를 죽인다. 영지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복순이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도.
액션, 킬러와 엄마의 불완전한 가교
이때 액션은 달라진 복순의 내면을 극적으로 표출하기 위한 도구라 할 수 있다. 본래 그녀에게 살인 청부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액션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오다의 목숨을 총으로 간단히 빼앗는 것처럼. 영지에게 살해를 자살로 위장하는 방법을 알려줄 때도 사무적이었다. 살인을 하나의 능력으로 보고, 그 능력에 따라 킬러의 등급을 나누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나 회사 이익을 위해 남들을 짓밟아야 할 필요도 있기 때문.
생각이 바뀌자 그녀의 액션도 변한다. 차 이사의 사주를 받아 자기 목숨을 노리는 희성과 다른 친구를 상대하는 복순의 표정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승진과 성공이라는 목표 앞에 헌신짝처럼 버려진 우정과 애정. 그 순간 복순의 얼굴에는 일전에 찾아볼 수 없던 착잡함이 깃들어 있다. 차 이사를 노려보는 그녀의 눈빛이 분노로 차 있는 것처럼. 또 차 대표와의 일전을 앞둔 그녀의 얼굴은 안타까움과 긴장감, 그리고 살의로 가득하다. 인간적으로는 가장 신뢰하는 스승이 이제 정반대 가치를 추구하는 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길복순>의 액션은 캐릭터의 감정과 서사를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또 자칫 완전히 따로 놀 수 있는 킬러 길복순과 엄마 길복순의 세계도 하나로 이으려 한다.
하지만 <길복순> 속 액션은 제 역할을 다해내지 못했다. 난잡한 액션 스타일 때문에 액션에 담긴 이야기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 술집이나 식당 장면은 매튜 본 감독의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속 펍이나 교회 시퀀스를 보는 듯하다. 싸우기 전에 다음 상황을 머릿속으로 미리 시뮬레이션하는 장면은 <셜록 홈즈>나 <킹 아서> 등을 연출한 가이 리치 감독의 스타일을 빼닮았다. <007 스카이폴>처럼 화려한 조명 사이로 실루엣만 보이는 샘 멘데스 감독의 스타일도 중간중간 엿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한 시퀀스 안에 뒤엉켜 있고, 또 몇몇 장면에서는 합을 맞춘 티가 나다 보니 액션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보통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스타일이 인상적이지 않을 정도다.
이에 더해 작위적이고 노골적인 몇몇 대사와 추임새, 희성이나 '신상사'(김성오)처럼 등장은 강렬하나 허망하게 퇴장하는 몇몇 캐릭터도 문제를 악화한다. 결국 <길복순>은 액션 영화로 보든 아니든 아쉬움이 크다. 액션 영화라면 액션이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액션 영화가 아니라면 퀄리티가 부족한 액션 때문에 응축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신선한 도전이 엿보여서 더 아쉽기도 하다. 실망스러운 작품이 공개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잦은 넷플릭스의 징크스를 충무로의 스타일리스트이자 기대주, 변성현 감독도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 셈이다.
Poor 형편없음
액션도 드라마도, 하나에만 집중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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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웹툰을 원작으로 한 개봉예정, 공개예정 작품들을 소개해드렸는데요
다양한 이야기와 연기파 배우들까지 더해지면서 엄청난 작품들이 나올것 같은 예감입니다!!
오늘 씨네픽 큐레이션 여기서 마치고 금요일날 또 알찬 영화 &OTT 추천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큐레이터 AMY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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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당신이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이라면?
어느 날 당신의 삶이 가짜처럼 느껴진다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를 들어 마른하늘에서 갑자기 조명이 떨어지거나 만화 영화처럼 폭우가 당신의 움직임을 따라서 내린다. 수십 년 전 죽는 모습을 목격한 아버지가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오고, 평범한 사람들이 돌변해서 아버지를 납치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출근길에 틀어 둔 라디오에서 당신의 현재 상황을 그대로 중계한다.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지켜보고, 거기에 맞춰 행동한다는 기분이 든다. 심지어 배우자까지도 의심스럽다. 만약에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진실과 해결책을 찾을까? 아님 상황을 모르는 척 안정된 삶을 이어가야 할까?
