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4-06-21 23:28:33
빠르고 느리고를 떠나서 그 기억은 오래 남아있다.
<1초 앞, 1초 뒤> 영화 시사회 후기
시놉시스
스메라기 하지메는 남들보다 빠른 사람이었다. 시험을 볼 때나 달리기를 할 때도 먼저였으며 어른이 된 후에 교토의 우체국에서 직원으로 일한다. 한편 초소카베 레이카는 남들보다 느린 사람이었다. 시험을 볼 때도 달리기를 할 때도 느렸으며 모기도 잡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잘할 수 있는 건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이 둘의 만남은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가게 되는데... 과연 어떤 운명을 맞이할까?
둘의 인연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스메라기 하지메와 초소카베 레이카는 어린 시절에 만났던 인연이다. 하지만 스메라기 하지메는 초소카베 레이카를 잊고 지냈고 교토에서 쭉 살았다. 초소카베 레이카는 어렸을 때 부모님과 교토로 여행을 가다가 연쇄 추돌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자신은 병원에서 입원했으며 그때 스메라기 하지메를 만났는데 스메라기 하자메의 다정함에 살 용기를 얻는다.
시간이 흐른 후에 초소카베 레이카는 그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지만 스메라기 하지메는 그 기억을 잊고 살았는데 둘이 다시 만난 건 우체국에서 우연의 사건들의 연속에서 시작되었다. 그 우연의 사건들은 손님이 왕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대학교수가 스메라기 하지메가 일하는 우체국에 와서 난동을 부린 것과 사쿠라코라는 여자 버스킹 가수가 스메라기 하지메에게 도시락을 건네고 오는 순간부터였다. 사실은 초소카베 레이카가 그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우표를 사러 갔었는데 스메라기 하지메는 단순히 손님으로 본 것이다.
스메라기 하지메가 좋아한 사쿠라코라는 여성의 본심은?
사쿠라코라는 버스킹 여자 가수를 좋아하느라 정신이 팔린 스메라기 하지메는 그녀에게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주겠다며 애정 공세를 펼치는데 사실 사쿠라코의 이면에는 남자들을 등쳐먹고 자신의 친구들을 불러 협박하고 거금을 뜯어내는 나쁜 여자였다. 그런 사쿠라코에게 넘어가버린 스메라기 하지메를 구하기 위해 초소카베 레이카는 뒤에서 사진을 찍으며 미행했다.
미행을 당한 걸 들킨 사쿠라코는 초소카베 레이카에게 왜 미행을 했냐며 따지는데 둘은 주점에 가서 얘기를 나눈다. 그런데 싹수가 없는 사쿠라코에게 초소카베 레이카는 스메라기 하지메를 이용하면 안 된다는 경고를 하고 내일 만나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사쿠라코가 스메라기 하지메를 찌질이라며 비아냥 꺼렸기 때문이다. 또한 40만 엔의 거금을 스메라기 하지메에게 뜯어내려고 했었고 자신은 이제 데뷔를 한다며 거만하게 굴었다.
갑자기 시간이 멈춰버린다면?
이 영화에서는 판타지적인 요소도 들어가 있는데 바로 이름의 획이 길거나 느린 사람들에게 신들이 시간을 되돌려 주려고 시간을 멈추어준다는 것이다. 스메라기 하지메의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죽으러 가려고 했지만 시간이 멈춰버리자 그게 마음대로 안됐다고 한다. 초소카베 레이카와 버스 기사만 시간이 멈춘 걸 인식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스메라기 하지메의 아버지도 두 번이나 겪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정작 자신은 가족을 사랑했고 버리고 간 게 아니라는 스메라기 하지메의 아버지는 시간이 또 한 번 멈추자 자신의 아들과 아내에게 할 일을 하고 사라진다.
스메라기 하지메에게 무슨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스메라기 하지메의 사진이 사진관에 떡 하니 붙어있는 걸 보고 스메라기 하지메는 의심을 품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항상 7시 정각에 일어나 출근을 하던 그가 알고 보니 하루 건너 뛴 월요일에 일어났고 사쿠라코에게 줄 40만 엔이 전자레인지에 있었고 자신은 피부가 새빨개 탄 채로 있었는데 그건 시간이 멈춘 날에 초소카베 레이카가 자신을 기억하게 만들려고 스메라기 하지메가 자주 타는 버스에 가자 40만 엔이 든 봉투를 훔치려는 괴한을 막고 3시간이 되는 거리를 버스 기사에게 가달라고 한다. 그곳은 스메라기 하지메가 초소카베 레이카를 기억할 만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초소카베 레이카는 멈춘 스메라기 하지메를 끌고 가 해변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이 영화는 대만의 영화 진옥훈 감독의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원작을 하고 있다. 남들보다 빠른 남자와 남들보다 느린 여자가 어린 시절에 만났지만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여자와 그 기억을 간직하지 못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딱히 로맨스 장면이 크게 나타나지 않지만 그때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고마운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남들보다 빠른 남들보다 느린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기억을 훑어보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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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와 스릴보다 억지와 불쾌함이 남는다면
무언가 내가 굉장히 즐거운 걸 보고 느낀다고 생각되지만 그 이면엔 과연 그 감정이 진심인지 의심된다. 나의 행동은 항상 자유의지에 기인해 작동될 거라 믿지만 그 자유의지마저 무언가의 속임과 꾀임에 넘어간 건 아닐까. 어두컴컴한 동굴을 탐험하던 중 길을 잃었다 좌절하던 찰나 저 멀리 보이는 빛은 실체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희망이다. 출구로의 빛이 아니었다면 희망이라 생각했던 내 감정은 진심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도 내 마음대로 한 것이라 단정할 수 있는가. 어두운 영화관 속 단 하나의 빛으로 관객의 눈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영화는 애초에 속임의 예술이다. 활동사진과 필름의 탄생으로 시작된 눈속임은 별개의 사진들을 연속되는 영상처럼 관객의 눈을 속인다. 중요한 건 영화란 관객을 속여서 만든 예술품이지, 예술을 속이며 만드는 공산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제아무리 영화가 속임의 예술이라 한들, 결국 예술이라는 건 설득과 공유의 창작이지 투자와 산업을 위한 꾀임과 눈속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 <쥬라기 월드 - 새로운 시대>는 내가 지금 굉장히 재밌는 걸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끔 만드는 영화라 생각된다. 새 발의 피를 쥐어짜서라도 자아내려는 긴장감과 수준 높지 않은 유머는 영화관 속 사람의 기분과 뇌를 속인다.
근거와 이유를 알 수 없는 소재들로 무언가 메시지를 받은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무언가 굉장히 재밌고, 의미 있는 작품을 봤다고 스스로 속이게끔 한다.
우선 작품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공룡들의 디자인은 꽤 인상적이다. 돌연변이 공룡의 비주얼은 공포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있어 효율적으로 작동하리만큼 충격적이었다. 또한 이런 호러적인 풍조를 유지하기 위해 채도를 낮췄다는 점 그리고 중간에 환기의 목적으로 들어가는 말장난 사용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재밌지 않으면서도 반복되는 유머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씬들의 연속은 영화가 계획한 그 의도를 부수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조라' 일행이 아닌 4인 가족의 이야기가 대체 왜 등장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공룡들의 피를 추출한다'라는 메인 미션을 해결 해가는 데 있어 어떠한 역할도 수행하지 않으면서도 씬의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 비중은 온통 소위 '발암의 역할'로 이루어져 굳이 저들이 필요했을지 의심됐다. 관객이 인물의 행동에 집중하고 이해하며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으려 영화가 직접 그 인물에 대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한다. 인물의 배경, 특징, 성격 등을 영화에 깊이 있게 다루어내면서 처음 만난 허구의 그 인물을 친숙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서사의 흐름에 있어 중요하지 않은 가족의 일행을 다루면서 정작 영화의 플롯과 전체적인 메시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을 다소 배제해 이해되지도, 하고 싶지도 않은 영화가 되었다.
