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9-02 17:03:38
8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한국은 에이리언, 북미는 데드풀 | 주말 박스오피스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3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했습니다.
비록 흥행세는 다소 꺾였지만, 누적 관객수는 163만 명에 도달했습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를 일으켰던 콘서트 실황 다큐
<임영웅 |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이 <사랑의 하츄핑>을 밀어내며 3위에 올랐고
<파일럿>이 누적관객수 450만 명을 돌파하며 2위에 머물렀습니다.
한편 국내에서 190만 여명의 관객수를 기록했던 <데드풀과 울버린>이 북미에서 1위를 유지했고 누적 수익 12억 달러를 넘겼습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2위, <잇 엔드 위드 어스>가 3위를 차지하며 전주와 동일한 순위를 유지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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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베 얀손이라는 이름의 모험
토베얀손
줄거리
유명한 조각가 아버지의 밑에서 자라, 자연스레 예술가로 성장한 토베 얀손.
흔들리고 불안정한 삶의 굴곡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이야기들.
그녀는 어떤 예술가였을까?
토베 얀손이라는 이름의 모험
숨은 의미 찾기
무민은 하얗고 말랑하고 폭신하고 따스하며 무해하다.
언뜻 보기엔 곰인지 하마인지 헷갈리지만 사실 무민은 '무민 트롤'로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트롤을 토베 얀손만의 시각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녀가 처음으로 무민의 존재를 눈치채고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방공호 속에서다. 어둡고 암울한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그녀의 염원이 무민이라는 존재로 하여금 그녀의 마음속에서 뛰쳐나온 건 아닐까.
영화는 혼돈 속에 빠진 예술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듬어 가는지에 대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다루고 있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토베 얀손의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 같지만, 실은 그녀의 예술이 어떻게 안정되어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불안정한 관계들 속에서 그녀가 느꼈던 날것의 감정들이 정제되어 모두 무민이라는 예술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이건 그냥 돈벌이야. 이 그림이 진짜 나야."
토베는 만화를 칭찬하는 비비카에게 정색한다.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며 저것이 진짜 자신이라고 말한다. 만화는 그저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며, 자신은 순수 미술을 그리는 예술가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 토베의 태도는 겉으로 보기엔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지는 게 싫어서 인정받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순수 미술에 대한 그녀의 열망은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순수 미술에 대한 사랑은 토베가 초상화를 그릴 때 나타난다. 그녀는 한눈에 알아보기는 힘든 추상화를 그리며 화산과 물줄기와 불꽃이라며, 이 중에 어떤 것이 자신일지를 묻는다. 자기 내면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지 토베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치열한 고민 끝에 얻어낸 정답을,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캔버스에 담아낸다.
"토베, 당신과 그림은 별개야."
"내 그림이 나야."
토베는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의 전시회에서 토베는 담배를 피우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빼라는 아버지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것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게 예술가 지원금 선정 여부가 달린 전시회인데도 말이다. 그녀는 캔버스에 거짓을 담은 적이 없었다. 약간 숨기거나 꾸며낼 법도 한데, 멍청할 정도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끄집어낸 것이다.
'내 그림이 나'라는 말을 한 치의 거짓 없이 뱉을 수 있는 화가가 어디 있을까.
프랑스에서 비비카가 돌아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토베. 그녀는 자신이 아닌 다른 연인과 웃음을 짓는 비비카에게 상처를 받는다.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지만, 정작 비비카가 하는 말은 자신을 위해 무민을 주인공으로 한 희곡을 써달라는 것. 토베는 그 말을 차마 거역하지 못하고 희곡을 쓰기로 한다. 그 다음날, 아토스가 찾아와 결혼을 이야기할 때 토베는 자신의 초상화가 그려진 캔버스에 하얀 덧칠을 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캔버스 살 돈이 없어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기로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후에 그녀가 붓과 물감 같은 미술용품을 서랍장 안에 처박아두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보다 앞서서 이 장면을 통해 이미 토베가 순수 미술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상처받아서? 희곡을 쓰기로 해서? 아니다. 무민이 비비카를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끈이기에, 진짜 자신을 숨기고 비비카가 원하는 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다.
