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로진2024-09-05 11:01:54
리얼리티 가족 다큐멘터리
9/11 개봉영화 <장손>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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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성 발언.
나는 여자다. 그리고 김씨다. 조부는 종가집 장손이었다. 무려 4대 독자! 그리고 대망의, 내 본적은 경상북도다. 나는 순혈이다. 지독한 가부장제의 순수혈통. 종친회에서 고칠 데를 손 봤다는 올칼라 족보를 만들었고, 여전히 나는 남동생의 동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리 가족 소개 같은 숙제를 하면 아버지가 그리 말씀하셨다. 우리 집은 무슨 김씨 무슨 파 무슨 왕의 몇대손이며 우리 할아버지는 몇대 독자고 어쩌고 저쩌고. 어릴 때는 그게 자랑인 줄 알았더랬다. 그리고 좀 커서는 족보를 샀겠거니 생각했다.
커서 보니 쓸 만한 유전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도 나와 내 동생과 아버지와 할아버지 등등과 비슷한 모습일진대 무슨 놈의 대를 그렇게 이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도대체 이 족보주의에서, 순수 혈통을 이어가서 얻는 게 무엇인가. 그 유전자를 굳이 길이길이 남겨야 하는가. 어릴 때부터 이해가 안 갔다. 물론, 뭐 내가 태어났을 때 딸이어서 아무도 병원에 안 오고, 내 이름이 뒤에 아들 낳는 이름으로 지어질 뻔하고, 족보에도 올려주지 않아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무슨 왕정 제도를 미시체계에서 이룩한다는 게 좀 우스우니까. 장남을 왕세자에 책봉하고, 훗날 왕위를 물려주는 것마냥 일개 가정에서 신수왕권설 같은 걸 주장하는 게 이상하니까.
자, 개인사를 주절주절 늘어놓은 까닭은 영화 <장손>이 픽션이기 때문이다. 픽션인데,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리얼리즘 픽션.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경상북도 김씨 가족의 장손에 관한 이야기'다. 너무도 핍진하여 두 시간 동안 경상북도 김씨 가족의 차남의 장녀가 괴로움에 몸부림쳤던, 그 이야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건
족보와 장손밖에 없다. 장손을 제외한 나머지는 흩어져야 산다. 영화는 가정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층위의 갈등을 두 시간 동안 보여주는데, 그 갈등이 비단 가정 내에서만 발생하지는 않는다.
프랙탈은 일부를 확대해 보면 전체와 동일한 모양이 반복되는 구조를 말한다. 그러니까 '선산 김씨'네 가정은 대한민국의 프랙탈이다. 영화는 가족에 관해서 말하고 있으나 이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서사가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은 '선산 김씨'네가 유난스럽지도, 특이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몇 개의 갈등이 중첩되면서 켜켜이 쌓인다. 그 갈등이 새삼스럽지도 않다. 제법 클리셰적인 갈등이다.
자기네 조상 제사를 지내는데 김씨 아닌 사람들만 모여 앉아 전을 부치고, 김씨들은 방문을 닫고 들어가 화투 치고 맥주를 마신다거나, 장손이 올 때까지는 에어컨도 안 틀어준다거나.
6.25 전쟁 때 빨갱이가 얼마나 잔인했는지 고장난 라디오처럼 말하는 노인과 노인의 얘기가 궁금하지 않은 손자, 사업으로 부자가 된 자식과 사는 게 녹록지 않은 자식. 애초에 돈 되는 공장은 아들 주고, 낡은 집은 딸을 준 유산 분배.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와 세대갈등과 남녀갈등이 총체적으로 한 가정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전체와 동일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체가 '두부 공장'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두부가 바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음식 아닌가.
두부를 잘 뭉치려면 쌩노가다를 해야 한다. 원래는 가정 내에서 만들었다(아는 척하는 이유는 내 외조모가 두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선산 김씨네 두부공장 역시 처음에는 가정 내에서 조모인 오말녀가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말녀는 며느리가 공장에서 찍어내는 두부가 못마땅하다.
두부 공장 씬에서 장남인 태근이 일하는 모습은 스케치로도 거의 잡히지 않는다. 대부분 며느리가 일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일하는 사람은 손녀사위다. 그런데 사장은 당연히 태근이다.
간단히 설명된다. 이 가정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여자와 여자와 여자와 여자들이다. 다시 프랙탈. 유사 이래로 놀고 먹은 여자는 소수다. 장손이라 해서 집안을 일으키고 어쩌고저쩌고 한 것만 같지만, 사실상 장손 혼자서 가정을 부양하고, 조상들을 제사지내주지 않는다.
조모는 장손 판타지를 공고히 한다. 조부는 규범과 같은 상징체계에만 관심이 있다면 실질적으로 현실화하는 사람은 조모다. 장손이 올 때만 에어컨을 켜 주고, 장손의 어릴 적 이야기를 신화처럼 반복하고, 제사상에 올릴 음식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여자들을 감시하는 여자. 장손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여자. 장손이라는 고귀한 존재를 만들어 희생을 합리화하는 여자. 어쩌면 장손은 고된 여자들이 만든 신화다.
그러니 사실 여자들이 뭉치지 않고 흩어지는 순간, 장손? 그게 뭔데.

가족의 미래
영화의 초반부에 제사 준비를 하면서 오말녀는 딸에게 '상조보험'에 가입하라고 재촉한다. 보살이 집안에 초상날 것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누구 하나 죽긴 죽겠구나' 하고 예상하게 된다.
누가 죽을까. 가족의 미래를 점쳐보자.
1. 김승필(장손의 조부)의 사망: 매우 자연스럽다. 나이도 많고, 대장암 수술을 해서 건강도 좋지 못하다. 제사를 꼭 자정에 맞추어 지내야 한다는 매우 고지식한 사람이다. 입만 열면 빨갱이 타령. 김승필이 사망한다면 자연스럽게 집안의 주도권이 김태근에게 넘어갈 것.
