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06-16 20:17:19
마지막에 관한 마지막
영화 <퀸 엘리자베스> 리뷰
INTRODUCTION.
“우리는 여왕을 사랑하며 자랐습니다” -비틀즈 폴 매카트니-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왕좌에 머무른 퀸 엘리자베스의 다양한 얼굴을 마주하다.
POINT.
✔️ 시대의 아이콘,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풋티지를 실컷 볼 수 있는 영화
✔️ 영국 왕실에 관심 혹은 지식이 있다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영화
✔️ 여왕의 재위 기간이 워낙 길다 보니, 윈스턴 처칠부터 폴 매카트니, 이건희, 마릴린 먼로까지 다양한 얼굴이 등장합니다.
✔️ 2021년 사망한 로저 미첼 감독의 마지막 영화

시대의 아이콘, 아주 독특하게 자리한
이 영화는 눈을 감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진으로 시작한다. 늘 눈 뜬 모습만 보았던, 아주 오랫동안 삶 전체가 공적 영역에 드러나 있던 사람의 눈 감은 모습은 낯설다. 영화는 이내 엘리자베스 여왕을 닮은 풋티지 영상을 성실하게 수집해 보여준다. 편집점이 짤막하게 구성되어 있고 음악을 현란하게 써서, 여러 편의 뮤직비디오를 연달아 보고 있는 기분마저 든다. 일대기적으로 구성하기보다는,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싶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마치 원석을 다양한 면으로 커팅한 것처럼, 여왕 생애의 구석구석을 비추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주 독특한 인물이다. 물론 여왕이라는 직함 자체가 그렇지만, '군주'라는 단어 자체의 아우라가 많이 사라진 시대에, 아이콘으로 기능하면서도 역할을 톡톡히 해내야 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드레스를 입고 손을 흔들며 웃어 보이는 역할도 하고, 군복을 입고 비행기 옆에 서 있거나 총을 쏘는 모습으로도 남았다. 너무 앳되어 보이는 비틀즈에게 훈장을 건넸던 역할도, 윈스턴 처칠부터 블레어, 보리스 존슨까지 다양한 총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그의 역할이었다.

동시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운운하던 이전의 시대에 작별을 고한 후, 영연방(Commonwealth)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다양한 국가를 순방하는 것 또한 그의 역할이었다. 구한말에 식민지로 전락하기 전까지의 역사에서 항상 일본보다 선진 문화 국가였던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이지만, 많은 나라들이 여러 실리적인 혹은 상징적인 이유로 영연방이라는 국제기구에 소속을 남겨두었다.
보고 있노라면 그가 '여'왕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데, 부드럽고 우아한 미소를 짓는 그 얼굴을 보면서 다양한 국가들이 어떤 이유로든 영연방이라는 국제기구에 소속을 두기로 한 데에는 그의 아우라와 영향력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겠다 싶은 것이다. 식민지배라는 공격적이고 비인간적인 제도 이후에, 남성의 얼굴을 하고 오는 지도자보다는 분명 좋은 선택지였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또한 그의 선택은 아니었다. 에드워드 8세가 사랑을 위해 왕위를 포기하면서 동생이 갑작스럽게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고, 동생 즉 조지 6세 또한 "너무 일찍"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엘리자베스 또한 마땅히 준비할 만한 기간을 갖지 못한 채로 어느 날 여왕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최초의 대관식을 포함하여, 여왕의 생애가 선형적이지 않은 형태로 영화 속에서 흩날린다. 영국 왕실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느낄 수 있다. 71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를. 그리고 그 내내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이콘으로서 얼마나 건재했는지를.

시대의 아이콘, 이제는 끝난 시간의
그러나 여왕의 시대는 끝났다. 영연방을 순회하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은 분명 우아하고 그의 정치적 리더십을 느낄 수 있지만, 식민지였던 땅의 사람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 춤을 추며 여왕을 맞이하는 장면 위로 "down on my knees(무릎을 꿇고)"라는 곡이 흘러나오는 것은, 식민지 출신으로서 영 편치 않다. 독일 폭격에 대해, 독일을 방문했던 여왕에게 계란이 던져지는 모습 또한 풋티지에서 빼먹지 않았다.
전쟁에 선은 없으니까. 히틀러가 절대악이었다면 문제는 간단했겠지만, 그렇지 않았으니까. 입헌 군주제의 여왕으로서 엘리자베스가 자기 역량을 아무리 발휘하고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한다 한들, 전쟁의 시기를 보낸 입장에서 그도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의 뛰어난 역량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시대는 이제 달라졌다. 그런 의도가 담긴 걸까. 이 영화에는 여왕에 대한 경의와 인정이 아닌 마음들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종종 있었다. 대관식 장면 위로 흐르는 "hero", 심지어 데이비드 보위 원곡 버전도 아닌 것. 여왕이 걷는 장면과 뒤섞여 등장하는 비너스 상들. 뼈 있는 농담을 의도했겠으나 실없이 느껴지는 선택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가십으로 소비되어 더욱 안타까운 그의 자식 농사 이야기도 펼쳐진다. 다이애나에 대해서는 짧게 짚고 넘어가는 정도이지만, 찰스 3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엘리자베스 2세가 수행한 아이콘으로서의 역할을 그에게 기대하는 사람도 없었겠지만, 역시나 기대할 수 없음이 확인된다. 그럴수록 엘리자베스 2세의 역량이 빛나기는 했구나 싶다.
영화 <스펜서>까지 굳이 끌어오지 않더라도, 엘리자베스 2세의 공적 인생에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으로 수렴되는 일련의 상황들은 분명 치명적이었다. 늘 이 부분만 잘라 다이애나 혹은 찰스, 심지어 카밀라에 더 주목하여 이야기되던 것을 엘리자베스의 공적 인생을 쭉 연결한 지점에서 보는 건 독특한 경험이었다.

마지막에 관한 마지막
늘 정해진 원칙에 따라야 하는 엄숙한 왕실의 모습이었지만, 엘리자베스 여왕 이후의 시대로 점차 친근한 모습도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 또한 시대의 요청에 응한 것이었다. 경마 결과를 이야기하며 해사하게 웃는 모습, <피터팬>의 저자인 제임스 매튜 배리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을 회상하는 모습을 보며 여왕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었고, 긴 세월을 산 사람이었음을 동시에 느낀다.