가족을 영화 속에 투입 이유를 두 가지 정도 예상해 본다. 첫째, 쥬라기 월드 시리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가족애 플롯을 다루기 위함. 만약 이러한 이유였다면 가족을 호감으로 그리거나 아예 주인공 일행을 이 가족으로 설정하지 않았을까? 둘째, 하고 싶은 공룡 액션 연출은 많은데 이를 전부 주인공들에게 부여할 수 없어 분산한 것. 만약 이런 이유였다면 감히 '억지'였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
허구의 세상을 만들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모든 창작물들의 3요소는 '인물, 배경, 갈등' 이 세 가지로 귀결될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각 요소가 산개되면서도 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가장 아름다운 창작물을 만든다고 믿는다. 그러나 본 작품처럼 독단적인 인물을 설정하거나 혹은 인물의 사용 의도가 단순히 다른 요소를 받쳐주기 위해서였다면 그 작품은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없을 거 같다.
앞서 언급한 중구난방식 인물 사용으로 인해 인트부터 쌓아올린 극의 긴장감이 무너졌다. 더욱 아쉬운 건 붕괴의 원인이 단순히 가족들에게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감독과 영화가 무조건 관객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고, 관객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쥬라기 월드'의 IP를 사용하는 작품이라면 그래야 할 이유가 생긴다. 과연 관객들이 각 공룡 간의 싸움 혹은 공룡과 인간 간의 알 수 없는 상호작용 내지는 추격씬 등을 보고 싶어할까 아님 탐구하러 나온 인물들끼리 눈빛을 주고받고, 유머러스하지 않은 농담을 오가며 오직 호러함만을 위해 사용한 인물들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량을 보기 원했을까. 물론 작품 전반적으로 전자가 부족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전자 만큼이나 후자가, 어쩌면 그보다 더 후자의 분량이 많았다는 데에 있다. 극의 오락을 위해 후자를 택하고, 스크린타임의 퍼센트를 투자했다면 그만큼 오락성이 뛰어나야 하지만 물론 그렇지도 않았다.
영화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 단계를 거쳐야 하고, 무사히 탈출하는 것까지가 인물들의 목표이다. 그럼 그 목적은 무엇을 위한 목적이었을까. 인간이 그간 고치지 못했던 불치병을 치유할 신약 개발을 위한다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하나 대체 인간이 어떤 불치병에 걸린 것인지, 약이 정말 효과가 있는 것인지, 신약 개발을 위해 공룡의 DNA만이 해결책인지 의문점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애초에 의문점이 든다는 것 자체가 영화가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배경의 소개와 갈등의 시발점에 대한 설명은 결국 인물의 행동 원인에 대한 이해로 귀결된다. 인물들이 저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경위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작품은 전혀 설명하지 않고, 그저 얼버무림으로 넘기고 하고자 했던 영화의 연출로 넘어간다.
영화 <쥬라기 월드 - 새로운 시대>는 하고 싶은 거 다 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정말 하고 싶은 것만 했다는 데에 있다. 하고 싶었던 공룡의 연출, 공룡과 인간의 추격씬, 인간 간의 갈등, 인간 내의 화합 등을 보여주기 위해 그 인간들에 대한 설명, 공간에 대한 소개,
공룡이라는 특이 소재에 대한 사용 경위를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의 서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들을 오히려 도구화하고, 진행에 있어 오히려 도구가 되어야 했을 연출과 액션씬, 소위 '화려한 것'들을 주된 무기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이 사뭇 재밌어 보일지 몰라도, 무엇이 재밌었는지 생각해 본다면 꽉 차고 단단한 소나무가 아닌 빈 대나무가 연상된다. 작품의 종반부, 신약 개발에 있어 필요한 이 공룡 DNA를 모두에게 뿌리자는 인물들의 기특한 생각도, 이를 계획한 영화와 감독의 공들인 메시지도 그저 뜬구름 잡기에 불과한 것처럼 비친다. 영화를 만드는 데에 있어 절대적으로 잘못된 방식은 있을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것일 수 있다. 또한 틀린 영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영화든 그 영화를 만들고, 제작하고 함께 애쓴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감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그들의 노력을 생각한다면 감히 아쉬울 만한 작품은 있다. 좀 더 안 되었을까, 과연 이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영화 <쥬라기 월드 - 새로운 시작>은 그 아쉬움과 미련이 넘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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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93회 아카데미 예상 수상작은? 해외 매체 전문 기자의 예측!
모든 것이 준비된 상황, 다양한 여성과 유색인종이 후보로 등록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든 오스카에서 다시 한번 놀라운 일이 벌어질 여지는 충분히 있다. 예상 수상자 집계에서 <노매드랜드>가 총 4개의 트로피를 수상할 것을 예상했으며, 그 뒤를 따라오는 故 채드윅 보스만의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총 3개의 트로피를 수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상황 아래, 할리우드 리포트 Variery의 기자 Clayton Davis는 그의 제 93회 오스카 수상작을 하단과 같이 예상했으며, 이 외에도 자세한 수상 예측 작품은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출처: Variety
작품상
Will win(수상할 것): <노매드랜드>
Could win(수상할 수도 있음): <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
Should win(수상해야만 함): <노매드랜드>
Should have been here(후보로 지정됐어야 함): <온워드>
감독상
Will win: 클로이 자오, <노매드랜드>
Could win: 토마스 빈터베르그, <어나더 라운드>
Should win: 클로이 자오, <노매드랜드>
Should have been here: 샤카 킹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남우주연상
Will win: 채드윅 보스만,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Could win: 안소니 홉킨스, <더 파더>
Should win: 채드윅 보스만,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Should have been here: 델로이 린도 <Da 5 블러드>
여우주연상
Will win: 프란시스 맥도만드, <노매드랜드>
Could win: 비올라 데이비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Should win: 바네사 커비, <그녀의 조각들>
Should have been here: 한예리 <미나리>
남우조연상
Will win: 다니엘 칼루야,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Could win: 사챠 바론 코헨,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Should win: 폴 라시, <사운드 오브 메탈>
Should have been here: 엘리 고레 <원 나이트 앤 마이애미>
여우조연상
Will win: 윤여정, <미나리>
Could win: 올리비아 콜맨, <더 파더>
Should win: 윤여정, <미나리>
Should have been here: 제이미 로슨 <페어웰 아모르>
각본상
Will win: <프라미싱 영 우먼>, 에머랄드 펜넬
Could win: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샤카 킹 외 1명
Should win: <미나리>, 정이삭
Should have been here: <위 아 40>, 라다 블랭크
각색상
Will win: <더 파더>, 플로리안 젤러 외 1명
Could win: <노매드랜드>, 클로이 자오
Should win: <노매드랜드>, 클로이 자오
Should have been here: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찰리 카우프만
장편애니메이션상
Will win: <소울>, 피터 닥터
Could win: <울프워커스>, 톰 무어 외 1명
Should win: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댄 스캔론
Should have been here: <7번가 이야기>
씨네랩 에디터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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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 체험으로 태어난 다중인격 히어로의 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런던 대영 박물관의 이집트관 기프트샵에서 일하는 온순한 성격의 직원 '스티븐 그랜트(오스카 아이작)'. 이집트학과 고대 이집트의 신전, 그리고 신들에 대해 공부했지만 끝내 박물관 도슨트가 되지 못한 그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스티븐은 갑작스럽게 고대 이집트의 달의 신 ‘콘슈(F. 머레이 에이브러햄)’를 만나고, 그로부터 또 다른 자아이자 콘슈의 명령을 따라 그의 아바타인 ‘문나이트’로 활동해 온 '마크 스펙터'의 존재를 깨닫는다. 자신에게 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있으며 마크와 몸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달은 스티븐은 마크의 아내인 '라일라(메이 칼라마위)'의 등장과 함께 죽음의 신 '암미트'의 힘을 빌리려는 빌런 '아서 해로우(에단 호크)'를 막기 위해 이집트로 향한다. 그렇게 마크와 스티븐은 자신의 복잡한 정체성 문제를 풀어감과 동시에 강력한 이집트 신들의 미스터리를 파헤칠 여정에 나선다.
