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2024-09-05 15:37:57
너의 이해할 수 없는 삶에 대해
딸에 대하여(2024)
돌덩이 같은 가방을 메고 하루 종일 전국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보따리 강사. 그럼에도 동료 강사의 부당해고에 분노하며 생계는 나몰라라 투쟁에 앞장서는 ‘나의 딸’ 혼인 신고조차 할 수 없는 동성 연인과 7년 째 연애를 하고 있는 ‘나의 딸’이 집으로 돌아왔다, 동성 연인과 함께. 세상의 부조리를 이해할 수 없는 딸과 세상에 부적합한 딸을 이해할 수 없는 나 우리가 함께 마주할 세계가 있을까?
<딸에 대하여> 줄거리
불편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나의 감정을 하나로 꼽자면 이 말밖에는 없을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은 정말 어디선가 봤을 법한 아니 이미 내 주변의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너무 현실적이기에 불편할 수밖에. 이 영화는 제목에서 이미 드러나듯이 성소수자인 딸과 딸의 연인이 중심이 아니라 그의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7년째 연애 중인 딸의 연인은 여자다. 그래도 눈앞에서 딸의 연애 그리고 그 연인을 보지는 않았기에 탐탁지 않아도 참고 있다.
그런데 마음 준비할 생각도 없었지만 겨를 없이 갑작스레 함께 살게 된 딸과 그의 연인.
딸의 연인이라는 여자, 레인과 함께 살기 시작한 엄마. 늦은 밤 딸과 함께 속닥거리는 소리도 아침저녁마다 겹치는 동선도 모두 불편할 따름이다. 딸에게는 쉬이 드러내지 못하는 불쾌한 속내를 레인에게는 잘도 드러낸다. 딸이 그린이라는 이름으로 살며 겪고 있는 일들이 모두 레인 탓이라 여기는 걸까. 아니면 잠깐이면 끝날 장난을 7년 동안 이어온 그 둘이 마음에 안 드는 걸까.
버스에서 본 여학생들처럼 아직까지도 소꿉장난이나 하고 있는 둘의 모습에 시종일관 뭐가 얹힌 듯이 가라앉아 있는 표정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명하다.
왜 하필 내 딸이. 세상의 부조리에 부조리하다 말하는 건 당연하지만 내 딸이 그 부조리 속에 있는 건 안된다. 남들처럼 살면 안 되는 걸까. 이런 부모의 마음 알지 못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린에게 이 투쟁은 곧 나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외면할 수 없다. 멈출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딸의 행동에 당장 화를 내고 그만두라 소리치고 싶지만 남들이 말하는 평범과는 먼 딸의 삶을 마주 하긴 두렵다. 그린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불편해하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지만 나의 가족이 나를 그리고 내 연인을 불쾌해 하는 걸 마주하고 싶지는 않다.
터질 듯 말 듯 한 아슬한 분위기와 불편하고 울분을 참는 것 같은 표정을 정말 잘 표현한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압권이었다. 덕분에 서로 이해하지 않고 있던 세상들이 충돌했을 때 장난 혹은 잘못된 것이라 믿어왔던 것들이 실재하고 있는 모습을 맞닥뜨렸을 때의 인물들의 울분과 분노가 아무려 나와 관련 없는 이해 못 하는 관점이라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끔 만든다.
엄마의 삶은 딸에 대한 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요양 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엄마는 가족도 아무도 없는 제희를 돌보고 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도 자신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살뜰히 그를 챙기는 엄마. 모두가 그 모습에 의문을 표한다. 요양 보호사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아님 이타적인 마음에 의해? 그 어느 것도 아닌 바로 제희의 모습이 곧 자신의 모습일 거라는 공포 그리고 불안 때문이었다. 그의 일이 내 일이 될 수도 있고 아니 내 일이 될 테니까.
결국 세상에 내팽개쳐진 제희를 위해 소리치고 직접 움직이는 엄마를 보며 그린의 맞서는 행동들이 누구를 닮았는지 알겠더라. 결국 모두들 각자의 부조리에 맞서고 있다. 엄마는 나 혹은 나의 딸이 될지도 모르는 무연고자로서의 삶이 두렵기에 소리를 내고 그를 끝가지 돌본다. 엄마의 삶 역시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와 투쟁으로 가득하기에 자신의 딸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엄마이기에 딸을 먹으면서도 결국 끝까지 곁에 있어준다.
그린과 레인의 모습은 7년의 연애 기간이 무색하지 않게 안정적이다. 그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게 된 엄마. 그린이 생판 남을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보게 된 엄마. 그린과 레인 주변에 그들과 연대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본 엄마. 결국 무연고자로 아무도 오지 않는 장례식을 치렀지만 그린과 레인, 그리고 자신까지 아무런 연관 없는 사람들로 조금이나마 채워진 장례식장을 본 엄마. 그는 그런 일들을 겪었다고 당장에 머리에 띠를 두르고 세상을 뒤엎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엄마의 미소가 편안해 보이는 건 그런 타인의 삶을 혹시 나에게도 펼쳐질지 모르는 그런 불안한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멋대로 해석해 본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딸에 대하여>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