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5-01-03 07:46:50
길 잃은 이야기들의 중첩
영화 〈은빛살구〉

정서는 아파트 청약 계약금을 마련하기 위해 분투한다. 우리는 그 모습에서 아파트에 투영된 시대의 욕망을 읽어내야 할까? 아니면 정서가 비정규직 디자이너로 일하며 뱀파이어 웹툰을 그리는 데서 우리 시대의 불합리한 계급 구조와 자아실현의 관계에 질문을 던져야 할까? 정서가 외도로 이혼해 다른 가정을 꾸린 아버지와 재회해 가까워지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은 어떤가. 우리는 여기서 질긴 혈연의 의미를 곱씹어야 할까? 거리감을 느끼면서도 문득 마음에 들어오는 이복동생과의 관계에서는 자매애의 새로운 토대를 발견해야 할까? 결혼을 앞둔 남자 친구와의 사랑이 아파트 계약 성사 여부에 오락가락한다는 데서는 사랑의 조건을 질문해야 하는 걸까? 이혼 후 딸을 홀로 키운 어머니가 정서와 맺는 관계는 또 어떤가? 아니면 무엇보다 이 거대한 여정을 모두 거친 후 주인공이 맞이하게 될 성장에 집중해야 하는 걸까?

〈은빛살구〉를 보며 도무지 이야기의 결을 종잡기가 힘들었다. 결혼을 앞둔 정서는 비정규직 디자이너로 일하며 웹툰을 그린다.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지만 계약금이 없다. 어머니는 정서에게 오래전에 외도로 가정을 떠난 아버지를 찾아가라고 말한다. 자신이 빌려주고 받지 못한 돈을 대신 받아 계약금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재혼해 아이까지 낳고 잘 살고 있다. 운영하는 횟집도 문전성시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자신을 찾은 딸이 반가운 기색이다. 이복동생도 은근히 정서를 따르며 살갑게 군다.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다.
그러나 아버지의 다른 속셈과 비밀, 오해를 불러일으킨 동생과의 해프닝 등등이 겹치며 정서의 계획은 꼬여만 간다. 계약금 마련이 어려워지자 정서는 점점 초조해지지만 남자 친구는 속도 모르고 엉뚱한 짓만 반복해 그녀를 화나게 한다. 하필 그때 옛 연인이 등장해 정서의 마음이 흔들린다. 엉망진창으로 마무리된 여정 후, 회사에서는 ‘정규직 계약’을 빌미로 정서를 못살게 군다. 결국 정서는 은근히 혹은 대놓고 자신을 옥죄어 오던 것들과 단절하고 자신의 웹툰 속 최상위 포식자 ‘뱀파이어’가 되어 결연한 표정으로 홀로 걸어간다.


결과적으로는 그럴듯한 이야기다. 하지만 결론에 다다르기까지의 이야기는 중구난방이다. 초점이 없다. 사건 전개가 유기적이라기보다는 단절된 채 이어지는 듯한 인상이고, 여러 갈래로 흩뿌려진 이야기 갈래를 꿰뚫는 하나의 주제 의식을 찾기도 어렵다. 어느새 우리는 내내 짜증이 나 있는 정서의 감정에 물들고야 만다.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운 인물의 변화와 사건의 연쇄 속에서 정서의 감정은 관객의 감정이 된다.
배우들의 호연을 고려했을 때 아쉬운 일이다. 정서를 비롯해 그녀의 아버지와 이복동생 등 영화에는 생기와 개성을 갖춘 캐릭터들이 꽤 있다. 이들이 다른 방식으로 만나고 엇갈렸다면 어땠을까. 길 잃은 이야기들의 중첩에서 헤매는 인물들의 고군분투가 못내 아쉽다. 25회 전주국제영화제 수상작(한국경쟁 배우상).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
- [스크린 너머 세계속으로...스웨덴] 알렉산더의 네버랜드는 도피가 아니라 저항이다
피터팬의 환상 세계를 넘어선, 상상의 윤리와 저항의 힘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피터팬은 현실을 등지고 네버랜드로 떠납니다.
그곳은 아이들이 어른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꿈을 꾸는 환상의 섬이죠.
잉마르 베르만의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 (1982)》에도, 현실의 폭력과 권위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는 알렉산더. 어린 알렉산더 역시 피터팬처럼 환상의 세계를 원하지만, 그 목적은 사뭇 달랐습니다. 그의 상상은 단순한 도피나 동심이 아닌 현실과 맞서기 위한 ‘저항’이자,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가까웠죠. 그에게 상상은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연극의 목적은 세상에 거울을 비추는 것이다. 선은 선대로, 악은 악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비춰내며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다.”
— 『햄릿』 3막 2장 16~19행
『햄릿』에서 “연극의 목적은 세상에 거울을 비추는 예술”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영화 속 주교는 오롯이 진실만이 옳으며 거짓을 행하는 행위는 악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세계에서는 연극도, 상상도, 작은 거짓말 하나 용납되지 않았죠. 그러나 그가 말하는 ‘진실’은 정말 정당했을까요?