등장한 히어로만 30명을 훌쩍 넘긴 가운데, 디즈니+를 통해 공개된 MCU의 새 히어로 '문나이트'가 유달리 큰 관심을 모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다름 아닌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지닌 히어로라는 이유가 커 보인다. 이는 다중인격 연기를 선보인 오스카 아이작의 퍼포먼스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식 억양과 미국식 억양을 자유로이 오갈 뿐만 아니라 불과 몇 초 사이에 전혀 다른 과거를 지닌 두 인격을 오가는 그의 연기는 극의 흡입력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오스카 아이작 연기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작품이 스티븐과 마크의 자아 분열을 다루는 방식이다. 그들의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스티븐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초중반부 에피소드에서의 팽팽한 긴장감과 급박한 템포 덕분에 마크의 시점으로 전환되어 스티븐이라는 인격이 탄생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후반부 반전과 그 임팩트가 극대화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콘슈를 만나는 이 모든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니면 그저 마크/스티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인지를 두고 극 중 등장인물들과 시청자들을 모두 안갯속에 던져 놓는 구성 역시 극에 집중하게 만드는 용도로는 일품이다. 하얀 정신병원 시퀀스처럼.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마크와 스티븐의 서사에 이집트 신화의 요소가 더해졌다는 점이다. 사실 서로 다른 두 인격의 화해를 통해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하나 된 자아로 성장하는 이야기는 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어떤 MCU 작품보다도 종교와 신화의 분위기가 짙은 덕분에 <문나이트>는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개성을 뽐내고 있다. 단순히 이집트 신화의 신들이 등장하고, 피라미드와 왕가의 계곡 등이 배경으로 등장하기 때문은 아니다. <문나이트>는 모든 종교적 체험의 근원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신비 체험'과 마크와 스티븐의 이야기를 연결 짓고 있으며, 이때 이집트 신화는 가장 오래된 종교적 내러티브로서 모든 신비 체험을 상징하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종교학자인 윌리엄 제임스에 따르면 인간 의식은 고정불변의 단일체가 아닌 다양한 상태들로 구성된 일련의 ‘흐름’이다. 이때 평상시의 자아가 아닌 변형된 의식 상태에서 인간은 존재의 궁극적 원인, 궁극적 실재, 자신의 참된 본성 등을 체득하는 '신비 체험'을 할 수 있다. 갑작스럽게 신과 같은 존재를 만나거나 그와 하나 되는 경험을 통해 이전까지 알 수 없었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관상 기도, 만트라와 같은 진언 수행 등의 수행법은 자아의 경계를 무너뜨려 또 다른 의식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또 신비 체험으로부터 체험적 앎과 지상적 삶을 연결시키고, 보이는 차원과 보이지 않는 차원의 관계를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마크와 스티븐의 경험은 그 자체로 신비 체험이자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종교와 신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스티븐의 인격은 수행의 측면을, 콘슈와 직접 만나고 계약을 맺은 후 콘슈의 힘과 갑옷을 얻어 그의 아바타가 된 마크의 인격은 체험의 측면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마크가 입는 슈트와 스티븐이 입는 슈트가 각기 다른 모습을 지니는 이유다. 특히 스티븐의 풍부한 지식 덕분에 암미트의 무덤을 찾을 수 있고, 콘슈와 하나 되어 수천 년 전의 밤의 모습으로 하늘을 되돌리는 장면은 마크와 스티븐이 콘슈와 한 몸이 되는 신비 체험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마크와 스티븐이 콘슈가 말하는 정의에 동의하여 암미트의 정의를 실천하려는 아서 해로우와 대립하는 것은 신비 체험으로 말미암은 사상적, 이론적 측면을 보여준다. 심판과 죽음의 신인 암미트의 저울을 이용해 세상에서 정의를 이루겠다는 아서 해로우는 사람들의 운명이 이미 결정되어 있으므로, 모든 악인과 악인이 될 가능성을 지닌 이들을 제거하여 세상에 균형을 가져와야 한다고 믿는다. 반면에 콘슈와 스티븐 그랜트, 마크 스펙터는 모든 사람에게는 미래에 어떤 선택을 내리고 행위를 할지 결정할 자유가 남아있기에, 오직 악행을 저지른 이들에 한해서만 단죄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들의 차이는 "콘슈가 복수의 주먹으로 벌할 때, 사람들은 이미 다친 뒤야. 암미트님은 이걸 너무 잘 알고, 나쁜 행동을 하기 전에 심판을 내려. 악의 근본부터 잘라내시지"라는 해로우의 대사에 집약되어 있다.
또한 마지막 에피소드의 클라이맥스도 문나이트와 아서 해로우의 대결이 단지 히어로 대 빌런의 가치관 대립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신과의 경험으로부터 말미암은 전쟁임을 환기시킨다. 문나이트는 카이로 시민들의 영혼을 일괄적으로 심판하여 암미트의 힘을 강화하려는 해로우 앞을 막아서는데, 이때 이들 뒤에서는 거대해진 콘슈와 암미트 역시 치열하게 싸움을 펼치기 때문이다. 이 혈투의 끝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암미트가 깨어날 기회조차 다시 주면 안 된다며 해로우를 단죄하라는 콘슈의 명령을 스티븐과 마크는 거부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미래를 단정 짓지 않고 그들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악인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상을 스스로 파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본인들도 콘슈로부터 자유의 몸이 된다. 즉, 콘슈와의 만남을 통해 신의 이상을 현실에서 실천하고, 스스로도 한 단계 성숙해진 인격으로 거듭난다.
이때 마크와 스티븐이 콘슈와 하나 될 뿐만 아니라 현실 너머에 실재하는 저승이라는 초월적 세계를 체험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어릴 적 동생을 잃은 비극에 아파하고, 그로 인해 어머니에게 학대당한 마크. 그는 즐겨 보던 모험 영화의 주인공인 스티븐이라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해 왔다. 그러나 현재의 세계가 아닌 오시리스의 저승을 마주하며 마크와 스티븐은 마침내 서로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두 인격이 몇십 년 간 이어온 갈등을 끝낸다. 그렇게 그들은 신을 매개로 한, 죽음과도 같은 신비적 체험 안에서 하나 된 존재로 거듭나며 자유로이 두 인격을 오가며 히어로의 역할을 완수한다. 이는 가톨릭의 성녀인 '아빌라의 데레사'가 저서인 <내면의 성>에서 "신의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느라 영혼은 육체를 떠난 듯한 감미로운 죽음"을 겪었고, 신과 하나 되는 체험 이후 "모든 일에 있어 스스로 나아가는 것을 느꼈고, 아무리 일을 많이 하고 고생을 하더라도" 영혼의 본질이 분열되는 일이 없었다고 고백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나이트>에서 엿보이는 신비 체험과 종교적 맥락은 단지 종교적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인격을 오가며, 인격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하는 스티븐과 마크의 모습은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그 정도만 상이할 뿐, 여러 개의 자아가 내재해 있는 ‘멀티 페르소나(Multi Persona)’ 현상을 공통적으로 겪는다.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착용한 가면인 페르소나는 사회가 요구한 도덕, 질서, 의무를 따르기 위해 타인에게 보일 이미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본캐 대신 부캐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볼 수도 있다. 반대로 보면 페르소나는 자신의 본성을 숨기거나 억압하는 기제로, 곧 정신분열의 한 양상을 야기할 수도 있다. 본캐인 마크가 엄마로 대변되는 사회적 질서와 억압으로부터 틈을 내서 부캐인 스티븐을 통해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를 풀고자 하지만, 그 결과 마크는 자신의 정체성 자체를 잃을 위기에 처하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삶의 목표와 육체를 스티븐에게 빼앗기고, 거울 속에 갇혀서 진정한 자신의 인생이 아닌 삶을 구경하는 처지가 된다.