"왜 마음을 바꾸셨죠?"
"왜냐면 제가 화가로서 실패했거든요."
토베는 본격적으로 신문에 무민을 장기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진다. 그토록 인정과 명예를 원했지만 그녀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불행해 보일 정도다. 시종일관 어둡고 가라앉은 토베의 표정은 항상 웃고 있는 무민의 표정과 상반되어 보인다. 계약서에 서명을 할 때 그녀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감정은 '자포자기'였다.
비비카가 떠나고 그녀에게 남은 무민은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한때는 사랑의 표현물로 여겨지던 사랑스러운 비프슬란과 토프슬란의 대화도 이제 그녀의 마음에 비수가 되어 꽂힐 것이었다. 무민은 아버지의 말마따나 '낙서'일뿐이었다. 다만 좀 비싼 낙서였을 뿐이다. 그것은 자신의 '작품'이 아니었다.
돈벌이 수단이자, 비비카와의 마지막 남은 연결고리였다.
"너만큼 사랑한 사람은 없었어."
"난 프랑스만큼 사랑하는 게 없어."
프랑스에서 운명처럼 다시 재회한 토베와 비비카. 토베는 정착된 사랑을 원했지만, 자유분방한 비비카에게 토베는 스쳐가는 하나의 인연에 불과했다. 그녀와의 하룻밤을 보낸 토베는 결국 헤어짐을 택한다. 이 순간에 비비카는 평소처럼 토베에게 "가지 마."라고 명령하지만, 토베는 "더 이상은 안 되겠어."라며 결국 방을 나선다.
결국 토베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끈마저 사라져버린 상황.
토베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어머니에게서 두꺼운 공책 하나를 건네받는다. 토베의 기사가 실린 신문, 그녀의 작품이나 인터뷰가 실린 잡지 등을 정성스럽게 오려 붙인 공책은 바로 아버지의 것이었다. 무민을 희곡으로 써서 처음 무대에 올린 날, 연극이 끝나고 토베가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하기도 전에 못마땅한 얼굴로 극장을 나섰던 아버지가 실은 애정 어린 눈으로 그녀의 모든 작품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 토베는 그날 밤, 아버지의 조각품 하나와 공책을 펼쳐두고 와인을 마시며 울고 웃는다.
오랜만에 캔버스와 붓을 꺼내든 토베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린다. 때마침 찾아온 친구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자기 초상화라고 말한다. 그들의 짤막한 대화와 함께 영화는 끝난다.
"제목이 뭔데?"
"시작하는 사람."
토베는 평생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쓰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비비카와의 헤어짐은 굉장히 중요했다. 헤어짐 이전까지 토베에게 무민은 그저 비비카와의 흐릿한 연결고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는 비비카가 자신과는 다른 사람임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서 떠나보내며 무민에 대한 그러한 마음도 내려놓는다. 그 이후에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을 확인한 토베는 무민을 다른 시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온전한 자신의 예술로, 어엿한 하나의 작품으로.
모두가 무민에 강렬하게 이끌리는 동안 정작 작가인 토베는 무민을 거부해왔다. 토베의 아버지가 무민을 두고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며 무시하는 태도가 토베 자신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삶의 굵직한 언덕을 넘을 때마다 그녀가 눈을 돌렸던 것은 무민이었다. 무민은 토베의 생각과 마음을 그대로 투영한, 아름답지만 때로는 아픔과 슬픔이 담긴 그녀만의 숲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에 알게 된 아버지의 진심은 그녀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토베는 순수 예술과 상업 예술의 경계에서 갈등하고 고뇌했지만, 실은 자신에게서 나온 모든 결과물을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비비카라는 강렬하게 타오르는 사랑이나, 아토스처럼 전략적인 사랑이 아닌, 언제든 자리를 지키는 가족처럼 은은하게 데워주는 사랑의 관계도 존재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고, 그 모든 관계 속에서 자신은 최선을 다했으며, 그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짜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라는걸, 토베는 알게 된 것이다.