스웨덴, 느린 진보의 시간을 거쳐 평등한 국가가 되기까지
작은 세계로 벗어나 알렉산더가 마주한 현실 세계는 우리가 아는 평등한 스웨덴의 이미지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적 배경은 1900년대 초. 신분제가 폐지된 지 수십년이 흘렀지만 스웨덴 사회의 계급 구조는 여전히 견고했고, 사회 곳곳엔 그 잔재가 남아있었습니다.
당시 스웨덴의 국교였던 루터교는 절대적인 질서와 규율을 강조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교는 그 보이지 않는 질서의 권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자유롭고 예술적인 영혼을 지닌 에크달 가문의 사람들은 이러한 종교적 억압과 대조를 이루며, 영화 속 갈등의 긴장감을 서서히 고조시켜 나갑니다.
에밀리와의 재혼을 앞둔 주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집과 가구, 옷, 보석, 귀중품, 친구, 습관, 생각… 모두 두고 오란 말이오.”
이 말은 그녀에게 단순히 결혼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당신의 자아를 내려놓으라”는 요구와도 같았죠. 그리고 알렉산더는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지켜봅니다. 그의 눈에 비친 현실 세계는 잔혹했고, 주교가 말하는 질서는 곧 폭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에밀리는 주교와 재혼을 하게 되었을까요?
오마주, 그러나 달라진 여성 서사
《화니와 알렉산더 (1982)》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에서 깊은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연출과 상징 곳곳에서 『햄릿』을 연상 시키면서도 베르만 감독은 독자적인 메시지를 섬세하게 투영합니다. 마치 “오마주를 한다면 이렇게 하라”는 모범적인 예시처럼 읽히는 대목이기도 해요. 그러나 여성 서사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중요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햄릿』극 중 극 <쥐덫>의 왕비는 남편의 죽음 이후 어떤 상대와도 재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 루시아너스(Lucianus)라는 남성과 재혼하게 됩니다. 강렬했던 왕비의 맹세는 보잘것 없이 흩어졌고, 이는 그녀의 선택에 대한 도덕적 판단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고 말죠.
반면 에밀리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깊은 슬픔을 겪지만, 두 아이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재혼을 선택합니다. 그녀의 선택은 약속의 배반이 아닌, 생존을 위한 강인한 결단입니다. 고전에서 파생된 서사를 현대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한, 베리만 감독의 섬세한 각색이 돋보이는 지점입니다.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알렉산더는 주교의 세계에서 ‘거짓말쟁이’로 낙인 찍힙니다. 주교는 그를 다락방에 가두고, 십계명 중 하나인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는 교리를 근거 삼아 가혹한 벌을 내립니다. 그러나 알렉산더에게 ‘거짓’이란 악의가 아닌, 상상력의 일부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예술적 자유와 창작이 숨 쉬는 에크달 가문에서 자란 알렉산더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상상과 이야기로 견뎌냈습니다. 하지만 주교는 그런 ‘거짓’조차 죄로 규정하며 아이를 단죄 하려 들었고, 결국 현실 세계의 권위적인 교주 앞에서 작은 세계의 어린이는 위태롭게 흔들립니다.
구원의 손길, 이방인의 등장과 주교의 파멸
다락방에 갇혀 있던 화니와 알렉산더를 구한 인물은,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한 이삭이었습니다. 유대인 상인으로, 스웨덴 사회에서 이방인처럼 존재하던 그는 어디선가 신비롭고 기묘한 골동품들을 수집하며 에크달 가문과도 교류를 이어온 인물입니다. 그는 현실 세계에서 병들어가던 화니와 알렉산더를 작은 세계로 돌려보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을 감행합니다.
주교가 다락에서 마주한 아이들은 실체가 아닌, 그의 내면에 떠오른 환영이었습니다. 그 순간 주교는 처음, ‘작은 세계’ 안으로 발을 들입니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 전환은 꽤나 흥미롭습니다. 처음엔 비어 있는 다락방 바닥을 비추며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공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황급히 다락방을 뛰어 들어오는 주교의 시선을 따라 같은 공간을 다시 비출 때, 그곳엔 평온히 잠든 화니와 알렉산더가 누워 있습니다. 주교가 그들의 실체를 확인하려 손을 뻗는 찰나 에밀리는 단호히 말합니다. “건드리지 말아요!”
주교가 환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 틈을 타, 아이들이 무사히 도망치길 바라는 사람처럼 말이죠.
주교에게 환영은 단순히 경험했다는 정도에 그치지 않습니다. ‘진실만이 선하다’고 믿어온 그가, 악이라 여겨온 세계 — 즉 ‘거짓의 영역’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순간이기 때문이죠. 다락방 한가운데, 십자가 아래에서 그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한편 이삭 야코비의 도움으로, 아이들은 탈출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 잠들지 못한 알렉산더는 이삭의 집 안을 누비다 기묘하고 오싹한 기운이 흐르는 방 한가운데에서 아버지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미 여러 차례 나타난 환영이었지만, 이번 공간에서의 만남은 특별합니다. 이승과 저승, 현실과 비현실을 잇는 통로 같은 곳에서 알렉산더는 아버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눕니다. 죽어서도 늘 곁에 있겠다는 아버지의 위로는 차갑고 섬뜩하지만, 동시에 따뜻하고 다정합니다. 알렉산더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주교를 진정한 ‘아버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일지도 모르죠.