‘도구적 이성’과 근대 합리주의에 힘입은 물질적 풍요를 향유하면서도 그 피로감에 괴로워하는 현대인들도 마찬가지다. 문수영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빠른 변화 속에서 표면적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사잇 사람'"이고, 이들은 본질적인 '나'와는 다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수많은 자아를 가진 것과 같이 분열된 삶을 산다. 따라서 현대인의 정신분열적 측면에 대한 경각심과 그로 인한 문제 및 해결책도 제시하는 마크와 스티븐의 서사는 신화와 종교의 내러티브를 빌렸을 뿐, 그 본질은 지극히 현대적인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겪은 콘슈와의 합일 경험, 그리고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경험은 통합되어 성숙해진 자아로의 성장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도구일 따름이다. 콘슈라는 신과의 만남 역시 분열된 인격 간의 인식과 소통을 가능케 한 계기일 뿐이다. 그보다 마크와 스티븐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종교적 방식이든 아니든 분열된 자아를 통합해야만 온전히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특히 쿠키영상에 드러난 세 번째 인격인 '제이크'의 존재가 미리 암시하는 장면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나이트>의 액션 시퀀스에서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카메라 워킹과 순간적으로 단절되는 장면 전환 이후 마크와 스티븐이 모두 의식을 잃은 사이 유혈이 낭자해진 싸움의 현장을 비추는 장면을 접할 수 있다. 이처럼 마크, 스티븐, 제이크 사이의 남은 이야기를 암시하는 편집과 연출, 그리고 쿠키영상의 조합은 분열된 인격의 위험성을 드러내기에 매우 효과적이며, 시청자들에게도 서로 다른 인격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과제의 중요성을 귀띔해주는 듯 보인다.
이처럼 <문나이트>의 주제의식과 메시지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의의를 갖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액션이라는 영역에 한해서는 <팔콘과 윈터솔져> 혹은 <호크아이>와 같은 MCU 드라마들처럼 낮은 퀄리티를 보이기 때문이다. 거대해진 몸집으로 콘슈와 암미트가 육박전을 펼치고 있는데, 마치 옛날 괴수물을 보는 것처럼 지나치게 느리고 단순한 주먹싸움 식으로 연출되어 박진감이 부족한 게 대표적이다. 다양한 능력을 구사하는 문나이트, 라일라, 그리고 해로우 간의 액션씬과 교차되기에 더욱 그러하다. 다만 이 아쉬움이 매번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연출, 예측 불가능한 스토리, 다른 작품들과의 적은 연계로 인한 낮은 진입장벽이라는 장점보다 크지는 않다. 그래서 단독 드라마로 <문나이트>의 완결성에는 호평이 아깝지 않다.
<이터널스> 개봉 당시 케빈 파이기는 MCU를 현대의 그리스 로마 신화로 만들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그 포부는 진정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대신하겠다는 말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수천 년간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것처럼 마블 역시 오랜 기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는 고전이 되어 길고 큰 문화적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의미가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문나이트>의 등장은 케빈 파이기의 포부에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간 MCU에는 다양한 영웅들이 있었다. 사익만 쫓았던 방탕한 인물은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고(아이언맨), 국가의 도구에 불과했던 이는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아갔으며(캡틴 아메리카), 타고난 신분과 운명의 무게에 짓눌리던 이(토르)는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찾아 우주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마냥 비장하거나 엄숙하지만은 않은 영웅상은 알렉산더 대왕이 트로이의 성문 앞에 선 아킬레우스를 동경했듯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제각기 삶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 마크와 스티븐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성장 이야기는 분열된 자아 때문에 괴로워하는 현대인들에게 희망이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게 <문나이트>는 수많은 히어로들의 활약상으로 가득 채워진 마블 스튜디오의 로고, 곧 현대의 판테온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문명, 종교, 신화의 시작점에서 과거의 활기와 신선함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 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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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본드 게섯거라 시에라 식스가 나가신다
당당당당~ 다니엘 크레이그가 저벅저벅 걸어서 갑자기 총 쏘는 자세를 취한다. 카메라는 남자 주인공에게 집중된다. 작년 <007 : 노 타임 투 다이>가 기억난다. 그 전 주까지 <007 : 스카이폴>까지의 정주행을 완료하고 극장에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물론 영화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운 감이 있다. 인트로와 엔딩 빼고는 기억에 하나도 안 남는다. 엔딩도 초반 보자마자 '아 이렇게 될 듯' 싶은 게 적중해서 기억에 남는 것이다. 아. 하나 더 있다. 후반부쯤에 본드가 무릎을 꿇는데 이게 굳이 필요한가? 싶었다. 나중에 후기를 찾아보니 많은 분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있었다;
007 시리즈의 팬 까지는 아니었어도 나름 정주행을 마친 나. 이 시리즈물에 대한 기억은 작년 12월 15일로 옮겨간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지금 생각하면 엔딩이 참 좋았다. 이제는 다들 알고 있을 '두 인물의 등장'을 그렇게 마무리 지은 것 자체는 좋았다. 그 둘이 뭐 또 멀티버스를 연 채로 MCU 세계관에 자리 잡아 숙식하면 좀 깼을 것 같다. 그리고 MCU 피터 파커의 새로운 시작이 색다른 인연으로 인해 벌어진다는 설정은 소년의 성장 서사로서 깔끔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팬이었던 나. 왠지 모르게 가슴이 시원섭섭해서 VOD로 2,3회 차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버키와 샘을 상대하던 장면이 시원시원해 기억에 남았다. 물론 <노 웨이 홈>이 끝나고 생긴 뭉클한 감동도 좋았지만 그런 소소한 액션 신도 시리즈물을 보는 이유이기도 했다. 뭐가 더 중요하고 별로고 할 게 있을까? 영화 왜 보나? 친구들이랑 이야기해서 감상 나누려고 보는 거지. 그리고 그 정말 재밌는 순간들을 만들려면 세계관 연동이라는 방식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어떤 남자가 훈련을 받고 있다. 이 사람은 살인 면허 소지자도 아니고, 강화 인간도 아니며, 외계 종족도 아니다. 이름은 식스. 007은 누가 써서 식스라고 지었댄다. 치앙마이로 날아가 이 남자와 함께 모험을 떠나보자.
