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2024-06-12 15:08:49
영화 <퀸 엘리자베스> 리뷰
<퀸 엘리자베스>는 영국의 왕실과 국민통합을 표상하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영화다.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왕좌에 머문 엘리자베스 2세 여왕. 1952년 즉위하여 2022년 9월 8일까지 70년간 재위한 군주다. 처칠을 시작으로 총 16명의 총리와 함께 했다.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노팅 힐〉을 연출한 로저 미첼 감독이 연출했다. 미첼 감독은 로맨스 영화의 대가일 뿐만 아니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TV부문에서 최우수 단편 드라마와 최우수 미니시리즈까지 수상하여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연출력을 인정받은 감독이다.
“내 삶이 길건 짧건 내 평생을 국민들을 섬기는 데 바칠 것을 여러분 앞에서 맹세합니다.” 퀸 에리자베스가 왕세녀 시절 21세 생일을 맞이하여 연설한 내용이다. 실제로 그녀는 사망하기 이틀 전에도 신임 총리를 임명하고 접견하는 등 죽는 순간까지도 국왕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세상을 떠났다.
영화는 우리 가족이 영국에서 가진 추억들을 조각조각 떠오르게 했다. 아내와 우리 가족은 8년의 영국 생활을 하면서 영국 여왕과도 친근해졌다. 여왕의 생일 등 왕실의 공식 행사 때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 매년 성탄일 오후 BBC에서 전 국민에게 보내는 그녀의 크리스마스 메시지. 영국여왕 재위 50주년을 기념하는 골드 주빌리(Golden Jubilee) 행사. 부군인 필립공이 총장으로 있는 캠브릿지대학을 방문하여 가까이서 여왕을 볼 기회도 가졌다.
96년을 산 인생이 늘 영광스러운 일만 있을 수 있겠는가. 감독은 왕관의 무게만큼이나 그녀의 가슴을 무겁게 했을 아픈 가족사도 적절히 드러내었다. 지난 100년의 현대사에 가장 주목할 만한 삶을 살은 여왕의 생을 담아낸 가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러닝타임은 90분이다. 여왕은 2년 전 별세하였다. 그런데 여왕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에 장례식 장면이 없다. 왜일까? 그건 로저 미첼 감독이 여왕 보다 1년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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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렁하지만 유연하게
네오 소라의 <Happy End>는 제목 그대로 종국에 행복을 발견하는 영화다. 행복이 작은 불씨로 틔워진 채 영화는 막을 내리고, 관객은 아주 개운하지는 않는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소중한 불씨를 횃불로 키우기 위한 고민이 현실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모든 영화는 끝이 있지만, 인류의 삶은 (멸망하지 않는 이상) 계속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실이 되어 극장 바깥에서 다시 상영된다.
코우와 유타를 중심으로 한 다섯 명의 음악동아리원은 학교에서 유명한 사고뭉치다. 고3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듣기 위해 클럽을 드나들정도로 대담하며, 교장 선생님의 훈계에도 지지 않고 오히려 대들정도로 무모하다. 이들이 이토록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한 삶의 배경을 가졌기 때문이다. 재일한국인, 미국인, 중국계 일본인, 토종 일본인이 모인만큼, 고유한 개성이 섞여 마치 히피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존재감을 분출한다. 다양성은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지만, 의견을 모으는 데 큰 어려움이 생긴다는 단점이 있다. 코우와 유타 사이에서의 균열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이 히피클럽도 위기에 봉착한다.
클럽에 다녀온 새벽, 코우와 유타는 교장 선생님의 자동차를 세로로 세우는 기행을 저지른다. 교장 선생은 눈엣가시였던 히피클럽 무리를 불러 강하게 압박했고, 특히 재일 한국인인 코우에게 인간종의 차이를 운운하는 등 혐오 표현을 일삼으며 조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립이 계속되자, 동아리 방을 폐쇄하고 AI시스템 파놉티(Panopty)를 가동하여 카메라를 통해 학교 곳곳에서 학생들을 감시하고, 언행을 검열하도록 했다. 히피클럽원들은 동아리방이 폐쇄된 것에 분개하며 감시 시스템을 피해 클럽 앞으로 음악 장비를 옮기기 위해 의기투합한다. 코우는 힘을 보태면서도 교장의 모욕적인 언행에 큰 반항심을 느끼며 더 큰 움직임을 꾀한다.
코우의 반항심에 더 큰 불을 지핀 것은 총리의 긴급 담화문이었다. 수차례 울리는 지진 경보에 대국민 긴급사태조항을 발효하면서, 지진 때마다 불법 입국자와 범죄자들이 판을 쳤다는 기울어진 역사적 사실을 환기한다. 총리의 담화 이후로 교내 일본인과 비일본인을 분류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면서 비일본인 학생들의 자유가 위협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은 좌시하지 않고 행동한다. 교장실을 점거하고 농성하며 판옵티의 철거를 요구한다. 코우가 사회를 바꾸려는 움직임에 힘을 쏟는 동안 순수 일본인인 유타는 방황한다. 코우와 멀어진 것이 속상하면서도 사회 시스템에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비일본인 학생들의 농성이 성공하고, 교장은 강당에서 학생들에게 판옵티의 조건부 철회를 약속한다. 자동차 테러 주동자가 자수할 것. 교장의 발언을 두고 판옵티의 철회를 찬성하는 무리와 반대를 주장하는 무리가 갈라져 뒤엉킨 가운데, 유타는 본인의 혼자 저지른 소행이었음을 밝히고 퇴장한다. 이후 판옵티는 철거되고, 유타는 퇴학당한다. 코우와 유타는 졸업식을 마치고 화해하며 작은 화합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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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End>는 하이틴 주인공이 등장하는 여느 학원물처럼 성장 영화의 외피를 하고 있지만,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환기시키는 역사,사회극의 내용을 담고 있다. AI 감시 시스템인 판옵티는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이 제시한 교도소 '판옵티콘'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며, 나아가 조지 오웰의 '1984' 빅브라더를 교내에 이식한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연결지을 수 있다. 또한 총리의 왜곡된 발언은 마치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려 학살을 자행했던 역사를 되풀이하는 방식과 비슷하며, 제국주의 시대 자국민 중심 정책을 펴는 독재자들을 연상케 한다. 먼미래 이른바 지구촌 사회가 도래하여 다인종이 하나의 국가에 공존하는 시대에, 획일화를 강조하며 폭력을 일삼는 현상은 반복됐다. 그러나 이들은 행동했고 자유를 쟁취했다. 더 기쁜 것은 인류의 미래인 학생들이 변화의 주인공이었다는 점이다.