마음의 어둠을 들여다보는 사람
알렉산더는 이삭의 집에서 이스마엘을 만납니다. 그는 영적으로 강인하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초월적인 능력을 지녔으나, 오히려 그 능력이 세상에는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져 격리된 인물이었죠. 하지만 그런 이스마엘에게도 알렉산더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알렉산더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조심스럽지만 끈질기게 다가섭니다. 그리고 마침내, 알렉산더의 마음 속에 억눌려 있던 주교에 대한 증오를 발견하죠.
— 이스마엘은 알렉산더의 어둠을 건드려 끔찍한 환영을 보여줍니다.
불길에 휩싸인 숙모가 나타나, 고통으로 몸부림 치며 주교의 침실로 들어갑니다. 수면제를 먹고 깊이 잠든 주교는 불길 속에서 파멸을 맞이합니다. 이것이 단순한 환상이라면 좋았겠지만— 다음 날, 주교는 실제로 죽음을 맞습니다.
이스마엘이 속삭이던 모든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재미만을 추구하지 말라(El blot til lyst)”
“재미만을 추구하지 말라(El blot til lyst).” — 첫 도입부에 등장하는 메세지
이는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예술을 받아들이는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한 물음입니다.
알렉산더를 억압하던 주교의 파멸은 일시적인 통쾌함을 선사하지만, 곧 그 감정의 정당성에 대해서 곱씹게 되지요.
내가 느낀 이 통쾌함, 카타르시스는 과연 정당한가
남을 파멸시켜 얻는 해방은 진정한 해방일 수 있을까
영화는 유희와 감정적 해소에 머무르지 않고 그 너머의 진실을 마주하게 만듭니다. 예술은 때로 모두를 위로하고 숨 쉴 틈이 되어주지만, 결국 우리는 현실 세계를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작은 세계를 품고 살아가되 그 안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 영화는 마지막 순간, 날카로운 현실의 감각을 일깨웁니다.
오늘의 크레마 리뷰 어떠셨나요? ☕
하나의 장면, 한 잔의 크레마처럼 잔잔하고 진한 여운을 담아 글을 씁니다.
📧 crema@maily.so
-
- 어쩌면 가장 정의로운 선택일 마지막 선택, 심판(Aus dem Nichts, 2017)
우리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사건들을 맞이하고, 이를 해결해야 할 때 때론 법보다는 자신의 선택이 더욱 타당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그렇기에 상황에 따른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는데, 법이 내린 결정이 부당하다면, 내가 직접 심판을 내리는 것은 어떨까?
갑작스러운 상황을 나타내는 독일어 원제(Aus dem Nichts)와 같이, 영화는 약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감을 구사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카디아는 네오나치의 공격으로 한순간에 일상을 잃어버리게 된다. 폭발 사고로 남편과 아들이 곁에서 떠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영화 오프닝 신에서 이 모든 일이 발생하는데, 폭발음이 들린다던가 배경 음악이 깔리는 등의 장치적 요소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던 중, 예고 없이 시작되는 비극을 제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아이를 데리러 다시 찾아온 건물은 무너져 있고, 앞에는 경찰차와 구급차가 즐비하게 늘어나 있다. 뒤이어 이어지는 절규를 시작으로 모든일이 벌어진다.
전체적인 화법은 사건 자체보다는 그 일을 기점으로 변화하는 증인이자 또 다른 직접적인 피해자인 카티아의 시선으로 올곧게 직진한다. 제일 소름이 돋았던 점은 남편이 일하는 건물 앞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던 여성이 용의자라는 사실. 여성이 건물 앞에 세운 자전거 안의 폭탄으로 가족은 처참하게 희생된 것이다. 수사 초반 남편은 마약 밀매를 했다는 오명을 받고 희망을 잃어버렸던 카티아는 좋지 않은 선택을 시도하지만, 어느덧 사건에 윤곽이 잡히며 다시 의지를 일으켜 본다. 이상적으로 모든 일이 일사천리에 해결되는 모습들보다는 실제 상황에 기반하여 끝없는 법정 공방을 보여준다. 관객에 입장에 서 있는 우리는 최대한 빠져나갈 구멍이 없도록 옥죄어 가는 변호사의 변론에 안도하면서도, 작은 꼬투리를 잡고 공격적으로 늘어지는 검사의 반론에 함께 분노하게 된다. 판이 점차 카티아의 승소로 기울어져 보이지만, 도무지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재판들은 지침과 새로운 불안감을 조성한다.
