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07-01 07:37:25
카메라는 무엇을 하는가, 그리고 할 수 있는가
영화 〈다섯 번째 방〉

자기만의 방.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누구도 돌볼 필요 없이,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 가족과 함께 사는 여성들이 여간해서는 갖기 어려운 공간. 〈다섯 번째 방〉은 카메라를 든 딸이 자기만의 방을 찾아 나서는 엄마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여성이 집, 공간, 가족과 맺는 관계를 위태로울 정도로 솔직한 자기/가족 고백과 함께 드러내 보인다.
딸(감독)은 조부모 때부터 50년간 산 2층 주택에서 자랐다. 엄마가 할머니의 양보로 집에서 가장 넓은 안방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아빠가 사업이 망한 후 일용직으로 근근이 노동을 이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엄마가 집에서 유일하게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방에서 안방으로 옮긴 엄마는 자기만의 방을 얻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엄마는 집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가사노동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다른 많은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집에서 가사노동은 분담되지 않고 아빠와 할머니가 엄마에게 ‘도움’을 주는 일로 여겨진다. 프리랜서 상담가, 강사로 일하는 엄마는 수시로 드나드는 가족 때문에 업무를 준비할 때조차 일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한다.


엄마는 이 집에서 수십 년을 살았는데도 늘 ‘얹혀사는 사람’, ‘빌붙어 사는 사람’이라 느꼈다. 집의 주인이자 (시가) 가족의 일원이라는 감각을 갖지 못했다. 할머니 명의로 된 집이 언젠가는 부부의 집이 되리라는 믿음이 엄마를 버티게 한다. 엄마에게 집의 상속은 단순히 재산의 문제가 아니라 주인 됨과 가족의 일원이라는 감각, 나아가 오랜 시간 시부모를 모시고 가족을 부양한 데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그러나 이 믿음이 무너진다. 감독의 고모이자 엄마의 시누이 중 한 명이 할머니에게 집의 상속 지분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현재 사는 집에서는 평생 ‘나’로서 존재하지 못할 거라는 엄마의 불안이 증폭된다.*
자기만의 방을 향한 엄마의 여정이 본격화된다. 모든 가족이 쉬이 오가던 안방 대신 2층으로 올라가 작업실을 꾸리는 것. 그러나 층의 분리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한다. 아빠는 이전처럼 수시로 엄마의 작업실에 드나들고 엄마의 답답함도 점점 커진다. 할머니가 가꾸는 2층 텃밭 한편에 허브를 심는 것조차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엄마에게서 결혼 후 쭉 살아온 집이라는 공간이 엄마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엄마는 어느 순간 판단을 내린다. 이 집에서는 자기만의 공간을 가질 수 없다고.

1층 구석의 첫 번째 방, 경제력을 획득한 이후의 두 번째 방(안방), 작업실로 꾸민 세 번째 방(2층 방)에 이어 빌라로 이사해 네 번째 방을 마련하는 엄마. 영화가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지만, 엄마의 짐에 여러 살림살이까지 포함된 것을 보면 엄마가 단순히 상담실만 꾸리기 위해 빌라로 온 것 같지는 않다. 때때로 폭력적으로 구는 아빠를 달래고 중재하는 일에 지친 엄마는 직업 활동뿐 아니라 가족을 돌보고 중재하는 데 소모된 자기감정을 지키기 위해서도 네 번째 방을 구한 것으로 보인다. 완전한 자기만의 방으로서 다섯 번째 방이 제시되지 않는 이유는 다섯 번째 방은 앞으로 엄마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의 방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그려내는 서사는 오래됐지만 해결되지는 않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여성들에게 화두일 공간과 정체성의 문제를 질문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허나 더 흥미로웠던 건 영화에서 카메라가 맡은 역할이었다. 영화의 빌런은 명백하다. 물질적, 감정적으로 엄마에게만 기대면서도 때때로 폭력적으로 굴고 엄마의 직업적, 인격적 경계를 수시로 침범하는 아빠. 그런 아빠의 모습을 딸인 감독이 담아낸다. 집의 상속 지분을 자신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고모에게도 물려준다고 선언하는 할머니에게 서운함을 표현하는 엄마, 장인어른의 장례식장에서 만취해 다른 가족과 다툼을 벌이는 아빠를 다그치는 엄마, 가족회의에서 다른 가족 구성원이 아빠에게 그의 폭력적인 모습을 성토하는 순간 등등에 감독과 카메라는 함께 존재한다. 그가 카메라를 든 감독인 동시에 가족의 딸이기 때문이다.

이때 카메라는 수동적, 객관적 관찰자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딸과 카메라는 하나가 되어 기록하는 동시에 개입한다. 딸/카메라는 엄마를 응원하지만 아빠를 이해하고 용서하기는 어렵다. 영화에는 거칠게 행동하는 아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공개하는 일에 대한 딸/카메라의 고민이 묻은 장면이 종종 나온다. 특히 인상적인 건 장례식장에서 엄마와 말다툼하는 아빠의 모습을 찍은 촬영본을 아빠에게 직접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빠는 그 장면을 보며 멋쩍게 웃으며 ‘네 영화에서 난 항상 악당이다’라고 말한다. 딸/카메라가 아빠에게 객관적 성찰의 계기를 주는 것이다. 딸/카메라에 영향받는 건 엄마도 마찬가지다. 다음 방을 찾아 나서는 엄마의 여정 매 단계에 딸/카메라가 함께한다는 데서 가족에게 거리감을 두려는 엄마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을 거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요컨대 딸/카메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증폭하고 아빠에게 성찰을 촉구하며, 엄마가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을 촉진한다. ‘관찰하기만 하는 카메라’가 아닌, 카메라가 행위자 역할을 한 영화는 이전에도 많았다. 하지만 이처럼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며 서사의 동력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카메라의 역할과 능력에 관한 유의미한 참조점이 되어줄 영화다.