2. 김태근(장손의 부)의 사망: 장손의 모가 농담으로 하는 말. 하도 미워서 잘 때 한 대 때렸다. 죽지도 않고 왜 깼냐. 뭐, 슬프지만 장손이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두부 공장과 관련된 이슈가 발생할 것. 공장은 서울에서 연기하는 장손에게 갈 것이냐, 공장에서 일하는 손녀사위에게 갈 것이냐.
3. 김성진(장손)의 사망: 큰일난다. 이 가족 망한다.
4. 오말녀(장손의 조모)의 사망: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책임지고 있는 실질적 가장. 오말녀는 현재 매우 건강하고 꼬장꼬장한 노인이다. 한글을 배우려는 의지가 강하다. 오말녀가 죽는다면 장손 판타지로 이어온 가정은 붕괴된다. 오말녀만큼 장손을 우쭈쭈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
5. 그 외 여자들의 사망: 서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 큰 사건이라 함은 누군가의 장례식이 될 것이다. 장례식은 별 탈 없이 잔잔하게 살던 가족에게 던져진 돌멩이가 아니다.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는 겉잡을 수 없는 와류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장례식을 계기로 드러났을 뿐.

<장손>은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KBS독립영화상과 오로라미디어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를 보기 전 감독이나 출연진, 줄거리, 어떤 정보도 찾아보지 않고 갔다. 두 시간 동안 경북에 본적을 둔 여성을 미치게 만드는 솜씨에 무슨 상을 받아도 받았겠거니 예상만 했다.
이 영화에 다양한 매력이 있겠으나 그중에서도 탁월한 이미지를 꼽고 싶다. 오래된 한옥에 사는 노인들의 출입을 쉽게 하려고 문간에 걸어둔 동앗줄 같은 디테일. 동그란 손잡이가 달린 줄조차도 굉장히 의미심장해 보인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압권인데, 장손 성진이 택시를 타고 떠나고, 성진을 배웅한 노인은 눈 쌓인 비탈길을 아주 오래 걷는다. 롱테이크로 잡아낸 그 장면은 마치 서편제 같다. 뭐 대단한 걸 하고 돌아서는 장면 같다는 뜻이다.
택시를 탄 성진의 얼굴에 아침해가 날카롭게 비친다. 성진은 눈을 찡그린다. 빛을 보는 대신 눈을 가려 버린다. 그런 디테일에서, 이 가부장제라는 망령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장손 성진의 손에서는 결코 낡은 시대가 종언되고 새로운 체제가 구축되지 않을 것임을 예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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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그땐 그랬지' 정도의 픽션, 누군가에게는 현재 진행형의 고통, 또 누군가에게는 피해망상,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관습'.
<장손>은 픽션이 아니다. 리얼 다큐멘터리다. 추석 직전에 개봉하는 만큼, 가족과 함께 보면... 과연 괜찮을까?
장손(House of the Seasons, 2024)
감독: 오정민
출연: 강승호, 손숙, 우상전 외
러닝타임: 121분
개봉: 2024. 09. 11.
씨네랩에서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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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2024년 하반기 최고 기대작 중 하나였던 <위키드>가 개봉 첫 주 만에 누적 수익 1억 1,400만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이는 2024년 개봉작 중 세 번째로 높은 첫 주말 흥행 기록이라고 합니다. <위키드>는 현재 로튼 토마토 90%을 기록하며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현재의 성공과는 다르게 <위키드>의 영화화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당초 2016년 개봉을 목표로 했으나, 2019년으로 미뤄졌습니다. 그러나 그 개봉일은 유니버설의 <캣츠>에게 넘어갔고, 다시 2021년으로 연기되면서 <씽2게더>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감독 역시 <빌리 엘리어트>를 연출한 '스티븐 달드리' 감독에서 <인 더 하이츠>의 '존 추' 감독으로 한 차례 교체된 바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총 2부작으로 구성된 <위키드>는 투입된 제작비만 3억 5천만 달러 이상에 달하며, 유니버설 스튜디오 역사상 가장 비싼 영화로 기록되었습니다. 후속작인 <위키드: 파트2>는 내년 하반기 북미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국내보다 한 주 늦게 북미에서 개봉한 <글래디에이터 Ⅱ>는 누적 수익 약 5,500만 달러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보였습니다. 제작비가 약 2억 1천만 달러로 추정되는 만큼, 국제 시장에서의 성과가 흥행 성공의 핵심이 될 전망입니다. 현재까지 해외에서 1억 6,500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해서는 약 4억 달러에 가까운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중국 시장에서 고작 300만 달러를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이 목표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편, <위키드>는 북미에서의 성공에 비해 국내에서는 누적 관객 수 65만 명을 불러들이며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며 침체된 극장 상황을 짐작케 했습니다. <위키드>와 함께 개봉한 <히든페이스>가 누적 관객 수 35만 명으로 2위를, <글래디에이터 Ⅱ>가 누적 관객 수 72만 명으로 1위에서 3위로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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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크아이>의 페이소스를 다방면으로 밀어붙이는 뚝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클린트 바튼(제레미 레너)'은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하는 뉴욕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던 중 과거 범죄자들을 죽이고 다녔던 과거의 자신, '로닌'이 목격되었다는 뉴스를 접한다. 이에 클린트는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가짜 로닌을 찾아 나서고, 불법 경매장에서 우연히 로닌 슈트를 갖게 된 22살짜리 궁수 '케이트 비숍(헤일리 스타인펠드)'를 만난다. 본래 클린트는 슈트를 회수한 후 가족에게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케이트가 목격한 범죄 현장 속 로닌과 관련된 미스터리가 끝내 그의 발목을 잡는다. 한편 아버지를 죽인 로닌을 향한 복수심에 불타는 '마야(알라콰 콕스)'의 조직인 트랙수트 마피아와 나타샤 로마노프의 복수를 하려는 '옐레나 벨로바(플로렌스 퓨)'는 점차 클린트를 위협해오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가족에게 돌아가는 대신 다시 한번 히어로 호크아이가 되기로 결정하고, 평소 호크아이를 동경해오던 게이트와 파트너가 되어 새로운 임무에 나선다.