이렇게 생생한 현장감과 더불어 색다른 카메라 워킹은 영화의 또 다른 감각을 불어넣는다. 그동안 봐왔던 재판 현장을 다루는 영화들은 주로 발언이나 표정들을 강조하기 위해 인물들의 얼굴을 위주로 클로즈업하는데, 카티아가 증인석에서 발언석으로 이동하는 동선을 부감 샷(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샷)으로 잡는다. 상황을 생각지 못한 시점으로 내려다보면서 엄숙한 법정의 분위기에 더 집중하고, 압도당하게 된다. 또한 분명 유리하게 작용하던 재판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맞이했을 경우를 잘 보면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을 떠올리게 하는 카메라 기법(카메라를 뒤로 빼면서 렌즈를 줌인)을 사용한다. 이런 섬세한 연출들을 통해 인물의 복잡하고 절망적인 심리를 강조하면서 당시의 상황을 더욱 피부로 와닿게 표현한다.
무엇보다 가장 눈여겨볼 만한 것은 불도저같이 끝을 보는 카티아의 태도이다. 특히 가족을 다루는 경우에 종종 등장하는 신파 장면 없이, 가해자의 손을 들어준 법정과는 또 별개로 그는 자신만의 심판을 준비한다. 아마 이 장면이 가장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영화는 파격적인 엔딩을 맞이한다. 법이 정당하지 않은 판결을 내렸을 때 진정한 정의구현의 방식을 카티아 스스로 만들어감으로써 딜레마를 깨버리고,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는 해결 방식을 해낸다.
<심판>은 지금까지 봐왔던 법정 공방을 다루는 영화 중에서도 진솔함이 잘 묻어나고 피해자 위주의 입장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윤리와 정의를 구현하려는 진중한 시도가 돋보인다. 게다가 독기 어린 시선을 끝까지 지켜내는 다니앤 크루거의 눈빛을 보고 있자면, 복수만큼 용서를 재촉하는 것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카티아는 자신을 파멸로 이끌면서까지도 결국엔 법 앞에 승리한 것이다.
-
- 발렌시아가와 H&M, 두 세계를 오가는 롤러코스터
6★/10★
2017년, 〈더 스퀘어〉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에게 또 한 번의 황금종려상을 선사한 〈슬픔의 삼각형〉은 한 모델 오디션장에서 시작된다. 상의를 탈의한 채 오디션을 기다리고 있는 남성 모델 무리 사이로 한 방송 진행자가 들어선다. 그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몇몇 모델을 인터뷰한 후, 개중 몇몇을 벽 앞에 세운 뒤 짓궂은 제안을 건넨다. ‘발렌시아가’ 포즈와 ‘H&M’ 포즈를 취해보라는 것. 둘 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류 브랜드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전자는 명품이고, 후자는 저가의 패스트 패션이다. 방송 진행자가 말을 잇는다. 발렌시아가 모델은 다소 거만한 표정으로 거들먹거리며 네가 우리 제품을 사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이 굴어야 하고, H&M 모델은 백인, 흑인, 아시아인이 나란히 서서 밝은 얼굴로 ‘우린 행복해! 우리는 평등해!’라고 외치며 환하게 웃어야 한다는 것. 설명을 마친 진행자가 발렌시아가와 H&M을 번갈아 외치면, 앞에 선 모델들은 그에 따라 오만한 표정과 밝은 표정을 교차로 짓는다. 진행자는 두 브랜드의 이름을 점차 빠르게 바꿔 부르고, 모델들 역시 그에 맞춰 재빨리 포즈와 표정을 바꾼다.
모델들의 몸짓과 표정으로 재현되는 두 브랜드의 교차는 〈슬픔의 삼각형〉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이 영화는 롤러코스터처럼 두 세계를 오가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힘껏 풍자한다. 오디션에 참가한 모델 칼과 그의 인플루언서 애인 야야는 야야에게 협찬된 티켓으로 호화 크루즈에 탑승한다. 승객은 대부분 큰 부자들이고 승무원들의 서비스는 완벽하다. 돈을 낸 사람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위계가 있고, 탑승객과 승무원은 모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탑승객은 발렌시아가의 세계에 살고, 승무원은 H&M의 세계에 산다.
그런데 한 탑승객이 ‘우리는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무원이 기뻐했으면 좋겠다며 모든 승무원이 거대한 미끄럼틀 튜브를 타고 놀며 즐기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 그리하여 모두가 함께 기쁨을 느껴 ‘평등’해지자는 것. 그러나 H&M의 세계에 사는 우리는 승객의 요구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안다. 두 집단이 발 디디고 있는 세계를 그대로 둔 채 같은 행위를 하고 감정을 느끼는 것 만으로 평등해지자고 외치는 건 어불성설이다. 요컨대, 발렌시아가가 H&M 홍보 문구를 읊는 우스운 꼴이다. 발렌시아가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황당한 요구는 계속 이어진다. 웃통 벗은 승무원이 불편하다는 탑승객의 말에 해당 승무원이 단번에 배를 떠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바다 한 가운데를 항해하는 크루즈의 돛이 더러워 경관을 해친다며 청소를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H&M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이들의 요구를 모두 충실히 수행한다. 두 세계가 기울어져 있고, H&M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발렌시아가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변곡점이 찾아온다. 선상 파티를 하던 중 폭풍이 찾아와 크루즈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크루즈의 흔들림은 곧 탑승객과 승무원이 자리한 세계의 흔들림을 의미한다. 탑승객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우아하게 고급스러운 요리를 고상하게 먹으려 하지만 욕지기는 점점 더 강해진다. 그리고 도저히 ‘눈 뜨고는 못 볼’ 구토 장면이 연달아 이어진다. 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은 탑승객들이 자신들이 먹은 일품요리를 끝도 없이 토해내는 장면과 그 옆에서 승무원들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탑승객을 배려하며 서빙과 청소를 이어가는 장면은 무엇을 시사할까? 이 장면은 세계가 ‘뒤집히면’ 누가 혼란을 느끼는지에 대한 대답이다. 구역질 날 정도로 적나라한 구토(심지어 설사)는 발렌시아가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몸속에 무엇이 쌓여 있는지를 폭로한다. 수류탄을 만들어 전 세계에 판매하는 무기회사를 운영하는 한 노부부가 UN 규제 때문에 힘들었다며 불평하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 화려하고 비싼 명품으로 치장된 탑승객들의 외면이 실은 몸속에 쌓인 토사물과 설사(즉 추악한 자본 축적)를 감추기 위한 속임수였다고 고발하는 것이다.