*고모의 생각과 입장도 궁금하다. 엄마가 집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믿는 데에는 남편이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세 딸 중 한 명이 부모에게 집에 대한 권리 중 일부(25%)를 요구한 것이 과연 그렇게 잘못이기만 할까 싶었다. 가부장적 가족관계, 상속 관계에서의 을들의 부딪힘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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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개봉 20일째인 11일 오전 누적 관객 수 7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천만 영화를 향해가고 있는 <서울의 봄>이 개봉 3주차에도 150만여 명의 주말 관객 수를 끌어모으며 식을 줄 모르는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한편<노량: 죽음의 바다>가 오는 20일에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요.
과연 오랜만에 붐비는 극장의 관객들을이어서 가져올수 있을까요?
개봉 3주 차를 맞이한 <서울의 봄>의 화력은 꺾일 기세를 보이지 않고 주말 관객 수 15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11일 누적관객 수 7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올해 두 번째 1000만 영화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지난 6일 날 개봉한 <3일의 휴가>, <나폴레옹>이 <서울의 봄>을 꺾지 못하면서 나란히
2,3위를 차지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북미 공개 첫 주에 매출액 1000만 달러를
넘겼습니다. 일본에서 지난 7월 공개되어 약 754억원의 매출액을 벌어들였고, 국내에서는 지난 10월에
개봉하면서 199만명을 기록중입니다. 한편 영화 <트롤: 밴드 투게더>가 전 세계 13개국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하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위시>를 꺾고 흥행 반전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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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계+인 1부 (2022)
* <외계+인 1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외계+인 1부 (2022)
감독: 최동훈
출연: 류준열, 김우빈, 김태리, 소지섭, 염정아, 조우진, 김의성, 이하늬, 신정근 등
장르: SF, 액션, 판타지
러닝타임: 142분
개봉일: 2022.07.20
한국판 어벤져스를 향한 최동훈의 염원
<외계+인>은 2022년 현재와 1391년 과거의 시간대를 오가며 외계인 죄수들에 맞서는 주인공들을 중심으로이야기가 펼쳐진다. 우주의 다른 행성에서 온 ‘가드(김우빈)’와 ‘썬더(김대명)’는 인간의 몸 안에 갇힌 외계인 죄수들의 탈옥을 막는 관리자로서 지구에서 살고 있다. 하루는 과거의 시간대에서 탈옥범을 잡다가 버려진 아이를 구하게 되고, 아이와 함께 계획에 없던 가족의 형태를 이루게 된다. 한편, 630년 전 고려의 시간대에서는 얼치기 도사 ‘무륵(류준열)’, 천둥을 쏘는 처자 ‘이안(김태리)’이 각자의 이유로 신검을 손에 넣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삼각사의 신선 ‘흑설(염정아)’와 ‘청운(조우진)’, 그리고 가면을 쓴 도사집단의 수장인 ‘자장(김의성)’도 쟁탈전에 가세하면서 큰 싸움으로 번진다. 모두가 노리는 신검이 사실 외계인의 비밀과 연관되어 있음이 조금씩 밝혀지게 되고, 이안과 무륵의 오래 전 서사가 풀리면서 2부에 대한 궁금증을 안긴 채 1부는 마무리된다.
최동훈 감독에게 걸었던 부푼 기대
<외계+인>은 <타짜>, <도둑들>, <암살> 등으로 이어져 온 대중오락영화의 거장 ‘최동훈’이 7년만에 공개하는 신작이자 아직까지 한국에서 많이 시도된 적 없는 400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SF 판타지 장르의 영화, 그리고 내로라 하는 주연급 배우들을 내세운 멀티캐스팅 작품이라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한국형 어벤져스’를 꿈꾸었다던 최동훈 감독의 상상력에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현재와 과거의 시간대를 오가는 외계인을 소재로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했으며 2부에 걸쳐서 공개해야 할 정도로 방대한 서사를 갖고 있어 기술력 자랑에만 그쳤던 실패한 한국 SF 영화들과 분명한 차이를 형성한다. 비교를 하자면, 그래픽 한정으로는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와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수준이지만 내러티브와 캐릭터성 면에서는 <외계+인>이 월등히 낫다.
커진 규모 속 장기를 잃다
하지만 이를 재미나 높은 완성도와 직결시키기는 어렵다. 본작은 과거를 무대로 한 무협 활극과 2022년을 배경으로 한 SF 액션물 두 가지 플롯으로 이뤄진 작품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도 많고, 중심 사건은 끊이지 않으며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 <전우치>나 주성치의 작품들이 떠오르는 고려 시대 부분은 전반적으로 코믹하고 가벼운 톤을 유지하는 반면 외계인의 우주선과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현재 신은 상대적으로 무겁고 전투의 스케일이 크다. 이렇듯 두 개의 플롯이 풍기는 분위기가 지나치게 상반되다 보니 하나의 작품에서 매끄럽게 어우러지는 느낌을 주지 않고 어느 장단에 맞춰야 될지 모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혼란이 가중된다. <승리호>, <쿵푸 허슬>, <전우치>, 그리고 MCU 영화의 요소를 모두 찾을 수 있는 작품일 정도이니 끔찍한 혼종이라고 느끼기 십상이다.