지진 경보음은 위기감을 조성하면서 전국민을 미지의 공포로 밀어넣는다. 공동의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한 데 모이게 함과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일본인과 비일본일을 구분하며 분열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 코우의 자백은 큰 의미를 가진다. 기득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순수 일본인이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내려놓고 공동선을 위한 행동을 한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판옵티 철회라는 작은 변화에 불과할 뿐이지만, 넓은 차원에서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 유타와 비일본인 코우의 화해가 이를 암시한다. 이 작은 화합으로부터 내진설계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대판 싸워도 우스운 장난으로 풀어내는 남학생들처럼, 불안하게 흔들리지만 중심만은 지키고 있는 내진설계는 전인류적 공포인 지진을 효과적으로 방어한다. 경직되지 않고 유연하게 흔들리는 이러한 태도는 다양성이 피어날 미래 사회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유타와 코우가 일구어낸 작은 불씨를 마음 속에서 보살피며 우리의 횃불로 키워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사유하고 반추해야 한다.
딱딱한 것보다 물렁한 것이 더 잘 찌끄러지지만, 충격을 잘 흡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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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참석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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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왕을 둘러싼 궁중암투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정립된 캐릭터와 세계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고뇌를 담아내는 영화는 관객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남기는 만큼이나 불친절하다. 그러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설계한 작가주의적 세계를 선호한다면 여지없이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임은 명확하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정치적 합병 이후 대영제국의 첫 번째 군주가 된 앤 여왕이 재위하던 시기는 영국사 측면에서도 혼동의 시기였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중 승기를 잡은 영국은 유럽 열강들 사이에서 자국의 입지를 더욱 공고화하기 위해 전쟁을 지속한다. 하지만 ‘공짜점심은 없다’는 말처럼, 영국은 전쟁을 지속시키는 대가로 막대한 전쟁 자금을 내놓아야 했다. 이에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한 양 당(휘그당과 토리당)간의 갈등은 심화되었다. 감독은 당대 영국의 정치사적 배경을 발판삼아 앤여왕과 사라 그리고 애비게일의 관계성을 주요 플롯으로 재구성한다.
작가주의 영화는 사회적 모순이나 정치적 이슈에 대한 공동체 문제의식보다는 감독 개인의 철학적 고뇌를 담아낸다.
"장르영화" 중에서 배상준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장대한 역사 사건 중심의 전개보다 개인과 개인 간의 구도와 사건, 인물들의 심리에 치중한 작가주의 성향이 짙은 영화이다.여왕의 강력한 조력자 ‘사라’와 사촌 ‘애비게일’의 대립
영국이 막대한 전쟁 자금을 쏟아부으면서도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집권당이던 ‘휘그당’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사라 역시 전장에서 거듭 승리를 이끌며 전쟁 영웅이 된 남편 ‘존 처칠’과 자신의 입지를 공고화하기 위해 휘그당과 뜻을 같이했다. 이빨 빠진 호랑이와 다름 없는 군주의 옆자리를 꿰찼으니 ‘여왕의 여자’가 된 사라가 두려운 게 무어 있었을까. 휘그당은 물론이고, 야당인 토리당까지 그녀의 눈치를 살폈으니 사라는 실질적 일인자와 다름없었다. 적어도 사촌 동생 애비게일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문의 번영과 안녕을 누려온 사촌 언니 사라와 달리 애비게일은 자신이 딛고 있던 기반이 무너져버린 경험을 일찍이 하게 된다. 귀족 가문 출신의 고결한 아가씨가 하녀라는 계급으로 곤두박질 치면서 맛봐야 했을 좌절, 치욕, 분노와 같은 감정들은 그녀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
집안 내력인지 둘의 성미는 상이하면서도 비슷한데, '여왕의 여자' 자리를 두고 경쟁할 만큼 영리하나 대범한 타입의 캐릭터다. 다만 사라가 저돌적이고 직관적인 타입의 ‘여장부(女丈夫)’라면, 애비게일은 전략적이며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가진 ‘괴짜’에 가깝다. 특히나 이러 괴짜스러운 모습은 애비게일을 담아내는 촬영 방식에도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장면이 ‘어안 렌즈’로 애비게일을 촬영한 장면이다. 상황 자체를 심각하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희극적인 톤으로 담아내기도 한다. 자신의 처소에 무작정 쳐들어오는 남자를 향해 “나를 겁탈할건가요?”하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애비게일을 보라. 그녀의 상대는 단순히 하녀를 요깃거리 삼으려는 인물이 아니라, 왕의 강력한 조력자 사라이다.
애비게일은 강력한 입지에 오른 사라의 대척점에 서기 위해, 무엇보다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토리당과 정치적 결탁을 맺는다. 즉 정치적 결탁은 가진 것을 지키려는 자와 찬탈하려는 자의 파워게임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앤여왕은 두 사람의 대립을 가히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일찍이 남편과 아이들을 여읜 앤은 무엇보다 사람의 온기가 필요했다. 여왕이 아닌 인간 ‘앤'으로서 정서적 결핍을 채우고자 사라를 곁에 뒀으나 국정을 돌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라와 그녀 사이에는 균열이 생긴다. 결국 이 균열을 비집고 파워게임을 승기를 잡은 건 에비게일이다.