역량이 뛰어난 시대의 아이콘인 동시에 한 인간. 이제 그 시대는 갔고, 인간도 떠났다. 찰스 3세는 개인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들로 엘리자베스 2세의 반만큼도 사랑받기 어려워 보이지만, 설령 그가 아주 매력적으로 자기 역할을 수행했다 한들 시대가 이미 가버렸으니 엘리자베스 2세 같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미 가버린 시간의 빈 자리를, 이미 우리 곁을 떠난 감독의 손길로, 짧고 급한 호흡으로 뒤척여 보는 것은, 마지막에 관한 마지막이라는 관점에서, 꽤나 씁쓸한 경험이었다. 지금보다 수십 년 후에 더 유의미해질 기록이 아닐까.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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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자신만의 블루스를 춘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포스터
우리들의 블루스 (2022)
편성 : tvN, 20부작 완결 │ 장르 : 한국, 드라마
연출 : 김규태, 김양희, 이정묵 │극본 : 노희경
출연 : 이병헌(동석), 이정은(은희), 김우빈(정준), 한지민(영옥), 고두심(춘희), 김혜자(옥동) 외
등급 : 15세 이상세 사람 이상이 추천하면 그건 봐야지
요즘 나는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드라마에 입덕하는 일이 잦다. 그중 하나가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였다. 이정은, 이병헌, 한지민을 비롯해 고두심과 김혜자 선생님까지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드라마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아, 배경이 푸른 섬 제주라는 것도. 내심 속으로는 ‘그 출연진을 가지고 재미없으면 말이 되나?’ 싶은 생각이 있었다. 어쨌거나 이 드라마를 본 주변 사람들이 그리도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하니 궁금해서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주변에 세 사람 이상이 추천하면 재밌다’는 나의 법칙이 이번에도 통했다. 인물별로 나누어 에피소드를 진행한 점이 특히 독특하고 좋았다. 그리하여 이 작품에 대한 리뷰도 인상 깊었던 인물을 추려 인물별로 진행해보려 한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스틸컷
한수와 은희 : 다시 잘 살아볼 기회를 주어 고마워
멀대 같이 크고 잘생긴 한수. 서울 사는 한수. 차승원이 연기한 ‘한수’는 제주 사람이 보기엔 그런 존재다. 학창 시절부터 때깔이 달라 결국 서울에 가더니 은행 지점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제주로 내려왔다. 평생을 제주에서 벗어나지 않은 토박이 동창들은 그런 한수가 빛 좋은 개살구라는 걸 모른다. 골프 유학을 떠난 딸을 뒷바라지하느라 한수의 재정상태는 거의 파산 직전이고, 그런 이유로 지쳐있는 아내와도 썩 사이가 좋지 않아 보인다. 그때 눈앞에 ‘은희’가 나타난다. 학생 땐 그저 자신을 좋아하는 귀여운 여학생쯤으로 여겼던 은희는, 현재 자산만 10억을 지닌 알부자다.
멀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었으나 빚만 늘고 있는 한수에게, 생선 대가리를 자르며 많은 것을 일군 은희는 참으로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직업의 귀천은 무엇이고 잘 산다는 것은 어떤 걸까. 보이기 위한 삶과 진짜로 실속 있는 삶은 어떻게 다른 걸까.., 나도 보는 내내 생각했다. 조여 오는 궁핍한 상황에 은희에게 돈을 빌리려던 한수는, 은희가 카카오톡 기프티콘 쏘듯 보낸 2억을 결국 다시 돌려보낸다. 은희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때문도 있었지만, 어쩌면 정말로 ‘잘’ 살아보려는 의지였을 수도 있다.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니라, 정말로 만족스럽고 실속 있는 삶이 무엇인지 은희를 보고 배운 덕이다. 한수는 골프 유학을 접고 돌아온 딸과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그때 그 가족은 그제야 처음으로 행복해 보였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스틸컷
인권과 호식 : 절친에서 앙숙으로 그리고 다시 절친으로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인권과 호식’을 꼽겠다. <범죄도시>에서 감초 같은 연기를 보인 배우 ‘박지환’과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응급실 선생님으로 나왔던 배우 ‘최영준’이 각각 인권과 호식을 연기했다. 이들의 사연인 즉, 학창 시절부터 죽고 못 사는 친구지간이었으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철천지 원수 같은 사이가 되었는데, 서로 얼굴만 봐도 으르렁대던 그들에게 찾아온 또 하나의 복병은 바로 자식들이다. 인권의 아들 ‘현’과 호식의 딸 ‘영주’가 서로 좋아해 고등학생 신분으로 임신을 하게 된 것.
아이를 지우고 서울대를 가겠다던 영주는 갈등 끝에 아이를 낳기로 하고, 산모와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현은 학업을 포기하고 중국집 배달부터 귤 따기까지 온갖 허드렛일을 하게 된다. 순대를 팔아 아들을 공부시키는 맛에 살던 인권의 마음은 무너지고, 마찬가지로 딸을 서울대에 보내 의사를 만들려던 호식도 망연자실한다.
그러나 별 것도 아닌 일을 계기로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던 인권과 호식은, 두 아이들을 매개로 하여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원래의 친구 사이로 돌아가는데..., 과연 그 과정 하나하나가 진국이고 눈물 버튼이다. 드문드문 현실적인 나의 뇌는 ‘과연 영주와 현은 아이를 낳아 끝까지 잘 살았을까?’ 하는 걱정을 지울 수 없었지만, 이내 인권과 호식을 보며 안심이 됐다. 엄마의 부재를 메꾸는 아버지의 사랑은 위대했고, 먼지를 털어낸 오래된 우정은 더 위대했으니.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스틸컷
정준과 영옥 : 어설픈 동정이나 위로 말고 정직함으로
한지민과 김우빈이 열연한 ‘정준’과 ‘영옥’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영옥은 육지에서 온 여자다. 서로 모든 걸 터놓고 지내는 제주 사람들과 달리, 좀처럼 자기 얘기를 꺼내지 않고 촐랑거리만 하는 영옥은, 같이 일하는 해녀들에게 눈엣가시다. 하지만 영옥이 그렇게 가벼운 것은 사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수단이었는데.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장애가 있는 쌍둥이 언니를 부양해야 했던 터라, 살아오면서 사람들로 인해 켜켜이 상처가 쌓여온 것이다. 많은 남자들이 달아났고, 고아나 장애라는 조건에 섣부른 동정이나 무례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녀는 차라리 말하지 않기와 무겁지 않음을 택했을 뿐이다. 영옥에게 호감을 느껴 다가온 정준 또한 영옥은 그런 이유로 밀어낸다. 어차피 너도 똑같고 날 떠나갈 테니, 상처받기 전에 내가 먼저 자르겠다는 심보.