서른 편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한 MCU에는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슈트를 입거나,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체능력을 지니거나, 아예 신이나 다름없는 수많은 히어로가 공존한다. 그들에 비하면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활과 화살만 들고 히어로 활동을 하는 호크아이는 너무나도 약하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어벤져스> 1편부터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이르기까지 원년멤버로서 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클린트 바튼이라는 평범한 인간이 호크아이라는 히어로로 활동할 때 느껴지는 페이소스(pathos)에 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보자. 도저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동료들마저 울트론을 대적하기 버거워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가족을 이룬 히어로인 호크아이는 어벤져스의 일원이었기에 가족을 뒤로하고 활과 화살만을 든 채 전장으로 나서야 했다. 이런 그의 모습은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가족을 잃고 범죄자를 죽이고 다니는 로닌이 되었다가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붙잡고 시간여행에 자원하는 <엔드게임> 속 호크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즉, 특수한 능력이 없더라도 목숨이 위험한 전쟁터에 나아갈 수 있는 정의감과 용기라는 히어로의 미덕과 자격을 희생을 감수하고 온몸을 던져 보여주는 것이 호크아이의 힘이자 정체성이고 매력이었다.
이러한 호크아이의 캐릭터성은 디즈니+에서 공개된 MCU의 네 번째 드라마 <호크아이>에서도 든든하게 극의 무게 중심을 잡아준다. 무엇보다도 리빌딩이라는 MCU 페이즈 4의 대전략이 페이소스라는 캐릭터성을 통해 영리하게 실행된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페이즈 4의 작품들은 대체로 기존에 미처 풀어내지 못한 히어로의 서사를 정리하고, 그들의 새로운 이야기 또는 후계자들을 소개하며, 그 과정에서 다양성의 관점을 녹여내고자 노력 중이다. 이때 클린트의 페이소스는 <호크아이>가 페이즈 4에 속한 작품으로서 이 모든 역할을 해내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당장 드라마 속 호크아이의 이야기는 눈물겹다. 지구와 우주를 구한 영웅이지만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감정은 자부심이나 뿌듯함도 아니고, 다른 동료들에 비해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도 아니다. 그저 극심한 상실감이다. <어벤져스>의 뉴욕 전투를 묘사한 뮤지컬 '로저스'를 보더라도 호크아이는 스스로를 희생한 나타샤 로마노프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처음으로 어벤져스가 결성된 현장의 기념비 앞에서도 그는 나타샤와 다른 동료들의 희생에 빚을 지고 있다며 눈물을 쏟는다. 그는 다른 동료들이 죽거나, 은퇴했거나, 극심한 부상을 입었거나, 우주로 떠나버린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어벤져스의 일원으로서 그 무게감을 온전히 지탱해야 한다.
드라마는 이러한 호크아이만의 페이소스를 다방면으로 확장시키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후계자이자 동시에 파트너인 케이트 비숍과의 관계 형성이 대표적이다. 뉴욕 전투 도중 호크아이 덕분에 목숨을 건진 후 호크아이를 아이돌로 여겨온 케이트. 우연히 로닌의 슈트를 갖게 된 그녀는 자신이 목격한 범죄 현장의 미스터리를 풀어내기 위해 로닌 슈트를 매개로 클린트와 동행하게 되고, 각자의 이유로 클린트에게 복수하려는 마야, 트랙수트 마피아, 그리고 옐레나에게 쫓겨다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케이트는 그녀를 보호하고 또 범죄에 맞서기 위해 가족과 함께하는 수년만의 크리스마스도 뒤로 한 채 임무에 나서는 클린트로부터 그저 선망의 대상이었던 히어로가 갖추어야 할 자격을 배운다. 그래서 그녀를 둘러싼 여러 위협과 복잡한 개인사에도 불구하고 임무에 나설 수 있겠냐는 클린트의 질문에 케이트는 다음처럼 답한다. "오직 날 수 있고 레이저를 쏴야만 영웅이 되는 건 아님을 당신이 보여줬으니까요. 어떤 대가가 따르든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누구든 영웅이 될 수 있다고요". 이렇게 클린트의 페이소스가 보여준 히어로의 자격이 케이트 비숍에게도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면서 드라마는 깔끔하게 세대교체를 진행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클린트의 슬픔은 영화 <블랙 위도우>의 쿠키 영상에서 암시된 옐레나의 갈등이 해소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어 마블의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클린트와 옐레나는 나타샤라는 가족을 잃었다는 아픔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단지 클린트의 아픔은 스스로를 희생하려는 나타샤를 끝내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의 모습으로, 옐레나의 아픔은 나타샤의 죽음을 클린트의 탓으로 돌리는 복수심의 형태로 드러날 뿐이다. 그래서 옐레나는 과거 나타샤와 자신의 추억을 클린트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그와 자신이 같은 처지에 놓여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둘 간의 오해와 갈등도 일단락된다.
더 나아가 다양성의 관점에서도 <호크아이>는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데, 구체적으로는 '다름'의 의미에 대해 숙고할 기회를 준다. 어벤져스 활동으로 인해 왼쪽 청각을 거의 상실한 클린트는 보청기 없이는 일상적인 대화조차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다. 이때 드라마는 클린트의 청각장애를 잠시나마 체험할 수 있도록 연출한다. 보청기가 없는 클린트의 관점에서 주변 소음이나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저 웅웅 거릴 뿐이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케이트의 도움 없이는 집에서 걸려온 막내아들의 전화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클린트의 모습은 연민을 자아낸다.
이러한 클린트의 서사는 빌런인 마야가 청각장애에 접근하는 방식과 대조를 이루기에 더욱 흥미롭다. 마야는 어려서부터 일반 학교에 다니며 청인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입 모양을 읽거나 순간적인 표정의 변화를 포착해 청각정보의 빈자리를 시각정보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대한다. 이런 마야의 관점에서, 청각의 부재는 결손이나 단점이 아니라 그냥 다른 것에 불과하다. 전투 도중 보청기를 잃고 허둥대는 클린트에게 “당신은 기계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는 청인의 상태가 정상이라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장애와 비장애는 어떤 위계도 없이 그저 '다르다'라고 인식할 수 있을 때 가능한 표현이다. 이렇게 호크아이의 정체성, 곧 그만의 페이소스를 서로 대비되는 농인의 시점과 이야기로도 확장시키면서 <호크아이>는 지난 십 년간 한 캐릭터를 착실히 빚어온 MCU의 저력을 증명해 보인다.