“우린 게임의 목적이 전혀 달랐어"
사라와 앤여왕은 군신 관계이었으나 연인 관계를 바탕으로 비교적 동등한 위치에서 갈등을 겪는다. 사라는 자신이 대체될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 바탕에는 여왕이 아닌 '앤'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반면, 애비게일은 권력과 명예를 얻기 위해 여왕의 여자가 되기를 원했지, 정서적 결핍을 채우는 인간 '앤'의 여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어쩌면 앤여왕은 사라가 다른이로 대체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차를 타고 왕실을 떠나는 사라의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패자는 게임의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장막이 나눠진 세계, 여왕 ‘앤’과 인간 ‘앤’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4장 A Minor Hitch
앤여왕과 애비게일은 우연히 정원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단원들을 마주친다. 연주를 듣고 있던 앤은 갑자기 연주를 중단하라고 소리치며 황급히 자리를 떠난다. 창문 밖 빛만을 의지하며 위태롭게 걸어가는 앤의 모습을 통해, 안과 밖의 명암을 대비시켜 불안한 정서를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가장 불편해 보이는 걸음걸이와 표정으로 복도에서 우연히 하녀의 아기를 마주친 여왕은 아기를 강탈하는 것처럼 안아든다. 이는 그녀의 자식에 대한 결핍과 강한 집착, 충동적인 성향을 단번에 드러내는 가장 직관적인 방식이다.그녀의 내면은 이미 공허와 상실감 그 사이에서 점차 자기파괴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다.
17명의 자식을 잃은 앤여왕의 상실감은 실상 그 누구도 채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여왕은 그 결핍을 사람이 아닌 ‘토끼’로 채우고자 했다. 상실을 완전히 치유하지 못하더라도 공허함을 채울 수는 있으니 말이다. 극 초반 애비게일이 앤여왕과 가까워지고자 던졌던 화두도 여왕이 기르던 토끼였다. 여왕의 침실에 토끼들을 풀어놓고 애비게일과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인간 ‘앤’이 가장 편안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오만을 거듭하던 애비게일은 결국 여왕의 분노를 산다.
사라의 자리를 차지한 애비게일은 귀족의 명예를 되찾고 왕실의 무법자가 된다. 애초 권력을 쥔 자가 품어야 할 잭임이나 겸손은 없었다. 그저 왕의 권한을 쥐고 흔든다는 오만한 착각을 할 뿐이다. 허나, 이러한 태도는 사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여왕은 크게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하지만 결국 여왕의 화를 불러 일으킨 결정적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바로 애비게일이 토끼를 학대하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였다. 작고 여린 토끼의 몸을 구둣발로 짓밟는 행위.
그 순간 애비게일이 취한 오만은 단순히 외면할 수준이 아닌, 여왕의 인내를 넘어선 폭력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여왕의 분노는 철저히 같은 방식으로 그녀를 응징하는 기폭제가 된다.
여왕은 애비게일에게 하녀 시절처럼 무릎을 꿇고 자신의 다리를 문지르라고 명령한다. 여왕의 표정은 애비게일을 향한 분노로 일그러지고,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채며 강한 괘씸함을 드러낸다. 마치 '네가 내 토끼들을 괴롭히면, 너 역시 무사하지 못할 거야'라는 섬뜩한 경고와도 같다. 감독은 관객에게 다시 한 번 이 세계의 권력의 구조를 각인시키려는 듯, 카메라 앵글과 편집 기법을 활용해 극적인 구도를 더한다. 크로스 디졸브 기법은 '애비게일 - 토끼 - 앤' 사이의 얽히고설킨 짓밟고 짓밟히는 관계성을 부각시키고,익스트림 로우 앵글은 앤 여왕에게 위압감과 권력을 부여하는 도구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촬영과 편집 그리고 음울한 음악의 조화가 더해져, 엔딩을 위한 완벽한 삼박자를 이룬다.
‘앤’은 장막이 나누어진 세계에서 때로는 절대적인 여왕처럼 때로는 나약한 인간처럼 묘사되었다.
인간의 다면성을 상업 필름에서 온전히 담아내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영화는 각 장막을 통해 주제를 환기시키며, 그 순간마다 앤의 특정한 기질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영리한 방식을 취했다. 작가주의적 구성과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독특한 ‘영상 필체’가 만나 세밀하고도 깊이 있는 세계를 구축해 낸 것이다.
작가주의 세계를 돋보이게 만드는 밀도있는 연기
영화의 주축 배우인 올리비아 콜맨, 엠마 스톤, 레이첼 바이스의 열연은 감독만의 독특한 세계 안으로 관객들을 단숨에 몰입시킨다. 특히나 올리비아 콜맨은 신체적 심리적 붕괴를 겪고 100kg의 거구가 된 ‘앤’여왕으로 열연하기 위해 15kg 증량했다고 한다. 외형적 동화뿐 아니라 다리를 절거나, 인물이 겪는 내면적 혼란, 쇠약 해져가는 얼굴을 표현할 때 올리비아 콜맨의 진가가 드러난다. 실제로 앤 여왕은 사라가 추방된 후 3년 만에 작고했으며, 사후에는 뇌졸중이 그 원인으로 꼽혔다. 영화 후반부, '애비게일'과 '앤'이 침실에서 대화하는 장면에서 앤의 얼굴은 구안와사가 온 것 처럼 불편해 보이는데, 이는 뇌졸중의 대표적인 예고 증상으로 여겨진다.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올리비아 콜맨의 노련한 연기력 덕분에 관객은 끝까지 몰입감을 가져갈 수 있었고 결국 이듬해 오스카, 골든 글로브, 아카데미, 베니스 시상식을 휩쓸며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큰 결실을 맺는다.
흥미로운 점은, 앤 여왕을 연기하며 극찬받았던 올리비아 콜맨이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크라운> 시즌 3, 4에서 다시 한 번 여왕을 연기했다는 사실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단단하고 침착하며 인내심 깊은 인물로, 성향적인 면에서 앤 여왕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다. 베테랑 배우인 올리비아 콜맨의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경험하고 싶다면,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와 <더 크라운>을 모두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작가주의적 성향에 따른 호불호와 고증적 한계
감독부터 배우까지 모든 합이 조화로운 작품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역사적 고증방식에 있어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실제로 앤여왕이 불안정한 정서와 히스테릭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는 하나, 토리당과 휘그당 사이에서 정치적 협상을 잘 이끌어간 성군으로서의 면모도 있었다. 양 당의 갈등을 해소하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신중함과 중립적 태도를 일관했다는 역사 기록들이 그녀의 노력을 뒷받침한다. 영화에서도 자신의 오랜 조력자였던 사라를 내쫓고 의회에서 군주의 목소리를 내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많은 시퀀스를 할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역사극은 언제나 논픽션과 픽션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한다. 어떤 부분을 각색하고 다듬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포커스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적 군주인 ‘앤’을 기대하고 보면, 영화 속 앤 여왕은 다소 납작하게 묘사된 캐릭터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핵심 플롯이 "위태롭고 나약한 군주를 놓고 펼쳐지는 두 여성의 강력한 파워게임"인 만큼, 앤 여왕은 절대적 왕정의 자리에 있음에도 끊임없이 인간적인 측면이 타자화되는 캐릭터로 설계되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세계 안에서 세 인물 간의 관계성을 잘 구축하기 위해 캐릭터의 각색은 필연이었던 셈이다.