폭풍이 지나간 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적이 배를 습격하는 사건마저 발생해 일부 탑승객과 승무원이 ‘무인도’에 표류된다. 이제 기존 권력관계는 별 의미가 ‘없다’. 무인도에서는 돈보다 생존 능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에 맞춰 새로운 위계가 구축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발렌시아가’와 ‘H&M’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조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물건은 이들과 함께 떠내려온 프레츨 스틱과 물, 즉 식량이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죽은 부인에게서 다이아몬드를 뺀 후 몰래 주머니에 넣는다. 무인도에서 건설될 세상은 결코 완전히 새로울 수 없다. 새 세상은 결코 기존 세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다. 영화 전반부에서 신랄하고 날카롭게 활개 치던 계급 사회 풍자가 다소 길을 잃는 듯 맥이 빠지는 건 이 때문이다. 배가 난파당하기 직전, 미국의 공산주의자와 러시아의 자본주의자가 만취해 우리 세계를 두고 토론하던 장면이 보여주듯,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발디딘 곳에 제한된 상상력만을 가질 수 있다. 그 어떤 새 출발도 ‘백지’에서 시작할 수는 없다. 우리의 현실은 우리의 상상력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무인도에서 젠더 위계가 뒤집히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전반부, 평범한 모델인 칼과 인플루언서 모델인 야야가 데이트 비용을 두고 갈등하는 장면이 있다. 우리 시대는 전통적 남성 부양자 모델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 사회다. 그러나 기존 젠더 관념은 현실이 달라졌는데도 우리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칼은 데이트 비용을 하나하나 계산하느라 초조하고, 데이트 비용에 무관심한 야야에게 화가 난다. 반면 야야는 여자라는 이유(임신, 출산 등)로 언제든 자기 경력이 끝장날 수 있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자신이 안전하게 기댈 수 있는 남자를 찾는다. 둘의 현실과 현실 인식이 내내 충돌하는 것이다. 젠더 권력의 복잡성은 크루즈에서도 이어진다. 진상 승객과 만취한 선장을 대신해 크루즈를 완벽한 상태로 유지하는 여성 매니저 폴라, 크루즈에서 화장실 청소를 담당했으나 무인도에서는 뒤집힌 세계의 꼭대기에 자리하는 아시아계 여성 애비게일은 세상을 굴러가게 하고 우리를 생존하게 하는 재생산 노동이 ‘여성의 일’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세상이 뒤집혀도 재생산 노동은 여성이 담당하는 현실을 비꼬듯 풍자해 영리하게 활용하기도 한다.
계급과 젠더의 얽힘, 그리고 뒤집힌 세계에서도 완전히 새롭게 출발할 수는 없는 사람들. 영화 제목인 ‘슬픔의 삼각형(Triangle of Sadness)’은 미간의 주름 모양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가 슬픔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껴 얼굴을 찡그릴 때 생기는 주름의 이름인 것이다. 영화는 이 주름을 야기하는 감정이 ‘자연 발생적’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여러 위계가 교차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시시때때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며 미간을 찡그리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억눌린 역능을 되찾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다음의 대사가 말하듯, 〈슬픔의 삼각형〉은 세상이 뒤집혀야 된다고 말한다. “여기선 내가 캡틴입니다. 자, 내가 누구라고요?”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
- 2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모두들 평안한 주말 보내셨나요?
오늘은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결과를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시작해 볼까요?
.
.
.
(1)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NEW)
마블 스튜디오의 올해 첫 개봉작인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가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주말 관객은 59만여명 정도에, 앞선 이틀간의 관객수까지 더해 누적 관객 수는 86만3천여 명을 기록했습니다. 통상적으로 마블 신작이 개봉 첫 주 100만명 이상을 동원했던 것에 비하며 부진한 성적으로, 지난해 11월 개봉한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첫 주말 79만여명을 모으는 데 그친 것보다 못한 기록입니다.