위에 적은 모든 예시는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가 겪은 일이다. ‘트루먼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태어날 때부터 모든 순간이 리얼리티쇼로 방영된 남자가 점차 진실을 알게 되는 상황을 다룬다. 1998년 개봉했으며, ‘죽은 시인의 사회’로 유명한 피터 위어 감독의 작품이다. 작품에 대한 호평과 흥행에 힘입어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트루먼쇼’에서 능청스러운 연기로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 ‘짐 캐리’는 1999년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한 편의 리얼리티 쇼처럼 출연진의 이름과 배우와 PD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이후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의 일상과 시청자의 모습이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쇼에서 트루먼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연기와 설정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의심스러운 사건이 이어지자 ‘트루먼’은 그가 살고 있는 헤이븐 섬을 떠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헤이븐 섬은 거대한 인공 스튜디오로 시간과 기후가 임의로 조정된다. 하늘에서 떨어진 조명은 밤하늘의 별을 대신하는 역할이었다. 헤이븐 섬은 잘 관리되어 있지만, 해와 달이 한꺼번에 떠있는 등 기묘한 공간이다.
다른 곳으로 떠나려는 ‘트루먼’의 노력은 번번이 막힌다. 약 5천대의 카메라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그가 떠날 수 없도록 PD ’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는 온갖 방법을 이용한다. 쇼에 큰 집착을 보이는 PD는 달 모양의 방송국에서 전지전능한 신처럼 ‘트루먼’을 살핀다. 자신의 사생활은 극도로 노출을 꺼리지만, 트루먼이라는 개인의 삶을 공유하는 일이 다수의 시청자에게 위안을 준다고 믿는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바다에서 보트를 타다가 겪은 사고도 PD가 ‘트루먼’을 막으려고 고의로 만든 상황이다. 그런 방식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 이어진다. 그가 비행기 표를 구매하러 방문한 여행사 벽엔 비행기 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버스가 갑자기 고장 나거나 교통체증으로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든다.
PD의 지시에 따라 ‘트루먼’에게 직접적으로 행동하는 건 배우들이다. 부모님, 가장 친한 친구, 아내, 이웃 가릴 것 없이 상황에 맞춰 연기한다. 그들은 쇼가 진짜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직업적으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7살부터 함께 한 친구 ’ 말론(노아 에머리히)’은 ‘트루먼’이 진실에서 멀어지고 의심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인물이다. 그는 ‘트루먼쇼’가 위기의 순간에 처할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맡는다. 규칙처럼 간접광고를 위해 6개 묶음 맥주를 들고 ‘트루먼’을 찾아온다. 영화에서 재밌다고 생각한 배경은 ‘말론’과 ‘트루먼’이 아지트로 사용하는 장소이다. 어두운 밤에 그들은 끊어진 다리 위에서 장난 삼아 골프를 치거나 위태롭게 다리 끝에 걸터앉는다. 거짓말로 얼룩진 그들의 관계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다리와 닮았다.
쇼에서 큰 비중을 가진 또 다른 인물은 ‘트루먼’의 아내 '메릴 버뱅크(로나 리니)’다. 그녀는 영화 속 대사와 행동으로 짐작컨대, ‘트루먼’을 사랑하기보다 쇼에 출연하며 얻게 될 명성에 관심이 있는 듯하다. 주로 트루먼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며 회피하기 일쑤이고, 광고를 처리하기 위해 맥락에 맞지 않는 엉뚱한 소리를 자주 한다. 트루먼에게 가족의 안정과 평화라는 명목으로 떠나려는 '안전한 집으로 가요' 라며 붙잡는다.
한편으로 ‘트루먼’이 세상에 대한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결혼식 사진에서 그녀는 검지와 중지를 꼬고 있다. 미국에서 손가락을 꼬는 동작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행운을 빌어주거나 현재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장면에서는 후자로 사용되었다. ‘트루먼’은 아내의 손가락을 보며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리고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들이 거짓을 말할 때, 상처는 얼마나 클까? 배신감과 타인을 향한 불신이 밀려들지 않았을까?
불행 중 다행으로, ‘트루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이 TV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쇼의 단역배우로 출연했던 ‘실비아(나타샤 맥켈혼)'는 우연히 ‘트루먼’과 마주치고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두 사람은 감시를 피해 함께 짧은 시간을 보내지만, 곧 방송 관계자에게 ‘실비아’가 붙잡혀 이별한다. 이후에도 서로를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실비아’는 트루먼쇼 반대운동을 하고 그의 자유를 응원한다.