다만 중심 주제로부터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인상적인 스토리텔링과 별개로, 슈퍼히어로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호크아이>는 기대 이하이 액션이라는 결정적 문제를 노출한다. 두 히어로의 특출 난 궁술 실력과 그에 준하는 격투 실력, 그리고 특수 화살의 다양한 기능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액션씬이 지나치게 비슷한 장면으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트랙슈트 마피아를 다리 위나 주차장, 빙판 위로 모두 모아놓고 특수 화살의 효과를 이용해 다수의 적을 한 번에 처치하는 식의 장면이 연이어 등장하다 보니 드라마가 말미로 향할수록 액션신은 크게 기대되지 않는다.
후반부에 캐릭터의 서사나 그들의 갈등이 갑자기 마무리되는 것도 단점이다. 특히 주인공 일행에 비해 다소 빈약하게 묘사되었던 빌런들의 이야기가 빈약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데어데블을 MCU로 합류시켰듯이 <호크아이>도 에코의 삼촌이자 넷플릭스 드라마 <데어데블>의 빌런이었던 킹핀을 등장시켰는데, 킹핀이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퇴장하다 보니 그 의미가 퇴색되는 감이 있다. 다만 디즈니+에서 공개된 다른 마블 드라마들도 전반적으로 빈약하고 성급한 마무리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이는 <호크아이>만의 문제로 보기도 애매하다. 그렇기에 MCU 작품이라는 한계만 감안할 수 있다면, <호크아이>는 여전히 그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깊이와 무게감 있는 이야기로 무장한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A(Acceptable, 무난함)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캐릭터의 정체성과 서사에 깃든 힘을 일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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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키 17>, 미래일까 현재일까, 상상일까 현실일까
‘봉 감독이 돌아왔다.’ 그가 새로운 작품과 함께 돌아온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설레었던가. 회갈색 빛으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관객들의 마음에 찝찝함을 더하고 현실에 대한 의문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품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재치를 던져줌으로써 자칫하면 질척 질척 무겁기만 할 수도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유하게 이끌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그가 창조해 낸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바라보고, 우리가 애써 모른 척 해왔던 무언가와 눈을 맞춘다.
그런 봉준호 감독이 로버트 패틴슨과 만났다. <트와일라잇>으로 한국 대중에게 익숙할 로버트 패틴슨은 사실 그간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의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으로 그를 눈여겨보고 있던 봉준호 감독은 <미키 17>을 구상하며 주인공 역으로 바로 로버트 패틴슨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미키 17>을 통해 자신의 연기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영화를 본 박찬욱 감독은 ‘아카데미 위원회는 로버트 패틴슨에게 주연상과 조연상 두 개를 주어라!’라는 평까지 남겼으니 말이다.
오랜만의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돌아다는 소식에 설레며 개봉일만을 기다려왔다. 그렇게 개봉일 아침 바로 극장으로 달려가 마주한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미래와 사회에 대한 고찰을 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미키 17> 한국판 포스터와 주인공 미키(로버트 패틴슨 역) (C) Warner Bros Korea
영화 <미키 17>은 2050년, 미래와 우주를 배경으로 한 공상과학 영화다. 지구에서 사채 빚으로 인해 목숨을 위협당하는 미키(로버트 패틴슨 역)가 새로운 행성의 개척 프로젝트에 지원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무 기술도 능력도 없던 미키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지원할 수 있던 유일한 직군은 ‘익스펜더블 expendable.’ ‘소모용’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 직군에 지원하기 전 미키는 지원서의 세부사항을 자세히 읽었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직군의 주요 업무는 수많은 죽음을 겪으며 복제당하고 또 죽음을 겪는 실험체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죽음을 피하기 위해 반복되는 죽음으로 뛰어든 미키는 어느 날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귀환한다. 그런데 힘겹게 몸을 누인 자신의 침대에는 또 다른 미키가 있었다. 둘의 미키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세계에서,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키 17>은 그린다.
이번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첫 우주 공상과학 영화, 우주 SF 영화다. 미래와 우주를 배경으로 해서일까, <미키 17>에서는 지구가 미래 직면하게 될 모습과 과도하게 발전하는 기술이 마주할 이슈 등을 그린다. 복제 인간 미키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 또한 바로 그 이슈 중 하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독창성은 원작소설 《미키 7》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원작소설에 그만의 각색을 더해 <미키 17>을 완성해 냈다. 원작이 과학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면, 봉 감독은 각색을 통해 인간냄새나는 SF 영화를 탄생시켰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각색 포인트는 바로 원작에서보다 주인공 미키를 10번이나 더 죽였다는 점이
“미키는 불쌍하고 찌질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캐릭터입니다.”- 봉준호 감독 -그럼 영화에 대한 소개는 여기까지 간략하게 하고, 이제는 영화 속 세계를 고민하고 성찰하게 만들 포인트들을 함께 나누어보고자 한다. 부디 여기서부터 등장할 내용을 읽기 전 영화를 만나고 왔기를 바라며 말이다.
*본 게시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죽어도 복사할 수 있는 미키는 '죽어도 또 만들면 그만'인 존재로 취급당한다. (C) Warner Bros Korea
무뎌지는 인간성에 대한 고찰
미키는 실험을 위해 반복해서 복제되는 존재다. 그의 몸은 가장 처음 실험을 위해 스캔해 둔 몸을 복제하여 만들어지고, 그의 기억은 가장 마지막 기억을 데이터로 불러와 새로운 몸에 심으며 이어지게 된다. 그렇게 복제를 통해 죽음과 삶을 반복하는 미키를 대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그를 두고 무생물체보다 못한 취급을 하기도 하며, 인류사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그를 불필요하게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주변인들의 모습을 통해 봉준호 감독은 발전하는 기술 앞에 점차 무뎌지는 인간성을 그린다. 영화 속 미키는 ‘실험 인간’이다. 주인공인 그의 역할과 감정에 이입하여 영화를 보게 되는 관객들은 자연스레 반복되는 실험의 잔혹함과 상실되어 가는 인간성의 더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대상이고 그 실험이 ‘카메라 앞’에 비쳐 우리에게 영화라는 ‘가상의 이야기’로 공개되었다는 점만 다를 뿐, 이러한 실험은 과거와 현재에 존재해 왔다. 물론 그 시간과 장소에는 미키의 곁을 지켜준 나샤 같은 따뜻한 인간 또한 있었으리라. 하지만 정말 이처럼 무뎌지는 인간성은 그저 공상과학 영화, 가상의 이야기 속 상상에 불과하다 할 수 있을까.