러닝타임은 한정적인데, 풀어나가야 할 이야기는 많아 인물들이나 배경 설정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고 넘어가는 부분들이 많다. 물론 스토리가 어려운 것은 아니라 이해에 불편을 주지는 않지만 장면들이 휙휙 넘어가는 식이라 전환이 어수선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친절한 전개를 보여주는 와중에 정작 이야기의 속을 채운 알맹이는 꽉 차 있지 않다. 굳이 1-2부를 나눠야 했을까 싶을 정도로 질질 끄는 부분들이 많고 관객은 이미 20-30분 전에 알아챘을 법한 내용을 등장인물은 한참 뒤에 깨닫는 식이라 지루한 구간도 있다. 한마디로 배경이나 인물 서사에 대한 설명은 부족한데, 사건들에 과도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편집을 루즈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시도해 보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 감독의 의도는 알겠으나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보니 감독 특유의 리듬감 넘치는 전개와 센스마저 자취를 감췄다.
최동훈의 매직도 안 통하는 캐릭터들
‘최동훈’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 구축에 굉장한 강점을 가진 감독이다. 이미 <타짜>, <도둑들>, <암살> 같은 대표작들을 통해 수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도 주연과 조연, 하물며 특별출연까지도 관객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캐릭터성을 부여할 정도로 다채로운 인물 표현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외계+인>에서만큼은 그의 이러한 역량이 전부 발휘되지 않은 느낌이다. 이번에도 역시 조연과 특별출연까지 인지도가 높은 배우들을 기용했지만 톡톡 튀는 매력을 보이는 배역은 의외로 많지 않다. 1부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가져간 ‘김우빈’, 그리고 <미스터 션샤인>에 이어 또 한 번 사격 액션으로 카리스마를 뽐낸 ‘김태리’는 개성이 부족한 캐릭터를 배우들이 가진 힘으로 끌고 가는 듯하며 빌런으로 분한 ‘소지섭’과 ‘김의성’은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기에 존재감이 부족하다. 극중 최강의 개그 콤비로 활약한 ‘염정아-조우진’만이 빛을 발할 뿐이며 허술하지만 능글 맞은 도사 캐릭터로 액션 활극을 이끈 ‘류준열’ 정도가 제몫을 다한다. 특히 현대 파트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서사가 크게 아쉽고 어린 ‘이안(최유리)’과 ‘가드(김우빈)’의 관계는 지나치게 한국적이라 식상했다.
나쁘진 않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기술력
매번 국내에서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SF 영화가 나올 때마다 ‘한국에서 이 정도 기술력을 구현했다는 게 대단하다’, ‘시도에 의의가 있다’라는 식으로 부족한 완성도를 감싸며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외계+인>의 CG 기술력은 대체로 호평하는 분위기고 개인적으로도 나쁘지는 않았다. 특히 ‘가드(김우빈)’의 전투용 슈트는 초기 ‘아이언맨’의 수트를 떠오르게 했는데, 매번 외화에서 레퍼런스를 삼아 왔던 감독의 특징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서울 도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공중 액션신은 이제껏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화려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전투 장면이었으며 MCU의 멀티버스와 닮은 차원 이동도 유치하게 표현되지 않았다. 다만 빌런으로 등장한 외계인들의 조악한 비주얼은 참신함이 부족해 보였고, 가드와 전투를 벌이는 로봇도 여전히 깡통 로봇 수준의 디자인이라 한숨이 나왔다. 물론 국내 영화에서 MCU 수준의 멋스러운 캐릭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류의 영화가 제작될 때마다 로봇이나 빌런을 시각화 하는데 왜 매번 안일한 기획력을 보여주는지 의문이다.
후속작으로의 불안한 진입
<외계+인> 1부는 끝이 났지만, 사실 1부는 2부를 위한 빌드업일 뿐이며 본편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마치 <듄>이 1편에서 세계관과 등장 인물들의 초기 서사만을 설명하며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만 남긴 채 끝났던 것과 유사하다. 스토리의 부족한 재미, 난잡한 구성, 초중반까지의 지루한 전개 때문에 2편에 대한 기대감을 만드는데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모든 인물들이 한데 모이는 후반부에 극의 텐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면서 속편에 대한 궁금증을 미약하게나마 남겼다. 소재가 ‘외계인’인 영화인데, 아직 외계인과 주인공의 대립은 출발선에 그대로 놓여 있으니 이후의 내용이 어떻게 흘러갈지 안 궁금해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부에 크게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나는 2부를 보러 갈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2편으로 이어지는 선로를 워낙 부실하게 건설한 터라 1부를 감상한 관객들 다수가 2부가 개봉할 때도 극장으로 향할 지는 의문이다. ‘한국형 어벤져스’를 만들겠다는 드높은 야심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이지만 현재로서는 최동훈 감독 커리어 사상 최악의 패착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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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에 가장 어울리는 두 단어는 '로맨틱'과 '코미디'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받은 시사회 초대장에 근거해 작성했습니다.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지루한 일상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핀란드 어느 곳에 사는 평범한 여성 안사다. 매일같이 일만 해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안사. 하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노숙인들에게 폐기해야 할 샌드위치를 줬고, 관리자가 이를 이유로 그녀를 해고했다. 쓸쓸한 안사. 이미 지친 안사에게 위로가 필요하다. 재미있는 일을 만들기 위해 아는 언니와 펍으로 향한다.
영화의 시점이 반대편으로 돌아간다. 남자 홀라파는 공장 여기저기를 다니는 노동자다. 공장 안에 있는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홀라파. 어느 날 같이 일하는 형이 달콤한 제안을 건넨다. “여자 만나러 펍에 갈래? 노래도 부르고 하는 거지.” “상남자는 노래 안 합니다.” 일단 튕기고 보는 홀라파. 하지만 자연스레 홀라파는 펍에 도착했다. 일행이었던 형이 어떤 여자에게 작업 거는 걸 옆에서 바라본다. 하지만 동시에 홀라파의 사랑이 시작되고 있었다. 안사를 보고 반한 홀라파. 두 사람의 사랑이 낙엽을 타기 시작한다!