토베는 더 이상 무민을 거부하지 않는다.
방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그린 영화 마지막 장면의 초상화는 그녀의 심경을 대변한다. 초반에 그렸던 추상적인 초상화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녀는 이전까지 자신을 '자유롭다'라고 규정하길 원했다. 하지만 진짜 자유란 규정하고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자유로우려고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진정 자유로워지기로 한다. 그리고 정해지지 않은 항로를 향해 나아가며 외친다.
"난 인생이란 멋진 모험이라고 믿어요."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건
감상평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무민에는 정말 관심이 없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라는 점 외에는 아는 게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막상 영화를 보려고 영화관에 딱 앉은 순간 약간 긴장이 되었던 것 같다. 놓치지 말고 잘 봐둬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점차 영화를 보면서 영화 내용이나 의미보다는, 토베 얀손이라는 한 명의 예술가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몇몇 장면들은 공감이 가기도 했다. 그중 하나는 사인회를 하면서 침울해하는 장면이었다. 함께 예술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 게 보일 때, 그리고 나 역시 예술보단 생업을 택했다는 게 느껴질 때. 그 순간들이 떠올라 나까지도 괴로워지는 기분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센 바람에 창이 열리고 토베가 작업하던 무민 원고가 방안에 흩날리는 장면이었다. 토베는 잠에서 깨 이 장면을 그저 멍하니 지켜본다. 예술을 쫓기만 하던 토베에게 예술이 드디어 손을 내밀어 주었다는 느낌이었다. 이 모든 것이 실은 다 하나였음을, 내 생각이고 작품이고 세계였음을 깨닫는 듯한 토베의 모습에 함께 벅차올랐다.
영화를 보고 무민보다는 무민을 만든 토베얀손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어떤 글을 써왔는지 궁금해졌다. 이제는 무민에게서 토베 얀손이 겹쳐 보인다.
해당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참석하였으나, 솔직하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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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위안부의 이야기를 판타지로 그려내다
제목이 신기했던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나무가 어째서 임신을 했을까? 이 도깨비는 뭘까? 판타지 영화인가? 궁금증이 넘실됐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 대해 큰 정보를 알지 못하고 보러갔는데, 생각보다 다크하면서도 코믹했던 신기한 작품이었다.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시놉시스
마침내 죽음이 찾아왔다. 한 번 들어오면 빼도 박도 못하고 죽어야 나갈 수 있는 곳. ‘뺏벌’. 그곳엔 누구보다 죽음을 많이 본 여자, 인순이 있다. 저승사자들은 뱃벌의 유령들을 데려가기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인순은 그들에게 맞서기 위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미군 위안부이 존재를 드러내다
사실 위안부라는 말은 그간 많이 들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외의 위안부 존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가 시작하며서 등장인물이자 실존인물인 박인순님이 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위안부의 존재가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었다는 사실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역사에 대해 반성하게 됐다. 같은 위안부 문제지만 일제강점기 시기 있었던 위안부 문제보다 대한민국 정부 시기의 미군 위안부 문제는 왜 부각이 되지 않았을까? 왜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났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작품이었다.