2. <더 퍼스트 슬램덩크> (⬇︎1)
앞서 3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켜온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결국 마블에게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떨어졌습니다. 주말 관객 26만 9천여명에 누적 관객 328만 2천여명으로, 순위는 하락했지만 관객 수는 지난 3주간의 주말 평균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3. <타이타닉: 25주년> (⬇︎1)
개봉 25주년을 기념해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한 <타이타닉: 25주년> 역시 지난 주보다 순위가 하락하며 3위에 이름을 올리며 주말 관객 수 9만 8천여명, 누적 관객 수 83만 9천여명을 기록했습니다. 한편, 6위로 밀려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또다른 작품인 <아바타: 물의 길>은 글로벌 누적 흥행 수익 22억 4320만 달러를 돌파하며 <타이타닉>의 기존 흥행 수익을 뛰어넘고 글로벌 역대 박스오피스 톱3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40회 예측 이벤트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이벤트입니다.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 추이를 보겠습니다.
남성 60%, 여성 40%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은 비율을 보였습니다. 연령대 별로는 30대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고, 그 다음으로 20대, 40대, 50대, 10대 순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습니다.
한 주 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건 13세 미만 여성과(581,733명)과 46세 이상 여성(602,327명)이었습니다. 또한, 주말 관객 수 스코어 예측의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전체 참가자의 1.2%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의 성비 및 나잇대 비율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4. <두다다쿵: 후후섬의 비밀> (NEW)
이번 주말 박스오피스의 4, 5위는 모두 애니메이션 영화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국내 애니메이션 영화인 <두다다쿵: 후후섬의 비밀>이 3만6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3위에 올랐는데요, <두다다쿵> 시리즈는 전 세계 40여 개국 이상에 수출되며 K-애니메이션의 기술력을 인정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엄마를 찾아 후후섬으로 떠난 두다와 친구들의 좌충우돌 모험기를 다뤘다는 <두다다쿵: 후후섬의 비밀>은 형형색색 다채로운 색감과 실감나는 캐릭터들이 눈길을 사로잡으며 화려한 즐거움을 선사하며 어린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5. <어메이징 모리스> (NEW)
5위도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 영화 <어메이징 모리스>입니다. 세계적인 판타지 소설 작가 테리 프래쳇의 '놀라운 모리스와 똑똑한 쥐 일당'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빌런 쥐 마왕에 맞선 사기력 만렙 말하는 고양이 모리스와 상극 친구들의 환상적인 팀플레이 어드벤처를 담은 작품입니다. 3만5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해 주말 박스오피스에서 동시기 개봉작 <두다다쿵: 후후섬의 비밀>에게 밀렸지만, 누적관객 5만1천여명을 기록하며 개봉 첫 주 애니메이션 박스오피스에서는 1위에 올랐습니다.
(2)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가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북미에서도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순위 1위를 차지했습니다. 국내보다 2일 늦은 2월 17일 개봉하여 주말 매출액 1억 4백만 달러(한화 약 1352억 원)의 오프닝 흥행 수익을 냈으며, 전편인 <앤트맨>, <앤트맨과 와스프>를 뛰어넘는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2위에 이름을 올린 <아바타: 물의 길>은 누적 매출액 6억 5700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22억 433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성공해 전세계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타이타닉>을 추월했습니다. 당초 2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됐던 손익분기점은 진작 넘어선 상황으로, 제임스 카메론의 작품 3편이 현재 글로벌 박스오피스 1위, 3위, 4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지난주 1위를 차지했던 <매직 마이크>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 <매직 마이크스 라스트 댄스>는 3위로 떨어졌고,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이 4위에, 지난주 순위 진입에 실패했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Knock at the Cabin(국내에서 <똑똑똑>으로 개봉 예정)이 다시 5위에 올랐섰습니다.
.
.
.
씨네픽의 2월 셋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이만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
- 사회 비판 영화 추천 '다음 소희' (feat.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
다음 소희
23.02.08 개봉
드라마, 15세 관람가
한국, 138분
감독: 정주리
출연: 김시은, 배두나 등
칸 영화제 국제피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다음 소희'!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을 소재로 하였대요
영화관 개봉했을 때부터 너무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넷플릭스에 떠서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실화를 기반으로 하는 것들은,
특히나 이런 가슴 아픈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것들은
재미있다 재미없다 평가하기도 망설여지더라고요
영화를 영화로만 평가해야 하는데도 괜히 마음이 약해져서 ㅠㅠ
냉정하게 말해 보자면 평타는 친 것 같습니다
실화를 소재로 삼는 작품들은 어느 정도 픽션을 가미해서
재미있게 만들거나, 더 슬프고 화나게 만들던데
'다음 소희'는 딱 이야기 자체를 보여 준 느낌이었거든요
담담하고 우악스럽지 않은 영화입니다
이제 사무직 여직원이다?"