작가주의 영화는 그 특성상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점에서 도전적인 성격을 지닌다. 대중성은 일반적으로 이상적이고 명확한 엔딩, 기승전결 구조, 그리고 직관적인 메시지를 선호하는 반면, 작가주의 영화는 전형적인 장르적 구도에서 벗어나 복잡하고 다층적인 메타포를 사용해 관객의 해석을 요구한다. 이러한 특성은 대중에게 높은 장벽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상업적 성공을 담보하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작업을 완수한 감독이 바로 요르고스 란티모스다. 예술성과 상업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그의 작품은 이제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작가주의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는 필자는 앞으로 더욱 거장이 되어 갈 감독의 행보에 뜨거운 지지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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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밤> 심층 분석 2
첫번째 리뷰에서는 <봄밤>이 기석과 지호의 캐릭터 대비를 통하여 정인-지호 관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다루었다.
이번 리뷰는 봄밤의 타임라인을 따라가며 정인-지호-기석의 감정선 변화와 그를 담은 연출에 집중한다.
<봄밤>의 이야기의 배경은 놀랍도록 한정적이다. 약국, 도서관, 은행, 차 안, 집, 같은 산책로, 같은 카페와 식당.현실 속 사랑은 결국 일상을 기반으로 피어나기에 사랑에 빠진 우리의 삶은 정작 겉에서 보기에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런 점을 표방하듯 <봄밤>은 화려한 로케이션이나 특별한 곳이 아닌 반복되는 일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다. 특별할 것 없는 장소들에서 피어나는 정인과 지호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시청자들은 숨을 죽인 채로 가만히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며, 마치 사랑에 빠져 들어가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보듬듯.
첫만남
정인과 숙취에 시달리던 날, 정인과 지호는 지호의 약국에서 약사와 (지갑을 가져오지 않은) 손님으로 처음 만난다.
지호는 정인을 처음 본 순간부터 정인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정인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소 융통성이 없는 정인이 평소엔 절대 하지 않을 행동 - "내 전화번호 줄까요?"- 을 한다. 지호는 대신 본인의 전화번호를 불러주고, 정인은 불러준 전화번호를 단번에 외우고는 놀라워한다.
후에 지호와 정인은 정인의 친구 아파트에서 다시금 우연히 마주치고, 바로 전 지호의 고백을 거절한 정인은 지호가 본인을 따라왔다 오해한다. 지호에게 역정을 낸 정인은 얼마 후 본인의 실수를 깨닫고 지호에게 연락을 한다.
연락을 받은 지호는 아파트 발코니를 통해 아파트를 떠나는 정인을 바라본다.
친구할래요?
그날 밤 정인과 지호는 밤의 약국에서 만나 서로의 속얘기를 털어놓는다. 친구하자는 정인의 제안을 지호는 거절하고, 정인은 떠난다.
지호는 정인이 두고 간 녹차잔 곁에서 한참을 머무른다.
다음날 정인이 기석을 따라 나간 기석의 농구동호회 경기에서 지호와 정인은 다시 만난다.
<봄밤>에서 '초반부의 설렘'을 담당하는 OST <Is It You>가 흐르며 봄밤의 첫화는 마무리된다.
정인-지호의 세번의 우연한 만남에서 연출은 집요하게 인물들의 시선을 좇는다.
첫번째 만남에서는 약국 바깥의 정인에게 관심을 갖는 지호의 시선, 두번째 만남에서는 아파트 발코니에서 정인을 바라보는 지호의 POV와 짧게나마 지호와 눈을 마주치는 정인의 시선. 세번째 만남에서는 불편해하면서도 신경이 온통 지호에게 쏠려있는 정인의 POV. 그에 담긴 정인과 스쳐가듯 눈을 마주치는 지호. <봄밤>은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추상적인 끌림을 시각화하여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정인의 시선 끝 지호]
기석의 농구 동호회 회식에까지 참여하게 된 정인과 재인. 정인은 화장실을 가러 잠시 바깥으로 나온 새에 지호와 아들의 통화를 들어버린다. 의도치 않게 지호의 사생활을 엿들어 버린 정인이지만 묘하게 싫지가 않다.
지호는 정인의 친구하자는 제안에 응하고,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된다.
혼란과 밀어냄
허울좋은 '친구' 라는 단어로 희미해진 선에 지호와 정인은 혼란스러워한다. 결국 지호와 정인은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통화를 하며 그런 자신들의 마음을 고백한다. 감정적 arc에서 상당히 중요한 장면이자 3화의 하이라이트를, 카메라는 롱샷과 미디움 롱샷의 리버스를 교차해 가며 쌓아올린다. 둘의 얼굴 표정을 강조하는 타이트한 샷 대신 선택한 와이드한 샷구성은 장면이 과도하게 신파적으로 흐르는 것을 방지하고,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는 두 주인공의 상태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서로를 향한 끌림을 참고 있는 둘의 속마음은, 표정보다는 그들의 경직된 자세에서 더욱 여실히 새어나오기 때문이다. 정인과 지호 사이에 위치한 횡단보도라는 물리적 제약 또한 와이드한 샷에서 큰 존재감을 발휘하며, 둘 사이에 여러 현실적인 제약이 있음을 시각화한다.