로맨틱하다
이 영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단어는 ‘낭만’이다. 이 영화는 영화가 가질 수 있는 낭만으로 가득하다. 이 영화가 상정한 낭만은 사랑의 힘이다. 영화는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기본적인 설정부터 평범한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영화의 모든 미덕이 여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만약 두 사람이 재벌 3세쯤 됐다면 관객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 돈이 많았으면 서로에게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고, 인맥이 좁아서 서로 다 알았을 것 같다. 또 그만큼 인물이 고를 선택지가 넓어지기 때문에 플롯에서 이것들을 다뤄야 할 당위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영화는 노동자 둘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게끔 이야기를 설정한다. 그런데 또 생략하고 싶은 것들은 아예 빼버렸다. 인스타그램/페이스북? 없다. 뉴스를 들을 때 어떻게 들을까? 라디오다. 심지어 두 주인공은 마블 영화같이 CG가 많이 들어간 작품들 안 본다. 짐 자무쉬 영화 본다. 이런 것들은 감독이 철저하게 사람과 사람사이에 오고 가는 온정을 보여주기 위해 넣은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통일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또 영화가 '영화'라는 예술을 사용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영화의 의미를 현실을 잊고 아름다운 세상에 잠시 도피하는 탈출구로 보고 있는 듯하다. 대표적으로 짐 자무쉬의 이 영화를 틀고 나서 어떤 인물이 내보이는 반응이 그 근거다. 좀비와 누벨바그 거장은 멀리 떨어져 있어 거리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 인물은 나름대로 영화를 즐겼을 것이다. 단지 누구보다 잘 즐기는 방식 중 하나로 허세 부리기를 선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감상을 삼삼오오 모여 나누는 것도 예술이 있는 이유다. 작품을 통해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것이다. 영화는 예술의 이 단면을 포착해서 이야기 안으로 집어넣었다. 예술이 가진 온기를 직접 관객에게 보여준 것이다.
이 영화가 가진 다른 특이한 점은 시간적 배경이다. 사실 어떤 관객들은 2024년이라는 배경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영화가 명시하는 구체적인 시점과는 정반대의 일들이 이야기 안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목적 중 하나는 지친 현실을 겪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가?를 형상화하는 데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 현실과 예술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데, 현세태의 관객들에게 이 라디오 뉴스는 두 세계를 가로지르는 구분선이 되기 충분하다. 영화가 두 가치를 대조하기 위해 시간적 배경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 시간적 배경과 인물들의 리액션을 우화처럼 읽는 것을 추천드린다. 이거 영화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내내 사랑스러워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유를 시/청각적인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선 시각적인 측면이다. 이 영화는 빛이 바랜 것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가령 제목에서도 읽을 수 있는 낙엽이라는 소재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해도 무방하다. 보통 낙엽이 진다는 건 가을에서 겨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시기의 끝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낙엽을 반대로 표현하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담배꽁초 역시 마찬가지다. 담배꽁초도 누가 다 쓴 것이라는 점에서 소멸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야기에서 들어간 방식은 정반대다. 이런 사소한 의미부여가 별 것 아닌 거 같아 보이지만 영화의 낭만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는 필수적이다. 감독이 자그마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처럼
미장센의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 영화는 강박적으로 대칭을 고수하고 있다. 색감을 활용하는 방식도 동화 같다. 이런 연출법을 고수한 이유는 관객을 몰입시킴과 동시에 동화 같은 분위기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화면이 나타나야 할까? 가장 쉬운 방법은 영화가 인위적으로 조형됐다는 걸 강조하면서 시각적인 집중도를 높이는 게 최선일 것이다. 영화는 이런 목적으로 강박적인 미장센을 고수하고 있다. 부드러운 색감, 안정적인 대칭 등 눈을 편안하게 만드는 장면 연출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글쓴이는 특히 시각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방식에 대해 더 강조하고 싶다. 강아지와 대화하는 장면, 홀라파와 안사가 데이트하는 장면 등 별 것 아닌 거 같으면서도 재미있는 감독의 센스가 돋보였다.
이 영화의 톤을 유지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와 삽입곡이다. 이 영화에서 배우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연기한다. 어떻게 보면 고전 멜로 영화에서 봤던 연기가 이 작품에서도 오롯이 나타난다. 이는 이 영화의 코미디 요소로 작동하기도 한다. 뚱한 표정과 뭔가 뚝딱거리는 동선으로 기계적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인물들은 시종일관 내내 말장난을 하며 관객을 웃기려고 한다. 이 둘이 묘한 불협화음을 내는데, 이것에서 풍기는 매력이 영화의 원동력이 된다. 아, 이 영화의 번역가분이 제 몫을 톡톡히 해내셨다. 올해의 번역상 드린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삽입곡들도 허투루 쓰인 것이 없다. 이 영화는 배경음악으로 클래식을 삽입하며 고전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어느 장면에선 가사로 인물의 내면을 설명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단편소설 하나 본 듯
이 영화의 단점은 딱히 없다. 굳이 뽑자면 이야기 전개다. 상대적으로 잔잔하기도 하고 우연에 의존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는 있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런 전개가 영화 보는데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원래 감독을 비롯한 모든 예술가들에겐 목적이란 게 있지 않나. 이 영화는 이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감독이 여러 요소들을 끌여들였다. 하지만 탄탄한 연출력에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 모든 것들이 한 가지의 맥락에서 빛을 발하면서 좋은 우화를 관객들에게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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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엔딩이 아닌 새로운 챕터의 시작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나고, 얼굴만 바라 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때가 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방금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와 또 전화기를 붙들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 그 사람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냐고 묻는 말에 “그냥 좋으니까, 다 좋다.”고 대답했던 설레는 시간을 지나, 이런 점은 이유 없이 좋고, 저런 점은 제법 괜찮은 것은 같고, 그래도 참아 줄만한 단점과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바꿔 보고 싶은 그런 성격들이 대충 파악이 되었다고 말도 안되는 자만심으로 “이 사람을 알만큼은 알고 있지.” 하고 결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둘만의 관계는 나의 원가족, 그의 원가족까지 확대 되기 마련이고, 출산과 육아를 겪고 나면 둘의 우주는 더 넓어 진다. 넓어진 세계관 속에 놓여지고 나면, 내가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사랑하는 그 사람은 나의 생각과 다른 사람으로 바뀔 때도 있고, 가끔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상대방 뿐만이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은 모습들이 나타나 나 자신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도 부지기수다. 사랑이라는 것은, 아니 결혼이라는 것은 새로운 관계의 시작일 뿐 아니라, 나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발견은 긍정적일 때도 있지만, 부정적일 때도 있다. 지금의 나는 누구일까? 지금의 나는 무엇일까? 끝없는 물음표 속에서 답을 찾아가고,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가끔 이혼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관계를 재정비 하고 바로 세우고자 할 때도 있다.