‘트루먼’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지만, 그를 지켜보는 시청자도 영화에서 등장한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인 만큼 전 세계 곳곳에서 방영되고 나이, 국적, 성별을 불문하고 열정적인 팬도 있다. 마치 드라마를 보듯 ‘아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둥 ‘트루먼’의 삶에 한 마디씩 보태고 행동 하나하나에 함께 울고 웃는다. ‘트루먼’을 촬영하는 장면에서 감독은 숨어서 지켜보는 구도와 카메라의 검은 테두리가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사용했다. 중반부를 넘어갈수록 더 자주 등장하는데, 관객이 '트루먼쇼'의 시청자 입장이 되도록 유도한다. ‘트루먼쇼’는 인물마다 개성과 존재감이 뚜렷해서 행동이나 역할을 해석하는 즐거움이 있다.
1998년 영화 ‘트루먼쇼’이 개봉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영화 속 비현실적인 상황이 우리의 현실과 닮아서’가 아닐까? ‘트루먼’이 ‘헤이븐섬’을 떠나지 못하게 막는 모습에서 안정적인 삶을 이유로 도전을 말리는 주변 사람들이 떠오른다. 관계가 가까운 사람일수록 실패로 끝날 거라 걱정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말린다. 때론 함께한 세월을 언급하며 ‘너는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식의 말을 꺼내기도 한다.
그리고 ‘트루먼쇼’에서 충격적이라고 회자되는 장면 중 하나는 시청자가 프로그램의 결말과 동시에 무표정한 얼굴로 다른 곳은 뭐하냐고 물으며 채널을 돌리는 부분이다. 시청자를 삶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타인의 시선이라고 해석한다면, 열렬히 응원하거나 인생의 조언을 건네던 사람들도 생각보다 우리에게 무관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헤이븐 섬’을 탈출하려는 ‘트루먼’에게 PD는 리얼리티 쇼라는 진실을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바깥세상은 위험하지만, 쇼의 주인공으로 살면 안전하다고 설득한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은 유명인이 될 거라고 설탕 발린 말로 회유한다. 결국 ‘트루먼’은 거짓이 판치지만 안정적인 삶과 자유롭지만 위험한 세계라는 선택에 놓인다. 만약에 당신이 ‘트루먼’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선택 후 펼쳐질 미래는 어차피 미리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트루먼'은 자신의 상징과 같은 대사로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In case I don’t see you, Good afternoon. Good evening,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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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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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2차 송환(The 2nd Repatriation)
South Korea/2022/156min/김동원 감독 작품
북한에서 지령을 받고 남한에 파견되었다 검거되어 오랫동안 전향하지 않은 사람을 비전향 장기수라 한다. 수십 년간 감옥 생활을 한 이들 중 일부는 양국의 협의를 거쳐 북한으로 돌아갔다(1차 송환).
〈2차 송환〉의 주인공 김영식은 ‘전향 장기수’다. 즉 그는 오랜 수감 생활 끝에 북한의 사회주의 사상을 ‘버렸고’ 이후 석방되어 쭉 남한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김영식이 정말 전향한 것은 아니다. 모진 고문과 끝을 알 수 없는 수감 생활이 그를 지치게 해 전향서를 썼을 뿐이다.* 김영식이 2000년에 발표된 6‧15 남북 공동 선언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내용의 어깨띠를 매고 지하철을 돌며 선전 활동을 하고, 자신을 촬영한 감독의 이전 영화가 민족의 아픔을 다루지 않았다며 혀를 차는 모습에서도 그가 여전히 외세에 의한 민족 분열에 커다란 분노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십 년의 수감 생활과 그 이후 또 수십 년의 남한 생활. 영화는 남북한의 경계에 선 장기수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펼쳐낸다. 언젠가 북한에 돌아갔을 때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강제 전향시킨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노인, 송환을 위해 남한에서 만난 부인과 이혼 절차를 진행 중인 노인,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동시에 어느새 익숙해진 남한 생활에 마음이 복잡한 노인, 남편이 ‘계속 남아서 싸워라’라고 말할지 ‘얼른 고향으로 돌아와라’고 말할지 상상해보는 노인 등등. 한 시민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는 김영식의 주장에 혀를 찬다. ‘쓰라린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놈만 저런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장기수가 상상조차 어려운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는 점에서 이 비난은 공허하다.