하지만 연애도 통계학이고 경우의 수다. 열에 아홉이 떠나갔대도 묵직한 놈 한 놈쯤은 나타날 수 있는 법. 영옥에게는 그게 정준이 아니었을까. 가시 돋친 영옥이 “(장애 있는 우리 언니 보고) 많이 놀랐나 봐?”라고 물으면 정준은 “미안해”가 아니라, “나도 장애 있는 사람을 처음 보는 거라 당황할 수 있잖아. 천천히 적응하고 친해질게요”하는 식이다. 선 넘은 동정도, 무례함도 없이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를 이해하려는 정직함 만이 있다. 말없이 생선살을 발라 영옥의 밥 위에 올려주던 정준의 어머니도 그랬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그런 거지 싶다. 투박한 날 것이더라도 과장 없이 오로지 이해하려는 그 마음을 ‘정직하게’ 보여줄 때, 사람의 마음은 열리는 게 아닐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포스터
제주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바다 같은 마음
왜 배경이 제주여야 했을까 하고 처음에 생각했다. 외계어 같은 사투리도 잘 못 알아듣겠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쉬이 이해하기 힘든 ‘오지랖’ 심한 정서도 너무 강한 탓에, 처음에는 거북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제주여야 했음을 머잖아 깨달았다.
‘선아(신민아)’는 우울증에 걸린 자신을 떠난 차가운 남편이 아닌, 만물상 하는 촌스런 제주 남자 ‘동석(이병헌)’의 오지랖에 치유를 하게 됐고, 남이 흉이라도 볼까 가면을 쓰고 다니던 영옥도 제주 남자인 정준을 통해 사람에 대한 신뢰를 배웠다. 언제든 두 팔 벌려 안아줄 것 같은 제주 할망 ‘옥동(김혜자)’과 ‘춘희(고두심)’는 모든 이들의 엄마였다. 경쟁이나 물질만능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그곳 제주에는, 촌스럽지만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할 줄 아는 선한 마음들이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행복하게 화해하며 끝나는 다소 진부한 결말이었음에도 이 이야기가 와닿는 건, 까끌해진 마음을 보듬는 따스한 인류애 때문일테다. 제주에서, 오지랖을 당하고 싶어진다.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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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표 없는 끝이라도
1994년. 중학교 2학년이었던 은희에게 한문학원 영지 선생님이 묻는다. "뭘 좋아해요?" 은희는 주춤거리며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다.2019년, 은희 나이의 두 배도 넘은 나도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에게.
내 나이는 은희 나이의 두 배보다 큰 숫자가 되었다. 아직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영화와 책, 정도로 성글게 말해도 좋지만, 어떤 영화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콕 발견할 때마다 희열을 느끼니까. 올해는 작정하고 그런 해로 보내겠다 다짐했다. 풍성한 텍스트의 세계를 바지런히 산책한 2019년, 영화 딱 한 작품만 꼽으라면 나는 <벌새>를 고르겠다.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별스러울 것도 없겠지만.
<벌새>는 은희라는 아이의 삶을 촘촘하게 담아냈다. SNS가 발달한 요즘은 좀 다르겠지만, 20세기 말의 보통 중학생이 사는 세상은 그렇게 넓지 않았다. 대치동에서 떡집을 하시는 부모님, "공부 못해서 강북까지 버스 타고 학교 다니는" 언니, 외고-서울대 코스를 밟으리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오빠, 학원에서 같이 킥킥거리는 친구, 서툴고 어색한 애정 표현을 주고받는 남자친구. 조금씩 변주하면 수백 명을 비슷하게 찍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은희는 그렇게 살고 있다.
언제나 거시적인 통계는 이런 식으로 우리를 속인다. 은희는 하나뿐이다. 수백 명은 고사하고 다섯 명뿐인 가족 중에서도, 아니 친구나 남자친구와의 일 대 일 관계에서조차 소홀하게 치부되는 때가 많지만 은희는 사실 하나뿐이다. 내가 여기 있다고, 나도 여기 있다고, 벌새 날갯짓처럼 은희는 계속해서 외친다. 바라보는 시선으로, 내리깐 시선으로, 꾹 다문 입술로, 참아낸 한숨으로, 그런 것들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열네 살의 삶에도 중요한 일은 쉴 새 없이 일어난다. 친구 지숙, 남자친구, 후배 유리, 오빠, 언니, 아빠, 엄마, 선생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그 모든 상황 대부분이 은희를 그냥 지나칠 때, 은희의 앞에 따뜻한 우롱차를 한 잔 내어주고 은희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한문 선생님 영지가 있다.
은은한 미소를 지어주는 사람. 누구도 묻지 않는 질문을 은희에게 건네는 사람, 누구도 위로용으로는 부르지 않을 법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 반듯한 얼굴을 하고 일상을 사는 어른들에게도 자기 자신이 싫어지는 순간이 있음을 숨기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한 기분이 듦을 인정하고 손가락을 움직임으로써 그 상태를 벗어나는 법을 아는 사람.
그런 영지는 은희의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다. "미성년"의 "어린" "여자"를 둘러싼 세상은 일상 구석구석까지 폭력이 스며 있어, 영지 같은 존재는 흔치 않다. 어쩌면 여기에 '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과도해 보일지 모르겠다. <벌새>는 분명 <박화영>이나 <파수꾼>이 아니지만, 세상 모든 단어가 그렇듯 폭력이라는 말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촘촘하게 들어있다. 하물며 90년대, 하고픈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이들이 지금보다 많던 시절이었다.'날라리 색출'을 하겠다며 '날라리' 친구 이름을 써 내게 시키고 불도저 같은 구호를 외치게 하는 학교 선생님의 태도에서도, 선명한 외도의 흔적을 숨기지 못한 주제에 당당하게 밥상머리 훈계를 늘어놓는 아버지의 태도에서도, 그 뒤에서 괴롭게 머리를 쥐뜯는 것밖에 못하면서 동생에게는 폭력을 수시로 쏟아내는 오빠의 태도에서도, 언니 수희에게 무자비하게 쏟아지던 비난에서도... 폭력은 보인다. 일방적으로 비틀리고 상처 받는 사람이 분명 그곳에 있었다.