예상치 못했던 손님
시에라 식스. 본명은 코트 젠트리. 그는 일을 하고 있다. 일의 정체는 암살이다. 상관 데니 카마이클의 명령에 따라 한 인물을 저격해야 하는 식스. 사람 북적이는 나이트클럽 아래층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다. 카메라가 연결되어 있어서 위층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CIA의 안보를 위해 일하는 식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가는 인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대기한 덕에 저격을 할 타이밍이 왔다. 근데 그때 하필이면 민간인 어린이가 목표 앞에서 얼쩡거린다. 고민하는 주인공. 동료였던 미란다와 이야기도 하지 않고 단독행동을 한다. 은근슬쩍 목표를 암살하랬더니 그냥 대놓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버린다. 대놓고 아수라장을 만드는 식스. 총기 없이 맨몸으로 들어가 목표와 대면한다. 암살 대상을 맨몸으로 제압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암살 대상 캘런 멀베이는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을 고백한다. 자기 역시 시에라 프로젝트의 구성원 중 하나였다고 말하는 멀베이. 금세 코트의 상관 도널드에 대한 정보를 말한다. 또 시에라 프로젝트에 영입되기 전에 어떤 처지에 있던 인물이며 비밀임무 수행을 위한 훈련장소가 어디였는지까지 말해준다. 내부자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정보에 흔들리는 식스. 캘런 멀베이는 식스에게 암살당하며 여러 메시지와 물건 하나를 전한다. 데니 카메이클은 쓰레기이며, 네가 모르는 CIA의 정보가 있다는 말을 귀띔하며 최후를 맞는다. USB를 확인하는 주인공. 그렇게 CIA에게 비밀을 서서히 알아가고자 할 때, 식스는 위기에 봉착한다. 이 비밀의 공개 여부를 두고 전직 CIA 요원 로이드 핸슨의 추격을 받게 된다. 사람 죽이는 것으로는 특화되어있는 로이드. 로이드는 식스와 함께 유럽 전역에서 대결을 펼친다.
무려 제작비 2억 달러
일단 이 영화는 장소를 많이 바꾼다. 치앙마이, 방콕, 프라하, 비엔나 등등 세계 각국을 로케이션 삼아 영화를 제작했다. 단순히 이사만 잘 다닌 게 아니다. 영화 전반적으로 여러 장소를 부순다. 일단 초반부 식스가 캘런 멀베이를 암살하는 신에서는 그 큰 파티장을 묵사발을 내버린다. 다른 지역에 가면 더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부수기 시작한다. 아예 연립으로 주어진 주택(들)을 폭탄으로 콰콰쾅 부숴버린다. 비싸 보이는 차를 부수는 건 일도 아니다. 식스가 하는 직업의 성격상 위험한 일을 하기 때문에 이는 당연하다. 그래서 뭐 유리창이 깨지고 차가 파손되고 이런 건 기본이다. 액션이 쉴 새 없이 계속 이어지는 탓에 일단 지루할 일은 없다.
근데 이런 쉴 틈 없이 파괴되는 건물이 아니더라도 맨몸액션 역시 뛰어나다. 일단 크리스 에반스 액션 잘하는 건 다들 알 것 같다. 기계로 된 수트를 입고 빌런들을 상대하던 아이언맨과는 달리 캡틴 아메리카는 맨몸으로 적을 상대해야 했다. 이 덕에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맨몸 액션이 굉장히 호평을 받았다. 루소 형제와 함께하던 합이 있던 탓인지 하이라이트 신에서 몸을 쓰는 연기는 이 기라성 같은 배우들 중에서 가장 돋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또 라이언 고슬링은 대사 칠 때보다 액션 연기가 더 멋있었다. 이게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고슬링 어깨가 좀 좁아 보였다. 그래서 격투 전에는 뭔가 멋이 안 났다. 그러나 액션 연기에 들어가면 역시 명품 배우다 싶다. 극 중에서 기억나는 이 인물의 설정은 정이 많다는 것이다. 은혜를 갚으려고 하고, 민간인은 피해 가지 않으려고 하는 둥 여러모로 '나쁜 놈만 벌하는' 강박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이를 위해 처리해야 하는 인물(들)에 대한 감정연기가 필수적이다. 어쩔 땐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야 액션 연기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이 역할이 되게 쉬워 보일 수도 있으나 이 어렵지 않은 줄거리를 이끌기 위해서는 이 배우의 호연이 필수적이었다. 총기, 맨몸, 카체이싱, 폭발물 등 다 잘하는 이 배우의 연기는 넷플릭스 구독료가 아깝지 않다. 괜히 비싼 돈 들여서 액션 잘하는 배우 섭외하나 싶다. 이러니까 돈 주고 쓰는 거지.
그리고 이 영화의 호화 캐스팅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지점이 있다. 바로 미란다 역의 아나 데 아르마스다. 일단 처음 등장할 때 꽃무늬로 된 수트를 입고 나온다. 솔직히 쉽지 않다. 이 배우는 좋은 비율과 아름다운 미모로 이를 소화한다. 등장부터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근데 미란다는 곧이어 액션 영화를 보는 많은 분들의 로망을 실현한다. 슈트 입고 맨몸액션을 벌이는데 우리가 홍콩영화를 보며 주윤발이 쌍권총을 날리는 것만큼이나 고대해왔던 장면이다. 되게 잠깐 짧게 샤샥 지나가는데 그 장면 되게 잘 찍었다. <007 : 노 타임 투 다이>에서 잠깐 총기 액션을 보여준 신스틸러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분이 많이 있을 것이다(나도 영화보다 아나 데 아르마스 분량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좋은 액션 연기를 보여줬다. 또한 카메라 구도, 아나의 몸 쓰는 각도, 심지어 괴랄한 의상까지 시너지가 있어 액션 연출에는 도가 튼 루소 형제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납작한 이야기에 부여한 개성
이 영화는 액션이 중요하다. 루소 형제가 감독이고 크리스 에반스와 라이언 고슬링이 나오는 액션 영화면 사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이 문장에는 사실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영화의 이야기는 사실 그렇게까지 개성이 있는 편은 아니다. 솔직히 영화 보면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생각났다. 또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랑도 살짝 비슷하다. 뭔가 <아저씨> 느낌도 있다. 또 있다.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 느낌도 있다. 얼핏 보면 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내러티브를 선택하며 전개하는 이 영화. '이건 몰랐지 이 녀석들아'같이 신선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는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캐릭터들의 뚝심이 정말 중요했다. 그냥 무난하게 싸우는 영화 볼 거면 리암 니슨 아저씨 나오는 액션 영화가 더 박진감이 넘칠 것 같다. 단순히 액션 영화이기 때문에 이야기에 뇌를 비우고 박진감만 있으면 된다? 뭐 당연한 이야기다. 영화 왜 보나? 재밌는 거 보려고 보는 거지. 그러려면 뭔가 기억에 남는 게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이 영화가 다른 영화들과는 갖는 강점이 있다면!