영화 <결혼이야기>는 뉴욕시에서 활동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뮤지컬 감독 찰리 바버와 배우인 아내 니콜 바버의 이혼이야기이다. 둘은 아들하나를 둔 화목한 부부였지만, 시간이 흘러 결혼생활을 끝내고자 한다. 이혼 중재인을 찾아가 상담의 일환으로 서로의 대해 좋은 점을 쓴 글을 읽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이렇게 좋은 점들이 있지만, 결국 이혼을 선택한 부부라는 첫장면에서부터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현실적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후 진행되는 이혼의 과정은 더욱 더 현실적이다. 니콜이 처음에 말한 것처럼 서로 얼굴 붉힐 일 없도록 변호사 쓰지 말고 깔끔히 헤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동료의 권유에 LA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여성 가정변호사 '노라'를 만난 니콜은 상담에서 찰리와 함께했던 지난날을 되새겨 보다 찰리가 매번 자신을 등한시해왔고, 내 생각이 매번 거절당한 것 같고, 심지어는 기획사의 무대 매니저와 바람핀 것 같다며 억울함을 토로하다 결국 노라를 변호인으로 고용한다.
그 이후 니콜은 마침 가족을 만나러 LA로 건너온 찰리에게 이혼서류를 건넨다. 니콜의 독단에 괘씸해진 찰리는 또 다른 실력파 변호사 '제이'를 찾아가게 되고, 제이는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자문하게 되고, 부담스런 수임 비용과 아들에게 끼칠 악영향을 생각해 단념하고 뉴욕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노라가 찰리에게 전화를 걸어, 이른 시일 내에 변호인을 고용하지 않으면 헨리의 양육권을 받아갈 수 밖에 없다고 재촉하면서, LA로 다시 넘어와 정중하면서도 회유적인 스타일을 선호하는 전직 가정변호사 버트 스피츠를 변호인으로 내세우게 된다. 양육권 소송에서 유리하기 위해 LA의 아파트를 임대해서 살게 되는 찰리.
애초에 이혼이라는 것 자체가 사랑했다 아름답게 헤어지며 서로를 응원해주는 관계가 되기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소송으로 약점을 내세우기 위해 서로의 나쁜 면을 모두 꺼내어 이혼으로 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이고, 그 과정은 둘에게 또 다른 상처로 남게 된다. 사랑한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만큼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소송 중에도 문득 남아 있는 서로의 애정이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 상을 받은 니콜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하는 장면이나, 찰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니콜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들에서 ‘이렇게 까지 이혼해야 하는 걸까?’ 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니콜과 찰리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찰리와 니콜의 이혼과정을 통해, 결혼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나의 인생과 너의 인생 그리고 아이까지 우리의 인생이 하나의 삶으로 완전하게 인정되며, 따로 또 같이 모두함께 행복의 순간을 누리도록. 나는 어떤 아내인가. 나는 어떤 엄마인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돌아보게 만든다. 결혼이란 ‘두 사람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와 같은 엔딩이 아닌 새로운 삶의 형태의 시작이고 인생의 과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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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러스처럼 스며들고, 사라지는 사랑
사랑은 언제 오는 걸까.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 왔다가 가는 걸까.그건 정말 ‘온다’고 말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일까. 우린 이 감정이 어떤 식으로 찾아오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없어져 버린 순간, 어딘가에서 사라져버린 사랑이 왜 그렇게 가버렸는지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사랑은 그렇게 조용히 우리 안에 들어왔다가, 어느 날 낯선 표정으로 우리를 갑자기 떠나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게 사랑이었다는 걸 우리는 항상, 너무 늦은 이후에야 알게 된다.
이 영화는 그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의학적 의미의 바이러스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바이러스처럼 겹쳐 놓는다. 한 사람의 감정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은 진짜였을까? 진짜였다면, 그게 진짜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영화 <바이러스>는 그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결국 다 지나가지만, 다 지나갔다는 걸 먼저 아는 쪽이 더 외로워진다. 더 외로워지는 사람이 사랑의 바이러스의 희생자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사랑은 올 때도, 갈 때도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 감정] 택선의 우울
택선(배두나)은 꽤나 부정적이고 우울한 사람이었다. 사랑 바이러스 감염 이전의 그녀는 무표정하고 삶의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모든 것이 귀찮은 듯한 그 모습은 마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회의적이고, 냉소적이며, 따뜻한 말을 건네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사람. 누군가가 그녀에게 “괜찮아?” 하고 물어도, 선뜻 대답할 수 없는, 어딘가 무너져 있는 표정의 택선은 생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세상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건 이제 없다고 믿는 사람만이 가지는 눈빛이 있었다.