구술사의 중요성에 대하여
대학원에서 기억연구를 전공하면서 구술사의 중요서이 얼마나 큰지는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이론적으로 그 중요성에 대해 연구를 하다보니 이것이 실제로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에 대해서는 크게 감흥이 없었다. 그래서 간혹가다가 나의 연구가 이 세상에 어떤 쓰임이 있는가?하고 회의감에 빠질 때가 있었는데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를 보면서 구술사를 채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금 깨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간 역사에서는 외면받던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정말 그 시대의 민중은 어떻게 살았고, 영화 속 미군 위안부의 실태를 사람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 구술사의 역할이고, 그 중요성을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서 작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어느 누가 미군 위안부 생활을 하며 임신을 한 달에 한 번 꼬로 했다는 사실을 알았겠는가? 직접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기록하는 것이 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판타지를 접목한 실화이야기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박씨부인전>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소설 <박씨부인전>이 호란을 겪고 청나라에 소설에서만이라도 복수를 성공해서 민중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이야기였는데, 이 작품 역시 실제로 미군에 대한 복수를 직접적으로 할 수는 없지만 영화 속에서만이라도 자신을 이렇게 만든 미군의 머리를 잘라 복수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 울분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등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꽤나 나오고,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연이어 이어진다. 그러다보니 사실과 판타지적인 장면이 조금 명확하게 구분되면서 이 작품에서 그려지지 않은 다른 사실들은 또 어떨까?하는 궁금증이 차올랐고, 이 호기심과 궁금증은 미군 위안부에 대한 정보 탐색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미군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구술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역할에 대해 잘 풀어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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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치곤 심심하게 격려하는 '꿈은 이루어진다'
성덕될 뻔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할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아샤다. 씩씩한 아샤. 아샤는 로사스에 살고 있다. 로샤스는 마법의 왕국이다. 이 왕국의 왕은 매그니피토다. 매그니피토는 1년에 한 번씩 지역 주민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매그니피토를 마음속으로 깊게 존경하고 있는 아샤. 할아버지의 꿈을 이루고 ‘성덕’이 되기 위해 왕의 수습생이 되기 위한 면접을 신청한다. 두근두근 설레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면접 당일날이 됐다. 친구들의 응원을 받고 면접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샤의 꿈이 깨졌다. 매그니피토에게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는 아샤. 아샤는 매그니피토의 꿈을 제지하기 위해 또 다른 소망을 키우기 시작한다.
소원을 빌어
이 영화의 핵심은 꿈이다. 사실 꿈이라는 소재를 예고와 포스터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에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위시>는 꿈을 단순히 소재로만 쓰지 않았다. 플롯의 핵심으로 가져온 것이다. 대표적으로 문제의 발생과 해결방식에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 영화가 상정한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조명하고 싶었던 건 소원의 낭만적인 속성이다. ‘내가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났으면 좋겠어!’라고 바라는 것처럼 사람마다 갖고 있는 막연한 희망을 다룬 것이다. 이 영화의 인물들도 이런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다. 또 이 희망을 이뤄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 이 영화의 위기상황은 ‘이 희망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다룰 때 발생한다. 일의 마무리는 글쓴이가 위에 적었던 다른 꿈의 속성에 근거해서 끝난다.
플롯의 핵심이 아니더라도 꿈을 소재로 다룬 방식도 흥미롭다. 인물의 내면과 꿈의 관계를 연결시키고 있기도 하고 상징화된 무언가를 캐릭터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이 두 요소는 영화를 상큼 발랄하게 만드는 중요한 소재기도 하다. 우선 인물과 꿈의 관계도 영화가 생동감이 생기는 요소기도 한다. 인물들이 꿈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꿈에 대해서 어떤 리액션을 보여주고 있을까? 이 두 질문에서 읽을 수 있는 이 캐릭터들의 모습은 우리가 어렸을 때 봤던 디즈니의 동화책에서도 읽을 수 있는 모습이었다. 또 영화 캐릭터에 ‘별’과 ‘마법’이 등장하는 이유도 꿈이 핵심 소재이기 때문에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둘은 영화에서 특별히 힘을 줬다. 꿈의 속성만 강조하는 선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중요하게 강조한 것이다.
동화책을 읽듯
이 영화를 보다 보면 기획한 의도가 무엇인지 체감이 된다. 글쓴이는 디즈니가 우리가 알고 있는 디즈니 100년 역사를 이 <위시>를 통해 핵심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위시>의 핵심은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격려다. 사실 이 격려가 영화의 소재로 쉽게 전달할 수 있어서 설정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들이 이 전제조건을 아래에 두고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인어공주>도 ‘인어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망을 비는 것으로 시작한다. <피터팬>도, <백설공주>도, 심지어 <소울>와 <엘리멘탈>, <주토피아>도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디즈니 100년간의 필모그래피를 한 번에 요약할 수 있는 문장을 <위시>의 핵심으로 보여준 것이다.