바로 크리스 에반스의 연기다. 일단 로이드가 처음 등장할 때 캡틴 아메리카가 생각 안 났다면 거짓말이다. 난 크리스 에반스를 MCU와 <판타스틱 포> 시리즈에서 알고 있었다. 정의로운 슈퍼 히어로서 열일했던 크리스 에반스. 한 편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되면 얼굴을 기억하는 일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게 씌여있는 이미지를 일단 코디에서 확 바꾼다. 슈퍼마리오 같은 헤어스타일에 콧수염을 기르고 나타났다. 금발에 덩치 좀 있던 근육질의 캡틴 아메리카가 점점 옅어지기 시작한다. 또 감정적으로도 변화된 인물을 연기하기도 한다. 캡틴 아메리카는 진중하다. 어벤저스의 리더로서 영웅들을 이끌어 타노스와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다. 반대로 <나이브스 아웃>의 랜섬은 진중한 나쁜 놈이다. 익살스럽거나 가벼운 느낌이 없지는 않은데 랜섬의 감정선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데 집중했기 때문에 행동과 대사 하나하나가 그 인물을 보여준다. 그래서 후반부에 비교적 힘이 많이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이 로이드는 다르다. 이 배역은 말이 많다. 이상한 유머도 날린다. 식스를 보고 '예쁜이'라고 한다던가 하는 농담을 자주 던진다. 사람 죽이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 이런 맥락에서 소시오패스라는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는 장면도 묘사가 된다. 그러나 이 인물 특성 중 중요한 건 감정을 쉽게 휙휙 드러낸다는 점이다. <나이브스 아웃>에서 흑막이 밝혀지고 랜섬의 입장 변화는 영화에서는 잘 볼 수 없던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화나면 화내고 조롱하고 싶음 조롱한다. 그래서 인물의 순수하게 못돼 쳐 먹은 본성이 잘 드러난다. 이 크리스 에반스의 인물 해석은 이 영화 전반적인 톤을 형성한다. 얼핏 보면 <다크 나이트>의 '조커'와 유사하다. 조커의 광기를 받아치는 브루스 웨인의 리액션이 영화의 줄거리가 된 것처럼, 하나 딱 잡고 그거만 집요하게 파는 인물의 내면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가벼울 땐 인물의 성격을 바탕으로 가볍고, 무거울 때는 크리스 에반스의 맨몸액션 덕에 진중하다. 순수한 악이라고 해서 클리셰를 빗겨나간 것은 아니다. 인물들이 고르는 선택지의 결과는 뻔하다. 그런데 그 과정을 전개하는 방식이 뭔가 다르다고 느껴진다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 나는 이것이 크리스 에반스가 캐릭터 해석을 잘해서 갖는 이점이라 생각한다. <범죄도시>의 '장첸'이 시리즈를 대표하는 광기의 아이콘이 됐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영화에서의 로이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광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낸다.
엥 이거 아는 맛인데
앞에서 이 이야기는 어디서 많이 봤다고 서술했다. 여기에 한 영화를 뺐다. 바로 <범죄도시>다! 루소 형제가 범죄도시 시리즈를 참고해서 이 영화를 만든 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러 부분이 <범죄도시> 시리즈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싸움 잘하는 주인공(마석도-식스)은 공통점이 있다. 식스가 마석도처럼 초반부부터 강하다고 묘사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마석도와 비슷하게 기시감이 든다. 또 말장난하는 신이 있다. 어떤 인물이 식스에게 '왜 식스예요?'라고 묻자 '007은 누가 쓰고 있거든'이라고 대답한다. 또 이런 식으로 로이드나 식스가 말장난을 계속한다. 유머가 뜬금없이 만들어진다던가 그런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이건 마석도와 전일만이 했던 말장난 같은 느낌이다. 또 빌런 캐릭터 둘이 해당 영화의 아이덴티티를 공유한다는 점(장첸-손석구) 역시 공통점이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이 영화가 <범죄도시> 시리즈와 비슷하다고 느낀 점은 따로 있다. 바로 후속작이 나올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일단 영화의 감독이 루소 형제다. 바로 전작에서 영화 시리즈의 선장이었던 두 사람을 섭외했다. 또 시에라 포도 있고 식스도 있다. 이건 007 시리즈의 역대 제임스 본드가 바뀌어왔다는 점을 연상케 한다. 또 조직 내부에 있는 의문의 인물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하이드라'를 연상케 한다. 단일한 작품이 아닌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3편을 할애해서 하이드라 분량을 나눈 만큼 이 부분은 루소 형제가 뭔가를 구상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충분하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영화 예고편에도 나오는 대사 '007은 누가 쓰고 있어서'와 '비공식 임무'라는 단어는 '우리 넷플릭스 판 <007>, <미션 임파서블> 만들 거야!'라고 동네방네 소리 지르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가 일단 액션에는 힘주고 내러티브에 모험수를 두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되긴 한다. 시리즈의 정체성을 규정짓고 시작하기 위해서, 식스(고트)의 성격, 성장배경 묘사와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는 게 일차적인 목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후속작의 전초전으로 생각한다면 사실 그만큼의 역할은 충분히 한다.
그냥 잘 만든 액션 영화
근데 이러나저러나 그건 루소 형제와 넷플릭스 사정이다. 우리는 관객이다. 이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그냥 재밌으면 최고다. 예술 영화 보고 싶으면 넷플릭스에 들어가서 <파워 오브 도그>와 <이제 그만 끝낼까 해>를 보는 게 낫다. 그게 더 걸작이고 좋은 작품이니까. 어차피 액션 영화 보려고 보는 거잖아? 그럼 멋지게 싸우고 이야기는 쉬우며 캐릭터들이 개성 넘치면 그만이다. 영화는 자기 역할에 충실하다. 아나 데 아르마스는 아름다우며, 레게 장 페이지는 섹시하고, 크리스 에반스는 (사견으로) 커리어 하이의 퍼포먼스가 나왔으며 라이언 고슬링은 멋있다. 그럼 뭐 말이 필요한가? 7월 20일 넷플릭스 정식 공개 이후 여러분이 모바일 환경에서 부담 없이 즐기기 좋은 영화가 되는 셈이다. 아. 내가 오늘 이 영화를 보고 온 것처럼 일부 극장에 상영관이 잡히기도 한 것 같다. 웬만하면 극장에서 보시는 걸 추천한다. 사운드 연출에 나름 힘을 준 것 같다. 에어팟으로 듣기에는 좀 아쉽긴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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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2022)> 리뷰
- 다니엘 콴 &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2022)>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없는 시간을 쥐어짜며 두 차례나 볼 만큼 좋았고, 처음 울었던 것과 똑같은 부분에서 눈물을 흘린 영화인데도 주변 사람들에게 제대로 추천하지 못했다. 물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곳곳에 등장한 매니악한 개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이 엄청난 영화를 고작 몇 마디의 말로 응축시키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더글라스 애덤스 식으로 요약하자면 '42'에 대한 영화라고 하겠지만.). 플롯을 설명하려 시도할 때마다 나는 항상 대단한 벽에 부딪혔다. 이 영화는 선형적이지도, 순환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끝나지 않는 하나의 그물망과 같은 영화이므로. 설명하자니 고난 그 자체이지만, 도무지 이야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나는 오늘 감히 불가능한 일을 시도한다.영화의 주인공인 에블린 콴(양자경)은 일상에 지친 중년 여성이다. 남편 웨이먼드 콴(키 호이 콴)은 다정다감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은 영 떨어지고, 하나뿐인 딸 조이(스테파니 수)는 대학교를 중퇴한 후 동성 연인 베키(탤리 메델)와 함께 집을 나가 산다. 에블린의 아버지(제임스 홍)는 자신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에블린을 조금쯤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 보이는데, 콴 부부는 부유하고 여유롭게 살며 능력을 증명하긴커녕 세무조사로 인해 운영하는 코인세탁소마저 가압류 명령을 받을지도 모를 만큼 위태롭다. 설령 실망으로 가득하다 하더라도 에블린 자신이 거듭 선택하고 판단한 삶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녹록지 않은 일상 속에서 피어날 듯 말 듯 한 상상력조차 에블린은 스스로 차단하며 삶에 책임을 지고자 한다. 그런데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다른 우주를 살던 알파 웨이먼드가 나타나 이렇게 속삭인 것이다. 거대한 악, 조부 투파키를 막아야만 해.