카메라는 지호가 돌아간 후 술집으로 돌아온 정인을 시퀀스에서 유일하게 미디움 클로즈업으로 비춘다. 내내 감정을 절제하다 지호가 사라진 뒤에야 아픈 마음을 드러내는 정인의 씁쓸한 표정이 강조되며, 시청자들은 정인의 혼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드라마 초반부 정인과 지호의 사이에는 언제나 물리적인 벽이 존재한다. 유리창, 횡단보도, 도서관의 책장. 둘 사이의 제약을 시각화하는 물체들]
다가감
처음에는 정인이 지호를 밀어냈다면, 둘의 혼란이 가중된 이후부터는 지호가 정인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정인은 결국 애틋함을 이기지 못한 채 지호의 집에 찾아가 모진 말을 쏟아내는 지호의 입을 막고 울음을 터뜨린다. 놀란 지호는 함께 저녁을 먹자 청하고, 둘은 솔직한 대화를 나눈다.
둘이 자주 만나는 카페에서 지호는 정인에게 힘들어도 본인을 밀어내라 말한다. "정인 씨가 너무 아까워서" 본인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말하는 지호를 정인이 바라보는 순간, 카페에서 배경 소음으로 흐르던 <We Could Still Be Happy>는 non-diagetic world 로 넘어와 이야기 바깥에서 흐르기 시작한다. 정인-기석과의 관계에서 매번 아깝다는 평가를 듣는 것은 기석이었지 한번도 정인이었던 적이 없다. 본인이 '을' 로 평가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정인이 본인의 존재를 가치있게 여기는 지호에게 다시금 세게 동요하는 순간을, <봄밤> 은 배우들 간의 시선과 음악으로 전달한다.
지호에게 다가서는 정인을 겨우내 독한 말로 밀어낸 지호지만, 정인 집 앞의 지호를 발견한 재인의 강요에 얼떨결에 정인의 집을 방문한다. 멀어지려던 둘의 거리는 지호가 정인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침범함으로서 다시 가까워진다. 직장이나 카페같이 공적인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던 둘의 교류가 집이라는 온전히 사적인 공간으로 확장된 것이다. 재인, 영재, 지호와 정인 네 명의 인물들의 대화 중간중간 편집된 정인과 지호의 dirty(Dirty shot: 피사체 인물 이외의 다른 인물의 신체부위를 걸고 찍는 샷) 미디움 클로즈업 샷은 그들만의 비밀스런 기류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관계의 긴장감을 표면화한다. 지호와 더 가까워지기로 결심한 정인은, 같은 날 밤 지호의 앞에서 기석에게 이별을 고한다.
[화면에 걸친 서로의 존재]/출처 넷플릭스
[기석에게 이별을 고하는 정인 --> OVS 로 정인의 신경이 향하는 곳이 지호임을 표명하는 동시에 지호에게 가기로 한 정인의 굳은 결심을 드러낸다]
지호-정인의 관계가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을 얻는 순간
일련의 사건을 지나 정인과 지호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정인 또한 기석과의 관계를 정리하려 온 힘을 다한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가슴 한구석에는 여전한 찜찜함이 남는다. 그는 누군가의 연애가 끝나고 그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가는 것을 보는 일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떳떳하지만은 않게 시작한 정인과 지호의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정인-지호의 관계 진전 이후 <봄밤>이 넘어야 할 산은 바로 시청자들의 그 '찝찝함'을 없애는 것이다. '너네의 사랑은 앞에 버리고 온 사랑과 뭐가 그리 다른데?' 라는 시청자들의 의문을 해결하는 것. <봄밤>은 16화 드라마에서 가장 결정적인 회차인 9화(8화 혹은 9화는 16화 드라마의 꽃으로 불린다)의 전체를 이 질문에 답하는 데에 할애한다.
9화 (32부작 기준 17, 18화) 에서 지호와 정인은 같은 날 각자의 부모님께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지호에게 정인은 자신을 '그냥 유지호'로 보아준 유일한 사람이며, 정인에게 지호는 자신이 꿈꿔오던 '따뜻한' 사람이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사랑에 빠진 이유가 설명되지 않아 둘 관계의 정당성이 흐릿했다면, 지호와 정인이 타인에게 상대를 사랑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시퀀스를 통해 둘의 관계성은 비로소 윤곽을 드러낸다.
둘의 관계성을 확립한 후 바로 이루어지는 데이트 시퀀스는 그래서 다른 데이트 시퀀스와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세상의 시선 혹은 주변인들에게 위축된 채 '을'로 살아왔던 두 사람은 꿈꿔왔던 사람인 서로의 앞에 설때 비로소 편안하고 당당한 본연의 자아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데이트를 끝내고 나오던 정인과 지호는 둘의 데이트 소식을 듣고 달려온 기석과 마주친다. 삼자대면 엔딩에는 항상 대립 상황을 대변하던 <No Direction> 이 아닌 <We Could Still Be Happy>가 엔딩곡으로 쓰인다. 드라마를 닫는 샷 또한 세명을 모두 잡은 마스터가 아닌 정인과 지호의 2 shot - LS 이다. 이는 정인-지호/기석의 대립을 강조하는 대신 정인과 지호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엔딩으로, 데이트 시퀀스 앞에서 윤곽을 그린 그들의 관계성을 선명히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9화의 연출을 통해 정인-지호의 관계의 필연/정당성은 비로소 시청자들에게 가닿고, 엔딩 시퀀스에서 We Could Still Be Happy 가 흘러나오는 순간, 시청자들은 그들의 행복을 응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깊어지는 지호와 정인의 관계, 옅어지는 기석의 확신
지호와 정인의 관계성이 확립되고 둘 사이의 확신이 짙어지며 카메라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인물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12화 (32부작 기준 23,24화)에서 정인이 지호와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을 슬쩍 내비칠 때, 카메라는 통화하는 두 사람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이처럼 회차를 거듭하고 둘의 관계가 깊어질 수록 대화 씬 리버스샷에서 카메라의 구도는 점점 타이트해진다. 이러한 카메라의 개입은 14화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정인과 지호가 "죽을 때까지 상대방을 기억해주기"라는 약속을 할 때, 카메라는 dolly-in으로 통화하는 정인의 모습을 담는다. 이는 드라마에서 거의 유일하게 카메라가 존재감을 피력하는 순간으로, 점점 농도가 짙어지는 정인의 사랑을 시각화한다. 회차를 거듭할 수록 짙어지는 화면의 분홍색도 같은 역할을 한다.