또 이 영화는 전적으로 동화처럼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비판을 많이 받음과 동시에 기획의도를 잘 살렸다고 볼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 풀어쓰자면 이 영화 플롯의 연결고리들이 왠지 불안정하다. 인물이 다른 인물들과 상호작용하는 느낌이 없는 것이다. 알기 쉽게 설명해 보자면, 글쓴이가 지금 앉아있는 카페 사장님에게 A라는 메뉴를 시켰다고 하자. 그런데 사장님은 느닷없이 ‘A는 별로니까 그냥 B 드세요!’라며 새로운 음료를 가져온다. 이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일어날 확률이 적다. 사장님은 글쓴이와 소통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플롯은 앞 문장에서 적었던 예시 사례 같은 느낌이다. 어떤 캐릭터가 있으면 이 영화의 특정 사건이 일어날 일이 없다. 그런데 캐릭터 각자 자기 개성은 강해서 이질감이 든다. 또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근거가 부족해 다른 캐릭터들이 수습하기 바쁜 형태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존재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기 쉽다. 또 어떤 관점에서는 인물들이 상호 간의 작용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룰 하에 행동한다. 주인공 아샤의 친구들이 그 근거다. 이런 것들이 이 영화를 상투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요소다. 문제 해결까지 개성 있게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내내 납작한 채로 뭉특한 것이다.
양가감정이 드네
글쓴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것과 아쉬운 것이 같다. 바로 별 캐릭터다. 이 영화에서 별은 사랑스러운 매력을 풍기며 중반부 이후를 이끈다. 별은 정말 귀엽다. 특히 '힝-' 하는 표정이 아주 인상 깊다. 이 영화가 윗 문단에서 썼듯 상투적인 느낌이 강한데, 이런 플롯에 별 캐릭터는 극에 생동감을 부여하며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인다. 사실 이 영화를 기대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 별 때문이라도 글쓴이는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쓴이는 주인공 아샤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이유로 이야기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말이 있다. 글쓴이는 이 별의 존재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생각한다. 이 캐릭터가 할 수 있는 능력이 모호한데, 이 영화가 이를 악용하는 것이다. 이 별의 정체를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풀었다면 이야기에서 의문부호가 드는 지점이 확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부분을 섬세하기 챙기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이 캐릭터를 기획한 의도가 궁금해진다. 다른 캐릭터들은 디즈니의 기존 필모그래피를 연상케 하는 요소가 있지만 별에겐 부족하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별은 그냥 단순히 귀여우면서 일만 해결하라고 들어간 캐릭터인 걸까? 단순히 캐릭터가 귀여운 것이 영화의 많은 부분이 차지한다면 사실 그동안 봤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에 좀 못 미치는 것이 아닐까?
기억이 안 나요
이 영화의 장르 특성 중 하나는 뮤지컬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영화에 들어간 삽입곡이 별로 기억 안 난다. 최근작 <엘리멘탈>에서 Lauv가 불렀던 노래가 인기를 끌고, <겨울왕국>에서 ‘Let it go’가 전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는 것과는 영 정반대다. 그런데 영화에서 음악이 중요하게 들어간다. 플롯을 잇는 연결고리인 것이다. 이런 물리적인 분량과 디즈니의 필모그래피를 생각해 본다면 많이 아쉽다.
하지만 이 영화가 확실하게 성공하하고 있는 지점도 분명 있다. 바로 기존 디즈니 영화들을 오마주한 것이다. 영화 대사에서도 직접적으로 등장하고 몇 장면은 직접 비유하기도 한다. 또 이 영화 자체가 기본적으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장면이 몇 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디즈니의 팬들이라면 한 번쯤 관람을 고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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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직 기자의 시점으로 본 '기자 영화'
기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마치 탐정처럼 사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조금씩 조금씩 본질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다가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며 반전을 맞이한다. 그래서 그는 펜으로 바로잡고 정의 구현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만 보면 영화 '댓글부대'는 흔히 사회고발을 하는 기자 영화로 비치고, 원작소설을 집필한 장강명 작가 또한 기자 출신이었기에 더더욱 기자 영화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정진영 작가의 '침묵주의보'를 드라마화한 JTBC '허쉬'와 같은 결을 따라갈까 영화를 관람하기 전 살짝 예상해 봤다.