폭력은 기묘해서 저절로 흐른다. 각자를 죄고 있는 억압은 각자만 쥐고 흔드는 게 아니라 약자에게까지 흘러간다. 이야기를 비극으로 만드는, 겉으로 보이는 폭력뿐이 아니다. 일상 구석구석에 선연하게 녹아 있다. 하얀 커튼 휘날리는 부엌이며, 평범한 갈색 가구가 놓여 있는 거실, 화분이 있는 베란다... 복도식 아파트 1012호 구석구석에. 그건 마치 소파 밑의 유리 파편처럼 어딘가에 숨어 있다.
90년대를 섬세하게 담아낸 이 영화의 공간 배경은 정겨울 정도다. 금방이라도 행주가 마르는 것이 눈에 보일 듯한 부엌, 의자를 뺄 때 어떤 소리가 날지 알 것만 같은 은희의 방, 눈에 익은 교복... (나는 2000년대에 중학교를 다녔지만 은희와 똑같은 교복을 입었다. 그때 보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교복은 커서 보니 더 이상했다.) 그 평범한 공간마다 그토록 여상하게 폭력성은 묻어 있었다.이 폭력성이 단순히 은희 오빠가 은희를 때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심한 듯한 엄마의 표정조차 은희를 할퀸다. 그런데 은희의 그런 마음을 아무도 알아주지 못한다. 폭력은 핏빛이 아니라 투명한 색이다. 그것도 물풀처럼 끈적하게 묻어나는 투명함이다. 이 잔잔한 일상 속의 폭력을 피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메타메시지로 전해지는 폭력이 훨씬 더 깊고 진하게 멀리 간다는 것도.
지진을 예감하는 작은 새처럼 예민하게 피부로 그걸 감지하던 사람들. 선명했지만 너무나 공공연해서 아직 언어로 정의되지도 않았던 폭력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던 작은 벌새 같았던 이들. 그들은 맞설 수 없는 대신 그렇게 서로를 챙겼다. 아무도 자신을 중히 여겨주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같기도 한 너를, 너 같기도 한 나를.그 시절의 그 감정은 소설 <항구의 사랑>에도 나오듯 집단적이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관찰하고 기이하게 여겼음에도, 대부분이 그 마음을 소위 말하는 '퀴어'로 분류하지 않는다. 뉴스에서도 연구 논문에서도 '이반'이라는 한시적 용어로 담았고, 주변 어른들의 말로 통역하면 "다 한때야."일 것이다.
90년대 여중생 혹은 여고생들 사이에서 산발적으로 그러나 전국적으로 일어났다는 그러한 양상. 연구하는 이들은 아이돌-팬픽-이반이라는 '현상'들을 일직선으로 긋는다. 이 일직선 안에 사랑이라고 이름 붙는 감정이 있다면, 그 사랑은 섬이 아니었을까. 일상 속 폭력의 안전지대. 실은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을 줌으로써 서로를 철저히 이해하는 이들의 도피성. 그래서인지 이 사랑은 자아 의탁 정도가 유달리 높아 보인다.
사랑하는 대상에 나를 투사하는 마음은 어떤 사랑에서나 빠질 수 없겠지만, 어쩌면 이런 마음이야말로 벌새가 돌아갈 집이었는지 모른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House of Hummingbird, 벌새의 집이다.) 실제 벌새의 둥지는 아주 작고, 포식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거미줄의 점성을 이용해 이끼와 잎으로 뒤덮는다고 한다.
변영주 감독의 강연집에서 읽은 말이 생각났다. 20대 때 그가 꽂혔던 말이 "여성성은 모든 약한 것들과의 연대"라고. 읽을 땐 '좋은데?' 하고 슥 지나간 말인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말을 내 식대로 소화했다. 세밀하게 흔들리는 감정들을 무시하지 않고 눈여겨보고, 위로하기 위해 차 한 잔과 작은 음식들을 기꺼이 내어주고, 격려의 말을 건네는 것. 그렇게 서로 배려하고 챙기고 다독이며 함께하는 것. 변영주 감독이 꽂혔다는 말을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런 의미에서 벌새는 철저히 여성 서사다. 은희가 (유리와 지숙 또한 마찬가지로) 서투르게 그런 세상을 찾으며 조금씩 성장할 때, 이미 어른이 된 영지가 너그럽게 차를 내어주는 아름다운 성장의 서사.
아름다운 서사에도 예외는 없어서, 삶에는 죽음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그러나 호의적이지 않은 것들 사이로 호의적인 것들만이 흐르는 죽음을 역행한다. 연어가 옆구리 찢어지도록 강을 거스르듯. 그렇게 세상을 거스를 수 있다면, 묵묵히 바른 그런 사람 하나 곁에 있다면 나 무서울 것이 없겠다.
그러나 알고 있다. 그런 이들도 그저 시간의 강물에 몸을 내맡긴 또 한 마리 물고기와 같다는 걸. 영지와 은희에게 일어난 일은, 특수한 일인 동시에 사실 삶을 풍경으로 매일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차마 마침표 찍지 못한 끝이 어디선가 숭덩 나타나곤 한다는 걸.
우리가 살결을 맞대고 마음을 마주볼 수 있는 시간이 영구히 허락될 수는 없다는 걸. 그러니 우리가 기대봄직한 건 그저 친절한 타인이 되어, 팔딱이며 물방울을 폭죽처럼 튀기는 것뿐이라는 걸. 삶의 한 순간을 들여, 그 순간을 서로에게 축제가 되게 할 뿐이라는 걸. 순간에 거하면서도 그 순간을 영원에 가 닿게 하는 방법은 오직 누군가의 마음에 아로새겨지는 것뿐이라는 걸.
은희는 친절한 타인을 만나면서 죽음을 거슬러보았다. 맞고 있지만 않았다. 맞서 싸웠다. 혹을 떼냈다. 병원에서 새하얀 햇살 아래 친절한 아주머니들이 예쁘다 안쓰럽다 말하며 놓아주는 반찬을 먹었다. 끝내 마지막에 감자전을 허겁지겁 씹어먹는 은희를 예리한 눈으로 들여다보는 엄마가 있었다. 딸에게 무슨 일인가 일어났음을 감지하는 엄마의 눈. 실은 마찬가지로 한 마리 벌새였던 엄마의 눈.