지난 날의 '나'가 눈 앞에 있다면, 부끄러울까 안타까울까 자랑스러울까 사랑스러울까 (C) Warner Bros Korea
미키, 같은 듯 다른 나와 나
미키는 같은 형태의 몸으로 복제되지만, 그 기억은 데이터로서 백업되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렇기에 처음과 같은 미키가 복제되는 게 아닌 지난 미키에서의 죽음을 품은 다음 세대의 미키가 태어난다. 그래서일까 모든 미키는 조금씩 달랐다. 미키 A는 소심했고, 미키 B는 멍청했다. 미키 17은 순한 맛이었으며, 미키 18은 매운맛이었다. <미키 17>에서 주로 등장하는 미키 17과 미키 18은 더 큰 차이를 보여준다. 특히 이 둘은 번갈아 가며 전혀 다른 특성의 대화를 던지는 모습이 마치 천사와 악마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모든 미키는 미키였다. 단지 경험한 죽음과 기억이 조금씩 달라 그 시점의 행동이 조금씩 다르게 드러났을 뿐, 모두가 미키였다. “I hate you. 나는 네가 싫어.” 화가 많고 반골 기질이 강한 미키 18은 모든 걸 좋게 받아들이고 넘어가려는 유순한 미키 17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자신에게 자신이 싫다고 하는 미키의 모습은 꽤나 잔혹하다. 마치 거울 속의 자신에게 말을 걸듯, 과거의 자신을 두고 미래의 자신이 싫다고 하는 미키의 모습은 그가 지난 시간 받은 상처와 자신의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답답함의 표출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결말에 다다라 미키 17이 미키 18처럼 생각하고 던지는 대사가 있다. 거기서 볼 수 있듯, 미키 18은 기존의 미키들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미키가 아니었다. 미키 17이 살다 보면 마주했을 미래의 미키였다. 사람이 살다 보면 특정 사건을 계기로 책에서 챕터를 넘어가듯 인생의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가. 미키는 그렇게 ‘죽음’이라는 다소 강제적인 요소를 통해 자신의 삶에서의 챕터를 넘겨왔다. 물론 그렇게 넘어간 다음 장이 과거보다 나을지, 혹은 많은 걸 포기하거나 놓은 상태로 과거보다 더 못한 미래였을지는 미키만 알 테다. 과거의 자신을 바로 두 눈앞에 두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경험 또한 미키만 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감옥 같은 우주선 속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독재자의 모습은 공상과학일까 현실일까 (C) Warner Bros Korea
다른 모습으로 반복되는 과거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논하며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사회에 대해서 또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주요 배경 사회는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에서 새로운 인류 공동체를 키우려 하는 우주선 속이다. 이러한 사회를 주도하는 이는 지구에서 정치 활동에 실패한 정치인,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 역)이다. 그가 이끄는 우주선 속 사회에는 그를 쫓아온 열렬한 지지자들과 함께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 지구를 떠나고 싶어 도망 온 사람 등이 섞여 있다. 그들은 모두 ‘인류 번영을 위한 신 행성 개척’이라는 마샬로 인해 주어진 사명 아래 철저히 통제된 생활을 이어간다. 음식은 칼로리를 채워 살기 위해 주어지는 연료 따위의 수준이며, 조금만 실수해도 심한 질책을 당하며, 우주선 속 환경은 감옥을 연상시킨다.
우주선의 리더 케네스 마샬은 가히 독재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자신은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나가지만, 일꾼이자 우주선 속 사회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복지와 행동은 철저히 통제된다. 그의 주장과 연설은 허술하고 허황하기 짝이 없으며, 자신의 아내와 비서에게 휘둘리는 허수아비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샬 역의 마크 러팔로 배우는 자신의 캐릭터를 두고 “봉준호 감독에게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도대체 왜 이런 악역을 나에게 주는 걸까, 내가 뭔가 잘못했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전했다. 또한 마샬을 두고 세계 각국의 인터뷰에서 각 나라의 특정 독재자가 떠오른다는 평이 많았다. 이에 관해 특정 인물이 모티브가 되었냐는 질문에 봉준호 감독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마샬은 과거 독재자들의 모습을 따와서 만든 캐릭터입니다.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에 현재의 누군가를 지칭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 -영화 속 우주선은 행성 개척을 위한 탐사선이기도, 일터이기도, 감옥이기도 해. 그치, 미키? (C) Warner Bros Korea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에 관해서는 물론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듯하다. 영화의 서사가 되새기게끔 하는 식민지화의 잔혹함과 독립의 이야기는 한국인 혹은 식민 지배의 경험이 있는 나라 국민이라면 자연스레 떠올렸을 것이다. 죽음을 피해 반복되는 죽음으로 뛰어든 미키의 모습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삶에서의 선택을 되돌아보게끔 했을 것이다. 슈베르트의 마왕을 떠올리게 하는 OST에 미키를 쫓아오는 보이지 않는 마왕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이도 있었을 것이며, <미키 17>을 보며 봉준호 감독의 전작 <옥자>, <괴물>, <설국열차> 등을 떠올리는 이도 있었으리라. 물론 SF 영화라는 점에서 비슷한 요소를 지닌 다른 영화 혹은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점에서 우리는 또 깨닫는다. ‘봉 감독이 돌아왔다.’ 그의 짙은 회갈색 빛 거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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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첫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데드풀 2> 감독이 말아주는 코미디, 액션, 로맨스 장르 풀코스
5월 1주차 개봉예정작 함께보아요!