믿음을 쌓아가는 지호-정인과 달리 회차를 거듭할 수록 기석은 이성을 잃어간다. 기석이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도 정인에게 막무가내로 프러포즈를 한 후부터 기석-정인-지호가 대립하는 씬에서 카메라는 기석의 샷은 약간의 high angle로, 정인-지호의 샷은 약간의 low angle로 촬영한다. 서로에 대한 확신을 얻은 지호-정인은 힘을 얻고, 점점과 이성과 확신을 잃어가는 기석이 열세에 놓였음을 카메라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이는 <봄밤>이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서로에 대한 확신과 사랑, 그리고 그를 통해 얻은 믿음이 주는 힘' 의 테마를 영상적으로 뒷받침한다.
수미상관
<14화>
지호와 정인이 처음 서로의 약점을 내보이던 밤의 약국. 후반부 공식적인 연인이 된 그들은 비슷한 시간대, 같은 곳에서 또다시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지호는 정인에게 처음으로 본인의 아픈 과거를 털어놓고, 정인 또한 지호의 말에 귀기울인다.
또, 초반부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건너오지 말라' 며 애닳아하던 둘은 이제, 횡단보도를 건너 망설임없이 서로의 품에 안긴다.
<마지막화>
정인은 지호의 약국에 찾아가 장난스레 '술 깨는 약을 달라' 말한다. 바깥의 요란한 공사 소리가 둘의 대화를 방해하지만, 이번에는 지호와 정인 둘다 장난스레 웃음짓는다. 공사 소리 때문에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해 애닳아 하던 과거와 대비되는 순간이다.
겨울 막바지의 눈에서 시작한 둘의 마음은, 벚꽃이 만개한 봄밤을 지나 어느 여름밤에 도달한다. 달라진 계절과 달라진 지호-정인의 관계가 같은 배경에서 수미상관으로 끝을 맺을 때 시청자들은 비로소 체감한다. 또 한편의 눈부신 이야기가 끝이 났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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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히 당신과 나를 ‘우리’라 부를 수 있다면
어릴 적, W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보았다. 국제 사회의 사건 사고를 다루는 프로그램의 에피소드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시에라리온의 여성 할례 이야기였다. 성차별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던 나이였지만, 불합리함에 분노했던 기억은 선명하다. 그러나 고백하고 싶은 게 있다.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타자화에 의한 안도감이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히잡 반대 시위를 촉발점으로 체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져 가는 이란 사회의 풍경을 담아내는 작품이다. 영화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한 가족의 모습이다. 국가를 위해 평생을 일한 이만은 수사 판사로 승진하며, 부와 명예에 한층 가까워진다. 그러나 독재 사회에의 고위직이란 체제에 복무하는 일로 조금이라도 체제에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은 제거하는 일을 수반한다. 이로 인해 내적 갈등을 겪는 이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족의 안전을 위해 받은 총을 집안에서 분실하며 이만의 가족은 차차 무너진다. 사라진 총에 가족들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이만. 그의 ‘거짓말쟁이’ 찾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사실 이 가족의 분열은 언제든 벌어질 일이었다. 그저 체제에 복무하는 이만의 공모자인 어머니 나즈메에 의해 유예된 일일 뿐이었다. 이 작품에서 이만은 구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지며, 두 딸 레즈반과 사나는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매일 같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시위를 두 세대가 바라보는 방식은 무척이나 다르다. 이만은 TV라는 레거시 미디어의 문법에 따라 반체제 시위를 폭동으로 바라본다. SNS를 통해 시위를 접하는 레즈반과 사나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현재의 시위를 어떤 혁명이라고 바라본다. 어느 날, TV를 틀어놓고 가족들은 식사를 한다. 시민들의 행동을 폭동에 불과하다고 규정하는 목소리에, 레즈반은 반기를 들고 가족 내의 균열은 가시화되기 시작한다.
레즈반과 사나가 경험하는 시위의 모습은 스마트폰을 경유하여 전달된다. 시위대가 현실 속에 투쟁하며 보여주는 진실이 담긴 이미지들. 카메라의 기능뿐만 아니라, 동료 시민들에게 이미지의 확산을 가능케하는 스마트폰의 순기능이 여기에 있다. 이 작품에서 카메라가 긍정적인 기능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만은 가족을 데리고 고향으로 떠나, ‘거짓말쟁이’ 찾기를 시작한다. 특이한 점은 이만이 격식을 갖춘 수사를 행한다는 것이다. 캠코더를 놓고 증언을 구하고 증거를 찾아 남기려는 이만. 그 또한 이미지의 힘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진실을 기록한다고 착각한 채 기록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성찰은 놓친다. 누가 어떤 시선을 가지고 카메라를 쥐었는가에 따라 이야기는 극적으로 달라진다. 이런 상황은 언론의 모순을 드러낸다. 발화의 주체에 따라 소거되고 강조되는 이야기가 시민들의 시위를 폭동으로 바라보게 만들지 않았는가.
가족들에 대한 불신이 쌓이며 이만은 결국 가족들을 가두기에 이른다. 이때 상황을 뒤집는 것은 막내 사나이다. 총을 훔친 범인이기도 한 그녀는 레즈반과 나즈메를 구한다. 그리고 우스운 숨바꼭질이 이어진다. 고향의 유적지로 보이는 공간에서 이만은 가족들을 찾아 헤맨다. 긴장감이 극에 달해야 할 지점에 나는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구멍이 가득한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숨바꼭질. 이는 결국 현재의 이란이 가진 감시 체제는 허술하기 그지없고, 개인을 억압하기만 하는 사회는 언젠가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총을 든 사나와 이만은 대치 상황에 이른다. 이만에게서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과 체제의 모순에 내적 갈등을 하던 모습은 지워진 지 오래, 그는 사나를 도발한다. 이때 사나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 그녀는 불안감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과감하게 이만을 역사의 무덤으로 보내기를 선택한다. 영화는 이렇게 구세대와의 단절을 명확히 선언하며 끝을 맺는다.