그러니 은희는 무사할 것이다. 무사히 자라 어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과거의 자신을 떠오르게 하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에게 차를 가만 놓아줄지 모른다. 철근이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끊어진 어느 갑작스러웠던 날, 마침표 없이 끝나버린 어떤 이의 문장을 떠올릴지 모른다. 언젠가 제 인생도 빛이 날까요, 묻던 그의 날갯짓에선 이미 빛이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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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란 마음속 울림을 이해하는 것
코다 (CODA, 2021)
개봉일 : 2021.08.31 (한국 기준)
감독 : 션 헤이더
출연 : 에밀리아 존스, 퍼디아 월시-필로, 트로이 코처, 다니엘 듀런트, 말리 매트린, 에우헤니오 데르베스
사랑이란 마음속 울림을 이해하는 것
에릭 라티고 감독의 2014년작 <미라클 벨리에>의 리메이크작 <코다>
<코다>는 코다 루비와 그의 가족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과정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그려낸다. Coda는 청각장애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비 청각장애 아이를 말하며 루비는 가족들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코다다.
<코다>라는 영화를 기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싱 스트리트>에서 첫사랑과 꿈에 빠진 풋풋한 소년의 모습을 보여줬던 퍼디아 월시 필로 배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싱 스트리트>이후로 음악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보이며 한동안 스크린에서 만날 수 없었던 그를 다시 한번 만나게 되다니. 그것도 새로운 음악영화로! 이 소식을 듣자마자 심장이 얼마나 쿵쾅거렸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대만큼의 존재감은 아니었지만.. 그의 새로운 노래를 짧게라도 들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가족들을 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인 루비는 어업을 하는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새벽마다 고기를 잡고 경매장을 들락날락하며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 일을 마치고 등교한 학교에선 가족들의 청각 장애를 주제로 한 놀림과 따돌림을 받지만 루비는 가족들에게 불평 한 번 하지 않는다. 10대 때 가질만한 꿈과 목표를 내려놓고 대부분의 시간을 말없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루비의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루비는 수어를 사용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수어를 학습하고 수어를 통해 소통해왔다. 가족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루비에게 가장 편한 표현법은 자연스레 수어가 됐다. “노래 부를 때 느낌에 대해 설명해 봐”라는 미스터V의 질문에 루비는 입보다 손을 먼저 움직인다.
말이 없어 가장 조용하면서도 소음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라온 루비는 학교라는 큰 사회에 부딪히기 전까진 말하는 방법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매일, 매시간 함께하는 가족들과 수어로 대화를 하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루비와 가족들에게 수어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루비의 가족들을 둘러싼 사람들은 그들의 수어를 쉽게 이해해 주지 않았고, 가족들은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수 없잖아.”라고 체념하며 세상에서 점점 소외된다.
꿈 같은 건 딱히 없고 그저 아빠의 어업을 이어받지 않을까 생각하며 가족의 틀안에만 갇혀있던 루비는 합창단을 시작하고, 마일스와 미스터 V를 만나면서 조금씩 세상으로 나온다. 가족들과 세상을 이어주던 유일한 통역사로서 가족들의 말을 전하는 것 외에 나의 이야기를 마음껏 펼쳐내지 못하고 담아두기만 했던 루비가 무대 위에 오르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마음껏 펼쳐 보이는 순간이 꽤나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루비는 크게 노래를 불러도 아무도 들어주지 못하는 세상에서 더 큰 세상으로 나왔고 가족들은 더 이상 루비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는 방법을 알아간다.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세상의 뒤편으로 숨을 필요는 없다. 입으로 말하는 언어도 손으로 말하는 언어도 모두 예쁘고 각자의 가치를 갖고 있는 소중한 언어다. 중요한 건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는지 아닌지가 아닌 그 안에 담긴 울림과 마음이라는 걸 <코다>는 말하고 있다.
코다 시놉시스
음악의 마법에 빠질 시간!
가장 조용한 세상에서 시작된 여름의 노래!
24/7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하는 코다 '루비'는 짝사랑하는 '마일스'를 따라간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기쁨과 숨겨진 재능을 알게 된다.
합창단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일스와의 듀엣 콘서트와 버클리 음대 오디션의 기회까지 얻지만 자신 없이는 어려움을 겪게 될 가족과 노래를 향한 꿈 사이에서 루비는 망설이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루비는 음악을 듣고 루비의 가족들은 음악의 울림을 느낀다. 루비는 고기를 잡을 때마다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위로한다. 루비의 아빠 프랭크는 정확한 음을 듣진 못하지만 트럭을 통해 전해지는 진동을 좋아한다. 강한 진동만을 느낄 수 있는 루비의 가족들은 루비가 어떤 음을 가진 노래를 부르는지, 어떤 가사를 읊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있는 루비의 마음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
루비는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가족들은 루비를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루비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며 자신의 이야기와 꿈을 저편으로 미뤄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목소리에 담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여러 개인데 들어줄 사람도, 그럴 여유도 없었던 루비의 좁은 세상에 그의 재능을 알아본 미스터 V와 마일스가 등장하고 루비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된다.
“너는 할 말이 있니?”
미스터 v는 루비에게 묻는다. 루비는 노래를 부를 때 어떤 느낌인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묻는 미스터 v에게 말 대신 수어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한다. 미스터 v는 루비의 목소리와 수어에 담긴 마음을 읽고 루비를 돕기로 한다. 루비는 미스터v의 가르침을 받으며 가족들을 위해 꾹꾹 눌러왔던 말들을 노래에 담아낸다. 그리고 여느 10대처럼 첫사랑을 하고, 그 순간의 두근거림을 마음껏 느낀다. 꿈을 갖고 사랑을 하고. 가족들을 대신한 목소리가 아닌 내 마음속에 담긴 울림을 세상에 뱉어내는 루비의 모습이 이제야 여느 10대처럼 보인다.
“우리의 공동체는 따로 있어.”
가족들은 농인들은 농인들 만의 세계가 있다며 한계를 규정하고 벗어나지 못한다. 프랭크와 재키는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루비에게 의지하고, 사람들의 입모양을 관찰하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려 노력하는 레오를 아이 취급할 뿐이다.
