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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2025-04-01 12:15:02

<헤레틱>:원형 속의 딜레마

<헤레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헤레틱>은 믿음을 밀실과 감금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풀어나간다. 반스와 팩스턴은 포교를 하러 왔다가 리드의 집에 갇히고, 리드는 반스와 팩스턴에게 여러 종교의 유사성, 모노폴리와 <The Air That I Breathe>, <creep>, <get free>의 표절 논란을 예시로 들며 신의 실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모든 종교는 하나의 판을 돌아가며 플레이하는 모노폴리나, 돌아가는 둥근 LP판처럼 동일한 원 위에 놓인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리드는 원의 출발점, 즉 모든 종교의 원형 혹은 믿을 수 있는 진실하고 참된 무언가를 찾는 인물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는 위에 언급한 모노폴리, LP판을 포함해 원형과 관련된 물건, 연출들이 여럿 등장한다. 반스가 책상에서 향초를 돌려 블루베리 파이 향이라고 쓰인 라벨을 확인할 때 카메라는 둥근 향초를 기준으로 한 바퀴를 돈다. , 이후 리드가 돌아와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도 리드를 기준으로 한 바퀴를 도는 연출이 다시 등장한다. 반스와 팩스턴이 쎄함을 느끼고 밖으로 나가려 돌렸던 문손잡이도 원형 손잡이다. 반면 믿음과 불신이 쓰인 문의 손잡이는 막대형으로 양쪽 문 다 같은 밀실로 이어지는 곳이지, 탈출구가 아니라는 암시를 준다. 블루베리 파이 또한 원형의 파이 안에 다시 원형의 블루베리들이 담겨있다.

 

 리드가 자신의 원형 이론을 통해 반스와 팩스턴에게 끊임없이 묻는 말은 무엇을 믿는가.’. 종교는 서로를 모방하며 만들어진 허구고,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신을 믿는다고 해도 자신들을 이 밀실에서 꺼내줄 수도 없다. 마지막 팩스턴의 말처럼 기도는 대단한 효과를 가지지도 않는데, 왜 믿음을 가지고 무엇을 믿을까?

 

 

 

 팩스턴은 여러 종교의 문양이 그려진 문을 하나씩 열며 진실에 도달해 가고, 모든 진실이 담겨있는 방에서 팩스턴은 리드가 찾던 참된 종교가 통제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믿음으로써 그 믿음에 통제받는다. 리드는 신앙심이 강한 팩스턴이 진실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설계하며 지금까지 믿어왔던 종교는 통제와 세뇌의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리드에게 쫓기던 팩스턴을 구했던 것도 믿음과 기도가 아니라, 죽은 줄 알았던 반스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헤레틱>에서는 믿음이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 탈출한 팩스턴의 손에 나비가 앉으며 믿음의 힘과 가치를 시사한다. 팩스턴은 만약 자신이 죽으면 나비로 환생해 주변인들의 손에 앉아 자신인 것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종교의 실존성에 대해 냉소적인 관점을 보였던 영화인 만큼 그 나비가 반스의 환생이라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팩스턴의 믿음을 통해 그 나비는 반스의 환생이 된다.

 같은 종교를 믿음에도 반스와 팩스턴이 추구하는 가치가 동일하지 않듯, 믿음은 무언가에 자신만의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 가치를 삶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통제와 세뇌로 변할 수 있는 게 믿음이기도 하다.

 

 

 타이머 자물쇠나 파이프, 종교와 관련된 여러 물품 등 집이라는 평범한 장소와 대비되는 소품들의 이질감이 좋았다. 미궁의 위험에서 서서히 진실을 향해 도달하기까지 긴장감과 궁금증을 유발하며 좋은 템포를 마지막까지 끌고 갔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물뿌리개, 반스의 피임 기구, 나비 등 영화에 깔린 복선을 남김없이 사용하는데, 낭비되는 장면이 없어 구성적으로도 탄탄한 느낌을 준다. 리드가 말한 호접지몽과 통속의 뇌 이론이 리드가 그간 말해오던 원의 속성과 약간 다르다는 점에서 팩스턴이 리드의 거짓말을 짚어낼 거라는 암시를 주는 부분도 좋았다. 호접지몽, 통속의 뇌는 현실과 가상, 주체와 타자를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두지만, 리드가 말하는 원은 원을 이루는 각각의 요소들은 개별적이고 실존하는 것을 전제로 두고 그들을 통과하는 단 하나의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냐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위 장면은 스토리의 흐름이 격변하는 중요한 순간이었으나, 팩스턴의 심리와 생각 변화에 대한 개연성이 부족해 약간의 억지스러움이 느껴졌다. 결말까지 쫓고 쫓기는 긴장감과 공포 요소들은 유지되었지만, 부족한 개연성 때문에 중요한 한 방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흠이었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를 초청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 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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