개요: 액션, 범죄 | 한국 | 109분
감독: 허명행
출연: 마동석, 김무열, 박지환, 이동휘 등
개봉: 2024.04.24.
배급: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신종 마약 사건 3년 뒤,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와 서울 광수대는 배달앱을 이용한 마약 판매 사건을 수사하던 중 수배 중인 앱 개발자가 필리핀에서 사망한 사건이 대규모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낸다.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납치, 감금, 폭행, 살인 등으로 대한민국 온라인 불법 도박 시장을 장악한 특수부대 용병 출신의 빌런 ‘백창기’(김무열)와 한국에서 더 큰 판을 짜고 있는 IT업계 천재 CEO ‘장동철’(이동휘). ‘마석도’는 더 커진 판을 잡기 위해 ‘장이수’(박지환)에게 뜻밖의 협력을 제안하고 광역수사대는 물론, 사이버수사대까지 합류해 범죄를 소탕하기 시작하는데… 나쁜 놈 잡는데 국경도 영역도 제한 없다! 업그레이드 소탕 작전! 거침없이 싹 쓸어버린다!
개요: 액션, 범죄 | 한국 | 109분
감독: 허명행
출연: 마동석, 김무열, 박지환, 이동휘 등
개봉: 2024.04.24.
배급: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신종 마약 사건 3년 뒤,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와 서울 광수대는 배달앱을 이용한 마약 판매 사건을 수사하던 중 수배 중인 앱 개발자가 필리핀에서 사망한 사건이 대규모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낸다.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납치, 감금, 폭행, 살인 등으로 대한민국 온라인 불법 도박 시장을 장악한 특수부대 용병 출신의 빌런 ‘백창기’(김무열)와 한국에서 더 큰 판을 짜고 있는 IT업계 천재 CEO ‘장동철’(이동휘). ‘마석도’는 더 커진 판을 잡기 위해 ‘장이수’(박지환)에게 뜻밖의 협력을 제안하고 광역수사대는 물론, 사이버수사대까지 합류해 범죄를 소탕하기 시작하는데… 나쁜 놈 잡는데 국경도 영역도 제한 없다! 업그레이드 소탕 작전! 거침없이 싹 쓸어버린다!
개요: 액션, 범죄 | 한국 | 109분
감독: 허명행
출연: 마동석, 김무열, 박지환, 이동휘 등
개봉: 2024.04.24.
배급: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신종 마약 사건 3년 뒤,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와 서울 광수대는 배달앱을 이용한 마약 판매 사건을 수사하던 중 수배 중인 앱 개발자가 필리핀에서 사망한 사건이 대규모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낸다.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납치, 감금, 폭행, 살인 등으로 대한민국 온라인 불법 도박 시장을 장악한 특수부대 용병 출신의 빌런 ‘백창기’(김무열)와 한국에서 더 큰 판을 짜고 있는 IT업계 천재 CEO ‘장동철’(이동휘). ‘마석도’는 더 커진 판을 잡기 위해 ‘장이수’(박지환)에게 뜻밖의 협력을 제안하고 광역수사대는 물론, 사이버수사대까지 합류해 범죄를 소탕하기 시작하는데… 나쁜 놈 잡는데 국경도 영역도 제한 없다! 업그레이드 소탕 작전! 거침없이 싹 쓸어버린다!
개요: 액션, 범죄 | 한국 | 109분
감독: 허명행
출연: 마동석, 김무열, 박지환, 이동휘 등
개봉: 2024.04.24.
배급: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신종 마약 사건 3년 뒤,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와 서울 광수대는 배달앱을 이용한 마약 판매 사건을 수사하던 중 수배 중인 앱 개발자가 필리핀에서 사망한 사건이 대규모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낸다.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납치, 감금, 폭행, 살인 등으로 대한민국 온라인 불법 도박 시장을 장악한 특수부대 용병 출신의 빌런 ‘백창기’(김무열)와 한국에서 더 큰 판을 짜고 있는 IT업계 천재 CEO ‘장동철’(이동휘). ‘마석도’는 더 커진 판을 잡기 위해 ‘장이수’(박지환)에게 뜻밖의 협력을 제안하고 광역수사대는 물론, 사이버수사대까지 합류해 범죄를 소탕하기 시작하는데… 나쁜 놈 잡는데 국경도 영역도 제한 없다! 업그레이드 소탕 작전! 거침없이 싹 쓸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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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필로프 사단의 28용사
판필로프 사단의 28용사
러시아 전쟁영화. 모든 전쟁영화는 판타지다. 현실을 최대로 재현한다고 해도, 피가 튀고, 몸뚱이가 산산조각 나서 날아다니는 참혹한 살육의 현장을 그대로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리얼리티를 최대로 끌어올린 전쟁영화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있지만, 그것 역시 실제 전투 현장과 비교할 수 없다.
특히 헐리우드 전쟁영화는 영웅을 드러내기 위한 배경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전쟁의 참혹함과 잔혹함, 공포를 진지하게 보여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전쟁영화 가운데 특히 1차, 2차 세계대전 영화는 이후에 나온 영화들과 차별이 있다. 이 세계대전은 근대 전쟁의 마지막 대규모 전쟁으로, 재래식 무기와 수많은 병사들의 생명을 갈아 넣은 살육전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2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과 쏘련의 전쟁은 전쟁 전체의 판도를 바꾸고, 연합국의 승리로 주도권을 가져온 전쟁이었다. 독쏘전쟁은 우리에게 덜 알려졌다. 우리가 미국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어서, 2차 세계대전도 미국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미국 중심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지만, 전쟁을 가장 참혹하게 겪은 국가는 쏘련이었다.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이 쏘련을 침공한 1941년 겨울에서 1942년 초반까지 쏘련이 독일군에 계속 밀리는 상황에서 벌어진 전투를 그리고 있다. 이 시기는 '독쏘전쟁'의 1기에 해당하는 기간으로, 독일군은 이미 쏘련을 침공할 계획을 철저하게 준비해 1941년 6월 22일, 독일군 공군 폭격기가 쏘련의 주요 비행장을 폭격했고, 지상에서는 독일군 포병의 포격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 초기에 쏘련은 독일군의 공격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모스크바 근처까지 처들어왔다. 쏘련의 서쪽 국경은 북쪽 레닌그라드부터 남쪽 하리코프까지 거의 직선으로 뒤로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쏘련은 뒤로 밀리면서도 대책없이 도망한 것은 아니었다. 비교하자면, 복싱에서 실력 좋은 선수에게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면서 코너에 몰린 상황이었는데, 쏘련은 맷집이 좋아서 맞으면서도 계속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고, 때리는 독일이 오히려 지쳐서 힘이 빠지는 형국이었다.
