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6월, 온 얼굴에 붕대를 감고 피투성이가 된 채 독일 국경으로 입국하는 한 여자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아우슈비츠에서 얼굴에 총상을 맞고 생존한 유대인 가수 넬리(니나 호스)는 베를린으로 돌아와 성형수술을 받는다. 친구 레네(니나 쿤첸도르프)에 의하면 그녀의 가족은 모두 적었고, 피아니스트인 남편 조니(로널드 제르펠트)는 아내가 수용소로 끌려간 직후 이혼을 신청하고 사라진 상태다.
레네가 이스라엘 이민을 준비하는 동안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 조니를 찾아 나선다. 나이트클럽 ‘피닉스’에서 마침내 재회하지만, 아내가 죽었다고 믿는 조니는 얼굴이 변한 넬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비통함을 느낄 새도 없이 조니는 ‘넬리와 닮은 넬리’에게 아내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연기해달라고 주문한다. 유산을 노리는 남편 앞에서 넬리는 결국 자기 자신을 연기하기로 결심한다.
1. 멜로드라마와 필름 누아르의 기묘한 동거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독일(유럽)의 역사를 멜로 형식으로 풀어내는 감독이다. 그는 “러브스토리가 들어 있는 사회의 구조는 사랑 그 자체만큼 중요하다"라는 명언을 남긴 더글라스 셔크의 제자라 볼 수 있다. 그의 영화는 통속적인 사랑이야기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차츰 현실의 모순을 깨닫도록 설계되어있다.
영화는 두 가지 축으로 미스터리를 쌓아 올린다. 첫째, 유산 상속을 노린 거짓 연극이 준비하는 동안 남편이 아내를 알아볼까를 흥미진진하게 그린다.둘째, 비유대인인 남편이 혼자 살아남으려고 유대인인 아내를 고발했는지에 대한 정황적 의심이다.
영화 「피닉스」는 위베르 몽텔레의 소설 'Le Retour des cendres (재로부터의 귀환)'(1965)를 각색했다. 감독은 원작에서 핵심적인 아이디어만 가져와 독일 역사에 대입한다. 그러면서 ‘트라우마를 숨기려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숨김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 페촐트 감독은 필름누아르의 가르침을 따른다. 인물을 빛과 어둠의 간극 사이에 배치한다. 넬리의 성형 수술한 얼굴을 검은 베일로 감춘다거나 인물들이 주로 밤거리를 배회하거나 어둑한 지하실에 머물게 한다. 영화가 점점 주인공을 밝은 빛에 노출시켜 혼란스러웠던 정체성과 상실감을 회복해나감을 관객에게 알린다.
2. 넬리의 이중적 위치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오인의 모티브’를 적극 활용한다. 감독은 ‘정체성의 혼란’을 멜로드라마 형식으로 풀어냈다. 그래서 주인공 넬리는 이중적 위치에 처해진다.
첫째, 상실감이다. 넬리는 얼굴에 총상을 입었기 때문에 성형수술 전후로 남편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외모가 바뀐다. 수술 이후 그녀는 남편의 흔적을 찾아 옛 집터를 방문하는 장면이 연달아 등장한다. 넬리의 얼굴이 다른 모습으로 ‘재건’되었듯 전후 베를린에 사는 주민도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
둘째, 정체성의 혼란이다. 그녀는 남편 조니의 제안으로 자기 자신을 연기하게 된다. 이는 <현기증(1958)>의 여주인공 매들린(주디)이 겪은 딜레마와 유사하다. 두 영화의 연관 지점은 둘 다 프랑스 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행복했던 시절의 과거로 도피하고 싶은 피해자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3. 조니의 이중적 위치
감독에 의하면 프레스턴 스터지스의 <레이디 이브(1941)>을 참고했다고 밝힌 만큼 조니는 <레이디 이브>의 찰스와 많이 닮았다. 피닉스가 등장하는 시점부터는 필름 누아르 <과거로부터(1947)>의 영향이 짙게 배어 나온다. 설명은 이쯤 해두고 왜 조니가 이중적 위치에 처하게 되는지를 고찰해보자!
첫째, 넬리는 피닉스 바에서 조니를 발견하지만, 그는 남편이 아닌 동명이었다. 그녀는 조니라는 남자를 뒤쫓아 으슥한 골목에 들어서게 된다. 그때 그 남자는 넬리의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핸드복을 낚아채 내용물을 확인한다. 처음엔 노상강도라고 여겼지만, 후에 이 의미가 밝혀진다.
둘째, 남편 조니가 가짜 연극을 꾸밀 때 넬리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수용소에서 겪었던 일을 물어보면 어떻게 하냐?’며 조니를 설득한다. 그녀는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끔찍한 경험을 어디서 읽은 것이라고 대충 둘려대며 이야기한다. 수감자들은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신입 유태인을 직접 수색한다고 말한다. 어느 날 그녀가 어떤 소녀의 몸수색을 맡았는데, 그 안에서 소녀 엄마의 옷자락이 나왔다며 당시를 회고한다. 몸수색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닐까? 잠깐 영화 오프닝을 되짚어보면, 국경 심문에서 경비병이 굳이 그녀의 얼굴을 신분증과 대조해본다. 이것은 영화에서 ‘신분확인’이 주제라는 것과 ‘검문검색’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암시였다.
