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수2021-04-08 19:51:09
살인마로서 살다가 인간으로서 죽다
언더 더 스킨 리뷰
경고: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무미건조함으로 가득찬 살인마의 일생
<언더 더 스킨>은 인간의 몸에 기생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외계인을 그린다. 외계인은 로라라는 이름으로 흰 바탕 앞에 누워 있는 여자의 옷을 뺏어서 입고, 어딘가에서 받은 거대한 트럭을 타고,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을 유혹해 집으로 들여보낸다. 그러나 더 이상 그들이 집에서 나오는 일은 없었다. 이게 끝나면 로라는 사냥감이 될 새로운 남자를 찾아 떠난다. 이러한 유혹과 사냥이 영화 초반부 ~ 중반부에 계속 반복된다.
로라는 살인에 매우 유능한 외계인이다.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남자들을 유혹해 사냥감으로 삼는다. 그러나 캐릭터의 특성을 드러내야 할 이러한 과정은 오히려 반복되는 노동처럼 느껴진다. 지나치게 무미건조한 연출 탓이다. 특히 로라가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은 이러한 연출의 끝을 보여준다. 로라가 어두운 곳에 홀로 서 있다, 로라를 발견한 남자는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런데 남자는 중간에 어두운 늪으로 빨려 들어가버린다. 이게 끝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사이코패스 살인마 안톤 쉬거도 로라처럼 무미건조한 톤을 통해 그려지는 캐릭터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안톤은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꼭 동전을 던진다. 동전이 나오는 면에 따라서 살인을 할지 말지 결정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우위를 숨기기 위한 변명일 뿐이다. 한편 안톤은 살인을 할 때도 총이 아니라 공기 봄베를 쓰는 등 무미건조함 속에서도 캐릭터의 매력을 확실히 각인시킨다. 그러나 로라한테는 그럴만한 장면이 없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다
이처럼 <언더 더 스킨>이 로라한테 철저하게 거리를 두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로라에게 얼굴이 흉측한 남자가 찾아온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남자는 그동안 로라가 만나왔던 남자들과 달리 외모 때문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걸 꺼려했던 사람이었다. 그 사정을 들은 로라는 그 때부터 연민이라고 하는 감정을 그 남자에게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가 유혹했던 남자들 중 처음으로 그를 산 채로 집 바깥으로 꺼내준다.
인간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로라는 살인을 멈춘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배우기 시작한다. 자신의 장기를 버린 그녀는 이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마침내 샤낭감과 사냥꾼의 위치가 바뀐 것이다. 다행히 이후 로라가 첫 번째로 만난 남자는 남자는 로라를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단 걸 알고 그 남자와 헤어지고 만다. 두 번째 남자는 숲의 관리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숲에 찾아온 외계인을 강간하려 했다. 그리고 로라에게 불을 붙여 그녀를 불타죽게 만든다.
그래도 마침내 인간으로서 죽다
로라는 죽기 직전, 마침내 외계인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낸다. 온몸이 검은 비늘로 덮인 흉측한 모습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점은 이 모습이 로라가 인간의 피부 속에서 살인을 저지를 때보다 훨씬 인간답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로라에게 공감할 수 있는 모습들이 그녀가 살인을 멈출 때부터 나타나기 때문이다. 연출도 로라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식으로 바뀌게 된다. 로라가 케이크를 먹으면서 얼굴을 찡그리는 걸 보여주는 식으로 말이다.
<언더 더 스킨>은 이렇게 감정을 쌓아나가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일으킨다. 로라가 붉은 불에 타죽어갈 때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로라가 살인마 시절이었을 때 주로 검은색과 푸른색으로 둘러싼 화면이 등장한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렇게 영화의 초반부 ~ 중반부의 무미건조함은 이 카타르시스를 증폭시키기 위한 밑밥으로 밝혀진다. 이는 로라가 끝내 인간으로서 죽는 모습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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