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어.이미지 출처: IMDb가까운 사이가 친밀한 사이와 동의어가 아니라는 건 이미 영화 <레이디 버드(2017)>가 짚었더랬다. 사랑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어색한 모녀, 그저 딸이 최고의 모습으로 살길 바라는 엄마 마리온(로리 멧칼프)을 떠올려보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에블린 역시 비슷한(그리고 한국인에게 너무도 익숙한) 캐릭터다. 메인 우주 속 에블린은 딸의 동성 연인을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소개하지 않고, 이미 상처 입어 뛰쳐나가는 딸에게 살쪘다는 말을 거침없이 꺼내는 부류의 엄마다. 그렇다면 에블린이 성공한 과학자였던 알파 우주에선 어땠을까? 그는 다중 우주를 넘나들 방법을 개발하던 도중 딸 조이의 정신을 산산이 조각낸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던 딸은 그렇게 모든 장소에, 모든 것을 경험하며,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초월적 존재 ‘조부 투파키’가 되었다. 그러니 사건의 진원지는 알파 우주가 틀림없다. 그런데 영화는 에블린이 성공한 과학자였던 알파 우주를 주요 무대로 삼지도 않고, 조부 투파키의 역사를 구구절절 풀지도 않는다. 알파 우주는 순전히 뒷전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누군가의 파멸을 낱낱이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파멸처럼 보이는 순간이라 하더라도 기실 완전한 끝은 아니라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 세계의 조이를 조부 투파키가 깃들 수 있는 그릇으로 보지 않고 제 딸로만 바라보는 에블린이 있는 한 낙관적인 희망은 유효하다. 지금까지 에블린이 딸을 사랑한 방식이 지극히도 좁은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 조이를 계속 상처입혔을지라도.흥미로운 건 알파 웨이먼드가 묘사한 조부 투파키와 실제 조부 투파키 사이엔 적지 않은 간극이 있다는 사실이다. 알파 웨이먼드는 조부가 목적도 욕망도 없이 모든 것을 파괴하려 한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조부 투파키가 행하고자 한 건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는 악의에 가득 찬 시도가 아니었다. 조부 투파키는 영화 속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자신을 이해해줄 에블린을 찾고 있다고. 그렇다. 다중 우주라는 특수한 무대가 설정되어 있지만 에블린과 조이는 지상에 발붙인 다른 흔한 모녀와 같이, 정체성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흉터에서 발을 구르는 퍽 평범한 사람들이었다.정체성을 공유한다고 표현하기야 했다지만, 에블린과 조이는 매우 다른 사람들이다. 세대는 물론이요, 사용하는 모국어나 성장한 문화적 환경 역시 판이하지 않은가. 그러나 동시에, 에블린과 조이는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두 사람은 부모 앞에서 실패한 딸이라는 속성을 공유하고, 이 씨앗은 두 사람의 심연에 항시 똬리를 틀고 있다. 생각해보자. 알파 우주에서 조이가 분열된 까닭은 에블린이 진행한 실험 때문이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어머니에게서의 인정욕구를 간절히 바랐던 조이의 욕망에 기인하지 않았나. 하지만 두 사람의 욕망이 충돌하는 순간 알파 에블린은 목숨을 잃고 알파 조이는 조부 투파키로 각성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을 뿐 모녀 사이의 교착상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여러 우주를 전전하지만 조부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실패한다. 자신이 갈 수 있는 ‘모든 곳’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했음에도 상대는 변하지 않고 자신은 거부당한다는 결과패만 바라보게 된다. 실망은 축적되고 절망은 베이글을 통한 자기 파멸로 체현된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상실을 경험했음에도, 그러나, 조부는 여전히 에블린에게로 향한다. 어째서일까.이미지 출처: NY Times여기서 잠시 조부가 구현해낸 새카만 베이글에 관해 이야기 해 보자. 사실 베이글이 아니라 도넛이었어도 상관없다. 그 형태가 어떻든 조부가 말하고자 하는 건 변함없을 테니. 모든 것을 올려놓자 새카맣게 타버렸다는 베이글은 새하얗게 스러진 공허를 둘러싼 검은 한계이다. 조부가 외치는 것은 에블린과 함께 자신이 존속함으로써 계속되는 무의미한 세계를 멈추자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의 기대, 새카맣게 타버린 가능성이자 한계를 없애달라는 절박한 요청이었을 것이다.박종천(2020)은 논문을 통해 현상적 불화의 한계에 갇힌 개인이 비가시적인 사랑과 배려를 통해 구원받는 영화적 양상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는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조이-에블린의 관계가 제법 유사해 보인다. 방금 언급한 조부의 베이글은 영화 속에서 몇 차례, 마치 거대한 눈동자처럼 연출되는데, 이는 알파 우주의 조이가 조부 투파키가 되던 순간 잃어버린 눈을 대체하는 듯하다. 하지만 제대로 시야를 확보하고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선 두 개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조이의 여정은 자신이 잃어버린 남은 눈을 찾아 다니는 것일 테다. 영화는 조이가 잃어버린 다른 하나의 눈을 제시한다. 바로 에블린이 이마에 붙인 인형 눈이 그 해답이다. 에블린이 갖게 된 제3의 눈은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하므로.알파 웨이먼드는 여러 우주를 넘나들고, 이 우주의 에블린을 각성시키는 데에 큰 도움을 준 유능한 남자지만 조이를 이해하는 데엔 철저히 실패했었다. 하지만 여러 실망과 실패가 이끌었다는 우주의 웨이먼드는 조이를 아낌없이 포용한다. 그는 에블린에게 말한다. Be Kind. 유약해 보였던 웨이먼드의 굳건한 강령은 에블린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된다. 우주를 넘나드는 싸움을 통해서 해결할 수 없던 교착상태는 웨이먼드 식의 다정함으로 무너진다(사실 이 영화가 불교적 연기론을 상당수 차용한 듯 보이기에 웨이먼드의 대사는 자비를 보이라는 말에 가까우리라 보인다). 갈등이 커지기 직전 역지사지의 자세를 갖추자 세무관인 디어드리 보베어드라(제이미 리 커티스)를 포함한 많은 문제가 싱거우리만큼 부드럽게 해결된다.게다가 Be Kind라는 강령은 비단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충분히 적용된다. 무수한 우주를 유영한 에블린은 비로소 자기 자비를 실천하여 스스로를 구원한다–이는 너무도 어린 청년인 조이에겐 허락되지 않았던, 시간이 남긴 자산이다-. 자신이 열망한 이상향에선 오히려 세탁소를 운영하며 징그러울만큼 아등바등한 삶을 꿈꾸기도 하고, 시력을 잃는 끔찍한 사고는 성공의 발판이 되기도 하는 등,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해 에블린의 시야가 확장되자 그가 평생 품고 살았던 한계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윽고 확장된 ‘모든 곳의 에블린이 가진 모든 것’이 ‘단 한 순간’으로 집중된다. 놀라우리만큼 파괴적인 가능성을 찰나에 집중시키자 에블린이 발견하는 건 단 한 가지다. 가장 순수한 감정. 그러하므로, 한 줌의 시간일지라도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길 거라는 에블린의 고백은 시간을 초월하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이런 제목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너와 여기서, 언제나.이미지 출처: Daily Sabah브라이언 헤어 & 버네사 우즈가 집필한 책 제목,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처럼, 친절은 우주를 막론하고 강력한 힘이다. 그런데 이 말을 꺼낸 건 우주를 한 번도 건넌 적 없는 웨이먼드였다. 그러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가 얼마나 낙관적인 영화인지 새삼스럽게 감탄하게 된다. 각자가 가진 단일한 정체성을 유동적인 정체성으로 변환하는 힘, 피를 나눈 모녀관계라 한들 완벽과 거리가 먼 미완의 관계로 남을 수 있음을 성숙한 자세로 선언하는 힘, 전 우주를 구하는 힘은 버스 점프를 익히지 못한 당신 역시 실천이 가능한 '친절, 다정, 자비, 그리고 공감'이란 테제다. 설령 우스꽝스러운 환경에 처해 있다 해도(핫도그 손을 가진 인류 진화 단계에 들어선 건 아닐 테니!)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가치이지 않은가. 아주, 아주 약간의 따뜻함만 있다면, 문제투성이인 삶조차 충분히 긍정함으로써 모두는 우주를 나를 그리고 당신을 구할 수 있다.<참고문헌>박종천 "불화와 화해의 영화적 변주곡" 국학연구 41 pp.493-535 (2020) : 493.양대종 "허무주의를 대하는 마음의 자세 - 니체 철학을 중심으로" 철학탐구 35 pp.131-161 (2014) :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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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리즈' 시절은 언제일까?
