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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작가2021-09-21 21:08:07

토베 얀손이라는 이름의 모험

[토베 얀손] 리뷰

토베얀손

줄거리

유명한 조각가 아버지의 밑에서 자라, 자연스레 예술가로 성장한 토베 얀손.

흔들리고 불안정한 삶의 굴곡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이야기들.

그녀는 어떤 예술가였을까?

 

토베 얀손이라는 이름의 모험

숨은 의미 찾기

무민은 하얗고 말랑하고 폭신하고 따스하며 무해하다.

언뜻 보기엔 곰인지 하마인지 헷갈리지만 사실 무민은 '무민 트롤'로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트롤을 토베 얀손만의 시각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녀가 처음으로 무민의 존재를 눈치채고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방공호 속에서다. 어둡고 암울한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그녀의 염원이 무민이라는 존재로 하여금 그녀의 마음속에서 뛰쳐나온 건 아닐까.

영화는 혼돈 속에 빠진 예술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듬어 가는지에 대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다루고 있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토베 얀손의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 같지만, 실은 그녀의 예술이 어떻게 안정되어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불안정한 관계들 속에서 그녀가 느꼈던 날것의 감정들이 정제되어 모두 무민이라는 예술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이건 그냥 돈벌이야. 이 그림이 진짜 나야."

토베는 만화를 칭찬하는 비비카에게 정색한다.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며 저것이 진짜 자신이라고 말한다. 만화는 그저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며, 자신은 순수 미술을 그리는 예술가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 토베의 태도는 겉으로 보기엔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지는 게 싫어서 인정받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순수 미술에 대한 그녀의 열망은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순수 미술에 대한 사랑은 토베가 초상화를 그릴 때 나타난다. 그녀는 한눈에 알아보기는 힘든 추상화를 그리며 화산과 물줄기와 불꽃이라며, 이 중에 어떤 것이 자신일지를 묻는다. 자기 내면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지 토베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치열한 고민 끝에 얻어낸 정답을,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캔버스에 담아낸다.

"토베, 당신과 그림은 별개야."

"내 그림이 나야."

토베는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의 전시회에서 토베는 담배를 피우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빼라는 아버지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것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게 예술가 지원금 선정 여부가 달린 전시회인데도 말이다. 그녀는 캔버스에 거짓을 담은 적이 없었다. 약간 숨기거나 꾸며낼 법도 한데, 멍청할 정도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끄집어낸 것이다.

'내 그림이 나'라는 말을 한 치의 거짓 없이 뱉을 수 있는 화가가 어디 있을까.

 

프랑스에서 비비카가 돌아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토베. 그녀는 자신이 아닌 다른 연인과 웃음을 짓는 비비카에게 상처를 받는다.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지만, 정작 비비카가 하는 말은 자신을 위해 무민을 주인공으로 한 희곡을 써달라는 것. 토베는 그 말을 차마 거역하지 못하고 희곡을 쓰기로 한다. 그 다음날, 아토스가 찾아와 결혼을 이야기할 때 토베는 자신의 초상화가 그려진 캔버스에 하얀 덧칠을 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캔버스 살 돈이 없어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기로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후에 그녀가 붓과 물감 같은 미술용품을 서랍장 안에 처박아두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보다 앞서서 이 장면을 통해 이미 토베가 순수 미술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상처받아서? 희곡을 쓰기로 해서? 아니다. 무민이 비비카를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끈이기에, 진짜 자신을 숨기고 비비카가 원하는 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다.

"왜 마음을 바꾸셨죠?"

"왜냐면 제가 화가로서 실패했거든요."

토베는 본격적으로 신문에 무민을 장기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진다. 그토록 인정과 명예를 원했지만 그녀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불행해 보일 정도다. 시종일관 어둡고 가라앉은 토베의 표정은 항상 웃고 있는 무민의 표정과 상반되어 보인다. 계약서에 서명을 할 때 그녀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감정은 '자포자기'였다.

비비카가 떠나고 그녀에게 남은 무민은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한때는 사랑의 표현물로 여겨지던 사랑스러운 비프슬란과 토프슬란의 대화도 이제 그녀의 마음에 비수가 되어 꽂힐 것이었다. 무민은 아버지의 말마따나 '낙서'일뿐이었다. 다만 좀 비싼 낙서였을 뿐이다. 그것은 자신의 '작품'이 아니었다.

돈벌이 수단이자, 비비카와의 마지막 남은 연결고리였다.

 

"너만큼 사랑한 사람은 없었어."

"난 프랑스만큼 사랑하는 게 없어."