1941년 11월 14일, 독일 11기갑사단이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하는 상황. 쏘련군은 방어선을 구축하고 단 한발짝도 뒤로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로 맞서고 있지만, 기갑사단에 맞설 병력과 무기가 절대 부족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독일 11기갑사단에 맞서는 쏘련군은 불과 50여 명으로, 대전차포 서너 문, 기관총 몇 문, 수류탄과 사제 화염병 정도의 무기로 방어를 하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된 11월 14일에 이미 독일군의 포격으로 참호 진지가 파괴되었지만, 첫 전투에서 독일군 전차 4대를 파괴하고, 독일보병 다수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린다. 하지만 뒤이어 두번째 전투에서는 독일군의 포격이 훨씬 격렬해지고, 이때 쏘련군은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생존군인은 불과 28명에 불과했다.
이들 소수의 군인들은 원래 '판필로프 사단'이라고 불리는 붉은 군대 316 소총 사단에 소속된 군인들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탄인들이 주류를 이룬 부대였다. 이들은 독일군이 침공한 1941년 6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 창설된 동원 사단으로 당시 키르기스 관구장이던 '이반 판필로프' 소장이 사단장으로 부임했다. 원래 이 사단은 레닌그라드를 방어하기 위한 예비사단이었지만, 그해 10월, 모스크바를 방어하라는 명령을 받고 재배치되었으며, 사단 이름도 8소총사단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전투가 벌어진 직후 판필로프 소장은 독일군의 포격 파편에 맞아 사망했다.
독일군 탱크가 몰려오기 시작하고, 참호에서 방어를 하는 28명의 군인은 탱크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탱크 주위에는 보병이 따라오고 있는데, 참호의 가장자리에 각각 기관총과 대전차포를 배치해 보병과 탱크를 분리하고, 탱크의 캐터필러를 부숴 탱크가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전투력으로는 절대 강세에 있던 독일군은 탱크 수십 대를 밀어부치며 전진했고, 탱크에서 쏘는 포격으로 대전차포가 망가지고, 기관총병이 사망한다.
그럼에도 참호에 있던 쏘련군들은 수류탄을 던지며 탱크를 저지했고, 각각 한 대씩 남은 기관총과 대전차포는 진격하는 독일군 탱크를 저지하고 있었다. 관객은 영화라는 걸 알면서도 쏘련군의 용감무쌍한 전투를 보면서 손에 땀을 쥐게 된다. 이들은 몰려오는 독일군과 탱크에 맞서 좌절하지도, 만용을 부리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목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보기 위한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고 있었다.
독일군 탱크 18대가 파괴되었고, 28명이던 병사는 6명이 생존했다. 전투가 끝나고 종군기자에 의해 이 전투가 쏘련의 언론에 알려지던 당시에는 쏘련군 모두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나중에 6명이 생존한 것으로 밝혀졌고, 이 영화에서도 6명의 생존자가 전투가 끝난 들판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난다.
지금도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공원에는 이들 6명의 생존 군인을 기념하고, 이 전투를 기록한 영웅 동상이 서 있다. 독일군의 침공을 일시적으로 막아내 모스크바를 지킬 수 있었던 이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탄의 군인들에 대한 기록을 영화로 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미국영화보다 더 사실적이고, 흥미진진한 전쟁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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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왕을 차지하라. 영화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
-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 (THE FAVOURITE, 2018)제작 : 미국,드라마 │ 감독 :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 올리비아 콜맨(앤 여왕), 엠마 스톤(에비게일), 레이첼 와이즈(사라)
등급 : 15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19분영화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은 18세기 영국 왕실의 이야기다. 유럽 중세, 근대의 시대극은 항상 나를 사로잡는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화려한 의복들(특히 드레스)이 가득하고, 궁정생활은 또 어찌나 신기하고 재밌는지. 게다가 제목을 보라. 왕의 여자도 아닌, 여왕의 여자다. 재밌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이야기임을 단박에 눈치챘다.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는 영화는, 1700년대의 영국 궁정을 배경으로 다룬다. 그 당시 영국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통합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앤' 여왕이 즉위해 통치하고 있었다.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앤 여왕은 개인사가 눈물겹다. 어릴 때부터 나약했던 여왕은 젊은 시절부터 비만이 심각했고 통풍을 앓았다 한다. 18번의 임신 중 대부분은 유산하거나 사산했고, 나머지 출생한 자녀들도 10살이 되기 전 죽는 불행을 겪었다. 개인사가 너무 비극이라 그랬을지, 여왕은 근엄하고 리더십 있는 군주라고 보긴 힘든 모습이다. 늘 쉬고 싶어 하고, 변덕스럽고, 충동적이고, 아무튼 여러모로 군주감은 아닌 듯 보였다.
(앤 여왕과 그녀의 최측근 사라)
그런 여왕 앤의 곁에는 '사라'라는 인물이 있다. 어릴 적부터 앤 여왕의 소꿉친구였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몸이 약한 앤을 대신해 국정을 돌보는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왕정은 사라가 실세가 된 섭정의 모습으로 흘러간다. 그러던 중 사라에게 한 인물이 찾아오는데. 사라의 먼 친척이자 몰락한 귀족인 '에비게일'이다. 알거지가 되어 뭐라도 일거리를 달라던 그녀는, 사라의 호감을 사 궁정의 하녀로 일하게 되는데.