번역가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녀는 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한다. 건조한 일상을 보내던 중, 동생이 주선한 소개팅 자리에 나간 그녀의 얼굴은 처음부터 짜증으로 가득하다. 소개팅에 늦었지만 사과조차 없는 남자, 수필(손석구)에게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그녀는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그리고 이내 일 때문에 먼저 자리를 뜨고, 자신의 우산까지 가져가버린 별종을 바라보며 더 큰 우울감에 빠진다. 원래 우울함을 가지고 있던 택선은 수필을 만나도 오히려 우울이 증폭되어 버린다.
전반부에 등장하는 택선에게는 사랑 따윈 없을 것만 같았다. 영화는 행복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수필이 자신이 만든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택선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되는 설정을 따른다. 이후 수필은 택선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감정은 어느새 그녀에게도 전염된다. 그렇게 택선은 강제적으로 ‘행복’ 혹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택선이 느낀 건 정말 바이러스 때문만이었을까. 아니면 택선의 마음속에 원래 자리하고 있던 몽글몽글한 감정이 튀어나온 것일까.
[두 번째 감정] 택선의 사랑
그녀는 감염되고 나서도 처음엔 자신이 달라졌다는 걸 몰랐다. 하지만 택선의 얼굴은 붉어졌고, 시선은 부드러워졌다. 스스로는 알지 못한 채, 행복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온몸으로 티내기 시작했다.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은 머리로는 이해되었지만, 몸은 자꾸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긍정적인 생각이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왠지 모든 게 다 잘될 거라는 희망이 그녀를 이끌었다.
택선이 경험했던 모든 감정이야말로, 그게 진짜 사랑이었다는 증거 아닐까.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이균 박사(김윤석)와 가까워지며 그녀는 다시 사랑에 빠진다. 이균은 그것이 감염 때문이라고 단정하며 택선을 밀어내지만, 서로를 향한 호감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영화가 재난 영화의 공식을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이러스보다 두 사람의 감정 변화다. 이 사랑이 진짜인지, 아니면 병적인 착각인지, 우리는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응원하게 된다.
그건 진짜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감염된 신경전달물질의 결과였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밝은 모습으로 웃던 택선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온전히 긍정의 세계에 몸을 맡기던 택선. 그 모습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아마도 그게 진짜 택선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우울했던 택선이나, 공허했던 택선보다 더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에게 다가가려 했던 그 모습이 가장 택선답게 느껴지니까.
[세 번째 감정] 택선의 공허함
치료가 끝났을 때, 그녀의 표정은 무표정이었다. 아니, 무표정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감정 자체가 사라진 얼굴이었다. 그것은 이상하게도, 처음보다 더 고요하고 더 슬펐다. 감정이 없어졌다는 것은, 감정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 모습은 이별을 하고 얼마간 시간이 지난 사람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약간의 외로움과 공허함이 공존하는 시간. 택선은 잠시나마 사랑을 느끼게 해줬던 수필을 추모하며, 그가 있던 장소를 다시 찾는다.
그곳에서 이균 박사를 다시 만난 택선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이균 박사는 조용히 되묻는다. “정말 감정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요?” 그 질문은 그녀가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었다. 택선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표정이 살짝 달라진다. 조금 밝아진 그 표정은 관객의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아마도 택선은 자신이 느꼈던 사랑의 감정을 다시 떠올렸던 게 아닐까.
공허는 사랑보다 더 오래 남는다. 무언가를 격렬히 사랑하고, 그 감정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단순한 허무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견디는 일, 그 자체다. 이 영화는 마지막 순간까지 택선의 감정을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애틋하다.
6년 동안 창고에 있던 영화, 빛을 보다
<바이러스>는 장르적으로 정의하기 애매한 영화다. 예고편을 보고 기대했던 감정적 파국은 초반 10분에서 정점을 찍고, 이후에는 한없이 조용하고 모호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로맨스도 아니고, 재난도 아니며, 스릴러도 되지 않는다. 어쩌면 6년간 창고에 잠들어 있었던 이유가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배두나만큼은 이 역할을 정확히 이해한 듯하다. 사랑에 빠진 얼굴이 너무도 사랑스럽다가도, 금세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끝까지 버티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김윤석은 묵직하게 감정을 던지는 역할을 맡았고, 장기하는 첫 연기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손석구는 짧은 출연이지만 분명한 인상을 남긴다.
강이관 감독은 차갑고 낯선 정서를 아주 천천히 펼쳐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쉽게도 그 정서를 끝까지 관객에게 전이시키지 못한다. 감정은 있고, 질문도 있지만, 답이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그게 미지근함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깊은 여운이 될지도 모른다.