영화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한국 영화계에 정치성은 소거된 지 오래다. 소수의 독립영화를 제외한 영화들은 오락성에 매몰되어 있다. 한편, 억압적이기 그지없는 이란이라는 나라에서는 용기 있게 체제에 반기를 드는 영화가 등장했다. 감독은 용기가 없어서 결국 망명을 선택했다 말하지만, 이런 작품을 만든 것 자체가 용기라고 생각한다.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언정, 사람은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언젠가 세상도 바뀌지 않을까. 사회와 유리된 영화는 결국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여전히 부족하기 그지없는 나는 해외의 상황을 보는 순간마다 여전히 타자화의 욕망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고 싶고 바꾸고 싶고 연대하고 싶은 마음만은 이전보다 강해졌다. 나와 당신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내가 당신을 우리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연대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
* 본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으로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작품을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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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내 죽음을 권유하는가!
‘당신의 죽음을 국가가 지원합니다’ 누구 마음대로! 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내 죽음에 관여할 수 있는가.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이 말도 안되는 소리가 눈 앞에 나타날 수 있다. 어느 호러 영화보다 더 사실적인 공포를 담은 <플랜 75>는 국가가 75세가 넘은 국민에게 죽음을 권유한다는 설정을 통해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고 존엄사 문제까지 확장한다. 단순히 현대판 고려장 이야기로 볼 수 없는 극 중 상황은 허구라 하기엔 너무나 현실적이다.
초고령 사회에 놓인 근 미래의 일본. 어느 날 한 노인요양원에서 충격적인 총격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노인들이 나라 재정을 축내고 그 피해를 청년들이 받는다는 메시지를 남긴 채 자살한다. 이후 노인 타깃 범죄사건이 잇따르고, 정부는 대안으로 75세 이상의 노인에게 안락사를 지원한다는 내용의 ‘플랜 75’를 내놓는다. 78세지만 그 누구보다 깔끔하고 열심히 호텔 룸메이드로 일하던 미치(바이쇼 치에코)는 갑작스럽게 명예퇴직을 하고, 일이 없어진 상황에서 플랜 75를 신청할지 고민한다.
| 초고령 사회 속 이들의 민낯
<플랜 75>는 근미래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초고령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일본의 민낯을 반영한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일본 전체 인구의 10%가 80세 이상, 29%가 65세 이상 고령자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생산연령인구(15~64세)인데, 현재는 2명이 1명의 고령자를 부양하지만 50년 후에는 1.3명이 1명의 고령자를 부양, 이에 따른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계속되는 경제 침체로 인해 생산연령인구의 중심이 되는 젊은 세대들은 경제 활동을 등한시하고, 자신들보다 부를 축적한 노인들과의 세대 간 격차를 더 넓히고 있다. 일본보다 덜하지만, 이 문제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플랜 75>를 만들게 된 계기는 2016년 20대 남성이 장애인 시설에 침입, 19명을 살해하고 26명에게 중상을 입힌 ‘가나가와현 장애인 시설 집단 살인 사건’이다. 이 남성은 해당 시설 근무자였으며, ‘장애인은 차라리 죽는 편이 가족에게 편하다’라는 혐오발언을 일삼았다. 더 심한 건 ‘중증장애인들이 활동이 힘들면 보호자 동의를 얻어 안락사 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 게 목표’라는 내용의 자필 편지를 썼다는 것.
감독은 이 사건을 접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런 차별적 발언과 생각을 했다는 것과 자신이 더 나은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위대한(?) 일을 저질렀다는 범죄자의 태도에 의구심을 풀었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범죄자의 말처럼 사회가 운영된다면 과연 어떤 세상이 펼쳐질 것인가를 그린다. 장애인에서 노인으로 변경되었지만,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 궤를 같이 하는데, 이는 일본 사회 내에서 장애인 혐오만큼이나 노인 혐오도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 경제력 없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플랜 75>의 분위기는 건조하다. 인간의 생과 사를 다루는데 있어서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는 장면이 즐비할 것처럼 보이지만, 감독은 되려 감정에 휘둘려 이 문제가 흐릿하게 보이지 않도록 애쓴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의 영화의 초반부는 제도 시행 후, 고령층의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미치를 중심으로 이 정책을 따르는 이들과 그렇지 않겠다는 이들로 나뉜다. 전자를 택한 이들은 10만엔(한화 약 90만원)으로 여행을 떠난 후 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며, 더 이상 젊은 세대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등의 이유를 말한다. 후자는 반대로 자식들의 아이를 봐주는 등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전자를 택한 경우의 대다수는 혼자 사는 독거 노인들이다. 심한 경우, 경제 활동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이들이 정책을 울며 겨자 먹기로 택하는 이유는 힘든 삶을 버틸 힘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복지와 보상을 받아야 할 이들이지만, 정부는 사회적 안전망을 견고히 엮는 대신, 이들을 죽음으로 인도한다. 안타까운 건 주인공 미치나 정부의 지침에 따르는 시청 공무원 히로무(이소무라 하야토) 삼촌의 경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을 하며 구성원으로서 그 책임을 다한 노동자들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삼촌은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정기적으로 헌혈을 했다.) 사회가 힘들 때 직격탄을 맞는 노동자들에게 남은 건 죽음을 장려하는 정책뿐이라니 한 숨이 절로 나온다.
미치는 계속 중립을 지키지만, 그 또한 호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놓이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집도 빼야 할 상황. 가족이 없어 도움을 요청할 곳 없는 독거 노인인 그는 결국 단돈 10만엔을 받고 죽음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마음에 걸리는 건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자신의 결단이 아닌 타인이나 정부의 보이지 않는 압박에 의해 행해졌다는 부분. 존엄이 상실된 존엄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
<플랜 75>는 미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고령층의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는다. 공무원 히로무, 미치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개인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콜센터 직원 요코(카와이 유미), 안락사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스테파니 아리안) 등 직간접적으로 엮인 다양한 세대(또는 이주노동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는 이들의 시선을 통해 고령화 문제를 다각화하고, 이 사안이 결코 노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강조한다.