가족들에게 루비는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 창구이기에 프랭크와 재키는 루비에게 많은 기대를 건다. 대학 대신 이제 막 풀리기 시작한 가족 사업을 위해 희생해 주기를. 어쩌면 그들은 루비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왔을지도 모르겠다. 루비도 그것이 자신이 가족들을 위해 해야 할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에겐 각자의 삶과 꿈이 존재하기에 이젠 새로운 세계로의 도약과 성장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루비는 마일스와의 첫 듀엣 무대에서 온 마음을 바친 무대를 선보이고 가족들은 무대를 지켜본다. 그날 밤 프랭크는 루비의 목에 손을 대고 루비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울림을 느낀다. 루비의 목소리를, 음의 높낮이를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프랭크는 루비가 어떤 마음을 담아 노래를 하고 있는 지 온전하게 느끼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온 마음을 바치는 심정으로 노래하라"던 미스터 V의 가르침은 루비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모든 일을 가족들 대신, 가족들과 함께 이뤄온 루비는 이제 가족들 없이도 다른 이들 앞에 설 수 있게 됐고, 수어와 목소리 모두에 마음을 담는 방법을 깨우치게 된다. 대학 오디션 무대에서 루비는 가족들과 심사위원들 앞에서 수어를 하며 노래를 부른다. 듣지 못하는 가족들도 노래에 담긴 자신의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린 무력하지 않아
레오는 루비의 가족들 중 가장 진취적인 인물이다. 그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주눅 들지 않았고 사람들과 어울리려 노력했으며 가족들이 루비에게 의지하기보단 루비의 꿈을 응원해 주길 바란다. 자신을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취급하는 부모님에게 불만이 있어도 묵묵히 가족들의 곁을 지킨 그는 자신이 무력하지 않다고 믿는다. 레오는 수어를 사용한다 해서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고, 다른 사람들이 수어를 배워 우리와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엔 레오의 말처럼 몇 개의 수어를 배워 가족들과 소통하는 거티와 조합인들의 모습이 나온다. 이들은 서로의 표현 방법을 존중하고 배워가며 비로소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가족과 타인을 향한 사랑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버스조차 혼자 타지 못하게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마일스와 코다로서 가족들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앞에 나서야 했던 루비. 두 사람은 사뭇 다른 가정에서 자랐다. 마일스는 끈끈한 유대감을 가진 루비 가족을 부러워했고 그로 인해 해프닝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루비는 마일스의 마음을 오해하고 그와 거리를 두지만 마일스는 루비 가족에 대한 부러움과 자신의 결핍을 드러내며 루비에게 다시 다가간다. 마일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루비는 마일스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루비와 가족들도 그렇다. 매일같이 배 위에 울려 퍼졌던 루비의 노래를 들어본 적 없는 가족들은 루비의 꿈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차후 루비의 노래가 주는 울림을 느끼게 된 가족들은 루비의 마음을 이해하고 응원하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겉모습과 표현하는 방법에 집중하기보단 마음속에 담긴 울림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거나,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과는 마음을 나누기 힘들 것이란 하찮은 편견 따위는 저 멀리로 집어던지고 그들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울림과 감정에 집중해 보자. 들리지 않아도 진하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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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적인 영화를 묻거든 길복순을 보게 하라
감각적인 영화를 묻거든 길복순을 보게 하라
영화 리뷰 <길복순>감독] 변성현
출연] 전도연, 설경구, 김시아
시놉시스] 청부살인이 본업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이벤트 회사인 MK ENT. 소속 킬러 길복순은 작품은 반드시 완수해 내는 성공률 100%의 킬러이자, 10대 딸을 둔 엄마다. 업계에서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에이스지만, 딸 재영과의 관계는 서툴기만 한 싱글맘인 그는 자신과 딸 사이의 벽을 허물기 위해 퇴사까지 결심한다. MK ENT. 대표 차민규의 재계약 제안의 답을 미룬 채, 마지막 작품에 들어간 복순은 임무에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된 후, 회사가 허가한 일은 반드시 시도해야 한다는 규칙을 어기게 된다. 그 소식을 들은 MK ENT.는 물론, 모든 킬러들의 타겟이 되고야 마는데… 죽거나 죽이거나, 피할 수 없는 대결이 시작된다.
#스포일러 주의#스타일리쉬 그 잡채
영화 길복순을 보다보면 스토리가 정말 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 시퀀스 자체가 굉장히 감각적이다. 여타 다른 액션 영화에서는 보지 못했던 촬영 기법과 편집 기법들이 등장해서 눈이 즐거웠던 작품이었다. 복순이 딸 재영이 담배 피는 것을 알게 되자 이를 시뮬레이션 돌려보면서 어떻게 하면 마음의 문을 닫은 딸과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을지 상상한다. 이 과정에서 시뮬레이션인듯 현실인듯 그 경계가 모호하게 편집을 했던 장면이 있었는데 그 다음 장면에서도 또 시뮬레이션이 아닐까 하는 관객의 생각과는 다르게 바로 현실로 돌아오면서 관객과의 밀당을 제대로 했던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마지막 길복순과 차민규의 1:1 대결 씬에서는 그 시뮬레이션의 절정을 보여준다. 실력적으로는 차민규가 절대우위에 있기에 차민규는 길복순의 수를 하나씩 생각하면서 길복순의 공격에 맞춰서 복순을 죽이는 장면들을 상상한다. 처음에는 현실처럼 이를 그려내다가 이렇게 길복순이 죽는다고? 허무하게?라는 감정이 들 때쯤 다시 길복순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이 장면들이 차민규의 상상 속이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이 차민규의 집무실 모든 공간에 꽉 채워지면서 너무나도 많은 차민규가 너무나도 많은 길복순을 하나씩 죽이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서 기술적으로 차민규가 절대적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면서 과연 길복순은 어떠한 수를 내놓을지 관객으로써는 기대가 되는 장면이었다. 이처럼 영화 길복순은 감각적인 연출을 통해서 관객과의 밀당을 잘 한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시리즈가 더 낫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은 있었다. 영화가 아닌 드라마로, 시리즈로 만들어졌다면 캐릭터들의 서사과 깊이감이 더욱 살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들었던 작품이었다. 사실 길복순이라는 캐릭터를 제외하면 다른 모든 캐릭터는 소비적으로 쓰였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영화였다. 다들 길복순과의 단편적이고 평면적인 관계를 보이고 있어서 캐릭터별 매력을 느끼기에는 굉장히 아쉬운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이 만약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면 캐릭터별 서사를 쌓고, 그 속에서 길복순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마지막에 가서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길복순과 적이 되어 그녀를 공격할 때 오히려 더 길복순의 입장에 더욱 감정적 동조를 느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사실 영화 길복순은 화려한 액션신을 볼만했지만 길복순의 선택에 대해서, 그리고 길복순이 처한 환경에 대해서 관객들이 함께 공감할 만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성은 딸을 제외하고는 보여지지가 않아서 그녀의 선택에 따른 책임에 함께 불안해하거나 슬퍼하거나 안도하기에는 힘들었던 작품이었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
멋진 액션과 딸과의 관계 회복이라는 두 가지 큰 주제 속에서 이 영화를 관통하는 소재가 있다. 바로 ‘용기’다. 다양한 용기 중에서도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다. 딸 재영은 레즈비언으로 같은 반 친구와 사귀고 있었고, 이를 알게된 남학생이 재영과 한달 동안 사귀면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재영은 싫다고 말하는 과정에서 남학생에게 상해를 입히고 정학을 당하게 된다. 처음 이유를 말하지 않았던 재영은 결국 용기를 내서 엄마 복순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당황한 엄마는 이렇다할 말도 없이 회사 전화를 받고 쌩하고 나가버린다.