영화는 묻는다. 사랑이란 감정은 단지 호르몬의 장난일 뿐일까? 전체 이야기를 다 보고 나면, 사랑은 단지 호르몬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은 생화학적인 반응에서 출발할 수는 있다. 도파민, 옥시토신, 세로토닌 같은 물질들이 감정의 방향을 잠시 바꾸긴 한다. 하지만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이어가고, 견디는 건 결국 사람의 마음이다. 감염이 만들어낸 사랑이었다 해도, 그 안에 진심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계산’이 아니라 ‘반응’이기 때문이다. 택선이 웃고, 두근거리고, 외로워했던 시간들은 모두 그녀가 만들어낸 것들이다. 그건 진짜였다. 단지 시작이 바이러스였을 뿐. 감정이란 건 그렇게 만들어진다. 원인을 따져 물어선 결코 닿을 수 없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방식으로. 영화가 던지는 사랑에 대한 질문이 궁금하다면, 지금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gV4P7Oz3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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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AN 데일리] 애정의 물성, 물성의 애정
감독] 서원태
출연] 정윤철, 임필성, 임대형 등
프로그램 노트] 뉴욕에 5만 5천 점이 넘는 방대한 보유작을 자랑하는 ‘킴스 비디오’의 김용만 대표가 있다면, 광주에는 비디오 5만여 점과 책 5만여 권을 평생 수집해온 ‘호모 시네마쿠스’ 조대영 광주 동구 인문학당 디렉터가 있다. 그는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1991년, ‘굿펠라스’라는 영화동아리를 결성한 이래 30년 넘도록 광주 지역 영화 운동에 몸담아왔다. 조대영의 방대한 VHS 비디오 수집품 중 약 2만5천 점을 2022년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원초적 비디오 본색〉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했다. 이른바 ‘시네필’ 문화가 싹텄던 1990년대, 남한에서 VHS 비디오는 서구 시네마테크의 셀룰로이드 필름을 대체하는 물리적 지지체였다.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를 계기로 제작된 〈일시정지〉는 함께 모여 필름 대신 비디오를 보았던 또 다른 ‘굿펠라스’들이 들려주는 ‘비디오 본색’에 대한 이야기다. (신은실)
이 영화는 비디오를 처음 틀었을 때의 컬러 화면으로 시작한다. 순간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장면인지 얼떨떨한 동시에, 저 이미지 자체가 진작에 지난 세기의 것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비디오라... 유치원 시절을 떠올린다. 유치원이 마치면 차량 한 대가 아이들을 동네 별로 나누어 1호차, 2호차, 3호차 순서대로 태워 날랐고, 3호차를 탔던 나는 1호차와 2호차로 먼저 떠나는 아이들이 다음 장면을 궁금해할 때 느긋하게 앉아 비디오를 볼 수 있었다.
주로 디즈니 영화나 <호호아줌마> 같은 걸 봤고, 매일 유치원의 일상을 마치는 순간은 어떤 비디오를 틀지 고르는 시간이었다. 이따금 흥미 없던 로봇 만화 같은 것을 무감하게 보았던 기억도 난다. 일시정지를 눌렀을 때 화면에 은색으로 실금처럼 그어져 올라가던 노이즈도. 되감기, 빨리감기, 같은 글자와 그때의 소리들도.
생각해 보니 제목인 ‘일시정지’는 아직 존재하지만 영문 제목에 들어간 ‘rewind’, 되감기라는 단어도 이미 사라진 것 같다. “10초 앞으로” 혹은 “30초 뒤로”가 있을 뿐이다. 시간의 흐름은 그렇게 모든 것을 멀리 보낸다. 신기술은 옛 것이 되고, “첨단 사업 전람회장”을 담은 뉴스는 꼭 박물관에서 미디어 아트로 틀어줄 것만 같다. 비디오도 이미 그런 존재가 되어 있다.
이 영화는 비디오 세대를 기억하는, 통사적인 관점에서 비디오 시대를 말해줄 수 있는 여러 명의 감독 인터뷰를 꼼꼼하게 담았다. <말아톤>, <대립군> 등을 연출한 정윤철 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었다. (옛날 이야기 맞지만.)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OTT 경쟁 시대인 지금은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스크린을 갖고 사는 게 당연하지만, 당시만 해도 사적인 상영 공간이란 부재하는 개념이었다. 80년대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는 집이 하나둘 늘어나고, 90년대에는 급부상한 비디오 플레이어와 함께 비디오 렌탈점이 성행한다.
비디오와 영화는 서로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성장한다. 비디오가 영화 필름의 질감을 담으려 노력했던 시절이 있는데, 필름과 필름 사이 자신의 무언가를 밀어 넣던 사람들의 노이즈 자글자글한 예술 세계가 있었는데… 이제 어디서 필름 생산을 멈췄다더라 하는 소리가 들려오다 못해 캠코더조차 ‘레트로 감성’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계에서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인터뷰어들이 비디오에, 비디오 가게에 품은 그리움 또한 흥미로웠다. 유튜브만 뒤져도 전문가의 영화 추천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지금과 달리, 당시엔 비디오 가게가 장르적 추천 기능을 했고, 좋은 영화를 많이 추천해 주었다는 아르바이트생의 존재는 마치 ‘무림고수’처럼 느껴져 재미있었다. 영화 모임 기록도 있고. 서로의 영화 리스트를 직접 볼 수 있고, 얼굴을 맞대며 알 수 있었으니 사실 요즘의 모임들보다 더 솔직하고 흥미로웠을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키워내기 딱 알맞은 자리였을 것이다. 좋은 영화를 서로 추천하고, 복제하고, 나눠 보고… 그러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태동했을 것이다. 1980년 광주 관련 영상물이나, 아직 일본 문화가 개봉되기 전의 <러브레터>도 그렇게 번졌다.
과거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이 영화가 과거를 위무하는 데만 그쳤다면 아쉬웠을 것이다. 과거를 위무하는 마음은 이후 세대에게 필연적으로 위화감을 남기기 때문이다. 인터뷰어들의 말에서도 나로서는 조금 위화감을 느꼈다. 90년대 ‘에로 영화’와 맞물렸던 비디오 문화의 성행을 말하면서, 에로 영화 사장 이유로 페미니즘과 성 인지 감수성만을 언급했지만, 매체의 변화와 궤를 같이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 인지 감수성과 페미니즘이 이유였다면 포르노 시장, 끔찍한 디지털 성범죄가 없었을 테니까. 우리 사회 성 인지 감수성이 뭐 얼마나 높다고 이럴 때만 “아쉬움”의 사유 자리에 놓이는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불어 인터뷰어들 말대로 에로 영화 소비층의 존재가 기술의 발달에 기여한 점도 분명 있겠지만… 양으로만 기능할 수 있나? 음으로도 기능했다. 언급된 마틴 스콜세이지 같은 헐리우드 감독에 비해 과거 우리 나라 영화 감독을 디깅하는 문화가 잘 정착되지 않은 이유는, 과거 한국 영화의 이미지 브랜딩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성 인지 감수성”을 비롯해 다양한 감수성이 낮은 영화들과 맞닥뜨리거나, 그걸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아쉬움 타령 듣는 건 별로 재미있지 않아서.