* 이 글은 영화사 진진의 언론/배급 시사회에 참여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약간의 스포일러 주의!
나는 이따금 노년의 나 자신을 떠올리곤 한다.
머리가 희게 세고 얼굴은 주름투성이가 된 나 자신은, 글쎄, 어쩐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 서른이 되어버린 나와 환갑이 되어버린 나의 부모님이 그렇듯, 내가 살아있는 생물인 이상, 별 다른 사고가 나지 않는다면, 노년은 언젠가는 온다. 나도 언젠가는 할머니가 될 거라는 소리다.
우리는 흔히 멋진 노년을 그리곤 한다. 선글라스를 멋드러지게 끼고서 타탄 무늬 스커트를 빼 입은 백발의 멋쟁이 할머니. 그게 내가 막연하게 그리는 할머니인 나 자신이다. 이 상상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숨어 있다. '늙고 초라하고 평범한 할머니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소위 '외롭고 사회에 뒤쳐지는' 슬픈 할머니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소리다. 초라해지고 싶지 않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특별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는 내가 아직 젊어서 가질 수 있는 오만이기도 하다. '나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하는 그 생각에는, '저렇게'에 해당하는 많은 노인들에 대한 멸시 혹은 측은함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나에게는 그런 늙음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처럼.
이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노인과 늙음에 대한 편견과 업신이 도사리고 있다. 국경 밖을 나가도 상황은 비슷하다. 물론, '멋지게 늙고 싶다'는 소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멋진 노년'의 범주를 지나치게 축소해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떤 삶이나 얼마든지 찬란할 수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만 달리한다면!
영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바로 이러한 노년의 '리즈 시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1. 고독과 병듦
남편인 슈지가 세상을 떠난 이래, 모모코의 삶은 단조롭기 짝이 없다. 둘 뿐인 자식은 거의 연락을 하지 않다시피하고, 늙은 몸과 마음은 병들었다. 그녀의 벗이라고는 부산스러운 상상 친구들 뿐이다.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 불 꺼진 부엌에서 저녁을 만들고 늘 하던 대로 텔레비전 앞에 앉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외로운 노인의 삶 그 자체이다. 이렇다 할 말동무도 없는 모모코는 우울하다. 더 이상 잠에서 깨지 않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하고, 언젠가 치매에 걸려 모든 것을 잊을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마음 붙이는 것은 빙하기 이전 지구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그녀는 왜, 이제는 화석이 되어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는 원시 생물들의 역사를 공부하는 걸까? 어쩌면 그녀는 수억 년 전 지층에 묻힌 그들의 처지에 자기 자신의 신세를 대입해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때 찬란했을 역사를 지녔으나 이제는 박물관이나 백과사전에 그저 전시될 뿐인 삶은, 세상과 모모코 자신이 바라보는 '노인 모모코'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2. 어제와 오늘의 찬란함
그런 그녀에게도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정략 결혼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신여성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젊은 여인은 다름 아닌 모모코였다. 젊고 잘생긴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그와 귀여운 자식들을 낳아 삶을 이어나갔던 것도 바로 그녀였다.
영화 곳곳에서 그녀는 그 앳된 시절을 회상하며 그것을 지금의 모습과 대비한다. 그 순진하고 열렬하던 때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모모코는 너무나도 초라해 보인다. 인생의 동반자와 아이들을 위해 전념한 삶 끝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그녀의 인생은 그렇게 쓸쓸하게 종착점으로 향하는 것 같다.
그러나, 모모코는 그 많고 많은 회상 끝에 그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겠노라 결심한다.
이미 죽은 남편이나 실망과 슬픔만을 안겨주는 자식, 혹은 그 어느 찬란한 젊은 날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나아간다. 그것은 고립되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쓸쓸한 노년'이라는 편견에서의 자주와 독립이다. 지금까지의 그녀가 '차마 의지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스스로를 의지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비로소 그녀에게 기꺼이 손을 내미는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모모코'라는 삶의 운전대를 잡아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녀의 공상 안에서, 그녀는 더 이상 화석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매머드이다.
겉보기에 그녀의 삶은 크게 달라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그녀는 여전히 쓸쓸한 독거 노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모모코는 모모코대로 혼자서 전진할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삶은 충분히 '리즈 시절'이리라.
노년의 여인을 소재로 삼고 있는 만큼 영화의 전개나 구성은 매우 단조롭다.
무언가 스펙터클하거나 뚜렷한 기승전결을 바라고 감상한다면 이 영화의 재미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이 영화는 뭐랄까, 좀 슴슴한(싱거운) 집밥 같다. 흰 밥에 절임 반찬 몇 가지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
처음에는 뭐 이런 걸 밥이라고 내놓았나 싶다가도, 오래 씹고 음미하다보면 단맛이 난다.
그러다가 이따금, 짭짤한 무짠지를 아삭아삭 씹는 것같은 절묘함이 스크린을 감싼다.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연출이 바로 이러한 무 짠지 역할을 한다.
처음 스크린 너머로 매머드와 원시인을 보았을 때는 무척 당황했지만, 보다보면 그건 그것대로 별미다.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힐링' 일본 영화가 그다지 취향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보내는 메시지 자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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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주 최신개봉영화(특송, 하우스 오브 구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청춘적니, 클리포드 더 빅 레드 독)
[WEEKEND CHOICE MOVIE] 2022년 1월 2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특송 #하우스오브구찌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청춘적니 #클리포드더빅레드독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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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인사이드 60초 예고편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텐 링즈’의 힘으로 수세기 동안 어둠의 세상을 지배해 온 ‘웬우’
'샹치’는 아버지 ‘웬우’ 밑에서 암살자로 훈련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평범함 삶을 선택한다.
그러나 ‘샹치’는 목숨을 노리는 자들의 습격으로 더 이상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어머니가 남긴 가족의 비밀과 내면의 신비한 힘을 일깨우게 된다
벗어나고 싶은 과거이자, 그 누구보다 두려운 아버지 ‘웬우’를 마주해야 하는 ‘샹치’
악이 될 것인가? 구원이 될 것인가?
마블의 새로운 시대,
세상에 없던 힘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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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실크 로드> 티저 예고편
지금 당장 마약을 흔적 없이 살 수 있다면?
역대급 재능낭비 충격 실화!개인이 마약을 하든 뭘 하든
국가의 통제는 억압이라 생각하는
상위 1% 비합법적 천재 ‘로스’.
뛰어난 두뇌와 치밀한 계획으로
비트코인을 이용해 흔적 없이
마약 쿨거래가 가능한
다크 웹사이트 ‘실크로드’를 만든다.
‘실크로드’로 돈맛을 알고
세상을 향한 X를 날렸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정체불명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