그렇게 궁정생활을 시작한 '에비게일'이 자신을 가난에서 구제해준 사라를 따라 끝까지 신의를 지켰더라면 좋았겠지만. 얘기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우연히 여왕의 서재에 들어갔다가 앤 여왕과 사라가 밀애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 에비게일. 그때 그녀의 머리에 야망의 스위치가 켜진 것이다. 그 이후, 에비게일은 작정하고 앤 여왕을 유혹하기에 이르고. 머지않아, 여왕의 침대에서 나체로 여왕과 끌어안고 자는 모습을 사라에게 들키고 만다. 서슬 퍼런 고의였음은 물론이다.
(여왕의 호감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에비게일)
앤 여왕을 곁에서 40년 가까이 보필한 사라의 마음은 어땠을까. 얼마나 큰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였을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최고 권력자는 철저히 앤 여왕이며, 여왕 곁에 남을 수 있는 길은 에비게일과의 투쟁에서 이기는 법 밖에는 없었다. 그때부터 사라와 에비게일이, 남자도 아닌 여왕을 두고 치정극을 벌이기 시작한다. 실제로 셋의 관계가 성적인 부분까지 내포한 관계였는지까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왕의 신임을 얻기 위한 권력다툼 자체는 실화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치정극의 배경이 왕실이니 만큼, 이 싸움에 그저 왕의 애정 유무만이 작용했던 건 아니다. 영국의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중심에 있었다. 당시 영국은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와 동맹해 프랑스, 스페인과 전쟁 중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두고 전쟁을 찬성하는 휘그당과, 화친과 평화를 주장하는 토리당이 존재했다. 문제는, 앤 여왕을 40년간 돌본 사라의 남편, '말버러 공작'이 이 전쟁에서 엄청난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는 것. 그러다 보니 사라는 당연히 팔이 안으로 굽어 전쟁을 부추기는 쪽이었고,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던 앤 여왕과 점점 사이가 나빠졌다고 한다. 시종일관 이 문제로 부딪치는 사라에 비해 여왕님 편만을 들던 에비게일이, 여왕 입장에서 더 예뻤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까.
에비게일의 계략과 더불어 이런 에비게일에게 힘을 실어준 토리당이 결국 실세가 되면서, 사라는 결국 궁에서 쫓겨나고 만다. 영화에서는 세 여자의 암투극에 더 초점을 맞추었지만, 실제론 전쟁이라는 정치적 문제로 사라와 앤이 대립했던 것이 사라가 쫓겨난 큰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흡사 조선의 한 역사가 떠오른다. 각각 서인과 남인을 등에 업고 왕 곁에서 싸우던 인현왕후와 장희빈 말이다. 조선이나 영국이나 궁정의 모습은 근본적으로 다 비슷했던 모양이다. 심각하고 지루할 수 있었던 역사의 한 부분을, 세 여자를 필두로 한 코믹 암투극으로 풀어냈기에 영화가 더 재밌게 느껴진 것 같다. 왕, 그것도 여자인 왕을 두고 싸우는 두 명의 여자라니.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신선한 이야기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그녀들은 과연 왕을 인간으로 사랑해보기는 했을까. 권력욕에 불타 있던 사라, 출세욕에 불타 있던 에비게일. 그들이 뚱뚱하고 변덕스럽고 무능한 여왕을 사랑했던 건, 단지 그녀가 왕관을 쓴 권력자였기 때문 아닐까. 그런 면에서 왕은, 왕관의 빛으로 유지되는 참 고독한 존재가 아닌가 싶다. 18명의 아이를 잃고 그 상실감에 18마리의 토끼를 기르던 여왕 앤의 모습은, 왕이라기보단 그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던 평범한 인간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게 사라든 에비게일이든, 그녀는 진정한 친구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앤 여왕은 결국 비만으로 인한 여러 질병으로 일찍 죽었다. 죽기 직전에는 휠체어 없이는 이동도 못할 만큼 거동이 힘들었다고 전해진다. 반면 사라는? 궁에서 쫓겨나고도 84세까지 살았다고. 권력이 다 무엇이고, 그를 향한 암투가 다 무엇일까. 어떤 역사를 뒤져봐도 세상에 마냥 행복한 왕은 없고, 영원한 권력도 없는 것을.
영화가 끝난 뒤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에비게일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내게도 일말의 출세욕 같은 게 모락모락 피어나, 나를 구제해준 친척 언니 사라를 제치고 왕의 사랑을 받고자 애썼을까. 음, 아닐 것 같다. 소심한 나는 일단 나를 구제해준 사라 언니를 위해 열심히 일했을 것이다. 공작부인인 사라 옆에만 잘 있었어도 남은 내 여생은 그럭저럭 괜찮았을 테니까. 내가 사라였다면 또 어땠을까. 나는 치정 싸움 그 멀리까지는 가지도 않고, 그저 앤 여왕의 말벗 정도로만 만족하며 살았을 것 같다. 여왕의 친구로만 있었어도 분명 편안히 살 수 있었을 테니까. 괜한 권력 욕심의 끝은 언제나 비극인 법, 절레절레 사양이다. 역사시간에 아무리 졸았어도 내 그쯤은 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역사는 그야말로 선택과 선택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앤 여왕이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에비게일이 이렇게 했더라면. 모든 역사는 조금씩 다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역사는 재미있고, 늘 영화의 흥미진진한 소재거리가 되나 보다.
이 이야기는 20년 전에 이미 각본이 쓰여진 바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자 주인공이 무려 셋이나 되는 왕정 이야기를 아무도 영화화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란티모스 감독이 이 각본을 보게 되면서 현재의 영화가 되었다고. 여자들 얘기가 얼마나 재밌는지 왜 옛사람들은 몰랐던 걸까. 적당한 풍자를 곁들인 이 여성들의 맛깔난 권력 찬탈 이야기는, 아마도 내가 본 궁정 영화 중 최고가 아닌가 싶은데 말이다. 이 각본을 알아본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혜안에 엄지를 치켜들어 본다.
글쓰는우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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