프랑스에서 운명처럼 다시 재회한 토베와 비비카. 토베는 정착된 사랑을 원했지만, 자유분방한 비비카에게 토베는 스쳐가는 하나의 인연에 불과했다. 그녀와의 하룻밤을 보낸 토베는 결국 헤어짐을 택한다. 이 순간에 비비카는 평소처럼 토베에게 "가지 마."라고 명령하지만, 토베는 "더 이상은 안 되겠어."라며 결국 방을 나선다.

결국 토베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끈마저 사라져버린 상황.

토베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어머니에게서 두꺼운 공책 하나를 건네받는다. 토베의 기사가 실린 신문, 그녀의 작품이나 인터뷰가 실린 잡지 등을 정성스럽게 오려 붙인 공책은 바로 아버지의 것이었다. 무민을 희곡으로 써서 처음 무대에 올린 날, 연극이 끝나고 토베가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하기도 전에 못마땅한 얼굴로 극장을 나섰던 아버지가 실은 애정 어린 눈으로 그녀의 모든 작품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 토베는 그날 밤, 아버지의 조각품 하나와 공책을 펼쳐두고 와인을 마시며 울고 웃는다.

오랜만에 캔버스와 붓을 꺼내든 토베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린다. 때마침 찾아온 친구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자기 초상화라고 말한다. 그들의 짤막한 대화와 함께 영화는 끝난다.

"제목이 뭔데?"

"시작하는 사람."

 

토베는 평생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쓰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비비카와의 헤어짐은 굉장히 중요했다. 헤어짐 이전까지 토베에게 무민은 그저 비비카와의 흐릿한 연결고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는 비비카가 자신과는 다른 사람임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서 떠나보내며 무민에 대한 그러한 마음도 내려놓는다. 그 이후에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을 확인한 토베는 무민을 다른 시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온전한 자신의 예술로, 어엿한 하나의 작품으로.

모두가 무민에 강렬하게 이끌리는 동안 정작 작가인 토베는 무민을 거부해왔다. 토베의 아버지가 무민을 두고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며 무시하는 태도가 토베 자신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삶의 굵직한 언덕을 넘을 때마다 그녀가 눈을 돌렸던 것은 무민이었다. 무민은 토베의 생각과 마음을 그대로 투영한, 아름답지만 때로는 아픔과 슬픔이 담긴 그녀만의 숲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에 알게 된 아버지의 진심은 그녀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토베는 순수 예술과 상업 예술의 경계에서 갈등하고 고뇌했지만, 실은 자신에게서 나온 모든 결과물을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비비카라는 강렬하게 타오르는 사랑이나, 아토스처럼 전략적인 사랑이 아닌, 언제든 자리를 지키는 가족처럼 은은하게 데워주는 사랑의 관계도 존재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고, 그 모든 관계 속에서 자신은 최선을 다했으며, 그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짜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라는걸, 토베는 알게 된 것이다.

토베는 더 이상 무민을 거부하지 않는다.

방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그린 영화 마지막 장면의 초상화는 그녀의 심경을 대변한다. 초반에 그렸던 추상적인 초상화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녀는 이전까지 자신을 '자유롭다'라고 규정하길 원했다. 하지만 진짜 자유란 규정하고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자유로우려고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진정 자유로워지기로 한다. 그리고 정해지지 않은 항로를 향해 나아가며 외친다.

"난 인생이란 멋진 모험이라고 믿어요."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건

감상평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무민에는 정말 관심이 없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라는 점 외에는 아는 게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막상 영화를 보려고 영화관에 딱 앉은 순간 약간 긴장이 되었던 것 같다. 놓치지 말고 잘 봐둬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점차 영화를 보면서 영화 내용이나 의미보다는, 토베 얀손이라는 한 명의 예술가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몇몇 장면들은 공감이 가기도 했다. 그중 하나는 사인회를 하면서 침울해하는 장면이었다. 함께 예술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 게 보일 때, 그리고 나 역시 예술보단 생업을 택했다는 게 느껴질 때. 그 순간들이 떠올라 나까지도 괴로워지는 기분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센 바람에 창이 열리고 토베가 작업하던 무민 원고가 방안에 흩날리는 장면이었다. 토베는 잠에서 깨 이 장면을 그저 멍하니 지켜본다. 예술을 쫓기만 하던 토베에게 예술이 드디어 손을 내밀어 주었다는 느낌이었다. 이 모든 것이 실은 다 하나였음을, 내 생각이고 작품이고 세계였음을 깨닫는 듯한 토베의 모습에 함께 벅차올랐다.

영화를 보고 무민보다는 무민을 만든 토베얀손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어떤 글을 써왔는지 궁금해졌다. 이제는 무민에게서 토베 얀손이 겹쳐 보인다.

 

해당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참석하였으나, 솔직하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작성자 . 담작가

출처 . https://blog.naver.com/shn0135/22251252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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