전직 기자의 시점으로 바라본 '댓글부대'는 우리가 흔히 아는 기자 영화와는 전혀 다른 결이다. 특정 대기업을 떠올리게 만드는 만전 그룹 비리를 보도했다가 오보로 판명돼 한순간에 '기레기'로 전락한 임상진(손석구)이 절치부심해 비밀리에 운용 중인 만전 내 여론조작팀의 실체를 들춰내 정의 실현으로 이어질 줄 알았지만, 정작 이 영화는 그러한 스토리에 관심 없다.
안국진 감독이 '댓글부대'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기자 임상진이 쓰는 '기사'다. 인터넷 문화가 태동한 1990년대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유튜브 등이 주류가 된 현시점까지 보여주면서 여론을 주도하는 건 소수 미디어 매체가 아닌 불특정 대다수에게 넘어갔다는 걸 전한다. 그러면서 임상진의 피땀눈물로 완성된 기사의 영향력은 점점 잃어가고, 진실인지 거짓인지 불분명한 인터넷 글이 막강한 힘을 얻는 오늘날의 현주소를 조명한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정보들은 하나같이 '100% 팩트'라고 말하기 애매함의 연속이다. 임상진에게 만전의 여론 조작을 제보하는 찻탓캇(김동휘)의 주장이나 만전의 비리를 알린 중소기업 대표의 말, 만전이 진짜 여론을 조작했는지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아니, 영화는 애초에 이 정보들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다. 어차피 중요한 건 정보의 사실 검증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지 여부다. 믿는다면 진짜로 받아들일 것이고, 의심하면 가짜로 보일 테니까.
그래서 '댓글부대'는 흥미롭다. 그동안 근현대사를 재해석하는 데 할애하는 반면 현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에는 조용했던 다른 한국영화들과 다르게 과감한 선택을 취했기 때문이다. 안국진 감독의 선택은 확실히 참신했고 그는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다만 '댓글부대'의 화법과 연출 방식까지 참신하다고 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장황한 내레이션과 대사들이 주류를 이루며 풍자하는 방식은 할리우드 대표 감독 중 하나인 아담 맥케이를 연상케 하나, 마치 말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플래시백이 잦다 보니 작품의 전개 속도도 빠르지 않아 지루함도 느껴진다. 반전이 등장했음에도 감흥이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댓글부대'에 출연한 배우들의 쓰임새도 아쉽다. 주연인 손석구를 비롯해 김성철(찡뻤킹 역), 김동휘, 홍경(팹택)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력과 존재감을 뽐냈던 배우들인데 유독 이 영화 내에선 크게 매력적이지 못하다. 아무래도 '기사'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캐릭터들이 희미해진 게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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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친 일상 속 가장 필요한 한마디 <STOP MAKING SENSE>
감독: 조너선 드미 (Jonathan Demme)
주연/밴드: 토킹 헤즈 (Talking Heads)
개봉 연도: 1984년
장르: 콘서트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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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MAKING S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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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려 하지 마” 또는 “의미를 만들려 하지 마” 로
직역할 수 있는 오늘의 영화는 바로 《Stop Making Sense》 입니다.
국내에서는 최초 상영인만큼, 더욱 애정을 갖고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영화 시사회에 참여했습니다.
이 영화 제목도 굉장히 재밌습니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는 제목이라고 느꼈는데요
이는 영화를 논리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그냥 느껴보라고 말하거나,
규칙과 질서, 합리성에 기반한 사회에 대한 풍자로도 읽힐 수 있고
결국 관객에게 why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에게 익숙해진 콘서트 영화
그 전엔 어떤 콘서트 영화가 있었을까요?
현재의 콘서트 영화를 있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탑 메이킹 센스에 대해 이야기 전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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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한 제목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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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Making Sense》는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1983년 공연을 담은 콘서트 영화로,
단순한 콘서트 영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연극, 퍼포먼스, 자아 탐험이라고 보는 편이 맞아요.