그렇게 킬러들과 싸움 이후 집으로 돌아온 복순은 다시금 재영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다. 그 과정에서 복순은 재영에게 자신이 솔직하게 킬러라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딸이 국정원이냐고 물어보자 ‘엄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라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재영은 보안상 말할 수 없다는 국정원의 규칙을 지킨다고 생각을 하고, 복순은 이런 재영을 보면서 솔직한 딸과 달리 자신은 자신의 직업을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자신의 행동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마지막으로 차민규 대표와의 1:1 대결씬에서도 차민규는 길복순의 손에 죽기로 이미 결심을 한 상태였고, 이를 딸 재영에게 보여주기 위해 cctv를 연결해 재영에게 보내준다. 재영은 결국 자신의 엄마 복순이 한 남자를 무자비하게 죽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되고, 이를 알게 된 복순은 하지 않던 기도를 하며 집으로 달려간다. 자신이 솔직하게 먼저 딸에게 밝히지 못했다는 자책과 후회, 그리고 딸이 엄마의 모습을 보고 놀라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 딸 재영이 이런 엄마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떨까 하는 두려움. 재영이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밝히기 전까지 느꼈을 오만가지의 감정들을 똑같이 느끼며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재영은 그런 엄마에게 자신이 본 영상을 모른척하며 엄마를 품어준다. 재영과 복순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두 모녀의 관계 회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과정 속에서 기회가 왔을 때 솔직하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얼마나 대단하고, 또 필요한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 길복순은 감각적인 연출과 함께 나름의 주제를 잘 전달하고 있었던 작품이었다. 다만 드라마로 만들었으면 훨씬 더 탄탄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아쉬움도 함께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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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잃은 이야기들의 중첩
정서는 아파트 청약 계약금을 마련하기 위해 분투한다. 우리는 그 모습에서 아파트에 투영된 시대의 욕망을 읽어내야 할까? 아니면 정서가 비정규직 디자이너로 일하며 뱀파이어 웹툰을 그리는 데서 우리 시대의 불합리한 계급 구조와 자아실현의 관계에 질문을 던져야 할까? 정서가 외도로 이혼해 다른 가정을 꾸린 아버지와 재회해 가까워지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은 어떤가. 우리는 여기서 질긴 혈연의 의미를 곱씹어야 할까? 거리감을 느끼면서도 문득 마음에 들어오는 이복동생과의 관계에서는 자매애의 새로운 토대를 발견해야 할까? 결혼을 앞둔 남자 친구와의 사랑이 아파트 계약 성사 여부에 오락가락한다는 데서는 사랑의 조건을 질문해야 하는 걸까? 이혼 후 딸을 홀로 키운 어머니가 정서와 맺는 관계는 또 어떤가? 아니면 무엇보다 이 거대한 여정을 모두 거친 후 주인공이 맞이하게 될 성장에 집중해야 하는 걸까?
〈은빛살구〉를 보며 도무지 이야기의 결을 종잡기가 힘들었다. 결혼을 앞둔 정서는 비정규직 디자이너로 일하며 웹툰을 그린다.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지만 계약금이 없다. 어머니는 정서에게 오래전에 외도로 가정을 떠난 아버지를 찾아가라고 말한다. 자신이 빌려주고 받지 못한 돈을 대신 받아 계약금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재혼해 아이까지 낳고 잘 살고 있다. 운영하는 횟집도 문전성시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자신을 찾은 딸이 반가운 기색이다. 이복동생도 은근히 정서를 따르며 살갑게 군다.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다.
그러나 아버지의 다른 속셈과 비밀, 오해를 불러일으킨 동생과의 해프닝 등등이 겹치며 정서의 계획은 꼬여만 간다. 계약금 마련이 어려워지자 정서는 점점 초조해지지만 남자 친구는 속도 모르고 엉뚱한 짓만 반복해 그녀를 화나게 한다. 하필 그때 옛 연인이 등장해 정서의 마음이 흔들린다. 엉망진창으로 마무리된 여정 후, 회사에서는 ‘정규직 계약’을 빌미로 정서를 못살게 군다. 결국 정서는 은근히 혹은 대놓고 자신을 옥죄어 오던 것들과 단절하고 자신의 웹툰 속 최상위 포식자 ‘뱀파이어’가 되어 결연한 표정으로 홀로 걸어간다.
결과적으로는 그럴듯한 이야기다. 하지만 결론에 다다르기까지의 이야기는 중구난방이다. 초점이 없다. 사건 전개가 유기적이라기보다는 단절된 채 이어지는 듯한 인상이고, 여러 갈래로 흩뿌려진 이야기 갈래를 꿰뚫는 하나의 주제 의식을 찾기도 어렵다. 어느새 우리는 내내 짜증이 나 있는 정서의 감정에 물들고야 만다.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운 인물의 변화와 사건의 연쇄 속에서 정서의 감정은 관객의 감정이 된다.
배우들의 호연을 고려했을 때 아쉬운 일이다. 정서를 비롯해 그녀의 아버지와 이복동생 등 영화에는 생기와 개성을 갖춘 캐릭터들이 꽤 있다. 이들이 다른 방식으로 만나고 엇갈렸다면 어땠을까. 길 잃은 이야기들의 중첩에서 헤매는 인물들의 고군분투가 못내 아쉽다. 25회 전주국제영화제 수상작(한국경쟁 배우상).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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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임감의 무게
살아가면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책임을 짊어지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단순히 학교에 가고, 친구들과 놀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가족, 직장, 사회에 대한 책임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게 되면 부모로서의 책임도 생기고, 직장에서는 팀을 이끌거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책임도 생긴다. 이런 책임감이 인생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만들지만, 동시에 우리를 성장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책임감은 단순히 의무를 다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깊이 고민하고, 그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의사나 비행기 조종사 같은 직업은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그들의 결정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최고의 판단을 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가지고 있다.