춤을 좋아하는 씩씩한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
졸업을 앞두고 현장실습을 나가게 되면서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막을 수 있었잖아 근데 왜 보고만 있었냐고"
오랜만에 복직한 형사 유진
사건을 조사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 자취를 쫓는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언젠가 마주쳤던 두 사람의 이야기
우리는 모두 그 애를 만난 적이 있다
영화 <다음 소희> 줄거리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 먼저 설명 드리자면
2017년 1월 특성화고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학생이
인터넷, 휴대전화 계약 해지를 방어하는 'SAVE팀'에서
현장 실습생으로 일하며
우울증과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렸는데요
현장실습 표준 협약서에 적힌 근무 시간 7시간도 지켜지지 않고
160만 5천 원이라는 월급도 지켜지지 않았대요
게다가 할당된 고객 객응대 횟수를 못 채웠다는 이유로
야근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근무 4개월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고요
다음 소희의 줄거리도 이와 똑같습니다
추가한 게 있다면 소희가 춤을 좋아한다는 것 정도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춤이었던 거 같아요
춤을 추다가 형사인 유진을 만나게 된 거기도 하고요
다만 소희만 유진이 춤추는 걸 지켜봤고
유진은 소희에게 관심이 1도 없던 캐릭터였기 때문에
소희의 사망에 분개하는 게 개연성에 맞나? 싶긴 했어요
유진이 세상에 관심 없는 자신을 자책했기 때문이라면
또 말이 되긴 하지만요?
저는 이런 영화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차별받는 사람이 너무 많고
또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인센티브를 받지 못하고
유일한 대기업 취업자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그만두지도 못하게 하고......
집은 가난해서 소희가 그만둘 수 있는 상황도 아녔고요
그렇다면 소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나요?
(영화 내에선) 오로지 유진뿐이었습니다
유진 역시 너무 늦게 알아 버려서 타이밍을 놓쳤지만
소희의 남자 친구인 태준에게는 자신이 힘이 되어 주죠
어른이 아이에게 꼭 보호자가 돼야 한단 건 아닙니다
그저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눈길 한 번 주는 것만으로도
아픔이 있는 사람들에겐 큰 힘이 될 수가 있잖아요
그리고 그 시작은......
콜센터 직원에게 막말하지 않는 것부터 아닐까요
받을 때 안녕하세요~ 끊을 때 감사합니다~ 하는 것만으로도
그 분들껜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하더라고요
다음 소희가 생기지 않도록
관심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이게 딱!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김시은 님 보니하니 오디션 때부터 봤었는데 ㅋㅋㅋ
이렇게 연기 뛰어난 배우로 성장하셨을 줄은 몰랐어요!
배두나 님 연기력은 당빠 믿고 보는 거였는데
소희 역 김시은 님이 다 이끌어 주신 영화 아닌가 싶습니다
*줄거리: 4/5점
*연출: 2/5점
*영상미: 1/5점
*OST: 1/5점
*연기: 4/5점
-
- <트와일라잇: 시리즈> 의 컬트적 매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2000년대 초반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두 시리즈가 있다. 바로 ‘트와일라잇’과 ‘해리 포터’ 시리즈. 이들은 창작물을 넘어 세대가 공유하는 거대한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그때는 열광했으며 지금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설과 그 영화본.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해리 포터> 시리즈에 비해 조금 더 컬트적 성격이 강하며, 성장보다는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었다. 필자는 항상 해리포터의 편이었다. 어릴 적에도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소설은 첫번째 권, 영화는 첫번째와 마지막 편 밖에 본 적이 없다. 그렇게 근 20년이 지난 2025년, 필자의 모 영상 앱 알고리즘에 자꾸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클립이 뜨기 시작했다. 댓글은 정확히 반으로 나뉘었다. 영화의 과장된 연출이나 서사를 비웃고 ‘밈’화 시키는 댓글 반, 여전히 시리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댓글 반. 클립과 댓글을 자꾸 보다보니 관심이 생겼다. 생각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기도 했다. 필자의 오랜 친구가 어릴 적 트와일라잇에 미쳐 있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살아났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18살짜리 여자애와 뱀파이어, 늑대인간의 삼각관계에 열광하는가? 도대체 그 매력이 무엇인가? 20년 늦게 내 또래가 공유한 컬트적 문화현상에 뛰어들어 보기로 하였다.
연휴를 맞아 이틀만에 5편의 영화를 다 봤다. 그런데…이거…재밌잖아?
그렇다. 재미있었다.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 너 없으면 차라리 죽겠다며 러브 이즈 올을 외쳐대는 주인공의 나이가 한명은 18살, 한명은 16살..(한명은 109살…) 이라는 점이 생각날 때마다 조금 웃기긴 했으나 그건 나이가 들며 시니컬 해진 나의 영혼을 탓하자. 에이, 저런 게 어디 있어. 쟤는 쟤가 왜 저렇게까지 좋다는건데? 얘야, 인생 길다-남자 따라 뱀파이어가 되겠다는 게 말이 되니? 근데 너네 입시 준비는 안 하니?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영원한 사랑’ 을 이루어 내고야 마는 주인공을 보면 묘하게 구미가 당긴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람들이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극단의 낭만성에서 나온다. 시리즈의 서사는 어디 하나 샐 구석이 없는 해피 엔딩을 보여주고, 서사의 설정은 현실이 가져오는 그 모든 찝찝함을 해소하는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 하다. 뱀파이어가 되는 순간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갖게 되며, 뱀파이어는 햇살에 나갈 수 있되 햇살 아래서는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답게 빛난다. 남자주인공과 그의 가족 뱀파이어들은 인간이 아닌 동물의 피만 마시는 소위 ‘채식주의자’들이다. 에드워드와 벨라 사이에서 낳은 딸은 7년만에 25살의 모습으로 자라 불멸의 존재가 되기에 육아로 신혼이 망가지는 일은 없다. 주인공이 자식을 먼저 보내고 영생을 살 필요도 없다. 또, 벨라를 짝사랑하다 외롭게 남겨질 뻔한 친구이자 벨라의 세컨드(?) 제이콥은 벨라의 딸의 운명적 보호자가 됨으로서 그들 곁에 남는다.