2차 송환을 신청한 장기수 46명의 복역기간을 합치면 898년이다. 장기수들은 죽기 전 고향 땅을 밟아보겠다는 마지막 바람으로 이 시간을 버텼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절에도, 엄혹했던 시절에도 이들의 기다림은 늘 뒷전으로 밀렸다. 남북한의 위정자들이 늘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먼저 고민했기 때문이다.
2차 송환 운동은 20년 넘게 이어졌다. 그사이 많은 장기수가 세상을 떠났고 생존자 대부분은 90대가 되었다. 장기수 문제는 도대체 언제쯤 남북관계의 시급한 의제로 취급될 수 있을까? 영화의 내레이션이 말하듯 누군가는 장기수를 ‘빨갱이’라 부른다. 다른 누군가는 ‘국가와 민족을 운운하는 국수주의자’, ‘그저 불쌍한 노인네’라고 말한다. 하지만 감독은 장기수를 당당하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간 사람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공감한다. 나 역시 ‘민족의 아픔’과 ‘미제‧일제 척결’을 외치는 김영식보다 오랜 세월 집요함으로 자기 삶을 꾸려온 김영식이 더 좋았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장기수 2차 송환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길 바란다.
*사회주의 여성운동가 김진언의 구술사를 담은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양경인, 2022)에는 남한 당국이 비전향 장기수를 어떻게 고문했는지가 잘 나와 있다.
*이 글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 받아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기자단으로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제는 9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상영작은 온오프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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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상가들 / The Dreamer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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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방송을 보다 보면, "나작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를 풀어보면, "나만의 작은 스트리머"로 흔히, '나만 알고 싶은 음악 혹은 가게'처럼 일맥상통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유명해지면 그만큼 나에게 쏟아진 관심이 덜해지는 것을 비꼬는 의미로도 활용되기도 하는데요.
이처럼 옛날 영화를 보는 느낌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지금이야 유명한 배우들인데, 생각지도 못한 영화에 생각지도 못한 배역을 맡아 나타나니 신기할 따름이죠.
영화 <몽상가들>은 지금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는 "에바 그린"의 데뷔작입니다.
워낙 나오는 영화들마다 인상들이 짙어 뭘 해도, "에바 그린"인데 이 영화는 이를 제외하더라도 평가가 좋더군요.
그래서, 보게 된 영화 <몽상가들>은 어떤 느낌을 남겼는지? - 한 번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한창 시위로 열기가 뜨거운 1968년, 파리에 유학을 온 미국인 "매튜"는 그곳에서 쌍둥이 남매 "테오"와 "이사벨"을 만납니다.
서로의 취향이 맞았던 그들은 급속도로 친해지고, 같이 다니게 됩니다.
그리고 "매튜"는 "이사벨"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만 이상하리만큼 "이사벨"은 "테오"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데요.
이에 세 남녀의 관계에도 급속도로 이상 조짐이 생기는데...제목부터 스포일러?
1. 진짜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영화 <몽상가들>은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네마테크"라는 실존 사건을 가져온 영화입니다.
이는 즉슨, 역사적인 사건과 가상의 이야기를 덧붙인 "팩션"장르의 영화라는 것이죠.
이만해도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이겠지만, 영화 <몽상가들>로서는 이 실존하는 사건이 양날의 검일겁니다.
실존했던 사건을 가져와 관객들의 시선을 이끄는데 성공하나 문제는 결말도 이미, 예정되었기에 맥이 빠질 겁니다.
이에 영화 <몽상가들>은 해당 사건보다 캐릭터들의 관계와 이야기에 집중해 뒷이야기를 점점 궁금하게 만듭니다."팩션"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앞에서도 언급한 "팩션"은 진실을 뜻하는 "Fact"와 소설을 뜻하는 "Fiction"의 합성어입니다.
어찌 보면, 서로 상충되는 단어로 어울리지 않지만 영화 <몽상가들>은 이를 있을법한 이야기로 관객들을 설득시켜 나가는데요.
앞서 언급한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네마테크"라는 실존 사건을 크게 가져와 이에 있을법한 "매튜"와 쌍둥이 남매 "테오"와 "이사벨"이라는 캐릭터에 집약하는 것으로 말이죠.