정책 실현을 위해 친근한 미소로 일을 하는 히로무는 자기 가족이 이 상황에 놓이자 딜레마에 쌓이고, 미치와 매일 15분 동안 통화를 하다 정이 든 요코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다. 필리핀 고향에 있는 아픈 딸을 위해 요양원에서 시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이 곳으로 온 마리아도 안락사 된 이들의 물건을 정리하며 생과 사에 대한 아이러니함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특히 감독은 마리아를 통해 가장하기 힘들고 껄끄러운 일을 이주노동자가 행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노인을 포함해 사회적 약자에게 이 사회는 과연 무엇을 도와주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영화의 분위기에 맞게 배우들의 연기는 과하지 않으면서도 오랜 잔상을 남긴다. 미치 역의 바이쇼 치에코는 극 중 이 상황을 받아들이면서도 후반부 죽음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듯 ‘그럼에도 난 살아가리라!’라는 결기의 눈빛을 보여준다. 낮고 명료한 보이스 또한 역할의 매력을 더한다. (바이쇼 치에코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 역의 목소리 출연을 한 바 있다.) 히로무 역의 이소무라 하야토는 고려장 이야기의 아들처럼 뒤늦게 후회하는 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요코 역에 카와이 유미는 다소 분량이 적음에도 눈빛 하나로 확실한 인장을 찍는다. 영화적 약속을 어긴 채 카메라를 정확히 응시하며 관객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은 절대 잊을 수 없다.
<플랜 75>의 이야기는 일본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 진입 초읽기에 들어간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멀지 않아 다른 나라에서도 벌어질 이야기다. 감독은 영화 속 상황이 앞으로 직면할 문제이고, 심히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각종 수치와 효율성만으로 사회 문제는 해결할 수 없고, 도리어 악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인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인들의 진정한 사요나라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존재하는 것일까?
사진 제공: 찬란
평점: 3.5 / 5.0
한줄평: 현대판 고려장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현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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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사람이 해내는 마법같은 이야기
디즈니스러움을 잔뜩 뽑냈던 영화 <엔칸토 : 마법의 세계>. 초반 집중도는 높지 않은 편이지만 결국 마지막 부분에서 큰 울림을 주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엔칸토 : 마법의 세계> 시놉시스
전 세대 관객들에게 따뜻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할 마법 같은 영화. 디즈니의 매직이 또 한 번 시작된다!
콜롬비아의 깊은 산 속, 놀라운 마법과 활기찬 매력이 넘치는 세계 엔칸토. 그 곳에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마드리갈 패밀리가 살고 있다. 엔칸토의 마법 덕분에 초인적 힘, 치유하는 힘 등 저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마드리갈 패밀리. 하지만 미라벨은 가족 중 유일하게 아무런 능력이 없다.
어느 날, 엔칸토를 둘러싼 마법의 힘이 위험에 처하자 미라벨은 유일하게 평범한 자신이 특별한 이 가족의 마지막 희망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미라벨은 과연 기적을 만들 수 있을까?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엔칸토 : 마법의 세계>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고통
영화 <엔칸토 : 마법의 세계> 초반과 중반에서는 마법의 힘을 가진 가족과 그렇지 않은 미라벨 사이에서 반복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마법의 힘을 가진 다른 가족 구성우너들이 부러워하면서 그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걱정이 없을 것이라고 미라벨은 생각한다. 자신만의 마법이 없다는 생각에 우울해하기도 하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가족들을 도우면서 마드리갈 패밀리로서 존재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마법의 힘을 가진 다른 가족 구성원들 역시 고민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힘으로 마을 사람들을 언제나 도와줘야 했고, 그 완벽함을 유지하기 위해 굉장한 부담감을 가진 채 살아오고 있음을 미라벨은 조금씩 알아간다. 이렇듯 영화 <엔칸토 : 마법의 세계>에서는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쉽게 판단하고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그저 꽃밭을 구르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둘째언니 이사벨라 역시 언제나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부정적이고 우울한 모습은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 적이 없어 안으로만 곪아가고 있었고, 힘이 장사인 첫째 언니는 자신의 힘이 사라지면 더 이상 자신은 쓸모가 없을 것이라는 부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분명히 부러워할만한 특기와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도 나름의 고통과 부담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잘 표현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정말 원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 남편을 잃고 마법의 능력을 받아 엔칸토라는 마을을 만든 할머니. 그리고 그녀이 후손은 마법의 능력을 받아 마을 사람들을 도우면서 함께 살아가고 ᅟᅵᆻ었다. 3개에 걸쳐서 마법 능력을 지켜온 할머니는 언젠가부터 이 마법이 어디서 왔고, 왜 자신에게 주어졌느지를 잊은 채 이 마법 능력이 사라지게 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온전히 이 능력을 사용하는 데에만 집중을 한다. 그래서 마법능력을 부여받지 못한 미라벨을 모든 사건과 사고의 주범이라고 생각하며 유달리 엄하게 대한다. 또한 자신의 아들 브루노에 대해서도 안 좋은 미래만 본다며 아들을 내치기에 이른다.
그렇게 점차 목적과 방향을 잃은 마법에 대한 갈망은 점점 무너져 결국 마법의 힘이 다 사라지고 만다. 그제서야 할머니는 마법의 힘이 그저 수단일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많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 앞에 주어진 수단과 방법에만 집중을 하느라 왜 이 수단이 필요했는지에 대한 목적과 방향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 모습을 영화 <엔칸토 : 마법의 세계>에서는 할머니늬 마법에 대한 갈망을 통해 잘 드러내고 있었다.
긍정의 힘을 믿어라
마법의 힘을 잃고 무너진 마드리갈 패밀리는 망연자실한다. 무너진 집과 자신의 명성을 생각하고, 집 나간(?) 미라벨을 찾아 보금자리를 돌볼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런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항상 그들의 도움만을 받았던 마을사람들이었다. 마드리갈 패밀리에게 마을사람들은 자신이 지켜줘야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마법의 힘은 없지만 자신들은 일손이 많다며 마드리갈 패밀 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등장할 때의 그 감동은 아직까지도 여운이 짙다. 보잘 것 없고, 도움을 받기만 했다고 생각했던 보통 사람들의 힘을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힘을 통해 마드리갈 패밀리는 다시금 보금자리를 만들고, 마법의 힘에 비해 완성도는 낮을지 몰라도 그 정성과 행복의 중요성을 마드리갈 패밀리도 알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문고리를 달면서 마드리갈 패밀리의 마법적인 능력도 복원이 된다. 굉장히 디즈니스럽고 현실에서는 일어날 리 없는 내용이었지만 이런 보통사람들의 힘과 유대를 표현하고 있어서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영화 <엔칸토 : 마법의 세계>는 간단한 스토리라인이었지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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