'사랑하는 상대의 죽음’ 이외에는 도무지 진지하게 불행이 끼어들 틈이 없는 설정이다. 이런 촘촘한 설정이 세계관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혹자는 인위적이라 비판할 수 있겠지만, 시리즈가 <트와일라잇 공식 설정집> 이라는 책 본권과 비슷한 두께의 단행본이 있을 만큼 자세한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을 바탕으로 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용의 호불호가 어떻든,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소비자들이 시리즈의 서사에 깊이 파고들 만한 풍부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2000년대의 인디- 컬트 문화로 재탄생한 것이다.
시리즈의 설정 중 가장 핵심 명제는 '뱀파이어의 사랑은 영원하다’ 이다. 뱀파이어는 자신의 운명의 짝을 만나면 웬만해서는 영원히 그 사람(?)을 사랑하고, 한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따라 죽거나 미쳐버린다는 설정이다.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며 사는 불멸의 삶이라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낭만적인 세계관이란 말인가. 이처럼, <트와일라잇>의 서사는 ‘낭만적인 영원함’을 바탕으로 수렴한다. 영화의 아주 훌륭한 사운드트랙 역시 이 테마를 중심으로 영화를 장식한다. 영국 락밴드 뮤즈의 디스코그라피 중 가장 로맨틱한 <Neutron Star Collision> 은 “우리의 사랑은 영원하며, 누구 하나가 죽는다면 우리는 함께 죽을 것(Our love would be forever, And if we die, We die together)” 이라 노래하며, 크리스티나 페리의 엔딩곡 <Thousand Year> 은 천년간 당신을 사랑해왔으며, 앞으로도 천년 동안 당신을 사랑하리라 속삭이며 시리즈의 막을 닫는다. ‘Happily ever after’ 의 조건을 완벽히 충족하고, 영원이라는 가능성만을 남겨둔 채로 영화가 끝날 때 많은 사람들이 남몰래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리라 믿는다. 누구나 한번은 영원히 변치 않는 운명적 사랑, 같은 해피 엔딩을 꿈꿔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칼럼의 주제와는 별개의 이야기이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연출과 색감, 촬영 또한 받는 비판에 비해 훌륭하다. 뱀파이어라는 초자연적 존재를 관객이 간접 체험하게 만들기 위하여 특수 촬영 효과와 카메라의 무브먼트(eg. 뱀파이어의 POV샷일 때는 꼭 whip pan을 쓴다) 를 자주 이용하는데, 효과적일 뿐더러 많은 고민의 흔적이 느껴진다. 온전한 판타지의 영역을 현실의 감각으로 들여오기 위하여 쓴 연출이 대부분 훌륭하다. 인물의 불친절한 감정선을 카메라로 표현하여 관객의 몰입을 돕는 연출 또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편의 색감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호기심이 있지만..감독이 하차한 관계로 <뉴문> 부터는 <트와일라잇> 특유의 푸른 색감이 없다.
-
- 넷플릭스 나의 문어 선생님 리뷰!! 절대 상어에게 문어지지마!!!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나의 문어 선생님을 K-문어 선생님과 리뷰 했습니다!
씨네마사지
? 황보랑 영화 보고 싶은 사람 모여라~?? ♀
거리두기 해제 기념 씨네마사지에서 첫 번째 이벤트를 열게 되었습니다 ?
다가오는 5월 18일에 개봉하는 범죄도시2를 황보와 함께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신청해주세요 ↓↓
https://forms.gle/sAATgsdoStRCPH7v8
*신청 마감 5월 6일 금요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
-
-
-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메인 예고편
1957년 뉴욕, 라이벌 갱단인 제트와 샤크 사이의 갈등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
-
- 넷플릭스 <이혼 좀 합시다> 공식 예고편
일본 TV 드라마계의 최정상급 각본가 쿠도 칸쿠로와 오오이시 시즈카. 사상 처음 넷플릭스에서 성사된 이들의 콜라보! 남편은 정치인, 아내는 배우, 결혼 5년 차 쇼지 부부.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지금 위기에 빠졌다. 바람, 불륜 그리고 이혼까지! 둘만의 문제에 주변 사람들이 휘말리며 대소동이 벌어지는데. 이 좌충우돌 이혼극은 어떤 결말을 맞을 것인가? 주연인 마츠자카 토리, 나카 리이사를 비롯해 니시키도 료, 이타야 유카, 야마모토 코지, 후루타 아라타 등 초호화 출연진이 모여 선사하는 울고 웃는 이혼 코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