그렇게, 시작한 <몽상가들>은 요즘 세대뿐만 아니라 앞으로 반복될 갈등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2. 반대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그동안 정치를 살펴보면 "보수"는 기성층, "진보"는 젊은 세대들이 선호하는 성향으로 생각하는데요.
이처럼 영화 <몽상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극 중 쌍둥이 남매 "테오"와 "이사벨"의 아버지는 유명한 시인으로 등장하는데,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에 침묵만을 유지하니 "테오"는 이런 아버지를 비난합니다.
왜냐면, 자신은 시위를 통해서 목소리를 표출하니 그런 아버지와는 다르다는 것이죠.
이는 "이준익"감독이 연출한 <동주>의 "몽규"와도 크게 겹칩니다.
극 중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하려는 인물이나 온건적인 아버지 세대와 갈등이 있어 이와 반대로, 강경하게 나서는데요.근데, 네가 스스로 하는 건 있니?
다시 영화 <몽상가들>로 돌아와서, "테오"와 "이사벨"의 아버지는 아내와 함께 출장을 떠나게 됩니다.
이에 그들은 집이 비어있는 동안 자식들이 쓸 돈을 전하는데, 재밌는 건 이들이 이를 넙죽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다 쓰고도 모자랄 만큼 방탕한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그렇게, 아버지를 비난했는데 정작 아버지의 능력으로 살아가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요?
영화 <몽상가들>은 이미, 제목에서부터 관객들에게 말하고자는 바가 뚜렷한 영화입니다.
누구나 방구석에서는 그럴듯한 이상을 앞세우나 정작, 현실에는 한없이 위축되는 "몽상가들"의 실체를 고백하거든요.3. 이미, 예상된 결과로 간다.
1년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 앞서 이전 대선은 사상 최초로 탄핵 정국에서 치러졌습니다.
이에 국민들은 반대되는 개념으로 투표를 했지만, 정작 받아들여진 인상은 색깔과 이념만 다른 똑같은 인상뿐입니다.
이처럼 영화 <몽상가들>은 그저, 아버지가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는 "자기중심적 사고"에 갇힌 캐릭터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를 빗댄 건지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들이 갇혀있다는 인상을 끊임없이 줍니다.
해당 주택에서 크게 활동 반경이 벗어나지 않고, 시야는 언제나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에만 고정되었고 이들이 하는 행동들도 보았던 영화를 따라 하는 것에 국한되었으니 무엇을 보여주고 말하려는지를 아실 겁니다.무조건, 반대가 옳은 것은 아니에요.
그렇기에 영화는 더 파격적으로 나갑니다.
사회적인 미양을 해치는 행위로 느껴질법한 벌칙들을 제안하고, 이를 수행하여 우월감을 느끼는 장면은 누굴 지칭한 건지는 몰라도 쿡쿡 찔리게 되는데요.
이런 가운데, 영화 <몽상가들>은 "모택동"을 꺼내듭니다.
그리고 그에게 따라오는 단어로 "문화 대혁명"이 연상될 텐데, 이 표어가 상당히 재밌습니다. - "옛 것은 모조리 숙청하라. 문화, 교육, 정치, 가족 등 모든 것을."
과거의 역사를 지우고 앞으로 찬란한 미래를 채우겠다는 야심이 엿보이나 결과는 아시다시피,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들의 역사들을 탐내는 현재의 모습으로도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영화 <몽상가들>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래를 추구하나 정작, 하고 있는 행동은 과거의 산물인 영화를 따라 하는 것이니까요.4. 각자의 판단에 따라서...
영화 <몽상가들>의 결말을 살펴보면, "테오"와 "이사벨"은 끝내 진압대에게 화염병을 던집니다.
그리고 "매튜"는 이들과 달리,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이에 "매튜"는 도망쳤고, "테오"와 "이사벨"은 자신의 의견을 실질적으로 표출함으로 대비적으로 보이나 사실은 그 반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이전부터 이들의 모습을 본 "테오"와 "이사벨"의 부모가 그들을 떠납니다.
결국, 채워질 수 없는 간극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매튜"도 "테오"와 "이사벨"에게서 그랬을 겁니다.
이에 영화 <몽상가들>은 결말에서 옳고 그름과 같은 확답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각자의 판단에 맞게 선택했을 뿐이라고 그렇게 말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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