공연은 전기줄 하나, 기타 하나, 그리고 무표정한 데이빗 번의 'Psycho Killer'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곡이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조명, 악기, 밴드 멤버가 차례차례 무대 위로 ‘등장’해요.
이 말도 안 되는 구성은 음악이 쌓이고, 자아가 태어나고, 집단 에너지가 폭발하는 뮤지컬 같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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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Suit, Bigger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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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데이빗 번이 거대한 정장을 입고 등장하는 그 순간, 우리는 느낍니다
"뭔가 이상해. 그런데 눈을 뗄 수가 없어."
이 빅 수트(Big Suit)는 단순한 퍼포먼스 소품이 아니에요
‘작아 보이는 머리’를 강조하고자 만든 이 의상은
오히려 현대사회의 소외된 자아, 과잉된 이미지, 소비사회의 기괴함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리듬과 몸짓으로 말하죠.
말보다 강렬한 음악의 언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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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화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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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영화라고 하면 흔히 BTS, 테일러 스위프트, 비욘세 같은 스타들의 대규모 콘서트 영화를 떠올리지만,
《Stop Making Sense》는 그 모든 틀을 벗어납니다.
무대가 곧 무대극이 되고, 사운드가 서사가 되고, 아티스트가 스스로를 ‘형상화’하는 예술적 실험이자 퍼포먼스 필름이죠.
이 영화는 단순히 팬을 위한 선물이 아닙니다.
형식, 연출, 음악,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설계된 퍼포먼스 아트로, 영화 그 자체로 ‘전시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사운드와 빛, 움직임으로 말없이도 이야기하는 유일한 콘서트 영화죠특히 카메라 시점은 무대 자체에 집중하며 관객 샷이 거의 없습니다.
《Stop Making Sense》는
나의 스타를 다시 보는 경험보다는,
내가 무대 위에 있는 것 같은 새로운 몰입감을 주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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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콘서트 영화가 아닌 나 자신이 무대 위에 올라가는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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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1980년대 가장 대담했던 아티스트들의 목소리를
가장 선명하게, 가장 생생하게 다시 만날 수 있는 순간 앞에 서 있어요.
《Stop Making Sense》는 단순히 과거의 회고가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의 관객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 당신은 지금 무엇에 몰입하고 있나요
당신의 자아는 어떤 리듬을 타고 있나요? "
음악과 연출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기류를 공간 전체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와 순간은
바로 극장이라고 생각합니다 .
무더위와 예상치못한 장마로 많이 지쳐있을 여러분들에게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선사할
1980년대 가장 대담했던 아티스트들의 목소리를
2025년 8월 13일, CGV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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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흡연하는 페미니스트라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영화
8★/10★(신수원 감독 작품, 2021년, 108분, 한국.)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의 역사를 기록하는 영화, 영화에 대한 영화의 계보를 기록한다면 어떤 영화가 포함될까? 우리가 영화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시네마 천국〉부터 혁혁한 공로를 세웠으나 소외되어온 흑인의 기여를 영화사에 기입하겠다는 야심을 품은 최근의 〈놉〉까지 다양한 영화가 떠오른다.
그리고 여기, 〈오마주〉가 있다. 〈오마주〉는 종종 ‘홍일점’ 대접을 받았으나 대체로 빛 좋은 개살구로 취급되었던 여성 영화인에게 바치는 헌사다. 여전히 영화계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시대 여성 영화인들을 향한 연대의 마음을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중년의 여성 영화감독 지완이다. 지완은 세 편의 영화를 연출했으나 흥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집에서는 ‘꿈꾸는 여자랑 살면 외로워진다’는 핀잔을 받거나 돈 되는 일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지완이 여기서 별다른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가족의 말이 지완에게 모욕이 아닌 일상이란 의미다.