영화 <하이재킹>은 이러한 책임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부기장 태인(하정우)은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직업의식과 책임감을 끝까지 지키며, 희생자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그의 동료인 기장 규식(성동일)과 승무원 옥순(채수빈) 역시 마찬가지로 높은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 역시 승객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비행기를 납치하는 용대(여진구)는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는 책임감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게 비록 잘못된 에너지가 되어 발산되지만 결국에 그의 행동도 책임감에서 비롯된 죄책감이 원인이었다. 이 영화는 각 인물들의 책임감이 어떻게 충돌하고, 그것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첫 번째 감정] 태인의 책임감
부기장 태인은 과거 공군에서 납치된 여객기를 격추하라는 명령을 어긴 경험이 있다. 그는 승객과 승무원들을 살리고 싶었기 때문에 명령을 거부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비행기는 납북되었고 태인은 군에서 퇴출당했다. 이러한 과거가 그에게 큰 두려움을 안겼겠지만, 그에게 여객기 조종사라는 직업으로 연결시켜 주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를 그 일을 그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여객기 조종사가 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승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영화에서 태인은 매우 조용하고 진지한 인물로 묘사된다. 특별히 실없는 말을 하지 않고 항상 침착한 태도로 상황을 대처하는 그는 이 영화 안에서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다. 비행기가 납치당했을 때도 그는 감정적인 반응을 먼저 보이지 않고, 침착하게 그 상황을 대처하며 승객들을 안전하게 내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납치범에게 위협을 당하고 총에 맞는 상황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태인의 책임감은 단순한 의무감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일종의 사명감으로 보이기도 하고, 과거에 다른 여객기를 납북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도 그에게 더욱 책임감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 에너지는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강력한 힘이 된다. 그는 납북된 선배 조종사의 가족들까지 챙기는 등,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가는 사람이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영화 전반에 걸쳐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느 누구도 아닌 태인의 서사가 중심이 된다.
[두 번째 감정] 용대의 분노
납치범 용대는 사실 억울한 인물이다. 북으로 넘어간 형 때문에 빨갱이로 몰려 감옥에 가고 어머니는 혼자 집을 지켰지만, 지병으로 홀로 외롭게 죽음을 맞는다. 그는 가족을 살필 기회도 없었고, 그저 감옥에서 출소해서 돌아온 집에 숨져있는 그의 어머니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억울한 상황과 슬픔은 그대로 큰 분노를 만들어낸다. 물론 그의 납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용대의 분노는 그를 비행기 납치로 이끌었다. 그의 분노는 다른 무고한 승객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고, 결국 그의 잘못된 선택으로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거나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했다. 하지만, 그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다. 그는 침착하게 대응하는 부기장 태인을 보며 자신이 상황을 주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조금은 만만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용대가 가지고 있는 분노가 그의 판단력을 망가뜨렸기 때문에 그런 행동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용대는 극단적인 선택을 계속해나간다. 북으로 가자는 그의 외침은 후반부로 갈수록 공허하게 들린다. 단지 그의 분노만 화면 속에서 전달될 뿐이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점점 어두워지는 다른 승객들의 얼굴빛에 가려져간다. 그래서 그의 서사 안에서는 그의 행위에 정당성을 가지지만, 비행기 전체의 승무원과 승객들의 서사까지 확대하고 나면, 그 분노는 정당성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아무 의미 없는 분노가 되어버린다.
[세 번째 감정] 규식의 믿음
기장 규식은 처음에는 태인을 믿지 않았다. 공군에서 쫓겨난 태인을 직접 평가하기 전까지는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런 태도는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담배를 피우며 태인과 규식의 대화에서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규식은 태인에게 이번 비행에서 착륙을 해보라고 이야기하면서, 태인의 실력을 살펴보려 한다. 외부의 평가는 이미 끝난 태인에겐 그 기회가 그의 경력에 꽤 중요한 기회였다.
이후 비행기가 납치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인은 차분함을 유지하게 된다. 그런 그의 태도를 본 규식은 부기장으로서의 태도를 먼저 인정하게 된다. 폭탄이 터지고, 비행기에 구멍이 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그 상황을 대처하고 승객안심시키는 모습은 충분히 규식에게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준다. 규식은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점차 태인에게 의지하게 되고, 결국 그를 전적으로 믿게 된다.
중반부에 규식은 눈앞이 잘 보이지 않게 되면서 태인에게 완전히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결국 규식은 마지막 순간에 태인에게 착륙을 맡긴다. 규식의 믿음은 태인이 자신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외부의 판단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믿은 규식의 태도는 매우 감동적이다. 이 영화에서 기장으로서의 역할은 무척 제한적이었지만, 리더로서 가질 수 있는 품격은 충분히 보여준 규식이다.
영화 <하이재킹>은 과도하게 감동코드를 밀어 넣지 않으면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한다. 특히 부기장 태인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중심인데, 그의 우직한 모습이 끝까지 이 영화를 지탱한다. 그가 가진 책임감, 그리고 그의 주변 인물들의 믿음이 그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든다.
비록 분노에 가득 찬 납치범이 벌인 일이지만, 그를 달래고 설득하면서 좋은 상황을 만들려 애쓰는 모습이 긴장감 있게 담겨 있다. 이 영화는 실화의 힘이 장점이 되는 영화다. 비행기 불시착한 모습도 실제와 똑같고, 납치범의 사연도 거의 비슷하다. 살아남은 사람들과 희생된 사람들의 구성도 실제와 동일하다. 실화가 좋았기 때문에 담백하지만 긴장감 있는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에는 유머가 전혀 없다. 성동일과 하정우라는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특유의 개그 연기가 전혀 없다. 또한 외부 비상 센터 같은 정부의 대처를 보여주는 장면도 없이, 온전히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일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점이 이 영화의 감정들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영화가 다루는 당시 시기에는 비행기 납치나 납북이 많았다.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도 누군가를 살리려는 책임감을 가졌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언제나 그런 사람은 사회에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단지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영화 <하이재킹>에는 그런 책임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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