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artist2025-07-06 22:46:15
재미와 스릴보다 억지와 불쾌함이 남는다면
영화 <쥬라기 월드 - 새로운 시작> 리뷰
무언가 내가 굉장히 즐거운 걸 보고 느낀다고 생각되지만 그 이면엔 과연 그 감정이 진심인지 의심된다. 나의 행동은 항상 자유의지에 기인해 작동될 거라 믿지만 그 자유의지마저 무언가의 속임과 꾀임에 넘어간 건 아닐까. 어두컴컴한 동굴을 탐험하던 중 길을 잃었다 좌절하던 찰나 저 멀리 보이는 빛은 실체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희망이다. 출구로의 빛이 아니었다면 희망이라 생각했던 내 감정은 진심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도 내 마음대로 한 것이라 단정할 수 있는가. 어두운 영화관 속 단 하나의 빛으로 관객의 눈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영화는 애초에 속임의 예술이다. 활동사진과 필름의 탄생으로 시작된 눈속임은 별개의 사진들을 연속되는 영상처럼 관객의 눈을 속인다. 중요한 건 영화란 관객을 속여서 만든 예술품이지, 예술을 속이며 만드는 공산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제아무리 영화가 속임의 예술이라 한들, 결국 예술이라는 건 설득과 공유의 창작이지 투자와 산업을 위한 꾀임과 눈속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 <쥬라기 월드 - 새로운 시대>는 내가 지금 굉장히 재밌는 걸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끔 만드는 영화라 생각된다. 새 발의 피를 쥐어짜서라도 자아내려는 긴장감과 수준 높지 않은 유머는 영화관 속 사람의 기분과 뇌를 속인다.
근거와 이유를 알 수 없는 소재들로 무언가 메시지를 받은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무언가 굉장히 재밌고, 의미 있는 작품을 봤다고 스스로 속이게끔 한다.
우선 작품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공룡들의 디자인은 꽤 인상적이다. 돌연변이 공룡의 비주얼은 공포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있어 효율적으로 작동하리만큼 충격적이었다. 또한 이런 호러적인 풍조를 유지하기 위해 채도를 낮췄다는 점 그리고 중간에 환기의 목적으로 들어가는 말장난 사용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재밌지 않으면서도 반복되는 유머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씬들의 연속은 영화가 계획한 그 의도를 부수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조라' 일행이 아닌 4인 가족의 이야기가 대체 왜 등장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공룡들의 피를 추출한다'라는 메인 미션을 해결 해가는 데 있어 어떠한 역할도 수행하지 않으면서도 씬의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 비중은 온통 소위 '발암의 역할'로 이루어져 굳이 저들이 필요했을지 의심됐다. 관객이 인물의 행동에 집중하고 이해하며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으려 영화가 직접 그 인물에 대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한다. 인물의 배경, 특징, 성격 등을 영화에 깊이 있게 다루어내면서 처음 만난 허구의 그 인물을 친숙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서사의 흐름에 있어 중요하지 않은 가족의 일행을 다루면서 정작 영화의 플롯과 전체적인 메시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을 다소 배제해 이해되지도, 하고 싶지도 않은 영화가 되었다.
가족을 영화 속에 투입 이유를 두 가지 정도 예상해 본다. 첫째, 쥬라기 월드 시리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가족애 플롯을 다루기 위함. 만약 이러한 이유였다면 가족을 호감으로 그리거나 아예 주인공 일행을 이 가족으로 설정하지 않았을까? 둘째, 하고 싶은 공룡 액션 연출은 많은데 이를 전부 주인공들에게 부여할 수 없어 분산한 것. 만약 이런 이유였다면 감히 '억지'였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
허구의 세상을 만들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모든 창작물들의 3요소는 '인물, 배경, 갈등' 이 세 가지로 귀결될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각 요소가 산개되면서도 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가장 아름다운 창작물을 만든다고 믿는다. 그러나 본 작품처럼 독단적인 인물을 설정하거나 혹은 인물의 사용 의도가 단순히 다른 요소를 받쳐주기 위해서였다면 그 작품은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없을 거 같다.
앞서 언급한 중구난방식 인물 사용으로 인해 인트부터 쌓아올린 극의 긴장감이 무너졌다. 더욱 아쉬운 건 붕괴의 원인이 단순히 가족들에게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감독과 영화가 무조건 관객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고, 관객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쥬라기 월드'의 IP를 사용하는 작품이라면 그래야 할 이유가 생긴다. 과연 관객들이 각 공룡 간의 싸움 혹은 공룡과 인간 간의 알 수 없는 상호작용 내지는 추격씬 등을 보고 싶어할까 아님 탐구하러 나온 인물들끼리 눈빛을 주고받고, 유머러스하지 않은 농담을 오가며 오직 호러함만을 위해 사용한 인물들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량을 보기 원했을까. 물론 작품 전반적으로 전자가 부족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전자 만큼이나 후자가, 어쩌면 그보다 더 후자의 분량이 많았다는 데에 있다. 극의 오락을 위해 후자를 택하고, 스크린타임의 퍼센트를 투자했다면 그만큼 오락성이 뛰어나야 하지만 물론 그렇지도 않았다.
영화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 단계를 거쳐야 하고, 무사히 탈출하는 것까지가 인물들의 목표이다. 그럼 그 목적은 무엇을 위한 목적이었을까. 인간이 그간 고치지 못했던 불치병을 치유할 신약 개발을 위한다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하나 대체 인간이 어떤 불치병에 걸린 것인지, 약이 정말 효과가 있는 것인지, 신약 개발을 위해 공룡의 DNA만이 해결책인지 의문점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애초에 의문점이 든다는 것 자체가 영화가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배경의 소개와 갈등의 시발점에 대한 설명은 결국 인물의 행동 원인에 대한 이해로 귀결된다. 인물들이 저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경위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작품은 전혀 설명하지 않고, 그저 얼버무림으로 넘기고 하고자 했던 영화의 연출로 넘어간다.
영화 <쥬라기 월드 - 새로운 시대>는 하고 싶은 거 다 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정말 하고 싶은 것만 했다는 데에 있다. 하고 싶었던 공룡의 연출, 공룡과 인간의 추격씬, 인간 간의 갈등, 인간 내의 화합 등을 보여주기 위해 그 인간들에 대한 설명, 공간에 대한 소개,
공룡이라는 특이 소재에 대한 사용 경위를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의 서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들을 오히려 도구화하고, 진행에 있어 오히려 도구가 되어야 했을 연출과 액션씬, 소위 '화려한 것'들을 주된 무기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이 사뭇 재밌어 보일지 몰라도, 무엇이 재밌었는지 생각해 본다면 꽉 차고 단단한 소나무가 아닌 빈 대나무가 연상된다. 작품의 종반부, 신약 개발에 있어 필요한 이 공룡 DNA를 모두에게 뿌리자는 인물들의 기특한 생각도, 이를 계획한 영화와 감독의 공들인 메시지도 그저 뜬구름 잡기에 불과한 것처럼 비친다. 영화를 만드는 데에 있어 절대적으로 잘못된 방식은 있을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것일 수 있다. 또한 틀린 영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영화든 그 영화를 만들고, 제작하고 함께 애쓴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감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그들의 노력을 생각한다면 감히 아쉬울 만한 작품은 있다. 좀 더 안 되었을까, 과연 이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영화 <쥬라기 월드 - 새로운 시작>은 그 아쉬움과 미련이 넘치는 작품이었다.
- 1
- 200
- 13.1K
- 123
- 1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