돌이켜보면 동명이인 조니가 그녀에게 노상강도짓을 한 것은 일종의 몸수색이었던 것이다. 그 검문검색을 거친 뒤에야 진짜 남편 조니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황당한 유산상속 계획에 동참하며 그의 지하실에 머물게 된다. 그는 그녀에게 일정기간까지 누구와도 접촉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곳에 머물 것을 종용한다. 얼떨결에 지하실에 감금된 그녀는 또다시 수감된 셈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경우의 동명이인에게 몸수색을 당하고 두 번째 경우의 남편 조니에게 수감되었다는 이중성에 갇히게 된다. 이것은 다음 4장을 읽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4. 두 남녀의 동상이몽
영화는 전후 독일 사회와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를 담고 있다. 이를 위해 ‘가짜가 돼버린 현실의 경험’ vs ‘진짜가 되어가는 가상의 역할극’의 구조를 가져간다. 그러기위해 피해자와 방관자의 관계를 비대칭적으로 놓는다. 넬리는 남편 생각을 하면서 아우슈비츠에서 버텼지만, 조니는 아내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유산이나 챙길 궁리 한다. 심지어 아내를 밀고했을 가능성도 있다. 친구 르네의 경고에도 넬리는 남편 곁을 맴돌며 행복했던 결혼생활의 부활을 꿈꾼다. 그렇기 때문에 넬리는 남편의 계획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불가능한지 조니를 납득시켜다 둘 사이의 견해 차이를 뒤늦게 깨닫는다. 그것이 완벽하다고 부를만한 엔딩과 조응한다.
먼저 피해자인 넬리의 입장에서 남편, 친구들, 친분이 있는 여관 주인 등 그녀 주변의 유럽인들은 변절해서 나치에 협력했다. 르네는 두 사람의 이스라엘 이민을 추진하면서 유럽인을 용서할 수 없다고 넬리를 설득한다. 즉 넬리는 홀로코스트 이전의 관계를 끊어내고 새로운 땅으로 이주하거나 남편을 포함한 유럽인을 용서하고 베를린에서 함께 사느냐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했기에 후자를 택한다. 끝끝내 유럽인을 용서할 수 없었던 르네는 절망한 끝에 권총으로 자살한다. 이것이 복선이다. 어쨌든 그녀는 남편을 택했고, 그의 지하실에서 외출을 금지당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수감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반대로 가해자 조니 역시 수감자이다. 앞서 말했듯이 수감자가 새로 온 신입을 검문검색하는 경우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수용소에 갇혀있을까? 그가 머무는 지하실에 가구나 살림도 별로 없고, 가진 돈도 2달러가 전부다. 즉, 조니는 전후 패전의 멍에를 짊어지고 있다. 가난뿐 아니라 고통받은 자들에 대한 죄책감과 부끄러움 역시 오롯이 그의 몫이다. 그렇게 그도 '양심의 가책'이라는 거대한 철장 안에 갇힌 셈이 된다.
5. 제목이 가진 이중성
피닉스는 죽어도 부활한다는 전설 속의 불새를 뜻한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불사’라는 의미일까? 제목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극 중 미군을 위한 나이트클럽의 이름이다. 당연하게도 전후 세계질서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갔다는 의미다. 자세히보면 영화 속 피닉스는 독일식 카바레도 아니고 미국식 클럽도 아닌 어중간한 공간으로 묘사된다. 원래 이곳은 카바레였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쇼걸이 등장하는 무대가 있고, 악단이 배치되어 있다. 이는 주인공 넬리가 가수이고 남편 조니가 피아니스트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은 오늘날 독일문화의 단면이기도 하다. 독일 음원차트만 봐도 미국 팝송이 다수를 차지하고, 독일인들은 미국적 사고방식과 대중문화에 노출되어있다. 오프닝에서 독일어보다 영어가 먼저 등장하는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둘째, 역사가 반복된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이해를 돕기위해 히틀러는 왜 반유대주의를 외쳤을지부터 살펴보자, 먼저 배후중상설(Dolchstoßlegende)을 근거로 들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독일은 사실 전투에서 사실 전투에서 지지 않았으나 유대인과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의 병역기피, 탈영, 파업선동, 간첩질 때문에 전쟁에서 졌다는 인지부조화적 음모론이다. 1929년 대공황이 닥치자 자본가·은행가 유대인 이미지로 말미암아 반유대주의가 폭발적으로 계층을 가리지 않고 널리 퍼지게 된다. 러시아가 공산화되자 그 배후에 유대인이 있다는 유대-볼셰비즘설(Judeo-Bolshevism)이 널리 퍼졌으며, 유대인이 세계 지배 음모를 꾸민다는 시온 의정서가 신봉되었고, 헨리 포드가 반유대 언론을 후원하면서 나치에게 영향을 미쳤다. 헨리 포드는 나치 독일에 막대한 자금을 후원하기도 했다. 이 분위기를 교묘하게 파고든 나치당이 정권을 잡게 되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는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에서 인종청소는 현재 진행 중이다. 그것도 유태인 스스로가 그런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 (4.5/5.0)
Good : 오인의 모티브, 멜로드라마와 필름 누아르의 독창적 계승
Caution :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오독할 수 있다.
●독일 음악가 쿠르트 바일이 쓴 <Speak Low(1943)>은 전형적인 재즈음악이다. 재즈는 잘 알다시피 미국 남부가 고향이다. 주제가조차 이중성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넬리가 남편과 파리에서 쇼핑을 했다는 정황이 드러난다. 테오도르 헤르츨이 주도한 시오니즘은 드래퓌스 사건에서 촉발되었으니 이 역시 그런 맥락을 깔고 있다.
●600만의 유대인, 1100만 명의 슬라브인, 50만의 집시(룸인), 연합군이나 레지스탕스의 포로 중에 유색인의 경우 현장에서 처형되거나 강제 노동·절멸 수용소로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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