그러던 지완에게 영상자료원에서 일 하나가 들어온다. 1960년대에 활동한 한국의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인 홍재원 감독의 〈여판사〉* 상영회를 준비 중인데 필름 상태가 좋지 않으니 복원해달라는 의뢰였다. 〈여판사〉는 판사로 일했던 여성이 남편에게 독살당했다는 실제 사건에 모티프를 얻어 제작된 영화였다. 홍재원 감독은 결말을 바꾸어 주인공이 좋은 판사인 동시에 효부로도 인정받았다는 영화를 만들었다. ‘슈퍼우먼’을 강요하는 상상 속 세계에서나마 ‘단죄’ 당한 여성을 복권시켜준 것이다. 현실의 홍재원 감독은 혹시나 모를 불이익에 절친한 동료에게조차 자신에게 딸이 있음을 밝히지 않았을 정도로 고독하게 영화 작업을 이어갔지만 말이다.
지완은 어렵게 〈여판사〉의 대본을 구하고 성우와 후시녹음을 하며 영화의 사운드 공백을 채워나가는 등 복원 작업에 매진한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영화가 뚝뚝 끊긴다. 중간에 잘린 부분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검열 때문이다. 검열당한 장면이 대단히 파격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페미니스트 관객이라면, 홍재원 감독의 옛 여성 동료인 필름 기사가 복원해낸 이 장면에서 기품 있는 뒷모습으로 담배를 피우는 화면 속 주인공과 함께 흡연하고 싶어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담배는 저항과 연대의 상징이 된다.
〈여판사〉의 잊힌 조각들을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지완은 홍재원 감독에게서 자신을 본다. 홍재원 감독 역시 여성이 소수자인 영화판에서 힘겹게 버티며 세 편의 영화를 찍었다. 힘들었지만 적게나마 자신의 곁을 지키는 동료 여성들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좋은 아내, 엄마이자 좋은 감독이어야 했다. 지완과 놀랍도록 닮은 데가 많다.
지완은 두렵다. 홍재원 감독을 향한 연대의 마음과 동시에 현실에 대한 공포가 샘솟는다. 홍재원 감독은 세 번째 영화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영화를 찍지 못했다. 그 시절 그녀와 함께 영화를 작업했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와 2020년대가 겹치기 시작한다. 지완은 세 번째 영화가 흥행에 처참히 실패했고, 오랜 세월을 함께 작업한 동료 여성 PD는 눈물 흘리며 그 영화를 끝으로 영화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지완은 남편‧아들과 다정하게 투닥거리지만 그들이 지완의 꿈을 응원해주지는 않는다. 자궁에 큰 혹이 생겨 자궁적출 수술을 받기도 한다.
영화계 여성 선배를 발견했다는 기쁨과 공포의 혼재 속에서 지완은 깨닫는다. 멈추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지완을 다잡는 건 지완 자신뿐만이 아니다. 〈여판사〉를 복원하며 가슴으로 깊게 공명한 홍재원 감독, 그리고 이제는 노쇠해진 그녀의 여성 동료도 지완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자네는 끝까지 살아남아.” 지완에게 여러 여성의 삶과 꿈이 포개진다. 이제 지완은 혼자가 아니다. 끝내 히트작은 만들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완은 영화를 계속함으로써 무언가가 변화했음을, 그리고 그 변화는 바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여성 선배들에게 빚진 것임을 기억하며 영화를 만들 것이다. 존경과 헌사로서의 ‘오마주’. 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그녀가 언젠가 후배 여성 영화인들에게 받을 것이기도 하다.
여성 영화의 계보와 여성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것이 〈오마주〉의 전부는 아니다. 〈오마주〉에는 어쨌든 무언가를 만들어놓는 것의 중요성도 담겼다. 지금은 아무도 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하찮은’ 결과물이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가 닿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판사〉가 그러했듯 성실하고 뜻있는 후배에게 발견되는 일은 극소수에게만 허락된 특권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록을 남기는 일은 중요하다. 누군가는 그 시대를 다르게 살아냈음을 나 자신에게, 언젠가 만나게 될 이름 모를 후배에게 증언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벅차오를 정도로 감동적인 이 영화는 잊힌 창작자들에게,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창작자들에게 진한 위로와 연대의 계기로 다가갈 것이다.
*〈오마주〉가 참고한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는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SWIFF)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5일부터 9월 1일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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