그런 위화감도 잠시, 영화는 과거의 낭만과 풍요를 말하면서도 과거의 낭만만을 그리지 않고 나아간다. 유해환경 정화를 위해서라는 미명 하에, 대통령의 “헌법적 능력”까지 써서 “불량 비디오”를 금지했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청소년 보호구역에 성인 비디오 가게가 횡행하는 일은 지양해야 옳지만, 이외의 사적인 비디오에 관해서라면, 과연 관에 의해 이렇게 쓸어버리는 형태가 옳은가 하는 질문은 남는다. 미풍양속은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것이나, 관이 쓸어버리는 형태도 아름다운지.
그것도 다 옛 일이다. 이제는 물성으로 소유하는 것이 약해진 시대. 책도 영화도 모두 손에 잡히는 물성을 잃고 구독 경제의 사이클로 들어가 버렸다. 언제든 스크린에 띄워 볼 수 있지만, 구독을 해지하는 순간 스크린에 띄울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나도 처음에는 이런 구독 경제에 저항감이 있었으나, 지금은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과 영화를 소유하지 않고도 언제든 볼 수 있으니, 구독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이득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실제로는 ‘찜’, ‘보고 싶어요’만 바삐 눌러 놓으면서도.
그래서 이 영화의 메시지가 충격이었다. OTT에서 내려가면 그 영화를 더 볼 수 없고, OTT의 큐레이션은 대체로 작품성과 다양성보다는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얼마의 이득을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갈수록 자극적이 되어 가는 데 반해 인간에 대한 고민은 옅어져간다고 느꼈던 어떤 작품들을 떠올렸다.) 기술 발전만 보면 모든 것을 클라우드에 올려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현실은 오히려 물리 매체로 영화를 보던 시절에 비해 영화의 다양성이나 폭이 더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의외로 그 사이 사라지는 영화들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은 내게 충격이었다. 그렇지. 기술의 발전이 꼭 우리의 발전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
우리는 자본주의 세계 한복판에 살고 있으니, 자본의 논리를 완전히 제하고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영화 또한 자본 없이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가 파도처럼 거세게 밀려오는 세상에도, 지켜야 할 무언가는 있지 않을까. 비록 마이너해도, 많은 사람의 사랑과 선택을 받지 않아도, 자극적인 맛 하나 없이 슴슴하다 못해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그런 작품들의 자리를 작은 섬처럼 빼꼼 내어줄 필요 있지 않을까. 그 자리에서 안온하게 쉬어 갈 사람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낼 사람들이 또 있을 테니까. 인터뷰 중 나온 말처럼, 맥락 속에서 아카이브는 살아있을 것이다.
물성 없는 시대, 여전히 애정은 물성에 어린다. 비디오가 없는 시대는 굿즈 포화의 시대이기도 하다. 나는 영화 굿즈를 꼬박꼬박 모으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굿즈들은 집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 영화와 눈 맞춘 시간을, 영화가 내게 와 닿고 나를 바꿔준 지점을 기억하고 싶어서. 영화는 스크린 위를 흘러가고, 장면은 짧게 눈 맞춘 후 멀어지지만, 굿즈는 내 손에 남아 있으니까. 이 찐득한 애정을 물성으로 만져보곤 한다…고 얼마 전에 일기처럼 쓴 적이 있다. 언젠가 먼 훗날, 이들이 비디오를 추억하듯 나도 굿즈를 만지작거리며 애정의 물성을 이야기하게 될까.
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6/29-7/9) 상영시간표
7월 2일 20:00-21:02 CGV소풍 8관 (상영코드 443)
7월 5일 17:00-18:02 부천시청 판타스틱큐브 (상영코드 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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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의 기억 영화 후기 / 논란의 여주인공 / 나름 객관적인 감상평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내일의 기억”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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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3주 최신 개봉영화(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매트릭스 리저렉션, 드라이브 마이 카, 신데렐라2 마법에 걸린 왕자, 호두까기 인형)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2월 3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킹스맨퍼스트에이전트 #매트릭스리저렉션 #드라이브마이카 #신데렐라2마법에걸린왕자 #호두까기인형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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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친 능력> 메인 예고편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컴백? 왕년에 잘나가던 슈퍼스타에서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빚쟁이 신세가 된 ‘닉 케이지’ 그런 그에게 생일 파티 참석을 조건으로 기꺼이 백만 달러를 주겠다는 슈퍼팬 ‘하비’(페드로 파스칼)가 등장한다. 스타로서의 자존심과 어마어마한 제안 사이에서 갈등하던 ‘닉 케이지’는 결국 생일 파티가 열리는 곳으로 향한다. 도착과 동시에 초호화 환대를 받고 행복한 휴양을 보내던 그는 의문의 CIA로부터 납치되고, ‘하비’가 악명 높은 수배범인 사실을 듣게 된다. CIA로부터 가족을 빌미로 위험한 미션을 강요 받은 ‘닉 케이지’는 설상가상 예기치 못한 사건들에 휘말리게 되는데… 감당 불가! 방심 금물! 참을 수 없는 초대형 코믹 액션이 온다! 레디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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